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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순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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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덜하지만 우리나라의 여자이름에 유독 ‘자(子)’로 끝나거나 순할 ‘순(順)’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았다. ‘자’로 끝나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순’자는 말 그대로 ‘순하다’ 혹은 ‘따르다’를 뜻하는 말로, 해방이후 작명가의 역할을 했던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들이 그들의 손녀, 딸, 누이가 지아비와 집안을 잘 따르는 순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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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덜하지만 우리나라의 여자이름에 유독 ‘자(子)’로 끝나거나 순할 ‘순(順)’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았다. ‘자’로 끝나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순’자는 말 그대로 ‘순하다’ 혹은 ‘따르다’를 뜻하는 말로, 해방이후 작명가의 역할을 했던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들이 그들의 손녀, 딸, 누이가 지아비와 집안을 잘 따르는 순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가요 <갑돌이와 갑순이>에서 보듯 그 시대에 여성은 대부분 순이로 뭉뚱그려 불렸다. 직업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 후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했고, 이들의 이름 역시 ‘순’자가 들어간 이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당시 어린 여성들이 가장 많이 택했던 직업은 버스안내양, 식모, 여공이었고 그들을 차순이, 식순이, 공순이로 불렀다. 그래서 순이는 어린 직업여성들의 대명사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삼순이라 비하했다.

 

