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한 번 읽었는데 이번에 낙동정맥 때 보았던 금강송으로 예전 기억이 나서 다시 읽었는데 예전보다 느낌이 좋았다.
도편수 신응수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자신의 자랑은 많지만 우리가 본받을 점도 꽤 된다.
일본의 목수인 니시오카 츠네카츠에 비해서는 생각의 깊이가 쳐진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그릇의 차이로 인식하자.
메모한 것들을 다시 본다.
-구인사 조사전은 1998년 국내불교계뿐만 아니라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한 화제거리였다.-중략-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역작으로 극찬받은 건물이다.
-경복궁이 중건되고 성대하게 잔치가 있을 때 인부들과 구석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현 시대의 장인들에 대한 예우가 이런 것인가?
-궁궐목수는 최원식-조원제-이광규-신응수-문기현으로 이어진다.
-조선 초기 숭례문을 축조한 대목장 중에는 정5품 벼슬 받은 이도 있다.
-도편수는 정승감, 정승의 인품, 기량, 권위를 가진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고건축분야의 맥이 끊겼다.
-똑같은 장척을 두 개 만들어 만일에 대비한다.
-스승님은 큰일을 할 때에는 돈에 연연해하면 못쓴다며 눈앞에 보이는 몇 푼의 돈보다 명예를 강조하신다.
-일본식 대패질은 당기는 방식이고 조선식은 미는 방식이다. 일본식은 처음에 힘이 들고 조선식은 힘이 균일하다.
-자귀질 소리는 기묘한 장단이다.“딱 딱 다닥 따닥 쿵 따닥 쿵…. "지금도 숭례문 곁을 지날 때면 당시 장안의 구경거리였던 장단 맞춘 못질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아마도 그 시절 가졌던 초심을 잃지 말라는 스승님들의 가르침인 것 같다.
-목수가 평생 다포집 하나만 짓고 가기만 해도 일생의 영광이다.
-주초석이나 기단석은 우리나라 최고의 돌로 평가받는 강화애석이다.
-강회로 마무리하는데 강회나 생석회의 경우 오래가는 편이지만 콘크리트는 얼마갈지 의문이다.
-집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는 좋은 자재를 써야 한다.
-기와를 얹은 후 바로 수장공사를 하면 안되고 1년 정도 지난 뒤 자리를 잡고 나서 하는게 좋다.
-한옥은 전체의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다. 작은 부분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적송이나 육송은 내구성도 강하고 그 지역의 기후에 잘 적응하여 수명도 길다. 북미산 홍송(더글러스)도 좋다.
-나무가 숨쉬는 한옥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다. 땅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지어야 한다.
-한옥은 집과 마당, 대문이 자연스럽게 트인 채 연결되어야 한다. 중간에 연못과 정원이 있으면 한옥 특유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사라진다.
-나무가 집 가까이 있으면 그 뿌리가 점점 땅 속으로 파고 들어 결국 집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공사를 서두르면 목재의 변형으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생육조건이 좋지 않은 음지에서 더디게 자란 영동지방의 소나무가 속이 더 단단하고 붉은 색을 띤다. 영서지방의 소나무는 영동지방에 비해 2배 정도 빠르게 자라지만 강도가 무르다. 혼유림에서 자라는 것은 곧고 바르지만 솔밭 임지에서 자란 소나무보다 강도가 떨어진다.
-나뭇가지가 아래로 축 처진 것은 오래된 것, 표피가 상하로 긴 것보다 거북등 무늬를 이루며 갈라져 있는 것이 좋다. 나무 빛깔은 검은 것보다 흰것과 붉은 것이 속이 단단하고 뒤틀림이 적어 좋다.
-수 백년된 나무를 금방 잘랐을 때 그 나무에 기기 있어 사람에게 해가 된다.
-나무는 3년의 건조과정이 있어야 재목으로 쓴다.
-목수는 곧 나무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나무를 이기는 사람만이 나무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무를 다루는 기본은 굽이를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굽이란 나무의 변형된 상태이다.
-목수를 가라켜 죽은 나무에 두 번째 목숨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집을 지을 때에는 천년앞을 생각하고 천년이상을 버틸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
-문화재 복원은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복원을 끝으로 거의 중단되었다.
-장인정신은 성실함과 자기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꾸준한 공부, 옳다고 믿는 바를 밀고 나갈 수 있는 고집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자세이다.그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전설 속에 묻혀버린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을 내 자신의 손으로 복원해보고 싶다.
신씨를 목수의 길로 이끈 것은 가난이었다.“
나를 건축으로 이끈 것은 사과궤짝이었다.
어렸을 때 사과궤짝을 아버님과 같이 수리하였는데 송판이 얇아 못을 수직으로 박는게 어린 아이에게 쉽지 않았는데 어른들한테 곧잘 칭찬을 받았다. " 그 놈, 커서 목수가 될 소질이 보이네"
그 말을 진정으로 믿고 고단한 목수를 존경스럽게 바라보면서 동경했고 그렇게 건축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내 집하나 짓지 못하고 남의 집만 대신 그려 주고 있다.
몇 년전 문회재 보호재단에서 고건축 실측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휘문고 수학 선생님은 한옥을 짓겠다고 목수를 자청하였다. 지금쯤 한옥은 다 지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