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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라군에 가자. 아이슬란드에. 응 네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온천이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 않아도 너랑 갈 거야. 거기가 설령, 지옥이라도. -23쪽
익숙함은 때때로 나를 좀먹으려 들었다. 그것은 나를 얼마나 지치게 하던지, 때론 좋아서 지치고 때론 아프고 힘들어서 지치고, 지침의 연속에서 체념하고 체념이 익숙해지면 무기력증이 나를 옭아 매고 결국은 무관심으로 탈바꿈해, 그 무관심이 나를 슬프고 아프게 했다. 어쩌면 무관심을 가장한 관심으로 향하는 갈급증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떠날 거야, 너를 놓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같은 내 마음 저변 깊숙이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말이 되지 못한 채 흘러나왔던 절규와 비명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아무리 외쳐도 소리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알아달라고 아우성쳐대는 속울음을 너만은 외면하지 말아 달라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삼키어댔는지도 모른다.『물의 연인들』은 익숙함에 점령되고 함몰된 여인의 이야기다. 그 속에 물의 흐름이 있다. 유유히 흘러가길 바라는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처럼 흘러가길 바라지 않던가. 하지만 세상은, 신은(만약 신이 있다면) 이 빌어먹을 생을 물 흐르듯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가지각색의 삶은 그렇게 탄생한다. 인연이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의 사슬을 좀먹는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 유경의 기억 속 그 남자. 4년의 꽃 같던 시간, 그 후 7년의 목마름. 가능할까? 만났던 시간보다 그리워하고 아픈 시간이 배로 연장된다는 것이.... 문득 떠오르는 짧은 단상의 스침이 아니라 시종일관 촉수를 갉아대며 정신을, 육체를 짓밟아버리는 허기짐의 시간이? 사는 동안 배부른 시간보다 배고픈 시간 안에서 계속 그리워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유경의 지난 사랑은 고독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유령이 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유령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른다, 나도 나에 대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싶다, 7년째 허깨비처럼 살고 있는, 내가 지겹다, 나는, 나를, 나는, 그만 죽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살아있지만, 누구에게도 도와 달라고 할 수가 없다, 나는, -38쪽
나는 스스로 고독해지길 바란다. 외로움과는 다른, 혼자인 시간을 오롯이 나인 채로 즐기는 시간, 남들의 위로와 위안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기에 쓸쓸함에 의지한 채 마음을 다독이는 고독의 시간은 나름 즐길만하다. 외롭다는 건 누군가 옆에서 알아주길 바라고 손길을 내밀어 주길 바래서이다. 하지만 고독은 좀 다르다. 내 안의 나와 더 깊게 대면하고자 나를 바라보는 시간의 연장선상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즐긴다. 타인으로부터 어떤 방해도 침범도 없는 철저하게 고립된, 독립개체로 자리할 수 있기에, 나는 고독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유경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죽고 사랑했던 남자도 죽어버렸을지 모르는 현실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수 있는 상대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혼자가 되길 갈망했고 혼자가 되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게 운명이었다면 7년의 사슬 속에 얽혀있는 그 남자와도 운명이었을까. 이들은 정녕 운명이었을까. 고향인 와이강을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엄마를 둔 유경, 와이강에 버려진 아이, 소년, 그 남자. 이 만남은 운명이었던 걸까. 운명이라고 믿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 인연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하늘의 심판 따위는 두렵지 않으며 오로지 하늘이 맺어준 운명일 뿐이라고, 개소리 같은 궤변일지 모르나 그리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운.명.이라고. 난 운명 앞에 귀속된 한낱 인간일 뿐이라고, 세상에 대고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대며 울분을 토해내고 나면 남는 건 뺨 위를 타고내리는 투명하다못해 허연 멀건 해지는 액체뿐이다. 운명의 장난 앞에서 기억해낼 수 없는 이름, 그래서 소년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했던 그 남자. 온 세상이길 거부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랑이자 7년 전 유경을 까마득한 벼랑까지 내몰았던 그의 사망 소식은 유경의 머릿속에 이름마저 남겨두기를 거부했다. 대신 그와 나누었던 총체적 감각은 영원토록 유지된 채, 잊은 거라곤 오로지 이름 석 자뿐이다. 정신과 육체는 그를 기억하는데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는 표식이 되는 이름은 지워버린 운명이 참 우습지 않던가. 그의 이름을 찾아서 기억의 사슬을 풀어내려 유경은 떠난다, 와이강으로. 살인을 저지를지 모르겠다 도와달라 호소하는 어린 두 소년 소녀를 향해, 엄마가 나고 자신이 자라고 그 남자가 버려졌던 와이강에서 찾으려 한다, 무엇을? 떠난 사람의 영혼의 지저귐과 남은 사람의 살아내야 하는 목적을.
와이강이라는 기점을 두고 파생된 인연의 고리는 와이강의 파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거친 물살에 휩쓸린다. 7년 만에 당도한 와이 강변은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서지고 메워지고 새롭게 거듭나려 하는 문명의 흐름에 대응하려 발돋움하고 있을 뿐이었다. 와이강이 콘크리트로 메워질수록 마을 사람들은 아파하고 그 안에 7년 전 그 소녀 수린과 소년 해울이 있다. 유경의 심신에 깊이 각인돼 사라지지 않는 사랑했던 그 남자와 함께 맑은 우정을 나눴던 아이들은 아파서 죽어가고 있었다. 다름 아닌 와이강의 파괴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근본적으로는 모두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였던 사람들이 어떤 잣대와 이중적인 시선 없이 마음과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기에 아름답던 7년 전의 여름날은 시끄러운 파괴의 소리에 서서히 함락돼가고 그것을 멈추려 아이들은 유경을 그곳으로 불러들였으나, 유경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 그녀는 와이강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사람이었음에 회귀했을 뿐이다. 이들은 거침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했다. 단지 각각이 혼자였고 버려졌었다는 이유로.
