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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문학의 판도라 상자《열세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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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 모옌의 <열세걸음>의  첫장을 펼쳤을때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가 연상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혔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을 읽을 때의 느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수 많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혼몽처럼 피어나 읽는내내 몽환 속을 거니는 착각이 드는 그런 느낌. 모옌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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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 모옌의 <열세걸음>의  첫장을 펼쳤을때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가 연상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혔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을 읽을 때의 느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수 많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혼몽처럼 피어나 읽는내내 몽환 속을 거니는 착각이 드는 그런 느낌. 모옌의 판도라 상자를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인류 문명의 역사가 이야기와 함께 삶을 만들어왔듯이 모옌은 <열세걸음>에서 이야기와 역사가 융합된 스토리텔링 형식의 하이브리드 문학을 선보이고 있다.  러시아 민담중에  참새가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지는데 그 걸음을 볼 때마다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행운이 주어진다고 한다. 건강, 명성,아름다운 외모등 열 두가지 행운을 안겨주지만  열 세 번 째 걸음을 보게 되는 순간 앞서의 모든 행운이  곱절의 '악운'으로 바뀐다는 열세걸음의 민담을 바탕으로 분필을 씹어먹는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한 걸음의 시작이다. 

 

리교사 팡푸구이가 수업중에 교단에서 쓰러진다. 팡푸구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하였지만  교장은 팡푸구이를 과로사로 처리한다. 열악했던 물리교사들의 인권을 위해  한 개인의 죽음을 인도주의로 승화시킨 것이다. 팡푸구이는 평범한 교사에서  인민의 영웅이 되고 사회에 중년 교사들의 건강기금설립을 위한 운동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선구자가 된다. 살았지만 죽은 자로 장례식장 아름다운 세상시체 냉동실에 놓이게 된 그는 정신이 돌아오자 살아있는 자로 세상에  돌아가지만 그곳에서 그는 다시 죽어야만 하는 자가 된다.

 

너는 몹시 슬펐다.

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너는 동료 교사의 집 문을 두드렸다. 

 

팡푸구이와 벽 하나 사이의 이웃이자 같은 학교의 물리교사 장츠추에게는 시의 모범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로 일하는 아내 리위찬이 있다. 그러나, 늘 그녀에게서 나는 죽음의 냄새는 그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좁디좁은 집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름다운 장모가 부엌의 반을 차지하고 누워있고 아이 둘은 벽장에서 지내고 좁은 침대에 살며 늘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는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무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너무도 아름다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모가 늙어서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모습은 장츠추에게 어떤 인생의 무상함 같은 것이라, 장츠추는 언제나 장모를 풍류미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장모를 보며 장츠추도 대변이 새는 병을 앓고 있는데 아마도 장츠추의 이런 병은 아내를 거부하는 좋은 방어막이 되어준다. 어쩌면 모든 것에서 장츠추는 이미 삶의 모든 부분을 상실한 잉여인간이다. (1980년대 중국에서 교사는 사회적으로 반동분자의 기질로 분류되어 사회에서 '아홉번째 계급'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 장츠추는 당시 지식인 계층을 상징한다)

 

  그런 장츠추에게 아내이자 모범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은 장츠추에게는 벅찬 아내이다. 아내는 불의와 타협하는 일이 능했으며, 시체를 성형하여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전애인이였던 왕시장의 입안에서 금니를 빼서 팔고, 지방을 빼내 맹수의 먹이로 사육사에게 판다. 리위찬은 자신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멀리하는 장츠추를 대신해 자신에게서 냄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요구를 하는 모든 남자들을 품는다. 소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나면 '아름다운 세상'에 잠들길 소원하지만 그곳은 '인민의 영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례식장이다. 그곳에서는 리위찬이 최고의 권력자이며 혁명의 상징이자 공산주의 정신의 꽃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혁명의 간부들에게만 주어지는 죽음의 특권이기에  살아서도 지난한 삶을 면치못하는 인민들에게는 죽음도 녹록치가 않다.  

 

 다시 살아 돌아온 팡푸구이에게 리위찬은 장츠추로 성형하여 예전의 물리교사로 만들고 자신의 남편 장츠추에게는 장사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인민의 계급과 신임이 두터웠던 리위찬은 사회의 요구를 대변하여 이들을 개조시키는데 이들의 모든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첫 걸음이다. 

 

팡푸구이의 아내 투샤오잉은 러시아인의 피가 절반은 흐르는 혼열2세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사이가 좋았을 때는 이런 혼열이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서로 다른 노선으로 등을 돌리자 투샤오잉의 출신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게 된다. 사범대학의 우등생으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녀는 중국에서 토끼 가죽 벗기기 담당 일을 하고 있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 팡푸구이가 장츠추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자 투샤오잉은 옛날 속담처럼 자신을 시험하러 온 귀신이라 생각하고 쫓아 보낸다. 아내를 위해 장츠추의 얼굴을 하였던 팡푸구이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리위찬에게 예전의 얼굴로 돌려놓길 바라지만 ,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러시아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들킬까봐 늘 불안하였던 투샤오잉은 살아남기 위해 인민간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 예정된 비극의 수순을 밟아 간다.

 

이렇듯 이들이  한 발 한 발 디 딛는 발걸음은 러시아의 민담처럼 차근차근 예정된 비극적 파국으로 치닫는다. 중국의 지식층들의 불우한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소설의 배경은 중국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전이다. 마오쪄둥 시대에 지식인들을 반동계급이라 칭하여 변방으로 내몰았던 것처럼 한 칸짜리 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물리교사의 삶은 바로 중국 지식인들의 실제 모습이다. 서술자를 통해 보여주는 마오쩌둥에 대한 체제에 반발심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험지에 4인방의 이름을 쓰는 시험지, 계급사회에서 살아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인민들은 죽어서도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장례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으로서 중국의 이원적 체제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체제가 혼합된 사회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의 불안은 어느 쪽으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여 기형적인 삶의 형태로 변형되어 간다.  

