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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Keeping an Eye Open이다. 한국어 제목과는 그 어감이 다른 이 제목은 책의 내용과 연결해볼 때 꽤 의미 있게 정해졌다고 평가하게 된다. <사적인 미술 산책>이란 표현이 책의 내용을 왜곡해서 전달하지는 않는지라 완전히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반스가 전달하려 한 메시지를 고려하면 원제가 독자들에게 그 메시지를 더 잘 함축해서 설명한다고 보게 된다.
책은 모두 열일곱 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한 장을 제외한 나머지 열여섯 장은 화가의 이름을 내걸고 그들이 작품에서 구현한 바를 설명한다. 19세기 초의 제리코에서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호지킨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를 배열하고 미술사의 한 흐름을 보여주는데 모든 장이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어떤 장은 화가가 작품에서 구현한 바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어떤 장은 화가의 내면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어떤 장은 화가가 미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한다. 에세이의 장점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이루어진다. 반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로소 나는 내 자유의지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그림 앞에 소극적이고 순종적으로 서 있지 않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보고 있었다(P.10~11). 이전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양 가지고 오거나 별 생각 없이 미술 작품을 봤다면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서 감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책의 후반부에 분명해지는 그의 예술론과 연결된다. 그가 예술론이라고 따로 명명하지 않은 이 개념은 글 이쪽저쪽에 흩어져있어서 의식적으로 모아서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P.347) 같은 표현이 그런 예술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예술론은 서문에서 언급한 자유의지의 바탕 위에서 성립한다고 보인다. 따라서 책은 처음과 끝 부분에 수미상관의 내용을 배치하고 중간에 이 관점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내용으로 구조를 쌓아가는 형식을 취했다고 보게 된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제리코 부분에서는 온전히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작품의 분석과 이해에 모든 내용이 할애된다. 이 장의 특징은 제리코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에 무엇을 반영하고 무엇을 반영하지 않았는지 화가가 선택한 바와 그 선택을 통해 전하려고 한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다. 이런 글을 읽고 난 뒤에 보는 그 그림은 “어, 이거 유명한 그림이네. 사진 한 장 찍고 가자.” 같은 기분으로 보게 될 것 같지 않다. 시대 순으로 제리코가 가장 앞서기도 하지만 글의 내용은 자신의 시각으로 작품을 대함이 어떤 뜻인지 암시하며 이후의 내용에 대한 방향타 역할을 한다. 이후에 등장하는 화가들 중에는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고 나비파 같은 분류는 아주 오래 전에 그 명칭만 잠깐 접했던 기억이 나는 등 여타의 미술 서적에서 보지 못했던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서 흥미로웠다. 화가 별 내용은 이 리뷰에서 다루지 않겠다. 다만 드가가 여성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 비판이 많다고 하는데―여성 혐오 의식이 강해서 여성의 얼굴을 불분명하게 그린다는 비판 등― 나는 지금껏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다. 드가가 작품에서 여성의 얼굴을 불분명하게 그린 것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소모품처럼 취급 받는, 무시당하는 여성들의 익명성을 강조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드가의 가치가 제고되기를 바란다.
반스는 자신이 자신의 시각으로 그림을 대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듯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우리의 시각을 확립해서 그림을 대하라고 얘기한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무심코 지나칠 때와는 다르게 새롭게 발견되는 부분이 있을 테다. 눈을 크게 뜬다는 것은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라는 뜻이 아니라 생각의 범위를 넓혀서 보라는 의미이다. 메두사 호의 뗏목을 볼 때 제리코가 그린 것만이 아니라 그리지 않은 부분을 떠올린 자신처럼 다양한 생각으로 작품을 대하면 작품 감상의 즐거움과 깊이가 커지리라고 제안한다.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태어난 시대 배경이나 화가의 사고 바탕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함도 넌지시 알린다.