"꿈꾸는 걸 잊지 마. 사람은 꿈꾸는 대로 사는거야."-171쪽
하지만 아니라는 걸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잊지않고 마음 속에 갈무리하고 좇아가도 그리 뜻대로 호락호락하게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함에도 잊지 않겠지. 포기하지 않겠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지. 버리는 순간 꿈은 산산조각 난 파편이 되어 나를 지옥으로 떨어뜨릴지도 모르니까. 와이강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건 와이강의 보존이었고 그로부터 지속되는 삶의 활기였다. 자연이 죽음으로서 인간의 삶도 죽어버릴지 모르는 건 너무도 자명한 일이 아니던가. 사회의 모든 패악은 자연을 파괴하는데서부터 비롯된다. 와이강의 신음 섞인 부르짖음이 유경을 그곳까지 불러들였고 그곳에서 고독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목도한다. 인간의 욕심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파괴된 자연은 인간을 해한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처럼 순환과 역순환이 반복되면서 비명을 내지르는 건 결국 인간이 된다. 강은 흐르는대로 호수는 고여있는대로 바다는 넘실대는채로 제각각 그 자리를 지켜야한다. 자연의 순환작용을 거스를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겐 허용되지 않음에도 왜 수많은 인간들은 권리가 주어졌답시고 남용하고 있는것인가. 애초부터 이들의 어긋남은 와이강의 댐 건설, 즉 와이강의 파멸로부터 시작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곳으로 흘러들어 가 마지막 남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려 한 것이겠지. 와이강이 산고의 고통을 겪을 때 유경도 아팠고 무위암 사람들도 아팠고 그곳에서 잉태된 모든 이들이 아팠다. 하지만 파괴됨 속에서도 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든, 어디에 고이고 썩어 오랜 시간 머문다한들 긴 시간이 흐른 후에는 또다시 흘러가게 마련이다.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 유유히.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중략)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지 않으면 흐를 필요가 없어요. 어제에 멈춰 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죽은거나 마찬가지잖아요.-257쪽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처음에는 한 여인, 연인의 이별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재정립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 아닐까 했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경으로부터 파생된 개인의 이야기에서 점차 굽이치는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되어갔기에 그러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팠고 그들의 현실이 분노하게 했기에 불편했다. 모두가 한 방울의 물로 이어져 있고 이어져가고 이어져갈 우리라는 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물은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보려 한 이들이 아팠다. 편리와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흐름이 결코 좋을 수만은 없으며 이대로 흘러서는 안 된다 말하는듯했고 그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들의 칼 끝이 향한 것도 결국은 인간의 심장과 자연이라는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이를 감각적 문체로 표현해낸 글이 아팠고 물처럼 유유히 그러나 유려하게 흐르는 김선우 시인의 언어에 유린당해 휩쓸리는 나를 보는 것도 아팠다. 물은 생명을 상징한다. 이 소설이 슬프고 아프고 절절함에도 희망이 보이는 건 물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관장하는, 삶의 근간이 되는 물이 기저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물의 생명력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저 휩쓸려 가면 그뿐이었다. 시인의 글은 나를 춤추게 한다. 머릿속에 유폐되어 둥둥 떠다니는 단상의 입자들을 한데 그러모아 뱉어내도록 종용하고 또 종용한다. 시인은 소설도 시처럼 쓰는구나, 에세이도 시처럼 쓰는구나 같은 생각은 애초부터 내 뇌리에 박혀있던 부분이었다.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며 온갖 수사를 총동원한 물의 언어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휩쓸리고 깨지고 심연 깊숙이 침잠했다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기를 거듭하는 인간 물고기가 된다. 미학적 수사에 중독된 나는 한낱 인간. 파닥파닥, 자지러질 것 같은 파닥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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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손에 잡자 마자 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짤막짤막한 문장과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강한 여운을 남기고 오감을 자극하는 작가의 묘사와 하나둘 밝혀지는 주인공의 과거의 이야기들은 점 점 더 긴박하게 흐른다.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감춰졌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드러나게 되는 형식의 이소설은 한편의 미스터리 스릴러를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7년전 연인과의 뜻하지 않은 이별로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게 살아보려 했던 유경은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자신은 잊은듯 살아가려 했던 문신처럼 새겨진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면서 그녀는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그의 이름을 떠올려 보려 애쓴다. 하지만 그와의 추억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 점 더 미스터리해지기만 한다. 와이강을 사이에 둔 유경과 이름을 잃어버린 그의 이야기는 가슴절절한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다. 지옥이라도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던 한 남자의 죽음으로 인해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며 와이강의 파괴로 인한 해울과 수린의 아픈 사랑을 직면하게 되는 그녀는 처음엔 무덤덤하기만 하다. 하지만 잊었던 연인의 이름을 떠올리고 그제서야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억만금이 있어도 살아 있는 송사리 한 마리는 돈으로 만들 수 없는 법이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나비 한마리 쪼맨한 다슬기 한마리 만들수 있나, 돈으로 만들지 못하는 거, 그게 목숨인 것인데, 살리기라고? 옘비할!'-- p199 무분별한 강과 산의 개발은 지금 우리의 지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강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그 강이 생명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삶은 아랑곳 하지 않는 그들에게 맞서지 않는 유경은 마치 우리의 모습을 보는것만 같다. 강의 고통이 오롯이 수린에게 전해져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해울의 극단적인 행동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격을 가하고 있다. '큰비 와서 물 넘치는 땅은 사람들게 아니라 강의 것이라, 그렇게 한번씩 물이 넘쳐야 땅도 좋고 강물도 몸 풀어서 깨끗해지고 하는 거지, 그래야 또 거기서 온갖 것들이 살고, 그게 순리라,' ---p200 물의 연인들, 와이강이라는 공간이 공존하는 그들에게 물은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사랑의 매개체다. 아니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 물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정도로 중요한 것으로 우리 모두는 물의 연인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도 함부로 다루고 파괴하고 더럽히고 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 모른척, 남의 일인것처럼 생각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김선우 작가는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옳지 못한것에 대해 해울과 수린의 고통을 떠올리며 맞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와이강의 물의 연인이었던 유경의 무뎌진 감성을 또다른 물의 연인인 수린과 해울을 통해 자연의 순리를 그르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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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의 말대로 ‘성찰하는 소설가’의 범주에 몇몇 여성작가들을 넣어보면, 강렬하게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심상이라고 해야 할까? 전경린 님에겐 ‘정염’이, 편혜영 님은 ‘불쾌’, 구병모 님은 ‘참혹’이, 백영옥 님은 ‘키치’ 그리고 김선우 님은 ‘관능’이란 단어가 두둥 떠오른다. 작품을 통해 축적된 하나의 이미지랄 수 있는데, 김선우 님의 경우에는 시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가 워낙 강렬했다.
