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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시집은 판이 끊어져서 서지사항으로도 안 뜨기에 글쓴님 다른 동시집에 이 글을 붙입니다. .. 사랑하는 마을 사랑하는 숲 ― 분교마을 아이들 《분교마을 아이들》 오승강 인간사 1984.5.5. 울엄마처럼 산이 날 키웠다. 슬픈 일이 있어 달려가면 엄마처럼 팔 벌려 포근히 날 안아 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새들이 불러 함께 함께 노래 불러 주었다. (산소년/3쪽) 여름철을 맞이하면 서울(도시)에 사는 분들은 으레 서울을 떠나 시골로 찾아갑니다. 그동안 서울에서 고되게 일하며 쌓인 때나 찌꺼기를 시골마실로 풀려고 합니다. 여름철에 시골마실을 하기보다는 다른 나라로 서울마실(도시여행)을 하는 분도 많습니다만, 하늘길을 날아 이웃나라에 갈 적에 그 나라 시골이나 숲을 누리려는 분도 무척 많습니다. 해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엄청난 자동차 물결이 서울을 떠나 시골로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때에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갑작스런 자동차 물결에 들볶이기도 하고, 서울손님이 바닷가나 골짜기나 들판에 휙휙 버리고 가는 쓰레기에 몸살을 앓기도 하며, 골짜기에 있는 아름다운 돌에 고기를 구워먹은 자국을 보며 씁쓸하게 혀를 차기도 합니다. 포근히 안아 주는 숲을, 새랑 함께 노래하며 슬픔을 달래 주는 멧골을, 우리 마음을 가만히 적셔 주는 푸른바람을 부드러이 맞이하기 어려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학교 가는 길에 죽은 새 한 마리 보았다 머리가 짓이겨 있고 다리도 한 쪽이 끊겨 버린 채 다니는 길 복판에 버려져 있었다.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하였을까? 누가 그 조그만 새를 그렇게 무참히 죽였을까? 공부시간에도 죽은 새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무들에게 처져 살그머니 죽은 새를 보듬어 쥐고 햇빛이 잘드는 곳에 묻어 주었다. 싸리꽃도 꺾어 그 위에 놓아 두었다. (죽은 새) 강릉에서 안동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둘 있습니다. 이 시외버스는 건널목이 없는 빠른길(고속도로)을 따라 빙 돌아서 달려요. 가까운 길보다는 빠르다는 길로 가야 외려 일찍 닿을 시외버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빠른길로 달릴 적에는 그냥 지나치는 고장이 많습니다. 들르지도 거치지도 서지도 않고 지나가는 고장이 수두룩한 셈입니다. 안동에서 영양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고 반나절쯤 기다리던 어느 날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이 앉는 바깥마루(야외대합실)에서 가만히 구름바라기를 하는데, 아홉 살 아이가 저를 부르면서 손가락으로 어디를 가리킵니다. “아버지, 저기 봐요. 제비가 죽었어.” “응? 제비가 죽었다고?” “응. 죽어서 깃털하고 뼈만 남았어.” 아이가 가리킨 곳을 올려다보니 참말 그렇습니다.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비는 그만 안동버스나루 한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제비 주검은 하나가 아닙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습니다. 곳곳이 제비 주검입니다. 웬 제비 주검이 이리도 많은가 하고 갸우뚱하다가 알아차립니다. 제비 주검이 있는 자리는 ‘속이 비치는 유리판이나 플라스틱판 지붕’입니다. 제비가 날아다니는 버릇을 헤아려 보건대 틀림없이 아주 날렵하게, 그야말로 빠르게 하늘을 갈라서 제 둥지로 돌아가 새끼 제비한테 먹이를 물리려 했을 텐데요, ‘속이 비치는 유리판이나 플라스틱판’을 그만 알아차리지 못했겠구나 싶습니다. 그대로 머리를 박고 그자리에서 숨을 거두었겠구나 싶어요. 이런 어미 제비 주검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비 주검을 올려다보다가 다른 생각이 하나 갈마들어요. 우리 집 아홉 살 어린이는 우리 시골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먹이는 어미 제비를 지난 아홉 해 동안 꼬박 지켜보았어요. 제비가 노래하는 소리도 솜씨좋게 따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골아이였으니 이내 제비 주검을 알아보면서 안타까이 여겨요. 저 주검이 제비인 줄 모른다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참새’쯤 되려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새 주검인지 아닌지 못 알아볼 수 있어요. 