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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중요 특징 중 하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란 모든 사회 구조물의 기반을 이루는 노동이 대접받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시장 상황에 무력하게 휘둘리는 종속적 지위에 처한 현실을 이르는 말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전면화만으로 그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렇게 바라마지 않은 민주 정부가 뚜렷한 비전이나 대안 제시 없이 신자유주의적 체제에 동화되어 권위주의 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정책을 편 현실을 목도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이슈화한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가 일용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재래 시장 노동자들, 이주 노동자들이 고투하는 모습과 우리 시대의 경제 정책 실패를 반영하는 신용 불량자들을 만나 고통스런 삶의 모습을 둘러보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 책이다. 저자는 새벽 인력시장에서 정치와 정당 일반의 부재는 물론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진보 정당의 부재를 실감했다고 전한다. 이는 대중의 계급 배반의 뿌리에 자칭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절망이 놓여 있음을 밝힌 크리스 헤지스의‘누가 내 생계를 위협하는가’의 문제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진단이다.
최장집 교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원인을 여론조사가 지배하는 정치 즉 정당 정치의 무기력함과, 진보주의자들의 과잉 이념화와 도덕적 우월의식에서 찾는다. 저자는 경제성장과 시장 효율성의 가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에 대응하는 인간주의적 가치를 정립하지 않고서는 복지국가로의 질적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복지는 사회나 국가가 당연히 시민에게 부여해야 할 수혜이고 시민은 그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48 페이지) 저자는 이 논지를 정교하고 선명하게 하기 위해 복지의 물질적 급부와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권 부여를 구분한 랄프 다렌도르프의 이론을 원용한다.
저자에 의하면 복지의 물질적 급부와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권 부여를 포괄하는 사회적 시민권 개념의 핵심은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권 부여이다.(134 페이지) 물질적 급부 제공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권 부여는 노동시장의 주변부에 있거나 노동시장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의 자존감 상실과 심리적 상처, 소외감 등을 치유할 수 있는 근원적 처방이다.(135 페이지) 사실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에서 힘의 중심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하지만 국가와 대기업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대별되는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압도적 비정규직 수와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옳다. 즉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근저에는 신자유주의 말고 신자유주의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민주 정부가 있는 것이다.(11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밖으로부터 주어진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야말로 해당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예컨대 민주주의 정부의 이런 덕목은 항의와 투쟁 중심의 운동방식이나 품목 단체의 이익집단 활동 모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농민 운동 또는 노동 운동 등과도 상관성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제 18대 대통령 선거를 약 40일 정도 앞두고 있다. 이를 보며 갖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 정책이 이슈화하지 못한 채 대통령 선거가 “화려한 담론과 슬로건의 잔치”(167 페이지)로 끝나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성과, 자신들의 실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에서 비롯되는 구체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가 주도해온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으로 고용없는 성장, 실업 증가, 취업난, 정규직/ 비정규직으로의 노동 시장 양극화, 소득 분배 구조 악화, 자살 급증, 출산율 하락, 신용 불량 급증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간 나는 노동 대중의 계급 배반, 행동하지 않는 무기력 등을 정치인들의 자파 이기주의에 못지 않게 비판했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비판적 목소리에만 치중한 반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보수 정당들 사이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노정되지 않고 체제는 신자유주의가 대세로 굳어지는 등의 문제로 인해 정치적 무관심, 낮은 투표율, 냉소주의 등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저자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세계화는 싫든 좋든 우리의 현실이 되었으며(145 페이지) 노동 시장 유연화는 피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는 진단(161 페이지)은 주목할 만하다.