이 책 [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은 한국 현대사, 특히 해방이후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가장 흔했던 순이들, 그중에서도 삼순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녀들은 가난이라는 멍에 앞에 엄청난 생명력을 발휘하거나 타인을 위해 희생해야만 했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한 입을 줄여야 할 때 가장 먼저 그 대상이 되었고 아니면 전체 가족을 부양하기도 했다. 혹은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그녀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삼순이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많던 순이들이 어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책의 저자는 그녀들이 사라진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불러내는 이유는 그녀들이 우리의 어머니 또는 언니나 누이였지만 우리는 그녀들에게 동정이 아닌 진실로 감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록 지금은 사라졌음에도 결코 외면할 수 없었기에 그녀들을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으로 소환하고자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삼순이들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사라지기까지 그녀들의 변천과정과 삶을 살펴보고 있다. 먼저 식모란 부엌일을 맡아서 해주는 여자를 뜻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토지수탈로 빈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도시로 향했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내지인들의 집에 식모로 들어갔다. 당시 일본인들이 식민지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식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고 이중에서 전문적인 가사노동을 하는 식모를 조선어멈이라 불렀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식모의 연령은 점차 낮아져 10대초중반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들은 집안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점차 부엌일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해방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여성들의 취직전선에서 식모는 빼놓을 수 없는 직업이었고, 그만큼 그녀들의 근무환경은 열악해지고 식모의 유무는 부유층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은 우리사회에 남성의 부재를 가져왔고 이는 가정경제에 절망적 타격을 주었다. 전쟁미망인과 부상당한 남편의 부인들, 그리고 장성한 딸들은 가장이 되어 직업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식모자리는 잠자리를 해결해주고 돈도 벌 수 있었기에 어린 여성들에게는 사회진출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러나 식모를 원하는 구직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단가는 내려가고 급기야는 숙식을 해결해주는 것만으로도 식모를 두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중상류층은 물론 단칸방에 사는 서민들까지도 식모를 두었다는 당시의 신문기사는 가히 식모의 전성시대를 연상케 만든다. 그럴수록 식모의 대우는 점차 열악해지고 급기야는 하녀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1961년 식모에 대한 표본조사를 보면 대부분이 나이는 13세~18세, 학력은 무학이거나 초등학교 중퇴, 고향은 지방 농촌출신이었다. 이들은 새벽 5시 전후에 일어나서 자는 시간은 밤 11시 이후였고, 밥은 혼자 부엌에서 먹었다. 휴일은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번이었고, 아예 없었던 이들도 절반이나 되었다. 그러면서도 유괴나 성폭행, 심지어는 살해당하기도 했지만 언론은 이들이 당하는 인권유린이나 주인의 횡포보다는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더 비중 있게 다루곤 했다고 한다. 언론이 본래의 사명을 저버리고 권력과 금력의 주구노릇을 한 것은 그만큼 기원이 오래되었음을 새삼스레 느낀다. 1960년대 후반 산업화가 진행되자 많은 여성들이 공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집안의 식모들도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식모를 했던 것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나 이제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식모의 기근을 가져왔고 시간제 식모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칭도 식모에서 가정부로 바뀌고 시간제 식모의 경우 파출부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전통적인 식모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1970년대 중반이후에는 급격하게 사라졌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곳은 봉천동이었다. 학교는 서소문에 있었고 따라서 매일같이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버스에는 여차장이 있었고 처음엔 돈을 내고 탔지만 나중에는 회수권이 생겨서 회수권이나 돈을 내곤했다. 매일같이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던지라 개중에는 얼굴이 눈에 익은 차장도 있었다. 이들의 공식적인 이름은 버스안내원이었으나 모두여자여서 흔히 버스안내양으로 지칭되곤 했다. 당시만 해도 버스안내양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이중적이었다. 무시와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그녀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자동차가 대중들의 교통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고 한다. 1920년 대구에서, 그리고 1928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22인승 승합자동차가 개통을 하면서 여차장을 모집했다. 당시 전차 차장이 남성인데 비해 버스차장을 여성으로 했던 이유는 전차보다 승차인원이 적고 요금도 비쌌기에 버스승객들이 상대적으로 교양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들에게 서비스의 질로 승부를 걸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여차장모집은 높은 경쟁률과 높은 학력으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며, 정류장마다 이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당시의 신문기사는 버스여차장이 인기를 실감나게 해준다. 해방이후에는 버스가 부족하여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교통지옥을 연출하였다. 당연히 차장은 갑이고 승객은 을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많은 승객을 대응하기 위하여 앞문에는 남자차장이 그리고 뒷문은 여자차장이 맡은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시내버스 운용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5.16군사쿠데타 이후였다. 군사정권은 버스차장을 모두 여성으로 교체하게 하여 해방이후 등장했던 남자차장은 사라졌다. 1968년에는 전차운행이 정지되고 철로를 철거하면서 시내버스는 말 그대로 대중교통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되었다. 1973년에는 오늘날 시내버스의 전형인 도시형버스가 도입되었고, 1981년에는 원맨버스라 불리는 시민자율버스가 등장하였다. 시민자율버스는 승객들이 요금을 직접 요금함에 넣게 되면서 버스차장이 필요 없게 되었고, 이 버스의 보급에 맞춰 1989년에는 버스안내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1960년대 초 10대 후반 여성들의 대표적인 직업의 하나이기도 했던 버스안내원은 하루 근무시간이 18시간 이상이었음에도 임금은 항상 최저시급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근로조건이나 기숙사 등의 시설이 열악하여 인권이 무시되는 것은 기본이었고, 삥땅문제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으며 여자차장의 몸수색으로 인해 사회적인 관심을 모았다. 원래 삥땅이란 지입차주들이 기준금액을 줄이는 대신 운전기사와 차장에게 술값과 약간의 용돈을 얹어주는 것을 칭했다고 한다. 따라서 버스업계에서 삥땅이란 남의 것을 가로채는 부정행위가 아니라 차주들이 선심 쓰듯 주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차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돈을 주지 못할 때 운전기사와 차장들은 몰래 삥땅을 치기 시작했고 일부 차주들이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눈감아 주면서 삥땅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삥땅을 찾아내기 위한 일반적인 몸수색은 안내양들도 부담감 없이 받아들였지만 지나친 몸수색은 항상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삥땅을 방지하기 위해 계수원이 등장하는가하면 계수기를 설치하기까지 했지만 사람이나 기계의 부정확성은 안내양들을 잠재적인 부정행위자로 몰수밖에 없었다. 당시 버스회사와 차주들은 순진하고 부정이 적고 고된 일을 감수할 수 있는 농촌여성들을 선호했다고 한다. 식모를 구하는 주인집 입장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는 버스안내원이나 식모를 잠재적인 범죄자 혹은 노동력을 착취하기에 이상적인 도구로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지 싶다.

