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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이라는 말은 보통 전자기기에 쓰는 단어다. 언제부터인가 충전이라는 단어가 사람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물질만능주의... 머 이런 이야기를 하거나, 책의 제목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아마도 충전이라는 말이 쉼이나 휴식, 휴가 등의 대체어로 사용되었겠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기기들은 일정 시간이 되면 완충이 되는데, 우리도 일정 시간 지나면 완충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충전이라는 단어는 힘들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어려울 때 등 내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부쩍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저자는 충전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아닐까?
이 책에는 18개의 상황과 그때 위로가 된(혹은 충전이 된) 그림 18점이 등장한다. 저자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지만, 공감이 되는 글들이 있었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 한 주제들이 감정(힘들다, 우울하다, 괴롭다, 행복하다 등)보다는 상황(휴식이 절실한 날, 분리되지 못한 자아,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날 등)에 관련된 이야기와 그림이 소개되기에 보통의 명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와는 다른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그림을 보는 눈이나 그림에서 받는 위로가 더 있었기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 따라서, 풀어 적은 주제나 그림에 따라서 공감은 각양각색 일 듯싶다.
개인적으로 2번 인정 투쟁에서 실패했을 때 만난 그림과 10번 휴식이 절실할 때 만난 그림이라는 장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엄마이자 워킹맘인지라, 특히 더 복직(혹은 이직)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지 말아라!"라는 말이었다. 아마 어른이 되고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아서 또 다른 어른의 기쁨을 누렸긴 하지만 말이다. 그 시절 내 눈에는 어른들의 이야기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일방적인 그들의 모습에 상처도 많이 받고 말이다. 저자 역시 어른들의 그 일방적인 결정이 또 다른 어른으로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무너진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아이에게 또 다른 일방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것에 결국 자신의 선택을 포기하고 만다. 나 역시 어른이 되어서 어릴 적 모습과 감정, 생각을 잊었던 것일까? 나 또한 내 아이에게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모습을 책을 통해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직 그림을 볼 줄 아는 눈이 크지 않다. (올해 목표가 그림과 친해지기, 그림 관련 책 1독 하기였다.) 여전히 저자의 책 속 그림과 글의 내용이 완전히 매치되고, 공감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 이상의 그림에서 나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에 좋았다. 그리고 나 또한 내 마음이 충전되고 공감되는 그림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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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이 책이 내 마음을 참 많이도 후벼팠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시무룩해하며 살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과거회상병과 현재 도피형인 나의 마음에 울림을 준 책 <그림으로 마음을 충전합니다>를 만났다. 그림 충전 에세이인 이 책의 저자 이근아와 나의 닮은 꼴이 어찌나 많았는지, 거의 빙의를 한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해왔던 일들을 그녀 또한 겪었고, 그리고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에 공통점과 배울 점을 엿보며 한숨이 이 책을 들이 마셨다.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이렇게 그림을 승화할 수도 있겠구나, 어찌 보면 나에겐 그게 음악이었고, 술이었고,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그림들을 만났고, 이런 그림이 어떻게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지를 보며 부럽기마저 했다.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가다 갑자기 길을 잃어버렸을 때의 막막함,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면 곧잘 우울감이 밀려온다. 왜 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거지? 육아도 대인관계도 나를 대면하는 일 마저도. 소속감이 없다는 마음에 공허함이 밀려왔고,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 하나같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곤 하며 술잔을 기울인 적이 참 많다. 특히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묘한 질투를 신랑한테 느낄 때, 이런 건 진짜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저자가 언급해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었구나. 수면장애가 올 때마다 저자가 본다는 그림을 함께 바라본다.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생각에 한없이 위로가 된다.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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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냥 보는것이 좋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것이 좋을뿐이다. 그렇게 만난 이책은 왠지 제목처럼 나의 마음을 충전해 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마무리 할때 읽어주면 왠지 힘이 되어 줄것 같은 느낌
열정적인 미술학도 였고 이제는 두아이의 육아를 하고 있는 저자, 나도 한때는 열심히 뭔가에 몰두해 있었고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에만 전념을 하고 있기에 그래서 더 궁금하고 끌렸던 것이었을까
저자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고 살아가고 있었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조차 생각도 못하고 있을때 다시 그림을 만났다고 한다. 왠지 지금의 나의 모습인것 같아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기대 되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 누구나의 이야기, 나 자신에 대해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 가족들의 이야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과 그림이 함께 하는 책, 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는 그런 책이다. 그래서 더 와 닿고 공감이 되고 나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잡으로 금방 읽어버리려고 하는 내가, 천천히 읽고 싶었던 책이다. 그냥 책속에 이야기가 좋고 책속에서 만나는 내가 모르는 그림들이 좋았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것이 좋았고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 좋았다. 그림이 어려울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나에게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작품들을 보여주는것이 좋았다.
