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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일자리가 없다. 중산층이 사라진다. 일부가 상층으로, 다수인 대부분은 하층으로 내려간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커진다. 서울 아파트값은 계속 오르고, 대다수 지방은 침체다. 왜 그럴까? 이중에서 답을 고르시오. 1. 문제는 자본 편만 드는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자! 2. 대한민국 경제 기반이 취약해서다. 고도성장이 끝난 뒤 뾰족한 수가 없다. 아, 그리워라 그 때 그 시절. 3. 지금 정권 탓이다, 이 모든 게 대통령 탓! 정권을 교체하자. 4. 기성 세대 탓이다, 386 세대가 다 가져갔어! 1~4번이 답이라 생각한 사람이라면 『테크놀로지의 덫』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불평등을 야기하는 변수로 국가, 계급, 성별, 인종이 아니라 '기술'에 집중한다. 4차 산업혁명, AI, 로봇공학의 발전으로 인간 일자리 중 상당수가 사라지고, 그래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많은 논자들이 현재의 변화가 마치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인 양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기술 발전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는 그리 새로울 게 없는 현상이다. 세탁기가 세탁부, 자동화된 가로등은 점등원을, 자동화된 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운전수를, 자동차는 마부를 대체했다. 제2차 산업혁명 때 이러한 경향이 컸고 러다이트 운동은 이에 대한 반발이었다. 기계가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는 면만 부각한다면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불가능했을 터다. 일자리를 잃은 절대 다수가 결국은 기계를 파괴했을 테니까. 그런데 산업화는 결국에는 폭발적인 생산력 증대와 일자리 확보에 성공했고, 그 혜택이 구성원 대다수에까지 미쳤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이러한 기계화의 양면성에 집중하며 역사적 경향을 분석한 책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술에는 크게 두 가지 면이 있다. 노동 대체라는 점과, 활성화라는 점이다. 전 사회적으로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많은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고, 이로 인한 혜택은 극소수에 집중된다. 반면, 나머지 대다수 - 특히 중산층 - 는 직업을 잃는다. 이 과정은 몹시 고통스럽다. 여기까지는 노동 대체로써의 성격이다. 기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기회로 일자리가 증가하고 사회 전체적인 부가 구성원 전원에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활성화다. 한국사회도 이미 이러한 변화에 들어왔다. 반도체를 위시한 ICT 기업에 종사하는 일부는 괜찮은 소득을 얻지만, 다른 많은 회사들은 인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제인스빌 이야기』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보듯,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다시 취직하더라도 이전의 소득을 회복하지 못한다. 실리콘밸리가 상징하듯, 컴퓨터 혁명은 지방 분산이 아니라 오히려 거점 지역의 초집중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서울이다. 이는 현재 기술 혁신을 이끄는 산업은 자연자원이 아니라 인적자원이 중요하고, 인적자원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의 가치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해져서다. 서울 부동산의 고공행진을 일부 투기 세력 탓으로 돌릴 게 아니다. 중심 도시의 부동산 고공행진은 흔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을 무시하고 일부 투기꾼의 장난으로 부동산을 해석한다면 좋은 정책이 나오기 힘들 터. 그래서 이 책이 제시하는 답은 무엇일까? 일단 저자는 인류사에서 보편적인 서사는 없다고 말한다.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 인류사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술사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진보하지 않았다. 많은 시기, 정치 권력은 기술 발전을 억제했다. 근대 이후 급격한 기술 발전은 인류사라는 긴 시기를 놓고 봤을 때 예외에 속한다. 이런 가정을 깔고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정치다. 기술이 급속하는 발전 시기, 기술은 인간 일자리를 뺏는다. 실업은 인간을 파괴한다. 대규모 실업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에 대한 정치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실업으로 오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책은 기술의 경제사다. 논의를 집중하는 부분은 2차 산업혁명이지만, 그 전사도 간략하게 언급한다. 