 

 

가부장제 사회는 차별을 낳기에 비옥한 토양이다. 시장경제에서 가장 큰 차별은 노동조건이었고 그 중에서도 임금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임금은 대부분 남성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성추행 등으로 인한 성적 수치심은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사람들은 여공이라 불렀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노동집약적 생산라인은 농촌의 잉여노동력 특히 여성을 빨아드리는 블랙홀이었다. 당시 수출은 성역이었고 수출제품의 경쟁력은 오로지 가격이었다. 정부는 이들을 수출전사 혹은 산업역군으로 부르며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이겨내도록 강조하였다. 1977년 정부는 여공들에게 유교적 희생을 강요하는 정신개조운동으로 새마음운동을 시작했고, 당시 서른도 안 된 박근혜는 구국여성봉사단장을 맡아 여공들을 대상으로 정신개조에 주안점을 주는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1970년대 노동운동의 주역은 단연코 여공들이었다. 동일방적, 원풍모방, YH무역으로 대표되던 이들 여공들의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를 바꾸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먼저 비정규직이 된 것도 바로 그녀들이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앞세워 생산라인을 하도급으로 떼어내 협력업체를 만들었고 여공이란 이름은 서서히 잊혀졌다.

 

1970년대 당시 농촌이나 도시빈민가정의 빈곤탈출전략은 기본적으로 계층상승이나 한 입 덜기였다. 교육은 계층상승의 사다리였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 혹은 한 입을 덜기 위해 누이들은 직업전선으로 나서야 했다. 이 땅의 수많은 어린 여성들은 그렇게 ‘삼순이’가 되었다. 그녀들의 삶 자체가 바로 우리의 현대사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녀들을 잊고 있다. 불우했던 과거, 가슴 아픈 과거이지만 우리가 그녀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가부장적 관념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차별이란 것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가 그녀들을 소환한 이유도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삼순이’와 같은 ‘순이’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처절함과 타인을 위해 희생을 무릅쓴 그녀들의 숭고함을 돌아보면서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삼순이 들에게 애틋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k*****1 2019.09.25. 신고 공감 14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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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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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여성이 성을 제외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갓난이’나 ‘갑순이’ 등의 아명을 사용하고, 호적에는 누구의 딸이며 아무개와 결혼을 했다는 정도의 기록만을 남겼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성이나 출신 지역을 본따서 ‘00댁’ 등으로 불렸고, 자식을 낳으면 ‘아무개 엄마’라고 호칭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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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여성이 성을 제외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었다어렸을 때는 갓난이나 갑순이’ 등의 아명을 사용하고호적에는 누구의 딸이며 아무개와 결혼을 했다는 정도의 기록만을 남겼다그래서 결혼을 하면 성이나 출신 지역을 본따서 ‘00’ 등으로 불렸고자식을 낳으면 아무개 엄마라고 호칭되었던 것이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에서 사임당은 이름이 아닌, 살아생전 주로 거처하던 건물 이름을 이용해 만든 당호(堂號)이다. 드물게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은 한시를 잘 지어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지는 바람에 허초희라는 본명이 기록될 수 있었다이처럼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은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남성들의 그림자처럼 살아야만 했다.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독립된 이름을 획득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일제 강점기 직전에 실시한 민적법의 제정으로 가능했다고 한다그러나 당시에도 여전히 아들과 달리 딸을 낳으면그 이름을 즉흥적으로 지어 호적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그러다가 일본식 이름인 ‘0가 보편화되었고이외에도 여자는 순해야 한다라는 관념에서 ‘0으로 짓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이러한 경향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70년대만 하더라도 지속되었다고 한다그래서 이 책에서는 해방 후 1980년대 초까지 흔하디 흔했던 순이그 중에서도 삼순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0순'이란 이름을 현대사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선정했다고 하겠다.

