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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의 입장에서 본 일본인들의 삶(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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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의리 행하기>전쟁 중 일본인들은 극단적인 자기희생이나, 서구인들이 화낼 필요가 없는 일에 곧잘 화를 내는 이유는 세상에, 조상들에 대한 책무 때문이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의 채무와 책임에 큰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恩(은)의 개념을 중요시 한다. 특히 천황의 恩(은)을 일컫는 경우, 무한한 헌신이란 말로 사용된다.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 자체가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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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의리 행하기

전쟁 중 일본인들은 극단적인 자기희생이나, 서구인들이 화낼 필요가 없는 일에 곧잘 화를 내는 이유는 세상에, 조상들에 대한 책무 때문이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의 채무와 책임에 큰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의 개념을 중요시 한다. 특히 천황의 ()을 일컫는 경우, 무한한 헌신이란 말로 사용된다.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 자체가 황은이라는 개념의 틀 속에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전쟁 중 그들이 보이는 천황에 대한 경배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 ()은 부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기에 ()을 입혔다는 말은 금기어 비슷하게 인식해도 된다. 그 말에 일본인들이 성을 내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된다. 즉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 일본인들의 은혜와 관련되는 일에 성을 내는 일을 수용할 수 있다. 일본인 속담에 ()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란 말이 있다. ()에 대한 일본인들의 의식을 잘 인지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의 채무는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은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미국의 채무자들이 계약서대로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태어나면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변제는 미국 체무자들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본에서 받은 은혜(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를 기무라 한다. 기무는 보은인 효와 참황에 대한 충성이 있다. 이 두 기무는 강제성이 있다. 이 두 기무는 무조건적이다. 일본의 효는 경계가 있다. 직계에 해당하는 가족들에게 의무를 부여한다. 즉 부모와 자식, 손자 등으로 그 부양 의무를 지게 된다. 조카에 한해서는 그것이 양자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의무가 없다. 이들의 관계에서 연장자에게 많은 책임이 부과된다. 하지만 아랫사람은 연장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해야 한다. 충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충의 근본은 가까운 사람에게 복종하면서 생명을 바치는 일에 근간이 있다. 사실 메이지유신의 선각자와 지도자들은 쇼군과 싸우면서 자신의 영주를 위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쇼군을 충의 대상자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막부를 무너뜨리면서 존왕의 칭호를 사용했다. 천황을 충의 대상자로 선정하고 싸운 것이다. 결과 천황은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이들은 천황을 정신적 지주, 충의 대상으로, 계층제의 정점에 두는 것으로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전쟁이 끝이 날 때 천황의 항복 선언 한 마디에 모든 싸움이 중지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기리(義理) 일본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충과 효는 동양의 공통적인 덕목이다. 하지만 기리는 일본 특유의 범주다.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갚아야 할 성질이기 때문이다. 기무(義務)는 상대가 곤란한 요구를 하더라도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리를 갚는 것은 내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리는 두 가지로 나뉜다. 세상에 대한 기리(은혜), 이름에 대한 기리(명예) 등이다. 이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기리는 의부, 의모, 의형제 등, 맺어진 관계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강력하다. 의부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위해서 혈연관계도 단죄할 수 있는 것이 기리의 한 요소다. 우리의 이념에 따른 행동으로 봐도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듯하다. 기리의 규칙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갚음의 규칙이다. 기리는 도덕규범이 아니다. 기리에 의해 강요당하면 자신의 정의감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것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는 것도 아니다.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조처만 있을 따름이다. ‘기리의 세계는 서구의 부채 상환과 비슷한 개념이다. 시간이 흐르면 더욱 가중된다. 그리고 기리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면 파산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을 다니는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노력이든 물건이든 서로 주고받는 복잡한 관계는 장부에 기록하는 상황을 만든다. 조의금의 출납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일본인들은 모욕을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어느 쪽이나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다. 사람이 오명을 씻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빚을 갚는 것이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모욕이 제거되지 않는 뒤집어진 세상은 바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보기엔 복수를 미화하는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경쟁 상태를 피하려 했다. 지게 되는 자의 치욕을 처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치욕을 당한 자가 그것을 정상의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 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미연에 그것을 방지하는 그들의 삶이 양식화 되어 있다.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그러기에 자신을 괴롭히는 경향이 많다. 이런 인물은 그 행위가 권태에 닿아 있다. 배척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부로 돌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가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자살은 적절한 방법이면 오명을 씻고 평판을 회복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즉 자살은 죽음의 선택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다. 타인에게 존경 받는 것은 필수다. 그들의 침략 근거도 여기에서 가져온다. 세계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서구 열강들에 의해 군축 조약 같은 것은 그들에겐 모욕이었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일이 세계 속의 지위 획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인정의 세계는 타민족들과는 좀 다르다. 극단적인 의무의 변제와 철저한 자기 포기를 요구하는 일본의 도덕률은 개인의 욕망은 금기시한다. 그런데 불교의 금욕과는 다르다. 오관의 쾌락을 허용하는 면에서는 관대하다. 오히려 그것을 권장한다. 온욕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날마다 온욕을 즐기며 몸을 씻는다는 단순한 일보단 그곳에서 탐닉의 예술까지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잠도 또한 애호하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중대한 일이 있을 때에는 과감하게 희생시킨다. 가령 군대교육을 위해서 잠을 희생시키는 것 등이다. 일본인은 연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이상을 내걸지 않는다. 그들은 적령기가 되면 부모의 선택에 따라 맹목적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에서 매우 완고한 형식을 지킨다. 일본인의 결혼 목적은 집안의 대를 잇는데 있지, 사랑 나눔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에서 다른 목적은 참다운 의미를 왜곡할 뿐이다. 그러기에 일본의 여유 있는 남자들은 정부를 두고 그녀를 가족의 일원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만일 밖에서 아이가 생겨 집에 들이게 되면 본처가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여인은 종이 된다. 일본인은 의무 수행을 인생 최고의 임무로 정해 놓고 있다. 그들은 은혜를 갚는 일이 개인적인 욕망이나 쾌락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행복추구를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상은 그들에겐 놀랄만한 부도덕이다. 행복은 기분전환용으로 그들에게 인식된다. 그들이 얼마나 생명도 도외시하고 은혜와 충성에 매달리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인생관

