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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좁아 절반의 생활을 하는 ‘파블로’들 [서평] 『일곱 명의 파블로 (세상의 한가운데서)』(호르헤 루한 저, 지양사, 2019. 09.15.)
어른의 입장에서 읽은 동화책은 너무도 순수한 이야기로만 가득하다. 과연 아이들은 동화책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곱 명의 파블로』는 책은 읽는 아이들로 하여금 ‘파블로’가 되도록 이끈다. 세상에는 다양한 파블로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일곱 명이 책에 소개되었다.
광산에서 일하는 아빠를 둔 파블로는 자고 있는 아빠의 가슴에 손을 대보곤 한다. 그 부분은 다음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면 꼭 세상의 중심에 닿는 느낌이에요.” 이 묘사에서 아이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어른의 입장에서는 마냥 아름다운 문장이라 생각이 들거나, 아빠처럼 지하 깊은 광산을 느끼는구나, 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빠를 보고 꿈을 키운다. 언젠가는 세상으로 나가 멋진 모습을 볼 날이 바로 아빠의 어깨에 달렸기에 이러한 묘사를 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에콰도르 밀림에서 과일을 따 생활하는 파블로도 있다. 이 파블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를 잊지 말아요!”라고 외치곤 한다. 이 부분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외치는 소리와도 같았다. 어딘가에 살고 있을 파블로와 그들의 삶은 결국 지구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보호해야 함이었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파블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친지를 생각하며 시를 쓰는 아이다. 뉴욕으로 이민 온 파블로도 있다. 집이 좁아 가족 구성원 절반이 집 밖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는 하루의 절반을 떠돌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 절반 구성원과 자리를 교체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파블로의 학교로 시인이 찾아왔다. 시인은 파블로에게 꿈을 물었다. 파블로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이유는 사람을 때려도 감옥에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인이 그것을 표현해보라고 한다. 파블로는 머뭇거리더니 시로 썼다. 그때 시인이 “경찰이 파블로에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까?” 물었다. 파블로는 놀라 종이를 찢어 휴지통에 버려버렸다.
이 문장은 짧게 나왔지만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읽는 듯 많은 내용을 품고 있었다. 시인이라는 사람이 파블로 보다도 못한 감성을 지닌 어른이라는 점과, 시인 역시 그 사회 속에 물든 어른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파블로와 시인간의 역할이 바뀐 것 같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유난히 책을 덮고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 여러 파블로가 되어보게 하는 책
페루에 사는 파블로도 나오고, 리오 데 자네이로 빈민가에 사는 파블로도 나온다. 여기서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파블로를 향해 한 어른이 ‘왜 학교에 가지 않니.’라고 묻는다. 가고 싶다고 하자 ‘왜 안 가니.’라고 다시 묻는다. 정말 이 어른은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그저 아이에게 자신들은 질문하는 권위 있는 존재라는 걸 보이고 싶은 으스댐일까. 공감을 못하는 어른들과 이를 알면서도 대답을 해야 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대조시킨 역설적인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멕시코에서 태어난 파블로가 나온다. 이 파블로는 친구들과 함께 기차 위에 타 국경을 넘고 있었다. 파블로의 목에 상징처럼 엄마의 결혼반지가 걸려 있었다. 어디를 가건 엄마가 옆에 있다는 느낌과 함께, 자신 역시 인간으로서 태어났다는 자부심을 파블로는 가질 것이었다. 이 파블로와 친구들의 표정은 밝았다.
책 속 파블로들은 여러 상징이 될 수 있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에서 지금 우리의 어린이들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지금 지구에서 여러 파블로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책은 깊이 있게 그리고 있었다. 또한 책의 그림들은 정말로 어린아이가 그린 듯 천진난만했고, 색감과 표정 등을 통해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검은 바닥의 노란 길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황금빛 미래를 밝히는 카펫과도 같았다. 옐로우 카펫 말이다. 그 위를 한 가족이 걷고 있었다. 책은 이 가족의 발자취를 점점 앞날로 이끌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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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한 글, 키아라 카레르 그림, 유아가다 옮김, 지양어린이, 2019.