P.S. 글 속에 등장하는 그림들 중 도판이 실려 있지 않은 많은 작품들은 구글링을 해도 자주 발견할 수 없어서 좀 답답했다. 이 점을 제외하면 책은 여러 면에서 유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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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 제 1장은 화가 제리코에 대해서인데, 소설가가 쓴 미술감상책이라고 할 때 기대할만한 것들을 곧바로 충족시켜주면서 책에 몰입하게 합니다. 소설을 읽듯이 작품의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 1816년 메두사호의 재난 현장을 차근차근 묘사합니다. 아니, 아예 그 자체로 단편 소설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그리고는 화가 제리코가 그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듯 현재 시점으로 묘사합니다. 그의 표정과 몸짓과 동작까지. 마치 제리코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의 한 장면을 지켜보는 듯 합니다. 그 다음으로 제리코가 그런 자세와 동작으로 그린 그 작품에 부분, 부분에 대한 해설을 합니다.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지 않았는지, 주의깊게 봐야할 부분은 어디인지, 그림 속의 등장 인물들이 왜 그런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한번 읽고나면 그림을 한 시간 내내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보다 더 구석구석 기억에 오래 남게 됩니다.
소설가라 그런 것일까요, 줄리언 반스는 예술 작품 자체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개별 회화 작품보다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집요한 탐색, 작품 외양 보다는 작품 속에 묘사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이를 대변해 줍니다. 제 2장은 동시대에 살면서 화가 들라크루아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묘사한 기록, 그리고 들라크루아가 직접 쓴 일기 구절을 발췌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들라크루아에 대해, 그의 긍지와 자기 회의, 사회적 성공와 고독, 강렬한 존재감과 몽상에 잠긴 분위기, 명예욕과 세상을 멀리하는 성향, 고양이처럼 파리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재주와 길을 잘못 들기도 하는 면모 등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챕터 중반이 넘어가도록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바이런, 스탕달, 볼테르, 베를리오즈, 보들레르, 브루크너 등 수많은 이름들을 소환하면서 인간 들라크루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의 예술은 사치, 정열, 난폭, 과잉을 나타내는 반면, 그의 인생은 정열을 두려워하고 무엇보다 평온을 소중히 여기던 자기 방어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러다가, 특정한 그림을 꼽아 해설하지 않고 들라크루아의 전반적인 작품들의 핵심적인 특징에대해 이야기합니다. 들라크루아의 작품에서는 색이 앞장선다. 머리가 선과 주제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도 전에 색이 먼저 눈과 가슴을 끈다. 그래놓고 많은 그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대표작들을 제치고 도판으로 실린 작품은 색이 자제된 [흐트러진 침대] 입니다. ‘미술계의 빅토르 위고’라는 세간의 평가를 거부하고 자신은 ‘순수 고전주의 화가’라고 주장하던 들라크루아의 손을 들어주기라도 하듯이. 특정 작품의 부분 부분을 뜯어보고 묘사하면서 작품 분석, 해설 모드로 쓴 글이 아니라 인간 들라크루아의 욕심과 고뇌, 사상과 평가에 집중합니다. 어느 미술 해설서에나 등장할만한 대중적인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해석을 기대했다면 당황스러울만한 책의 전개입니다.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자, 기자, 방송 비평가였던 저자의 경력 때문인지, 줄리언 반즈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언어는 때때로 생경하기도, 노골적이기도 합니다.일반적인 미술 비평서나 해설책에서는 맛보기 힘든 문장 스타일도 튀어 나옵니다. 남성의 잠재의식을 끌그물로 훑으면 아마 틀림없이 죽은 개와 녹슨 고문 기구를 건질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전시였다. 제 3장에서도 저자는 쿠르베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기 보다는, 쿠르베의 오만함과 직설적임, 선동가적 반항아 기질, 허풍과 나르시즘, 병적 자기중심적인 기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저 이미 존재하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화가라고. 일반적인 미술 해설서라면 쿠르베 하면 ‘리얼리즘의 선구자’, ‘사실주의 미술의 아버지’ 이런 뻔한 공식같은 문구가 분명히 달렸을텐데 말이죠. 줄곧 작품 자체보다는 그 작품을 그린 인간에 대해 더 관심이 많고, 작품을 보면서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추리하고 탐색하기를 즐기는 저자의 스타일로 17개의 챕터가 한 편 한 편 화가들의 인생을 그린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이 드네요. 막연히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현학적인 문장이 난무하는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습니다. 평범한 문장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생소함을 극복하고 나면, 책에서는 줄곧 예술보다는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화가는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깊이 불신한다. - 헨리 제임스 한 예술형식을 다른 수단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도한 행위이다. 세상 모든 미술관에 해설이 필요한 그림은 단 한 점도 없을 것이다. 미술관 안내서에 설명이 많은 그림은 그만큼 좋지 않은 그림이다. - 플로베르 말은 필요없다. 