또는 새 주검이 있는지 없는지 아예 안 쳐다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 전깃불이 들어오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님도 누나도 모두 모두 만세를 불렀어요 녹음기가 들어오고 텔레비젼이 들어오고 우리 마을이 갑자기 도시같아 보였어요. 텔레비젼에서는 좋은 집만 나오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만 나오고 맛있는 과자들을 보여 주었어요. 농사짓는 사람들이 나올 때는 거지같아 보였어요. 춘화네 오빠도 우리 누나도 우리 동네 모든 형과 누나들의 눈빛도 슬퍼 보였어요. 보리밭을 그처럼 잘 매던 누나들, 나뭇짐을 지고도 그처럼 잘 달리던 형들. 텔레비젼이 우리 누나 도시에 데려 갔어요. 텔레비젼이 춘화네 오빠 도시에 데려 갔어요. 보기 싫은 텔레비젼이 바보 같은 텔레비젼이 (텔레비젼/32∼33쪽) 서울에는 일찌감치 전기가 들어갔으니 시큰둥할 수 있으나, 웬만한 시골은 1980년대에도 전기가 안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전기가 들어간 시골도 많고, 2000년대가 다 되어서야 빨래틀(세탁기)을 집안에 들인 시골도 제법 됩니다. 전남 고흥 어느 마을은 2000년대를 지나고서야 ‘마을 빨래터에서 더는 빨래를 하지 않았다’고, 그때서야 집집마다 빨래틀을 돌렸다고 해요. 그때까지는 할머니들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빨래터에 나와서 손빨래를 하셨다더군요. 1990년대에도 텔레비전이 없는 집이 있은 줄 떠올릴 서울 이웃은 얼마나 될까요? 더 따지고 본다면, 굳이 텔레비전이 없어도 아름다운 숲이며 하늘이며 들이며 바다가 좋은, 놀거리에 볼거리에 얘깃거리가 넘쳤던 옛날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라디오하고 텔레비전을 앞세운 물질문명이 시골로 치고 들어가면서 마을마다 오랫동안 흐르던 일노래나 놀이노래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 구석구석으로 라디오하고 텔레비전이 번지면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얼른 이 시골구석을 떠나 번듯한 서울로 가야지!’ 하는 생각을 품었다고 할 만해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요즈음은 살짝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큰틀은 매한가지인데요,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또 유튜브에서 흐르는 ‘서울’을 살피면 온갖 물질문명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쓰레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소비’를 할 뿐, ‘생산’을 하지 않을 뿐더러 ‘소비한 것을 처리하는 일’도 도시 바깥으로 내보냅니다. 쓰레기처리장이나 폐수처리장은 다 서울 바깥이에요. 발전소도 도시 한복판이 아니라 시골 한복판에 세워서 끝없는 송전탑으로 도시까지 이을 뿐입니다. 핵발전소하고 핵발전소폐기장도 도시하고 가장 먼 데에 있지요. 상성이 아버지도 농사 지으시고, 우리 아버지도 농사 지으시고, 우리들 아버지 모두 농사 지으시고. 우리들이 보는 그림책 안에는 밀짚모자 쓰고 무릎까지 걷어 올린 옷 입고 논바닥에 엎드려 있는 농부 아저씨가 있었다. 신사복을 입은 아저씨의 그림과 선생님의 그림과 광부 아저씨의 그림, 기술자 아저씨의 그림들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니는 커서 이 중에 뭐 될라노? 상성이는 내게 물었다. 나는 신사복 입은 아저씨의 그림을 짚었고 상성이는 선생님의 그림을 짚었다. 우리는 다같이 농부 아저씨의 그림을 보고 농부 봐라 하고 손가락질 하며 히히히 하고 웃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러나 그러나 진짜 내 마음에는 농부 아저씨의 그림에 신사복을 입혀 드리고 싶었다. 엎드린 아저씨의 허리를 두드려 드리고 싶었다. (그림책 속에/40∼41쪽) 1984년에 태어난 동시집 《분교마을 아이들》(오승강, 인간사, 1984)이 있습니다. 이 동시집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습니다.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나 안동교대에서 배움길을 걷고는, 경북 시골 어린이하고 마주하면서 삶을 들려주고 가르친 오승강 님은 ‘분교가 있는 마을 어린이’가 얼마나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고, 못났다고 여기며,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가를 가슴시리게 돌아봅니다. 이 시골아이들이 저희 삶을 어느 한 가지도 즐겁거나 자랑스럽거나 보람차거나 아름답게 여기지 못하는 채 그저 시골을 재빨리 떠나 서울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여기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봅니다. 시골아이한테 시골살이며 시골사랑을 들려주고 싶지만, 신문도 교과서도 책도 방송도 하나같이 ‘서울은 멋진 곳, 시골은 구닥다리에 힘든 곳’이라고 그리는 모습에 고개를 떨굽니다. 