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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 바뀌고 삶의 내용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그대로 이어진다면, 부모도 자식도 그렇게 되기를 진정 바라지 않았겠지만, 애써도 애를 쓰지 않아도 썩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 또한 삶이 축복이라고 살아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 믿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겠지만.
1992년에 15살, 1994년에 17살, 1996년에 19살, 1998년에 21살. 소설 속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기다. 이 나이 대의 남자 아이는, 남자 아이들은,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대부분 이런 생각과 이런 행동과 이런 충동과 이런 좌절을 겪는다는 말인가, 나는 이게 좀 많이 궁금했다. 이제 알아낼 도리는 없지만. 어쩌면 이 소설로 일반화시켜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로 몰입했다. 마음에 영 들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니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래도 어찌 그렇게 일탈 행동에 빠져드는 것인지, 마치 그게 이 시기의 삶을 견디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항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려서 져 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무지무지 싫어하는 욕설 표현조차 이 소설에서만큼은 받아들일 만했으니 어지간히 이해의 폭을 넓혀 놓았던 셈이다. 이 또한 작가의 표현 능력 덕분일 것이고.
반면에 같은 나이의 여자 아이들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덜했다. 나와 내 친구들이 겪은 청소년기와 비슷한 점이 있기도 했고, 정도가 심해서 그렇지 충분히 짐작할 만했으니까. 순간의 선택과 행동으로 이후의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을 볼 때마다 아찔했다가 한탄했다가 나무랐다가 마침내 위로하기를 얼마나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시작부터 망가지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걸 모르니, 그쪽으로 가는 길조차 어린 그 나이 때는 확인할 수 없으니, 이미 들어서고 만 길에서 그만, 어렸을 때 꿈꾸었던 삶과는 다른 삶으로 뒤척이는 어른이 되고 마는 것이겠지.
소설은 잘 읽히고 오래 읽어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런 분량의 글을 읽고 있으면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내가 읽고 있단 말이지, 이렇게 빠져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헤아리고 있단 말이지. 게다가 프랑스의 시골이 배경이라는데, 어째 좋은 소설은 배경마저 낯설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다. 우리나라의 쇠락한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니까.
게다가 4부의 1998년의 경우, 프랑스에서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고 그해 프랑스가 우승을 했다는 배경을 이야기의 주된 요소로 삼고 있다. 그 일이 그때의 프랑스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 이끌고 풀었는지, 정녕 월드컵과 우리네 삶이 어떤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인지, 과연 맺힌 곳이 있기나 한지, 2002년도 우리의 월드컵 상황과 너무도 잘 맞물린 듯 펼쳐지고 있어서 도무지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가 않았다.
삶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며 행운이고 누군가에게는 짐이자 불행의 원천이라고 느껴진다. 살아서 좋기도 하다지만 못 죽어서 산다는 사람도 분명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삶의 질이라는 게 나에게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면, 좀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나 내일, 부모보다 나은 시대를 살아야 할 자식 세대가 못된다면,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사회적 차원의 모순에 따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는 건 정말 고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한데. 앙토니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앙토니, 각각의 삶 중 어느 하나 쓸 만해 보이는 게 없음에도 또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기만 하다.
