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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설명하는 건축물과 장소들
현대에 와서 공산품처럼 쏟아낸 도시가 아닌 과거 어느 시점부터 자생적으로 싹튼 도시에는 그 도시를 설명하는 건축물 혹은 장소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베이징에는 자금성(紫禁城)이, 뉴욕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파리에는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 설계의 에펠탑이, 바르셀로나에는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 설계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聖家族 聖堂], 시드니에는 예른 오베르 웃손(Jorn Oberg Utzon, 1918~2008) 설계의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그렇다면 서울을 설명하는 건축물과 장소는 무엇이 존재할까 저자는 28개의 건축물을 공간(Space), 기억(Memory), 랜드마크(Landmark), 특별한 장소(eXtra-Location)라는 건축적 관점에 의해 나눠 설명하고 있다.
첫째, 공간 ‘일상과 예순 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목적으로 28개의 운송용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인 플래툰 쿤스트할레(Platoon Kunsthalle), 커다란 조각품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기념관인 김옥길(金玉吉, 1921~1990) 기념관, 십자가는 없지만 벽돌을 쌓아 투박하지만 박력 있게 만든 경동교회, 허공에 <금강경(金剛經)>을 새김으로써 한국 현대 불교의 대표적 학승(學僧)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의 정신을 건축으로 완성한 탄허 기념 박물관 등이 소개된다.
둘째, 기억 리모델링을 통해 2011년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로 재탄생한 꿈마루, 비일상적인 수평적확장을 통해 죽은 이를 위한 영원과 무한의 공간을 표현한 종묘 정전, 노골적인 참배나 존경을 강요하기보다는 차분한 침묵과 추모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모던한 방식을 보여주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등이 소개된다.
셋째, 랜드마크 주변을 압도하는 강남 교보타워의 위압감을 극복하기 위해 3,800여 개의 구멍이 송송 뚫린 독특한 외관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어반 하이브, 1970년대 고도 성장기를 대표하는 국내 최초의 현대적 빌딩 삼일빌딩, 기존 집합 주거 건축물의 획일화된 구조에서 벗어나 세대별 평면 구조와 스타일에서 단독주택 같은 독립성과 공간적 차별성을 강조한 강남 최고급 주상복합 빌딩 부티크 모나코 등이 소개된다.
넷째, 특별한 장소 도시에는 건물의 한계를 넘어 특별한 ‘장소’로 자리매김한 건축적 공간이 여럿 있다. 그 장소들이 어떤 사회적, 역사적, 건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한강 개발 역사의 증인이면서 서울의 대표적 생태 공원으로 리메이크된 선유도 공원, 광장이라기 보다는 소통이 봉쇄된 거대한 중앙분리대와 같은 형태를 보여주는 광화문 광장,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단지의 풍경을 간직한 북촌(한옥마을) 등이 소개된다.
건축을 읽는 눈
저자는 사이즈를 제듯이 28개의 건축물을 S[공간], M[기억], L[랜드마크], XL[특별한 장소]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에는 저자만의 건축을 읽는 눈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건축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건축을 읽는 눈이 필요할까 이런 의문에 대해 저자는 “건축을 읽는 자기만의 눈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할까요? 건축을 보는 눈을 갖추어야 삶에 대한 나만의 눈이 생겨날 것입니다. 사는 집이 바뀌면 삶도 달라지니까요. 서울이라는 도시, 그곳에서 숨 쉬고 있는 건축, 그것을 보는 눈이 바뀐다면 이 도시의 삶 역시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p. 6]라고 답한다.
어떻게 보면 건축을 읽는 눈이라는 것은 가면을 꿰뚫어 보는 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도시의 가치는 그럴듯해 보이는 현대적 화장술에 있지 않습니다. 도시의 가치는 낡은 골목길 모퉁이 벽에, 오래된 건물에 매달린 칠 벗겨진 쇠창살에, 많은 이의 손때가 묻은 공원 난간에, 수십 년 된 가로수와 멋진 작을 이루는 통나무 벤치에, 콘크리트 둔치 곳곳에 피어난 강단 있는 들꽃들에, 그리고 건물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담겨 있을 것” [p. 359]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건축을 읽는 눈을 갖춰야 삶에 대한 나만의 눈이 생겨난다는 것도 당연하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가면을 쓰고 다른 이를 대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가면을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가면을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가지는 기대나 평판도 나의 본성을 제약하는 가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화’라는 이름의 교육이나 교화는 가면을 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다. 단지, 다른 이의 가면을 뚫어볼 수 있는 눈을 키울 필요가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건축은 인문학이다라고 얘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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