 

 이들의 이야기 중간 중간 삽입된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이고 엽기적인 이야기들인데 바로 이런 중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보여주는 데에 탁월한 연상 작용을 한다.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삶의 본질에 파고들어 현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기묘묘한 이야기처럼 등장인물들 모두가 이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선이 없이 몽환적인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그 속에서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서사는 복잡한 미로를 헤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런 몽환의 느낌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고 있는 중국 현실속에서 인민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지난한 삶의 맛이다. 개인은 사라지고 인민의 존재만이 사회에서 가치가 있으며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돈을 버는 일(상업)이 더 중시되자 개인은 사라지고 사회체제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서 이들은 서서히 '개인'이라는 독립성과 주체성을 상실해간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나'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페르소나를 쓰게 된 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의 복잡한 시점처럼 '나'가 사라지고 모두  '너'나 '우리'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게 된다. 팡푸구이가 자신이 아닌 장츠추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장츠추가 도시의 떠돌이로 내몰리고  혁명의 꽃인 리위찬이 돈에 의해 타락해가는 모습이나  투샤오잉이 몸속에 흐르는 러시아의 피를 부정하고 중국 인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들은 하나같이 '나'라는 '자아'를  잃어버린 후 겪게 되는 비극의 몸부림들이다.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페르소나를 쓴 뒤의 삶은 모두 예정된 수순처럼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자아를 상실한 이들의 삶은 비단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비극을 보여주는 묘파이다.<열 세 걸음>은  기존에 접해 본 적이 없는 색다르고 독특한 느낌의 문학이었고 첫장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모옌의 판타스틱한 이야기들은 마치 인간에게 금지된 판도라 상자를 열어본 기분이다.  희망이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닫혀 버린 판도라상자 안의 온갖 불행들이 우리의 삶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딛고 있음을 본다.

 

혁명의 시대에는 선혈이 흐르다 못해 강물을 이루었기 때문에 눈물 따위는 아무 가치도 없었다.-p305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2.11.18. 신고 공감 12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열세 걸음』모옌 문학의 개성을 알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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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나 10월에, 노벨문학상 발표를 하는 세계 뉴스에 귀기울였지만, 역시 내가 기대하던 분이 안되고 중국의 작가 모옌에게 돌아갔다. '글로만 뜻을 표할 뿐 입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 '모옌'이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이다. 나는 이 작가가 생소했지만 예전에 보았던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의 원작자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그 책을 읽지 않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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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나 10월에, 노벨문학상 발표를 하는 세계 뉴스에 귀기울였지만, 역시 내가 기대하던 분이 안되고 중국의 작가 모옌에게 돌아갔다. '글로만 뜻을 표할 뿐 입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 '모옌'이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이다. 나는 이 작가가 생소했지만 예전에 보았던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의 원작자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그 책을 읽지 않고 영화로만 봤지만, 중국의 역사를 조금 알게된 작품이었다. 생소했던 작가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탔고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문학의 정수를 느끼고 싶었다.

 

 

처음 읽어본 모옌의 책은 독특했다. 이 작품의 번역가가 해설에서 말하기를 그의 작품은 중국 역사와 현실을 배경으로 역사의 환상, 현실과 상상을 결합시킨 기이하고 황당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이 책의 줄거리를 보자면, 중국의 8중학교에 다니는 물리교사가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발작을 하며 죽었다. 어이없이 죽은 그를 보며, 열악하게 살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교사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취지로 들고 일어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가 죽은게 아니었단다. 갑자기 눈을 떠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찾아간 아내에게는 귀신이라며 내쫓김을 당했다. 갈데가 없는 그는 할 수 없이 맞닿은 옆집, 장례미용사이며 같은 물리교사인 장츠추의 아내인 리위찬에게로 간다. 리위찬은 남편인 장츠추와 팡푸구이의 외모가 닮았다는 걸 알고 간단한 시술을 통해 팡푸구이를 장츠추인양 같은 옷을 입혀 중학교 물리교사로 보내고 남편인 장츠추에게는 100위안을 주면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줄거리지만 600페이지가 다 되는 책의 내용은 우리를 조금 혼란스럽게 만든다.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고, 장례미용사의 작업대에 누워있는 시체와의 관계된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과거로 우리를 안내하고, 과거속에서 리위찬이 만났던 사람 왕부시장을 추억하는 일이다. 또한 젊었을때 아름다웠던 엄마와의 관계에서부터 동물원 사육사와의 관계까지 그 연결고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장례미용사인 리위찬과 리위찬의 남편이자 중학교 물리교사인 장츠추와 죽었다 살아난 물리교사 팡푸구이, 팡푸구이의 아내인 투샤오잉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투샤오잉은 하얀 피부를 가진 러시아인으로 러시아과를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당의 결정에 따라 중학교의 토끼통조림 공장에서 토끼 가죽을 벗기는 일을 하고 있다. 각자의 이야기를 과거속에 자신이 꿈꿔왔던 일들을 환상적으로, 마치 현실이 아닌것처럼 말하는 소설이었다. 한바탕 꿈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은 한 걸음 부터 열세 걸음까지의 챕터로 되어있다.