그렇지만 붓을 쥐기로 합니다. 시골아이가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는 시골살림을 붓을 쥐어 글로 적기로 합니다. 누구보다 어린이 스스로 저희 삶을 기쁘게 사랑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씁니다. 바로 동시를 쓰지요. 어른을 바라보며 다그치듯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시골아이는 시골아이대로 삶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서울아이는 서울아이대로 슬기로운 마음으로 온누리를 품어 주기를 바라는 동시입니다. 어디에서 태어나서 자라든 제 텃마을을 마음 깊이 사랑하기를 바라는 동시예요. 출석을 부를 때마다 네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열 여덟 명이 함께 배우는 5, 6학년 교실. 영숙이는 오늘도 안 왔구나 선생님이 걱정스레 말씀하실 때 우리들은 보았어요 선생님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 방울을. 선생님도 우리들도 모두 알고 있어요. 영숙이가 읍내 높은 사람 집에 식모살이 갔다는 것을.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영숙이의 그 축 늘어진 모습을 (영숙이의 빈 자리/15∼16쪽) 동시를 쓰던 분교마을 교사 오승강 님이 나고 자란 경북 영양은 멧골자락이 깊은 고장입니다. 영양군은 85퍼센트에 이르는 곳이 멧골이라고 해요. 《분교마을 아이들》이라고 붙은 책이름입니다만, 가만히 따지면 ‘멧골마을’이나 ‘멧마을’ 아이들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멧골을 바라보면서 태어났고, 멧골을 마주하면서 자랐고, 멧골을 오르내리면서 살림을 지은 아이들 삶을 그린 동시라고 하겠어요. 오늘날 멧골은 어떤 곳일까요? 서울에서는 멧골을 관광지나 휴양지로 여기곤 하지만, 멧골사람으로 보자면 멧골은 관광지나 휴양지에 앞서 숲입니다. 작은 사람들이 작게 보금자리를 지어서 작게 살림을 가꾸는 숲마을입니다. 이 숲마을에는 올봄에도 제비가 찾아와서 둥지를 지었어요. 이 숲마을에는 올여름에도 제비가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돌보면서 하루 내내 신나게 노래를 베풉니다. 이 숲마을에는 고속도로나 기차가 지나가지 못할 뿐 아니라, 웬만한 공장조차 들어설 틈이 없다고 해요. 아마 이런저런 것이 들어서 본들, 이 고장에서는 돈벌이가 되기 어렵겠지요. 2020년대로 나아가는 오늘날 보기에 더없이 작아 보이고, 경제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고장인 듯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볼 수 있어요. 무시무시하게 내달린 경제성장이나 물질문명 사회를 너른 멧골숲이 막아 주었다고 할 만합니다. 끔찍한 막삽질이 들어서기 어렵도록 숲이 품어 준 고장이 바로 《분교마을 아이들》이란 동시집이 태어난 영양군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작으며 사랑스러운 손길로 마을을 짓고 숲을 돌보려는 작은 시골지기가 뿌리를 내려서 지내기에 알맞은 고장이 동시집이 태어난 영양군이며, 시골다운 시골을 바라면서 서울을 이제 떠나고 싶은 분한테는 대단히 멋지고 훌륭한 고장,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어린이가 먼먼 앞날을 푸르면서 맑게 꿈꾸면서 살아갈 만한 고장이 동시집 《분교마을 아이들》이 태어난 영양군인 셈입니다. 텔레비젼에서는 부모님 손 잡은 아이들 고궁으로 공원으로 놀이 가는 사진 보여 주고, 어린이들 모여 즐겁게 노는 사진 보여주고, …… 오늘은 어린이날. 아버지도 오늘 노는 날이제 잘 됐다 고추 심으러 가자. 어머니도 오늘 노는 날이제 빨리 빨리 아침 먹고 고추 심으러 가자. 아버지 오늘은 어린이날. 일하는 게 싫은 것은 아니고요 다른 날모다 저도 모르게 일하기가 싫어요. 괜히 괜히 속이 상해요 조금 전에 제 한눈 팔며 오늘은 어린이날인데 라고 말했을 때 어린이날이 밥 먹여 주나 하는 그 말씀보다 더 따뜻한 말 한 마디 듣고 싶었어요 (어린이날/17∼18쪽) 이오덕 어른(1925∼2003)은 경북 멧골마을 어린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나날을 살면서 멧골아이 글하고 그림을 차곡차곡 건사했습니다. 스스로 멧골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배움꽃을 작은 멧골학교에서 폈지요. 이런 땀방울은 《일하는 아이들》하고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같은 어린이 글모음으로 197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다만, 이오덕 어른이 돌본 아이들이 쓴 글로 엮은 책은 오랫동안 판이 끊어져야 했는데, 지난 2018년에 새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어요. 1950∼1970년대를 살던 멧골아이 목소리는 바로 오늘날이기에 더욱 값지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고 하는 대목을 눈여겨본 손길이 이 글모음을 되살렸습니다. 