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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점으로 보면, 제가 객관적으로 한 표 앞서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25일 사전투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때 동작구 재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의 주소가 동작구가 아니었기에 투표권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때 그를 처음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말 잘하고, 유머 있고, 하지만 동네 아저씨 같은 정치인으로 그저 막연하게만 알았다. 동작구에서 재보궐선거를 할 때였다. 우연치 않게 악수 할 기회가 있었는데 느낌이 참 묘했다. 두툼한 손, 다소 거친 피부, 그럼에도 따뜻한. 자칫 거부감이 들법하지만 그 조합이 묘하게 믿음이 갔다. 당시 선거는 노회찬 후보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민주당에서는 기동민 후보를 전략공천 했고, 그 지역 당협위원장은 극렬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내의 분란은 야당의 분열로 이어졌다. 당시 여당은 ‘강남 4구’라는 슬로건을 내건 나경원 후보였다. 막강한 상대를 앞두고 야권에서는 단일화는커녕 내분으로 인해 이미지만 나빠지고, 선거판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불리한 투표상황에서 사전투표 날. 투표를 마치고 나오던 노회찬 후보에게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앞의 말은 그 때 한 말이다. 선거 결과는 나경원 후보의 승리(979표차). 노회찬 후보와 야권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컸을 결과다. 그럼에도 “현재 시점으로 보면, 제가 객관적으로 한 표 앞서고 있습니다.”는 말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으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나갈 수 있는 정치인. 정치인은 다 믿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저 사람만큼은 믿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정치인의 연설 중 기억에 남는 연설 두 개를 고른다면, 하나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제16대 대통령 민주당후보 국민경선 출마 연설”이다.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피 끓는 무언가를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 결말이 어떠한지 알기에 숙연해진다. 두 번째는 바로 故 노회찬 의원의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창당대회 대표 수락 연설”이다. 흔히 “6411버스를 아십니까?”라고 불린다. 이 연설을 볼 때마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낮은 곳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투명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 ‘투명정당’에 대한 반성. 그리고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겠다는 그의 외침. 2018년 7월 23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시인하고 투신으로 그의 행보는 끝을 맺었다. 분명한 잘못이고 옹호할 방법도 마음도 없다. 진보라고 해서, 대의를 위해서, 현재의 제도를 어겨도 된다는 면책은 없다. 명백한 잘못이지만, 그의 진심을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마음은 그렇다.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8.7.26. 이정미 정의당 대표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어요.” -2018.7.26. 유시민 작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완벽한 “정치인”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정치인”이어서 좋았다. 선거와 승리만을 향해가는 정치인이 아니라서 좋았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실패할 줄 알면서도 옳은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사람이기에 좋았다. 그는 떠났고, 그의 남은 과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속되었다. 그 정당을 특별히 지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뜻을 잘 이뤄낼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기원한다. -------------------------------------------------- 내가 그를 버렸지, 그가 나를 거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정든 것들과 하나씩 이별하는 과정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5년 5월 8일 ‘난중일기’, 담배를 끊은 뒤 p.59 제자가 많은 스승보다 스승이 많은 제자가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2010년 9월 30일 ‘난중일기’ p.74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일을 힘닿는 데까지 하는 것이 소망이죠. -2005년 12월 5일 <SBS> ‘김미화의 U’ p.95 타임머신이 있다면, 안 탈거에요. 