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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금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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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하면 많은 생각이 난다. 그 중에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도 있고, 젊은 날 가슴 졸였던 이야기도 있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라면 단연 몇년전 국방부 금서목록을 들수가 있다. 시대가 어떤시대인데 금서를 지정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네들 사고의 한단면을 보는것 같아 씁쓸함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 후, 오히려 금서로 지정된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그런 금서라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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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하면 많은 생각이 난다. 그 중에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도 있고, 젊은 날 가슴 졸였던 이야기도 있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라면 단연 몇년전 국방부 금서목록을 들수가 있다. 시대가 어떤시대인데 금서를 지정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네들 사고의 한단면을 보는것 같아 씁쓸함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 후, 오히려 금서로 지정된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그런 금서라면 많이 지정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 하나의 코미디는 [태백산맥]에 대해서 검찰이 내렸던 처분사유이다. 일반인이 읽으면 문제가 없지만, 대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이적성이 있다고 했던가?

 

학교 다닐 때, 금서를 많이 접했었다. 때가 때인지라 금서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되던 시절이었기에, 표지를 바꾸고, 책을 얇게 분권을 하고, 심지어는 복사하여 들고 다니며 읽었다는 기억이다. 그 책들이 바로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리영희 선생의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등이었다.

 

저자는 금서란 시대와의 불화를 알리는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라고 정의한다. 또한 지배권력이 권위적이고 억악적일수록 금서의 대상은 전방위로 확장되고, 선정기준도 자의성을 띤다고 말한다. 유신시절 책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통속적인 대중가요마저도 금지곡으로 묶은걸 보면 알 것도 같다. 하긴 장발이나 미니스커트도 단속하던 시절이었으니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금서의 역사를 보면 그 이유도 다양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이다. 중국에서 노자의 [도덕경]이 유가사상에 반했기에 목록에 올랐고, 조선초기 [참위서] [음양서]등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반하는 서적들이 대상이었던 것만 보아도 그렇다. 정권의 토대를 위협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면 그것이 종교서적이 되었던, 통속소설이 되었든 예외없이 금서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후기로 오면서 신문화와 관련된 서적들이, 일제시대에 민족감정을 일깨우는 책들이, 그리고 냉전과 독재시대 북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거나, 진보적 사상이 담겼다면 내용불문하고 금서목록에 올랐던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금서에서 우리는 책이 시대와 불화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금서란 시대가 당면한 과제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구한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금서 8종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금서를 문화투쟁이란 관점에서 풀이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금서를 통하여 문화투쟁의 역사를 읽는 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금서를 쓴 사람과 그 시대배경까지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에, 저자의 그러한 관점에 수긍이 간다.

 

[정감록]은 조선후기 조정의 금지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30년만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것은 한국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작자미상의 [정감록]에 하나로 묶였기 때문이다. 예언서란 현실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마련이고, [정감록] 또한 성리학이란 지배 이데올로기를 상대로, 지난 세상은 각종 모순이 쌓여 불합리하고 어두운 세상이었지만, 다가올 세상은 상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희망의 세상임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조선후기 평민지식인들이 벌인 문화투쟁이라고 풀이한다.

 

또한 이러한 세상의 모순에 대한 비판으로 금서가 된 책은, 꿈속에서 여덟마리 동물의 회의에 참관한 사람이, 그 회의내용을 1인칭 관찰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을 들 수가 있다. 안국선은 이 소설에서 동물들의 입을 빌려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침략을 비판하고, 개화파의 허위와 허세를 신랄하게 공격하였다. 기존의 유교적 입장에서 벗어나 기독교정신으로 조선사회를 혁신하고 제국주의에 맞서고자 했던 그의 소설은 인기 있는 풍자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저자 자신은 말년에 친일파로 구부러진 삶을 살았지만 말이다.

 