나는 한 걸음부터 읽을때 왜 제목이 『열세 걸음』인지 의문스러웠었다.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무언인가. 쇠우리에서 끊임없이 분필가루를 씹어먹는 서술자가가 '나'로 '너'로, 다시 '너'와 '나'로 나오면서 우리에게 예전의 일을 알려주기도 하는 듯, 또한 직접 말하는 듯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왜 제목이 『열세 걸음』인지 책의 중후반부에 갔을때에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러시아의 아주 오래된 아름다운 전설을. 참새는 원래 두 발을 모아 종종 뛰는 짐승인데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걷는 걸 본 사람이 있다며 한 걸음부터 열두 걸음까지는 천운을 주지만, 열세 걸음을 걷는 걸 보는 순간 열두 걸음의 모든 천운이 악운이 되어버린다는 러시아의 민담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다. 때론 아주 현실적이며 때론 아주 환상적인 소설로 나타냈다.

 

 

작가는 중국 역사와 현실을 이처럼 환상적으로 풀어내는 작가였다.

어쩌면 황당하게까지 느껴지긴 했으나 작가는 책 속에서 중국의 현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실제 중국의 교사들이 이처럼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억압받는 중국인들에게 뭔가 한줄기 바람을 안겨주고 싶어서인지 억압받는 현실을 탈피하고자 사람들의 끊임없이 욕망하는 하는 주인공을 나타내는 글을 써낸 것 같다.

 

 

이 한 권으로 모옌의 문학을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문학의 개성을 강하게 느꼈다. 독특하면서도 환상적인 문학을 써내는 작가 모옌의 개성이 나타나 있는 글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12.03. 신고 공감 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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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긴 꿈 ‘열세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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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와 처음 만났다. 표지의 깡마른 남자의 뒤 태에 시선이 머무는데 무척 안쓰럽고 열세 걸음의 의미가 뭘까 궁금해진다. 내용은 좀 어리둥절하다. 이 책의 화자인 분필을 먹는 그가 누구인지 많이 헷갈렸다. 한 사람이 아니고 이 사람도 되고 저 사람도 되고 심지어 동물원의 동물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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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와 처음 만났다. 표지의 깡마른 남자의 뒤 태에 시선이 머무는데 무척 안쓰럽고 열세 걸음의 의미가 뭘까 궁금해진다. 내용은 좀 어리둥절하다. 이 책의 화자인 분필을 먹는 그가 누구인지 많이 헷갈렸다. 한 사람이 아니고 이 사람도 되고 저 사람도 되고 심지어 동물원의 동물 같기도 하고.. 책 뒤를 보니 ‘억압적 현실에 내몰려 주체를 상실해가는 인간의 비극적 변형기 너는 사람인가 짐승인가 ’라고 나와있다. 내가 헷갈렸던 사항을 바로 정리해준다.

 

해설

그 비극적 파국은, 사실 표면적으로 보자면 팡푸구이의 죽음과 그 이후 일어난 일련의 어처구니없는 사건들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 보자면 억압적이고 기형적인 사회 자체에 기인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너나없이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채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고 타락해있다.

 

8중학 물리교사 팡푸구이가 교실에서 쓰러진다. 다음 날이 스승의 날이라 학교에서도 시에서도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추모식을 열고 그의 이웃이고 동료 물리교사 장즈추의 부인인 ‘아름다운 세상’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에게 성형시술을 받게 된다. 아내 투샤오잉, 아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며 어이없게도 팡푸구이의 삶보다 '더욱 값진 영예로운 죽음'으로 인민교사들의 박봉, 업무 과다, 처우개선을 위한 그들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운동이 펼쳐진다. 우연하게 추모식에 참석하려던 왕부시장도 과로사로 죽고 리위찬에게 성형시술을 받는다. 평소 몸이 아닌 정치적 임무가 드러나게..

 

팡푸구이와 장즈추 가족, 8중학 인민교사들, 맹수 사육사, 동물원의 동물들, 리위찬의 제안으로 돌아온 팡푸구이와 남편 장츠추.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그들이 다가온다. 다가와서 한마디씩 하는데 분필을 요구하며 먹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 속엔 아름다운 만남도 들어있고, 추잡한 과거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모순도 들어있다. 노벨 문학상과는 거리가 멀고, 외국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적응하는 기간이 오래 걸렸다. ‘아주 오래된 아름다운 전설’을 읽고 열세 걸음의 뜻을 보니 땅 위에 있는 새를 볼 때마다 뛰는지 걷는지 보게 되고 뛰는 새가 있다면 두어 걸음 세다가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마치 긴 꿈을 꾼 느낌이다.

낯설었지만 내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고 좋은 기회를 준 반짝이님 고마워요 ^^



s******a 2013.06.06.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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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 수 없는 ‘너’와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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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다음 사람에게, 그다음 사람에게, 또 그다음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 이야기에는 화자(話者) 혹은 서술자와 청자(聽者) 혹은 독자 필요하다.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모옌의 장편소설 『열세 걸음』은 화자인 ‘나’가 청자인 ‘너’에게, 또는 화자인 ‘너’가 청자인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나’와 ‘너’ 그리고 소설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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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다음 사람에게, 그다음 사람에게, 또 그다음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 이야기에는 화자(話者) 혹은 서술자와 청자(聽者) 혹은 독자 필요하다.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모옌의 장편소설 『열세 걸음』은 화자인 ‘나’가 청자인 ‘너’에게, 또는 화자인 ‘너’가 청자인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나’와 ‘너’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너’이며 ‘너’는 ‘나’이기도 하며 소설 속 인물들은 ‘그’이지만 ‘나’와 ‘너’이기도 하다. ‘나’와 ‘너’를 규정지으면 독서는 길을 잃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첫 문장은 “마르크스도 신은 아니지!”라는 ‘너’의 말로 시작한다. 소설은 신이 있다면 인간으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불운한 삶을 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혹하다. 『열세 걸음』은 비슷한 외모에 같은 직업인 두 남자 물리교사를 통해 왜곡된 삶으로 벌어진 비극을 그리고 있다.

