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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데미안을 처음 읽은 것은 군대에서 였다. 벌써 15년 전이다.
그 당시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지금도 그당시 읽은 내용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내가 받아들일 소양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읽었으나, 읽지 않은 것이었으리라.
나는 올 해, 이 소설을 두번 읽었다.
굳이 그 느낌들을 장황하게 말하지 않으리라.
다만, 책의 일부를 이곳에 옮기고자 한다.
--------------------------------- "싱클레어, 뭔가 이상한 점이 있어.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를 읽어 봐. 그리고 혀로 그 맛을 음미해 봐.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두 명의 도둑에 관한 이야기 말이야. 언덕 위엔 세 개의 십자가가 웅장하게 서 있어. 그런데 이 간사한 도둑 이야기는 너무 감성적이고 종교적이지 않아? 누가 봐도 죄인이고 수치스러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이제 와서 회개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짓을 하고 있어. 무덤을 바로 앞에 두고서 그 따위 회개가 무슨 소용이 있지? 그런 일이 가능해? 그건 선교 목적을 갖고 감상적으로 떠들어 대는 달콤한 거짓말에 불과해. 만약 나한테 두 도둑 가운데 한 명을 친구로 택하라고 한다면, 적어도 난 신뢰가 있는 상대를 선택할 거야. 눈물을 짜며 징징거리는 개종자를 선택하진 않을 거야. 당연히 다른 도둑을 선택할 거야. 그는 사나이답고 개성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그의 처지에선 아름다운 유혹일 뿐이었던 회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지.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충실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동안 꽉 잡아 온 악마의 손을 비겁하게 놓지 않았어. 그는 내세울 만한 개성이 있어. 특별한 사람들은 대개 성서 속에서는 손해를 보지. 아마 그도 카인의 후예일 거야, 그렇지 않니?" 나는 깜짝 놀랐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야기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는 상상력이라고는 하나 찾을 수 없고 개성도 없이 그저 듣고 읽기만 했다는 걸 알았다. 데미안의 이 새로운 견해는 운명적으로 들렸다. 그것은 내가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관념을 뿌리째 흔들었다.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내가 가장 신성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 전부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한마디 하기도 전에 그 의견에 내가 반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네 생각은 이미 알고 있어." 그는 체념하듯이 말했다. "그건 한갓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해.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이 종교가 가진 결함이 이야기에 잘 나타나 있어. 구약이나 신약에서 유일신의 모습은 아주 완벽하고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어. 하지만 그것이 신을 나타내는 본래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해. 신이란 선하고 고결하고 아버지처럼 아름답지만 높은, 감상적인 존재야. 그것은 아주 당연해! 하지만 세상은 다른 세계로도 이루어져 있어. 이 다른 세계를 악마적인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의 절반인 다른 부분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고 있는 거야. 신은 모든 생명을 근본적으로 찬양하는데 그렇다면 생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성적인 것을 전부 묵살하거나 악마적인 것이나 죄로 여겨 단죄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나는 사람들이 신을 숭배하는 것에는 반대 하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를 인정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한 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반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를 인정해야 해. 우리는 신께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해야 해. 그래야 옳다고 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묵살하지 않도록 악마까지도 품어 내는 그런 신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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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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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젠가 내게 '도덕적이지 않아서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소.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오. 하지만 당신 자신이 바로 그 도덕가가 되어서는 안 되오!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진 마시오. 가령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면 타조가 되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오. 당신은 번번이 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리시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 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를, 그들의 마음에 드는지를 맨 먼저 묻지 마시오! 그런 물음이 사람을 망치는 거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안전하게 인도로 걸으면서 화석이 되고 마는 거요. 이봐요,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요. 그는 신인 동시에 악마지요. 그는 자신의 내부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소. 아브락사스는 당신의 생각이나 꿈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진 않을 것이오. 그것을 결코 잊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흠잡을 데 없이 모범적인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리면 그는 당신을 버릴 것이오. 당신을 버리고는 자기의 사상을 요리하기 위한 새로운 그릇을 찾아가고 말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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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 놀라 그의 말에 반박했다. "하지만 마음에 떠오르는 일을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닐 텐데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니까요." 그는 내게 다가섰다. "형편에 따라서는 그것도 허용될 수 있소. 대개는 착각에 불과하지만, 내 말 역시 당신의 뇌리에 떠오르는 일이라고 무엇이든지 간단하게 해치워 버리라는 건 아니오.