덕분에 조용한 시간 책을 읽으면서 나자신을 다독였던것 같다.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시간도 중요한 시간임을, 또 다시 뭔가에 도전하기 위한 시간임을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위로 하는 시간이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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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림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6살~7살부터 기억이 나는데 어딜 가든 스케치북과 크레용은 꼭 데리고 다녔다.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며 필이 꽂히면 주저앉아 그렸다. 사물과 인물 뭐든 ㅋㅋ 중학교 미술수업에 그리고 싶은 정물 스케치를 하라는 잘생긴 선생님의 말씀에 잠시 고민하다가 칠판 옆에 걸린 한 바퀴 정도 말린 수건을 그렸다. 고무 판화를 하는 시간에는 비너스상을 팠다. 나의 시간은 항상 그림이 있었다. 책날개의 저자의 소개를 보니 나와 동갑이다. 같은 시대에 다른 공간의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큐레이터학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근아 저자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가진 그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그림은 멈췄지만 글로써 사람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그림 충전 에세이에 가슴이 콕콕 아팠다.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자의 이야기였다. 여자.. 아내, 엄마, 며느리 우리의 이야기이다. 마음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그림이라는 소재로 더욱 감성을 이끌어내는 해석이 좋았다. " 아이를 가진 두 번의 시간 모두 사회에서 밀려나는 시그널로 느껴져 마음이 복잡했다.
205p. 카로이 페란치l (1862-1627) 새 소리 전시회를 가면 갑자기 우두커니 멈추게 되는 그림이 있다. 기법과 색채의 화려함에 매료된 것이 아닌 사연이 있을 것 같은 그림에 눈이 머문다. 그림에 감정이입이 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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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세이라는 타이틀만 보고 그림과 함께 그때 그때의 감정을 가볍게 풀어내는 글로 여겼었다. 그림이 주는 여유로 마음을 충전하는 자주 겪어 보던 그림 소개글 정도로 말이다. 감성적인 활동이라고는 책 읽기와 최근 보기 시작한 연극 관람이 전부인 나에게 그림은 뭉킁의 절규 정도로 유명하거나 광고 등에서 사용된 그림을 아는 정도의 사각지대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었다. 독자들이 편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에세이는 도와주는 정도의 글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림 좀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책을 펴자마자 같은 마음으로 읽어내려갔고, 다 읽고 난 후에는 힘들게 아이를 키웠던 기억이 되살아나 함께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워킹맘이다. 운좋게도 주변의 도움과 직장의 배려로 경력단절없이 직장을 다니고 있다. 딱 거기까지다. 경력단절은 없었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는 쉼없이 사무실과 아이의 눈치를 봐야했고 아이가 아프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마냥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저자는 공부잘하는 아이들의 집단으로 상징되는 외고에 다니다가 돌연 외고하고는 백만광년쯤 떨어진 미술로 전공을 전향하는 갈등을 겪었었다고 한다. 외고에서 미술로 전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반대를 온몸으로 맞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잘은 모르지만 박물관, 미술관 등 창의적인 기획을 동반한 일은 사무직과 달리 연공서열이라든지 나의 형편을 고려한 시간 배분이 어려운 일이라고 들었다. 치열하게 버티고 치열하게 나를 들어내야 하는 일에서 나만 바라보는 갓난 아이를 키우면서 소리없는 전쟁터와 같은 그곳에서 버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쩔 수 없는 경력단절을 유도하는 시간이었으리라. 그나마 시간의 조절이 가능한 사무직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는 내가 제일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친정 아빠는 '목표를 세웠으면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라는 말씀을 주셨다. 뜻밖이었다. 아빠의 말씀에 용기를 냈다. (중략) '내게 다시 일할 기회를 준다는데 왜 못가. 나는 나를 인정해 주는 곳이 있다면 아프리카도 갈 수 있어' 있는 대로 허세를 부렸다. (중략) 친정엄마는 말한다. '엄마 마음이라는게 원래 그런거야. 독할 수가 없어.'" (p.41, 경력단절을 이어 붙이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를 두고 제주도 취업을 준비하고 포기까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난 후 겪은 환경과 심리상태의 변화를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면서, 그들이 겪었음직한 에피소드 18가지와 그에 어울리는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나같은 그림 문외한이 많이 봐왔던 그림은 아니지만 에피소드와 그림에 대한 해석을 같이 읽으면서 그림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나 역시 그림을 보면서 위로 받는 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글이었다. 이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고, 잘하고 있으니 스스로를 믿어보라고 격려한다. "현실에 순응하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시간에 몸을 맡기지 말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자고 했다." (p.143)
