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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전기다. 그동안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관한 책은 몇 권 읽었지만, 전기 스타일로 쓴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삶을 시대순으로 기록하면서 그녀의 사상도 같이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알로이스 프린츠, <독일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에서 문예학과 철학, 정치학, 언론학을 공부했다. 문제적 인물을 날카롭게 들여다 본 전기로 각종 저술상을 수상한 독일의 대표 전기 작가이다.>
이 책의 내용은
한나 아렌트의 일대기가 그려지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일생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한나 아렌트 (1906.10.14. ~ 1975.12.4.)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아버지 파울 아렌트와 어머니 마르타 콘 사이에서 태어났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칸트(1724 ~ 1804)가 평생을 보냈던 도시다.
루이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한 젊은 교사에게 모욕을 느끼고, 보이콧을 부추기다가 퇴학당했지만(41쪽), 1924년에는 마르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46쪽) 그곳에는 명성이 자자했던 마르틴 하이데거가 강의하고 있었다.
18세의 한나와 기혼자였던 35세의 하이데거는 가까워졌고, 결국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스승이자 연인이 되었다. 아렌트는 이어서 야스퍼스 등에게서 두루 배웠지만 하이데거는 그녀의 사상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1928년, 22세에 아렌트는 박사학위를 받고, 그 후 귄터 슈테른과 결혼했다. (70,72쪽)
이후 아렌트는 1941년까지 프랑스에 머물며 반나치 운동에 참여하고, 슈테른과의 이혼한 후에 하인리히 블뤼허와 재혼한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자, 한때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벗어나서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미국에 정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점차 정착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학술 연구에 몰두하여 여러 저서를 출간한다.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 1958년 『인간의 조건』.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70년에는 남편 블뤼허가 죽었다. 1975년 12월 4일, 그녀는 『정신의 삶』이라는 책을 거의 마무리한 상태에서 찾아온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쓰러져 심근경색으로 결국 숨을 거두었다.(290쪽) 그녀는 바드 칼리지에 묻힌 남편 블뤼허의 묘지 곁에 묻혔다. (291쪽).
한나 아렌트에게 카프카 그리고 카토는?
한나 아렌트가 카프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녀는 카프카를 높이 평가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그의 텍스트를 주목하게 했다. 당시 미국에서 카프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127쪽)
한나는 복도의 벽에 프란츠 카프카의 대형 사진을 걸어 놓았다.(130쪽)
저자는 한나가 카프카에게 공감한 것,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한나는 “아름답게 치장된 가정에 떠도는 둔탁하고 유독한, 어린이들을 쇠약케하는 공기”에 대해 탄식한 프란츠 카프카의 말에 공감한다.>(29쪽)
그렇게 카프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나이니, 저자의 다른 저서인 『프란츠 카프카 전기』에서 한나와 카프카를 어떻게 그려놓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녀의 저서 『인간의 조건』 의 끝을 로마의 정치가인 카토의 말로 장식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동적이며, 혼자 있을 때 가장 덜 외롭다.”(276쪽)
이글을 읽고, 마침 서재에 있는 『인간의 조건』을 꺼내 확인해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었다. “사람은 그가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때보다 활동적인 적이 없으며, 그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롭지 않은 적은 없다.” (『인간의 조건』, 한길사, 394쪽)
한나 아렌트가 마지막으로 쓰던 글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쓰던 『정신의 삶』에 적어 넣던 글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내 인생의 길에서 마술을 멀리 떼어놓고 마법의 주문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다면, 자연이여, 그대 앞에서 남자로서 홀로 설 수 있으련만, 인간으로 존재하려는 노력은 가치가 있으리니. (289쪽)
( * 『파우스트』 11402-11407 에 나오는 구절)
다시 이 책은? - 한나 아렌트에 대한 저자의 평가
한나 아렌트에 대한 평가는 이 책에 여러 가지로 하고 있지만, 이런 평가가 가장 적절한 게 아닐까
<존경하는 스승 카를 야스퍼스의 생일을 기념하는 글에서 “용기와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충실, 이 셋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되는 미덕이지만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쓰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삶의 마지막에 가서야 우리는 끝까지 충실하는 것만이 참된 일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많은 것에 충실했다. (………) > (6쪽)