 

물리교사 팡푸구이는 교단 바닥에 고꾸라지자 ‘영예로운 죽음’으로 추앙되어 ‘동경과 존경’을 받았지만, 실제의 그는 죽지 않았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면 안 되는 법이다. 이것은 불변의 정리(定理)다.’로 여기지는 시대였고 그런 까닭에 그는 살아있되 죽어야 했다. 그는 먼저 죽었지만 왕 부시장의 순직으로 시신 미용은 나중으로 미뤄졌다. 물리교사 장츠추의 아내이자 ‘아름다운 세상’의 장례미용사 리위찬에겐 정치적 인물의 시신 미용이 우선이었다. 시신 미용은 산 자의 불만을 없애고 죽은 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절차였다. 리위찬은 왕 부시장이 왕 부국장이었을 때부터 욕망으로 얽힌 관계였다.

 

냉동고에서 뛰쳐나온 팡푸구이가 허둥지둥 뛰어든 곳은 장츠추의 집이었다. 교육의 목적이 대학 진학이 된 시대, 급여도 낮은데다 교사로서의 만족도까지 낮았던 장츠추는 팡푸구이에게 엉뚱한 제안을 한다. 그것은 팡푸구이의 얼굴을 장츠추의 얼굴로 만들어 가짜 장츠추는 물리교사의 삶을 살고 진짜 장츠추는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 팡푸구이는 장츠추의 삶에 혼란을 겪었고 장츠추의 장사꾼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리위찬은 남편의 얼굴을 한 팡푸구이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팡푸구이의 아내 투샤오밍은 죽은 남편이라고 말하는 장츠추(의 얼굴을 한 팡푸구이)가 불편했다.

 

그녀는 참새가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걸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다고 했지. 참새가 한 걸음 내디디면 자네한테 횡재수를 안겨주고, 두 걸음을 내디디면 관운을 안겨주고, 세 걸음을 내디디면 여복을 안겨주고, 네 걸음을 내디디면 건강운을 안겨주고, 다섯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의 기분이 늘 유쾌한 상태를 누리게 되고, 여섯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 사업이 순조로워지지. (중략) 열한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 아내가 아름다워지며, 열두 걸음을 내디디면 자네 아내와 자네 애인이 화목하게 어울려 자매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는 거야. 하지만 절대로 열세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다네. 만일 참새가 열세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자네 머리 위로 뚝 떨어져내린다지 뭔가!(422-423쪽)

 

제목인 ‘열세 걸음’은 물리교사 팡푸구이의 꿈에 나온 아름다운 여자가 말한 참새 이야기에 나오는 단어로 꿈속의 ‘그’는 참새가 열세 걸음을 걷는 것을 보았다고 ‘너’에게 말했다. 팡푸구이와 장츠추, 그들의 아내들 투샤오잉과 리위찬, 리위찬과 비합법적인 거래로 얽힌 맹수 사육사, 담배를 팔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가 여러 가지 일을 겪은 장츠추를 우체부로 오인하고 도와준 노인을 찾아온 테뉴는 보이는 욕망, 혹은 보이지 않는 욕망으로 얽혀 있었다. 이들의 생은 모두 참새의 열세 걸음을 본 생, 다시 말하면 악운으로 뒤덮인 생이었다.

 

팡푸구이가 장츠추의 얼굴로 바꾸지 않고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살아있는 팡푸구이로 나타났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팡푸구이가 교단에서 고꾸라지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팡푸구이의 죽음은 언제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언젠가 인간은 모두 죽는다 할지라도.

 

『열세 걸음』은 공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허울 앞에 개인의 가치는 무시되는 사회를 그린 이야기이자 양지 속에서 서지 못하고 음지 속에서 비틀대다 비극적인 죽음과 함께 소멸한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황당할 만큼 악운의 연속이라 믿고 싶지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 그래서 외면할 수 없는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였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3.01.1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보지말았어야 할 열세 걸음... 『열세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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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윌리암 포크너, 프란츠 카프카라 불리며 명실상부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모옌의 열세걸음... 읽기 전부터 그에게 쏟아진 찬미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란 영예로운 타이틀이 묵직한 표지에 더해져 뭔지 모를 무게를 느끼며 책장을 펼쳤다. 모옌(莫言)은 ‘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는 뜻의 필명이다.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왜 말로는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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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윌리암 포크너, 프란츠 카프카라 불리며 명실상부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모옌의 열세걸음... 읽기 전부터 그에게 쏟아진 찬미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란 영예로운 타이틀이 묵직한 표지에 더해져 뭔지 모를 무게를 느끼며 책장을 펼쳤다. 모옌(莫言)‘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는 뜻의 필명이다.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왜 말로는 않고 글로만 나타낼까? 모두 알고 있듯이 그는 중국의 잃어버린 10년, 중국을 퇴보시킨 흑암기 문화대혁명을 몸소 체험했다. 그러한 암울하고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아야만 했던 지식인들의 억눌린 사상과 사고가 ‘莫言’이란 두 글자에 묵직하게 실린듯하다.