이는 김지하의 담시 [오적]에서도 나타난다. 무명이었던 김지하는 1970년 사상계에 [오적]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적]이 실린 사상계는 폐간되고, 김지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된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늑약때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빗대어 비판한 이 시를 당시의 집권자들은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땅의 민중들은 통쾌함을 맛보고 따라서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오적]이 민중의 언어로 민중의 생각을 표현하였으며, 이것은 민중의 전통에서 조선후기 평민지식인들의 문화투쟁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지하는 1990년대 들어 생명운동을 하면서 운동권이나 좌파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이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그는 우파에게는 침묵으로 일관 하였다. [금수회의록]을 지은 안국선이 생각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외교관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은 금서가 반드시 집권층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걸 말해준다. ,, 3국이 미국과 연합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선책략], 당시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이 찬성을 하였지만, 전국의 유생들이 반대를 하였다. 서양의 종교와 제도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것으로 본 유생들은 목숨을 걸고 반대하였고 이는 위정척사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성리학을 극복하려는 개화파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세력의 가치관을 둘러싼 문화투쟁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채호의 [을지문덕]은 고대사의 영웅 을지문덕을 민족의 구원자로 키워내고, 을지문덕의 역사로 구한말의 질곡을 벗어나고자 쓴 책이라고 한다. 민족주의적 영웅사관이 뚜렷한 이 책은 단순한 위인전이 아니라, 나라가 흥망의 기로에 섰을 때 민족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 위해 쓴 책이었다. 당연히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적용하여 금서로 지정했다.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고취한 것이라면 모두 금서로 지정되던 시대이었다. 그 치안유지법의 후예인 지금의 국가보안법에 의해 금서로 묶인 것이 바로 [백석시집]이다. 백석의 시는 일제시대에도, 그리고 해방된 후에도 금서로 지정되지 않았다. 막상 금서로 지정된 것은 6.25전쟁 이후 그가 고향인 북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백석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서정시인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그의 시는 역사의식과 문화적 자의식이 충만했으며, 일제시대 식민지근대성을 비판하는 문화투쟁을 벌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1977년에 출간된 고 리영희 선생의 저서 [8억인과의 대화]는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실천적 지식인으로, 80년대 사상의 은사로, 그의 삶이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8억인과의 대화]는 당시 이름마저 중공으로 불렸던 중국의 맨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박정희 반공정권이 처놓은 이미지를 탈색시켰으며,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은 당시의 시대에 눈뜨게 만들면서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태백산맥]의 금서논쟁은 15년간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일단락 되었다. 1989년에 완간된 이 소설을 저자인 조정래는 역사서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전에도 역사소설은 있었지만 분단의 문제는 외면했다. 설사 다루었다고 할지라도 우익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거나, 휴머니즘의 틀 안에서 다루었다고 한다. 결코 정권의 보복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정래는 8만에 이르는 사람이 5-6년간 지리산에서 싸우며 눈물 쏟았는데도, 어느 역사책에도 그 사실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빨치산의 목소리와 소작농의 목소리를 자신이 전하겠다는 역사의식과 용기가 [태백산맥]이 있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민중의 관점에서 서술한 이 책 역시 기층민중들의 문화투쟁이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금서는 지배권력의 위선과 부패를 질타하는 저주와 야유와 폭로이며, 또한 새로운 가치관의 도래를 알리는 불온함과 도발성이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퇴폐와 음란, 그리고 미풍양속의 저해를 이유로 늘 새롭게 금서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동기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지키려는 지배권력의 야욕이기에, 금서의 역사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금서, 지금 대선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금서들을 읽어는 보았는지, 읽었다면 그 느낌은 어떠했는지를 묻고 싶다. 금서의 역사가 곧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역사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답게 살기 위한 문화의 투쟁이라 하기에..



k*****1 2012.11.12. 신고 공감 9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금서를 통해 바라본 시대의 결핍과 충족을 위한 문화투쟁
"금서를 통해 바라본 시대의 결핍과 충족을 위한 문화투쟁" 내용보기
역사책이라는 븐야가 쉽게 읽히지 않는 사람들에겐 시대배열로 발생한 주요사건의 흐름을 맥락없이 따라가는데 있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때 할머니가 이야기해주시던 일제시대의 이야기를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듣고나서 책을 보면 그 시대의 흐름이 훨씬 가깝게 다가오는 경험이 있는 저로써는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투쟁이라는 부분이 어렴풋하게나마 더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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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이라는 븐야가 쉽게 읽히지 않는 사람들에겐 시대배열로 발생한 주요사건의 흐름을 맥락없이 따라가는데 있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때 할머니가 이야기해주시던 일제시대의 이야기를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듣고나서 책을 보면 그 시대의 흐름이 훨씬 가깝게 다가오는 경험이 있는 저로써는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투쟁이라는 부분이 어렴풋하게나마 더 가깝게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또 아직도 역사책을 사실 이전에 이야기처럼 읽는 저의 부족한 가벼운 습관일지도 모르겟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은 이 책이 조선후기부터 근현대사까지를 내달리며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 이면에 흐르로 있는 조류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각 시대를 장악한 권력, 사상, 생활, 경제등을 아우르는 문화와 이 반대편에 서 있는 문화의 상징으로 금서를 선택한 점은 한편의 변증법적인 접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책의 흐름도 각 금서의 시대배경과 작가의 배경, 책의 의도를 설명하며 마지막 정리 부분은 현재로 이어지는 서사성을 추구하는 것은 책의 의도와도 매우 충실한 접근법인것 같습니다.


역사란 인류 보편의 모든 것들이 변해가는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인류보편의 모든 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저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일년사이 제 짧은 소견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분야에서 narrative(또는 서사)라고 생각해오는 중에, 금서에서 이루어지는 서사적인 접근법을 고찰하는 것에도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됩니다. 최근의 smart device를 통한 소통, connection등도 개인간의 서사적인 흐름의 공유, 공감대, 진실이 크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개인들의 삶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시대에 따라 최근의 발달된 기기문명이 아닌 금서에 반영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서 금서에 무엇인,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보는 것은 그 시대에 무엇이 부족하였는지를 볼 수 있고, 다음에 온 시대가 추구한 가치의 개연성을 좀더 쉽게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듭니다.


8개의 장중에 읽어본 것이라고는 태백산맥밖에 없는 듯 합니다. 7장은 대화란 책을 통해서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을것 같고, 오적은 다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귀동냥으로 지나치게 됩니다. 다른 책들은 사실 역사책에서 잠깐잠깐 스쳐가는 정도가 아닐까한데 이번기회에 저자들이 갖았던 생각을 좀더 사세하게 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것 같습니다.


특히 저자가 말하는 문화헤게모니를 기반으로 처장에 배치한 정감록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의미부여는 아주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황당한 예언서가 아니라 그 속에 민중들의 희망과 현실의 결핍을 대체하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이는 문자가 만들어진 이래 인간의 역사와 참 오래동안 같이 온것 같습니다. 