이 책으로 한나 아렌트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녀가 충실했던 모든 것을 함께 알아보는, 또한 그녀가 만난 많은 사람들을 같이 만나게 되는 기회를 만끽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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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이 유명한 여성 철학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아이히만은 분명 ‘악의 화신’이리라 생각했었다. 기자의 자격으로 그 재판에 참석한 그녀는 아이히만이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순종한 것밖에 없다고 항변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으로 ‘사유하지 않는 천박함’이 악의 근본임을 주장했다.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은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악은 본래 깊이도 없고 마성(魔性)도 없다는 것이 아렌트의 생각이다. 그런데 아렌트가 <뉴요커>에 기재한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다섯 편의 보고서는 유대인도 화나게 했고 독일인도 화나게 했다. 그녀는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유대인 대학살에 책임이 있음을 주장했기 때문에 민족을 배반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녀는 히틀러에 대해 저항했던 독일인도 대부분 양심에서 우러나와 저항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저항했다고 보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그녀에게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전기작가 알로이스 프린츠가 쓴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날카로운 비평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18살 그녀가 만난 마르틴 하이데거와의 사랑, 하이데거의 친구 카를 야스퍼스에게 철학을 배움, 귄터 슈테른과의 결혼, 하인리히 블뤼허와의 만남, 이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에서 겪은 유대계 독일인으로서의 격리 생활, 미국으로의 망명, 미국의 격변하는 정치 상황, 그 속에서 정착하고자 몸부림쳤던 모습, 명망(名望) 있는 교수 철학자로서의 아렌트의 삶을 따라가 보면, 그녀가 쓴 책들의 의미와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혁명론> 등에는 그녀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전체주의 기원>에서는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인간은 고립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치를 틀고 들어 앉기 십상임을 밝혔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인간이 하는 세 가지 종류의 활동인 ‘노동과 작업과 행위’를 깊이 사유했다. 노동만 하는 인간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작업만 하는 인간은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말과 행위를 통해 진정한 개방성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혁명론>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을 살펴보면서 왜 프랑스 혁명은 원래의 방향에서 벗어났고, 미국 혁명은 나름대로 주효했는지, 폭력이 아니라 의견교환을 통한 형성된 공동 의지에 기초할 때만이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피력했다. 내가 위의 책들을 읽지 않았지만, 그 주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 전기 덕분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형세는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이웃나라 일본의 정치인들은 제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혀있고, 대한민국은 좌파와 우파의 엄청난 시각차와 대립으로 혼란스럽다. 이럴 때 한나 아렌트의 철학은 우리에게 깊이 사유하고 타인과 더불어 의견을 나누고 행동하도록 도전할 것이다. “지금은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할 시간!” 이 책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서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접한 한나 아렌트의 <정신이 삶: 사유와 의지>(푸른숲 刊)를 힘겹게 읽어가고 있다, 장장 74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을 본래 <아모르 문디>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했단다. ‘아모르 문디’(amor mundi)란 ‘세계 사랑’이란 뜻이다. 끔찍한 전체주의 사회 속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사랑했던 그녀의 사상은 지금 우리가 깊이 곱씹어야 할 철학이다. 그녀의 저서들을 집필 순서대로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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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보다 그녀의 삶에 집중해서 보여주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 ‘프란츠 카프카 전기’, ‘요제프 괴벨스 전기’, ‘헤르만 헤세 전기’ 등 문제적 인물을 날카롭게 들여다 본 전기로 각종 저술상을 수상한 독일의 대표적인 전기 작가라고 합니다.
세계대전 당시 독일지배하의 유럽의 유태인으로서 몇 번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가며 격동의 세계를 관통해서 살아왔던 그녀의 삶을 소설처럼 풀어내기 때문에 혹시 한나 아렌트의 철학이 어려워 보이는 분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한나 아렌트 삶의 핵심이라 할 그녀의 철학이 빠질 수는 없겠죠.