일본인의 인생관이 서구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덕이라 생각한다. 또 각각의 세계에서의 법도는 세계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행동기준도 변한다. 즉 일본의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는 자세가 천황의 항복으로 외국인에게 협력하는 양상을 보이는 모습이 예가 된다. 일본인은 자기 수행에 대해서는 특심이 있다. 그들의 자기 훈련의 개념은 능력 배양과 그 이상의 것(숙달)이다. 어떤 일에 임할 때 이런 수행은 배짱을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맛보는 능력이 되어 간다. 이처럼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 예리한 칼로 만든다. 아이들도 이렇게 양육 받는다. 어른들이 정하고 그것을 따라하도록 규정하고 그렇지 않을 때 벌을 받으면서 소망을 억제하는 힘을 기른다. 아이는 남자에게는 대를 잇게 만드는 요소요, 엄마에게는 지위를 확보하게 만들어 준다. 아이를 통해 어른들의 성격이 규정되기도 하기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무척 협조적이다. 일본인은 전승국이 되었을 때 항복한 적이 일본을 조소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패배한 적에게 모욕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비방, 조소, 모욕, 경멸, 불명예의 징표를 강요할 때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인은 그것에 대해서는 복수를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패배의 당연함과 모욕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연함에는 수긍하고 소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하지만 모욕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는 것을 보편적인 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일본인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이중적인 모습이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선호하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속성을 비교적 많은 자료들을 사용해서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다양한 태도에 대한 해석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이 죽을지언정 항복하지 않는 전쟁 중의 상황과 포로가 되었을 때도 기회만 주어지면 자살을 하려고 했던 일,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자 그 기세등등하던 전투 자세에서 바로 고양이 앞에 쥐가 된 듯이 꼬리를 내리던 모습들이 설명되어 진다.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기리(의리),기무(의무), (은혜), 인정, , 자기수양 등의 말들이 사용되어 있다. 이 말들이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것을 살피면 그들의 관념에 잘 다가갈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가 그들의 의식에 중요한 기능을 하고, 타인들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는 것도 그들이 위치 찾아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글 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인들이 타국에 점령군으로 들어갔을 때 타국민들이 환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처럼 그들은 전쟁과 점령이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런 사고를 이해하지 않고 일본인을 대한다는 것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은 일본인들을 알게 하고,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인들이 취한 행동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외국인이 쓴 일본인 이해의 고전이 되는 작품이다.

j****3 2020.07.16. 신고 공감 1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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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의 입장에서 본 일본인들의 삶(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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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루스 베네딕트의 명작에 속하는 <국화와 칼>은 1944년 미국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인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다. 그는 일본에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는 후평이다. 그는 자료들을 모으고, 그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정신과 행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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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의 명작에 속하는 국화와 칼1944년 미국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인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다. 그는 일본에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는 후평이다. 그는 자료들을 모으고, 그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정신과 행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일본인의 이중성이다. 그게 제목이 되었고 저자가 분석해 나가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밝고 친절한 외양에 비수를 숨기고 있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만나면서 궁구의 길을 열고 있다. 그 특징을 서양인과 비교해서 제시하기에 더욱 잘 다가온다.