   

저자는 근대화가 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고그들이 할 수 있었던 직업군이 한정되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그나마 일제 강점기에는 고급인력으로 대접을 받던 식모와 버스안내양은 해방 이후 저임금과 노동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당대의 신문기사 등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아울러 1970년대 이른바 산업 근대화라는 미명으로공장으로 내몰렸던 여성 노둥자들을 공순이라는 호칭으로 폄하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저자의 시각으로 포착된 이들의 사회적 처지와 고단한 현실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잘 드러나고 있다.

   

1부에서는 식모라는 제목으로일제 강점기로부터 주로 신문기사를 통해서 그 내력과 사회적 위상 등을 서술하고 있다특히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고아나 어린 딸들을 부유한 집의 식모로 들였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다그래서 한때는 식모 전성시대라고 칭할 만큼 흔했으며그래서 식모가 하녀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아주 박한 임금에 고단한 노동을 견뎌야 했으며때로는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으로 만족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결국 식모라는 존재는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우리의 현대사가 낳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안내양을 다룬 2부에서도역시 일제 강점기 전문 직종으로 출발했던 그들의 흔적을 해방 이후까지 더듬어보고 있다한때 남성 차장이 등장하기도 했지만제도적인 차원에서 여성만이 버스안내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들 역시 강도 높은 노동 착취와 저임금에 시달렸던 여성 노동자였던 것이다. 3부의 여공의 경우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공장에 취직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이다남성들에 비해 낮은 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 착취에 시달렸던 존재들이다과거 경제 발전의 성과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공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이들 여성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노동자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것은 주자의 사실이다이제라도 우리 현대사의 면모를 냉철하게 인식하고특정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당대 민초들의 역할을 정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 다룬 삼순이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이었지만,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현재의 안정된 환경을 만들기까지 커다란 역할을 했던 이들이었다특히 이들이 처햇던 당대의 현실과 삶의 내력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을 뿐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분석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이해된다이제 이들의 존재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으니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이들의 삶이 지니는 의미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후속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저자는 주로 당대의 신문기사들을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데주지하듯이 언론에서 다루는 것은 특별한 사건들에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아마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그것을 모아 엮는 일부터 시작했을 것이라 이해된다때문에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다소 자극적인 소재에 치우쳐 있다고 여겨졌다또한 이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그 의미를 당대의 역사적 상황과 보다 긴밀하게 연관시켜 추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부분적으로 아쉬운 점은 분명 논할 수 있겠으나근대 이후 소외된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과 그 실상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 아쉬움을 상쇄하는 이 책만의 장점으로 평가하고 싶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0.03.08.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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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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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귀족들과 부자들을 중심으로 흘러가기가 쉽다. 그 이유는 단순히 역사학자들의 편향된 선호 보다는 살아남은 자료의 양이 월등히 차이나서 그러한데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는 다행히 일반 민중들의 삶도 기록으로 남겨지던 시기라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여성의 대한 인식과 편견들 속에서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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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귀족들과 부자들을 중심으로 흘러가기가 쉽다.
그 이유는 단순히 역사학자들의 편향된 선호 보다는 살아남은 자료의 양이 월등히 차이나서 그러한데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는 다행히 일반 민중들의 삶도 기록으로 남겨지던 시기라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여성의 대한 인식과 편견들 속에서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d******0 2023.1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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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세대의 상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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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세대에게 식모, 여공, 버스안내양은 그 시절의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세대에겐 왜 있었을까, 굳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아득히 먼 과거로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고 왜 이런 직업들이 필요했는지, 때론 과거의 성관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지금 제 세대에게 흔하고 익숙한 직업도 미래엔 이런 느낌이겠죠.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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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세대에게 식모, 여공, 버스안내양은 그 시절의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세대에겐 왜 있었을까, 굳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아득히 먼 과거로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고 왜 이런 직업들이 필요했는지, 때론 과거의 성관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지금 제 세대에게 흔하고 익숙한 직업도 미래엔 이런 느낌이겠죠.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이라면 아무래도 작가님의 탓이 아닌, 그 시절 여성 관련 통계가 제대로 집계되지 못해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기사, 사진 등의 자료 덕에 그 시절의 상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등록되지 못하고 기록이 거의 남지 못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왔다는 걸 느껴서 좋았습니다.
m****a 2023.07.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