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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미학을 스님을 통해 각성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살아내는 방법을 저자의 견해를 통해 자각하게 된 것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졌다. ‘가장 큰 고통은 죽음이며 가장 큰 행복은 죽음 극복이다. 불교는 그 길을 제시한다. 농업과 유목은 신을 필요로 하지만 상업은 신이나 윤리보다는 행복과 어울린다. 그 상업을 기반으로 일어난 유일한 종교가 불교다. 붓다는 집착은 거부했지만 소유는 긍정했다. 새로운 것에 더 많은 이윤을 할애하는 상업은 진보적이다. 상업은 고착되지 않은 계속된 변화를 추구하므로 그 자체로 아름답다.’
저자는 박력 있는 스님이다. 자신의 깨달음과 앎을 전달하는 방식이 저돌적이다. 겸손을 가장하지 않고 솔직하다는 점에서 서양의 젊은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서양에 비해 동양이 얼마나 우위인지, 신을 믿는 기독교에 비해 나를 세우는 불교가 얼마나 근사한지 시종일관 강조한다, 불교 포교를 위해 쉬운 논리로 설명을 나열하느라 그랬겠지만 ‘기독교가 기성복이라면 불교는 고급스럽고 편안한 맞춤복, 기독교가 대중음악이라면 불교는 클래식’이라는 이분법적 비교는 유치해서 웃었다. ‘재미난 포교’에 ‘집착’하다 보니 ‘중도’를 벗어나면서 저자가 펼치는 논리가 치졸해진 감이 없지 않다. 기성복과 대중음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중생은 어찌 하란 말인가! 저자는 ‘불교는 지성적인 종교로 고급 유희에 해당한다.’고 설파함으로써 중생의 기를 한 번 더 꺾는다. 스님의 불교 애착이 양적, 질적 포교 둘 다를 주춤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불교는 동양의 인도와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서양식 교육과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다. 그런 나의 조건(밈meme)이 그 두 나라와의 거리감을 갖게 해 아쉬울 따름이다. 게다가 저자가 전하는 붓다는 통치술, 어학, 무술 등의 교육을 충분히 받은 ‘왕족’으로서 논쟁에서 ‘전승’을 거둔, ‘불패’의 위업을 이룩한 공감과 설득의 능력자이다. 중생이 우러러 추종할 수는 있겠지만 감히 ‘가까이 하거나 닮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붓다에게 정치적, 종교적 소양은 거의 태생적이다. 공자나 예수의 제자들과 달리 붓다의 제자는 귀족계급이 많았다는 사실을 저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붓다의 설복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붓다의 그 출중한 능력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가 저물면서 점차 부각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상업)가 성장세를 타게 되면 불교 포교도 세계를 점령해 가리라. 그렇더라도 붓다처럼 깨달은 자가 되기에 인연이나 관계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중생에게는 버겁다. 결국 왕족도 귀족도 지식인도 아닌 일개 중생이 해탈할 확률은 미미하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판세나 흐름에 의해 불교신자가 되어 윤회에 저당 잡힌 삶을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불교는 지식과 계급이 낮은 중생이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즐기기에는 불리한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
고차원적인 불교의 진리를 어려워하는 나를 위해 저자는 기복적, 주술적 불교의 종교성을 친절하게 제시해 준다. 그것들이 불교가 발전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무지렁이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절에 가서 시주하고 합장한 덕분에 불교는 몰락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어르신들에게는 고된 삶 자체가 곧 수행이고 명상이다. 다만 수행과 명상을 염두에 둘 줄을 모를 뿐이다. 세상에 흠씬 빠져 살다가도 때로는 합장하고 때로는 한숨짓고 때로는 멍때리며 세상을 살지 않는 시간을 잠시 갖는다. 그런 낮으면서도 결코 낮지 않은 종교적 태도와 영성이 서로서로 원인과 조건으로 관계되어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으리라. 공(空)의 역동적인 세계 속에서 나약하게 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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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불교 출현의 배경
이 책은 고대 인도에서 불교의 출현과 발달 그리고 쇠퇴, 중국으로의 포교, 중국불교의 발달과 쇠퇴 등 꽤 광대한 이야기를 짧은 책으로 엮은 불교 역사책이다.
인도에서 명상 문화가 발달한 이유(더운 나라이기에 움직이며 노는 쾌락이나 음주 문화보다는 열을 식히는 문화가 발달)라는지 불교가 흥하고 쇠퇴하는 이유(불교의 지지 기반은 기존 종교와는 달리 농업이 아닌 상업)에 대한 시각이 매우 새롭다. 역사 발달이 인간의 내재적인 문제보다는 지형적, 기후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시각과 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 생존 당시 부처님이 왕이나 상업인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일대기에 보면 늘 '장자'이야기가 나오고 그들이 상업인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진 이유 또한 이슬람의 번창에 의한 상업의 쇠퇴도 한 몫 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전반적으로 비록 너무 축약을 해서 중간에 이해가 가지 않는부분(특히 마지막 파트, 성리학과 불교와의 관계-이건 아마도 내가 성리학을 잘 몰라서 이해가 안될 수도 있었겠다.)도 있었지만 불교역사를 쭉 한번 설명을 하니 '나의 불교'가 기나 긴 불교의 여정 속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이해할수 있었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호국 불교, 통불교로 고착화된 한국불교에서 한발짝 떨어진 불교 이야기를 알기 위해 영어로 된 불교책을 많이 읽었었다. 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이 책을 읽으니 좀 정리가 된다.
다음에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대한 책도 기대해 본다.
http://en.wikipedia.org/wiki/Buddhism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Buddhism_in_India http://en.wikipedia.org/wiki/Mahayana_Buddhis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