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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한낮을 뜨겁게 태우던 저녁 강이 해에게 말하듯 불이 물에게, 물이 불에게 작별인사 할 때는 물같이도 불같이도 말하지 말기 꼭 돌멩이처럼만 말하기
바람을 버리고 떠나는 쓸쓸한 계절을 향해 작별인사 하는 법을 몰라 눈물이 날 때 말하지 않아도 단단한 말, 듣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말 꼭 돌멩이처럼 말하기
돌멩이는 몸 전체가 입이라서 하루 종일 떠들어댈 것 같지만 입 하나 있는 것이, 그것도 벙어리라서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하고 다만 무겁게 안으로만 말을 한다는데,
사랑아, 네가 나에게 마지막 말을 할 때는 그립고 보고 싶어 자꾸만 목이 메여와도 꼭, 돌멩이처럼만 말하기
아니, 아니, 왈칵, 눈물이 나도 그냥, 돌멩이로 말하기 - 박남희, 「돌멩이로 말하기」
한낮을 뜨겁게 태우던 저녁 강은 서산으로 지는 해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저녁 강은 이별을 말하지 않고 이별을 끌어안는다. 침묵으로 이별하는 방식을 저녁 강은 선택했다고나 할까? 이별이라는, 어떻게 보면 가장 슬플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며 시인은 돌멩이처럼 ‘말하는’ 미덕을 이야기한다. 돌멩이의 말하기란 “불이 물에게, 물이 불에게 작별 인사할 때는/ 물같이도 불같이도 말하지 말기”라는 진술 속에 예시적으로 드러난다. 물은 물이 말하는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불은 불이 말하는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물같이도 불같이도 말하지 않는 방식을 시인은 “꼭 돌멩이처럼 말하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돌멩이처럼 말하는 존재는 침묵으로 상대에게 말을 전한다. 침묵의 소리를 들으려면 상대 또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돌멩이 말을 들으려면 돌멩이로 사는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바람을 버리고 떠나는 쓸쓸한 계절을 향해 작별인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별의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만 흘리는 존재에게 시인은 “말하지 않아도 단단한 말,/ 듣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말”을 알려준다. 돌멩이처럼 말하는 방식이다. 돌멩이만큼 침묵에 어울리는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돌멩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침묵이 얼마나 단단한 말이 되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돌멩이는 마음으로 말을 건넨다. 돌멩이와 함께 있으면 그래서 절대로 외롭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돌멩이의 침묵을 끌어안으려면 스스로 돌멩이가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돌멩이가 되지 않은 채로 우리는 돌멩이가 전하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돌멩이가 될 수 있느냐고? 돌멩이-되기는 물같이도 불같이도 말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물이면서 물과 거리를 두고, 불이면서 불과 거리를 둘 때 우리는 돌멩이가 될 수 있다.
돌멩이는 몸 전체가 입이므로 당연히 입이 하나밖에 없다(입이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온몸이 입인 돌멩이는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이다. 온몸으로 말을 해야 하는 존재가 벙어리라면 그는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까? “무겁게 안으로만 말을 한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면 사랑이 아닌 게 되는 언어의 역설 속에서 시인은 말이 없는 돌멩이의 말하기, 곧 침묵의 소리를 시 언어로 표현한다. 이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립고 보고 싶어 자꾸만 목이 메어온다. 아직 사랑한다는 말도 채 못했는데, 마지막 말을 해야 하다니. 돌멩이처럼 전하는 침묵의 소리는 “왈칵, 눈물이 나도/ 그냥,/ 돌멩이로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처지를 에둘러 드러낸다.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 대로 견뎌야 하는 게 사랑이라면,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원형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돌멩이를 통해 표현하려고 하는 셈이다.
침묵하는 돌멩이는 한 존재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꿈틀대는 ‘수많은 나’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말 속에 말이 없다면, 침묵 속에도 당연히 침묵이 없어야 한다. 말장난을 하는 게 아니다. 박남희의 위 시에서 풀어 헤쳐지는 시의 논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요컨대 ‘나’가 존재하려면 ‘나’ 아닌 것이 있어야 한다. ‘나’ 아닌 것(그것을 타자라고 말해도 좋다)이 있어야 ‘나’가 존재한다면, ‘나’는 결코 절대적으로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없다. 태양이 태양을 고집하고, 저녁 강이 저녁 강을 고집하면 어떻게 될까? 때가 되면 태양은 동쪽에서 떠올라야 하고, 때가 되면 태양은 서쪽으로 져야 한다. 저녁 강은 그런 태양을 온몸으로 품은 채 묵묵히 바다로 흘러간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도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자연 이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 자연 이치를 돌멩이처럼 묵묵히 받아들이는 삶을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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