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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가 80일을 넘겼다. 2014년 우산혁명의 79일의 기록을 깬 최장기 시위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홍콩 시위 사상 처음으로 경찰이 시민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캐리 람 행정장관은 계엄령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홍콩의 갈등은 평화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와중에 주목할만한 신간이 나왔다. 경향신문 사진기자 김창길이 쓴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9년 중국 톈안먼 광장에 있던 ‘탱크맨과 람보’의 사연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1989년 6월,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는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바로 그때 한 남자가 혈혈단신으로 계엄군의 탱크를 막아선다. 탱크가 방향을 바꾸면 남자도 다시 탱크 전면으로 달려들어 탱크를 막았다.
탱크와 남자의 대결은 서너 차례 반복됐다. 결국 탱크는 톈안먼 광장 한복판에 멈춰서고 말았다. 자신의 몸뚱이를 내던진 한 남자의 기개가 무자비한 살육 기계인 탱크를 이겨낸 것이다. 이 극적인 찰나의 순간은 ‘탱크맨’이라는 제목의 사진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탱크맨’ 사진에 얽힌 일화는 더 극적이다. 탱크맨을 찍은 AP통신 사진기자 제프 위드너는 시위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당시 톈안문 광장에는 보도금지령을 내린 중국 공안이 외신기자의 카메라를 빼앗는다는 소문이 돌았던 터. 그는 공안을 피해 투숙객으로 가장, 베이징 호텔에 몸을 숨긴다. 마침 필름이 다 떨어진 제프에게 람보 티셔츠를 입은 미국인 대학생 커크가 나타난다. 커크는 제프에게 필름을 제공하고 톈안먼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옥상으로 안내한다. 바로 그때 톈안먼 광장에 탱크맨이 나타나 대학생과 시민들을 살육했던 계엄군의 탱크를 막아선 것이다. 이처럼 제프 위드너의 ‘탱크맨’ 특종은 ‘람보’ 커크의 공이 컸다. 이 책의 작가 김창길은 ‘람보’를 작은 영웅으로 일컫는다.
“톈안먼에는 작은 영웅이 있었다. 베이징호텔에 있던 대학생 람보도 작은 영웅이었다. 그의 본분은 학업이다. 호텔에 안전하게 머물며 위험한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는 호텔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사진기자를 돕기로 결정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필름을 배달한 이는 사진기자가 아니라 대학생 람보였다.” 람보가 제프에게 사진을 찍게 만든 영웅이라면, 인민을 짓밟으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탱크맨의 목숨을 살린 탱크 조종사도 또 다른 작은 영웅이다. 탱크 조종사는 단지 한 명의 생명만 살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저항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김창길은 람보와 탱크 조종사, 두 영웅의 행동에는 사유(생각)이 뒷받침됐다고 분석한다. “악은 평범한 모습이다. 폭정을 멈추게 할 방법은 그 평범함에 대해 곱씹어보는 것이었다. 계엄군이었던 탱크 조종사도 한 사내의 평범한 생명을 생각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게 큰 능력도, 그다지 큰일도 아니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저항의 출발점이다. 결과는 대단했다.” 부디 홍콩 당국은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톈안먼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홍콩에는 조슈아 웡을 위시한 200만 명의 탱크맨이 평화?이성?비폭력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에는 ‘탱크와 람보맨’의 일화 외에도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에 얽힌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시위의 현장에는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가 있었다. 그가 뷰파인더로 바라 본 한국은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공포사회’였다. “월남의 전쟁터에서의 공포감은 삶과 죽음의 한계상황에서 오는 것임에 반해, 한국의 그것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고통과도 같은 것으로, 훨씬 무겁고 음산하다. 불가항력의 힘으로 마치 가슴을 억누르는 듯한 공포감이다. 그러나 전쟁터도 아닌 한국에서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다방에서 아는 사람과 얘기를 나눌 때에도 언제나 누군가가 대화의 내용을 엿듣고 있는 듯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한일협정문제로 정부와 국민이 극한 대립을 이루고 있는 상황은 외국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매력적인 소재이다. 그러나 그는 하필 그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본 사람이라 현장에서 김태명이란 가명을 썼다. 그런 부담감이 그의 예술혼을 자극했을까. ‘무언의 데모’라는 명작을 낳는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그의 사진집 <촬영금지>에서 ‘무언의 데모’ 사진 아래 다음과 같은 캡션을 달았다.
“사진은 서울대생들로, 현재는 대부분 재벌기업의 중견간부나 또는 고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진을 찍은 사람, 그것을 보는 사람 그리고 사진의 주인공들은 시간이 갈라놓은 거리를 지나왔다. 한일협정 반대투쟁의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런 이름들이 적혀 있다. 이명박, 이재오, 김덕룡, 손학규, 현승일…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세기의 성쇠와 부침은 획기적인 사건들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사진 몇 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 움베르토 에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