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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생명체다. 도시가 생명체라면 도시 재생은 생명을 다시 살리는 일이다.“.. 도시설계자/ 도시학자 정석의 진단이다. 도시 재생은 크게는 국토 재생이고 작게는 지역과 마을 재생이다. 어쩌면 내 몸 재생까지 포함되는 개념이 도시 재생이다.
도시 재생이란 말에 나는 풍수의 비보(裨補)를 생각한다. 정동(貞洞) 해설을 할 때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드는 것을‘이란 두보(杜甫)의 구절을 인용한 기억이 난다. 정동을 현대적 의미의 명당으로 정의하며 그곳의 건축물들이 그곳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인지 명당이기 때문에 모인 것인지 모르지만 이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정동을 이루는 아우라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정체(整體) 관념이란 것이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개념으로 하나로 이어진 우리 몸의 원리를 말하는 개념이다. 정(整)은 완전성을 의미하는 integrity와 뜻이 통하는 말이다. 저자는 도시를 살리는 일에서도 정(整)과 integrity가 핵심이라 말한다.
1970년대 브라질 쿠리지바 시장을 역임한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는 큰돈을 들이는 대규모 프로젝트 대신 작은 비용으로 침을 놓듯 작은 변화를 주어 영향을 확산시키는 방식을 도시 침술(urban acupuncture)이라 표현했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 자신의 집을 지을 때에도 마음대로 짓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며 짓기에 여러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다리를 놓아 만든 도시가 마치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조화롭게 보인다.
재개발이 도시를 물건이나 상품처럼 대하는 것이라면 도시재생은 생명 다루듯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저자는 도시재생이란 말보다 삶터 재생이란 말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블랙홀처럼 사람을 빼앗아가는 수도권, 대도시, 신도심보다 사람이 빠져나가는 지방, 시골, 구도심을 먼저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외연 확장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 재구축이다. 삶터 되살림의 속도는 "천천히"다. 현시대는 인구가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 재개발은 맞지 않다. 도시재생 시대의 개발은 개발 단위를 단지에서 필지로 줄이고 새로 만드는 대신 고쳐 써야 한다. 이렇게 작은 단위로 도시를 살리면 작은 설계사무소와 동네 자영업자도 참여할 수 있다.
일본 영화 ’인생 후르츠‘에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과일이 익는다. 차근차근 천천히.“ 차근차근 천천히와 정반대인 빨리빨리 한꺼번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지금은 개발시대가 아니다. 빨리빨리 한꺼번에는 개발시대에 맞는 말이다.
재개발에는 철거형만 있지 않다. 남길 곳을 최대한 남기면서 재개발 하는 수복형도 있고 오랜 역사적 장소를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존형 등이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철거형이 지상 목표였다.
1965년 재개발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세운상가가 첫 재개발 대상이었다. 주택재개발이 시작된 배경에는 무허가 주택 확산이 있다. 현저동, 홍제동, 아현동, 공덕동, 후암동, 한남동, 숭인동, 창신동, 흑석동, 노량진, 청계천, 중랑천, 정릉천 주변 등 판잣집에 무허가 건축물이 들어섰다.
1961년 당시 무허가 주택은 4만채가 넘었다. 이에 서울시는 무허가 주택을 철거한 뒤 주민들을 서울 외곽의 새로운 주거지로 이주시켰다. 도봉동, 구로동, 상계동, 사당동, 봉천동, 신림동, 마천동, 거여동, 신정동, 창동, 쌍문동, 가락동 등 외곽 공유지역에 재정착촌이 마련되었고 이주자들은 10 ~ 20평 규모의 작은 대지에 약간의 건축자재를 지원받아 스스로 집을 짓고 살았다.
1960년대 말에는 교외 지역 국공유지가 고갈되자 재정착지로 이주시키는 대신 무허가 주택지에 공공아파트를 건립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1970년에 와우아파트가 붕괴되어 서른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1971년에는 광주(廣州; 현 성남시) 단지로 강제 이주당한 주민들이 정부의 무계획적 도시 정책과 졸속 행정에 반발하여 광주대단지 사건을 일으켰다.
서울시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도심재개발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제기된 계기는 어디에 있을까? 1966년 미국 존슨 대통령의 방한이 주요 계기가 되었다. 시청 앞에서 존슨 대통령 환영행사가 열렸는데 맞은 편인 북창동과 남산 자락의 무허가 주택의 적나라한 모습이 텔레비전 보도를 통해 미국까지 전해지자 재미 교민사회에서 대통령에게 도심 환경 개발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서울시가 도심재개발을 서울시정의 핵심과제로 삼았다.