금수회의록편에서는 시대의 지식이 풍족하더라도 현실과 이상이 괴리된 지식인의 한계를  안국선을 통해서 보게됩니다. 천종친일이란 망언으로 책임회피와 과거 행위의 정당화를 시도한 미당과 같은 발언에 대해서는 엄격함이 필요하지만, 해방후 여운형이 친일의 구분을 유연하게 한 배경에 대해서도 조금 이해가 증진된것 도 같습니다. 을지문덕편의 단재 신채호선생의 이야기도 저에겐 많은 즐거움을 준 편인것 같습니다. 사실 민족주의 역사학자라고 평가되지만 조선상고사만하더라도 전자책으로 받아는 두엇는데 읽기가 쉽지 않고 겉만 보게되는데 사학자를 통해서 조금이나 더 알게된 점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누차 지적하는 민족주의의 한계와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보다 다양한 책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합니다.


리영희선생의 8억인의 대화나 김지한 시인의 오적등은 지금도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그 시대를 지배하던 사람들과 그들의 부당성을 논하는 사람들, 그리고 현재에 바라본 시각등 다양한 논점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왜 이런한 책들이 출현되고, 인구에 회자되고 금서의 위치를 한자리 차지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분명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화란 책을 통해 저자의 생각 한자리를 보게되었다면, 작은 한편에서는 타인이 본 리영희 선생을 한번 다시 보게 된것 같습니다. 마지막 태백산맥은 특별히 논하는 것보단 일독이 훨씬 좋다고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의 마지막 단락에 전개된 금서지정의 논리와 동기는 시대를 넘어서라도 꼭 기억해야하지 않을까합니다. 저자는 함부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저는 사기에 나오는 백성의 입을 막는자에게 하늘의 재앙이 닥친다는 말을 더 믿고 싶긴합니다.



k***i 2012.11.10.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8권의 금서, 시대의 빗장을 열어젖히다!
"8권의 금서, 시대의 빗장을 열어젖히다!" 내용보기
정감록에 있어서만큼은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고 해도 좋을 사학자 백승종의 '금서, 시대를 읽다'를 읽었습니다. 조선시대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시대마다 존재했었던 '금서'들을 통해 조망해보는 이 책은 정감록 자체가 조선 최고의 금서였던 것 만큼 백승종 작가가 꾸준히 해왔던 작업과 연속된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작가가 이렇게 금서에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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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감록에 있어서만큼은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고 해도 좋을 사학자 백승종의 '금서, 시대를 읽다'를 읽었습니다. 조선시대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시대마다 존재했었던 '금서'들을 통해 조망해보는 이 책은 정감록 자체가 조선 최고의 금서였던 것 만큼 백승종 작가가 꾸준히 해왔던 작업과 연속된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작가가 이렇게 금서에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 금서가 당대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화투쟁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영, 정조 때 일어났던 정감록이라는 금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일들은 당시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기성 양반층 지식인과 토착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평민지식인들간의 문화 투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금서란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닌 일종의 상징과 같은 것입니다. 이를테면 기존의 지배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적 사상의 움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것도 한 권의 책이라는 구체적인 물건으로 나와야 했을 만큼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움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안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 사회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유지될 수 없을 때, 혹은 그 구성원들이 더 이상 그렇게 유지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할 때 마른 들판에 불길이 번지듯 광범위하게 일어납니다. 그렇게 금서란 꿈틀거림이요, 적 진지의 깃발을 무너뜨리려 덮쳐오는 노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즉 금서의 존재 자체가 이미 그 사회에 하나의 전선이 형성되어 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죠.

 