미국인들은 일본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 이런 적을 대할 때 기존의 방식으론 안 되었다. 그들은 서양 전통과 전혀 다른 완전히 무장되고 훈련된 국민들과 싸웠다. 그 싸움에는 상대의 이해가 무엇보다도 요긴했다. 즉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는가 방향이 되었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이해불가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제목처럼 국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일본은 그러나 또한이라는 말이 지극히 통용되는 민족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진주만 폭격을 당했고 태평양의 많은 섬에서 조우한 잘 훈련된 그들과 상대하기 위해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 나라에, 그 민족에 다가갔다. 이 작업은 민족 간에는 차이가 있다는 강인한 신념과 그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성을 함께 필요로 했다. 그리고 습관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에 맞는 위치 가지기

전쟁에는 관행이 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관행이 일본인에겐 전혀 맞지가 않다. 그 까닭은 정신적인 문제에 있다. 서구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공존공영, 자유무역을 위반한 것에 대한 응징이고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모든 세계가 계층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자는 자신에 맞는 위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또한 전쟁에 대응하는 자세도 너무 다르다. 서구는 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항복을 한다. 그래서 생명을 구한다. 일본은 그것을 비겁한 짓으로 규정한다. 전쟁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고,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으로 항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쟁에서 의무관이 동행하는 경우도 드물다. 전쟁은 죽기로 싸우는 것이라는 관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계층제도가 중시된다. 미국에서는 각국의 불가침, 타국의 내정 불간섭, 국제간의 화해 및 신뢰, 평등 등 기본적으로 존중되는 신념을 보인다. 그러기에 이들 사이의 간극은 좁힐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분노를 가지고 이런 계층제도와 싸운다는 명제다. 이것이 일본과의 전쟁을 하는 그들의 명분이 된다. <부모에게 의견을 말하려는 사람은 머리를 기르려는 승려와 같다.>란 말이 일본에 있다. 그만큼 질서가 중요하단 말이다. 위치에 관한 일본인들의 사고는 확고하다. 고기는 물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장남은 맏형으로 성격을 가져야 한다. 즉 책임감과 특권을 얘기한다. 일본은 계급제도가 철저했다. 사무라이, , , 상 등으로 계급화 되어 있었고 그 정점에 쇼군이 있었다. 쇼군은 무사의 수장이다. 또한 쇼군에게 정치를 일임하는 천황이 있었다. 천황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그 위치에 있으면서 일본 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것은 신앙적인 성격을 지니고 나타난다. 천황이 속세의 일에 관여하고 안 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막부가 개설되고 통치를 해나가면서 이들은 더욱 분명해졌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와는 조금 다른 일본의 계급제도를 보이기는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는 일이 규정되어 있고, 그것은 보호를 받았다. 또 계급간의 이동이 어느 정도 공인되었다. 즉 일본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보호받는 입장이 되었고, 계급간의 충돌 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 용인하면서 필요할 때는 능력에 따라 이동도 가능한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각자의 신분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다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진 신에게 의탁하는 성향을 만들었다. 일본과의 전쟁 시 미국이 어려움을 느꼈던 이유고, 일본인들의 천황을 향한 신앙적인 추종의 한 이유가 된다.

 

왕정복고를 모토로 이룩된 메이지유신은 서구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보수적인 고립정책을 실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정부가 취한 방침은 반대였다. 다이묘의 과세권을 없애고, 다이묘 및 사무라이들에게 정부에서 봉록을 지급했다. 번의 장벽이 철폐되고 계급 사이의 불평등이 철폐되었다. 이런 개혁은 메이지 정부 수립을 위해 싸웠던 대다수의 소망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선침략이라는 계획 실행을 지지했고, 봉건제도 회귀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면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세력은 누구인가? 그들은 사무라이 하층 계급과 상인계급의 특수한 연합세력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일본을 세계열강의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 메이지 정치인들은 번, 사무라이, 농민 등에게 새로운 위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것이 조금의 반발이 있었지만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강력한 지배권 행사를 했다. 그리고 개혁을 진행시켰다. 정치적 계층제의 수뇌부는 천황을 직접 배알할 수 있는 중신들, 임명된 관리들이었다.

메이지 정치가들의 종교적인 분야의 일은 개인 신앙의 자유에 맡겼다. 단지 국가 신토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영역이다. 이는 국기에 경례를 하는 것과 같은 국민적 상징에 정당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했다. 천황 숭배는 이 바탕에 있다. 조금도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국가적으로 충성을 가르치는 일은 지당한 것이었다. 그들의 숭배는 천황과 신사 등이다. 그것은 하나의 생활로 당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사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찾고 즐기는 공간이 된다. 군수뇌부는 천황을 직접 배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들은 천황의 이름을 빌어 그들의 방책을 강제할 수 있다. 군부가 내각을 조종할 수 있는 이유다. 고위 현역 장교가 육. 해군 장관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어떤 내각도 성립할 수 없었다. 군부의 독자적인 행동은 이런 힘의 논리에 있다. <만주사변도 이런 구조 속에서 일어났다. 경제 부분도 먼저 국가가 조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민간에 헐값에 넘겼다. 중공업부터 손을 댄 일본 산업은 종교분야와 마찬가지로 이원성을 가졌다. 귀족제의 필요성이다.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가문을 선택하여 알맞은 지위를 갖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런 재계의 유력 가문과 연을 맺으며 보호, 비호하며 재정적 권리를 가졌고, 재벌은 막대한 이익을 얻는 상호보완적인 형태가 되도록 했다.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요구한 알맞은 지위 수용이라는 도덕 체계가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여 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았다. 일본군 장교나 사병은 점령국에서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에게 낮은 지위지만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다른 국가에서 보면 그들 패악한 생각의 진원지가 바로 메이지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메이지가 전쟁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글이다.