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마음에 떠오른 그 자체의 좋은 의의를 가진 어떤 일을 배척한다든가, 그것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그것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신 엄숙한 생각으로 와인을 마시며 희생의 비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거지요. 물론 그런 행위를 하지 않고서도 자기의 충동과 유혹을 존경과 사랑으로 취급할 수도 있을 거요. 그것들은 자기의 뜻을 나타내오. 그것들은 다 뜻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싱클레어, 혹시 당신에게 정말로 미친 생각이나 죄를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혹시 당신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진다거나 얼토당토않은 추잡한 일을 저지르고 싶어지면, 잠깐 동안이라도 아브락사스가 당신의 내부에서 그렇게 공상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당신이 죽이고 싶은 어떤 사람은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의 형상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인가를 미워하는 것이오.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를 흥분시키지는 못하는 법이니까 말이오!" .... "우리가 보는 사물이란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오. 우리가 우리의 내부에 갖고 있는 것 이외의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살고 있지요. 그들은 단지 외부의 형상만을 현실이라 여기고 자신의 내부에 들어 있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세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는 거요. 그렇게 한다면 행복할 수는 있을 거요. 내가 만일 일단 다른 길을 발견한다면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달려가지는 않을 거요. 싱클레어, 대다수가 가는 길은 편하지만 우리들의 길은 힘든 거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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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 주일 후 나는 H 대학에 입학했다. 만사가 다 나를 실망시켰다. 내가 수강한 철학사 강의는 공부하는 학생들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허무하고 기계적이었다. 모든 것은 너무나도 판에 박은 듯이 일정했고, 서로들 똑같이 행동하고 소년티를 못 벗은 얼굴에 나타나는 과장된 쾌활함은 너무나 암담하고 공허하여 구입한 완제품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자유로웠다. 온종일을 나를 위해서 바치면서 교외의 낡은 집에서 조용하고 안락하게 지냈다. 내 책상 위에는 두서너 권의 니체가 놓여 있었다. 그와 더불어 살고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끼며 그를 그토록 쉴 새 없이 몰아 댄 숙명을 느끼며 그와 더불어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차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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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란 아름다운 것이지만,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보이는 이러한 식으로 번창하는 것은 전혀 연대가 아니야. 연대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알게 됨으로써 새롭게 탄생된 것인데, 한참동안 세계를 변형시킬 수 있는 거야. 지금 연대로 보이는 것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지. 인간들은 서로가 두렵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도망치고 있어, 신사는 신사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학자는 학자끼리 말이야! 그런데 왜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람은 흔히들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두려움을 느끼지. 그들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내부의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품은자들의 공동체라니!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 법칙이 더 이상 오늘날을 살아가는 데 적당하지 않다는 것과 자기들이 좇아서 살아가고 있는 법칙이 낡은 방식이고, 그들의 종교, 그들의 도덕, 이 모두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 거야. 유럽은 수백 년간, 아니 그 이상의 시간 동안 그저 연구만 하고 공장만 세우고 있었거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몇 그램의 화약이 필요한지는 정확히 알고 있지만 신에게 기도를 드릴 줄도, 한 시간만이라도 만족할 줄도 전혀 모르는 거야. 학생 주점 같은 곳을 한번 들여다보렴! 혹은 부자들이 드나드는 오락장이라도! 절망적이야! 싱클레어, 어디서도 진정한 명랑함이란 없어. 그렇듯 불안에 가득 차서 모여든 사람들은 더욱 겁을 먹고 악의에 차서 아무도 남을 믿으려 들지 않는거야. 그들은 이상이 아닌 이상에 매달려서는 새로운 이상을 세우는 모든 사람에게 돌멩이를 던져 대는 거야. 싸움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느껴. 그것이 올 거야. 머지않아 틀림없이 올 거야! 물론 그것이 세계를 '개선'하지는 못하겠지. 노동자가 공장주를 때려죽이거나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총질을 한다 해도 단지 소유주만 바뀔 뿐이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게 헛된 일이라는 건 아냐. 오늘날의 이상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셈이 될 테고, 석기시대의 신들을 제거해 줄 거니까. 지금 이대로의 이 세계는 바야흐로 죽어 가고 있어. 이 세계는 멸망하고 있으며 또 결국에 멸망하고 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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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의 표면에 거대한 변혁이 일어나서 수생 동물을 육지로, 육상 동물을 물속으로 밀어 넣었을 때, 그런 새롭고도 전대미문의 일을 수행하고 새로운 적응력을 만들어 자신들의 종족을 구하는 운명을 준비했던 표본들이 있었어. 그것이 그 이전에 자신의 종족 가운데서 보수적이고 보존적인 성향을 가졌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기이한 별종이며 혁명적이었는지를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그들은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종족을 구할 수 있었던 거야. 우린 그 점을 잘 알 수 있지. 그래서 우리는 준비를 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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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우연히' 발견되고, '우연히' 시작되는 것은 없다. 사람이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루어진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얽매 오더라도,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집중해야 한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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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을 1919년 썼다.