왜 이제 와서 예전 멧골아이 목소리를 되살릴까요? 고되게 일만 하면서 ‘촌놈’이란 손가락질까지 받던 그 멧골아이 목소리는 오늘날에 어떤 값이나 뜻이나 사랑일까요? 아버지는 니 공부 못하면 중학 안 보내 준다. 어머니도 니 공부 못하면 농사일이나 시킬란다. 아버지 어머니 농사일은 공부 못 하는 사람들만 하는 건가요? (농부가 되겠어요/18∼19쪽) 이제 한국에서는 ‘농고(농업고등학교)’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시골 중·고등학교에서 시골살이를 가르쳐서 시골에 뿌리를 내리는 길하고 동떨어집니다. 전남 고흥 같은 고장은 예전 농고를 ‘공장 보내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바꾸었다가, 요새는 ‘드론 기술자로 키우는 고등학교’로 바꿉니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도록,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도록, 하루빨리 시골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돈도 이름도 힘도 얻기를 바라는 얼거리입니다. 이러면서 전국 모든 시골 지자체는 ‘귀촌·귀농·귀어 지원제도’를 마련하지요. 시골로 돌아오도록 북돋운다는 지원제도를 살피면, ‘도시에서 살며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몇 억 원에 이르는 목돈이 있으면 ‘기업농·시설농’이 되도록 지원제도를 꾸려요. 농약·비닐·비료를 안 쓰고서, 더구나 기계조차 안 쓰고서 조그맣게 두 손으로 논밭을 일구며 조용히 살고 싶은 ‘귀촌인 지원제도’는 아직 어느 지자체에도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말이지요, 시골에 가서도 목돈으로 목돈을 벌 일거리를 꾀할 서울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테지만, 이보다는 두 손으로 흙을 빚고 나무를 베어 조그맣게 흙집을 지어서 단출히 살고 싶은 서울사람도 꽤 많습니다. 품이 든다면 기꺼이 품을 들여 멧골에서 나무를 하겠노라는,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일으켜 밥을 짓고 집안을 따뜻하게 하고 싶다는 서울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드넓은 숲을 드넓게 맞아들여서 드넓은 마음이 되고자 하는 서울사람도 많아요. 그리고 이러한 멧골살림이나 숲살림을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물려주어서, 앞으로 도시문명이나 물질문명이 없이도 즐겁고 씩씩하며 곱게 멧사람이나 숲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서울사람도 많고요. 누나에겐 할 말이 많아. 할 말이 너무 너무 많아. 누나는 말했지 “공장 가서 돈 많이 벌어 올께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우리 부자 되는 것 싫어?” 누나야! 공장이 있는 도시 얘길 들었어. 물도 돈 주고 사 먹고 일이 너무 힘들어 병만 생기기 쉽다는 얘ㅖ기, 누나보다 일 년 먼저 신발 공장 간 칠성이 누나에게 들었어. (누나에게/114쪽) 요새는 약을 공장에서 찍습니다만, 약으로 짓는 바탕은 모두 숲에서 옵니다. 풀잎이나 풀뿌리가 바로 약이 되어요. 꽃송이나 씨앗이나 나뭇잎이나 나무줄기나 나무뿌리가 바로 약이 됩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예부터 이 나라 바닷마을이나 섬마을에서는 후박나무 열매하고 줄기하고 잎을 고아서 ‘후박엿’을 고았고, 후박엿은 뱃일을 하는 뱃사람한테 둘도 없이 알뜰한 밥이었다고 합니다. 뭍사람이나 서울사람은 배를 몇 달이나 몇 해씩 탈 일이 없으니 후박엿이나 후박나무라는 이름을 모르기 일쑤라, 그만 ‘호박엿’으로 잘못 알려지곤 했는데요, 뱃멀미를 지울 뿐 아니라, 오랜 뱃길에서 몸을 튼튼히 건사하도록 이끄는 ‘약’이란 나무열매에 나뭇잎에 나무줄기였어요. 쌀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흙에서 나오지요. 농약이나 비료를 안 친 논에서 자란 나락하고, 농약이나 비료를 듬뿍 친 논에서 자란 나락은, 맛이나 결이 얼마나 다를까요? 어느 쪽이 몸에 이바지할까요? 서울사람은 무농약·자연농·친환경을 찾습니다. 이런 나락이나 푸성귀가 몸에 좋은 줄 알거든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농약도 비닐도 비료도 듬뿍 치려 합니다. 요새는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농약을 더 세게 치고요. 젊은 일손이 없으니 농약하고 비료하고 비닐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만, 젊은 일손을 모두 서울로 떠나보낸 탓이 크기도 할 테고, 젊은 일손을 새롭게 끌어들일 마음이 모자라다고 보아야 옳지 싶습니다. 