옛날에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내가 라면을 먹을 때’를 읽었다. 어떤 아이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지만 지구의 어느 아이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옛날과 오늘처럼 시간의 차가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나라 작가가 ‘강경수’가 지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도 같은 흐름이다. 정말 외국 어느 아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난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일곱 명의 파블로도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첫 번째 파블로는 8살이다. 엄마의 존재는 모르겠으나 아빠는 광부의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닥치는 대로 아무것이나 급히 먹은 후’ 침대로 가서 곯아떨어진다. 삶의 고단함과 인간답지 못한 삶이 느껴지는 말이다. 닥치는 대로 먹는 것도, 아무거나 먹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마저도 급히 먹어야 하는 아빠는 어떤 삶을 사는 것이지. 아빠도 불쌍하지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파블로가 더 걱정이다. 아빠의 그럼 모습을 보고 살아가는 파블로는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그리고 미래의 파블로는 어떻게 될까?
세 번째 파블로는 ‘난민’이다. 아르헨티나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군사정권인 적이 있었나 보다. 난민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시리아, 베네수엘라, 미국에서의 이야기가 바로 얼마 전이다.
네 번째 파블로는 이민자이지만 난민이나 별다를 게 없다. 꿈의 나라(?) 미국에 살지만 두 가족이 번갈아 가며 12시간씩 단칸방에서 살아간다.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섯 번째 파블로는 브라질에 산다. 그의 삶은 쓰레기장을 뒤지며 사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 신문기자라는 자가 나타나 말을 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에게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라고 묻는다. “가고 싶어요.” “그런데 왜 안 가?”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의도된 질문일 수 있다. 그러길 바란다.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아이를 통해 복지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이나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파블로도 난민이다. 얼마 전 일어났던 난민과 비슷하다. 미국의 국경을 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난민의 사례가 있었다. 미국 대통령은 그들을 철저히 막았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린 미국을 욕할 자격이 없다. 작년 우리도 예멘 난민 때문에 한동안 홍역을 앓아야 했다. 우린 난민에 대해 매우 인색한 나라다. 난민 인정 비율은 형편없이 낮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나 국력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명확하다. 난민에 대하는 유럽의 사례를 보면 ‘국격’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서 슬퍼하거나, 가슴 아파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행동이 필요하다.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호응을 해주어야 한다.
책의 분위기는 내용에 흐름처럼 어둡고 무겁다. 작자는 문제를 던지고 해결해 주지 않았다. 그 몫은 독자에게 있다. 그냥 한 번 읽고 던지지 말기를. 그리고 책을 읽은 아이들이 파블로와 같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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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파블로 - 세상의 한가운데서 / 호르헤 루한 글 / 키아라 카레르 그림 / 유아가다 역 / 지양어린이 / 2019.09.27 / 지양어린이 세계 명작 그림책 63 / 원제 Il cuore del mondo (2017년)
책을 읽기 전
많은 생각을 가지고 <일곱 명의 파블로>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좋아하는 출판사 지양어린이의 신간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었지요. 처음 책을 만나 표지를 보면서 '가볍지 않은 책이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줄거리
칠레에 살고 있는 파블로는 여덟 살이에요. 파블로의 아빠는 구리 광산에서 일하지요. 700m 깊이 땅속에서 아빠는 드릴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요. 굴속이 아무리 추워도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아르헨티나 소년 파블로는 멕시코에서 살아요. 군사정권의 압제를 피해 부모님과 함께 아르헨티나를 탈출했죠. 어느 날 갑자기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친척이나 친구들을 생각하면, 파블로의 마음은 너무 아파요.