이 부분에서 남겨진 것은 정당 차원의 (현명한) 대응이라는 과제이다. 그럼 정당의 무책임 또는 무대안(無代案)을 타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정당들과 정치인들이 스스로 변하거나 변화를 강요할 수 있는 강한 충격이 외부로부터 가해져야 할 것이다.”(85 페이지) 저자는 비정규직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도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좋다든가 차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참고해야 할 답 가운데 하나는 신자유주의 시장 원리를 노동시장에 확대 적용한 결과 비정규직이 인정되었고 그 수가 증가해왔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거의 없는 서구 선진국들의 현실이다.(161 페이지)
앞서 저자가 현실성과 자신들의 실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에서 비롯되는 구체성을 강조한다는 말을 한 바 있는데 저자는 그런 문제의식을“추상적 언어가 꼭 필요하다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들이 충분히 형성된 후에나 불러들여질 수 있을 것.”이란 말로 정교화한다.(109 페이지) 인상적인 것은 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한 구절이다. 이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왜냐하면 이곳 아테네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정치라고 하는 공공의 일에 무관심한 시민을 조용함을 즐기는 자로 여기지 않고 하는 일이 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의 글은 노동과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지탱하고 이끄는 힘이기에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부르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깨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이슈화되어야 할 문제가 이슈화하고 논의될 것이다. 저자가 예시한 개념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마셜의 시민권 개념이다. 저자에 의하면 생산의 효율성 극대화와 성장을 실현하는 경제의 시장 논리와는 달리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은 자본주의 체제에 내장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결함을 축소시키는 의미 지평을 제공한다. 시민권은 경제 과정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 부여되는 가치와 독립적으로(시장의 변덕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126 페이지)
노동 없는 민주주의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하여란 이슈에 따라 저자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갖는 커다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광범한 문제 해결의 공간을 가진다고 말한다.(140, 141 페이지) 지난 여름 이진경 교수의‘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를 읽고 공감한 내용들 가운데 하나는“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아래 자본가들의 주머니에 쏟아부은 돈을 아예 실업으로 인해 혹은 그나마 노동조합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 투입했다면 어땠을까?”(‘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324 페이지)란 글이다.
그리고“국민을 만들려는 것이 국민국가였다면 그렇게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국민국가가 내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무상으로 행해진다. 그렇다면 쓸 만한 노동력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게 자본가라면 그렇게 만드는 비용을 자본가가 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개별 자본가가 아니라면 총자본가인 국가가 지불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자연스럽다.”(‘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233 페이지)란 글이다. 이진경 교수의 앞선 글은 경제 과정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 부여되는 가치와 독립적으로 부여받는 시민권 개념을 연상하게 하고 뒷 글은“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확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163 페이지)란 저자의 글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의 글은 냉철함 속에 감추어진 열정과 차분한 대안 제시가 돋보인다.“아무리 남의 삶이라도 결핍과 고통을 들여다보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는 저자는 그 시간들을“인간 존재의 비극적 운명에 무너지지 않고 싸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를 많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序文 참조) 저자의 바람대로 18대 대통령 선거가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큰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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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연구(field work)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류학에서조차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암체어(armchair) 연구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연구가, 단지 그 이유로 무시를 당해야할 이유는 없다. 제임스 프레이저 같은 경우 바로 그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의 저작이 가지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연구실 안에서만 있어서는 결코 알 수 없고 잡아낼 수 없는 현장의 모습과 소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자들은 현장에 가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불편하기도 하고, 또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한 정치학 교수가 칠순을 기념하여 출판하는 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기존의 논문을 묶어내거나 제자들의 쪽글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야 하는가를 현장을 통해 느끼고 정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쉽지 않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 사회의 '상처'가 너무나 심각해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날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가 갑자기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복지국가를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필자가 이를 좋게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정당들 간에 존재했던 어떤 신념이나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미 상처받고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사회집단들의 규모가 커지고 이들의 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된 상황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11쪽)