돌이켜 보면 후회가 되는 대목들도 있지만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타고 싶은 유혹이 있을지라도 유혹을 끊고, 오히려 앞일을 생각하고 노력하며 사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중에 타임머신 잘 안 팔리겠네요. -2012년 11월 16일, 대학생언론협동조합 ‘YeSS’ 인터뷰. p.99 지금은 멸종에 가깝게 된, 희귀종이 된, 비유하자면 ‘추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씨앗을 뿌리려는’ 아름다운 윤리적 주체들이 출연했던 시기. -홍세화와의 인터뷰, 1980년대를 생각하면서 p.102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당장 알 수 없을 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큰 조카 노선덕 씨가 유족 추도사에서 노회찬 의원이 생전 자신에게 해주었다며 전한 말. p.102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창당대회 대표 수락 연설中 p.106 시인 안도현이 우리에게 물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오늘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를 거부한 사람들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너는 그들에게 한 번 이라도 희망이 된 적이 있느냐.” -2008년 낙선 후 4월 18일 ‘난중일기’ p.114 정치보복 당한 것은 본인이 아니라 압도적 표차로 그를 뽑아준 국민입니다. -2018년 3월 13일 트위터 p.116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라고 말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분노한 것은 그것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철부지의 철없는 주장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p.121)는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치부에 대한 조롱이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2월 9일 원내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 p.122 ‘수십 년간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감형한다.’거나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노동자이므로 감형을 한다.’, 이런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2004년 10월 14일 국정감사 p.126 저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합니다. “노동자 서민의 땀과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입니다.” 2016년 2월 1일 총선 창원 출마 선언문 p.144 우리 역사에서 1970년대는 저임금과 저곡가 그리고 노동 탄압이 성장 동력이었던 시대입니다. -2007년 3월 11일 민주노동당 후보 예비 경선 출마 선언문 중. p.197 막말이 서민적인 용어라니, 이보다 더 서민을 모욕한 말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2018년 3월 31일 트위터 p.209 내가 만든 말인데, 현재 한국 정치에서 리더십이라는 것은 실제 이미지십 image ship에 불과한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검증이 안 된 사람도 상관이 없어요. 이미지가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리더십의 여러 조항이 미확인 또는 확인 불가임에도 이미지로 해결됩니다. -2011년 8월 30일.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인터뷰. p.225 꼭 필요한 것들은 적정 규모를 갖춰야 한다. p.294 사회와 회사는 단어만 반대가 아니라 실체도 반대다. 사회는 시장경제인데, 회사는 계획경제다. 계획과 통제 없는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주된 참여자인 회사는 철저한 계획과 통제 아래 움직인다. 자본주의 사회는 계획경제를 하는 조직들이 모인 계획 없는 경제다. p.349 사람과 개가 공존하려면 개를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영식 기자와의 인터뷰. 시장에서 강자와 약자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면서. p.352 대한민국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 -2004년 10월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p.353 저는 실제로 경쟁사회가 복권사회라고 보거든요. -홍기빈과의 인터뷰.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p.400 이제 독도 문제는 독도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2006년 4월 23일 ‘난중일기’,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조용한 외교’를 끝내고 보다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p.431 비정규직 문제도 차별이잖아요. 남녀 차별도 문제인 것이거요. 그런 점에서 저는 차이를 차별로 폭력적으로 다뤘던 과거 시대의 폐습, 폐단을 없애나가는 것이 저폐청산이다, (생각합니다.) p.434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p.465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에겐 자신의 왼쪽에 있으면 다 좌파입니다. 그러니까 극우파에겐 삼라만상이 다 좌파입니다. 약간 멀면 극좌파죠. 극우파 오른쪽엔 절벽밖에 없습니다 물론 절벽 밑엔 자민련 등이 떨어져 있죠. -2009년 8월 10일 트위터 p.479 정치에 있어서 도덕적 우위보다도 중요한 건 감동적 우위다. -2007년 5월 2일 <딴지일보> 인터뷰. 진보정치가 더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p.517 100퍼센트 예측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정의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다. -2004년 7월 14일 ‘난중일기’ p.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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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치가 많은 관심과 무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김어준 이전에 서민에게 가장 정치를 와닿게 한 인물이 노회찬이지 않을까 싶다. 위원이나 운동가나 여러가지 직책이 있었겠지만 인간 노회찬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찾기 쉽지 않다. "네 머리가 벗겨지기 전에 좋은 세상이 올거야"라는 말이 책 제목이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가 간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좋아지지 않는, 역행하는 세상이 아쉬울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