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의 속편으로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소유가 아닌 존재 지향적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나의 전반적인 삶의 태도를 바꾸어준 책에 보태어 '존재를 향한 단계'들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 기술>이 사랑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책이라면 <존재의 기술>은 존재하기 위한 기술을 기르기 위한 지침서인 것이다. |
|
에리히프롬 소유와존재를읽고 박찬국 교수님의 에리히프롬과의대화를읽었는데 이책을인용한부분이마음에와닿은느낌이강렬하여읽게되었다 프롬이 원래 이야기하려했던것이 여기에있는것같다 건전한사회 소유와존재 인간의마음 사랑의기술 환상의사슬너머 너희도신처럼되리라 자신을위한인간 프로이트 마르크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페르퀸트 니코마코스윤리학 스피노자 니체 융 도스토예프스키 |
|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나서 구매한 사람이 나 말고도 꽤 많을 것이다. 요즘은 우리의 존재를 굳이 자각하고 드러내지 않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소유물, 그것이 유형의 것이 아닌 무형의 것이라도 그것이 드러내는 특징을 통해 나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또 남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소유에 너무 목매여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며, 존재에 집중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생각해보고 싶다. |
|
'왜 사냐'는 질문은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살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사냐'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야하고 거기에 대답할 수 있도록 삶의 철학, 가치관을 쌓아나가야한다. 내가 욕구하는 것, 지향하는 삶이 나의 성장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절름발이로 만들어 목발에(소유하는 것에)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인지 구분해야한다.
우리가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살아가는데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늘 '깨어'있고 '자각'할 수 있도록 신경써야한다.
1. 거대한 사기; "인간을 위한 최대의 유용성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최대의 이윤에 대한 관심으로 운영하는 것을 ...인간의 복지와 내적 성장과 행복의, 인간 구원의 영역에서의 사기 말이다."
산업시대의 어두운 면을 해결하고자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정신분석법, 명상법, 행복 프로그램, 감수성 훈련 등 많은 프로그램들은 인간성의 심오한 변화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순간적인 증세의 개선, 원기 회복, 약간의 휴식만을 제공해줄 뿐이다.
삶이라는 것은 이러한 요법들에 둘러쌓여 현실에서 동떨어져 자신을 쉬게한다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태도를 가지고 삶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수반되어야 현실의 문제점을 자각할 수 있고 이를 고치고 해결하면서 변화할 수 있다. 예수, 스피노자, 마르크스 등 철인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는 설교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삶에 밀착하여 그것의 진실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2. 하찮은 이야기; "'어떻게 외롭지 않으면서 혼자 지낼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하찮은 대화의 기능이다."
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려면 홀로 현실과 맞서싸우며 고뇌하고 외로워하고 고민하고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떠들어대는 것이 시간 낭비일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들의 무력감, 패배주의, 회피, 물질주의 등 나쁜 생각들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굳이 설득하려고 하찮은 이야기에 끼어들지마라. 그들은 우리의 자유와 자기 자신이 되려는 용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행동에 대한 설명은 내 스스로에게 해야하는 것이다.
3. 무노력, 무고통; "기술의 진보는 육체적 에너지의 양을 감소시켰다. ...'훌륭한 삶은 노력하지 않는 삶'이 되어버렸다."
발전하는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자 한다면, 내 삶에서 고쳐야할 부분들을 바로잡으려면 그것들을 위해 노력하며, 고통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되야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노력하는 자는 행복에 다다르고 대다수의 (쉬고, 노는것에 빠져든)인간은 괴로움을 겪는 것이 삶의 운명이다.
4. "반권위주의"; "의지는 능동성을 기반으로 하고 변덕은 수동성을 기반으로 한다."
존재적 실존양식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야하기 때문에 자기 주체성, 능동성을 지녀야한다. 우리는 '의지'와 '변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의지는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이지만 변덕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심에서 생겨나는 심리이다.
예를 들어, 9시까지 출근시간을 꼭 지키라는 회사의 규율이 자신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어기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변덕이다. 나의 성장이나 발전하고는 상관없이 단순이 조직의 규율, 억압에 반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광기, 현실도피를 자유의지라고 합리화시킨다. 현실은 어느정도 인간에게 법칙을 부과한다. 그 법칙들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외로움을 이기지못해 떠들어댄다는 것에 깊은 공감을 했다. 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며, 가벼운 농담을 하며, 그들이 웃는 것을 보며 즐거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그 시간들이 어쩌면 다른 사람의 안좋은 생각이나 말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결정적으로 나 스스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시간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찮은 대화는 줄이는게 맞다고 느꼈다.