실제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리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지만 슬로건만 있을 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심지어 여당의 경우 이젠 경제민주화라는 슬로건마저 철회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아마도 제대로된 정책은 디테일해야만 하지만 정략은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애초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 복지는 여전히 '수혜'로서 이야기되고,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의 후보, 무소속의 후보조차도 복지를 '베풀어 주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건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 윤리적 기반"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복지 정책과 제도가 성장주의의 잔여 범주로 실현될 때, 복지 수혜에 대한 대가는 사회 낙오자 내지 열패자라는 낙인이고, 그로 인해 수혜자는 경제적 능력과 아울러 사회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48쪽)
미국에서 미혼모에 대한 복지 제공을 반대하면서 '도덕'이 괴상한 무기가 되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복지'수혜'의 딱지는 도덕적 비판의 기준이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재산이나 성별, 출신과는 상관이 없이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민권이 비경제적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경제 과정이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 부여되는 가치와는 독립적으로, 다시 말해 시장의 변덕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은 무조건적이기도 하다. 즉 시민권은 사회의 성원이기 때문에 권리를 부여받는 것(그러므로 동시에 의무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126쪽)
문제는 이 원칙이 경제 앞에서는 무력하게 주저앉고 만다는 데 있다. 다시 반복되는 말이지만, 아마도 그건 경제적 무능이 곧바로 '비도덕적인 삶'으로 치환되는 사회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식은 외부에서 강압적으로 주입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그 인식을 강화하고 재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경제가 도덕은 물론 정치마저 삼켜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시장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으로 무력하게 끝나야만 하는 것일까? 이젠 더 이상 정치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글쎄. 본문 중의 "이슈가 되어야 할 것이 이슈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갈등이나 이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슈화하지 않는 또는 못하게 하는, 다시 말해 정책 결정의 사안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나 영향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118쪽)라는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고 선언했던 대통령의 행위마저 실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책에도 인용되었던 독일 총리 메르켈의 말을 다시 한 번 옮기면 "정치는 시장의 논리를 그대로 추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자율적인 논리를 갖는다."
경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시장 또한 정치적인 것이다. 성장이든 시장 효율성이든 그것은 사회적 힘의 관계와 가치가 반영된 정치적 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121쪽)
이 사회의 모든 것이 정치성을 띠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인가?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이 몇 년 사이 괴멸해버린 지금,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가 무엇인지는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즉 이 '괴멸', 그러니까 기존의 '진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나 갖추지 못했던 그것이 지금의 폐허 속에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현실의 삶과 유리된 조건 아래 의식화되면서 갖게 된 과잉 이념화된 사고방식과 도덕적 우월 의식은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에 비례해 부정적 효과를 더 크게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2쪽)
삶과 유리되지 않은 정치. 노동자가 가입하는 노동자 정당. 환경 운동가가 가입하는 환경 정당. 여성들이 가입하는 여성 정당. 정당과 당원의 괴리가 없이 시작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조금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외침은, 사실 생각해보면 수없이 반복되어왔던 수사에 불과하다(그렇다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았다는 말인가?). "정당의 공적 조직이 아니라, 캠프가 대통령을 만들고 청와대를 지배하고 정부를 주도"(123쪽)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지금 이 구도 속에서는 제대로된 정당 정치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구태 정치 타파를 이야기하는 후보조차도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그야말로 순진한 수준(혹은 위험한 수준)의 말을 하지 않았던가. 책에 기록된 힘겨운 현실들을 접하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제대로된 정당 정치를 위해 폐허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