그 이후 22층의 더플라자호텔이 지어졌는데 이는 당시 서울광장 뒤편의 낙후한 화교 집단거주지였던 지금의 북창동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가로가 길고 세로는 짧은 병풍 모양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1970년대 말 북한과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북한의 포격 사정 거리 안에 있는 서울에 과도하게 인구가 집중되는 것은 불리하다는 주장에 제기되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재개발 활성화 정책이 마련되었다. 1983년 서울시는 670%였던 도심재개발 용적률을 1,000%로 늘렸다.
산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로 인해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서울의 아름다운 산, 언덕과 강변 풍경이 아파트로 인해 훼손되었다면 서울 도심부의 역사문화유산들은 재개발로 인해 지워졌다. 2000~2010년대는 개발 역풍 속에 맞이한 재생시대다.
역풍이란 선거로 인해 빚어진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2006년 선거 때 뉴타운 공약을 내걸어 당선된 단체장들이 2010년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는 바로 그 뉴타운 때문에 우수수 떨어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들은 뉴타운과 재개발의 대안으로 도시재생을 들고 나왔다.
새 길이란 큰 회사들만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아닌 스몰 프로젝트, 건물을 헐고 짓는 하드웨어보다 사람을 불러모으는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에 돈을 쓰는 것을 말한다. 외연 확장을 그만두고 도시 안의 빈 곳을 채우고 혁신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도시를 살리려는 도시재생이 도시를 파괴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우 재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구 감소 우려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는 제도는 지역부흥협력대이고, 세수 격차로 재원 고갈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에 돈을 보내는 제도는 고향납세제도다.(100 페이지) 모두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일본은 꽤 오래전부터 사람과 돈을 지방에 보내는 사업을 지속해왔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다. 시작이 늦었다고 서두르기보다 차근차근, 천천히 제대로 하면 좋겠다.“(103 페이지) 문제는 일자리다. 마을(지방,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들을 붙잡아두려면 그곳에만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자생하지 않으면 재생이 아니다.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 주거환경관리사업 등을 시행하면서 주어진 예산으로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신축해도 사업 종료 후 운영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해법은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다.(156 페이지)
도시재생에서 젠트리피케이션도 문제이지만 듀플리케이션(복제)도 문제다.(179 페이지) 저마다 자기 지역에 맞는 재생이어야 하는데 성공 사례를 따라하는 것이 문제라는 의미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뒤 학업과 취업 때문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U 턴이라 한다. 고향 가까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J 턴이라 한다. 고향이 아닌 시골로 가는 것을 I 턴이라 한다.(214 페이지)
대한민국은 행복하지 않은 선진국이다. 헬조선이란 말이 있다. 20대와 30대의 90% 이상이 헬조선론에 동의한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되는 빈부격차와 부의 불균형, 높은 실업률, 낮은 취업 기회, 고용 불안정, 고물가, 일상화된 경쟁구도, 저녁이 없는 삶 등이 이유다.
