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 이데올로기 줄다리기 그 사이에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 던진 충고 & 19세기 프랑스 공화국이 당당히 식민열강이 된 이유 <정치사상사 속 제국> 저자들은 제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설정해 가는 역사적 여정을 되밟아간다. 제국들은 생존을 위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단순히 ‘제국적 정체성’을 구성원들에게 각인하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국 통치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증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치사상가들이 고대부터 ‘제국은 무엇인가?’, ‘제국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고뇌했던 계기이기도 하다. 8인 저자들의 연구를 모은 이 책은 1부 <고중세 정치사상과 제국>에서는 아테네, 로마 및 중세제국에 대해, 2부 <근대 정치사상과 제국>에서는 신성로마제국, 근대 프랑스, 대영제국과 미국의 ‘제국적 정체성’에 대한 고찰을 정리해 놓았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을까. 제1부 1장 <플라톤 정치철학과 아테네 제국>을 통해 플라톤의 해답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아테네 제국은 페르시아를 상대로 승리한 후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이때 패권을 차지한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었을까? 철학자 플라톤에게는 우려스럽게도 아테네 시민들은 제국의 패권을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따라 약육강식, 즉 힘의 논리로 파악하고 있었다. 권력만을 좇는 아테네 제국이 타락과 쇠퇴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은 플라톤에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담은 대화편에서 플라톤이 소망했던 아테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메넥세노스>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절제된 제국’으로서 아테네의 모습을 그린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싸운 진정한 이유는 그리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며, 아테네는 자유 수호의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세속적 패권만을 추구한다면 제국은 필히 타락할 것이기에 공동체 유지를 위한 일상적 현업이 철학적 덕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했다. “철학자와 비(非)철학자의 공존”으로 대표되는 플라톤의 제언은 패권 유지라는 현실주의와 철학적 이상주의 간의 간극을 극복할 균형점을 제시한 것으로, 제국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한 현자의 충고였다.
제2부 6장 <보편적 인권과 제국>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를 추구한 프랑스의 공화주의가 식민주의를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논의한다. 겉보기에 공화주의와 식민주의는 매우 이질적으로 비치지만, 프랑스의 노예제 폐지를 이끈 쇨세르는 '공화주의적 식민주의'라는 절묘한 조합으로 식민정책을 개진한다. 프랑스 노예제 폐지 운동을 주도한 그는 프랑스 대혁명 이념을 평생 열렬히 지지한 공화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제국주의 식민정책을 어떻게 설명한 것일까.
쇨세르의 공화주의적 식민주의의 핵심은 바로 식민지 동화 정책이었다. 식민지 또한 ‘불가분한 공화국’의 일부로서 식민지 주민들은 본국 프랑스인처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식민지 동화주의는 결국 서구 중심적 문명화론에 근거하였고 식민지인들을 ‘해방’해야 할 열등한 집단으로 보는 ‘공화주의적 인종주의’라는 모순성이 내재했다. 결국 “보편적 시민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그 보편주의를 통해 열등한 집단을 다시 구분해 내는(p.244)” 과정은 당대 프랑스 제국주의 정책이 공화주의 이념으로써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역설을 드러낸다.
제국은 통치의 지향성을 제시하고 정당화하는 작업을 지속해야만 한다. 고대 아테네 소피스트들은 자연법적 약육강식 논리로, 플라톤은 ‘자유제국’ 주장을 통해 각기 다른 제국의 지향성을 논파했고, 쇨세르는 공화주의적 식민주의를 제시했다. 본 서평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세의 신권 대 황권의 대결, 미국의 고립주의 대 국제주의 논쟁 또한 올바른 ‘제국적 정체성’에 관한 논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사상사 속 제국>은 단순 역사 교양서가 아니다. 철학, 종교, 사회, 정치를 아울러 각 시대 제국의 특정한 단면을 구체적으로 탐색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자연스레 정치사상사를 개괄적으로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인들의 사상과 욕망이 제국에 집약되어 나타났음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역사는 인류의 자화상이자 거울임을 고려할 때 현대 국제사회 정세를 논함에 있어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