대규모 제조업 생산 체제가 아닌 지식, 정보 기술 중심 생산 체제가 주도하는 오늘의 경제적 생산 체제와 국제경쟁력을 요구하는 경제환경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160~161쪽)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의 저 말에는 동감을 하지 못하겠다. 누구나 쉽게 하는, 이제는 클리셰처럼 되어버린 말이지만, 가만이 뜯어볼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지식/정보 기술 중심 생산 체제와 얼마나 연관이 있을까? 이 둘을 연관 짓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차별,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극한의 투쟁(울산을 보라)이 왜 제조업 생산직에서 주로 벌어지는 것일까? 이런 표현과 말에 대해, 다시 심각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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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장집 교수의 노동현장 탐방기라 봐도 무방하다 그동안 신문 혹은 다른 미디어에서 최장집 교수의 글을 접할 때 마다 조금은 이상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런 이상주의적 사고로 대학에만 있으면 현실 감각이 조금은 부족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최장집 교수의 열정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 그는 그런 독자는 물론 자신에게 부족할 지도 모르는 현장에 얻는 실질적 지식에 대해서도 항상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적은 분량이지만 일용직 노동자 문제, 현대 자동차의 노동 없는 생산 체제 문제, 봉제 공장, 재래시장. 농민, 이주 노동자, 청년 실업 등 현재 우리 나라가 안고 있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다 다루고 있다 아마도 최장집 교수의 통찰력이 아니였다면 이렇게 거시적이기도 하도 미시적이기도한 복잡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렇게 짧은 분량에 핵심적으로 꿰뚫어 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도 젊은 세대의 입을 빌어 평가하고 있는 부분을 보며 역시나 최장집 교수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모든 것은 시스템 즉 구조적인 문제이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대권을 쥐게 될 정치인에게 국민적 관심이 모아 지고 있는데 실상 국정 운영 시스템과 사회 복지에 대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보수적 대통령이 집권하다고 하여도 급격히 복지정책이 쇠퇴하지 않을 것이고 진보 대통령이 집권하게 된다고 해도 지금의 보수 신문들이 외치는 것처럼 국가 위기 사태가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직 제대로 된 시민의 권리가 보장 되는 국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 정치가 우선되어야 함은 일견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근본적 이유를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최장집 교수는 이 책에서 노동과 민주주의를 현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한 단락이 끝나면 버트란드 러셀, 조지 오웰 등의 글을 싣고 있는데 그 중 최장집 교수의 생각과 가장 일치되고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을 옮기며 서평을 마친다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부자들에겐 충격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여가가 주어지면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평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런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 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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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노동이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들었다. 특이한 책 포장을 하고 있는 이 책을 여는 독특한 과정을 통하여, 책의 내용을 만나자 그 의문은 금새 풀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70%가 노동자이고, 엄청난 수로 증가하고 있는 자영업자들 또한 본인 혼자거나 가족들의 노동만으로 운영되는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라는 현실을 생각하면 노동이 없는 민주주의란 이 나라에 사는 국민들 대부분의 삶의 현실을 외면하는 민주주의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 책에서 최장집교수는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를 일컷는 다른 일반적인 용어 즉 서민이라는 말을 두고 왜 하필이면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그것은 서민이나 빈부격차에 시달리는 사람들, 1%에 대치되는 99%등으로 표현되는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들과 그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이라는 어쩌면 거창해보이는 용어는 이념적 편향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노동. 즉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들여다보기 위한 시선의 차원(퍼스펙티브)을 확보하기 위한 용어인 셈이다.
올바른 민주주의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따른 요구들이 제대로 반영되는 사회를 요구한다. 그러지 못한 사회는 아무리 멋진 용어로 포장을 하더라도 그 사회의 삶의 구성원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일 것이다. 민주화를 달성한 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외형적으로 많이 달성되었다고 하지만, 일견 제도적인 발전으로 보이는 민주화의 외피를 들추어보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아직 민주적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필이면 외형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그 시기에 밀어닥친 IMF외환위기가 노동이 소외된 민주주의를 가져온 큰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가장 큰 내용중 하나가 노동의 유연화인데, 이것이야말로 노동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함과, 동일한 노동을 함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크게 나는 현실은 우리나라에 중산층이 무너지는 결과를 나았고, 민주주의가 그 외형적 목소리와 내부의 실정이 다른 현실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일 것이다.