또 다른 파블로는 뉴욕에 살아요. 가이아나에서 온 이민자 아들이죠. 부모님과 살던 단칸방에 얼마 전 뉴욕에 도착한 삼촌 부부와 네 명의 사촌들이 왔어요. 두 가족은 번갈아 가며 12시간씩 단칸방에 머물러요. 파블로네가 12시간 방에 있는 동안, 삼촌네 가족은 거리에서 12시간을 보내야 해요.
책을 읽고
라틴아메리카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힘들 삶을 보내고 있는지 알게 되네요. 그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인데 왜 이리 고통스러울까요? 무엇이 어린이들을 힘든 삶으로 내몰았을까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독재정치가 낳은 불평등한 분배 구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풍요의 땅인 미국으로 떠나도록 사람들의 등을 떼밀었다고 합니다.
700미터 땅속에서 구리를 캐는 칠레 광부의 아들 파블로, 아마존 밀림에서 엄마와 열매를 따서 먹고사는 파블로, 폭압적인 독재 정권을 피해 가족을 따라 멕시코로 망명한 아르헨티나 소년 파블로, 뉴욕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가이아나 이민자의 아들 파블로, 페루의 오지 마을에 살면서 하루에 우유 한 잔 마시기도 힘든 가난한 파블로,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고달픈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파블로, 먼저 미국으로 간 부모를 뒤쫓아가기 위해 위험한 화물열차 지붕 위에 몸을 실은 멕시코 소년 파블로. 7명의 파블로들은 오늘도 하루하루를 버티어 내고 있어요.
모든 파블로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그중에서 뉴욕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거리에서 쉬고 있는 파블로의 가족을 보는 무관심과 배척이 강한 행인들의 표정이 눈에 띄네요. 뉴욕의 파블로는 학교에서 시인을 만나고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사람을 때려도 감옥에 가지 않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지요. 자신이 생각한 미래의 모습을 그림과 시로 표현을 하는 것을 본 시인이 묻지요. “경찰이 파블로에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까?” 그렇게 파블로는 폭력은 폭력으로 갚는 방법은 올바르지 않다고 배우게 되지요. 파브로가 처음부터 강한 적대심을 갖게 된 것을 아닐 거예요. 하루의 삶조차도 안정되지 못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지요.
이 아이들은 희망이 없을까요? 뉴욕의 거리를 헤매고 있는 파블로가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일이 잘못된 방법임을 알게 되는 것처럼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법과 순수함 마음으로 희망을 찾아내고 있어요. 세상에는 아주 많은 파블로들이 있어요. 그들은 모두 하나예요. 회전하는 지구와 출렁이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그들의 심장도 똑같이 뛰고 있으니까요.
- 글작가 호르헤 루한(Jorge Lujan)의 그림책 -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멕시코에 살고 있는 작가님이세요. 특별한 점은 자신이 만든 어린이극 무대에 서고 있다고 해요. 한글 번역된 그의 작품의 그림은 키아라 카레르와 함께 협업을 하였어요.
-그림 작가 Chiara Carrer(키아라 카레르 / 치아라 카레르)의 그림책 -
<안나야, 어딨니? / 국민서관>을 통해 작가 검색을 했던 작가였어요. 이렇게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각 출판사마다 작가의 이름을 틀리게 등록되어서인지 작가의 번역 이름으로는 온라인 서점이나 책정보에서 여섯 권의 그림책들이 검색되지 않아요. 그 사이 더해진 소식이라면 그녀가 2018년 최고의 작가로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네요.