한나 아렌트는 마르틴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카를 야스퍼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스승이자 17년 연상의 유부남인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가 나치 정권에 가담하자 그와 결별하고 프랑스를 거쳐 죽을 고비를 넘겨서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자신이 도망쳐온 독일에서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가 벌어졌다는 소식에 그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어떻게 괴테와 칸트의 나라 독일이 나치즘(Nazism)이라는 전체주의를 승인했을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그녀는 전체주의 연구에 몰두하여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을 집필합니다.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서 전체주의의 목적지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혁명적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잔인한 선동과 고문 그리고 학대들의 수단을 통해서 개인의 자발성과 자유를 박탈하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응만 하는 다루기 쉬운 존재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독일 국민은 왜 이런 전체주의를 받아들였을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아렌트는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1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1919년)으로 엄청난 규모의 전쟁배상금을 포함해 무려 448개나 되는 벌칙을 받아들였는 데다가 1929년 대공황까지 겹쳐 경제는 파탄 났고 실직자는 넘쳐났으며 미래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때 히틀러가 최고 인종인 독일 민족이 단결하면 불황 극복뿐 아니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1차 대전의 패배를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의 배신으로 규정합니다. 그러자 새로운 지도자를 열망하고 있던 독일인들은 순식간에 국가주의를 받아들이고 히틀러에 열광하게 됩니다. 즉 아렌트는 경제가 어려워 민중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달콤한 미래를 말하는 지도자가 나타나 그들을 선동하면 대중은 순식간에 폭민으로 변해 전체주의를 받아들인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일본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안부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소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수많은 징용자들을 가혹한 노동으로 죽음에 몰아넣었던 일들조차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인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부인하고 나아가 다 끝난 과거일로 치부하며 이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들이나 양심가들을 공격합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피해국의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피해국에 또 피해를 입히겠다며 피해국과 수 십 년 동안 공존해온 경제적 기반조차도 아무 망설임 없이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극우 정치인뿐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반적인 일본의 인간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즉 일반의 양심과 상식이 사라진 나라이자 국가주의에 언론은 침묵하고 국민들은 의식도 없이 국가의 정책에 순응하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어떤 진실에 무관심하고 죄악에 아무런 의식도 없이 자기 일을 한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더 큰 가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 아렌트의 분석처럼 1차 세계대전 후 자신들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적들 때문에 졌다면서 다시 군국주의 몰이를 했던 히틀러 집권기 시절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만 안 했으면 대동아공영권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하며 일부 지도층의 판단미스를 패인으로 돌리고 자신들의 전쟁범죄는 모두 부인하고 자신들의 증거를 체계적으로 인멸하면서 있습니다. 난징학살이나 잔학한 식민지 지배 사실 그리고 위안부까지 증거가 차고 넘치고 아직도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데도 말이죠.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세계 2차 대전의 전범으로 수많은 학살에 가담했던 아돌프 아히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안부문제나 징용문제 그리고 타국의 최고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이 경제보복에 70% 이상 찬성을 한다는, 늘 쓰레기를 줍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며 개인적으로 착하다고 하는 보통 일본인들이 아렌트가 말한 제대로 된 '사고력이 결여‘된 존재들이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이들이 아베나 일본 우익의 왜곡에 현혹되어 2차 대전에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군으로 다시 변신할 가능성이 큰 위협적인 존재들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은 독일 최고의 전기 작가가 흥미진진하게 풀어 쓴 한나 아렌트의 삶과 철학이 담긴, 에반겔리셔 저술상 수상작이자 유네스코 문학상 노미네이트작이기도 한 책 자체로도 우수한 책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평범 속의 악을 논했던 저명한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에 대한 전기로서 요즘 국내외 정치적 상황과 연결해서 읽어보시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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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악의 평범성’이란 단어로 우리에게 그래도 잘 알려진 한나 아렌트의 전기를 읽어보았습니다. 누군가의 일생을 전기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을 정확히 바라보는 방법인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의 삶을 한 줄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20세기의 초반과 중반의 세계사와 만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헐리우드 식의 영웅 스토리를 가지긴 했지만 가까이서 그를 들여다본다면(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세계사 굴곡을 함께 겪은 철학자가 아닐까 합니다.