흥, 흠, 이야, 하고 나면 그걸로 전부다. - 드가 화가들은 혀를 잘라야 해. - 마티스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서로 경계하기도, 부러워하기도 하는 문인과 화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문인의 화가 ‘하워드 호지킨’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여행서에 곁들여지는 그림조차 싫어하고, 자신의 소설에 삽화를 허락하지 않은 플로베르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는 커녕 말하는 것조차 꺼렸던 호지킨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저자도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호지킨과 여행을 같이 다닐 정도로 30년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에, 호지킨의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미술, 미술로 묘사되는 문학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을 마무리하는 저자가 매우 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라는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산책길이 산책하는 날의 날씨나 시간, 산책 코스, 동행자에 따라 달라지듯, 대상이 되는 화가에 따라 설명 포인트를 매번 달리하는 영리한 작가입니다. 물론 원제는 [Keeping an Eye Open : Essays on Art] 로 산책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전자책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본문 중간중간 각주의 분량이 너무 길고, 본문과 동일한 글씨 크기로 나와 섞이니 본문과 구분이 잘 되지 않아 읽기가 껄끄럽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읽으면서 해당 그림 도판이 있는 페이지를 왔다갔다 하면서 보기에 전자책은 아무래도 느리고 불편합니다. 역시 이런 책은 종이책으로 구매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책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이 모두 도판으로 실린 것이 아니라서 어차피 그림들은 따로 찾아보면서 봐야하는 책이기는 하지요. 그리고 번역의 한계가 좀 느껴지네요. 시적으로 반복되는 문장이 있는 부분에는 분명이 라임으로 처리했을 것 같은데, 번역하고 나니 원어의 운율은 사라진 느낌입니다. 원어에서는 어떤 단어였을까 궁금해서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2019년 한 해 동안 읽은 많은 책들 중에 이렇게 대충 넘기는 글씨 한 자 없이 첫 페이지부터 끝 장까지 빠짐없이 읽어내리고, 책 읽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각 장에서 언급된 화가에 대해서, 작품 사진들을 인터넷과 다른 책들을 뒤적이며 찾아서 확인해 가며 스스로 공부하고 숙제하듯이 읽고, 또 이렇게 더 알아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 책은 이 책이 유일하네요. 제게는 단연 ‘올해의 책’이라고 할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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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제리코, 들라크루아, 쿠르베, 마네, 팡탱-라투르, 세잔, 드가, 르동, 보나르, 뷔야르, 발로통, 브라크, 마그리트, 올든버그, 프로이트, 호지킨의 16작가와 '이것은 예술인가?'까지 총 17장으로 이뤄진 미술 에세이다. 재미있는 점은 각 장마다 작가가 주목하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어느 장에서는 한 그림이 완성되기까지의 역사와 탈락한 습작에 대해서, 어떤 장에서는 화가의 평가의 오르내림을, 또 다른 장에서는 화가의 인생의 한 지점(특히 사적인)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 그래서 언급되는 작품의 수는 때로 하나이기도, 혹은 여러 개이기도 한데 각각의 작품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한데 어우러져 그 화가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남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작가는 들라크루아, 마네, 세잔, 드가, 마그리트처럼 내가 익숙한 화가들도 있지만, 때로는 화가의 이름은 모르고 그림 몇 점으로(내가 그림을 기억할 정도이니 유명한 화가이긴 할 것이다) 내 기억에 남은 화가도 있었다. 줄리언 반스가 재생해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서 하나같이 재미있었다. 비록 관련 지식이 없었어도 이해하기 무리가 없다. 물론 알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수록된 그림들도 시기적절하게 들어가 있어서(큰 그림의 세부를 확대한 부분도 있어서 이해하기 쉬움) 좋았다. 말 그대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본 재미있고 영리한 에세이다. |
| 미술관에 가고 싶지만 여건이 안된다 책으로 대신한다 아쉽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의 미술 산책을 함께 하고싶어 책을 구입했다 다행히 이북으로 단독 선출간되어 좋았다 그림에 대한 감상보다는 화가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새로 알게 된 화가도 있어서 더욱 좋았다 단풍구경도 좋은 계절이지만 그림 감상하기도 좋은 계절이다 그림과 글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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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앗 이런 망할 레시피라니! 를 읽고 나서 보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를 몇페이지 읽다가 말았더라고요... 특별히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당시에 더 재미있는 다른 것을 발견한 탓이었어요 그런데 미술산책과 망할레시피는 정말 남은 페이지를 헤아리며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특히 이 책은 서문에서 공감을 받아서 샀는데요... 그러니까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공감을 했어요. 하지만 저의 호기심은 습자지만큼의 정보만 취하면 몸이 힘들구나 누워라고 뇌에 신호를 보내니 조예가 깊어지지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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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언 반스의 미술 에세이라고 해서 얼른 읽었다 지적이고 아름다웠다 미술 서적을 좋아해서 종종 읽는데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과는 조금 다른 형식과 분위기라 흥미로웠다