 

 

 

j****3 2020.07.16. 신고 공감 1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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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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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본을 배워야하니 말아야하니 말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90년대 후반, 일본인 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들로부터 시작해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던지 여러 일본 관련 책자가 출간되었었다. 일본은 있다, 없다고 한 책들은 서로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현격해서 그당시 그 책들은 접했던 중학생 꼬마는 뭐가 맞는건지 헷갈렸었다. 그런 와중에도 -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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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본을 배워야하니 말아야하니 말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90년대 후반, 일본인 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들로부터 시작해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던지 여러 일본 관련 책자가 출간되었었다. 일본은 있다, 없다고 한 책들은 서로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현격해서 그당시 그 책들은 접했던 중학생 꼬마는 뭐가 맞는건지 헷갈렸었다. 그런 와중에도 -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는데 - 그 중학생 꼬마는 암암리에 일본에니메이션과 일본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새부터인가 일본에 대한 담론을 담은 책들을 보면, 예전 일본은 있네 없네 하던 때보다 사뭇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의 색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 선조들이 겪은 말로는 다 못할 피해나 독립 이후에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들에 대한 성토가 주 소재였다고 하면, 지금은 일본과 조선의 근대화의 비교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 루스를 비롯한 서양사람들은 일본을 희안한 나라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 천황의 이름하에 행해진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하고 바로 태세를 바꿔서 미국에 저항하지 않고 미군정을 승인하고 인정하고 바로 받아들인데 대한 1차적인 당혹감, 그리고 천황을 전범으로 지목하지 못하게 한 데 대한 어이없음이랄까. 저자의 설명대로 일본은 천황제가 시작되면서부터 충이라는 이념으로 쇼군과 다이묘들이 체계적인 카스트를 유지해왔다. 그 이념하에서는 자기가 자기의 카스트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충에 더불어 효라는 개념까지 더해져서 국가와 가족 내에서의 카스트도 공고히 유지됐다고 보았다.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일본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인 충이나 효를 나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역자가 아닌 다른 분의 해설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한 번 읽을 때는 일본과 우리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지만, 다시 읽으면 일본과 우리의 차이점을 알게된다."고 하면서 충이라는 이념이 (고루하고 답답하고 경직된 이념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 이건 내가 더한 말이다) 국가와 국민의 결속 -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 을 공고히 한 효과가 있어서 일본의 근대화에 기여한 부분이 있으며, 신분제에 발목잡히지 않은 근대화가 이루어짐으로 인해서 우리와는 다른 근대화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없다, 있다 책이 한창 팔리던 그 때에는 일본을 그저 이기기 위해서, 즉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본에 대한 정보에 접근했었지만, 요새 나오는 일본 관련 저서를 보면 - 물론 너무 일본 잘했다라는 식의 책도 있어서 문제지만 - 일본과 우리의 근대화를 비교하면서 조선이 근대화에 뒤쳐저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과정을 냉철히 고찰하는 책들이 많다. 이제는 이 "국화와 칼"도 일본이 이런 나라이고 일본인이 이런 성향을 지녔구나하는 정보를 습득하는 선을 넘어서, 일본인들이 이런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주목했고,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성향들이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나 사회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앞서가게 만든 면이 있었다는 정보를 주는 작품으로 바뀐 것이다.

t*****k 2020.09.1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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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의 틀이 아닌, 그저 수많은 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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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손 한 뼘이 손뼉 치는 것을 들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우리에게 있는 것을 통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화와 칼’은 그런 점에서 독자들의 문화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을 잡아주는 책이라고들 많이 말한다. 흔히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일본 문화의 틀이 아닌, 그저 수많은 길 중 하나" 내용보기

 

 