2013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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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왜 이 책을 보았는가? 고민을 많을 때 혹은 복잡한 심리상태에 직면했을 때 나는 고전을 읽는다. 고전을 읽으면 복잡한 심리상태와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책에서의 감정이입이다. 데미안의 경우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당시에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엄창난 심리적인 방황과 시련의 상태를 섬세할 정도로 잘 다룬다. 만약에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책에 빨려들 정도로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전을 할려면 언제나 자신이라는 세계를 깨고 창조해나가야 한다. 데미안은 그러한 과정을 너무나도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나 역시 힘든 상황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순간 내 자신의 벽을 내 스스로가 깨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른 독자 역시 그러한 자신감이 생겼으면 좋겠다.
02.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사람들?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타자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갈등이 있는 청소년이나 청년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나 심신이 버거울 정도로 힘든 사람들
03. 독서 포인트! 주인공 싱클레어가 어떤 심리적인 갈등을 겪게 되는지 또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더불어 주변인물들의 대사를 음미하면서 읽어보면 더욱 좋을 듯 하다.
04. 만약에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더불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을 하듯 스스로가 내면 안에 갇혀 있었던 자신을 끄집어 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 책쟁이의 사색 ]
내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 본문중에서 -
한 사람이 스스로가 성장하려면 우리는 의존하고 있던 것들에서 독립해야 한다. 따뜻한 가족, 부모님의 품, 의지가 되는 친구 사랑하는 연인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면적인 탐색과 더불어 비판적인 사고 나아가 스스로가 고민에 답을 찾기 위해 치열해야 한다. 내 안의 자아가 어떻게 해야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지 우리는 훈련이 부족하다.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데미안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주인공 싱클레어 같은 친구들이 세상에 참으로 많다. 어떤 친구는 투쟁 끝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어떤 친구는 투쟁 하다 지쳐 포기해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전자의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전자의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내면적인 탐색을 통해서 자신 안에 있는 껍질을 깨뜨리고자 스스로가 사력을 다해야 한다. 고민을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결코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다른 것으로 대체될 뿐이다. 겁에 길려 평생 자아를 세상 밖으로 꺼내 보지도 못하느냐, 당당히 세상과 마주하느냐는 우리들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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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중 하나. 읽어야지 하면서 어려울꺼라는 편견에 이제서야 읽게 된책. 읽으며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단순하고, 웃긴생각들이였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지. 싶었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밝은세상. 어두운세상.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 스스로 뭔가를 갈구하던 시기. 그래서 어두어지던 시기. 무엇인가 막 나가던 내게 제동을 걸어주던 누군가. 또는 무언가. 나에대한 고민.
등. 헤르만 헤세는 주인공 싱클레어를 통해 유년시절과 청소년기. 그렇게 성년을 맞이하는 한사람의 일생을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개입하여 그리고 있었다. "데미안"이라는 책 제목이여서, 데미안이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싱클레어라는 생각치도 못했던 인물이 주인공이여서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마지막을 보니, 결국 데미안은 나 자신이였다.
우리의 대다수는 부모님 밑에서 밝음을 보고 자란다. 그게 밝음인지 알았던 시기는 결국 내가 뭔가 어둠을 알았던 시기가 아닐까. 누군가의 말을 통해, 또는 TV를 통해, 아니면 나의 경험을 통해, 나의 일탈을 통해.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기를 찾고 그렇게 벗어나는듯하다. 다시 번민과 일탈의 시간을 거치는 시기 누군가는 강하게, 누군가는 생각으로만, 등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비슷한 시기를거쳐. 현실을 받아들이고, 점점 타협?해가는 성인무렵.