흥미로운 점을 몇 가지 지적한다. 첫 번째 기술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농경으로의 변화가 모든 사람에게 좋게만은 작용하지 않았다. 농경은 오히려 구성원 대다수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켰단다. 이에 관해서 한국에서도 최근 『농경의 배신』 이라는 책이 소개된 바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유럽사에 관해서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로마제국도 기술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자동화는 최첨단 대도시에서가 아니라 퇴락한 도시나 낙후한 농촌에서 먼저 추동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그나저나, 이 책을 읽어가며 드는 불안감, 그러니까 나는 언제까지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있을까, 로봇에 대체되진 않을까, 그렇다면 뭘로 돈 벌고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재밌는 책이지만, 동시에 무서운 책이기도 하다. --- 여기서 이 책의 두 번째 주제가 나온다. 바로 노동 대체 기술의 차단 여부는 거기서 이익을 얻는 위치에 있는 게 누구인지와 정치권력의 사회적 분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기에 러다이트 및 그 밖의 집단은 노동 대체 기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으나 정치적 영향력이 없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뒤에서 살펴볼 텐데, 사실 산업혁명이 맨 처음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 중 하나도 기계화로 이익을 볼 상황에 있던 사람들이 정치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3쪽) 기록된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과학 기술적 창의성의 결여가 경제 성장에 결정적 걸림돌은 아니었다. 몇 개만 예로 들면 풍차, 말을 이용한 기술, 인쇄술, 망원경, 기압계 그리고 괘종 시계는 전부 18세기 이전에 발명됐다. 우리가 유의미한 기술 변동의 시작을 흔히 산업혁명의 결과로 보는 이유는 결국에 가서는 평균 임금의 대폭 인상으로 풀이할 수 있는 발전이 그때 처음 있었기 때문이다. (55쪽) 로마인들이 산업 발전에 거의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 테크놀로지의 독창성이나 전문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로마의 통치자들은 그냥 산업에 관심이 없었다. (63쪽) 어찌 됐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중세의 기술 발전은 노동력 절감보다는 무역 육성에 더 많은 공헌을 했던 듯하다. 특히 세대박이 돛배, 조타 노를 대체할 움직이는 방향타의 개발, 선박용 나침반의 발명을 비롯한 조선업과 항법의 발전은 발견의 시대 및 그와 관련해 급증하는 국제 무역을 위한 활성화 기술이 되었다. (78쪽) 노동자 대체 기술이 등장하면 직물 공업에서 그랬듯 반란이 일어나는 일이 흔했고, 정치 당국에 의해 저지당하기 일쑤였다. (83쪽) 중세와 비교해 15~17세기 강력한 민족 국가의 부상은 정부가 그만큼 기술 진보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기도 했다. (중략) 보병대의 등장은 지주 귀족층이 군사적 보호자로서 입지를 잃고 봉건적 과두제가 중앙 집권적 군주제로 대체됐음을 의미했다. (중략) 일단 경쟁 관계인 이러한 중심국들 중에서 이런저런 나라가 언제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이 확연해지면 정치권력은 현 경제 상황과 공동 전선을 펼쳤고, 기술 변화에 맞설 가능성은 서구의 의식으로부터 거의 사라졌다. (87~88쪽) 이후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최근 그 질문을 재고한 아멜라고스와 공동 저자들은 농업의 채택이 성인의 신장 감소 및 일반 건강의 저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인구의 신장 감소가 농업을 채택한 대륙과 시기를 불문하고 해당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결론은 수렵채집인이 훨씬 더 다양한 음식을 섭취했다는 것, 그리고 농업과 관련해 소비하는 음식의 종류가 줄어드는 바람에 일부 필수 영양분의 결핍이 확대됐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와도 일맥상통한다. (95쪽) 공장제가 결국에는 좀더 나은 보수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거라던 유어 같은 기계화 옹호자들의 생각은 옳았다. 그리고 분명 저렴해진 직물로 모두가 이득을 볼 터였다 그러나 노동자 대체 기술로 인해 자신들의 기능이 쓸모없어진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노동자들에게 이는 거의 위안이 되지 않았다. 산업화의 혜택은 1840년대 이전까지는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좀처럼 체감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노동자 본인들의 반응일 것이다. 산업혁명은 새 공장과 새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러다이트 폭도들도 양산했다. 