우리는 손 한 뼘이 손뼉 치는 것을 들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우리에게 있는 것을 통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화와 칼은 그런 점에서 독자들의 문화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을 잡아주는 책이라고들 많이 말한다. 흔히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구축해 온 이들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해 함부로 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우리는 자주 그 오류를 범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을 바라본다. 그게 진실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러한 오류는 가까운 나라일수록 쉽게 나타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한반도의 바로 동쪽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도 매우 긴밀한 교류 관계를 맺어왔던 나라로, 우리나라 사람들과 많이들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점 때문에 우리는 흔히 일본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만의 관점과 잣대를 가지고 그들을 평가하고 논한다. 그러나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들을 우리의 관점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국화와 칼은 그동안 일본이라는 나라를 앎에 있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을 안다고 하여 일본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선뜻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감상문이라고 하여 좋은 점만 칭찬하는 식으로는 글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 필자의 의견이 주가 되어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작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보다도 내용적인 측면이 아니었다.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다름 아닌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한 방식이다. 보통 인류학자, 특히 문화인류학자로서 특정 대상을 연구함에 있어 직접 사람들 속에서 생활해보고, 몇 년 간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저서를 작성하기 마련이다. 근데 정말 처음 읽었을 때는 약간 어이가 없다 싶을 정도로 이 작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그녀는 그저 일본의 대중매체와 문학작품, 논문 등을 참고하거나 일본에서 건너온 몇몇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뿐이다. 사실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책을 써내려갔다는 것은 나중에 칭찬받아도 늦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왜 이러한 연구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한 직접 일본에서 살아가면서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를 하지 못했는지를 아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인 베네딕트는 원래 자신이 직접 이러한 연구를 기획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들 19446월 즈음에 미 국무부로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일본에 가 본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미국에서 일본으로 곧장 건너갈 수도 없었던 것이 당시 두 나라가 교전 중이었기 때문에 문화인류학 연구의 핵심인 현지조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베네딕트에게 다음과 같은 의뢰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일본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직시하고 있었고, 따라서 종전 후에 이들 일본인을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 지가 관건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일본인들은 그들이 이해하기에는 무언가 다른 점들이 많았고, 따라서 그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전후 처리의 과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베네딕트가 이러한 연구를 하게 된 연유와 방법이 어찌됐건, 베네딕트가 일본인들의 삶에서 특징적인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여 객관적으로 써 내려가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내 흥미를 끄는 부분도 몇몇 있기 마련이었다. 대체적으로 일본인들은 물질적인 요소에 비해 정신적 요소를 중시하는 경향이 더 컸던 것 같다. 특히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책장을 다 덮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기리를 언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 쉽게 설명하면, 부채 또는 의무, 책임감 등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사랑의 감정보다는 부채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더 크다. 이때 특징적인 것은 온은 대체로 가까운 사람에게 성립되는 것으로, 소원한 관계, 먼 관계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그들은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다.

한편 기리는 의리와 비슷한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서 핵심은 해석된다,’는 것이지, 아무도 기리에 대하여 사전적인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3자가 외부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인들 스스로도 기리에 대해 명료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여기서 기리는 의무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기무, 의무가 완전히 갚을 수는 없으며, 충과 효처럼 무조건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면, 기리의 경우에는 완전히 갚을 수 있으며, 무조건적이기보다는 암묵적인 계약관계를 이행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복수를 하는 것도 기리의 일종이며 미덕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여기서 기리를 자세히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의무와는 비슷하지만, 의무에 비해 좀 더 정신적인 당위라고 말하면 좋을 듯하다.

또한 일본인들은 명예와 인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그들은 죄보다는 수치심을 중요하게 여기며 본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굉장히 큰 모욕으로 여긴다. 만약 자신들의 명예가 크게 훼손된다면 그들은 자살 역시 마다 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들은 관계에 있어서 자신들의 실리와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 보였다. 내가 백만큼 상대방에게 주었다면, 상대방 역시 나에게 똑같이 백만큼 주어야 한다. 그게 혜택이든, 복수이든지 상관없다. 그저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희생은 없어야 한다.