 한 마디로 금서란 멋드러지게 말하면 문화투쟁, 좀 유치하게 표현하자면 문화적 땅따먹기의 현장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백승종 작가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대표적 금서 8권을 가지고 그 금서들이 존재했던 시기마다 어떤 식으로 문화적 땅따먹기가 벌어졌는지 문자그대로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이 역사를 다루고 거기다가 문화 투쟁적 관점에서 본다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책은 정확히 듣는 사람들이 역사에 문외한 일반인들임을 염두에 두고 쓰여져 있으니까요. 거기다 문체의 스타일이 진짜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스타일이라 마치 정말로 강의를 듣고 있는 듯 현장감이 생생하여 더욱 몰입도를 높여줍니다. 아무튼 그렇게 쉽고도 생생하게 백승종 작가는 금서들이 형성했던 문화적 전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에 의해서 특별히 선택되어진 8권의 금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왕조 중기 때는 정감록, 개화와 척사가 한창 대립하던 무렵의 조선왕조 말기에는 황준헌의 '조선책략', 일제 식민지 초기에는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 비슷한 시기 또 한 권의 금서였던 단재 신채호의 '을지문덕', 그리고 해방이 되고나서 군부 독재 시절에는 오로지 북한에 남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면 금서가 되었던 시인 백석의 '백석시집', 이와 비슷한 시기로 여전히 서슬퍼런 독재 정권 치하에서의 시인 김지하의 '오적',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진실을 밝힌다는 이유만으로 금서가 되었던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 마지막으로 남쪽의 빨치산을 다루었다고 해서 문화적 성과와는 상관없이 금서가 되어버린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렇게 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권력이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마치 누르면 누를수록 더 높이 튀어오르는 스프링처럼 금서 역시도 더욱 활발하게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권력은 자신의 힘을 최대한 사용하여 억눌렀지만 오히려 금서로 집약된 자유와 해방의 욕구만 봄날에 민들레 홀씨가 퍼지듯 널리 유포시킬 뿐이었습니다. 금서는 권력의 안정과 지속을 위한 조치였지만 실은 금서를 지정했다는 것 자체가 패배의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금서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금지를 시켜야할 만큼 권력이 약해졌다는 표현에 다름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금서라는 권력의 약한 틈으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할 수 있었고 금서의 존재 자체가 전선을 명확히 그어 줌으로 인해 그것을 중심으로 뭉쳐 또한 새로운 대안의 바람을 일으킬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 '금서, 시대를 읽다'를 읽으면서 저는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만 작가는 단순히 이런 문화 투쟁의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금서로 역사를 바라보지만 작가는 단순히 금서를 역사를 조망하는 필터로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무엇보다 작가가 보여주는 개개의 책들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금서를 둘러싼 역사적 상황 못지않게 그 작품이 가지는 내적인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설명 역시도 풍부하게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두 가지 이점을 얻습니다. 하나는 물론 금서와 더불어 그것이 존재했던 당대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금서들 각각이 어떻게 쓰여졌고 어떤 내용이었으며 그걸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와 같은 개별 작품에 대한 이해입니다. 특히나 황준헌의 '조선책략',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그리고 신채호의 '을지문덕' 그리고 백석의 시에 대한 해석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만이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즐거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금서란 사회가 여전히 지배와 피지배의 구도를 유지하려 하는 한 절대로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지배자들은 그들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듣고 보려는 눈과 귀를 막으려 애써 왔죠. 하지만 역사는 또한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만 초래했다는 것을. 진시황제의 '분서'는 그의 죽음와 더불어 결국 진나라를 멸망시켰고 바스티유의 금서들은 결국 프랑스 대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금서란 인간은 가장 어두울 때 조차 그 어둠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빛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단적인 상징이 아닌가 합니다. 왠지 '읽는 것 자체가 혁명이다!'라고 했던 사사키 아타루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여기에 금서와 관련하여 좀 더 첨언해서 '배제된 책을 읽는 것이야 말로 혁명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금서, 시대를 읽다'를 읽고 난 뒤 제 솔직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l****1 2012.11.19.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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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은 결국 순리대로 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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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禁書),,,한자로는 글을 금한다라는 것 여기서 금서란 시대와의 불화를 알리는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 일탈과 혐오,저주와 선동 좌절과 소망의 문화공간입니다.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보면 금서는 지나치게 음란 퇴페적이거나 사상적으로 불온한 것이라서 제거와격리의 대상입니다 금서의 대상은 지배 권력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일수록 전방위로 확장되고 선정 기준도 자의성을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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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禁書),,,한자로는 글을 금한다라는 것

여기서 금서란 시대와의 불화를 알리는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 일탈과 혐오,저주와 선동 좌절과 소망의 문화공간입니다.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보면 금서는 지나치게 음란 퇴페적이거나 사상적으로 불온한 것이라서 제거와격리의 대상입니다 금서의 대상은 지배 권력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일수록 전방위로 확장되고 선정 기준도 자의성을 띠게 됩니다 이런 사실은 한국사에서도 뚜렷이 확인되며 군국주의에 눈멀었던 일제와 군사독재정권의 금서 탄압은 참으로가관이며 지난날의 금서는 대부분 억압의 사슬에서 풀려 과거의 금서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금서에 관한 우리의 궁금증은 아직 해소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금서의 문제를 문화투쟁이란 관점에서 바라볼 것입니다 문화투쟁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이며 그양사은 꽤 복잡하고 제한적이기도 하고 단속적이기도 했지만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가질때도 있다고 합니다 결국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이며 인간 사고의 틀과 행동 규범을 근본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노력이 금서조치라는 정치적 행위의 목적이라는 말씀 이것이 결국은 금서 문제의 핵심입니다

문화투쟁은 영어로 "컬처 워"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쿨투어캄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다툼입니다 왜 금서가 되는지도 알게 됩니다

금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일, 그렇게 만들어야하는 그들

작가들이 글로써 표현이 그들에게 자극이 되었던것일까? 그래서 현실이 주는 글이 자기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것일까?  난 읽으면서 너무 무겁고 또 읽어가기가 지루했다고 할까? 아님 어렵다고 할까? 그래서 일까 한자한자 넘어가는것이 책 한두권 읽어야할 시간을 보냈다 왜냐하면 솔직히 난 너무 무지했는가 하는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 학교 다니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학교 수업시간은 더 자세히는 하지 못한 것이기에 금서라는 말에 궁금하기만 했는데 처음 책을 접하는데 솔직히 따분했다 지루했다

하지만 처음은 그렇게 힘들든 책의 글자가 내용을 알고 프롤로그의 금서 강의를 시작하면을 지루하게 읽다가 세상에 8종의 금서에 접하면서 내용이 그냥 순식간에 흘려가고 있다는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금서에 대해 솔직히 별관심도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아니 나자신을 보면 그렇다고 할것입니다 하지만 8종의 금서를 통해 많은 생각과 시대의 흐름과 왜 이런 글들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겠지만 난 특별히  "오적"을 읽으면서 흥미진지했다 왜 그전 금서들은 나라는 존재가 그때는 없어서