그대가 밀어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그대가 꽃 피는 것이
- 시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님은 시와 소설에서 일정 부분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 받는 드문 케이스이다. 조정래 선생은 부인 김초혜 시인을 가리켜 ‘자신보다 한 수 위다’라고 했었다. 이는 시인의 명민한 감성(촉, 통찰)을 상찬한 것인데, 소설가와 시인의 길은 다르다,고 전제한 결과이다. 물론 작가 중에 김연수나 한강 등 시인으로 시작해 소설가로 전향(?)한 분이 여럿 있다. 하지만 김선우 님은 조금 다르다. <캔들 플라워>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긴 하지만, 특유의 시적 감성을 소설에 그대로 재현해내고, 또 소설의 서사를 시적 긴장으로 응축할 줄 안다.
그녀의 장편 <물의 연인들>을 읽으며, 여러 작품들이 여울을 이루듯 밀려왔다. ‘물(강 혹은 숲)’이 주는 심상, 즉 존재의 시원으로서의 물(숲)은 여러 작가들을 통해 재탐색됐고, 재구성됐었다.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 구병모의 <아가미>, 성석제의 <위풍당당>, 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 등 지금껏 접했던 많은 소설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대부분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유린되는 ‘모성으로서의 자연’을 그리고 있는데, 한 편의 시처럼, 그림처럼,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물의 연인들>은 원근이 살아있는 풍경화이자, 개발 독재시대에 유린되고 있는 자연의 소묘이며,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생물권’의 파괴 후 피폐해진 우리네의 삶을 관찰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주된 공간인 ‘와이강’은 생명의 시원이다. 주인공 유경이 태어났고, 스웨덴으로 입양된 그의 연인(연우)이 어린 시절 버려진 곳이며, 유경의 어머니 한지숙이 죽어 뿌려진 곳이다. 와이강 자체를 생명이라 여기며 살았던 당골 할머니와 그 밑에서 자란 수린과 해울은 와이강이 잉태한 존재들이다. 그런 와이강이 참혹하게 파헤쳐지며, 모든 인연들을 그곳으로 인도한다. ‘살려달라고, 살게 해달라고’
유경은 아버지를 죽였다. 폭력과 강간을 일삼는 금수보다 못한 아버지. 유경 역시 아버지가 엄마 한지숙을 강간하여 잉태된 생명이다. 죄를 뒤집어 쓴 한지숙은 감옥에 갇히고, 평화를 찾지만 출소를 얼마 안 남기고 칫솔을 삼켜 자살한다. 유경은 엄마의 죽음 후 무작정 떠난 스톡홀름에서 운명처럼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와 함께한 시간들을 그리는 장면에선 숨막힐 듯 관능적인 사랑이 펼쳐진다. 속된 교접이 아니라, ‘해원’의 몸짓이었고, 운명을 사랑하는 자(아모르 파티)들의 신성한 의식이었다.
압권은 유경 스스로 엄마 한지숙이 되어 ‘그’와 섹스를 나누는 장면이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엄마 한지숙에게 사랑 받는 여자의 행복을 전하고 싶은 마음, 관능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그를 받아들일 때 유경은 엄마의, 한지숙의 알몸이 되려고 했다. 자신의 육체 속에 엄마가 있기라도 하듯이. 자신을 소중히 안고 천천히 침대로 옮겨 가는 남자의 심장 뛰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한지숙. 그녀가 되길 유경은 간절히 바랐다. 살살 움직여 줘. 아프지 않게. 상처가 많으니까. 물처럼 흐를 수 있게. 여기로 와. 내 옷은 버려 두고. 유경의 옷을 어디에 놓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던 그가 유경의 발등을 적신 강물이 마르기 전에 부드럽고 여린 혀로 유경의 발가락 사이를 지나간다. 간지러워…. 유경이 허리를 비틀며 웃는다. 모래톱 위에서 엄마가 허리를 비틀며 웃는다. 잘록한 허리에 비해 큰 가슴을 가졌던 엄마. 젖꽃판이 넓게 퍼진 엄마의 유방에 혀를 대 본다. 쿡, 엄마가 웃는다. 입 속 가득 엄마의 젖꼭지를 문다. 달큰하고 비릿한 젖내가 흘러든다. 너 낳고 젖몸살이 심했지. 앞섶이 늘 젖어 버리곤 했어. 너는 젖을 참 세차게도 빨았단다. 먹어야 산다는 걸 미리 배운 아기 같았어. 발목과 종아리와 허벅지를 핥으며 올라온 그의 혀가 거웃을 헤치고 있다. - P138~139
유경은 그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죽도록 사랑했던, 운명의 그를 잊고 살아간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 유경은 결혼을 했고, 또 이혼을 했다. 담쟁이가 거실벽을 타고 커갈수록 유경 스스로는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그런 중에 찾아온 와이강으로부터의 소식. 다시 이끌리듯 그곳을 향하는 유경은 ‘그’의 이름(연우)을 찾았고, 당시 그와 함께 알게 된 해울과 수린과 조우한다. ‘연우’. 소설 곳곳에 안개와 빗방울이 떠다녔다. 엄마를 뿌리고 다시 찾은 와이강의 얕은 물결 속에 죽은 연우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하지만 와이강은 신음하고 있었다. 강 허리가 잘리고, 바닥이 파헤쳐지며 ‘존재의 시원’으로서의 생을 마감하려 하고 있었다.