소득 향상이 행복을 담보한다는 믿음은 깨진 지 오래다.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심층구조와 기본골격을 바꾸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픈 도시는 우리의 책임이다.(243 페이지) 저자는 지금처럼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의 도시계획은 수요에 맞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와 결핍을 이어주는 도시계획이어야 한다고 말한다.(268 페이지)
‘딱 적당한 만큼의 초록just green enough’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윈프레드 커란Winifred Curran과 트리아나 해밀턴Trina Hamilton이 처음 쓴 말이다. 대규모 사업은 아무리 녹색 사업이라고 해도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새길 말이 아닐 수 없다. 수도권에 전 인구의 반 이상이 몰려 사는 극단의 경쟁 국가 한국의 숨통이 도시재생과 함께 조금씩 트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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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만을 놓고 보면 분명 나아졌다. 과거보다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전 같았으면 꿈도 꾸기 힘들었을 대학(원)엘 진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지옥(“헬조선”)이라며 가능하다면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낸다. 물질이 성장하는 만큼 정신이 따르지 못했다. 대부분 모든 성찰을 충분히 부유해진 다음으로 미룬 채 오로지 일에만 몰두한 결과다. 아직도 사람들은 부족함만을 말한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보다 더 넓은 집을, 그것도 여러 채 소유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면 행복해질지는 의문이다. 아니, 그게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게 맞는지도 알 길이 없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 세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인다. 도심에 수백 년도 더 된 건물들이 고풍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왜 우린 이십여 년 가량만 지나면 어김없이 건물을 때려 부수고 새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 회의감이 인다. 매우 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간만을 버틸 정도로 우리 건물의 내구성이 약하다는 게 믿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재건축, 재개발이 지닌 폭력성이 무섭다. 모두가 원래의 거주지로부터 밀려나는 건 아니라지만 일부는 분명 연고지도 아닌 제3 의 지역에서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할 수밖에 없다. 집은 거주의 공간이기에 앞서 투기의 수단으로 모두에게 인식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패러다임에 변화가 찾아왔다. 모든 걸 휩쓸어버리는 기존의 방식에서 최대한 기존의 것을 존중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재생’이라 불렀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에서 재생이 행해진지라 ‘도시재생’이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다. 도시재생은 곧 존중이었다. 지역이 지닌 역사가 일부나마 인정을 받았다. 해당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그 역사의 일부이므로 재생의 주체로서 존중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 그 어디에도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 건지, 여러 해 동안 행해진 도시재생에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지역에서, 즉, 아래서 위로 움직임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늘날의 도시재생 방향은 거꾸로였다. 정부와 지자체가 막대한 돈을 퍼부으며 도시재생을 시도했다. 도시재생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지 않던 이들이 돈의 등장에 반응했다. 약간의 활기가 지역에 맴돌았으나 그게 전부였다. 길어도 5년을 넘기기 힘든 사업 기간이 종료되고 자금이 끊어졌을 때 이제까지의 모든 시도는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은 동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한 마디로 지속가능성이 보이질 않았다. 지금은 어쩌면 지난날의 경험이 빚어낸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을 차례 같다. 방향이 옳다면 조바심을 갖지 말고 천천히,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지치지 아니하며 제 삶을 바꿀 수 있게끔 재생의 방식 자체를 재설정할 차례.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생각보다 많은 지역에서 재생의 움직임이 일고 있음을 배웠다. 난 가까운 서울 일대에서의 움직임만을, 그것도 대강 알고 있었는데, 재생의 경우에는 오히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 훨씬 활발한 듯했다. 절박함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은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기형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온갖 인프라가 집중된 덕이다. 반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많은 지역은 인구의 유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특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얼마를 지급한다는 식의 정책은 돈만 받은 후에 해당 지역을 이탈하는, 이른바 ‘출산 먹튀’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런 식의 방식으로는 지역을 살리기에 역부족이었다. 사람이 실제 거주하고 싶도록,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를 마련해야만 한다. 아직 성공과 실패를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책에 수록된 다양한 사례로부터 미약하나마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는 많은 부분 일본의 사례를 언급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우리나라와 일본은 많은 부분이 닮은꼴이다. 극도로 낮은 출산율을 비롯하여 고령화, 인구 감소 등의 문제를 일본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참으로 다양한 시도가 일본 각 지역에서 행해졌다. 고향에 사람을 보내고 고향에 기부를 하는 등의 제도가 마련됐다. 가히 ‘초능력급’ 능력을 발휘하며 지역의 한계 극복에 나선 공무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개인의 초인적인 힘에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자꾸만 시선이 향했던 건 열의를 갖고 업무에 임하는 공무원의 중요성을 사례가 말해주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헌신적인 공무원은 널렸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조바심을 조금만 덜어내고, 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미래를 그려 나아가다 보면 책의 부제처럼 ‘공간을 넘어 삶을 바꾸는’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필히 그러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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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도시는 개발의 대상이었다.도시개발이라는 말이 익숙하게 들릴 것이다.개발은 효율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빨리빨리를 추구하기 마련이고, 어쩔 수 없이 소외된 지역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그러나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그리고 최근에 도시를 관리하는 방법은 그와 반대되는 방법이다.도시를 새롭게 개발하지 않고 이미 있는 도시를 재생한다.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곳에 깃든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도시를 생명체로 보고 가꾸자는 것이 기본적인 관점이다.우리나라만 해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 서울 내에서도 강남과 그 이외 지역의 격차가 이미 커져 있다.개발을 해도 그것이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더 이상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다.