아 그렇구나로만 다가오지만 "오적"은 아마 읽어보시면 남 다를 것이다

아마 나또한 책속의 그런 인물일것이다 나 또한 그분을 그렇게 생각했기에 나와의 직접 연관이 되어 살아온 시대인지라 더 특별히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나  금서가 더 있겠지만 여기 나온 8종의 금서를 통해 시대의 흥미진지함과 시대의 아픔 고통 절박함 등이 그 누군가의 한사람에 의해 세상에 밝혀지게 되고 그러므로 알지 못한 사람들이 눈을 뜰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흥미롭고 지루할 것 같으나 막상 읽다보면 왜 금서를 시켰는지를 알게 된다

금서를 통해 그시대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달의 사락 k*****6 2012.11.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금서, 문화투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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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대와의 불화를 알리는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입니다. (4쪽)   그러나 애초에 금서가 되길 원하며 책을 내는 작가나 출판사는 없다. 물론, 이 책이 분명 탄압을 받을 것이라는 짐작이야 할테지만.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권력'과 충돌할 것이란 것을 예상한 (명민한)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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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대와의 불화를 알리는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입니다. (4쪽)

 

그러나 애초에 금서가 되길 원하며 책을 내는 작가나 출판사는 없다. 물론, 이 책이 분명 탄압을 받을 것이라는 짐작이야 할테지만.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권력'과 충돌할 것이란 것을 예상한 (명민한)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좀 더 대중들에게 잘 먹히게, 권력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도록, 반대로 권력이 과민반응하도록(!), 때로는 시비를 걸어올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전략'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날 금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술이 권력의 탄압에 직면할 줄로 예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절실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권력자들의 탄압에서 벗어날 궁리를 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금서의 저자들은 저마다 독특한 '서사전략'을 구사했습니다. (5쪽)

 

이 서사전략을 가지고 금서의 저자들은 당대의 권력과 문화투쟁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관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문화투쟁과 서사전략이 어쨌거나 타자가 없이는 벌어질 수 없는 사투였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금서를 쓰는 것은 작가이지만 그것을 금서로 만드는 것은 권력인 셈이고, 더 나아가 작가가 금서를 쓰는 그 순간에도 문화권력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전략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책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체, 단어, 형식, 장르 등.

 

저자가 우화의 형식을 빌린 것부터가 그 나름의 서사전략이었지요. 첫째는 인간만 못한 동물의 입을 빌려서 인간 세상을 비판함으로써 비판의 강도를 더한 점입니다. 그게 하나의 전략이죠. 둘째로, 만약 당국이 책의 내용을 문제 삼는다면, '이건 허구다. 그냥 내가 생각해본 거다'라고 둘러대기가 쉬운 점도 있었을 겁니다. 저자는 검열을 염두에 두고 우화의 형식을 택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100쪽)

 

좀 더 범위를 넓히자면, 이런 분석이나 관점은 금서를 넘어서 저자와 독자 간의 투쟁으로 확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설득하려는 저자와 그 설득에 저항하는 독자. 정확한 의도를 절대 알 수 없지만 그 의도를 파악하려는 독자와 '정확한 의도'를 다시 설명하려 드는 저자.

 

이 책에는 총 8권의 금서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백석의 시집을 다룬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한국전쟁 후 금서로 지정당했던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기 보다는 식민지기 문화투쟁을 벌이던 식민지 지식인 백석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때문에 사실 책에서 이 부분을 뺄까 고민도 했다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관점이 이 책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살리는 데에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930년대, 향토성에 집착하던 '모더니즘'. 이 형용모순을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관점으로 깊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석의 그런 특이한 창작에 대해 당대의 지식인들이 보여주었던 다양한 반응도 매우 흥미롭다. "백석의 이러한 지방주의는 결국 조선 문화의 식민지성을 드러냄으로써 예술적 보편성을 포기했다"(167쪽)는 비판은 그 비판 자체로 발언자의 사상적 기반을 얼마나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는가. 이런 사상적인 반대, 그리고 말없이 지켜보는 체제의 감시, 그 속에서 시인 백석은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었던 거다.

 

  요컨대 백석의 시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한쪽에서는 그것이 민족적 정서를 되살리는 아름다운 시라고 하는 칭찬이 있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조금 괴기하다, 또는 너무 지방주의로 흘러서 한국적 정체성을 분해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168쪽)

 

어쨌거나 백석은 식민지 근대를 '사이비 근대'로 인식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추구한 정신적 가치는 근대적이었"다(171쪽). 식민지 근대가 사이비라면 그가 인식했던 진정한 근대는 어떤 것이었을까? 서구적인 풍모나 그가 읽었던 서양의 명작들을 생각하면 다시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는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식민지 근대의 이상한 모순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또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분열이 여기에서 시작됐던 것은 아니었을까?