이제는 어느 쪽이 삶길다운 삶길이 될는지 생각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나아갈 삶길은 어느 쪽이 아름다운가를 바로 오늘부터 새롭게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앞으로도 젊은 일손이 없는 시골·멧골로 나아갈는지, 앞으로는 젊은 일손이 아이를 기쁘게 낳아서 살아갈 보금자리가 될 시골·멧골로 나아갈는지, 더 늦기 앞서 이 대목을 깊이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무리 나쁜 땅에 심어 놓아도 민들레 씨앗은 민들레로 자라고 질경이 씨앗은 질경이 새 싹을 틔우네. 아무리 좋은 땅에서 자랐어도 민들레는 민들레꽃을 피우고 질경이는 질경이꽃을 피우네. 뿌리 내린 땅이 나쁜 곳이라고 실망하지 않네. 좋은 곳이라고 넘쳐나지도 않네. 열심히 열심히 살아갈 뿐이네. (민들레 씨앗은 민들레로 자라고/108쪽) 경북 영양이란 작은 멧골마을에서 나고 자라 작은 멧골마을 교사로 삶길을 걸은 오승강 님이 동시를 써서 묶은 뜻을 헤아려 봅니다. 이 작은 동시집이, 1984년에 나온 동시집이, 2020년대뿐 아니라 2050년대를 밝히는 새로운 노래꽃이 될 수 있는 바탕을 헤아려 봅니다. 이 작은 동시집을 오늘날 되살려서 읽거나 읽힐 값이나 뜻이나 보람이나 사랑이라고 한다면, 바로 ‘푸른사랑·푸른숲길’이지 싶습니다. 언제나 바라보는 멧골처럼 푸르게 피어나는 사랑입니다. 언제나 바라보는 멧골을 푸르게 가꾸는 저 새파란 하늘처럼 파랗게 자라나는 꿈입니다. 땅에서는 푸르고, 하늘에서는 파랗습니다. 멧골아이가 푸르고 튼튼한 몸이면서, 파랗게 해맑은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작은 동시집 《분교마을 아이들》이라고 느낍니다. 동시집을 가만히 읽으면, 오승강 님은 《분교마을 아이들》이라는 책으로 어린이를 끝까지 보듬고 싶은 마음이었지 싶습니다. 스스로 너무 딱하게 처지고 만 멧골아이를 언제까지나 얼싸안고 싶은 마음으로 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빛나는 새길은 바로 이곳 멧골자락 작은마을에서 피어난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서 쓴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동생은 늘 혼자 잠들어 있었어요 눈물자죽이 있는 뺨에는 파리들이 까맣게 앉아 있었어요. 빈 그릇이 밥 먹은 데로 널려 있는 부엌에서 식은 밥을 덜어 먹고 설겆이를 했어요. 깨어 우는 동생에게도 식은 밥을 먹였어요. 숙제를 하다 보면 동생은 공책 위로도 걸어 다니고 찢기도 해서 숙제할 수 없었어요. 칭얼대는 동생을 업어도 주고 달래다보면 언제나 해가 졌어요. 부엌에 동생을 데리고 앉아 저녁밥을 지으면 타오르는 불꽃마다 성난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어요. 저녁을 먹은 뒤에는 고추도 가렸어요. 한번도 내 말을 믿지 않는 선생님. 일학년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공책은 왜 찢었느냐고 회초리로 제 종아리를 때리는 선생님. 선생님은 모르셔요 제가 숙제 못 해간 이유를. 제가 집에서 보내는 하루 생활을. (선생님은 모르셔요/46∼47쪽) 아이들 삶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쓴 동시입니다. 아이들 앞길을 제대로 사랑하면서 쓴 동시입니다. 아이들 눈빛을 상냥하게 바라보면서 쓴 동시입니다. 아이들 앞날은 푸른숲이 우거진 마을에서 곱게 일어설 수 있으리라 여기면서 쓴 동시입니다. 잊혀지려는 멧골마을 이야기를 담은 동시집으로 그치지 않는 《분교마을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스라한 옛일을 따스히 실은 동시집으로 그칠 수 없는 《분교마을 아이들》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은 사라집니다. 좁은 칸에 바글바글 가두는 교실은 시골에도 서울에도 없습니다. 외려 서울에서는 커다란 학교나 학급을 쪼개어 작은 학교나 학급이 되도록 나아갑니다. 시골에서는 조그맣게 된 학교를 닫아거는 흐름이 되었습니다만, 거꾸로 서울에서는 학교 크기를 줄이려고 해요. 어떤 물결일까요? 옛날 시골 분교마냥 조그마한 학교로 달라지려는 서울 배움길이라면, 이런 배움길에는 어떤 속내가 흐를까요? 작은 학교에 작은 학급일수록 참다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얼거리라는 뜻입니다. 작은 학교에 작은 학급이 되어, 텃밭을 돌보고 나무를 심어 아끼는 배움마당을 펴려는 뜻입니다. 한 학급에 다섯이나 열 아이만 있어도 좋습니다. 가르치는 어른 숫자가 적어도 좋습니다. 두 학년은 하나로 묶어도 좋습니다. 한 학교에 열 아이가 다녀도 좋고, 다섯 아이가 다녀도 좋습니다. 조그마하지만 포근한 배움집이 되어, 말 그대로 “배우는 보금자리(집)”가 되는 학교가 되어, 멧골이나 시골이라는 뿌리를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나누는 흐름일 적에, 아이도 어른도 아름답게 살림꽃을 피울 수 있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어른들 모이시면 이런 촌학교에서 공부하면 나중에 높은 사람 될 수 없다고, 어른들 모이시면 이런 촌학교에서는 더 배울 것 없다고……. 경식이 서울 무슨 학교엔가 전학갔다. 활발하고 공부 잘하던 경식이. 오늘 경식이한테서 편지 왔다. 