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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인문주의와 저항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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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을 다루지 않는 인문학은 죽은 인문학이다. 살아 있는 인문학은 당연히 정치적인 저항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굳이 여러 지식인들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 유산을 돌아보면 된다. 사이드가 창도한 인문주의는 정치적인 저항의 의미를 중시한다. 그리고 사이드는 자신의 삶에서 이런 비판과 저항의 인문 정신을 구현했다. 탈식민주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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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을 다루지 않는 인문학은 죽은 인문학이다. 살아 있는 인문학은 당연히 정치적인 저항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굳이 여러 지식인들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 유산을 돌아보면 된다. 사이드가 창도한 인문주의는 정치적인 저항의 의미를 중시한다. 그리고 사이드는 자신의 삶에서 이런 비판과 저항의 인문 정신을 구현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이기에 앞서, 사이드는 우선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정치적 저항의 투사였다. 차이와 차별의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저항적 실천은 지식인들의 책무라는 점을 사이드는 몸소 보여준 것이다.

 

이 책 [저항의 인문학]은 사이드 생전에 펴낸 마지막 저작이다. 책에서 사이드는 쓸모 있는 실천으로서의 인문주의를 강조한다. 사이드가 강조하는 인문주의는 넓은 의미의 세속적 휴머니즘을 말하지 상아탑의 오만한 엘리트주의나 학위에 목매는 전문가주의를 일컫는 게 아니다. 세속적 인문주의는 일단 고정관념과 도그마에 대한 저항이다. 흑백의 고정관념은 인종차별, 배타주의, 분리주의의 토대가 되기에, 인문학자는 고착화되고 물화된 세계의 재현들을 전복하고 파괴해야 한다. 인문주의는 관료주의, 유럽중심주의, 가부장제, 전체주의, 본질주의에 대한 고집스런 저항이자 지적인 비판이다. 다시 말해서 '살아있는 인문주의'는 민족주의, 종교적 광신, 배타주의 등 아도르노가 '동일성의 사고'라고 부른 것들에 대한 저항을 지향한다. 

 

인문주의적 실천이 추구하는 목표는 인간 해방과 계몽의 행위이고, 이런 인문주의 문화의 핵심은 공존과 나눔이다. 이런 세속적 해방과 계몽의 행위자, 공존과 나눔의 실천자가 바로 인문학자나 작가와 같은 지식인들이다. 지식인은 역사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약자들을 대변할 책임이 있고, 권력을 향해 정의와 진실을 대변할 책임이 있다. 사이드는 세계의 문제와 타자의 고통에 무관심한 지식인은 진정한 지식인이 아니라고 보았다. 사이드는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고 박해와 고통을 증언해야 하는 지식인의 책무를 강조하고, 동시에 일부 지식인들의 정신적 속박과 식민주의 근성을 비판한다. 또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디어와 대중매체의 왜곡을 지적하면서 언론인들의 나태와 무지를 강도높게 비판한다.

 

사이드는 작가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과 공적 역할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비판적인 아마추어 독자들도 대안적인 지적 실천을 마련하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지한 독자는 언제나 그리고 이미 인문주의자다. 사이드는 모든 경우에서 주의 깊은 독해, 정밀한 독해와 수용을 옹호하는데, 진지한 독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전복하고 개혁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이런 텍스트적 해석은 수용과 저항의 변증법에 기반한다.   

 

z***a 2013.07.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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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저항의 인문학, 에드워드 W. 사이드 저, 마티, 201210
"[리뷰] 저항의 인문학, 에드워드 W. 사이드 저, 마티, 201210" 내용보기
에드워드 사이드의 마지막 저작물인 <저항의 인문학>(원제: 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은 "인문주의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야 하는가라는 절실한 질무에 대한 사이드의 답을 기록하여 놓은 것으로 사이드가 주장하는 인문주의는 비판의 정신임을 강조하며, 현실의 인문주의 내지 인문학의 그릇된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길 우려하며 "인간의 역사와 그 역사를 만든 인간의 노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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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의 마지막 저작물인 <저항의 인문학>(원제: 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은 "인문주의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야 하는가라는 절실한 질무에 대한 사이드의 답을 기록하여 놓은 것으로 사이드가 주장하는 인문주의는 비판의 정신임을 강조하며, 현실의 인문주의 내지 인문학의 그릇된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길 우려하며 "인간의 역사와 그 역사를 만든 인간의 노동과 행위를 다루며,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인간의 오독이나 오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문주의를 말하고 있다.

 

사이드는 서구중심의 인문주의 혹은 유럽중심의 인문주의가 빚어내는 현상들과 현실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말하고 있으며 미국인문주의가 이끄는 세계적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인문 주의에 대한 비판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고 잇으며 자신의 <오리엔탈리즘>이 전혀 오리엔탈에 대한 동조의 의식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드는 인문주의를 "저항의 정신이자 실천"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그 실천적 행위로 지시기인으로서의 비판을 거론한다. 사이드는 비판적 행위가 필요한 시점에 대해 말하길 " 이러한 상황 또는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왜 개인이나 집단이 침묵보다 글스기와 말하기를 더 선호하는 가라는 문제에 답하는 것은 지시기인과 작가가 공적 영역에 직면한 것을 구체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사회 정의와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며 (...) 자유란  문화적, 정치적, 지적, 경제적 발전과 관려뇐 선태지를 요구할 권리를 포함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개인과 집단의 존재, 그 존재 자체가 누군가를 침묵이 아닌 표명의 욕망으로 이끕니다. 이것이 지식인의 소명에 대한 기능적인 관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인은 이러한 기대와 소망의 정식화를 가능하게 하고 확장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라 한다.

 

또한 지식인의 인문학적 활동인 비판에 대하여서도 "비판적 사고라는 건축물 전체는 비판적 재구축을 필요로 한다.  이 재구축 작업은 과거에 몇몇 이가 생각했듯, 고유의 사상이라는 단독적 자원을 가진 주요 사상가, 위대한 단독적 지식인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한 집단이나 단체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집단과 단체의 이름으로, 대변자나 조합, 정당의 도움 없이 말하리라 여겨지는 대표자의 힘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바로 여기에서 집합적 지식인[부르디외가 개인들을 일컫는 말로, 평범한 주제에 대한 이들의 연구와 참여의 총합이 특별한 집합성을 구성한다]은 현실주의적 유토피아를 집합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의 창출을 좁는 둘도 없는 역할을 하게 된다." 라 말하고 있다.

 

책은 '저항의 인문학', 즉 인문학이 해야할 과제를 말하고 있다. 사이드는 그런 인문학은 인문주의자인, 지식인들의 활동으로 확장하여 사회의 올곧지않거나 편향된 것들을 지식인들은 비평을 가해야함과 그것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사이드의 아쉬운 마지막 저작물을 마주하고 그으이 생가과 그의 아쉬움많은 '끼인' 삶이 이 책을 통하여 조금 더 생각해보게된다. 다양한 시삭과 시선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때 그것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한곳으로 뭉칠 수도 사방으로 퍼질 수 있음이 무척이나 아쉽거 안타깝게 생각된다.

 

 

 

 

 

 

 

 

c*********e 2017.08.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