남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비뚤게 보는 모습에 투영됨을 느낀다. SNS가 제일 좋은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다르게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가득 담고서 질투로 표현하는 투덜거림이 생각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이 생긴다. "'좋아, 행복해, 감사해!' 스스로 주문을 건다. 생각되로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말? 진심? 만족한다고? 불만 없어? 나는 불만 많은데 너희는 그렇지 않아? 너희는 나와 다르 ㄴ세상에 사는 거야?' 라고 묻고 싶다. (p.153)
마지막으로 18가지의 에피소드에서 소개된 그림중 제일 맘에 들었던 그림 한가지를 담으면서 공감하는 마음 충만했던 '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 리뷰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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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른들은 의식적으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무언가를 가지게 된다. 각자 타고난 기질이 그 방어막이 어떤 모습일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이근아 작가는 그림이었고, 난 책이었다. 바로 이런 책. 아픔과 절망과 용기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집요함이 범벅이 된 이런 책이 나의 방어막이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작가의 글이 가슴아프면서도, 눈물 짓게 되면서도 한편으론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짙은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을 펼치면서 약간 걱정되었던 것은 내가 아는 그림이 많으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유명한 그림들에 대한 감상은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 같은 내 조급함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 생소한 그림들이었다. 실린 그림들의 작가들은 어딘가에서 들어본 유명 작가들이 많았지만, 작품들은 한 번도 못 본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새 그림을 알아가는 기쁨까지 더해졌다. 작가의 사연을 읽으며 그녀의 절망을 따라 걷다보면 한 장의 그림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림의 설명. "미친 사람이었다. 친정부모, 남편, 일곱살난 아들, 네 살 딸이 보는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었다." 이 모든 힘든 세월을 이겨내고 서울의 변두리, 이름모를 독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책을 내 주어서 고맙다. 마음이 지칠때마다 이 책을 펼쳐들어 한 챕터를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담으며 읽을 것 같다. 이번 주말엔 예술의 전당에 가서 테라로사에서 커피도 한 잔 하고, 전시회도 한 편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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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청 기대했던 에세이는 아니었다. 그냥, 요즘 차고넘치는 에세이글에 그림을 접목한 글이구나 하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공감을 많이 하며 구구절절하게 마음에 콕 박히는 시간을 겪게될줄은 몰랐었다. 연령대는 다 다르지만, 그래도 평범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나처럼 이 책에 몰입할 수밖에없을 것 같다. 그런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지만말이다. 책의 저자 '이근아'님은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하다. 외국어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성균관대 미술학과에 입학했을 만큼 명석하기도 하지만, 결국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흔한 경력단절을 겪는 한 여자일 뿐이다. 공부도 잘했고, 그림에도 뜻이 있었고, 사회진출에도 욕심이 있었던 이근아씨가 겪게되는 솔직한 감정적 추이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굉장히 씁쓸했다. 결혼과 육아에 메였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단 사회적 상황들 p.89에 나오는 문구들도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출산휴가를 받는 직장 있는 임산부였다. 큰 배를 안고 출퇴근하다가 잠시 휴가 아닌 휴가를 얻은 자의 고충과 갓난아기를 두고 복직해야 하는 복잡한 마음을 경험하고 싶었다. 애써 다른 표현으로 말하고 있지만 나는 직업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아직 하진않았지만, 미래에 당연히 내가 하게 된다고 나의 주변사람들은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전제한 대화들이 너무 많다.) 아마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들은 또 당연히 내가 아이를 가질거라고 믿겠지. 내가 그런 상황을 겪는다고 해도 나는 이근아씨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문장을 보고 굉장히 많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엄청. 많이. 나는 이 저자가 굉장히 솔직하게 글을 쓴 점이 너무 좋았다. 특히 자식에 대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아들과 11년, 딸과 8년, 우리가 함께 산 세월이다. 아직도 어렵다. 손님을 맞이하는 양 마음이 부산하다. 언뜻 저 문장만 보면 매정해보이지만, 저자는 솔직하게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등교하면 보고싶은 아이. 잠든 모습은 짠하게 보이고, 웃는 시간도 있지만. 엄마를 듣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신의 얼굴에는 표정이 사라지고, 이쯤이면 좀 떨어져 있자는 신호를 보내고.