 

 “열세걸음......? 이게 무슨 의미지?” 하며 의문을 품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각 장이 한걸음부터 열세걸음 까지 나뉘어 있었으나 중반부를 읽기 전까진 책의 시대 구성이며 화자가 누구인지 알쏭달쏭한 채 무겁고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동물원 쇠 우리 안에 갇힌 화자는 노란 횃대위에 앉아 분필토막을 씹으며 새빨간 눈동자로 ‘나’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다만 화자의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닌 청자가 화자가 되기도 하고 각자의 견해를 이야기 하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이야기를 서술해 간다. 이야기는 현실이냐 환상이냐를 떠나 각자의 입장과 생각에 따른 이야기를 종합해 내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고 풀어나간다.

 

 이는 모두 당시 암울했던 중국역사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극좌노선을 지향하던 사회주의 이념하의 인민들의 삶과 이후 개혁개방을 맞아 돈, 명예, 성적욕망 등 타락한 물질주의에 예속되어 변화하는 현실에 쓸려 살아나가는 모습들이 반영된다. 핵심 인물인 팡푸구이와 장츠추는 당시의 억압적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비극적 운명을 지닌 채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모두 중학 물리교사이다. 현재의 중국에서는 그나마 교사의 권위나 처우가 과거보단 나아졌으나, 아직까지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대학 교수가 돈을 벌기위해 택시가사가 된다든지, 과외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꽤 낯선 현실이다. 허나 지금보다 과거, 모옌 소설속의 시대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매우 열악한 경제여건, 근무조건으로 교사들은 무척 어려운 삶을 살고, 그러던 중 팡푸구이가 교실에서 과로로 쓰러진다. 이 죽음을 계기로 동료교사들은 열악한 교사의 봉급 및 처우개선을 주장하고 팡푸구이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다. 팡푸구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실신했을 뿐이다. 다만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교사들의 현실개선이 개인의 희생을 강력하게 강요한다. 죽을 수도, 살수도 없는 기로에서 팡푸구이는 절망하고 결국 살고자 하나 자신을 버려야만 살 수 있는 현실 앞에 선다. 자신을 유령으로 보고 부정하는 부인을 뒤로 한 채 이웃집 동료교사 장츠추와 그의 부인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이 그를 도와 살수 있게 한다. 리위찬은 팡푸구이를 평소 그와 형제처럼 닮은 자신의 남편 장츠추의 얼굴로 성형하여 장츠추의 삶을 살게 한다. 장츠추는 교직을 팡푸구이에게 넘기고 장사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현실의 강요 앞에 자아를 잃어버린 채 살게 된다. 교사와 상인의 조합에 어딘지 모를 신선함이 느껴졌다. 왜 하필 장사? 라는 생각이 들며 생각해 보았다. 문혁당시 교사는 당에 의해 반봉건, 반구습의 타도대상인 지식인 계급이 되었고 반동분자로 여겨졌다. 이후 개혁개방이 되며 돈, 명예 등이 중시되었고 상인들 즉 돈이 많은 자가 대우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해 장사를 하게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의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여건에 내몰려 내딛은 발은 결국 모두를 나락으로 빠지게 했고 파멸로 이끌었다. 자신은 이미 죽었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팡푸구이나 기존 삶과는 전혀 다른 낯선 환경 속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망가져버린 장츠추 모두 원래의 사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나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결국 팡푸구이는 교실에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하고 목을 맨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결국은 팡푸구이가 두 번 죽는 셈-의 죽음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대문에 내몰려 이른 것 임에도 불구하고 교장 및 사회는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복리와 학교실적 높이기에 급급하다. 개인의 희생이 사회적 이익 앞에 너무도 당연시 되는 현실이 무척 마음 아팠다. 또한 소설은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인물상이 그려지는데 이들은 모두 지저분하리만큼 퇴폐적이고 일그러진 성적욕망을 가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는 내내 기분이 언짢은 부분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같이 어그러진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을까? 당시의 시대현실이 간접적이나마 더욱 무겁고 어둡게 느껴진다. 무거움, 참담한 심정으로 힘겹게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다, 후반부에는 뭔지 모를 끌림에 쑥 읽어 내려져갔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화자의 시각으로 이미 언급된 사건이 한 번 더 정리되며 이해를 더한 덕분인 것 같다. 또한 처음 품었던 의구심이 해결되며 어렴풋하게나마 글이 이해가 되었다. 열세걸음, 이는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한다. 참새는 보통 두발로 통통 튀어 다니는데 한발씩 걷는 것을 본다면 행운이 온다는 내용이다. 한걸음부터 열두걸음 가지는 온갖 행운이 온다. 하지만 열세걸음은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앞의 모든 행운이 곱절로 악운이 되어 오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세걸음까지 오고 결국 인생의 파국을 맞이한다.

 

이런 전체적 줄거리도 매우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문드문 별것 아닌 것처럼 등장하는 중국의 사회적 모순, 병폐를 고발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물을 먹이고 돌을 넣어 근수를 높여 비싼 값에 파는 거위는 현재도 중국정부가 문제시 하는 가짜상품, 열등상품의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또 돼지, 소를 도살하는 장면, 토끼가죽과 털을 분리하는 장면 등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는데, 작년에 읽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보고 난 후 느꼈던 아픔과 죄책감이 다시 느껴졌다. 아무 감정 없이 동물을 해하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희열까지 느끼는 인간... 가죽재킷, 퍼 조끼 등을 멋스럽게 입고, 입속으로 스테이크를 음미하며 행복해하는 인간의 잔인함, 이기심 등이 여실히 드러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대목이다.