'그들'은 오래오래 살았다가 떠나고 있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또한 '그들'처럼 아이들을 남기고 떠나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그들' 덕분에 인류의 역사 한 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마음마저 애달프다. 소설이 아주 잘 읽혀서 입맛이 많이 썼다. 내 기분이 오래 안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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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 청춘은 닳아간다. 계급이라는 거대한 송곳이 파놓은 상처의 궤도 속에서, 아이들은 증오하던 부모의 무기력과 폭력을 서글프게 대물림한다. 내 인생이라며 필사적으로 이름을 새기려 발버둥 치는 행위조차 결국 타인과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내는 위태로운 몸짓임을 보여주는 시린 잔혹동화. 계급은 언제 어디서나 있다. |
|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도시의 탈공업화의 그늘 속에서 성장하는 청춘의 이야기을 그린 작품이다. 1990년대 프랑스 북부 소도시를 배경으로, 경제적 쇠퇴와 사회적 소외 속에서도 사랑과 절망과 도전의 방식을 모색하는 주인공들의 여정을 담겨있다. 가족 갈등, 계급 갈등, 이민자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청춘의 감정과 맞물리며,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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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내 자리를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내 아이들도 나와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오싹하거나 암담하지 않았다. 난 충분히 행복하니까. 지금 현재..내 삶에. ... 내 아이들도. 이런 행복을 느끼며 발전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한다. (갑자기???ㅋ 진짜...) ..... 와~~~ 마지막 성인기에는. 월드컵이 나온다. 그리고. 프랑스가 결승에 올라가고.. 2002년도의 그때의 우리처럼. 모든 국민들은 하나가 된다. 심지어는 앙토니가 하신을 뒤에서 들어올리며 좋아했으니까..ㅎㅎㅎ (월드컵 축구는 없는 애국심도 만들지.) 아 잊지못할 2002년이여. 그래도 우린 축복받은 세대다. 대한민국 월드컵4강이라는 신화를 몸으로 느끼고 경험했으니까.. (말이 되는가 4강이라니) ..... 그리고 스포... 하신이.. 앙토니의 아버지를 보고.. 순간 열이 받은 모습으로 그를 쫓는다. 군중으로 부터 멀어져서.. 외딴 호숫가에 둘만이 있는다. 그리고 십분여를 걸었다.. 나는..숨죽였다. 스릴러구나~!!! 생각하고..두근두근.. 그런데 하신은.. "어...어.. 아저씨~~~!!!" 착한놈인걸까.. 마지막에 오토바이를 바로 찾으러 쫓아오지 않은거로 봐서는.. ...스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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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였던 이유는 먼저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 때문이였다.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긴하나, 괜히 시작했다가 또 중도포기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글은 잘 읽혔고, 읽고나니...또 이런 저런 생각의 여지들이 많이 남아서 좋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보니, 작가가 나와 비슷한 연배이다. 책속의 파트는 90년대를 대략 2년 정도씩 나뉘어 쓰여져있는데, (한국과 프랑스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덕분에 그 즈음에 나는 뭘했었나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책에는 신기하게도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 같은 것이 없다. 소위 말하는 기승전결도 없는 것 같고..그냥 그러한 일들이 나열되어 있고...마지막 챕터를 다 읽으면 마치 성장소설처럼 읽히지만...과연, 이걸 성장소설로 봐야할까? 나는 읽는 내내 이 책이 해피엔딩이면 개구라고, 새드엔딩이면 사회비판 소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정하고 사회비판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환경에 따라서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그 끔찍함에 읽고나니 찝찝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저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살아온 삶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그나마 여유가 있어서 지원을 받거나 케어를받은 인물은 막판에 새로운 삶을 살 것 같은 암시를 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애들의 경우는, 비록 그들의 청소년 시절처럼 말썽을 피우지는 않겠으나, 아마 그럭 저럭 젊은 시절을 보내고, 또 부모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소설로 접한다고 새삼 놀라울 것도 아닌 것이...중학교 때 개난리 피우다가 퇴학 당하던 애들, 그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로 입성을 하지 못한 애들, 서울에서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애들은...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그 옛날보다 집에 더 큰 TV와 냉장고 에어컨 따위는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책 속의 인물들도...비록 스무살 언저리가 되어 정신차리고 Cool한 내음이 가득한 듯 보이지만, 종국에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의대로 진출한 사람과 파리로 입성한 사람뿐일 것이다. 나는 이 질긴 운명의 지속이 대를 이어질 것이라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막상, 대학까지는 그저 그랬는데, 큰 회사를 다녀보니 다양한 삶의 모습에 주눅이 든 적이 많다. 부는 어떻게 대를 이어 상속이 되고, 지방에서 들고 뛰고 날던 애들도, 건물주 부모나 해외 주재원 부모를 둔 사람에 대비하여, 사용할 기회의 카드가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 피부로 느끼고 또 느꼈다. 그래서 요즘 한국의 출산율 저하 이슈에 대해서 나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건강하지 못한 국가는 도태될 수 밖에 없는게다. 여하튼, 별 대단하지 않은 스토리였는데, 읽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신기한 글이다. 클라이 막스가 없이 700페이지에 가까운 글을 잘 읽히게 쓰는 작가의 필력도 놀랍고, 뭐 이런 면에서 몇 십 페이지짜리 징징거리는 한국 문단이 걱정되기도 했다.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덧붙임. 2018년 공쿠르 수상 작품이다. 역시, 권위있는 상을 받은 작품의 퀄러티는 호불호와 상관없이 기본은 하는 것 같다. 맨발로 글목을 돈다는 헛소리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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