산업혁명을 겪고 있던 많은 노동자에게 반란은 이유 있는 반응이었다. (173쪽) 산업혁명의 주된 특징이 만일 산업의 기계화라면, 2차 산업혁명을 규정하는 특징은 가정의 기계화였다. (210쪽)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여성들의 수적 증가는 분명 단순히 테크놀로지의 노동력 절감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화적 사회적 요인들 역시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들은 이 책의 영역을 벗어난다. 확실한 것은 많은 여성이 집 안에 있으라는 지속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동 인구로 진입했다는 것, 그리고 테크놀로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더 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18쪽) 컨테이너 시대 이전에 항구는 배에 짐을 싣고 내리는 수천 명의 항만 노무자로 가득한 장소였다. 컨테이너로 바뀌고 나자 항만 노무자는 기계로 대체됐다. (230쪽) 산업혁명기의 영국에서와 같이 미국에서도 고령층은 신기술에 적응하는 걸 특히 힘들어했다. 그리고 새 직업을 찾은 많은 노동자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처지가 됐다. (237쪽) 임금이 인상된 추세는 20세기의 처음 세 분기 동안 대다수 기술적 변동이 활성화 유형이었다는 시각에 무게를 더 실어준다. (266쪽) 노동자들은 농장에서 밀려난 게 아니라 도시의 보수가 나은 일자리로 빠져나갔다. 사실 농업의 기계화는 대개 값싼 노동 인력이 농촌을 떠난 결과였다. (269쪽) 결국 대부분의 사람에게 소득의 주 원천은 물질적 자본이나 금융 자본이 아닌 인적 자본이다. 노동자들의 부는 그들의 숙련 기능에 있다.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인적 자본을 통해서다. (280쪽) 입지는 교육만큼이나 중요하다. 가장 심각한 적응 문제는 쇠퇴하는 도시의 미숙련 노동자 가운데서 발생했다. (326쪽) 컴퓨터 혁명은 제조업 도시로서 뉴욕의 장점은 쓸모없게 만들었지만 혁신에서의 경쟁 우위를 증폭시켰다. 지식 노동에 특화된 도시들은 한층 생산적이 되었다. 장소의 근접성의 가치에서 파생되는 '집적 경제' 때문에 여전히 중요하다. 노동자는 직장 근처에 있고 싶어 한다. 회사는 인재와 고객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한다. 부모는 좋은 학교 근처에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노인은 괜찮은 의료 서비스와 쾌적한 기후의 장소를 선호할 수 있다. 집적이란 간단히 말하면 재화, 사람, 아이디어의 이용 비용을 줄이려는 욕구로 요약할 수 있다. (337쪽) 미숙련 노동자에게 괜찮은 급료의 일자리가 넘쳐나고 그들의 임금이 오르고 있었다 해도 그의 전략이 그만큼 먹혀들었을까? 어떻게 해석하든, 이민보다는 테크놀로지와 세계화가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 하락을 부채질하는 데 양적으로 더 큰 역할을 해왔다. 오히려 이민은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에 그다지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고용, 혁신, 생산성을 증대시켜왔다는 증거가 있다. (366쪽) 역사가 보여주듯이 노동력 절감 기술과 생산성 증대는 장기적으로 생활 수준을 높이는 전제 조건이다. 산업혁명 이전에 경제 성장이 그토록 더뎠던 한 가지 이유는 엄밀히 말하면 노동 인구의 기능을 쓸모없게 만들 위험이 있는 기술에 대한 저항이었다. 요점은 테크놀로지가 방해받지 않고 항상 전진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자동화가 정치적 표적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20세기는 기계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에서 특이한 시대였다. (379쪽) 오늘날 저소득 가구들이 르네상스 시대 군주들은 구할 수도 없었던 많은 물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세기 동안 물질적으로 정말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증거다. (383쪽) 향후 30년이 과거의 30년을 틀림없이 반영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경제 법칙은 없다. 많은 것은 테크놀로지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와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중산층 사람들을 위해 풍부한 새 일자리를 창출해줄 일련의 혁신적 활성화 기술의 문턱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몇 십 년간의 경험에 의거할 때 현실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거기에 대응할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추세가 적어도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388쪽) 자동화의 여명기 이전에 미국 성인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블루칼라와 사무직 일자리에 종사했고, 이것이 고등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시민들의 중산층 생활을 뒷받침해줬다. 지난 30년간 이런 일자리의 수는 꾸준히 감소해왔고, 많은 비대졸자가 저소득 서비스직에서 일을 찾게 만들었다. 인공지능은 또한 미숙련 노동자의 피신처였던 이들 직업 다수에서 인간을 대체할 위험도 있다. (44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