이 두텁지 않은 책은 해외 주요대학과 국내의 주요보직을 거친 노학자가 노동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실제로 보고 느낀것을 기록한 내용들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복잡하지 않은 용어들로 누구나 쉽게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만한 명코쾌한 대답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 답은 명쾌하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득하게 먼길을 가야만 할것 같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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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읽고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진정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해야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기도 한다.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마음은 꿀떡 같지만 막상 실현시켜 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와의 격차가 벌어지게 되고, 신분이 불안하여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사회보장제도도 아직은 완전하지 못한 그래서 없는 사람들은 생활하기가 팍팍하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인 것이다. 이에 대한 적극적이고도 실질적인 대책이 나와서 정책으로 바로 실현이 되어야 하지만 많은 걸림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시 아직도 우리나라는 가진 자들 즉, 재벌이나 대기업 등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이 시간에도 각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 봉제 공장 노동자들, 기초생활 수급자들, 이주 노동자들, 재래시장 상인들, 농민과 청년 비정규직, 신용 불량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중하층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 노동자들의 공헌이 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당당하게 이런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 시행이 따라야 함은 분명하다. 이런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큰 파급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계층의 사람들을 배제시킨다면 당연히 전체 사회 이익에도 크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앞으로는 바로 이와 같은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최우선으로 실시하녀 당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칠순을 노 정치학자인 저자가 칠순을 기념해서 묶어냈다고 하는 자그마한 책이지만 그 의미는 어떤 큰 책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직접 찾아가서 만나 대화하고,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현장감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노동자 등 중하위권들이 아무리 외쳐 봐도 이것이 정책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작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삶이 괜찮으니까 정말 소홀하기 쉬운 노동자들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 현실에의 삶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기록한 책이기에 그 만큼 주는 영향이 큰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자아 존중과 긍지, 삶의 목적을 향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그런 멋진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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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 않은 내용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최장집 님의 신간을 이제야 펼쳐봤다.
민주주의와 비결정 실제 정책으로 나타나서 우리가 가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결정들이란 사회의 다원적 요구와 이익 가운데 다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슈가 되어야 할 것이 이슈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갈등이나 이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슈화하지 않는 또는 못하게 하는, 다시 말해 정책 결정의 사안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나 영향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간 정당들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정부로 투입하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어떤 대통령이든 정당을 통해 통치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집권 이후 정당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정부는 정당의 정부와는 거리가 먼 대통령 개인의 사인화된 정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 체제에서 개인이 생존 수단을 잃어버릴 때 처음에는 가족, 다음에는 공동체 내 여러 형태의 사적 그물망,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안 될 때 마지막으로 국가가 개입하는 구조이다. 즉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경우는 진정으로 빈곤 상태로 떨어졌을 때이며, 그럴 경우 보호 대상자는 자신의 무능력과 나태함이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인식과 함께,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경제성장과 시장 효율성의 가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에 대응하는 인간주의적 가치를 정립하지 않고서는 복지국가로의 질적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복지 정책과 제도가 성장주의의 잔여 범주로 실현될 때, 복지 수혜에 대한 대가는 사회 낙오자 내지 열패자라는 낙인이고, 그로 인해 수혜자는 경제적 능력과 아울러 사회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지역의 자활 센터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은, 복지 정책과 관련해 정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정당은 서민들의 생활 현실에 뿌리를 내린 적도 없고, 이를 향상하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이런 조건이 지속되는 한 복지가 사회적 시민권의 위상을 갖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버려진 정당, 시민....그리고 남은 건 지배 엘리트들간의 권력을 둘러싼 투쟁 뿐....
이번 총선과 대선을 겪으며 느끼게 된 점이다.
야당은 좌나 우를 따지기 전에 대중속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
거대 담론에 휩쓸린 슬로건 보다 미시적인 측면을 봐야 한다.