아이들은 조그만 일에도 촌놈이라 놀리고 외삼촌 집이지만 모두가 낯선 사람 늘 혼자 방안에만 앉아 있다고 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편지지에 남긴 거무죽죽한 눈물자욱을 보며 선생님도 아이들도 눈물이 핑 돌았다. 전학가며 가기 싫어 울던 경식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교문 밖을 나가던 경식이. (전학/106∼107쪽) 나중에 ‘큰사람’이 되어야 할 어린이일까요? 나중에 ‘아름사람(아름다운 사람)’이 되거나 ‘꽃사람(꽃처럼 곱고 눈부신 사람)’이 되면 즐거울 어린이일까요? 멧골에서는, 숲에서는 따로 꽃씨를 안 심어도 철철이 새로운 꽃이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한겨울에도 피고 지는 꽃이 있어요. 얼음을 뚫고서 솟아나는 꽃이 있지요. 멧골에서 태어나 자랄 수 있는 아이라면, 멧사람이 될 테고 숲사람이 될 테지요. 푸르디푸른 사람, 곧 푸른사람도 될 테고요. 하늘바라기를 하며 하늘사람이 됩니다. 꽃을 돌보며 꽃사람이 됩니다. 흙을 만지며 흙사람이 되고, 갖은 멧새하고 어울리면서 새사람이 되어요. 사랑하는 마을이 사랑스러운 숲이 되기를 바란 마음이 고루고루 흐르는 《분교마을 아이들》을 누구보다 멧골이웃이 먼저 읽고, 서울이웃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핀 웃음꽃으로 같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어제하고 모레를 새롭게 읽으며 다함께 푸른숲으로 깨어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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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숲노래 동시읽기 별빛아이 곁에서 길어올린 노래꽃 《내가 미운 날》 오승강 글 장경혜 그림 보리 2012.10.8. 도움반에 와서 / 이태나 공부해도 / 글자를 못 깨치는 아이들에게 / 이놈 돌머리들아 / 선생님이 한마디 하신 뒤로 / 아이들은 다툽니다. // 서로 제 머리가 / 더 단단한 돌머리라고 / 말다툼을 합니다. // 책상에 머리를 / 쾅쾅 박기도 하고 / 서로 박치기를 하기도 합니다. // 선생님 머리에도 / 박치기를 하면서 (돌머리 다툼/17쪽) 아이들이 툭탁거립니다. 아이들은 툭탁질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바로 책이나 영화에서 배웁니다. 책이나 영화는 이야기를 엮으려고 줄거리를 짤 적에 으레 툭탁질을 바탕으로 해요. ‘툭탁질’이라고 하는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한 말을 썼습니다만, 이 툭탁질은 싸우는 짓(전쟁)뿐 아니라 얽히는 모습(갈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책이나 영화는 사람들 눈을 끌려고 툭탁질을 어떻게 풀어내어 서로 하나가 되느냐 하는 실마리를 보여주려 하다 보니 때로는 좀 센 툭탁질을 보여주고, 우스꽝스러운 툭탁질도 보여주지요. 아이들은 실마리가 풀리는 길도 지켜보겠지만, 툭탁질에 마음이 끌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툭탁거릴 적에 나무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본 대로 배워서 고스란히 따라할 뿐이거든요. 이때에는 차분히 지켜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짜서 들려줍니다. 그런데 타이르는 말은 자칫 꾸지람이나 길고 따분한 수다가 될 수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짜서 들려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노래꽃이 떠오르더군요. 그냥 시나 동시가 아닌 ‘노래꽃’이란 이름으로 열여섯 줄을 짤막히 간추려서 들려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과자 한 봉지 / 교실에 들고 와서 // 동무들 보는 앞에 / 혼자서는 못 먹어 // 동무들에게 / 한 움큼씩 나눠 주었습니다. / 내 몫도 없이 /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과자 한 봉지/24쪽) 도움반에 온 날 / 남들 보기 부끄럽다고 / 엄마 아빠 얼굴에 먹칠했다고 / 나는 어머니에게 맞았습니다. (도움반에 온 날/42쪽) 좀처럼 오순도순 지내지 못한다 싶은 날에는 ‘오순도순’이란 이름으로 노래꽃을 써요. “북적이는 여름날 논 못 / 시끌시끌 노래판 여는 / 개구리 이 곁에 / 풀밭 풀벌레 // 물결치는 가을철 들판 / 쏴륵촤륵 춤판 짓는 / 나락에 참새에 / 햇발은 더욱 그윽”처럼 먼저 여덟 줄을 열고서 “펑펑대는 겨울빛 마을 / 사근사근 고요판 이룬 / 눈송이 눈사람 눈길 / 바람이랑 곰이랑 새근 // 도란도란 풀씨가 이야기 / 오순도순 깨어나 또 얘기 / 소근속닥 기지개 다시 모여 / 봄숲은 가만가만 어우러지지”처럼 여덟 줄을 마감합니다. 엽서 크기만큼 작은 쪽종이에 이렇게 열여섯 줄을 연필로 적어서 아이들한테 건넵니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밥을 소리내어 읽어 봅니다. 