오늘도 행복한 그림책 읽기! 투명 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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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파블로
파블로야! 너는 대체 어디가 집이니? 칠레니 에콰도르니 아르헨티나니 뉴욕이니 아니면 페루니? 도대체 파블로가 왜 이렇게 많아
누군가 말했다.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고 정말 그럴까? 나는 왜 후진국에 사는 아이들이 힘들게 사는지 어릴 때는 정말 몰랐다. 태평양의 야자수의 그늘에서 바라보는 해 질 녘의 노을이 누구에게는 환상적이겠지만 누구에게는 힘들고 힘든 삶의 하루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 전 세계 수많은 파블로들이 살고 있다. 가난한 파블로들이 말이다. 이 책의 파블로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게 죄라면 난 신을 결코 용서하고 싶지 않다.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어릴 때 모두가 파블로였다. 우리의 아버지들도 할아버지들도 하나같이 전쟁과 격동기에 성장한 파블로들이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우리는 그들을 외면하는가? 어제 비 오는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 세계의 파블로들을 만났다. 그들은 저마다 도와달라고 외쳤다. 바로 유니세프 제단에서 나온 여성분이 자진 모금 서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얼마 되지 않은 소액의 돈이 그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다. 기꺼이 서명하고 나오는데 수많은 파블로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난 이 책에 나오지 않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파블로들을 알고 있다. 다이아몬드 광산에 팔려온 아이들…. 하루종일 광산에 흘러들어온 화학물질이 있는 웅덩이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피부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물질주의와 탐욕에 눈이 먼 어른들이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고 학대하고 있다.
그들은 형제이고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다. 지금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이유는 우리 앞에서 고생하고 살다간 수많은 파블로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전 세계의 수많은 파블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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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기아’, ‘군사정권’ 이런 이야기들을 아이와 해 본 적은 없다. 끽해야 매년 유치원을 통해 전해지던 한 구호단체의 그림그리기에 참여하면서 이야기 해보는 정도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무겁기도 해서 나조차도 거론하기 불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르고 지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 적당한 때를 찾아 알려주긴 해야할 터였다. ‘네가 살아갈 이 세상이 사실은 네가 있는 이 테두리 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곱 명의 파블로>에 등장하는 ‘파블로’들은 여덟살이다. 공교롭게도 큰 아이와 나이가 같다. ‘파블로가 왜 이렇게 많아~?’ 라고 천진하게 묻는 이 아이가 사실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파블로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칠레, 에콰도르, 멕시코, 뉴욕, 페루, 브라질에 사는 파블로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빈민과 난민과 거리의 부랑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덤덤하게 그려진 책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책 속의 파블로들 조차 알지 못한다. 어른들이 왜 싸우고, 죽이고, 선을 긋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여덟 살의 파블로들은 살아남기 위한 희망 없는 하루를 보낼 뿐이다.
부모로부터 이어지는 깊은 절망이 아이들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 특히 가슴 아팠다. 까맣고 거친 연필 선으로 그려진 일러스트가 파블로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었다. 직접 드러낼 수 없는 공포와 슬픔이 검은 선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베어 있다. 문장은 담담한데 적어도 어른의 시점에서는 아팠다. 기어이 큰 아이의 입에서도 도와주고 싶다는 말이 삐져 나온다. 그렇지만 대체 무엇을? 어떻게? ‘체제’, ‘이념’, ‘종교’의 갈등을, 각 나라마다 지독하게도 얽혀 있는 가난의 사슬을 무슨 수로 끊어 낼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을 꿈꾸는 일로 끝을 맺고 있다. 일곱 명의 파블로와 내 아이를 나란히 세워본다. 그들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똑같이 행복하면 좋겠다. 단순한 이타주의로는 어둠을 빛으로 바꿀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누군가는 이런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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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문화관련한 그림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파블로라는 제목을 보고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의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짐작만 할 뿐 그림을 보며 전혀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지 못했어요. 