 

 장장 일주일간 읽고 또 넘겨보고 했던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각 마음이 먹먹했다. 내용의 난해함도 물론 기인했지만 무겁고 어두운, 텁텁하고 피비린내 나는 어두운 현실을 겪은 기분이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모옌 보다 한세대 앞의 중국작가 노신의 글은 ‘一刀見血’ 이라 할 만큼 날카로운 필치아래 피비린내 진동하는 당시의 사회모순을 잘 드러낸다. 열세걸음 역시 그 이후의 어두운 시대, 억압된 현실 속에서 기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파멸과 고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족이지만 팡푸구이(方富貴)라는 이름이 그의 삶과 완전히 상반되어 처참한 심정을 배가시켰다. 이와 같이 묵직한 무게를 싣고, 무언가 떨칠 수 없는 여운을 가슴깊이 남기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움을 느낀다.

l*****t 2014.01.1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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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가짜가 되는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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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필을 기어코 먹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농담이 아니다. 분필은 음식이 아니라 칠판에 쓰는 도구다. 그래서 분필을 먹고자 하는 그 사람은 유령이지 싶다. 하지만 거꾸로 왜 그런지를 꼬치꼬치 캐물어보면 그 사람은 유령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분필을 먹는 사람은 작가 혹은 지식인이라는 분신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살아야 이유가 무궁무진한데도 한편으로는 모자랄 정도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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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필을 기어코 먹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농담이 아니다. 분필은 음식이 아니라 칠판에 쓰는 도구다. 그래서 분필을 먹고자 하는 그 사람은 유령이지 싶다. 하지만 거꾸로 왜 그런지를 꼬치꼬치 캐물어보면 그 사람은 유령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분필을 먹는 사람은 작가 혹은 지식인이라는 분신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살아야 이유가 무궁무진한데도 한편으로는 모자랄 정도다. 이럴 때 펜은 칼뿐만 아니라 입(口)보다 강할 수 있다. 20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이라는 중국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작가의 필명인 모옌(莫言)은 ‘글로만 뜻을 표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있다. 단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작가가 말하는 입이 아닌 글은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는 말의 차갑고도 뜨거운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모옌의『열세 걸음』을 읽었던 까닭은 ‘중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 작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중국 문학이라고 하면 루쉰의『아Q정전』일 정도로 얄팍했는데 모옌을 통해서 20세기 중국 역사의 한계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의 프란츠 카프카 불리는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모옌의 작품세계는 윌리엄 포크너나 가브리엘 시아 마르케스에 비견할 만한 ‘환상적 리얼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해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의 글 덕분에 작품이 다소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일차적으로 설명이 부족하여 어떤 부분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굳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머뭇거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충분히 공감하는 것으로 현실적인 문제에 한 발자국 접근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제목 ‘열세 걸음’은 어느 날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어 닥친 참다한 불행과 관련이 있다. 이야기의 실마리는 러시아 민담에 참새가 열세 걸음을 걷는 다는 모티브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하지만 절대로 열세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대요. 만일 참새가 열세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당신 머리 위에 뚝 떨어져내린다지 뭐예요!’ (p 552)라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은 참새가 두발을 모아 종종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걷기 때문이다. 보통 13이라는 숫자는 행복의 반대편에 있다. 행복은 열두 걸음까지다. 그 이상이면 삶은 모호해지며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겠다. 그래서 참새의 열세번째 걸음은 우리의 진짜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열세 걸음』에서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다르지 않다. 논리적인 시간의 순서를 따져보면 삶이 있은 후에 죽음이 있다. 하지만 거창하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적용해보면 산다고 해서 사는 것도 아니며 죽었다고 해서 죽은 것도 아닌 묘한 분위기가 된다. 때로는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운 좋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덤으로 얻은 행복이라고 한다면 운 나쁘게 사는 것 같지 않고 죽어 있는 것은 덤으로 얻은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운이 좋은데 덤이 나쁠 수 있으며 운이 나쁜데 덤이 좋을 수 있다. 문제는 덤이다. 덤은 운명과 한 몸이지만 또 다른 삶이다. 그러니까 덤은 특별하다. 덤은 다시 한 번 죽음과 삶의 경계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이 소설에서 어느 날 갑자기 팡풍구이가 교단에서 쓰러지자 사람들은 그가 과로사 했다고 치켜세운다. 그의 죽음은 당(當)이 말하는 ‘큰 인도주의’이라는 정치적 의미로 탈바꿈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정작 그는 죽지 않았는데도 한 번 더 죽음으로 쫓겨나 죽은 사람처럼 살 수 밖에 신세가 되고 만다. 이유인즉 ‘죽은 사람은 그저 산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하네.’(p 107), 혹은 ‘산 사람이 죽은 사람 때문에 고통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p 540)라는 명분 때문이다. 명분이라는 숨은 권력은 그를 영웅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가 “죽은 사람도 부활할 수 있다고요!” 하소연할수록 기적이라고 반길 사람은 없다. 오히려 ‘사막의 모래는 죄다 유리로 바뀌는’(p 13) 것처럼 후폭풍이 거세다. 그의 욕망이 반동(反動)적일수록 권력자들은 진실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영웅은 가짜다. 그러면 영웅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어떨까? 작가는 아주 비극적으로 이 문제에 답하고 있다. 바로 ‘아름다운 세상’에서 장례미용사로 일하는 리위찬을 통해서다. 자기 상처가 많은 리위찬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일한다는 것은 과거를 극복한다거나, 구원을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다. 이런 그녀가 “아름다움은 가짜다.”라고 말하는 것은 시체 냄새를 풍기며 아름다움의 시녀로 살아온 불안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인민의 피를 빨아먹은 자본의 비계 덩어리 즉, 배불뚝이 왕 부시장을 홀쭉하게 만들어야 하는 부당함에도 연약했다. 대신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 장츠추와 99% 닮은 팡푸구이를 장cm추로 탈바꿈시키면서 아름다움은 가짜라는 또 하나의 퍼즐을 완성한다.