IMF 위기를 겪으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 휩쓸려버린 정권교체기를 시민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아직 대다수의 시민들은 자신을 대변해 줄 정당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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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동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노동은 개인이 살아갈 수 있는 근본이자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힘이다. 개인이 삶을 꾸리기 위해서도, 그리고 중소기업이나 재벌 대기업이나 기업이 존재하기 위해서도 노동은 필수불가결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도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회도 민주주의도 노동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동이 없는 사회이다. 노동자를 열외자로 배제한다. 노동 없는 경제, 노동 없는 시장으로 달려 나간다. 그렇다 보니 개인의 삶도 경제도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저자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중요 특징으로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정치 참여와 결사의 자유에 힘입어 사회 여러 세력과 집단들이 정당의 형태로 조직되고, 이들이 제도화된 정치과정 내에서 갈등을 해결하려 경쟁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노동이 민주주의의 정치과정으로 들어와 집단적 주체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리하여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는 시민들로부터 냉소와 불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정치과정으로 들어가지 못한 노동 없는 현장을 찾아 직접 노동자들의 소리를 듣는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인력시장이 열리는 성남시 수진리 고개 일원과 그 인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장위동 봉제 공장 밀집 지역, 전주 덕진의 자활 센터, 공덕동 재래시장, 청년들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지방대, 이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의 비닐하우스 농장 등에서 노동자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하층 시민으로서 결핍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성장 일변도 경제 정책의 성공에 따라오는 부작용들인 실업 증가, 취업의 어려움, 정규직․비정규직으로서의 노동시장 양극화, 소득분배 구조 악화 등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이다. 앞 세대와는 달리, 청년유니온 조직자들이 운동을 조직하게 된 동인과 추진력은, 그들이 직면하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실제 생활 경험으로부터 나온, 자신과 동료들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의 운동은 실제적이고 또 실용적이었다. … 중략 … 청년유니온 활동가를 통해 받은 인상은, 이념과 정파에 의해 계도된 과거의 노동운동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환상에 빠져 있지 않았고 철저하게 실제의 현실과 대면하고 있었다. 이런 절제된 태도야말로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발전에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기에, 그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74-77쪽) 저자는 노동 없는 현장의 청년들한테서 희망을 본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성장 일변도 경제 정책의 부작용을 전면적으로 감당하고 있거니와 그것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적 시민권 개념 도입을 주장한다. 사회적 시민권은 권리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사회 내로 포섭 또는 통합하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시민권에 기초를 둔 접근은 복지를 위해서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지란 사회나 국가가 의당 시민에게 부여해야 할 수혜이므로 시민은 그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을 갖게 하는 한편, 수혜자 개인으로 하여금 자아 존중과 긍지, 삶의 목적과 효능을 견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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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의 작은 책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예전에 뉴스에서 그의 '사상검증'에 대한 뉴스를 듣긴하였지만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군사독재정권과 사이비 문민정부가 물러난 후 민중들의 선거혁명으로 이 땅에 민주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세상이 천지개벽 될 줄 알았다. 물론 많은 변화가 있긴 했다. 대학 캠퍼스에 페퍼포그가 들어와서 지랄탄을 쏘거나, 물 채운 욕조에 머리 쑤셔박는 일은 없어졌다. '탁'치니 '억'하고 죽게되는 학생들도 이제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인력시장의 일용직 노동자, 봉제 공장 노동자, 이주 노동자, 재래시장 상인들, 농민과 청년 비정규직 그리고 신용불량자 등과 같은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게 된다면, 이러한 민주주의는 얼마나 불안정하고 기형적인 모습인가? 노동은 모든 사회 구조물의 기반을 이루는 힘으로 경제성장도 시장도 재벌 대기업도, 그리고 민주 정부도 모두 노동에 기반을 두고 서있다. 따라서 노동의 위기를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위기의 한국 경제,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한국 사회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과 같다. 노동없는 경제, 노동 없는 시장으로 달려 나가는 한국 사회의 '바닥으로의 질주'가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유지될 수 없다고 고희를 맞은 노 정치학자는 강조한다. 앞으로 우리가 선택할 정권은 추상적인 담론이나 도덕적 명분을 앞세우는 집단이 아니라 민중들의 참담한 경제적인 현실을 개선할 구체적인 실천의지를 가진 세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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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이 몇 명이고 포춘지 5백 대 기업들의 이익이 얼마인지로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지, 손님에게 받은 팀으로 살아가는 웨이트리스가 일자리 잃을 걱정을 하지 않고도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낼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제를 만들려 한다."