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지치는 그 과정과 그 감정변화에 미혼이지만 굉장히 공감이 가게 써놓았다. 무조건적으로 특히 엄마에게 강요하는 모성애적인 부분의 이면이 거짓없이 드러나는 날것의 표면들이 엄청나게 피부로 와닿았다. 우리는 단 하나의 위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근아씨는 '이근아'이기도 하며, 한 남자의 아내이다. 한 아들의 엄마, 한 딸의 엄마. 동시에 누군가의 며느리고, 누군가의 딸이다. 미술을 하면서 부모에게 내놓을만한 자식이 되지 못했고, 부모에게 만족감을 주는 자식. 매일 벽돌을 쌓아 작은 성을 쌓아가던 남편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남편이 기쁜 소식을 안고 와도 "좋겠네?"라고 말하는 아내. 어쩔수없이 시월드에게 상처받는 며느리. 누구나 갖고있는 관계의 각도에서 진솔하게 풀어낸 감정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그런 아픔을 맞이할 때마다, 이근아씨는 그림을 소개해준다. 그 그림을 보며 위안을 받고 마음을 다스린다. 이 책이 솔직했듯, 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많이 슬펐다. '여성'이 갖게되는 사회적 한계를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다시한번 확인받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근아씨가 이렇게 상처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기 자신에 대한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구성인으로써, 열심히 사회를 이룩하고 자아를 성장시키고픈 욕심이 한 가정을 지킴으로써 '포기'되고 '좌절'되었기 때문에 수반되는 그 감정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직 이근아씨의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럴 확률이 높지만,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기로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그림을 통해 위안을 받을 수는 있어도 저 그림의 그 상황을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위로가 될것이다. 나역시 이 책을 통해 위로받는 측면이 부분이 있지만, 회피하고 싶었던 현실을 낱낱이 보여주기때문에 고민을 안겨주기도한다. 마음이 굉장히 복잡하지만, 시중에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이런 고민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조우하고, 타파해나가서 이근아씨가 갖고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이근아'의 에세이기도 하지만 현대 모든 여성들의 에세이기도 한다. 현재를 살고있는 여성이라면, 이 책을 통해 얻는 것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여성들이 꼭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게 위안이든, 마주하고싶지 않은 현실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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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함께하면 삶이 보다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내 삶에서 가장 어려울 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마침 가까운 곳에 미술관이 있었고, 매일매일 그 곳을 찾아 거센 풍랑과 같았던 그 시간 속에 고립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저에게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취미를 넘어선, 회복의 시간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이근아의 그림 충전 에세이’, <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 역시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간과 경험을 가진 작가를 만난 느낌이라서요. 그림과 함께 다양한 글을 읽어나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 같은 작가의 에세이가 제 맘을 항상 설레게 하거든요. 징검다리처럼 건너가게 마련인 삶의 단계들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고, 그렇게 소녀일 때 소녀답지 못했기에 내 안의 사춘기를 당당히 인정한다니 부럽기까지 했어요. 저는 아직도 직면할 용기가 없는데 말이죠. 마냥 그렇게 살았다면 참 좋았겠다 하면서 후회하는 저는 어쩌면 ‘욕망이라 쓰고 침묵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장 베로의 ‘잘못된 행동’이라는 그림이, 그 뒷모습이 오랜 잔상을 남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내가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고 말을 꺼내는 사람에게, ‘생각만 해!’라고 답하는 것이 참 기억에 남아요.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지만, 왠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말들,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상대가 받을 수 있는 말이든 아니든 무조건 쏟아놓는다’와 같은 상황 말이죠. 그런 말들이 저에게 다가올 때,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독이 든 우물’이라는 그림을 떠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나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명화도 등장하지만, 낯선 화가들의 작품이 많아서 너무나 좋았는데요. 그 중에 덴마크 화가 칼 홀소에의 ‘잠자는 여인’은 수면장애를 갖고 있는 저로서는 침실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끌리더군요. 그리고 책으로 만났던 모지스 할머니에 대한 글은 그녀의 글 그대로, 요즘 제가 계속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한 줄기 밝은 빛’처럼 다가왔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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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이 만들어낸 우울한 마음을 해결하고 싶었다.
