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만 같은 청춘들 이야기라서 읽노라니 우울해지는 소설 <삼엽충>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별명이기도 한 고생대·중생대·신생대의 화석들... 취업하기가 만만찮은 현실이라서 차라리 대학원에 진학하고 만다는 요즈음의 대학생들이란다. <삼엽충> 속의 그들도 그러했다. 다만 그 기간이 너무 길어 후배들에게 화석이란 비아냥을 받는다. 번듯하게 논문도 통과하고 싶고, 등단도 하고 싶으며, 교수 임용도, 원하는 곳에 취업도 하고 싶다. 그러나 무엇 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랩(Lab)실에서 삐댄다. 누군들 삐대고 싶어서 삐대나? 가진 것이 없기에 염치 불고하고 랩실의 믹스커피와 비품을 사용하고... 번화한 정문 앞의 가게들을 외면하고 후진 단돈 천 원이라도 싼 후문의 가게를 이용하며...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값도 아끼려고 편의점에서 레쓰비를 사서 마시는 우리의 화석들이다. 이 책 <삼엽충> 덕분에 모처럼 화석의 이름 검색을 제법 했더랬다. 재밌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에야 이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옥수동 타이거스>란 책으로 그때는 공고생들이 등장인물이었는데 이번에는 대학원생들이다. 한창 20대가 어쩌고와 30대가 어쩌고가 붐을 일더니 요즘 슬그머니 40대가 어쩌고란 책이 나왔다. 그때의 그 저자들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먹은 나이만큼의 자기 나이 대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어쨌거나 <옥수동 타이거스>의 저자란 것을 깨닫게 되자 나이 대 책들의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옥수동 타이거스>도 나름 재밌게 읽긴 했지만 약간 유치하다 싶었는데 <삼엽충>은 전혀 아니었다. 이 작가 엄청 발전했구나 싶었고 <옥수동 타이거스>와 연관 짓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했더랬다. 그만큼 <삼엽충>이 내게 있어 몰입감도 좋았으며 따라서 가독성 또한 매우 좋았다고 할 것이다. 느릿느릿 읽더라도 필력이 좋으니까 아마도 이틀 정도면 충분히 완독하지 않을까 했었다. 나처럼... 다만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었으면 좋았을 등장인물들의 상황이 너무 현실에서의 이야기라서... 등장인물들의 짜치는 상황에 덩달아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울적하고 심기가 불편해졌다. 결국에는 어떤 방향이건 간에,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일이건 간에 각자의 길을 찾아서 가지만 말이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과 지인들의 경험을 버무려 <삼엽충>에 고스란히 녹이지 않았나 했더랬다. 시브즈기 큰 기대 없이 접했다 금세 책 속으로 빠져들고 만 소설 <삼엽충>은 암울한 청춘들의 실제였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 물가 지수가 처음으로 하락했다고 한다. 더불어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었다. 체감하는 물가 지수는 여전히 가파르게 오른다는 느낌인데 물가 지수가 내렸다 하니 순간 뻥~했다. 하락한 것들의 면면을 보니 내 생활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상관이 적은 항목들이라 헛웃음이 났다. 인플레이션이건 디플레이션이건 가진 자들은 큰 변동 없이 잘 살아갈 거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소설 <삼엽충> 속에서도 배경이 잘 나가는 사람은 지지리 궁상인 화석들과는 달리 기회를 잘도 잡았다. 아니, 그들이 만들어놓은 자리, 기회를 차지하는 데에 있어 화석들이 들러리가 돼주어 입맛이 썼다. 책 소개에서 피카레스크식 구성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에 상관없이 어쨌든 재밌었다. 사실 쭉 이어진 내용인 줄 알고 읽었더랬다. 각각의 단편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 줄은 미쳐 몰랐걸랑... |
|
<무명예술인들의 공간 랩(Lab)> 『삼엽충』 너를 드라마 작가 지망생 '진 작가'의 열혈 작가 분투기라고 명명한다. 공대를 졸업한 주인공은 변변한 직장에 취직도 못하고 백수로 지내다 궁여지책으로 명성대학교 전문대학원 문영공과(문학영상공연학과)에 진학한다. 그가 이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는 오랜 드라마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백수 생활을 면치 못한 주인공은 문영공과 안에 자리한 랩(Lab)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선배라는 불명예를 안는다. 랩(Lab)은 재학생들이 독서나 과제 작성, 소논문이나 작품 집필 등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랩(Lab)은 백수인 선배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어 오해려 재학생들은 사용을 못하고 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후배들이 민폐를 끼치는 선배들을 비꼬아 오래된 화석 이름으로 별명을 붙여 부른다. 그러한 사연으로 랩(Lab)에 가장 오래 남아 있던 주인공은 후배들 사이에서 고생대 화석 '삼엽충'으로 불린다.