수린과 해울. 연우와 마찬가지로 해울 역시 와이강에 버려진 소년이었고, 당골 할머니가 거둬 수린과 남매처럼 자랐다. 둘은 15살, 17살에 불과했지만 서로를 운명처럼 사랑했다. 하지만 와이강이 파괴되면서 수린은 희귀병을 앓으며 신음한다. 온몸에 각질이 생기며 굳어져 결국엔 죽고 마는 와이강의 아이. 수린을 살리는 길은 와이강을 파헤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것이라 여긴 해울은 사제 폭발물을 만들어 하나, 둘 실행에 옮긴다. 결국 해울은 자수하여 감옥에 갇히고, 수린은 넋이 되어 와이강으로 향한다.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지 않으면 흐를 필요가 없어요. 어제에 멈춰 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P257
현재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른다고 말하는 수린. 상황상 4대강 사업 등 인간의 무자비한 탐욕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 지를 ‘와이강’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의 연인들>은 물에서 태어나, 물로 돌아가는 ‘인간’이란 자연이고, 그 속에서 서로를 향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 우리네의 ‘사랑’이다. 그 흐름을 막는 그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와이강’의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김선우 님의 <물의 연인들>을 읽는 내내, 온통 축축하고, 촉촉하며, 청량하고, 텁텁했던 물방울이 나를 쫓아다녔다. 굳이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김선우 님이 얼마나 치열하게, 절규하며 이 소설을 썼는지 능히 짐작이 됐다. 참혹의 현장을 그리면서도 예의 명민한 시적 감수성을 실었던 그녀가… ‘공무도하’를 읊조리며 ‘와이강’을 그렸는지도 모를 거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꽃 같은 시절>에서 할머니들이 지키려 했던 농촌 마을이나 <위풍당당>에서 강마을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곳’이나, <아가미>에서 ‘곤’이 유영하며 세상과 조우하려 했던 그곳 모두… 우리가 잃고 있는,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생명의 근원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김선우 님은 치명적인 관능과 섬세함으로 <물의 연인들>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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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친 이유는 딱 하나. 유난히 물을 무서워했던 나는 우리 아이들만큼은 물과 친해지기를 바랬다. 물에 빠졌을 때, 느껴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고, 물 안에서 안정되지 못했던 심리적 불안감을 수영이라는 운동으로 편안해지기를 바랬다. 물속은 엄마의 자궁. 양수를 떠오르게 하는 심리적 안정감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고 기댈 수 없는 텅 빈 공허한 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물이란, 강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강은 편안함의, 행복함의 작은 기억들이다. 금강 어귀의 재첩 잡이는 지금도 생각나고, 또 먹고 싶은 추억의 맛이기도 하다. 나에게 물은 무서움의 한 자락이기도 하지만 생생한 생명의 한 자락이기도 하다. 나에겐 행복한 강의 추억이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픔의 기억이기도 한 강. 그 강은 돌고 돌아 나에게, 우리에게 다가오기에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애잔하고 아프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잔잔하고 모호한 느낌의 그런 책. 과연 물의 연인들은 어떤 연인들이며 어떤 사랑을 간직하고,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남편을 죽이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엄마는 출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칫솔 조각을 삼켜 자살한다. 엄마의 뼈 가루를 일부는 와이강에 뿌리고, 일부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간다. 북유럽에 가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그곳에서 유경은 어린 시절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남자를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한다. 몇 년 후 남자는 죽고, 유경은 충격으로 그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이후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지만 마음속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 어느 날 와이읍에서 소포가 도착하고 편지가 온다. 그녀를 와이읍, 와이강으로 이끈 이 편지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와이강의 공사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수린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간다. 수린과 해울은 왜 유경을 와이강으로 이끈 것일까?
사랑에는 어떤 근원이 있는 것일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근원.. 그 사랑을 잃었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은 다른 사랑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일까? 사랑에는.. 특히나 사랑의 이별에는 모호한 경계가 있으면 안 되는 것 같다. 확실하게 맺고 끊을 수 있는 선이 있지 않다면 남겨진 사람은 아플 수밖에 없다. 무수한 ‘왜’ 라는 질문들이 자신을 괴롭힐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긴 한 것인지 계속된 의문과 아픔으로 생각과 몸이 과거에 묶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별에도 예의가 있고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잠깐 스웨덴에 자신의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 사람이 죽음으로 소식을 알려왔다면 계속된 의문들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이유 혹은 확실한 설명 없이 받아 들 일수 있는 이별은 없을 테니까. 남겨진 사람에게 모호한 이별의 그늘은 잡고 싶은 가능성을 열게 만들 뿐이니까. 아니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느다란 끈이라도 잡고 싶고, 잡아서 사랑을 연결하고 싶을 테니까...