_2008년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중에서.
1987년 민주화는 어떻게 보수적으로 종결되었으며, 지금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노동이 배제된 정치는 어떤 상황을 불러오고 있는지. 등의 주장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던 최장집교수께서 신간을 내셨다.
책의 필자는, 이번 책에서 실제 정치에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바들을 기록하고 있다. 새벽 성남의 한 인력시장에 나온 일용직 노동자로 시작해 장위동의 봉제 공장 노동자들, 현대자동차 대기업 노동자를 거쳐 전주의 기초 생활 보장 수급자들과 경기도의 이주 노동자, 공덕동의 재래시장 상인들, 사회 곳곳의 농민과 청년 비정규직, 신용 불량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하층의 삶이었다. 노동의 시민권이 정당체제에서 흐려지고 배제될 때, 그리하여 그들이 공동체에서 해체되면 단순히 노동자만 사회에서 배제 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 전체의 주요 이익 모두가 배제 될 수 밖에 없음을, 책은 보여 준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진보정치의 실종으로 인한 현재 노동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그렇다고 그간 진보정치가 노동의제를 책임감 있게 이끌어 갔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그나마 노동문제를 쟁점화, 갈등화 시켰으며, 앞으로 진보의 재구성 과정에 노동문제에 대한 지난 과정의 평가와 실천적, 현실적 논의가 동반되리라 믿고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진보정당의 역할, 특히나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깨 해 나가는 진보정당운동은 어때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의 조직과 역할은 시민의 실생활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부응해서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과 그렇지 않고서 진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시에 정책이슈와 담론들이 거대한 이념적 구호가 아닌 사회 경제적 문제를 실제로 다룰수 있도록 현실화, 구체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된 점.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책 제목이 솔직하다.
200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많지 않은 분량이니 한 번씩들 읽어보시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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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60년의 기간 동안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단기간 경제대국을 이뤄낸 나라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모델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성장의 빛에 가려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가냘픈 목소리가 여전히 허공을 메운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는 민주화 운동이후 집권한 정치인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이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강연과 신문사 기고 글을 정리해 이야기하고 있다. 열 명의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해 나라를 다스렸고, 18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민주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진보해 가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어떤 진보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문제에 관해선 역대 정부가 모두 ‘실패’했다고 말한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나빠진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한국 민주화에서 학생운동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들이 그 뒤 정치인이 되고 진보 정당을 하고 사회운동을 주도한 것이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떤 실체적 혜택을 주었고, 이들을 위한 정치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 무엇을 기여했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22쪽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학생운동의 역사적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실제 현실의 삶과 유리된 조건 아래에서 이념적으로만 과잉된 사고방식을 낳게 되었고 도덕적 우월 의식을 품은 체 시간이 지속될수록 부정적인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깊은 동의와 깨달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한 번도 결합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면에서 의식과 행동은 밀접히 연관되었을 때 커다란 파급력을 지닌 결과를 이뤄낼 수 있지만 각각의 목표를 쫓아 행동했을 때 알맹이 없는 껍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은 일용직 노동자, 현대차 노조, 장위동 봉제 공장의 노동자들, 자활센터, 재래시장, 농민, 청년, 이주 노동자, 신용불량자를 저자가 직접만나 인터뷰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안전망 부재와 정부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책의 끝부분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점에 대해서 노학자의 주장은 더욱 힘있게 다가온다.
노동자 없는 민주주의. 이것은 실체 없는 사상적 유희를 목적으로 할 뿐이다. 책의 중간에 삽입 된 베르돌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일부 내용은 한국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고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 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개선문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던가? ...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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