부유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국가인 독일과의 부조화속에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어머니의 절대적인 보호아래를 벗어나 하이데거와의 인연은 그를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 스스로가 말한 단순한 생존의 시간을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와 하이데거의 불꽃같은 사랑 그리고 평생에 걸친 인연은 그의 삶의 한 부분을 규정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또한 하이데거를 통해 만나게 되는 야스퍼스와의 인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생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책을 읽다 보면 그는 참 강한 여자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어린시절에서 반전되어 유대인의 박해를 경험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초기에는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그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항상 사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 그리고 토론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그것이 결국 타인들과 세상에 인정을 받게 되어 그녀는 세상에 알려졌고 세상은 그녀를 여성 정치철학자로 인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대는 변하지만 그 사회에서 발생되는 문제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도 때로는 그대로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2차대전 책임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커튼이 내려지면 ‘우린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속물들의 합창을 듣게 될 것이다. ”
그의 명저인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책에 대한 아주 간단한 개요만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그녀는 이 책에서 히틀러와 역사상 폭군에 대한 비교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역사적인 폭군들은 그 잔학성과는 별도로 그 동기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히틀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인데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의 건전한 판단력이 완전한 무의미성과 대면하게 된다. 이 절대적 무의미성이 가장 끔찍하게 훈련되는 곳이 바로 강제 수용소였다. (중략) 역사적 과업의 이름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이런 시도는 한나 아렌트에게 너무 끔찍한 일이며 모든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근본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근본악의 본질은 인간이 처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그는 사회의 굵직한 문제들과 마주했다. 세계 대전 중의 히틀러에 의한 유태인 학살, 미국에서 행해졌던 소위 “빨갱이 몰이”인 매카시즘, 그리고 월남전에 이르기까지 그는 세상의 모순에 대해 논쟁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래서 대중은 열광했고 때로는 유대인들은 그녀에게 유대 민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과 사유에서 나오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손내밈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사회와 격렬하게 반응했던 이야기는 서두에서 말했듯이 바로 하인리히에 대한 재판에 대해 쓴 글이 아닐까 한다. 잡지[뉴요커]에 실린 보고서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이 보고서는 발간되자 마자 유대인들의 극렬한 반대와 비판에 부딪혔습니다. 그녀에게 이 보고서의 두 가지 점에서 공격이 가해졌는데 첫 번째는 보고서에 유대인 평의회의 제3제국에서 나치협력에 대한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이히만의 진술을 통해 유대인 공동체의 수장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일정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마지막 남은 것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나치와의 협력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쁜 일을 막기 위해’ 적들과 타협한다는 것은 저항의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진정시키고 이미 상대의 게임 규칙을 받아들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활한 전략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같은 나치의 지령을 받았지만 루마니아와 덴마크에서 일어난 일들을 예로 들면서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존재한다면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로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악마화한다면 비록 악마적 위대함일지라도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어떤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아렌트는 재판을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이 악마적인 동기나 의도도 없이 악마적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의 행위가 근본악이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런 점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사실 악은 깊이가 없으며 또한 마성도 없습니다. 악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버섯처럼 표피에서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선이며 언제나 선만이 근본적인 것입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사유 자체가 사람이 악행을 못하도록 하거나 또는 바로 악행에 맞서는 소질을 부여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아이히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그녀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녀에게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담배연기와 가시가 무성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지만 담배 연기의 자욱함과 그 가시에 찔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용기만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심장까지 내어주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이른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목표를 달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라는 여성 철학자에 대한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그녀가 활약한 시대의 흐름을 움직인 사람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 실존주이 철학자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물론이고 평론가 발터 벤야민, 첫남편이었던 저널리스트 귄터 안더스, 두 번째 남편이자 항상 등을 기댈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하인리히 블뤼허, 소설가 매리 매카시, 생태철학자인 한스 요나스, 시온주의 대부였던 쿠르트 블루멘펠트까지 시대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 책을 덮고 아렌트의 저서인 <인간의 조건>과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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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 "당신은 누구입니까? 보수주의자 입니까? 자유주의자입니까? 현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릅니다. 과거에도 그것을 안 적은 없었습니다. ... 저는 한 때 그랬던 것처럼 그야말로 낯선 곳에서 온 소녀라고 느낍니다." 