 

오르한 파묵은『소설과 소설가』에서 ‘소설은 두 번째 삶’이라고 했다.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과는 다를 것이다. 모옌의 두 번째 삶은 해설자 표현대로 ‘중국 역사와 현실을 배경으로 역사와 환상, 현실과 상상을 결합시켜서 기이하고 황당하고 신기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세련된 이미지와 다소 멀지만 삶의 진창에서 걷어 올린 이야기들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억압된 실제를 비유한 적나라한 상징을 만들어낸다. 참새의 열세번째 걸음이 ‘비극적 파국’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모옌의『열세 걸음』은 비극적 파국의 상징을 하나하나 조각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각난 이미지들이 산산이 흩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왜 그럴까? 아마도 암울한 현실을 불안한 스타일로 표현해내려는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지 않을까?



p******0 2012.12.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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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201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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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는 순간이 얼마나 놀라움의 연속인지,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그 상황에 대해. 늘 그렇듯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오리무중 속에서 결정되지만 올해처럼 낯설음이 컸던 수상자도 없었던 것 같다. 201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바로 중국의 소설가 모옌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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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는 순간이 얼마나 놀라움의 연속인지,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그 상황에 대해. 늘 그렇듯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오리무중 속에서 결정되지만 올해처럼 낯설음이 컸던 수상자도 없었던 것 같다. 201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바로 중국의 소설가 모옌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상 타이틀이 붙은 문학책들은 필수 교양도서목록에 오르곤 했다. 대학생들의 필수 교양과목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세계적 권위의 노벨문학상은 그만큼 시대 흐름과 일맥상통하며 젊은 세대의 교양도서로 자리매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본적인 교양도서들조차 읽히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성세대들이 원하는 스펙에는 이런 교양도서가 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신문에서 본 기사 소식이 전부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중국 작가가 받았다, 정도.

재미와 교훈을 떠나서 책은 책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노벨문학상을 뽑는 기준은 알지 못하지만 시대 흐름은 읽을 수 있다. 201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일본도 아닌 중국에서 나왔다는 건 어쩌면 중국 문화를 좀 더 이해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나 역시 모옌의 <열세 걸음>을 읽고 나서야 중국 문화와 중국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열세 걸음>의 주인공은 물리교사 팡 선생, 장 선생이다. 이들은 선생님이지만 실제의 삶은 너무나도 팍팍하다. 지식인들을 천대하는 중국 제도권 내에서의 선생이란 그저 학생들의 학업을 도와주는 ‘보조’일 뿐이었다. 학습 기계랄까, 교사의 권위나 인권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들이 받는 월급으로는 생활이 힘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교육 환경 또한 극도로 피폐해 자살하는 학생들까지 생기니 이건 학교가 아니라 흡사 동물원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팡 선생은 수업 도중 쓰러졌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선생님이 과로로 죽었다는 소식이 동네방네 퍼지자 열사처럼 숭배됐다. 그들의 노고는 기사화돼 많은 이들에게 모범이 됐고 학교에서는 이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는 죽은 게 아니라 잠시 기절했을 뿐이었다. 그를 기리는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역사와 현실을 움직일 만한 아이콘으로 추대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그는 죽은 사람으로 돼 있어야 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죽은 사람이 되라 하는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열세 걸음>을 읽는 내내 중국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끓었다. 무협지처럼 현란한 장풍은 나오지 않지만 가깝지만 모르는 나라에 대해 뭔가를 얻어갈 것이다.

 

d*****1 2012.1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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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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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노벨문학상은 중국 작가에게 돌아갔다.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황토가 떠오른다. 인민들이 입는 옷의 색깔과 떠다니는 황색 먼지 섞인 공기,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자금성의 황금빛 지붕의 색깔이다.   그리고 모옌이라는 작가는 아주 생소했지만, 내게는 황색의 모든 것들을 응축한 문학의 상징으로 남을 것 같다.   참새가 외발뛰기하는 것을 보면 복이 들어온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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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노벨문학상은 중국 작가에게 돌아갔다.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황토가 떠오른다. 인민들이 입는 옷의 색깔과 떠다니는 황색 먼지 섞인 공기,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자금성의 황금빛 지붕의 색깔이다.

 

그리고 모옌이라는 작가는 아주 생소했지만, 내게는 황색의 모든 것들을 응축한 문학의 상징으로 남을 것 같다.

 

참새가 외발뛰기하는 것을 보면 복이 들어온댔다. 한발에는 건강운, 두발에는 재물운... 열두 걸음에는 천운이 들어오지만 열세 걸음까지 보게되면 그 동안 들어온 모든 운이 두 배가 되어 악운이 된다고 했다. 이 러시아 설화를 모옌은 차용한다.

 

과로로 기절한 물리교사가 죽은 것으로 오해받으며 모든 상황은 꼬여만 간다. 주인공 팡푸구이의 아내는 팡푸구이가 살아돌아오자 귀신이 나타났다며 피해버리고, 동료인 장츠추는 아내에게 떠밀려 행상을 나간다. 장츠추의 아내는 팡푸구이를 장츠추 대신 물리교사로 세우고, 두 남편에게서 벌어들일 수입을 생각하며 흐뭇하다.

 

중국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비뚤어진 욕망. 그리고 집단과 개인의 관계, 끝끝내 파멸로 치닫는 사람들. 열세 발짝의 외발뛰기는 그만큼 무겁고 치명적이다.