물론 이게 1900년대 중반에 쓰인 것을 감안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웃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애초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의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졌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만약 그들이 진정 오늘날에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유지해왔다면, 그것들은 여전히 일본인들의 독특한 사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이 독특한 이유는 대체적으로 요즘은 인정욕구를 바라는 것을 오히려 상스럽다고 여기고, 본인만 피로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풍토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본인만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함이 꾸준히 강조된다. 인정욕구 혹은 명예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이라는 것 또한 강조되고 있어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구시대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요즘도 그러한 사고가 이어져 오고 있다면, 나는 일본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음으로,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을 숭상한다. 사무라이가 막부 정권(가마쿠라 막부, 1185-1333)을 수립하기 시작해서 근대 개화의 시기(메이지 유신, 1868~)를 거치기 전까지, 700년이나 되는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무사의 통치를 받았다.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체면을 중요시하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당할 바에 죽음이 더 값진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쪽 대목을 읽다보니 생각났던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16세기 후반에 일어났던 임진왜란에서,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의 확실히 다른 점은 다름 아닌 궁궐에서 발견되었다. 일본인들이 한 달도 안 돼서 한양으로 진격하면서 든 생각은, 궁궐 안에 있던 임금(당시 선조)을 잡아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군이 경복궁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휩싸이는데, 바로 궁궐에 임금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선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지만, 선조는 우리나라의 가장 서쪽이라고 할 수 있는 의주로 피신을 해버렸다. 당시 패닉에 빠져버린 일본인들의 생각은 아마도 이러했을 것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임금이란 작자가 자기 궁궐을 버리고 숨어버릴 수 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 임금이란 나라의 우두머리로, 살든 죽든 전쟁의 끝을 봐야 하는, 끝까지 궁에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임금들은 옥체 보전을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고려 시대 몽골이 침략했을 때에도 강화도로 천도하여 피신하였으며,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때 각각 강화도, 남한산성 등으로 피신하였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종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아관파천, 1896). 이처럼 전쟁 문화 역시 이웃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다르다. 사고방식 자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내가 평소 일본을 보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아직도 천황이 존재한다는 것(영국에 여황이 존재하는 것처럼)과 천황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천황은 그냥 평범한 인간 수장으로 보이겠지만, 일본인들에게 있어 천황은 신적인 존재와 다름없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나서 1946년 이로히토 천황이 자신은 신이 아닌,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을 때 일본인들이 받았던 충격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 시기 일본인들의 자살률은 급속도로 치솟았다. 자신이 그토록 신처럼 믿었던 천황이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차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게 자살까지 할 정도야, 라고 비웃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천황이라는 존재 또한 그들의 삶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고,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그들의 생각이니 존중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마 평생 나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이외에도 그들은 세계 속, 나라 속, 지역 속, 공동체 속 자신의 위치를 직시하고 위치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중시한다. 이런 사고 탓인지, 그들은 메이지유신을 거쳐 세계 속 자신의 나라의 위상을 높게 평가했고, 그에 따라 식민지 건설을 정당화시켰다.

 

독서 감상문에서 내용적인 부분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이 취지에도 어긋날 것 같기도 하다. 설명문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부터는 책에 대한 전반적인 총평을 해보고자 한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긍정적으로 삼는 부분은 초반에 언급했듯이 현지조사를 한 것이 아닌, 대중매체나 일본에서 살다 온 이들을 면담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꽤 객관적이고 당대 일본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했다는 점이다. 문화인류학뿐만 아니라 여타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꼭 현지 조사를 하지 않고서도 연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계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점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베네딕트가 조사한 대중매체, 소설, 잡지 등의 작품 등이 담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창작자 혹은 제작자에 의해서 선택되어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형시킨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그녀가 조사한 일본인에 대한 묘사가 일본인 전체에 대한 특성을 대표한다고 확증할 수 없거니와, 베네딕트가 질문 대상자로 삼은 일본인들의 말 역시 일본인들 전체를 대표한다고 나타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만을 가지고 일본 문화의 틀이니,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드러내주는 결과물이니 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또한 이 책을 현대에 읽는다면 이 책이 1900년대 중반에 쓰였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인들이 대체적으로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며, 여전히 인정을 바라고 체면을 중시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연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화와 칼을 읽고 내가 일본인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말하기 위해선, 대강 20세기 중반의 일본인들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오늘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오늘날과 20세기 중반의 일본인들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하여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필자가 계속 작정해서 이러한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함은 아니다. 연구를 함에 있어서 대상을 설정할 때 집단 전체를 설정하는 것은 너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연구를 할 때 그 집단을 어느 정도 대표하는 표본을 선정한 뒤에 그들을 대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보통 대상들을 잘 연구하여 표본 대상만으로도 전체 집단을 잘 대표할 수 있으면 우리는 연구가 성공적이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라고 평가하기 마련이다. 베네딕트 역시 그러한 연구 방법에서 엇나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연구 내용이 일본인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 등을 서술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들의 머릿속을 탐험해서 연구 결과물을 내놓은 것도 아니며, 만약에 일본인들이 정말로 이중성을 지닌 자들이라면,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전부 신뢰할 수도 없을 터임에도,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온전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풀어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다만 그래도 베네딕트의 연구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국화와 칼에서 드러나듯이 국가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인들이 평화와 전쟁 사이에서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일본이 1946년 평화헌법을 만들면서 비군사화 정책을 취하였지만,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터지자, 경찰예비대를 조직(1950.8.10.)하여 비군사화와는 틀어지는 움직임을 보였다. 뒤이어 6.25전쟁이 끝나고 1년 뒤인 1954년 일본은 이 경찰예비대를 자위대로 개편하여 조직하였고, 결국 오늘날 2015년에 일본이 국가안보법안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국화(=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전쟁)을 숭상하는 일본 정권(일본인이라고는 표현하지 않겠다.)의 행태가 이 책이랑 맞물려 있는 것 같음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던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걱정됐던 부분은 혹여나 내가 일본인들에 대한 프레임이 씌워지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이래,’ ‘그들은 체면을 중시하고 인정을 바라는 경향이 있어,’ ‘ 일본인들은 이중적이야,’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을 그냥 비판적 사고 없이 수용하면 어떻게 될까?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본인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난데없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직접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는 이상. 그래서 지금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것조차 그들을 정말 제대로 이해해서 쓰기 보다는 아마도 어렴풋이 그들의 삶 주위를 빙글빙글 맴도는 것에 그칠지도 모른다. 얼핏 이해했다고 대강 짐작하여 자신의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 그들에게 좋은 점이 있을까? 오히려 해가 되지는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사회학을 부정하거나 그들의 연구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자연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든, 사람들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창작하든, 역사적 평가를 내리든, 신중한 태도를 기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어떤 이들이 자신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하고, 이 연구를 다른 사람들이 읽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연구를 토대로 한 관념을 나에게 투영시켜 나를 바라보고. 이것이 정말로 연구 대상이 된 나, 혹은 누군가가 동의할 만 한 내용, 타당하다고 느낄 만 한 내용들이라면 조금은 괜찮아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 사고방식, 성향 등을 가지고 큰 범주로 묶어 그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도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연구 대상이 된 이는 본인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나라는 존재가 규정되어 있고, 색안경을 낀 채를 본인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다. 이것의 옳고 그름을 묻는다 하면, 필자는 그르다고 말하기보다는 어떤 측면에서 봐도 옳은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자신이 먼저 실존한 다음에야 본질을 규정한다고 샤르트르가 말하였다. 이때 본인의 본질을 규정하는 주체는 바로 그 자신이다. 절대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먼저, 혹은 나중에라도 나라는 사람이 규정되어 바라보아지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약간의 언짢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이 책을 읽고 들어야 하는 생각은 아마도, ‘, 일본인들은 이렇구나,’가 아니라, ‘아 몇몇 일본인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너무 회의적인 태도로 이 책을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문화인류학 연구 발전에 있어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우리가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는 확신을 가진다,’는 인류학자들에게는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 정확한 방법들은 필자조차도 명확하게 알 수 없어서 스스로 아쉬움을 가져본다. 어찌됐든,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 일본 문화의 틀로써가 아닌,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의 길이 되길 바란다. <