그가... 요나스가... 그러니까 죽은 것이 확실합니까? (240) 세상에는 보이는 인연보다 안 보이는 인연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수께끼 같은 인생이고 인연입니다. (243) 그래서 그만둬야겠어. 미워하는 거. 나도 살고 싶어졌거든. 이 물가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흐르는 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걸 깨달았어. 날 버린 사람들을 미워하기만 하다가 내 인생 먼저 망가진다는 걸, 물이 가르쳐 줬어. 반짝거리며 말해주더라. 날마다 다른 목소리로 말이야. 다행의 물의 설교는 아무리 오래 들어도 지루하지 않더라고 (256) 이젠 사랑이 떠난 그 자리를 인정하고, 살고 싶어진다. 아니 살아야 한다. 살아야 그 사람에게 당당해 질 수 있으니까.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이렇게 오래 동안 아픔을 간직하고, 그 아픔 안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그렇게 아픈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강한 사랑의 힘을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아프게 떠난 사람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별이 가진 나름의 공식을 가지고 이별을 했으니까... 하지만 오랜 시간만큼 사랑은 깊었고,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공허함이었을 것이다. 그마나 그녀는 강으로 인해 아픔을 치유했고 살고 싶어졌다. 오랜 시간이 걸려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살려고 한다. 돌고 돌아 험난했지만 이제 진정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몰랐던 힘.
오늘도 강은 흐르고 흐른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뜻대로 흐른다. 인생도 그런 것은 아닐까? 어디든 스밀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강처럼 때론 흐르게 내버려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깨달음을 얻는데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을 아는데 너무 오래 돌고 돌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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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김선우 시집을 읽고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도 적나라한 여성성의 날 것 그대로의 농밀함이 배여 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단어들은 태초에 하나였지만, 무언가에 의해서 분리되어 있던 단어들처럼 모호하지만 친숙한 것들이다. 그렇게 다시 탄생되는 언어들은 원초적인 생명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힘찬 모습처럼... 물로 빚어진 사람 ![]()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 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흘러나오고 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쌍이 흘러나오고 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러나오고 내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의 발등엔 늘 조금씩 바다 비린내가 묻어 있네
무릎베개를 괴어주던 엄마의 몸냄새가 유독 물큰한 갯내음이던 밤마다 왜 그토록 조갈증을 내며 뒷산 아카시아 희디흰 꽃타래들이 흔들리곤 했는지 푸른 등을 반짝이던 사막의 물고기떼가 폭풍처럼 밤하늘로 헤험쳐 오곤 했는지 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어진 사람 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에 붉은, 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 저의 몸에서 퍼올린 즙으로 비를 만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바다 냄새로 달이 가득해지네 《물의 연인들》이전에 작가의 모든 시에서는 이미 물로써 생명의 시작을 말하고 있었다. 마치 소설을 그린 시처럼, 이 시와 소설은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생명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생명의 서사는 ' 흘러나오고.. 흘러나오고... 흘러나오는' 자연의 서사를 따라 거대한 생명의 고리로 연결되어 '어머니의 어머니들'로 이어져 내려온다. 소설에 등장하는 ‘와이강’ 또한 그러한 생명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와이강에 버려진 한 소년 연우는 스웨덴에 입양된 후 스웨덴에서 유경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와이강에서 나고 자란 유경과 다른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당골네의 손녀딸 수린과 해울이라는 소년과의 만남이 있다. 유경의 생명의 시작은 어머니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한 남자가 문학소녀를 강간하고 임신시키며 문학소녀의 인생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늘 매 맞는 엄마를 보고 살아야 했던 유경의 마음은 언제나 분노와 절망과 고통으로 물들어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행은 엄마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되지만, 대신 엄마는 교도소에 가야했다. 엄마의 출소를 앞두고 새로운 출발로 들떠 있던 유경에게 날아 온 ‘엄마의 자살’은 유경을 다시 침잠하게 한다. 삶에서 도망치듯 엄마가 평소 가고 싶어 하던 위드그리실로 떠난 유경에게 찾아 온 눈부신 사랑은 엄마의 선물처럼 느낄 정도로 유경의 삶에 처음으로 드리운 햇살처럼 눈부시고도 밝은 세계를 선사하지만 찰나에 불과한 반짝임이었다. 연인의 죽음 이후 유경은 지독한 상실감에 빠져 ‘히스테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연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몸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게 요나스를 추억하고 있다. 잃어버렸다. 내가 그를 잃어버린 것인지 그가 나를 잃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자기 걸 그렇게 잃어버리다니 죽어가는 유경에게 담쟁이를 돌보는 일은 엄마와 연인을 기억하게 해주는 유일한 연대이다. 담쟁이에게 물을 주면서 엄마를 기억해내고, 연인을 기억한다. 또한 담쟁이는 유경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 ‘물을 공급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진대사를 최소화하여, 거의 죽은 것에 가까운, 이를테면 죽은 척하는 상태’의 담쟁이의 모습은 바로 유경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상에서 오로지 담쟁이라는 연대만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던 유경에게 와이강에서 날아 온 절박한 통의 편지