내가 이해하는 데미안은 그러하였다. 돌이켜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네 모두 그렇게 성년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어렸을때, 일탈이라는 시기를 겪으며 부조리한것들을 바꿀수 있을것이라 믿었지만, 결국 결과는 현실과의 타협이 아닐까. 하지만 문득문득 부조리함에 화가 났다가 현실에 타협하고, 하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잘 이해한건지, 그저 데미안에 대한 내생각 뿐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미안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썼던 제 1차 세계 대전 무렵의 젊은이들이 가졌던 생각과 어떻게 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시 고전은 명작이다. 지루함이 아니라 많은 생각이 들어 눈을 뗄수 없는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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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평점 : ★★★★★ [데미안]은 정말 어마어마한 걸작,
‘어른이 되어서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필독서’ 목록에 무조건 포함되어야 한다. 정체성을 갖지 못한 10대는 물론, 흔들리는 20대, 치열한 30대, 이제는 불혹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현대의 40대까지, 데미안이 알려주는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줄거리 요약
싱클레어는
부유하고 독실한 집안에서 자란다. 그의 단어를 빌리자면 ‘밝은 세계’ 즉, 모든 것이 알맞고 정갈하고 올바른 세계에서 자라던 어린 싱클레어는 또래 아이의 괴롭힘으로 ‘어둠의
세계’를 태어나 처음으로 접한다.
이 두 세계의 존재는 어린 싱클레어를 그림자처럼 쫓으며 괴롭히지만, 그의 앞에 ‘데미안’이 나타나며 두 세계로부터 오는 괴로움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성장기 내내 ‘데미안’ 또는 ‘데미안’을 대체하는 것들과 함께 삶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가며, 삶의 의미에
대해 깨닫는다.
나의 해석
작품은 어린
‘싱클레어’(주인공)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 삶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간 삶에 대한 고찰’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알아야 하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의미한다.
1. 자아 탐구의 필요성
주인공
싱클레어가 성장하는 동안 그는 ‘데미안’과, ‘데미안’을 대체하기 위한 사람들을 만난다.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해나간다.
소설
속에서는 깨달음을 주는 존재가 싱클레어의 ‘외부인’들로 표현되었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싱클레어의 내면에서 비롯된 또 다른 ‘자아’를
표현한다.
결국에는
자아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며,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내면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자아에서 비롯된다”
2. 사유의 틀을 깨야 한다. ‘데미안’은 모두가 ‘나쁘다’라고
규정하는 ‘카인’을 다르게 규정한다. (카인과 아벨) 예수의 세계에 붙잡혀 개종을 한 ‘도둑’을 배신자라 말한다. 신성하게 여겨지는 오롯하고 유일한종교 자체를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어떤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에 대한 배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유일 뿐이다. 단지, 현존하는 모든 것들에 의문을 품고, 그것을 당연하다 여겨져 온 보편적 시각이 아닌 ‘새로운’, 즉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좀 더 나은 것을 위해서는 보편적인 것들 것 의문을 품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3. ‘수용’
싱클레어가
마침내 맞이한 평화 속의 삶에서는 모두가 다른
삶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더라도 이교도가 아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모두 다르다. 그들은 고찰을 통해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가치만을 공유할 뿐, 새로운 ‘대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화합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것은 평화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유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4. 마주하는 힘
결국 소설은
‘전쟁’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로 결론을 가져간다.
싱클레어의
정신적 멘토인 ‘에바부인’은 전쟁에 당황스러워하는 싱클레어에게
알려준다. ‘전쟁에 나서는 이들은 사력을 다해 싸워낸다.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과 동일해서가 아니다. 또한 그것들을 이해해서도 아니다. 그저 새로운 것이라는 목표를 위한
것이다.’
현실 속에서는
내면의 고찰을 통한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끊임없는
고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더라도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 때 우리는 ‘이해되지 않음’을 이유로 상황을 외면하고, 도망가고, 혹은 깨달음이 적용되지 않는 ‘사소한’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결국 궁극적인 무엇을 위해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도 책임과 소임을 다 해야한다. 마치 전쟁터
군인처럼 ‘사력’을 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자아를 통해 얻은 성찰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수용’하는 힘을 가져야 가능하다.
비판적 사고나, 수용에 대해서는 평소의 생각을 강화할 수 있었고, 자아탐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마주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나에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좋게 말하면 사색,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정신 놀음’에 빠진 나에게 일침이었다. 사색 외의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던 태도가 발가벗겨져 버렸다. 참 커다란 책이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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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소년의 성장기록이다. 물론 진짜 기록은 아니지만, 소년의 심리가 마치 소년기의 나처럼 비슷하게 느껴졌다. 책 속 소년이 더 생각이 깊은 것 같았지만(;;).