삼엽충(남:39세/9번 자리 사용)과 함께 오랜 기간 랩(Lab)에 남아 동고동락 했던 선, 후배들을 잠깐 소개한다. 필석(남:42세/11번 자리 사용) 본명 박용배 갑주어(남:35세/1번 자리 사용)본명 유현식 푸줄리나(여:30세/8번 자리 사용)본명 선유하 암모나이트(여:34세/6번 자리 사용)본명 문서현 시조새(여:34세/3번 자리 사용)본명 전세영 다이노(여:34세/16번 자리 사용)본명 김지영 화폐석(남:32세/13번 자리 사용)본명 남대철 매머드(여:28세/15번 자리 사용)본명 강혜미 이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화석들이 점심값, 커피값을 아껴가며 공모전 탁락의 고배를 마시며 동고동락하는 시간들을 꽉꽉 채우고 있는 것은 고통과 굴욕 뿐이다. 정말 고통과 굴욕 뿐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런 것처럼 보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구질구질한 일상 속에서 비집고 나오는 작은 그 무엇이 분명히 있다. 작은 그 무엇이 꿈이라면 꿈일 수도 희망이라면 희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의 화석들은 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 내고 각자가 원했던 무엇이 되어 날아오른다.
<드라마 왕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끝까지 생존하기>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 시청률 대박을 치는 드라마도 있고. 방영 되었는지조차 모르고 사라지는 드라마도 있고. 역주행을 하는 드라마도 있고.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머리 속에서 몇 명의 자타 공인 인기 드라마 작가와 작품이 떠올랐다. 김수현 작가 / 사랑과 진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청춘의 덫, 사랑과 야망, 엄마가 뿔났다, 인생은 아름다워, 무자식 상팔자 등등 송지나 작가 /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카이스트, 대망, 태왕사신기, 신의 등등 김은숙 작가 / 파리의 연인, 온에어,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등 노희경 작가 / 그들이 사는 세상,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라이브(Live) 등등 김은희 작가 / 싸인, 유령, 쓰리 데이즈, 시그널, 킹덤 등등 박지은 작가 /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 프로듀사, 푸른 바다의 전설 등등 이우정 작가 /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등등 박해영 작가 / 올드미스 다이어리, 청담동 살아요,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등등 최완규 작가 / 허준, 상도, 올인, 주몽, 식객, 아이리스, 종합병원 1.2, 트라이앵글, 옥중화 등등 박재범 작가 / 신의 퀴즈 시즌 1.2.3.4, 굿 닥터, 블러드, 김과장, 열혈사제 등등 . . . 어쩔까나? 기억에 남아 있는 드라마 위주로 적었을 뿐인데 진짜 여자 작가가 훨씬 많다. 『삼엽충』 의 주인공 39세 남자 '삼엽충'이 10년 넘게 캠퍼스에 화석 선배로 남아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삼엽충' 기죽지 말기를 바란다. '삼엽충' 아재가 쓴 로맨스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 소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질구질한데 그 내용을 담은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하다. 문장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이 소설의 담백한 서술 방식을 통해 배운게 있다. 타인의 삶을 향한 섣부른 동정은 금물임을. 지독하게 강하고 질긴 예술인들의 근성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본보기임을. 배웠다.
172쪽 주인공이 저리 초연한데 쓸데없이 조연인 내가 감정의 과잉을 부리면 안 되는 거였다. 현실에서든 극작의 세계에서든 상관없이…. 자신의 슬픔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녀석의 슬픔이 슬펐다. 슬픔이 슬픈 책이라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느낌이나 생각을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