 

꼭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자가 각 금서나 그 금서의 저자를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또 김지하의 '오적' 속에서 동학이나 증산교, 정감록과 같은 전통 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밝히는 지점도 민중문화의 지속성이라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비하만 한다면 그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왜 일본처럼 못했을까?'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따지고 보면 서구의 몇몇 나라 말고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어요. 우리가 일본이 아니었다고 해서,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94쪽)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영웅주의적 민족주의사관은 별것 아니라고 간단히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신채호가 이것을 주장했을 때의 그 처절한 심정, 처참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주장이 비과학적이라든가 비합리적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간단히 비판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는커녕 우리는 그런 신채호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우리가 신채호와 함께 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14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매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의 사상이 생명과 평화를 중심으로 삼는 만큼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김지하를 무조건 두둔하고 치켜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1970년의 '오적'에서 시작된 문화투쟁이 동학과 증산교와 '정감록'의 전통에 맞닿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생명평화사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김지하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근자에는 그의 사고가 너무 우경화된 것이 아닌가 염려되기도 합니다. 그가 매사에 민족을 너무 들먹이는 것이 불편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적'을 통해 붓으로 칼을 이긴 이 시인의 생명은 아직 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그러하기를 저는 소망합니다. (207~208쪽)

 

리영희의 글에는 '사실의 이론'은 있을지 몰라도 '주장의 이론'은 없었습니다. (213쪽)

 

  잠시 생각해봅시다.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은 같은 민족이 아니어서 매일 이 지경입니까? 노동자와 사용주는 같은 민족이 아니라서 쌍용자동차 문제로 스물두 명이 자살했습니까? 역사가 증명하듯, 민족이란 개념으로는 이런 문제들조차 해결이 안 됩니다. 같은 민족이 아니어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잖습니까?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까 이 문제를 넘어가자. 내가 양보하겠다. 너나 나나 같은 민족이니까 다 양보하마.' 그런 일이 도대체 언제 있었습니까? 지난 100년 동안 다들 민족을 내세웠지만 그렇게 해서 된 일이 무엇입니까? 지난 100년 동안 다들 민족을 내세웠지만 그렇게 해서 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건 해답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273쪽)

 

물론 나는 김지하에 대한 저자의 유보적인 평가에는 100%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생명운동, 환경운동이 정말 필요하고, 어쩌면 이것이 모든 운동에서 최고 가치를 두어야할 부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지식인들이 가장 도피하기 좋은 장소가 바로 생명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김지하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최근 김지하가 목소리를 내는 곳이 원자로나 구럼비였던가?). 저자의 말처럼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할 문제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김지하와 시대를 함께 살지 않은, 아니 함께 살지 못한 다른 세대의 가벼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세대가 그들만의 사간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자 운명이다.

 

강연을 책으로 다듬어 만든 것이어서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뭔가 배운다는 느낌을 줘서 '유익'하다. 여러가지 생각해볼 것이 많은 주제이지만 어쨌거나 다음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수없이 보고 경험하지 않았던가.

 

본대 책의 생명은 권력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책의 깊이와 수준입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의 금서를 대한 독자들의 태도와 반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3쪽)

 

하긴 이런 책의 생명력을 안다고 하면 그게 어디 권력이겠는가. 회의주의, 허무주의적인 시선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끝없이 '투쟁'을 해야만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얘기. 이 투쟁을 권력이 아닌 자로서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

1******n 2012.11.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문화 투쟁의 도구였던 금서들의 흔적-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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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에 관한 책을 만나면서 새롭다는 생각은 없었다.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고, 관계되는 글들을 찾아가면서 읽은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특별히 새로운 것도 없고, 특별히 현재에 이슈가 되는 것도 아닌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나에겐 절실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서 시각의 차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금서에 대해 새롭게 관심이 갔다. 작품과 시대라는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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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에 관한 책을 만나면서 새롭다는 생각은 없었다.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고, 관계되는 글들을 찾아가면서 읽은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특별히 새로운 것도 없고, 특별히 현재에 이슈가 되는 것도 아닌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나에겐 절실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서 시각의 차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금서에 대해 새롭게 관심이 갔다. 작품과 시대라는 단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시각이 나에겐 산뜻하게 다가왔다.

 