국토 균형 발전은 국가적인 과제다.지역 재생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더 좁혀서 마을 재생은 당장 그 지역 주민들의 일이다.마을 재생은 우리 삶의 수준과 직결되는 문제다.이 책의 표현인 삶터 되살림은 공동 책임의 방정식 아래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해야 할 문제다.발전으로부터 소외된 지방, 저출산 고령화와 근로자 부족으로 쩔쩔 매는v 시골, 과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 구도심 등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그 지역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v 고민해야 한다.무조건 크기를 키우자는 과거 개발론의 생각을 벗어나서 내부를 재구축하고 작지만 튼튼하고 종합적인 도시를 세울 필요가 있다.또 연대, 협력, 상생의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조화로운 도시여야 한다.
너무 높은 집값 때문에 고민하는 도시의 서민들과 놀고 있는 땅이 넘쳐나는 시골, 일자리가 없어서 헤매는 청년과 젊은 사람의 부재로 활력을 잃은 농촌, 좁은 땅과 높은 인구밀도로 고민하는 도시와 그 안의 구도심 등 결핌과 잉여를 잘 이어서 지혜롭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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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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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생명체이다. 대학 시절 엉겁결에 선택한 전공을 공부하면서, 또 도시를 공부하면서 저자가 깨달은 것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작은 마을도 생명체이고, 그 안의 사람들, 동,식물 모두 다 생명체이고 전체 국토가 한 덩어리인 '한 몸 생명체'라고 정의한다. 도시가 생명체라면 도시 재생은 아파하는 도시, 죽어가는 도시를 되살리는 것, 도시의 생명을 다시 살리는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도시 하나만의 재생을 넘어 지역과 지방을 다시 살리는 일을 '삶터 재생' 또는 '삶터 되살림'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 몸 생명체가 어떤 위기에 처해있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한발 먼저 위기를 감지하고 앞서서 노력해오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삶터 되살림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우리는 여전히 개발 시대의 그늘과 모더니즘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과 도시와 국토를 소중히 지키고 오래오래 돌봐야 할 한 몸 생명체인데, 쓰다 버려도 좋을 물건이나 이익을 뽑아낼 상품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한 결과 도시는 점점 그 기능을 못하고 있다. 그렇기 대문에 도시 재생, 삶터 재생, 삶터 되살림은 필요한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삶터 되살림 5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삶터 되살림의 궁극적 목표는 삶의 되살림이다. 즉, 삶터에서 시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는 일이다. 둘째, 삶터 되살림의 '우선순위'는 수도권, 대도시, 신도시가 아니라 지방과 시골과 구도심을 살리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과녁이다. 셋째, 삶터 되살림의 '방향'은 외연 확장에서 내부 재구축으로 바꿔야 한다. 넷째, 삶터 되살림의 '접근 방법'은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와 협력이어야 한다. 다섯째, 삶터 되살림의 속도는 '천천히'다. 위 5가지의 원칙을 지키는 선언을 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보자. 1장 도시를 되살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도시를 되살릴 것이닞에 대한 근본적인 얘기를 담고 있다. 2장 우리나라가 개발 시대에서 재생 시대로 넘어오는 과정과 경위에 대한 내용이다. 3장과 4장은 지방 재생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과 일본의 정책과 사례가 담겨있다. 3장은 일본의 사례, 4장의 한국의 사례이다. 5장은 삶터를 되살리는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에 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동안 우리가 사는 도시는 신도시, 뉴타운 이라는 이름으로 수도권 지역에 너무나 많은 개발로 인해, 수도권에만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지방에서는 대도시 외에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반해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도시 재생과 함께 지방 창생 정책으로 지방을 활성화하는 정책이 이미 시작되었다. 일본과 관계가 틀어지기 전만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지방 도시에 여행을 많이 갔으니 일본의 정책은 어느정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도 처음부터 도시 재생이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 도쿄에서는 도시 재생을 명분으로 진행해 온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마을과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 이후 도시재생특별조치법에 의해 개발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어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상태인가? 일본에 비해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자연을 강조한 유형, 부농을 강조한 유형, 교육을 강조한 유형, 귀농을 강조한 유형, 문화예술을 강조한 유형 등 각 지방마다 특색에 맞게 지방을 살리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개발 정책을 보면 대부분 대도시나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고, 지방의 개발 정책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것 처럼 부동산 집값을 잡겠다고 수도권 주변에만 개발할 것이 아니라 인구의 지방 분산을 독려하고, 지방 개발을 위해 한발한발 나아가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문 #천천히재생 #도시재생 #도시는생명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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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이라는 말을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그 뜻이 죽어가는 구도심을 살리고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뜻했다. 나도 수도권에 살던 삼십년 넘은 시간들 속에서는 몰랐는데, 제주도로 내려와 살다보니, 신도시보다는 구도시가 좋고, 거대 개발구역이나 핫플레이스보다는 한적하고 만족도 높은 구석구석의 지역이 더 좋다.