우리에겐 "평범한 악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라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한 인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 하지만 유명한 그 이름만큼 그녀의 삶은 꽤 굴곡진 삶을 살았다. 1962년 그녀나이 5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녀는 어두운 시대에서 어둠을 밝힐 빛만 찾으려 하지않았으며 어둠 속에서 '어둠'을 찾고자했던 철학자였다. '한나 아렌트'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정말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이름이지만 사실 그녀 자체로 유명하다고 하기 보단 그녀가 썼던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다섯 편의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때문이다. 그녀는 인간이 '악'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정치철학적으로 '악'의 본질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썼지만 결국 그녀 자신또한 유대인임에도 유대민족을 배반한 배신자로 찍혀 "냉혹하고 감정이 없고 차갑고 참을 수 없이 건방지고 독창적이 되려는 뒤틀린 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을 경멸하는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들의 "냉혹함"은 "햇볕 속의 버터처럼 녹아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는 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이미 전체주의에 대한 책에서 기술한 전체주의 체제의 한 속성을 시사한다. 그런 식의 체제는 아무리 살인적이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나타나면 대단히 쉽게 내부적으로 와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질이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p.233 이처럼 한나 아렌트가 주장했던 '악의 평범성', 전체주의 체제의 속성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제외하면 한나 아렌트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 책은 알로이스 프린츠에 의해 쓰여졌다. 알로이스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적 인물로 대두되었던 이들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분석하여 쓴 작가로 이번 '한나 아렌트'에 대한 전기또한 그녀의 정치철학을 통찰력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의 삶을 따라가며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정치의 속성과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녀의 삶을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소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한나 아렌트에 대해 얼마나 단편적으로 그녀를 알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그녀가 쓴 기사뿐만이니라 그녀의 삶과 작품을 두루 살피며 그녀 자체에 대해 소개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흥미진진한 삶을 살아왔는지, 복잡했던 시대적 배경에서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여성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만약 '한나 아렌트'하면 '악의 평범성'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한나 아렌트]를 읽어보길 바란다. 단편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전기적인 관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사유와 철학을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나면 한나 아렌트가 왜 금세기 최고의 여성정치철학자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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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 『한나 아렌트』 ♡
『하나, 책과 마주하다』 부끄럽지만 그녀의 이름은 들어봤으나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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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화북스의 '누구나 인간'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부제가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이다. 한나 아렌트의 전기에 해당되는 책으로 독일의 저명한 전기 작가 알로이스 프린츠의 여러 전기 중 하나이다. 흔히 떠올리는 스토리와 사실들이 편집된 틀에 박힌 전기라기 보다, 저자가 주인공 인물에 대해 감탄할 정도로 세세하게 썼던 책의 구절이나 했던 말들,에피소드 등을 소개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생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쓰여진 전기이다. ? 책을 읽은 본인은 한나 아렌트의 이름을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자주 들어 보았다. 특히 '악의 평범성'이라는 구절과 함께 이름이 인용되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나라의 몇 년 전 시민들의 정치 혁명이었던 촛불 시위를 통과하던 시절에 특히나 자주 들어 보았던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녀의 여러 유명한 저서들을 대략 알 수 있었고 그 주된 사상도 핵심적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 독일에 살던 유대인 지성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세계 대전을 겪으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직접 느끼며 독일에서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근본 이면에 분명히 특수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아주 깊이 그 점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녀 본인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용소에서 살아남고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독일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연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세계적인 명저인 '전체주의의 기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 그녀는 연구를 하며 집단 광기에는 공통되는 속물적인 흔한 개인들이 존재함을 발견하는데, 그들은 평상 시에는 파리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는 평범한 가장들이다. 하지만 집단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 집안의 안정을 위해 모든 책임을 부인하며 집단의 기계장치 속 부품이 기꺼이 되는 개인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특질이 나온다고 한다. ? 이 책에서 그녀는 나치가 저지른 수용소의 비극은 역사 속의 그 어떤 폭군이나 전쟁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서 그것을 수행하는 기계속의 인간들이 자신의 할당량을 그저 채우는 일을 반복하며 인종 청소를 완수했으며 그것은 전체주의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근본악'으로서 존재했음을 밝혔다. ? 이 후 이어지는 수많은 저서에서 그녀는 천재적인 사상들을 전개하고 강연하며 정치 활동가로서 맹렬히 활동한다. 특히 이 책에는 한나 아렌트가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 야스퍼스,하인리히 등 당대의 저명한 이들과의 우정과 인간적인 관계들을 잘 알 수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런 그들의 관계들에 동화되고 깊고 상호 보완적이며 협력적인 우정에 동경을 느끼에 된다. ? 특히 그녀가 고립과 고독이 다른 개념임을 설명하며 인간은 고독할지언정 인간과 고립되면 정신이 위험해진다는 설명은 어쩌면 끊임없이 만들어져야하는 한계적인 인간으로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 그녀의 저명한 책들도 시간이 되면 앞으로 하나씩 읽어 보아야겠다. 이 분의 진지함과 진실함, 깨어있는 지성과 세련된 인간미에 깊이 엮이고 동화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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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이히만을 알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두지 않았던 인물이며 아이히만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한나 아렌트랍니다. 어느 순간 아이히만 재판 때문에 이제는 제법 한나 아렌트에 대한 책도 많이 출간되고 있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물론 대표적인 것은 아이히만 재판과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들이 많지만요.