치열하게 산다는 것은 어렵다. 그것만 생각하며 달려야 하고 쉬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간만에 나처럼 느껴지는 좋은 책을 읽었다. 더불어 가격은 반값... 만 원 정도로 이러한 좋은 책을 하나 더 살 수 있다니 기뻐진다. 읽는 즐거움, 현실적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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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책의 한 구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아브라삭스 이 구절 하나로 데미안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쟁과 역설을 깨고 나오려는 새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면의 우울이든 혹은 사회의 관습이든 부모님의 간섭이든 그 모든것은 하나의 껍질입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껍질을 깨고 나오려하지만 껍질은 단단하고 쉽게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껍질을 깨고 나와야만 알에서 새가 나올 수 있고 세상 밖을 볼 수 있습니다. 데미안을 읽고 다시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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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떄부터 엄마가 읽으라고 하신 책이 딱 두권 생각나는데 하나가 어린왕자, 그리고 이 책 데미안이다. 그때야 물론 읽으라니 읽어봤다만 고전치고 재밌다 정도의 감상 뿐이었고 고등학교 때 쯤 다시 읽어서 뭔가 좀 알 것 같다는 감상을 받기는 했다만 아직도 나는 이 책이 어렵다. 헤르만 헤세 저서로는 개인적으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더 재밌게 읽었는데, 두 권 읽고 평을 하기도 참 뭐하지만 대체로 나름의 이상은 가지고 있되 그 길에서 갈팡질팡 헤메고 고민하고 자책하는 여리거나 온전치 못한 주인공들이 진짜 공감되서 좋다. 다만 이 책 데미안은 나에게 이런 친구가 없어선지 그리고 솔직히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선지 아직 100퍼센트 이해되고 공감가는 책은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자랄지 이 책으로 척도를 좀 삼고 싶어서 아예 샀다. 영문판을 읽을지는 의문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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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좋다. 개인적으로 고전읽기 목표를 시작하며 가장먼저 다시 읽고 싶었던 책이 데미안 이었다. 그것도 친절하게 한글판+영문판으로 함께 구성되어 있어서 매우 좋았다. 이책의 줄거리를 먼저 보면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열 살 싱클레어는 따스한 가정에서 자라며 ‘선의 세계’만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소년 프란츠 크로머에게 사과를 훔쳤다는 허풍을 떨면서 ‘악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신비한 소년 데미안을 만나고, 그가 들려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진실을 깨닫는다. 싱클레어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데미안과 헤어진다. 다시 어둠의 세계에 빠지게 된 그는 위태롭게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데미안의 편지를 받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며 자신만의 내면을 구축하는 방법을 깨우친다. 내면탐구 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하여 이처럼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끌어 갈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또한 한번더 고전의 매력을 느끼게 될수 있었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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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학창 시절에 '데미안'을 접했다면 조금 더 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스물여덟이 지난 지금에서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계문학을 읽어오면서 느낀 점은 중고등학교시절에 이러한 책들을 읽었다면 분명 더 나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자아성찰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데미안'을 통해서 주인공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성장해 가고 세상을 인식해 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순간의 거짓말로인해 온전히 자기자신만의 문제를 접하게 되고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논쟁을 벌이며 타인의 의견에 의문을 품으면서 비판적인 사고를 넓혀가면서 내면적인 성장을 이뤄간다. 하지만 자아성찰이 내면적인것으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현실과 연결점이 있을때 더욱 제대로 된 자아성장을 추구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데미안'같은 이러한 책은 읽찍 접할수록 인생에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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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집었다, 읽었다, 덮었다, 내려놓았다, 다시 집어 읽기를 수차례 반복 했던 책.
지금도 읽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그럴 이유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
이번에도 꽤 오래 걸렸다.
6월 중순 제주도여행을 떠나며 펴보았던게 돌아오고도 한참지난 8월 말이 되어서야 덮을 수 있었다.
한번 완독을 했으니 이제 민음사나 문학동네 번역본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첫 장인 '두 세계 '는 마치 나의 유년시절을 보는 듯한 심정으로 싱클레어에게 깊이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
카인과 아벨, 야곱,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 이런 종교언어들이 등장할 때엔 글씨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찾아보아도, 기독교인 친구에게 물어보아도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어 이해하지 못한채로 책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함정은 다 읽고나니 뒤에 하나하나 보충 설명이 되어 있었다.)
왜 고전을 읽으라하는지 점점 느껴진다.
좋은 친구가 되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저마다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뿐이며 아주 특별한, 어떤 상황에서도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로지 한 번 그곳에서 서로 교차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것이다. 누구 안에서든 정신은 형체가 되고, 누구 안에서든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안에서든 하나의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 정말 위로가 되었던 데미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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