 
d********2 2021.03.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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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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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다큐를 본적이 있다. 오래된 기억이라 왜곡 점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일본내의 부라쿠민과 일제강점기에 넘어가서 일본에 정착해서 살고있는분들 그리고 일본의 장인정신의 대한 내용이었다. 일본 내의 부라쿠민 차별은 예로 부터 역사가 유구했고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도 암암리에 부라쿠민 사전 이 돌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인들이 부라쿠민을 구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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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다큐를 본적이 있다.

오래된 기억이라 왜곡 점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일본내의 부라쿠민과 일제강점기에 넘어가서 일본에 정착해서 살고있는분들 그리고 일본의 장인정신의 대한 내용이었다.

일본 내의 부라쿠민 차별은 예로 부터 역사가 유구했고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도 암암리에 부라쿠민 사전 이 돌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인들이 부라쿠민을 구분하는 방법은 성과 지역인데 부라쿠민은 그들만의 구역이 있고 그들이 주로 쓰는 성(씨)로 판단한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부터 일본에 정착해서 한인타운을 만들고 있는 사람의 인터뷰 내용중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러하다.

일본에 넘어가서 할 수있는 것은 이 것 뿐이 었고 그래서 이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장인정신의 대한 기억하는 내용 중 하나는 도시로 나가서 이일 저일 해봤지만 결국 내가 해야할 일은 이것이라고 생각되어 다시 돌아와서 가업을 잇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예전 시점의 다큐를 보던 나는 ‘현대에 와서 그렇게 까지 할일인가 싶었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차별이 존재 하고 있고 그 차별중에 하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시점이 바뀌었다. 

 

위 모든 일은 ‘자기가 있어야할 곳’, 자기 자리 지키기 인것이다. 

자기가 있어야할 곳을 지키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다른 사회 진출자들은 자기가 있는 곳에 대한 도전이며  자기자리를 지키는 법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자기자리 지키기는 현대 일본 매채에도 잘들어나고 있는데 ‘구 화족출신’ 즉, 귀족출신 = 신분 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그런 신분체계를 은연중에 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자기자리 지키기를 아직까지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는말이다. 

 

그 외에도 매체에서 보이는 아내가 남편의 한걸음 뒤에 따라 걷는 등의 남녀 차별로 보이는 풍습도 아내의 자기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땅히 미덕인 사회인것이다.

 

평소 일본 매체에 익숙해서 일본에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본에 대해 느끼던 미묘한 위화감을 이책을 말끔히 씻어 줬다. 

 

그리고 일본에 가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객관적인 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해서 더욱 핵심을 파고 든 것 같다. 