표지의 그림이 함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왜인지 슬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7살난 아들에게도 전해졌나 봐요. 다 읽고 나서 그러더라구요. 책이 어두운거 같다고요. 그림들을 색연필과 그래파이트 연필로 그렸다고 소개되어 있어요. 아마 목탄같은 연필인가봐요. 선들이 굵고 거칩니다. 첫번째로 칠레에 살고 있는 여덟살 파블로가 나와요. 파블로의 아빠는 광산에서 일을 하시고 집에 돌아오면 먹고 바로 곯아떨어집니다. 그런 잠든 아빠 가슴에 손을 가만히 대고 있는 파블로가 나와요. 아빠가슴에 손을 대고 있으면 세상의 중심에 대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림을 보는데 그림에 머무르게 되더라고요. 에콰도르에 사는 파블로는 엄마와 열매를 따서 하루를 살아가고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소년 파블로는 군사정권에 있는 고향을 떠나 멕시코에서 살고 있죠 슬픈 짤막한 시가 나오는데 9세 하이디 보에토 어린이가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장엔 군인들이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또 먹먹해지더라고요 뉴욕에 사는 파블로는 파블로네 가족과 삼촌네 가족과 단칸방과 길거리에서 12시간씪 교대하며 지냅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싶냐는 시인의 물음에 경찰이라고 대답해요 경찰은 사람을 때려도 감옥에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시골학교 선생님의 파블로, 쓰레기장을 뒤지는 파블로가 등장합니다. 학교에 왜 안가냐고 기자가 묻자 가고싶지만 연필과 공책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멕시코에서 로스 앤젤레스로 가려고 화물열차 지붕에 타는 파블로. 세상에는 많은 파블로들이 있지만 모두 하나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사실 아이랑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설명해주기가 어렵더라고요. 읽고나서 아이와 제가 함께 말했던 점은 슬픈것 같고 어두운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책을 통해 정말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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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 살고 있는 파블로 에콰도루에 살고 있는 파블로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파블로 뉴욕에 살고 있는 파블로 페루에 살고 있는 파블로 리오 데 자네이로에 살고 있는 파블로 멕시코에서 태어났지만 로스앤젤레스로 거고 있는 파블로 일곱 명의 파블로들의 이야기.... 세상에는 많은 파블로들이 있어요. 그들은 모두 하나예요. 회전하는 지구와 출렁이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그들의 심장도 똑같이 뛰고 있으니까요. 독재정치. 가난.불평등.국경.목숨.추방.이민자.불법 체류.희망. 책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분명 그림이 그려진,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일텐데... 떠오르는 단어는 어린이들과는 거리가 먼 단어가 아닌지.... 아이들의 이름과 살고 있는 곳을 먼저 소개하는 방식의 이야기 책은 그 후 긴 부연 설명도 없는데 각기 다른 파블로 들의 생활 환경이 눈에 그려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도 또한 파블로의 마음을 표현 한 듯한 스케치가 인상적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들의 마음속에 크게 남게되는 것인지, 그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불공평함을 느끼고, 스스로 희망을 잃어가는 모습을 짧게 표현한 그림책이여서 읽고 난 후 여운이 많이 남게 되었다. 한참 생각해 보았다. 우리도 과거에는 어렵고 힘든 시절들을 경험하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때의 모습을 잊어버릴만큼 너무도 잘 살아가고 있고, 누군가에게는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라가 되어있다. 이젠 옆 집, 뒷 집, 아랫 집에 누가 살아가는지 그 집은 형편이 어떤지, 아이들은 밥을 먹고 다니는지, 아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하루에 얼만큼인지 알려 하지도, 안다 할지라도 다들 각자 삶이 바빠 신경쓰고 돌아 볼 틈 조차 없이 빠르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웃사촌... 이 단어는 과거의 단어로 흘러간지도 오래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이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 그만큼 하루 하루 힘들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맞춰 살다보니 여유가 없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주변을 둘러 볼 여유도 없다. 그러다보니, 요즘 티비만 켜만 나오는 다양한 뉴스 속에서도 말도 안 될 법한 사건들이 한 시간 뉴스를 가득 메꾸고 있다. 책에서 나오는 파블로들도..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중에 한 명이다. 마음은 분명 안타깝고 도움의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는 것을 분명 알고있지만 우린 지금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마음과 행동이 각기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정 없이...정이 뭔지도 모르며... 시간이 흘러도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한 결 같은데,...우린 너무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난 지금 어떻게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달리 그 길에 주변은 돌아보고 달리고 있는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인지... 빨리 도착지점에 가는 것도 좋지만, 주변을 둘러 보면서 외롭게 혼자만 달리는 삶이 아닌 함께 달리는 세상을 살아가야 겠구나.. 나에게 그 정도의 여유는 줄 수 있는 거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 |