이 책에서 도시의 오래된 곳이나 전통이 있는 곳을 복고풍이 느껴지거나 멋스럽게 고쳐쓰고 환경과 어울리는 설계로 주변과 어우러지게 하는 사례나 아이디어를 기대했다. 이 책을 보니, 나의 기대는 이 책의 일부이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유대를 강화하여 구도심이나 지방을 활성화하는 것까지 담론이 확대된다.
앞부분에서는 '작고채' 즉, '작은 도시나 지역에서 고쳐쓰고 채워쓰자'는 구호를 내세워 저자의 지론과 사례를 소개한다. 이때까지는 '크신재'였다고 한다. '크게 개발하고, 신도시를 만들고, 재건축 및 재개발을 하자'라는 뜻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는 인구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텐데, 더이상 신도시 건설이나 재건축 등은 빛을 바랠 가능성이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작고채'란 아이디어에서 적극 동감하는 것은 헌 집을 고쳐서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멋진 집을 만드는 것에 대한 동경심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처럼 그 고쳐쓰고 채워쓰는 것을 사회적 영역까지 확대한 것은 이 책에서 접한 새로운 부분이다.
일본은 지난 100년동안 인구가 1억명이 늘었지만, 또다시 100년이 흐른 2100년에는 5천만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 인구감소에 대한 대비를 위해 1990년대 중후반부터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왔다. 그래서 지방 활성화 정책을 통해, 도시의 인재를 내려보내면서 인센티브나 연봉을 주기도 하고, 죽어가는 도시나 농산어촌을 살릴 아이디어와 실행을 책임질 청년들을 보내 그들의 네트워킹을 구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별로 지방도시를 살리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으로 도시 안에 젊은이들의 창업을 지원하기도 하고, 젊은이들이 내려와서 게스트하우스 사업이나 북카페, 아지트 등의 공간으로 활동 거점을 만들기도 했다. 귀농,귀촌에 대하여 맞춤형 농업교육을 실시하는 지방도 있으며, 이런 구도심이나 농촌 활성화 정책에는 동서남북으로 많은 곳의 지자체가 자체 생존과 발전을 모색하고 있었다. 공주, 완주, 천안, 문경, 홍성 등등 기억에 남고 부러운 행사와 교류를 지속하는 사회 활동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네트워킹 작업으로 사회사업가들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꿈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지역에 따라 몇명의 슈퍼맨에게 지방활성화의 디자인을 맡기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했지만, 제도적으로 많은 정착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슈퍼맨같은 사회사업가들이 지방에서 능력을 뽐내며, 젊은이들을 빨아들이고 있으나, 제도적 정립은 공론화가 덜되어 아직 아쉽다. 결혼과 출산율 하락과 인구감소, 농어촌 공동화같은 심각한 문제 앞에서는 복지부서와 민간의 합력이 중요해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공장이 자동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 한명한명이 공동체에 속해서 도와가며 살아가는 모델이 다시 대두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인맥이 중요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이 어떤 모델일까를 이 책의 귀농,귀촌 청년들간의, 그리고 중앙 컨트롤타워와의 네트워킹으로 연상해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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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정책 중에 하나는 도시 재생 일 것이다. 도시 재생 단어는 알겠으나 사실 그 개념이 애메했다. 도시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기의 도시를 살려야 한다는 도시 재생. 하지만 도대체 죽어 있는 도시는 무엇이고 살아 있는 도시는 무엇이란 말이냐. 그리고 도시의 쇠퇴는 인구 감소, 사람들의 생활 권에 변화 등으로 촉발되는데 정책을 통해서 인위적인 재생이라는게 가능할까.. 최근에는 예전에 많이 추진되었던 재개발과 같이 개발 관련 사업자까지 많이 등장을 하는지라 점점 그 의미가 모호해지는 듯하다. 궁금증을 안고 도시 재생 전문가가 쓴 책을 읽어 보았다.