의지와 변덕을 구분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막연히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피하는 것은 자유 의지라기 보다는 권위에 대한 반발심이라는 것, 진정한 의지는 나의 내적 성장과 행복에 기반을 해야한다는 것을 잊지않아야겠다.
단순히 삶을 체험하고 즐겨라가 아니라 잘 살기위해 외롭고, 고민하고, 공부해야하는 고통들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
|
1. 솔직하지 않고서야 "의식적 플롯과 무의식적 플롯 사이의 불일치의 정도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억누를 필요가 없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아무런 비밀 플롯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스트레스를 받고, 외로움을 느끼며 삶을 괴로워하는 것은 내면의 플롯과 외면의 플롯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배려있는 척하고 나르시시적인 사람이 겸손한 척하고 허영심 많은 사람이 도덕적인 척을 하기 때문에, 실제 본 모습과 인간 관계를 맺는 본인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때 부족한 내면의 '나'를 질적으로 성장시켜 외면의 멋있는 '나'와 일치시킨다면 내적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다른 사람과 수많은 접촉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내적 갈등을 겪는 이유는 원래의 '나'와 타인을 대할 때의 '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어떤 부분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지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보며 갈등을 겪어야 나의 본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된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나 힘듦이 아니라 기쁨이다.
다음으로, '개성'이라는 것을 벗어던지고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나를 마주할 수 있어야한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심으로 우리는 물건이나 특정한 성격들을 내세우며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지만 그것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기껏해야 별것 아닌 차이들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오히려 개성이라는 것이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한할 수 있다. 진정한 '자기 인식'을 위해서 겉치레들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2. 황금을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사용'과 '사유'의 차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존재적 삶의 철학은 소유물을 등한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소유물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라는 것이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생존과 사냥을 위해 갖가지 도구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꼭 필요한 것들만 생산해서 사용했다. '소유물'과 '행위'의 비율을 1:100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 사람들은 행위에 비해 너무 많은 물건들이 펼쳐져있다. 또한 그 물건들에 의해 행위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현대 사회는 소유물과 행위의 비율을 100:1로 생각할 수 있다.
기계의 발명은 인간 행위의 다양성과 도전성을 크게 축소시켰다. 물론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기기의 발명이 인간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문제는 그것에 의존하게 만들어 나태, 태만, 비생산성을 부추기고 있다.
신분제도, 종교를 우상으로 삼아 숭배하던 시대를 지나 기계를 숭배하는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숭배하는 것들에 의지하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삶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나태지옥)
우리는 '돈'으로 이전에는 내가 직접 하거나 노력해야 했던 것들을 쉽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돈으로 음식을 사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이성을 유혹하고, 심지어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 재능을 착취할 수도 있게 되었다. 돈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돈 때문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한계에 늘 머물게 된다. 내가 노력하고 행동하여 얻어야 할 것들을 돈이 대신 얻어주기 때문이다.
소유한 것을 나의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면 나는 행위에 집중하게 되어 더 가지려는 소유욕이나 시기심을 가지기 보다는 나의 질적 성장에 집중하게 된다. 소유물이 아니라 나의 성장이 주된 관심사이기 때문에 사용한 물건은 언제든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 그래서 특정 물건에 대한 집착도 사라지게 된다. 소유물과 행위의 관계가 붙어있기 때문에 지금 행위하는 것 외에 다른 소유물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다.
소유한 것을 사용하여 나의 삶을 꾸려나가고 행위하고 즐거워하고 체험하고 성장하고 있느냐, 단지 이것 저것 모아 지루한 내 삶을 자극하고 이끌게하고 또 금세 나태함에 빠져 그것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황금이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비어갈 것이다.
; '소유냐 존재냐'를 정말 재미있게 읽고 후속작인 '존재의 기술'도 감명깊게 읽었다. 결국 핵심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면밀히 깨달아야 괴로움이 줄어들고 질적 성장에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는데 세상에 펼쳐진 수많은 물건, 광고, 의식들이 내 생각들을 가로막고 방해한다. 소유를 많이 할수록 소유물들이 나를 대신하기 때문에 내가 행동하고 체험하고 느끼는 반경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삶이 점점 수동적으로 바뀌게 된다.
소유한 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으면 질투심, 시기심은 끊임없이 피어나고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즐거움보다는 쾌락 뒤 공허함이 나를 애워싼다.
소유물들은 내가 체험하고 느끼고 발전하고 살아가는데 '사용'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면 집착이 사라지고 내가 행위하는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수영장을 묘사하는 사람과 직접 물에 뛰어든 사람의 질적 체험 차이는 비교가 불가하다.
나는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