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 건우, 지원, 은수를 비롯한 사람들은 누구를 믿어야할지 갈팡질팡하게 된다. 지원은 그래도 사랑하는 은수를 믿고 싶고 은수 역시 지원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아내 J를 놓아주고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오기를 갈망하게 된다. 허나 지원과 은수... 두 사람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으니 이제는 생명의 위협 앞에 놓여 있게 되는데....
건우 역시 죽음의 위협에서 간신히 탈출하지만 그래도 J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산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 자체에 무심하게 대처했던 건우는 이제는 오랜 연인이였던 여자와 이별을 결심한다. 허나 상황은 의외로 이상하게 이끌려 가게 된다. 전 연인과의 이별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라 돌아 온 아내의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게 된 남자의 복수를 불러올 줄 누구 알았겠는가? J와 건우는 전 연인의 남편에 의해 죽음 앞에 놓이게 되지만 이 때 J를 윗층에 사는 남자가 제이를 구출해 준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의문의 두 남자.... 그들은 죽은 건우의 주머니에 든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주인공 J를 둘러 싼 사람들이 죽음을 맞게 되지만 정작 J는 건우의 죽음 밖에 목격하지 못하고 그 죽음마저도 무신경하게 바라보고 남편 은수와 지원은 자신을 배신하고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생각하는 어이없는 상황.... 여기에 제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사랑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에 휩싸인 의사는 그녀가 김현우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친구와 함께 10년 전에 발견한 사실을 밝히고자 하지만 정작 친구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말을 하는데....
제이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한 감정 때문에 그녀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자 결심했던 의사지만 그가 이사하려던 곳은 제이의 아파트... 제이가 떠난 그 곳은 그에게는 더 이상의 꿈이나 이상이 존재하지 않은 무의미한 공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기에 필요치 않는다. 다시 마주친 제이와 의사.. 뜨거운 열정 뒤에 두사람은 자신들의 손으로....
건우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편지 내용이나 알고 있었지만 방치되고 귀찮아서 외면했던 것, 의사와 그의 친구 민영의 대화를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사라져도 모든 진실을 묻어두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사가 간호사에게 강조한 것처럼....
사실 진실을 들여다 볼수록 불편하다. 제이란 인물이 결국 난파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진실을 찾을 수 없는 현실 속 모습에 대한 염증과 회의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대중적인 영화보다 예술성을 담은 영화를 찍어왔다는 김응수 감독님... 첫 장편소설 '제이' 역시 조만간 영화로 만나면 책에서보다는 훨씬 더 재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후배를 위해 눈물을 글썽인다. <슈퍼스타K>의 오디션 나온 청년들도 흐느끼고, <힐링캠프>를 보면 울지 않는 출연자를 거의 찾기가 어렵다. 때로는 뭐 그리 슬픈지 묻고 싶다. 뉴스가 객관성이라는 표피 아래 어떤 비극을 건조하게 보도해서일까. 뉴스에서 용산 철거민이나 쌍용차 해고자를 보고 우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울기보다는 연예인에게 동일시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한 정치인이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눈물짓는다고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변할까? 정치인은 서민을 위해 울어주고, 기업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데 그 무수한 삶은 대체 왜 이럴까. 김응수는 대신해 울어주지 않는다.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정면으로 대면하고 실토하라고 외친다. <제이>는 미스터리 소설의 서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미스터리에서 핍진성은 인물들의 긴 대화 사이에서 막혀 버린다는 인상을 준다. 내러티브에서 <제이>를 지배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이다. J는 혁명가 김현우(장준하를 연상하게 하는)의 딸이다.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 알 수 없는 미행 등 아버지와 관련된 미스터리는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거나 애초에 공란인 것처럼 비어있다. <제이>의 서스펜스는 진실이 드러나는 ‘미덕’을 위해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대중들은 그 명징한 진실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 외면은 폭동이 갑자기 혁명이 되고, 한 대통령이 개새끼에서 영웅이 되는 대중의 변덕이 증명한다. <제이>가 독자에게 고발하는 것은 대중에게 내재한 비상식적인 천박함이다. <제이>에서 실제적인 사건은 애초에 존재했던 것이므로, 이 사건을 둘러싼 발화 – 김응수의 목소리가 이 소설에서 중요한 핵심이 된다. 그 목소리의 핵심에 있는 것은 의사와 J와의 관계다. <제이>의 전술은 독자가 J처럼 정신과 소파에 앉아서 ‘이익’이라는 핑계로 합리화하는 일상화된 악을 실토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대화가 잔잔하거나 메마른 일반적인 강의인 것만은 아니다. 그 입속에는 뜨거운 심장이 느껴진다. <제이>에서 미스터리 서사의 굴절은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남편 은수와 친구 지원과 같은 J의 조력자 적 인물의 퇴장은 부정으로 이뤄진다. 초반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J의 남편 은수와 소설가 친구 지원의 죽음은 J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두 사람은 J의 말을 빌려 은수는 삶에 특별한 열정도 없는 사람으로, 지원은 비상식을 상식으로 위장시켜서 거짓으로 대중에게 유혹시키는 드라마 작가로 격하된다. 제이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애도도 갖지 않고(애초에 죽음을 알 수 없었기에), 청량한 용기와 함께 과감히 그를 부정해 버린다. 기존의 J는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 시쳇말로 강남 좌파의 군상을 저버리고 미성숙하지만 소년의 모습을 가진 건우, 앎과 윤리적 실천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의사를 만남으로 통해 비로소 ‘망상을 숭상하는 여자의 깃발’을 높이 들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건우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J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친구 지원의 편지는 J에게 정부의 편지라고 매도당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건우 친구가 건우에게 쓴 편지를 읽혀주는 방식으로 화자가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 편지는 자신만의 진실만으로 질식하지 않고, 빛나는 용기를 가지려고 하는 친구와 건우의 이야기였다. <제이>는 장르물의 문법을 비틀어 빌렸지만, 목표물은 명확하다. J와 의사의 대화는 치료가 아니다. 다시 말해 요즘 얄팍하게 유행하는 ‘힐링’이 아니다. 사람 자체가 아픈 게 아니라, 일상화된 파렴치함을 숭상하는 세상이,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인 의사는 김현우에 대한 ‘진실’을 20대인 순진한 간호사에게 전해준다. 어떤 선생들은 젊음은 무지하다고 말하겠지만, <제이>는 차라리 신문의 칼럼보다 젊은 애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활보하는 모습에 나라의 미래를 안심하다고 언급한 소설가의 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제이>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지리멸렬하게 살롱에서 가로수 길의 카페에서 모니터 안에서 말로만 진보의 정의나 보수의 진실을 말하는 짓거리는 그만하고, 진정한 용기를 갖고 당신이 되어서 이 분열적인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설사 그것이 부러진 창이어도 괜찮다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