엄마를 품고 있던 와이강에서 유경은 언제나 생명을 느껴왔다. 무수한 생명을 담고 흐르던 강은 댐 공사로 인해 흐름이 멈춘 상태였고 , 강은 더 이상 생명을 품고 있지 않았다. 죽어 가는 와이강과 한 몸이라도 되는 양 온 몸이 나무껍질처럼 변해가며 죽음의 향기를 뿜는 수린을 보며 유경은 고통에 전율하며 그동안 잠들어있던 모든 감각들을 깨운다. 수린을 사랑하는 해울은 수린을 살리기 위해 댐 공사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지만, 거대 권력 앞에서 해울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와이강의 비극적인 서사는 ‘죽은 척하는 상태’의 유경을 일깨워준다. 한 번도 타인의 삶에 관여한 적도, 깊은 인연을 맺은 적도 없던 유경의 삶에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책임감은 담쟁이와 같은 삶으로부터 구원이다. 그렇게 타인과의 연대는 유경을 더이상 담쟁이처럼 살게 두지 않는다. 이후 유경은 생명이 흐르는 강에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과 함께 하는 원초적 욕구이자 관능의 몸짓을 맘껏 누리게 된다. 김선우 작가의 '여성성'과 '생명의 서사'는 모호함으로 가득한 은유로 시작되지만,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소설의 언어들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소설이 시처럼 보이는 ,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없는, 김선우만의 독특한 수사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렇게 아파서 어떻게 해.. 사랑이... 요나스, 도와줘, 저 애를 좀, 도와줘, 이래도, 사랑이, 이런, 사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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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타투.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지울수 없는, 온몸 구석구석에 남은 당신에 관한 기억때문에 지난 7년이 지옥 같았어. 이렇게 강렬한 이야기로 그녀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와이강 근처에서 태어나 자란 유경과 그녀의 어머니 한지숙, 당골네의 손녀딸 수린, 와이강에 버려진 후 수린과 함께 남매로 자란 해울, 와이강 근처에서 발견된 후 스웨덴에 입양되어 자란 유경의 연인 그리고 무위암 할머니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와이강을 사랑했고, 늘 와이강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유경의 기억을 따라 함께 흐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와이강 있었다. 엄마 한지숙과 유경은 순조롭지 못한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너무도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으면 또 그렇지못한 사랑도 있는 법이니까. 유경의 기억을 따라 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다. 유경의 기억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물이, 와이강이, 담쟁이가 늘 함께였다.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 이런 거. 나는 네가 기억하는 그 강에 엄마를 뿌렸어. 그리고 여기에 조금 데려왔고.-49 남편을 살해한 죄로 복역 중이던 한지숙은 출소를 불과 얼마 앞둔 채 자살했다. 딸인 유경은 와이강에 뿌리고 남은 엄마의 뼛가루를 가지고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탔다. 엄마의 생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유경은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불같은 사랑을 했지만, 그이 조차도 몇 년 후 세상을 떠났고 유경은 그 충격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그와 함께한 다른 모든 것은 기억 하건만 이상하게도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유경은 자신의 곁에 있었던, 사랑하는 이들을 이렇게 떠나보낸 아픔과 엄청난 상실감 속에서 견디며 살아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었던 와이읍의 수린과 해울에게서 도와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와이강이 생태계 공사로 인해 점차 파괴되고 있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황폐해진 유경 그리고 어린 수린 역시 원인을 알수 없는 병으로 점점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수린을 사랑하기에 안간힘을 다해 지키려는 해울도.
아름다운 와이강이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첫사랑이 있었고 낙인처럼 새겨질 가슴 아픈 이별도 있었다. 나도 물냄새를 안다. 비오는 날,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떨까? 더 짙은 물냄새가 몰려들것이다. 내가 사는 곳엔 강이 아닌 바다가 있다. 비릿한 물 냄새, 바다 냄새. 한 방울의 물이 모이고 모여 개울을 따라서 강으로, 호수로 흘러서 마침내는 넓은 바다로 모여드는 것이다.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한없이 달래고 어루만져주는 강물이 주는 위안과 사랑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듯, 시간이 흐르고, 인생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세상에는 보이는 인연보다 안 보이는 인연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수께기 같은 인생이고 인연입니다. 건강하세요."-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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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연인들>의 작가인 '김선우'는 1996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서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은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그린 <나는 춤이다>이고, 두 번째 소설은 '촛불 집회'를 소재로 삼은 <캔틀 플라워>이다.
<나는 춤이다>는 읽지를 못했고, <캔들 플라워>만을 읽었는데, 15살 캐나다 소녀(한국인의 피가 흐르는)가 2008년 5월 17일 한국 도착에서부터 6월 21일 레인보우 달계곡으로 출국할 때까지 소녀의 눈에 비친 '촛불집회'의 모습을 표현한 소설이다. 촛불광장에 꽃처럼 피어나는 불꽃들. 촛불 하나 하나는 화려하지도 않고 그리 밝지도 않지만, 이들이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수백만 개가 모이면 화려한 꽃처럼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게 된다. 또한, 위선에 가려졌던 거짓들이 밝혀지고, 나뿐만 아니라 내곁의 사람들의 마음의 문까지도 열어 줄 수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의 이야기로 우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소박하지만 힘있는 빛이 촛불인 것이다.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촛불집회의 이야기가 바로 <캔들 플라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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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연인들>의 '김선우'의 세 번째 소설이다. 그녀의 산문집인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도 읽었기에 김선우의 신간소설이라는 것만을 알고 읽게 된 소설이다.