 

w***8 2022.09.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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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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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종잡을 수 없는 일본을 알기 위해미 국무부가 인류학자 루스 배네딕티에게 연구를 의뢰해서집필하게 된 책이다 적국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잃지않았고 선입견도 찾아 볼 수 없어서 표지에 말한대로 일본에 대해 가장 객관적 고전으로 뽑힌다 겉은 국화의 모습이지만 칼을 숨기고 있는 일본인을 표현한 책제목처럼 이중적 일본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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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종잡을 수 없는 일본을 알기 위해
미 국무부가 인류학자 루스 배네딕티에게 연구를 의뢰해서
집필하게 된 책이다 적국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잃지않았고 선입견도 찾아 볼 수 없어서 표지에 말한대로 일본에 대해 가장 객관적 고전으로 뽑힌다
겉은 국화의 모습이지만 칼을 숨기고 있는 일본인을 표현한 책제목처럼 이중적 일본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책이다
s******3 2021.01.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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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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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아시아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하였고 다른 역사, 또 그에 대한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알아보고 싶어서 구매하였다.일본사를 공부하거나, 일본의 문화를 좀 더 이해하고자 한다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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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아시아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하였고 
다른 역사, 또 그에 대한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알아보고 싶어서 구매하였다.
일본사를 공부하거나, 일본의 문화를 좀 더 이해하고자 한다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 
g*****9 2025.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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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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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은 1974년에 발간되어 현재까지 6판 18쇄 까지 인쇄가 된 스테디 셀러다. (내가 읽은 버전 외 다른 출판사 것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루스 베네딕트가 1944년에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 문화에 대한 분석을 의뢰받고 쓴 책으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앞으로 어떻게 후속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연구가 필요했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에 가본적이 없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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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은 1974년에 발간되어 현재까지 6판 18쇄 까지 인쇄가 된 스테디 셀러다. 

(내가 읽은 버전 외 다른 출판사 것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가 1944년에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 문화에 대한 분석을 의뢰받고 쓴 책으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앞으로 어떻게 후속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에 가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드라마 인터뷰에 의존해서 

책을 썼는데 일본 특유의 문화를 예리하게 잘 잡아내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이 되었다. 


일본에서 국화는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고, 추운 가을에 피기 때문에 

깨끗하고 조용하고 고귀하다는 이미지가 있어 벚꽃보다는 국화를 좋아하는데

책의 제목인 국화와 칼은 고귀함과 예의바른 특성과는 반대로 

칼과 같은 잔인함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나타낸다. 


일본은 여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충성심, 수치심, 죄책감이 있고, 또다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온" 문화 이다. 

일본인들은 날 때부터 세상과 사람들에게 온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온을 입었다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일종의 수치이고,

갚아야 할 채무이기 때문에 늘상 실례합니다.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와 같은 말을 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온은 천왕으로부터 받는 "고온"으로 

천왕에 대한 충성으로 인해 특유의 물불 안가리는 잔인함이 나온 것 같다고 한다. 


충성심, 수치심, 죄책감으로 인해 타인을 배려하고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집단일때 큰 힘을 발휘하고, 예의 바르면서도 생각을 쉽게 알 수 없는 일본인 특유의 문화가 발달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온은 보은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큰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을 갚아야 하는 책무로 강하게 접근을 하게 되면 

스스로가 책무에 갇혀서 행동에 제한을 받게 되기도 할 것 같다. 


반대로 미국은 기부앤테이크의 문화가 있지만 매너일 뿐,

내가 받은 사랑을 의무적으로 갚아야 할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유이고 자기 자신이다. 


온 문화와 기부앤테이크의 문화 차이가 일본과 미국의 문화와 산업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i*******5 2024.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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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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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우리는 일본과 숙명적인 관계다. 따라서 일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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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는 일본과 숙명적인 관계다. 따라서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 말을 아는 것과 일본 문화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일본 문화에 대해 많이 알고 또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우리가 일본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저작임에 분명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y 2024.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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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투브에서 일본의 와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를 알게 되었다. 관련된 여러가지 책을 찾아본 가운데 그래도 일본 문화의 고전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먼저 읽어보자고 생각했고, 여러 출판사와 번역가들이 있었지만 을유문화사의 책을 구매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하지 않고 궁금한 부분만 찾아서 먼저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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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투브에서 일본의 와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를 알게 되었다. 관련된 여러가지 책을 찾아본 가운데 그래도 일본 문화의 고전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먼저 읽어보자고 생각했고, 여러 출판사와 번역가들이 있었지만 을유문화사의 책을 구매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하지 않고 궁금한 부분만 찾아서 먼저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던 제 3자가 일본 사람들을 바라본 모습이 매우 인상깊으면서도 관찰한 기록들이 매우 전문적이어서 연구방식도 흥미로웠다.

y*****h 2023.03.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