이 책은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주목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것 같아요. 그녀의 삶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책이여서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그녀에 대한 전기이기에 기존에 나온 책들과는 차별화되는 점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소설처럼 쓰여 있기 때문에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한나 아렌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네요.
철학자 하이데거와의 만남이 그녀의 삶을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당대의 지식인들과 활발히 교류를 했다고 하니 그의 사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치 정권의 전체주의를 온 몸으로 겪었기에 더욱 더 민주주의에 대해 옹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하이데거가 나치에 가입하게 되고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를 멀리 하게 되지만 그가 준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네요.
'전체주의의 기원'이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으면 그녀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음에 읽을 책으로 찜해 두었답니다. 왜 그녀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고 유명해 졌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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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그는 누구인가? 이 책은 20세기 대표적인 철학사상가인 한나 아렌트의 전기입니다.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나 아렌트의 삶을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언제나 '난간 없는 사고'를 하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그녀를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독립적'이게 했다. 진정 그녀는 누구였는가?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시인이었는가? 철학자였는가? 정치사상가였는가? 그녀가 쓴 한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는 한때 그랬던 것처럼 그야말로 낯선 곳에서 온 소녀라고 느낍니다." ('낯선 곳에서 온 소녀'라는 말은 원래 독일의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제목으로 흔히 문학 또는 문학적 상상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말은 한나 아렌트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기도 한다. 인용된 구절은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보낸 1950년 2월 9일자 편지에서 유래한다.) (7p) 네, 그녀가 말한대로 한나 아렌트는 '낯선 곳에서 온 소녀'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그 말을 이해했습니다. 철학책에 등장하는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로서의 업적만 나왔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에 대한 부분은 잘 몰랐습니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는 어떤 국적이나 민족에 속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이었으나 사랑 앞에서는 순애보였습니다. 하이데거와의 사랑은 그녀가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시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나치였습니다.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에 대해 연구하게 만든 비극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는다는 현실은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친구와 지인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철저하게 차별당하고 수용소에 갇혔던 경험이 그녀의 정치철학을 더욱 깊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악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 (228p)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삶과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나는 독일 정부를 향해 과거 나치들에게 범죄 책임을 묻지 않고, 전후에도 그들이 계속 경력을 이어가 고위 공직을 차지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을 비난하면서 그들을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아돌프 아이히만을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악마화하는 것은 그에게 그릇된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저서에서 전체주의에 대해 '근본악'이라 말하지 않고 '평범한 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겼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늘날 사실 악은 깊이가 없으며 또한 마성도 없습니다. 악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버섯처럼 표피에서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선이며, 언제나 선만이 근본적입니다." (234p) 우리에게도 이러한 관점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인간의 내면에 선과 악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관한 문제일 뿐입니다. 철학은 올바른 삶의 가치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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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의 제목은 한나아렌트 입니다. 인간의 조건, 정신의 삶으로 유명한 정치철학자이죠.
한나 아렌트.. 이름은 너무 잘 알고있고, 대표작의 제목도 잘 알고 있고 (아직 읽지는 못했는지만;;;;) 그렇게 아는 것 같은면서도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였는데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삶과 이념을 처음으로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부유한 부모님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보이며 총명하게 성장하였고, (무려 16세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고합니다 하하하;;;) 유대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죠.
대학에서 자신을 가르치던 철학 교수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지고 (그는 무려 17살 연상의 유부남이었습니다;;;;) 그와의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1년 정도 후 연인관계는 끝났지만 죽을때까지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녀의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후 철학자 귄터 슈테른과 결혼하였고, 나치 정권의 전체주의를 온몸으로 겪으며 정치와 자유의 문제를 치열하게 사유해 나가죠. 나치를 연구하여 <전체주의의 기원>을 발표하였고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참석한 뒤 "평범한 악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전체주의를 심각한 위기이자 광기라 비판하였고, 참여 민주주의를 옹호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의 세상을 이루어가는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아는 참된 지식인으로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촛불집회에서 그녀의 말이 가장 많이 인용되었고 구글에서도 2014년 10월 14일, 그녀의 탄생 108주년에 메인 화면 인물로 선정할 만큼 이 시대의 가장 주목받는 대표 지성인으로서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도 불빛을 찾을 희망은 존재한다고 믿은 이 시대의 지식인, 한나 아렌트의 열정적이고 모험적인 삶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가을가을한 하루에, 깊이있는 묵~직한 독서를 원하는 많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