책에서는 도시재생의 개념부터 지금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정책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보다 먼저 인구감소를 겪어서 도시 재생을 우리나라 보다 먼저 추진했던 일본의 다양한 사례가 나와 있었다. 나는 특히 육아맘 인지라 육아 공동체를 만들고 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은 사례가 마음에 들었다. 정부의 역할은 도시재생을 추진함에 있어서 어디까지 해야 하고 또 민간의 역할은 무엇인지 모범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이번책이 도시재생에 관한 세번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국토를 한몸 생명체라는 철학안에 도시재생의 개념을 풀어내 주고 있었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을 '도시재생'이라고 부르기보다. '삶터 재생' 또는 삶터 되살림 으로 부를것을 제안하고 있다. 도시를 한몸 생명체로 본다면 우리가 꼭 해야할 삶터 되살림! 보다 명확해지고 친근한 용어가 마믐에 들었다.
책속에서 다양한 사례를 보며 도시재생시대의 개발은 '작고채'로 가야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머리가 끄덕여 졌다
도시공학과 교수로 연구원에도 재직하며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 보전, 걷고싶은 도시, 마을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했던 저자인지라 피상적인 제 3자적 관찰이 아니라 개발을 시간과 공간적으로 도시재생을 분석한 저자의 인사이트가 넘쳐나는 책이었다. 도시재생의 다양한 사례를 알 수 있고 올바른 방향성까지 제시하고 있는 책! 한국의 개발의 역사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도시재생 의 현황, 모범사례를 심층적으로 알고 싶으신 분들께 권한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문 #천천히재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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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천천히 재생 / 정석 / 메디치미디어
인문 천천히 재생은 공간을 넘어 삶을 바꾸는 도시 재생 이야기이다. 저자 정석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이며,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보전, 도시 경관, 걷고 싶은 도시, 마을 만들기 등 여러 도시설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2004년부터는 동북아도시연구센터장을 맡아 중국과 북한의 도시를 연구했다.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도시의 발견:행곱한 삶을 위한 도시 인문학" 을 썼고, "천천히 재생"은 세 번째 도시 이야기이다. 도시는 무엇이고,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재생의 시대가 왔다. 도시가 물건이라면 도시 재생은 물건을 교체하고 재생산하거나 재활용하는 일과 같을 것이다. 도시가 생명체라면 도시 재생은 전혀 다른 일이 된다. 생명체 도시를 되살리는 일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하는 일이다. 도시 재생 시대의 개발은 "작고채"로 가야 한다. 개발의 단위를 단지에서 필지 단위로 "작게" 줄이고, 새로 만드는 대신 "고쳐 쓰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더는 도시를 밖으로 확장하지 말고 도시 안쪽의 빈 곳을 "채우는" 쪽으로 혁신해야 한다. 도시 개발 시대는 가고 도시 재생 시대가 왔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개발 방식이 필요하다. 강자들만 먹고 사는 "크게, 신개발과 재개발" 을 하던 방식에서 약자들도 함께 사는 "작고, 고치고, 채우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크신재" 에서 "작고채"로....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도시 개발 시대를 벗어나 도시 재생 시대를 걷고 있다. 그러나 도시 재생이 도시라는 행정구역 안에만 머무는 건 대증요법에 불고하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지방의 농산어촌을 하나의 삶터로 묶는다면 진정한 도시 재생을 위해 가장 시급하고 절박하게 여겨야 할 과제는 다름 아닌 지방의 재생이다. 지방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다. 지방회춘이든, 지방살림이든 사례 연구에서 지방 소도시들이 보여준 혼신의 전략은 사람을 초대하는 데 있었다.
재생과 행복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나를 둘러싼 삶터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 역으로 내가 행복해야 삶터도 살아난다. 모든 되살리기, 재생의 목적은 대상의 행복에 맞춰져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우리 마을도, 도시도, 우리나라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의 시작이 내 몸을 보살피는 데서 온다면, 그 행복을 더 단단하게, 지속가능한 토양에서 길러내는 방법은 어디에서 올까? 지금은 재생 시대다. 재생 시대의 화두는 "행복"이어야 한다. 국가에 맡기고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주어지는 행복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들이 스스로 찾고 지켜내야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개발 시대의 시대정신이 경쟁과 효율에 기초한 국가나 도시의 성장이었다면, 재생 시대의 시대정신은 상생과 연대에 기초한 시민의 행복이어야 한다. 내 몸 건강에서부터 시작해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재생" 과 "되살림"을 제대로 실현한 거 된다. 지방과 농산어촌 시골마을과 원도심이 더는 죽임당하지 않고 되살아날 수 있어야 진짜 "재생" 이고 제대로 된 "삶터 되살림" 일 것이다.