책은 문화투쟁적인 관점에서 금서를 찾고 있다. 지배 계층과 기득권 세력의 문화 충돌이 작가의 투쟁적인 소리를 발하게 만들었고, 작가는 자신의 책이 필화에 휩싸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술을 감행했다. 그것은 작가의 투쟁이고, 그 출발점이 글, 책이라는 뜻이다. 일제시대 육사의 글은 모두가 반일을 지향하고 있다. 나라 안에서 그의 글이 펼쳐질 때 그의 몸이 구속되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활동은 이루어졌고 그것은 그의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작가 정신을 높이 사고 그들의 서사를 위주로 어떻게 투쟁이 이루어졌는가를 살피고 있다. 그것이 책이 금서가 된 이유를 밝히는데도 분명한 선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금서와 관계되는 강연을 많이 했다. 이 글은 그 강연이 녹아 엮여진 듯도 하다. 8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금서는 작가 위주의 이야기가 되면서 8명이 작가가 등장한다. 그 인물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이슈가 될 듯하다. 매우 관심이 간다. 인물 역사서라고 해도 될 듯한 이 책, 그러기에 책에만 치우치던 금서 이야기가 더욱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제시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우리 조선의 화두가 되었던 금서, 정감록을 이야기한다. 조선 후기 사회 소외된 의식을 느끼던 서북지방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책은 그 전파성이 매우 뛰어났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정감록에서 평민정신의 원형을 찾고 있는 듯하다. 정감록을 지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평민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해 제시하고 있다. 또 뒤에 이어질 금서들도 이 정감록과 연계해 많은 부분 공유하면서 주장을 펴고 있다. 조선 조정은 이씨가 붕괴되고 정씨가 일어난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담고 있는 이 책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생각 아래 금서로 지정한다. 그리고 심한 탄압을 한다. 그것이 역반응을 일으켜 많은 지식인들의 손을 거치면서 널리 전파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기존의 유교문화에 반하는 반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 규정한다. 즉 문화 투쟁의 측면에서 정감록이 씨앗이 된 것이고 결국 그것이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내모는 일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지속적으로 정감록이 기득권자들에게 해악이 되는 서적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또 저자는 동학과 민중 운동의 바탕이 되는 일을 정감록에 연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책략에 대해서 전해 주고 있다. 책은 상황이 조금 다르게 금서로 지정된 모습을 보인다. 이 책은 나라의 정책에 위배된 내용이 아니라 기존의 권력의 모태가 되는 유생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서구의 내용들을 수용하면서 나라를 개혁해 나가야 한다는 논리는 기존 질서를 고수해 나가길 원하는 세력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상소문이 조정에 넘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수구와 개화의 갈등 속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고, 쇄국의 길로 가던 조선에서는 해악이 되는 책으로 인식이 된 것이다. 신소설 금수회의록에 대해선 저자의 생각이 새롭다. 안국선을 기독교적인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해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내용은 우화로 여덟 동물들이 당대의 인간들을 비판하고 제국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제시해 나가고 있다. 아주 인기리에 시판되던 작품은 통감부 아래 제국주의 비판이 원인이 되어 2년 만에 압수와 판매금지를 당한다. 안국선은 이 작품을 통해서 일제에 대한 투쟁의 모습을 보인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신채호는 을지문덕을 통해서 민족혼을 일깨우려는 의도를 보였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면서 당대의 세력들과 문화적으로 대척점에 섰다. 그것이 책에 대해 논란의 이유가 되었다. 신채호는 이 책을 통해서 문화투쟁을 했고, 그 투쟁은 불굴의 민족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구한말 쓰러져 가는 나라가, 민족이 그에게는 참람한 아픔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이러한 의기로 나타나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것이 아마 제국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문제스러운 것이었을 듯하다. 백석시집이 금서가 된 것은 이해하기 힘이 드는 일이다. 단지 해방 정국에서 북쪽에 남았다고 그의 서정적인 책을 금서로 분류해 놓고 그것을 남쪽의 성장하는 아이들이 읽을 수 없도록 해놓았다는 사실에 분노마저 느낀다. 해금이 된 후 가장 먼저 독자들을 찾아간 작품과 작가가 이용악, 백석 등이었다는 것을 보아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길 들으면 백석의 작품도 문화사적 측면에서 투쟁의 성격을 지녔다고 얘기를 한다. 식민지 시대에 대한 근대성의 거부를 온몸으로 이루면서 언어에 채색하여 그려내었다는 이야기다. 향토성 짙은 언어들이 그러한 이유에서 빛이 되고, 공동체의 삶이 그러한 이유에서 내용이 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시에 금서가 되어야할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논리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그것이 그 시대에 금서가 된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이 흐른 다른 시대에 와서 다른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는 것이 못내 이상할 따름이다.

 