결혼과 시월드. 육아와 경력단절. 우리 시대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에 이바지할 즈음 결혼과 동시에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그네들에게 사회는 냉정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스스로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저자의 이야기가 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재능이 자본과 맞닿으면 이상적이다. 차별화된 나의 재능은 무엇일까? 불안과 가까워진 대신 나답게 살길이 열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림에서 위안을 찾았다. 멍하니 바라보던 그림에서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대입시키고, 마음을 가다듬는 나날. 그림을 전공했지만 그길로 나아가는 길은 좁고 험난했다. 결국 그녀가 택한 건 그림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온 그림들에 그녀의 생각을 담았다.
이 책에는 잘 보지 못했던 그림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니, 거의 다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그림들이다. 귀에 익은 화가들보다는 처음 들어 보는 화가들의 그림이 대부분이다. 물론 나는 그림을 전공하지도 전시회를 자주 다니는 사람이 아니기에 더 생소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응어리를 털어내고 그때마다 위로받았던 그림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적은 이 책은 비슷비슷하게 나와있는 그림 에세이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답답한 현실에 나도 같이 속을 끓이고 그녀가 위로받은 그림을 보며 나도 그림에 나를 입혀 본다. 나는 이 그림들에서 나의 무엇을 보았을까?
에너지가 고갈되는 지도 모르고 쉴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같은 시대를 같은 이유로 통과하고 있는 그녀들이 같이 읽었으면 한다. 쉬어가는 시간은 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내 스스로가 나를 쉬게 해주어야 한다. 이 책에서 마주치게 되는 그림들은 모두 어딘지 외롭게 느껴진다. 그건 우리가 모두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속에 나를 투영시키고 잠시 한 걸음 떼어서 바로 보는 시선. 그 시선에서야말로 나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닐까? 저자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그림에 글을 입혔다. 나는 내가 잘 하는 것에 나를 담아내면 될 것이다. 그렇게 털어내고 가다듬다 보면 나도 꽤 괜찮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건 그것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나는 괜찮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 책을 읽은 의미는 그것이다. 불안정했던 나 자신을 스스로 가다듬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 내겐 좋은 책이었다.고 되뇌어 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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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그림' 혹은 '명화'를 좋아합니다. 어릴 적 꿈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만 사정상 꿈을 접어야했었고 워낙에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전시회를 찾아 다니거나 명화 에세이를 종종 찾아읽는 편입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은 저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줄 것 같았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발버둥치다 에너지가 바닥난 날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날 마음에 그림 한 점 걸어봅니다. '에너지가 바닥난 날'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날' 지금의 제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요즘들어 의욕이 없어졌습니다. 습관처럼 일과를 보내고 나서 마주하게 되는 제 모습. 마주하기가 껄끄러웠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저를 마주할 수 있을까...... 『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 저자는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미술대학에 들어간 이후 긴 시간, 내 안의 재능을 저울질했다. 현실과 이상의 분리가 일어났다. 이름만 작가인 게 싫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다시 새로운 세계에 놓였다. 아직도 내가 경계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건 가족이, 사회가 바라는 남의 얼굴이었다. 대신 나의 눈에는 돌봄이 필요한 채 웅크리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내 자아가 보였다. - page 6 ~ 7 공감이 되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나서 저 역시도 때아닌 방황을 했었습니다. '나'와 '엄마'라는 타이틀 사이에서 비틀비틀. 그러다 중심을 잡게 된 것이 저에게는 '책'이었습니다. 경계에 있는 감정. 그 감정을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대면한 그림은 아무 말이 없다. 한 말을 또 해도 나를 멀리하지 않으며,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해도 면박주지 않는다. 긴자아이 필요 없으니 그림 앞에서 배가 아프지 않다. 부은 눈과 두통을 동반하지도 않는다. 어떤 그림은 마음이 투영되어 울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외롭지 않다. 말없이 받아주는 상대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 page 18 ~ 19 그렇게 책 속에선 그림 하나에 공감과 그림 하나에 위로와 그림 하나에 '내'가 있었습니다. 저에게 유독 이 그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귀스타브 쿠르베, <카누 타는 여인>
파도 위에서 카누를 타는 여인은 적당히 리듬을 타며 '나처럼 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을 상대로 뻣뻣하게 버티지만 말고 네 마음대로 안 될 때는 바람을 따라가. 단, 방향키는 잘 잡아야 해'라고 그녀가 말한다. - page 70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나조차 내 마음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왠지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그림에세이는 좀더 일찍 만났었다면 지금의 내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되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깊은 우울함에 빠져 있었고 그 누구의 위로도 위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내 마음 놓아줄 곳이 없었는데...... 이 책에서의 그림을,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록 새 살이 돋아났지만 그래도 흔적이 남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