천천히 재생은 개발의 흔적에 허덕이는 도시를 치유하고, 소멸 위기의 마을을 살리는 다양한 비법을 담은 인문도서이다. 저자 정석은 개발의 시대에서 재생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도시 공간에 대해 성찰하고, 도시는 무엇이고,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본원적인 질문을 건낸다. 개발 사업에 투여하던 돈을 재생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도시재생이라 부르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인문 천천히 재생 책은 개발에서 재생으로, 도시에서 삶터로, 생각의 무게중심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삶의 되살림" 은 큰 규모의 신개발, 재개발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수도권의 무심하게 남아도는 잉여를 지방에서 절실하게 채워지길 바라는 결핍과 연결시키는 일이다. 재생의 대상은 우리 삶터 전역으로 확장되고, 재생의 목적은 공간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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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생명체처럼 자라고 발전하고 쇠퇴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농촌도 도시화가 되어 어쩌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도시는 거대해지고 개발할 곳도 포화상태이기만 합니다. 이렇게 모든 곳을 도시로 만들면 농촌이나 어촌, 산촌 등의 지역 특색은 곧 없어질 것입니다. 《천천히 재생》에서는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 아닌 재생해야 한다고 합니다. 도시 재생 시대에는 '작고채'라고 개발의 단위를 작게 줄이고, 새로 만드는 대신 고쳐 쓰는 방식으로 하며, 도시 안쪽의 빈 곳을 채우는 쪽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게 국토를 빼앗기고 곧 다시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국토가 망가지게 됩니다. 1970년대에는 강남 개발이 시작되고 아파트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1980년대에는 재개발의 광풍이 붑니다. 그리고 2000년대가 되어 도시는 재생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쇠퇴 지역을 재개발하는 대신 스스로 재생할 수 있게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문가는 조언합니다. 그리고 또 도시 재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지방 창생 시책을 펼쳐야 합니다. 이미 일본의 지방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방 창생의 시책 중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은 우리도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아기에는 보육료와 의료비를 지원하고 보육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에겐 재택육아지원수당 등을 지급하며 정부에서도 육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인구 감소로 많은 문제들이 예상되고 있어 이런 육아 정책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보다 출산율이 조금 높은 것을 보면 이런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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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재생: 공간을 넘어 삶을 바꾸는 도새 재생 이야기 이 책을 읽기 전에 도시재생 사업과 관련해 얼마 전 정치적으로 큰 논란이 있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목포 부동산 투기 논란. 국회의원직을 그만둔 후에는 목포로 내려가 목포 재생 사업에 남은 인생을 쏟겠다던 손혜원 의원. 그녀의 진심은 목포를 재생하겠다는 거에 있으리라 믿고 싶다. 도시 재생은 생명을 다시 살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7~80년대를 겪으며 도시가 급격히 개발되었고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낙후된 부분들과 환경 오염으로 문제를 겪는 부분들도 많이 생겨났다. 도시 재생의 주체는 시민이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주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 환경을 우리가 제대로 가꾸고 만들어 나갈 의무와 책임이 있다.
개발과 재생은 서로 다르다. 무분별하게 이루어졌던 개발로 문제가 생겼다면 재생 사업을 통해서는 그런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도시 재생 시대의 개발은 '작고채'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작게, 고쳐쓰고, 채우자는 뜻이다. 개발은 대규모 프로젝트이지만, 재생은 소규모 프로젝트인 셈이다. 개발은 대기업, 대규모 건설회사가 참석할 수 있지만, 도시 재생은 소규모 설계업자와 상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규모는 작지만 그 도시에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역이 발전하지 않으면 나도 발전할 수 없다. 나와 더불어 함께 상생해야 한다.
엊그제 뉴스에서 용인시가 공원을 내후년까지인가 여러 개 만든다고 하는 걸 보았다. 용인시민이 살기 좋은 곳으로 택지를 조성하겠다는 건데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집값도 또 뛰겠구나 싶었다. ㅎㅎ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 시키자. 차근차근, 천천히, 도시를 되살리자. 도시 재생은 관광지 만들기가 아닌 주민이 행복한 지역 만들기가 핵심이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