중국의 역사 안에서 흐르는 기기묘묘한 사람들을 만났다. 모래먼지처럼 사그라들 것 같다가도 농축됭 진흙덩어리로 구겨질 것만 같다. 노벨문학상이 아니더라도 완전, 추천한다.

p*********y 2012.11.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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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난한 부부의 처절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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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의 1988년 작이다. 가난한 두 부부, 100런민피 봉급의 가난한 중학교 교사 장츠추와 화장미용사 리위찬.  옆집에 사는 중학교 물리교사 팡푸구이와 토끼고기 통조림공장에 다니는 추샤오잉.   가난에 찌들어 단칸방과 다락방 , 1개반 에 병든 친정엄마, 남자애 둘 어렵게 사는 리위찬.  시신을 화장시켜주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 살기위해 시체의 내장을 동물원 사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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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의 1988년 작이다.

가난한 두 부부, 100런민피 봉급의 가난한 중학교 교사 장츠추와 화장미용사

리위찬.  옆집에 사는 중학교 물리교사 팡푸구이와 토끼고기 통조림공장에

다니는 추샤오잉.

 

가난에 찌들어 단칸방과 다락방 , 1개반 에 병든 친정엄마, 남자애 둘 어렵게 사는

리위찬.  시신을 화장시켜주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 살기위해

시체의 내장을 동물원 사육사에게 넘겨주고 대신 사람이 먹을 돼지창자,소고기를

받아 다가 가족을 먹이고.

부시장과 섹스를, 화장장과 섹스를 하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고.

교실에서 돌연사했던 팡푸구이는 숨이 끊기지 않고 다시 살아나도 리위찬에 의해

faceoff되서 장츠추 행세를 하고... 학습현장에서 죽은 팡푸구이 인민영웅이 되고

아내 추샤오잉은 승진하고 늙은 서기한테 재가해서  신분이 출세하지만  리위찬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삶을 마감하고...

 

짧은 지식에 리뷰를 쓰기가 어렵다.  삶과 가난에 찌들고 문화대혁명이후 지식인홀대문화속에

동물원우리 휫대에 앉아  교사둘은 그들의 상황에 울부 짖는다..

분필가루를 먹고 사는 , 해삼한 번 먹어 보지 못했고, 고급담배 한갑 100런민피는

그들에게 먼나라일.

문장이 춤을 춘다..평범한 말들이  나비가 되고 날아 다닌다..

중국어에도 운율이 있는 가..

인용하는 노랫가락처럼 550페이지 장편 전편에 물이 흘러 다닌다.

분필가루를 마시면서, 하루에 800번, 토끼  정수리를 망치로 내려치고 가죽을 벗겨내고,

원숭이처럼 동물원횟대에 올라타고, 원치않는 몸을 팔아 상납하면서 처절하게

결사적으로 살아 가려고 바둥바둥친다.

그리고 외친다. 세상에 난 이렇게 산다.. 이렇게라도 살아가야 한다...

물 흐르는 듯한 소설, 내가 본거는 기리노 나쓰오와 무라카미 류.

모옌은 거칠지만 덴도 아라타와 기시유스케를 넘는다. 왜

그가 노벨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가를 보여 준다.

 

 

YES마니아 : 로얄 d******3 2013.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열세 걸음을 걷다
"열세 걸음을 걷다" 내용보기
꽤 오랜 시간 동안 읽었다. 처음 몇 장 넘기기가 가장 힘들었으나 읽다보니 조금씩 수월해졌다. 마지막까지 가속도가 붙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에도 개운함을 안겨주지 않도록 여러 가능성을 닫지 않은 작가의 작법에 감탄하며 책장을 덮었다.     본명 대신 입으로 말하지 않고 글로만 표현하다는 뜻의 필명인 모옌의 대표작 <열세 걸음>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어서
"열세 걸음을 걷다" 내용보기

 

 

  꽤 오랜 시간 동안 읽었다. 처음 몇 장 넘기기가 가장 힘들었으나 읽다보니 조금씩 수월해졌다. 마지막까지 가속도가 붙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에도 개운함을 안겨주지 않도록 여러 가능성을 닫지 않은 작가의 작법에 감탄하며 책장을 덮었다.

 

  본명 대신 입으로 말하지 않고 글로만 표현하다는 뜻의 필명인 모옌의 대표작 <열세 걸음>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어서기보다 문학동네 세계문학 100번째를 장식한 작품이 궁금해서 펼쳤다. 세계문학하면 서양 작품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독자에게 공급되는 세계문학이 실은 서양문학에 지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 중국 작가의 작품은 낯선 만큼 새로웠다.

 

  불합리하고 모순되더라도 보이는 것에 급급한 중국사회의 일면을 지식인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다 어이없이 죽음에 이른, 후에 죽지 않았음을 알았어도 큰 인도주의를 위해 작은 인도주의를 무시하고 죽은 자가 되어야 하는 팡푸구이의 모습에서, 천직일 줄 알았던 교사를 내팽개치고 장사를 시작하며 또 다른 나의 역할에 고민하는 장츠추의 모습에서, 이들의 운명을 뒤바꾸며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산의 모습을 바꾸는 장례미용사 리위찬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몸집 좋은 왕 부시장의 시체를 수척하게 만들어 인민 앞에 내놓아 그간의 노고를 칭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작하는 장면과 조작하는 과정에서의 부산물의 이동경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미처 이해하지 못한 부분까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다. 물론 당장은 어렵겠지만 재독해야 할 책 목록에 포함되었다.

 

 



YES마니아 : 골드 a*****4 2012.12.30.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