저도 아이들 뒤를 이어 새삼스레 소리내어 읽어 줍니다. 열여섯 줄 노래꽃은 얼마나 힘을 낼까요? 글쎄,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하나는 뚜렷이 느껴요. 아이들은 어버이나 어른이 저희한테 어떤 이야기밥을 들려주는가를 마음으로 알아차립니다. 어버이나 어른이 저희한테 쓰는 말을 고스란히 마음에 새겨서 나중에 반드시 씁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너 그러지 말랬지!” 하고 나무라면, 아이는 저보다 어른 동생이나 다른 동무한테 “너 그러지 말랬지!” 하고 똑같이 소리지르지요. 어버이가 아이 곁에서 나무를 보며 “아아, 참 아름답네. 곱네. 사랑스럽네.” 하고 속삭이면 아이는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어느 자리에서 “참 아름답네요. 곱네요. 사랑스럽네요.” 같은 말을 문득 읊습니다. 아이들이 / 우리를 / 바보라고 합니다. // 선생님들도 / 우리를 / 바보라고 합니다. // 아이들이 / 우리 선생님을 / 바보라고 합니다. // 선생님들도 / 우리 선생님을 / 바보라고 합니다. (바보/56쪽) 동시라기보다는 노래꽃인 《내가 미운 날》(오승강, 보리, 2012)이 있습니다. 흔히 이 책을 동시집으로 여길 테지만, 굳이 동시라는 틀에 얽매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시쓴님 오승강 님은 삶을 노래하며 꽃으로 피우듯이 한 줄씩 적어 내려갔구나 싶거든요. 퍽 오래도록 멧골마을 분교에서 샘님(교사)으로 일하던 오승강 님은 별빛칸(특수 학급)을 맡아서 별빛아이를 맡아서 돌보는 길을 걸었다고 해요. 이때 겪거나 마주한 배움살림을 가만가만 노래처럼 여미어 《내가 미운 날》을 묶었다지요. 공부하다가도 / 동무가 오줌 누러 가면 / 우리는 모두 벌떡 일어나 / 오줌 누러 갑니다. // 동무가 물 마시러 가면 / 모두 물 마시러 가고 / 손 씻으러 가면 / 모두 손 씻으러 갑니다. (참지 못합니다/88쪽) ‘별빛칸’이나 ‘별빛아이’ 같은 이름을 쓰는 분은 아직 없지 싶습니다만, 《내가 미운 날》을 읽는 내내 ‘특수 학급’도 ‘장애아’도 아닌, 참으로 별빛 같은 마음인 아이들이 별빛 같은 하루를 별빛 같은 어른 곁에서 누리네 하고 느꼈어요. 학교 안팎을 돌아보면 ‘일반인·일반 학급’이나 ‘장애아·장애 학급(특수 학급·특수반)’으로 가르는데요, ‘일반인’이란 이름도 ‘특수반’이란 이름도 몹시 어설프거나 어정쩡하지 싶습니다. 무엇이 ‘일반’이거나 ‘특수’일까요? 아이를 이런 이름으로 갈라도 될까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이런 이름을 익숙하게 받아들여도 아름다울까요? 서울 아이 유리는 이상한 아이. / 냇가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 큰 바위를 보며 / 이건 천만 원짜리다 말합니다 …… 그때마다 우리는 크게 웃었습니다. / 돌도 나무도 풀도 모두 돈으로 보는 / 그것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 많은 돈으로 보는 유리를 / 우리는 이상한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 서울에서는 정말 그렇다고 / 자기 집 마당에 그런 것을 사 키운다고 / 유리는 자꾸 말하지만 /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 그런 것을 돈 주고 사는 / 유리 아버지까지 / 우리는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이상한 아이/116∼117쪽) 노래꽃 ‘이상한 아이’를 읽으며 무릎을 쳤습니다. 그래요, 참으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얄궂은 물결에 크게 휩쓸린 삶입니다. 돌 하나조차, 나무 한 그루마저, 값으로 이래저래 따집니다. 이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페트병에 담은 물을 먹는샘물이란 이름을 붙여서 마십니다만, 흐르는 냇물을 길어서 마시지 않고 페트병에 담아서 마시는 얼거리는 참으로 얄궂지 않을까요? 흐르는 결대로 맑은 물이 우리 몸에 좋다면, 온갖 공장이 나라 곳곳에 기계설비를 들여서 맑은 물을 페트병에 담아서 파는 일을 하도록 부추길 노릇이 아닌, 나라 어느 냇물이든 맑도록 다스려서, 나라 어느 곳에서도 맑은 냇물이며 샘물을 ‘그냥(거저로)’ 누릴 수 있는 터로 가꿀 노릇이 아닐까요? 깊은 숲에 들어가면서도 페트병에 담은 물을 챙기는 분이 많아요. 싱그러운 골짝물을 코앞에 두고서 페트병 물을 홀짝이는 분이 많아요.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길들었을까요? 우리는 언제 이 길든 버릇을 바꿀 만할까요? 강아지풀은 강아지풀 / 망초꽃은 망초꽃 / 서울에서도 / 영양에서도 / 제 얼굴 / 제 이름은 잊지 않아요. (씨앗은 알고 있어요/139쪽) 경상도 영양은 깊디깊은 멧골입니다. 이 깊디깊은 멧골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서 서울이든 대구이든 안동이든 나아가야 ‘성공’으로 여기는 목소리가 많거나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승강 님은 바로 이 깊디깊은 멧골이야말로 아름다운 터전이라고 여겨, 이 멧골자락 분교 어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고 해요. 