* 책도 고상하고 예쁘다
* 그가 그린 '문학을 소재로 삼은' 그림이라면 졸라의 나나를 그린 것이 가장 유명한데, 그 정황은 사실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그림의 나나는 졸라가 나나보다 앞서 목로주점을 연재할 때의 나나, 즉 아직 중요하지 않았던 나나를 그린 것이다. 위스망스는 마네의 나나에 대한 평론에서 졸라가 나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쓸 예정이라고 알리며, "나나가 정확히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를 미리 보여준" 마네에게 찬사를 보냈다. 따라서 마네가 졸라의 소설에 '삽화를 그렸다'기 보다는 그 반대가 맞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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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소개가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좌초되는 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지는데,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뗏목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고, 다리가 바닷물에 잠긴 상황 속에서 부족한 물자로 인해 서로간에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수일 동안 마실 물이 모자라 소변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었고, 식량이 소진되자 결국 생존자들은 인육을 먹어야만 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말이다. 제리코의 그림에서 표현된 상황은 멀리 희망의 배가 나타난 시점이다. 실제 그 시각 멀리 있던 배는 뗏목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들은 수일이 지나서야 생환한다. 생환한 15명 중 5명은 오래 살지 못했다. 이 재난 상황을 제리코가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이 비극적인 스토리를 제리코가 한 장의 그림으로 담아내야 했다. 물에 잠긴 뗏목은 물 위에 있어야만 했고, 굶주림으로 인한 생존의 위기 상황을 표현해야 했으며, 복잡하고도 다양한 이 상황과 심리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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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풍부한 상식과 재치로 화가와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가 소개하는 그림들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지만,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배경지식이 풍부해지자 그림이 한결 더 잘 읽혔다. 그러나 주의. 서양 순수 미술, 혹은 서구 유럽의 근현대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읽기가 매우 지루할 수도 있다. 아무리 자기 세계가 확실한 예술가래도 당대 예술의 조류와 사회변화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없는 노릇이고, 작가는 독자가 그 정도 배경지식은 갖고 있을 거라는 걸 전제로 해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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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리뷰입니다. 오구오구 페이백으로 사는 책들은 그냥 싸게 본다 생각하고 항상 사는데 책 선정을 잘 하시는 건지 읽는 것마다 다 기본 이상은 해서 신뢰가 가네요 미술사 책을 작가의 이야기에서 풀어나가는데 뭔가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미술사를 풀어나가니까 누군가에게 한편의 강의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서양미술사에 작게나마 관심이 있어서 이런 류의 책이라면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는데 줄리언 반스의 책은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법한 책 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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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를 읽다보면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원문을 소화할 수 없는 언어 능력을 가진 나로서는 전적으로 번역된 내용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게 꽤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일단 책의 구성은 흥미를 끌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줄리언 반스'의 미술작품 평론이기 때문이다. 평론에 더해 조금은 시시콜콜한 화가의 사적 에피소드까지 첨가했으니 한상 푸짐하게 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 밥상은 내게 있어 건강식단 같은 느낌을 준다. 현미밥에 MSG 없는 밍밍한 찌개, 온통 풀들만 있는 반찬... 건강에는 너무 좋은데 먹는 그 순간만큼은 고통인 그런 밥상말이다. 더 의심스러운 점은 재료 자체는 너무 싱싱하고 비싼데, 요리하는 사람의 레시피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것은 결국 저자와 사적인 대화를 해야한다는 것이리라. 아쉽게도 이 작품은 줄리언 반스의 '넋두리'를 듣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에 본분 구성마저 너무 빡빡하게 느껴져서 눈이 피로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쉬운 점만 열거하다 보니 마치 이 책이 문제투성이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의 예술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고 깊다는 것이다. 다만 내개 있어 시력에 맞지 않는 안경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