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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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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깨달음 - 설지   이웃님의 블로그(딜리)에서 제목을 보고 구입하게 된 책이다. '진리'라는 것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깨달음'은 한줄기 구원의 빛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꼭 이루어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용맹 정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인 설지 스님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모두 부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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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깨달음 - 설지

 

이웃님의 블로그(딜리)에서 제목을 보고 구입하게 된 책이다.

'진리'라는 것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깨달음'은 한줄기 구원의 빛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꼭 이루어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용맹 정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인 설지 스님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모두 부처이고 진리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 한다.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다.

선(ZEN)이 생활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그대로가 선이 되어야 한다.

깨달음으로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삶의 지복감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그저 그러함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자기 자신이 거슬리지 않는 것,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이것이 불법의 진정한 효용이라 할 수 있다.

결핍감,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 그리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깨달음은 부처같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처란 모름지기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스스로의 전생을 기억해 내며 세상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고 스스로 죽을 날도 마음대로 정해 버리는 초월자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 이미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자아와 욕망과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자아와 욕망과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저 보여줄 뿐이다.

삶의 문제들로부터 해방되길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깨달음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삶은 문제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할 뿐이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인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깨달음의 공부다.

선사들은 탐진치가 허상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탐진치 속에 뒹굴면서도 탐진치에 속지 않았다.

깨달음은 탐진치를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탐진치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준다.

삶이란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 어렵고 힘든 삶을 한 번에 해결해 줄 깨달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이란 이 어렵고 힘든 삶을 불안감 없이 견디게 할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냥 사는 것일 뿐이다.

깨달음을 얻어 지금을 살고 있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성숙된 것은 아니다.

깨달음과 인격은 별개의 문제다.

깨달음은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났으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격 형성은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며 서로 사랑하는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은 깨달음과 별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깨달음은 온전히 깨달음의 것이고 삶은 온전히 삶의 영역이다.

그래서 무력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삶에 관해 전적으로 무력하고 그러한 무력함 때문에 깨달음이 깨달음일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은 '나'라는 관념을 놓아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생각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각은 숨결처럼 자연발생적으로 항상 흐르는 그 무엇이다.

'인간은 자신이 언어를 형성시키고 주인인 양 행세하지만 사실은 언어가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하이데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을 부리는 줄 알지만 사실은 생각이 사람들을 부린다.

생각 안에서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고 그러다 문득 알 수 없는 불안에 잠기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 또한 결국 생각 속에서 지어진 사건임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선이 유일하게 목표로 하는 것이다.

생각을 내버려 둘 수만 있다면 오직 그뿐이다. 그저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그렇게 흘러가면 그뿐이다.

생각은 생각대로 흘러가고 이것은 이것대로 살아간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깨닫는 일이지 바깥에서 무언가를 얻는 일이 아니다.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을 기억해 내는 일이지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깨달음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고 하지만 깨달음은 본래 '무아'임을 아는 것이다.

깨달음은 본질적으로 현실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성취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참선은 존재의 바탕을 깨닫는 일이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다.

깨달음을 통해 수행할 수는 있지만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는 없다.

깨달음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단지 그것을 기억해 내기 위해 화두를 듣고 법문을 듣는 것이다.

진리는 아무것도 감춰진 것이 없다.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는 것이며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선이란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가 삶의 한 조각들이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가 그저 지나가는 삶의 편린인 줄 받아들여야 한다.

선은 변화시켜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이다.

온전한 받아들임 끝에 영원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현상에는 모든 것이 하나다.(不二)

선의 진정한 효험은 오직 단 하나.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이것은 '알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며 알 수 없으려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디를 둘러보아도 너무나 적나라하게 '모를 뿐'이며 낯설 뿐이다.

참선의 본질은 열심히 갈고닦아 성취해서 어떠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본래부터 완전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선의 시작과 끝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누릴 뿐이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삶은 흘러가는 대로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오직 모를 뿐인 채로 살아지는 것이 가장 정확한 길이다.

 

m****8 2022.02.20.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