나중에는 별빛아이랑 손을 맞잡고 늘그막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제 샘님(교사)으로서 배움터를 떠났다고 하는데요, 앞으로는 어떤 어린이를 마주하면서 초롱초롱 눈빛으로 노래꽃을 길어올리는 어른이란 길을 가실는지 궁금합니다. 어디에서나 강아지풀이요 망초꽃이듯, 어디에서나 노래꽃으로 눈부실 이야기 한 자락을 기다립니다. 어디에서나 햇볕이요 바람이듯,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사랑이요 즐거운 노래가 될 글 한 줄을 새록새록 새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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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아릿한 마음을 시로 잘 표현해냈다. 아이들이 가격당한 상체기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듯 하다. 그런 상체기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아이다운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다. 요즘 세간에 시끌시끌하게 올라오는 기사들도 생각났다. 아이같이 순수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생각하기 화가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나쁜 사람들의 모습이 어쩌면 지킬앤 하이드처럼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내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릿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역시 짖굿게 그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은 이런 아이들을 위한 시와 동화를 쓰기에 참 적합한 직업이 아닌가라는 부러움도 든다. 그럼 나는 뭘했냐고? 그러게 난 뭐하고 있었을까? 그 선생님들처럼 부지런히 내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마음이 아픈 도움반 아이들일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오승강선생님께 참으로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만약 오승강 선생님이 이 글을 본다면 말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돈 오십 원]을 가지고 선생님에게 무언가 선물하고 싶어하는 도움반 친구 정운이. 정운이이기에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전하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정운이가 가지고 있는 단 돈 오십 원은 정운이가 가지고 있기에 아주 커다란 값어치를 지닌 돈이다.
[내가 쓰는 글자]라는 시를 보니 우리 아이 초등학교 1학년때 생각이 난다. 학교에 숙제를 해 가지고 가야하는데 틀린 글씨를 써 가지고 가야하는데 워낙 꼼꼼한 울 아들은 틀린 글씨 선생님이 써준 대로 간격에 맞추어 쓰느라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늦겠다. 어여가~~라고 해도 점 하나라도 제대로 찍었는지 확인하고 있던 모습이 그래서 내 울화통을 터트렸던 일이 생각난다. 도움반 아이가 아무리 써도 틀린 글씨라 괴로워하는 모습에 우리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물론 여기서 제대로 써야한다고 하는 이는 우리 아이와는 달리 선생님이지만 말이다.
[먹고 싶어요]라는 시는 교회에서 예배드릴때 봤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먹는걸 워낙 좋아했다. 이 책속의 아이처럼. 예배드리는 중 아이엄마들은 과자등을 사가지고 온다.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말고 조용히 앉아있으라는 뜻이다. 그럼 그 아이는 아이들앞에 과자만 쫓아다닌다. 그리곤 그 과자가 없어질때까지 과자앞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먹곤 했다. 그 엄마는 그 아이가 안스러워 매일 울며 기도하곤 했는데...
[눈물로 하는 말]은 우리작은 아이와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역시 형제들 중 막내다 보니 우리 아이 역시 둘 중 막내다보니 너무나 아이스러워 가족들 앞에서 무언가 중요한듯한 내 생각을 이야기할때 참 힘겹다. 그래서 눈물이 앞서는걸 막을수가 없다.
본반에 가서 소외받을가봐 본반을 두려워하는 아이, 선생님의 흰머리가 걱정되 선생님 어깨를 열심히 주물러 주는 아이, 그리고 도움반에 들어간 첫날 창피하다며 아이를 혼내던 엄마. 모두 모두 가슴아프고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