![]() ![]() ![]() 일곱 명의 파블로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태어난 나라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을 것이다. 여기서 만난 일곱 명의 파블로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주로 부유하거나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환경에 처한 아이들이었다. 첫 번째 소개된 파블로는 칠레에 사는 여덟 살 꼬마였는데, 그의 아빠는 구리 광산에서 일하고 있다. 거뭇거뭇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곯아떨어진 아빠의 모습을 보며 파블로는 아빠의 가슴에 손을 대고 세상에 중심에 닿는 느낌을 받는다. 두 번째 파블로는 에콰도르에 사는 아이였는데, 엄마가 아마존 밀림에서 열매를 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파블로는 군사정권의 압제를 피해 멕시코에 살고 있는데, 그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냉혹한 군인들과 무자비한 군홧발에 짓밟힌 집들이다. 네 번째 파블로는 가이아나에서 온 이민자 파블로였는데, 브롱크스의 단칸방에서 삼촌 부부와 12시간씩 번갈아가며 머물고 있었다. 그의 장래희망은 경찰. 시인이 왜냐고 물으니 경찰은 사람을 때려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답을 내놓았다. 다섯 번째 파블로는 페루에 살고 있었는데 리마의 시장이었던 대부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매일 우유 한 컵씩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파블로는 레오 데 자네이로 빈민가에 살며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 마지막 파블로는 멕시코 출신이지만 미국 국경지대에서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가고 있다. 엄마의 결혼반지를 부적처럼 목에 걸고. 벌써 두 번이나 붙잡혔지만.
그림은 목탄 같은 재료로 그려졌고 색깔은 최소화하여 어둡게 표현했다. 내용만큼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주변에 있는 또 다른 파블로는 누구일까? 학교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소외받는 다문화가정 아이들? 물조차 깨끗하게 먹을 수 없어 피부병에 걸리기 다반사인 아프리카 태생의 아이들? 이 책에선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력의 나라들을 그렸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건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다. 그들 모두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있으니.
이 책을 보니 좀 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졌달까? 세상에 수많은 파블로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을 위해 내가, 나라가 무엇을 해야 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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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책입니다. 왜냐고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출판된 그림책을 찾아보신 분이라면 백퍼 공감할 겁니다. 책이 없어요.
얼마 전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북페스티벌 (이것도 왜 책 축제라 하지 않는지 의아하지만)이 열렸습니다. 저도 작은 도서관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처음에 제3세계 그림책을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포기했지요. 책이 없어요. 지역 도서관을 다 뒤져도, 서점은 물론 중고 서점을 다 뒤져도 책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절판이고요.)
작가 강연회에서 만난 출판사를 운영하신다는 작가님께 여쭤봤습니다. 왜 책이 출판되지 않을까요? 당연하고도 당연한 대답. 안 팔려서요. 그런데 독자 입장에선 '보고 싶어도 없어요'거든요.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비룡소나 창비 같은 큰 출판사에서 가끔은 출판인의 책임감으로 안 팔리는 지역의 그림책도 출판하면 안 될까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대형 출판사도 아닌 '도서출판 지양사'에서 돈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라틴 아메리카 작가의 그림책을 출판했습니다. 이쯤 되면 입에 거품 물고 칭찬해야 할 일 아닐까요? ㅎㅎ
각설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선 '파블로'란 이름이 참 흔한 모양입니다. 옛 시절 우리나라의 철수와 비슷한가 봐요. 왜냐하면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파블로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서로 비슷한 삶을 살고 있거든요.