그런데, 이미 많은 독자들은 그녀가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소설을 쓰고 있으며, 2010년에 쓴 초고를 몇 번에 걸쳐서 다시 고쳐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이 소설을 아름다운, 혹은 슬픈 사랑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읽었던 것이다. 거의 중반부를 훌쩍 넘어갈 때까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와이강을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주인공인 유경과 엄마인 한지숙은 비참하리 만큼 힘겨운 삶을 살아 간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짐승같은 인간을 살해하게 되고... 와이강은 엄마가 자란 곳이고, 나중에 죽어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의 자살 이후에 스톡홀름으로 가서 연옥이 만나게 되는 연우는 와이강에 버려졌던 아이이고, 그 이후에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가 연옥을 만난 후에 다시 와이강을 찾게 된다. "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배역이었다는 듯이 유경의 인생에 나타나 단번에 사랑이라는 말을 운명이라는 말과 조합하게 만들었던 남자.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듯 사라져 버린 남자." (p. 46)
또한, 와이강에 살고 있는 당골네의 손녀 딸인 수린과 와이강에 버려졌다가 수린과 오누이가 되는 해울. 유경, 지숙, 연우, 수린, 해울. 이들은 모두 와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이고, 모든 것을 잃은 후에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다. 와이강이 그곳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고 희망이었지만, 4대강 사업에 의해서 갈기 파헤쳐지는 것처럼. 4대강 사업은 정책시행자가 와이강을 그들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에 지역주민의 삶이나 생각과는 무관한 사업을 시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유경이 아버지가 지숙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하기에 짖밟고 폭행을 일삼은 것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유경의 머릿속에 선명한 문장이 지나간다. 소유와 정복의 욕망으로부터 온갖 패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p. 130) 이 소설의 첫 부분은 유경과 연우의 사랑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책장을 펼치자 마자 읽게 되는 이야기가 비오는 날의 사랑의 행위이기에 다소 의아함으로 읽게 된다. 그리고 지숙과 남편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집착, 그리고 한 여인을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남편의 짐승같은 행위. 그런 가운데, 읽게 되는 욕설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중간, 중간 당황스러움도 느낄 수 있다. 물론, 리얼리티를 생각한 내용들이지만, 소설을 읽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다. 좀더 청아한 사랑 이야기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책장을 넘기는 순간 순간 해 보게 된다. <물의 연인들>을 비롯하여 내가 읽었던 그녀의 책 3권으로 작가의 색깔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이 쓴 소설이기에 시처럼 아름다운 글들이 톡톡 튀어나오기도 한다. '역시, 시인은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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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무섭다. 싫다.
와이읍의 와이강이 어디쯤에 있는지. 4대강공사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들과 자연의 슬픔을 말하려 한다는 것을... 난 이 책을 거의다 읽어갈 때 쯤에야 알수 있었다. 재미가 없다 칙칙하고 어둡다 이런 생각이 들어 심각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든다. 아니 예쁜 단어들을 모아서 쓴 글들이라는 생각에 작가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와이강 유역에서 태어나 자란 유경과 그녀의 어머니, 무위암의 할머니 점치는 당골네와 그의 손녀딸 수린 그리고 와이강 근처에 버려진 해울 ... 신비한 요나스 아니 연우. 이들은 와이강에서 생명의 원천을 느끼며 와이강을 그리워한다.
의미없는 삶을 살던 유경에게 더러운 흙탕물이 담긴 유리병이 배달된다. 또 도와주세요 살인을 저지를 것 같아요 수린이 죽어가요 우리는 유령이 되고 있는 중이에요 모두죽어가요 제발 와 주세요 ...........란 해울의 절박한 편지는 세상 바깥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유경의 영혼을 불러 깨운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과 강간을 견디지 못한 유경의 엄마 한지숙은 딸을 대신해 남편을 살인한 죄로 복역을 하게 되고 출소 몇일전 자살해 버린다. 유경은 한지숙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북유럽과 스웨덴으로 가 뼛가루 일부를 뿌린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사랑 요나스는 아무런 두려움없이 온몸과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려쳐 준다. 그리고 살아있는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와이강을 좋아했던 요나스는 북극해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해울의 편지로 와이강을 다시 찾은 유경은 너무도 급작스레 변해버린 와이강을 보고 경악한다. 불치병에 걸린 수린의 병은 아마도 제빛을 잃고 여기저기 죽은 물고기의 시체와 악취를 풍기는 와이강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살자 살자 다시 한번 살아 보자꾸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들은 언젠가 빗방울이 되어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적시고 한 컵의 물이 되어 우리의 내장을 적신다.... 그렇게 죽어버린 그들과 살아 있는 우리는 하나가 된다. .... 이 세상을 한 바퀴돌아, 이 생을 한바퀴돌아, 그 모든 고통과 원한과 복수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되는 그리하여 더욱 눈부신 첫사랑의 이야기다. 권력을 향해.... 언젠가는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힘으로 끝끝내 다시 흘러갈 와이강처럼. 우리는 흘러가야 하니까 살며 싸우며 사랑해야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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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는 사랑... 온몸 구석구석에 타투처럼 새겨진 사랑의 기억 때문에 사는 것이 괴로운 여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두 사람으로 인해서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 밤 역시 외롭고 아프며 슬프다. '물의 연인들'의 저자 김선우씨는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을 해서 그런가 '물의 연인들'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적 감수성이 상당히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꿈 많은 소녀는 하루 아침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소녀의 실수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까봐 창피해 소녀의 부모는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두 남자 중 한명에게 그녀를 주다시피 한다. 소녀는 자신 안에 자라는 하나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 앞에 놓여진 운명을 받아 들이기도 결심하는데....
자신의 것이라고 소유욕 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남자는 한 여자에게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낸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딸 유경은 커다란 심적 고통을 느끼지만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체념하다시피 살아가다 간신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녀가 느낀 잠깐의 행복 뒤에 그들 앞에 나타난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행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엄마지만 딸을 지키고자 한 마음에 그만 남편을 살해하고 만다. 허나 법이 가지고 있는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 때문에 옥살이를 해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유경은 엄마가 돌아오면 다시 행복한 날들이 이어질거라 믿었지만 출소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엄마는 볼펜을 잘라 그만...
유경은 엄마를 와이강에 뿌리고 엄마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북유럽 위그드라실가 있는 스톡홀름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곳에서 첫 눈에 사랑을 예감 한 남자 연우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라면 새로운 내일을 꿈꾸어도 좋을거라고 느끼며 엄마를 뿌린 와이강에 함께 찾아 간다. 입양아 연우가 발견된 곳도 와이강이다. 연우 역시 와이강을 보며 자신의 방황의 끝이 여기라고 느끼며 유경과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스톡홀름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떠났다가 그만....
책 속의 인물들은 전부 와이강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유경, 연우는 물론이고 두 사람이 10년 전 처음 와이강을 찾았을 때 만난 와이강에서 발견된 어린 소년 해울과 유경 엄마가 남편을 피해 고향을 찾으면 들렸던 당골네의 손녀 딸 수린, 무위암 할머니... 특히 수린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와이강에 댐 공사가 진행되자 갑자기 아파오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이 진물과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슬퍼할새도 없이 오빠 해울을 걱정하는데...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다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읽는내내 불편했고 특히 유경의 어머니 한지숙 이야기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들에게 젖줄과도 같은 와이강이 발전이란 명목하에 파헤쳐지고 멍들어가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국가사업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4대강 사업이 연상되기도 했다.
섬세하고 시적인 묘사가 돋보이지만 생각보다 농도 짙은 정사신 또한 대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현실감이 다소 떨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처음에 조금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스토리에 빠져들수록 사랑이란 감정에 대한 감각적인 표현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김선우 작가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도 여러편의 시집과 소설, 산문점, 여행에세이까지 발표하셨다니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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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파서.. 너무 울어서.. 쓰기 시작했노라고.. 작가님은 말씀하셨다. 작가님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 [물의 연인들] 낭독극을 보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라.. 지금과 다른 내 반응을 상상할 수가 없다. 정말 어땠을까??
수린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낭독극에서 '수린'역을 낭동하던 그녀가 자꾸 머리 속에서 자리잡아 이야기를 한다. 5명의 다른 사람들도 있었음에도, 유난히 그녀만이 '수린'으로 남아 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그 목소리와 얼굴과 썩은 나뭇가지같은 다리와 진물이 나는 몸이 하나가 되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읽다가.. 자꾸 지쳐서.. 내 기분도 자꾸 가라앉아서.. 11월의 나에겐 유난히 더 무거워서.. 읽으면서 자꾸만 다른 곳을 바라보았었다. 결국 이렇게 다 읽고 말았지만.. 나는 내가 울게 될까봐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울지 않아서. 한 번 울면.. 엉엉 통곡하게 되버릴 것 같았다..;;
p.36 무위암 할머니의 부고인가, 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간다. 살갑진 않아도 그녀마저 세상에 없다면, 이라고 생각하자 유경은 다시 아뜩해진다.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할지라도 누군가 이 지상에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봉투를 여는 유경의 손끝이 가루가 된 엄마를 한 줌 쥘 때처럼 가늘게 떨렸다.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것일까. 봉투를 열고 흰 종이를 꺼냈지만 바로 펴 보지 못한다. 여러 번 심호흡한 후 유경이 간신히 흰 종이를 펼쳤다.
p.63 엄마. 지금 나는 말이야. 아주 좋아. 발랄의 극치야.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어. 최고로 좋아.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통 털어서.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렇게 쓸 때, 그것은 정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엄마는 돌아올 것이고 단 한 명으로 충분한 친구 민정이 있었고 학과 공부는 수월했고 과외 아르바이트는 충분했다. 그리고 언제든 원하면 가질 수 있는 섹스도 있었다. 이 정도면 아주 충분하지 않은가. 어차피 인간들은 누구나 상처투성이다. 유경은 또 생각했다. 무수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인간이 상처투성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가. 그 상처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며 허덕대는 종류의 인간이 있고 상처를 이겨 내는 인간이 있는 거다.
p.106 셀 수도 없이 많은 무언가를 죽이고 다니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다.
p.225 수린 앞에서 나는 그냥, 나였던 거예요. 버려진 애도 아니고, 불쌍한 애도 아니고, 그냥, 물속을 여행하고 온 한 사람이었어요. 그후로 우린 수린이 그렇게 궁금해한 물속을 함께 탐험했어요. 수린이 헤엄치는 것을 배울 때 내가 손을 잡아 주었고요. 어느덧 잠수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강에서 자랐어요. 엄마가 날 버렸지만, 강에서 난 엄마의 숨결도 느낄 수 있어요. 날 데리고 여기 오던 그 전날부터 밤새 울던 엄마를 기억하니깐. 난 함부로 버려진 게 아니고, 엄마가 나를 미워해서 버린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거니까. 수린이 날 안아 주었을 때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은 그렇게 정리되었어요. 심지어 난 이렇게도 생각했어요. 엄마는 수린을 만나게 하려고 날 버린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건 버린 게 아닌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심지어 엄마가 고마웠어요. 엄마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고 나는 수린 옆에 이렇게 있으니까요.
p.257 나는 괜찮아요. 아주 오래 살아도 좋았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어.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와이강이 오빠랑 내게 늘 들려주던 얘기인데요.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지 않으면 흐를 필요가 없어요. 어제에 멈춰 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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