칠레에 살고 있는 여덟 살 파블로의 아버지는 구리 광산의 광붑니다. 칠레의 파블로가 살고 있는 집 풍경이 풍요와는 거리가 머네요. 아마존 밀림에서 열매를 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에콰도르의 파블로는 아주 외롭게 사나 봅니다. 아르헨티나 소년 파블로는 군사정권의 압제를 피해 멕시코에서 살고 있답니다.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진 친척과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답니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파블로도 있네요. 가이아나에서 온 이민자인 파블로는 삼촌 부부의 단칸방에서 머물고 있는데 이들 가족들은 12시간씩 교대로 집에 머문답니다. 그럼 나머지 12시간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길거리에서 보내야 한다네요.(충격입니다.) 페루의 작은 시골에 살고 있는 파블로. 그들의 옷차림과 대화에서 가난이 묻어납니다. 도시의 제일 큰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는 리오 데 자네이로 빈민가의 소년 파블로도 있습니다. 학교에 가져가야 할 학용품이 없어 학교에 갈 수 없답니다. 멕시코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화물 열차 지붕에 올라탄 파블로.
이 아이들의 심장도 뛰고 있습니다. 지구의 다른 모든 파블로들처럼요.
마음이 무척 우울해지는 책입니다. 나만 잘 살고자 했던 저를 반성하게 한 책이기도 하고요.
라틴 아메리카의 아이들이라도 다 파블로처럼 가난하진 않습니다. 돈이 많아도 너무 많은 소년 파블로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난한 파블로에겐 관심이 없지요. 같은 심장을 가졌는데 말입니다. (그게 비단 라틴 아메리카만 그런 건 아닙니다만)
이 책의 부제가 '세상의 한가운데서'입니다. 세상이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지요. 이 아이들도 세상에 존재하고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있어야 하고요. 그런 세상을 위해 여러분들은 이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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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물질적 부에 따라 부유층, 중산층, 빈곤층 세 부류로 나뉜다.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논리는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중산층은 몰락하고, 빈곤층은 더욱 가난해지는 수레바퀴 논리다. 부익부 빈익빈은 부자가 가난한 이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성실하고 더 똑똑하고 더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 자체가 그런 사기적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작가 호르헤 루한은 ‘파블로’라는 이름을 가진 라틴아메리카 아이들 일곱 명의 가난하고 딱한 삶, 애처로운 처지를 전해주고 있다. 칠레,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멕시코, 가이아나, 페루, 브라질의 '파블로'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 세상 어딘가에 숨 죽이고 있을 모든 약자들을 대변한다. "세상에는 많은 파블로들이 있어요. 그들은 모두 하나에요. 회전하는 지구와 출렁이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그들의 심장도 똑같이 뛰고 있으니까요." 위의 메시지처럼, 이 그림책은 세계의 파블로에게 보내는 우정의 손짓이 아닐까 싶다. "우정은 인격적 평등관계를 동반한다." 철학자 김형석 옹의 말이다. 참다운 우정이 직업의 차이, 계급의 상하, 인종적 편견, 나이까지도 넘어설 수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이들도 파블로와 우정을 키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세계의 가난이 굶어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 이미지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사회적 약자와 빈곤에 대한 관심이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더 확장된 느낌이다. 일곱 명의 파블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곁으로 다가간 어른들이 없진 않았다. 이들은 유랑악단, 시인과 신문기자들이다. 이들은 예술과 교육의 현실적 가치를 일깨우지만, 파블로에게는 마땅히 받아야 할 예술과 교육이 오히려 사치로 다가온다. 본문 그림은 주로 색연필과 그래파이트 연필로 그려 투박한 질감이 특색이다. 이 투박함이 결여에서 오는 소외감을 재현하지만, 천연색처럼 노골적이진 않아서 오히려 빈곤의 황폐함과 열악함, 그리고 위화감을 꽤 누그러뜨린 느낌이다. 만약 컬러 사진처럼 생생했다면 아이가 받았을 충격이 꽤나 컸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