우리 시대의 민주투사라고 불린 김지하 씨는 판소리 사설 같은 담시를 썼다. ‘오적이라 명명된 시대를 대표하는 악의 요소에 대한 조소 넘치는 독설이 그 내용이다. 시대의 권력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작품이 나오면서 바로 필화사건을 겪는다.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면서 말 못할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 자유민주 투사를 작가는 생명과 관련 지운다. 그는 생명 의식을 기반으로 해서 민중들을 생각하는 과정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사상은 동학, 판소리 등의 민중과 맥이 닿아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생명과 관련된 일들에 마음을 두고 그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리영희 씨의 ‘8억 인과의 대화는 중국 공산 혁명에 대한 진실을 밝힌 글이다. 그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사실을 찾기를 원하고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많은 탐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탐구의 내용이 그래도 그려지는 것이 그의 글이다. 그러므로 진실에 가깝게 가고자 노력을 한 흔적이고 그것을 행함으로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발간된 1977년 공산당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고, 그는 투옥이 되었다. 진실이 정책에 의해 금지 당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책이다. ‘태백산맥20세기 후반의 금서논쟁을 달군 책이다. 소작인과 지주의 갈등에서 민중의 아픔이 그려지고, 결국 빨치산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해방 후 민족의 이데올로기 역사를 통해 올바른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런데 이 책이 좌익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인 물의가 되었고 법정에서 오랜 시간 문제의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별반 문제가 아닌 것으로 지금은 판명이 났지만 시대의 아픔이 되었던 논쟁이었다. 조정래는 소설로 역사를 쓰고자 했다. 은폐된 사실을 이끌어 내어 역사 속에 편입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빨치산은 민중들의 아픈 역사가 이름을 만들어 현실 속에 나타난 것이고 태백산맥은 그것을 역사 속에 편입시키기 위한 문화투쟁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은 통해 많은 것을 읽었다. 우리가 막연히 금서의 이유로 생각하던 내용들에서 발전하여 새로운 내용들을 만났다. 그것은 서사정책이라고 명명하는 작가들의 문화투쟁의 관점에서 금서를 읽는 것이다. 투쟁이 있었기에 그것에 위협을 느끼는 세력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에 의해 금서가 되어 나타난 서적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작가의 혜안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나에겐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 작가들은 글을 쓰고,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선구자의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사명감을 가지고 시대의 문제를 확인하여 제시해 나가는 자들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j****3 2012.11.1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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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vs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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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6개월의 군생활 동안 소대장 생활을 1년5개월여 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해안에 위치해 있었고 주된 임무가 해안경계근무였다. 중대가 담당한 소초가 2개가 있었고 3개 소대가 번갈아가며 소초에 투입되었다. 소초는 독립부대다. 한번 투입되면 3∼4개월 동안 낮에는 교육훈련, 밤에는 경계근무가 반복된다. 소대인원, 타중대 파견인원, 상근인원을 포함하면 40명 정도의 병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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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6개월의 군생활 동안 소대장 생활을 1년5개월여 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해안에 위치해 있었고 주된 임무가 해안경계근무였다. 중대가 담당한 소초가 2개가 있었고 3개 소대가 번갈아가며 소초에 투입되었다. 소초는 독립부대다. 한번 투입되면 3∼4개월 동안 낮에는 교육훈련, 밤에는 경계근무가 반복된다. 소대인원, 타중대 파견인원, 상근인원을 포함하면 40명 정도의 병력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소초는 독립부대이기 때문에 식사부터 교육훈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했다. 주둔지 부대에 있을 때 보다는 다소 느슨하고 탄력적으로 부대를 운영할 수 있었지만 어느 독립 부대나 그렇듯이 하루가 멀다하고 순찰·순시·온갖 검사가 잇따랐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밤낮이 바뀌는 소초 생활도, 사고 치는 상근인원들도, 열악한 근무환경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정신교육이었다. 군에 다녀온 남자들은 모두 알 것이다. 내가 소초장 생활을 할때는 수요일이 정신교육 시간이었다. 말이 정신교육이지 국방부에서 내려오는 대북안보관을 그대로 읽고 전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제대별·계급별 간담회도 하고 토론 시간이 계획에 있기는 했지만 역점을 두는 것은 안보관 확립이었다. 하지만 내가 소대장을 했을 때에도 병사들의 의식수준은 국방부의 그것 이상이었다. 주적관·안보관은 이미 탄력적이었다. 쉽게 말하면 군에서 이런 정신교육을 하는 의도조차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설문을 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주적을 미국이나 일본으로 적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 또한 판에 박힌 의도적인 정신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주로 자유토론을 했었다.

그러던 중 한번씩 상급부대로부터 내려 온 공문의 사본이 소초에까지 오게 된 경우가 있었는데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말 웃겼던 것은 이미 시중에 베스트셀러였던 책도 있고 주둔지 대대에서 일괄 구입한 책들 중에 불온서적 대상에 끼여 있는 책도 있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런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읽지마라’고 하는지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 까지 했다.

전역한 후에도 국방부는 한번 더 ‘불온서적’을 지정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금서의 문제를 ‘문화투쟁’이란 관점에서 바라볼 것입니다.” (p.5)

“미풍양속이 구실이 됐든, 올바른 종교적 신앙, 혹은 정치적 이념을 위해서라 하든 금서는 결국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입니다.” (p.16)

 

금서를 통해 시대를 읽는다는 저자의 발상이 신선했다. 단순히 시대적 상황이나 배경에 의해서 금서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한 노력을 책에서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금서는 있어왔다. 어느 시대에나 힘은 있어왔다. 힘을 가진 자가 있었고 반대로 힘을 가지지 못한 자가 있었다. 힘을 가진 자(들)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힘을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고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는 어떻게 해서든지 힘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다. 갈등과 투쟁의 반복이다.

 

 

“「정감록」이 성리학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상대로 평민지식인들이 벌인 ‘문화투쟁’의 수단이었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p.53)

“신채호의 을지문덕 예찬은 신채호식 영웅사관의 표현이었습니다. 단순히 을지문덕이라는 개인을 추앙하는 데 뜻을 둔 것이 아니었어요. 대신에 을지문덕이라는 민족적 영웅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관념적 일체감을 강화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깔려 있었습니다.” (p.138)

 

조선 시대 「정감록」과 일제 강점기 「을지문덕」은 조정과 일제라는 구체제에 대한 반발이었다. ‘갈아 엎자.’, ‘뒤집어 버리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의 조정과 일제는 탄압하고 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책들은 민중들에게 불티나게 읽혔다. 오랜 시간 시달려 왔고 지배받아 왔기 때문에 당연히 생각되던 것들이 책을 읽어보니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쓰나미처럼 민중의 마음을 휩쓸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체제 전복이나 폭력 투쟁에까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진짜 소시민들이 마음을 대변하는 현상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최소한 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또한 분명히 「정감록」과 「을지문덕」을 쓴 이들은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 목표와 목적이 민중의 그것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권력과 지배층에 대한 투쟁이라는 관점의 출발은 동일하기 때문에 열광했다.

조선의 조정과 일제는 무서웠을 것이다.

 

 

“리영희의 책들은 체제가 금지한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시민 중심의 민주 사회로 이끌어나간 ‘문화투쟁’의 기폭제였습니다. 리영희의 문화투쟁은 ‘진실’을 향한 열정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p.211)

 

내가 가장 존경하는 지식인 고(故)리영희 선생에 대한 내용이 있어 더욱 반가웠다. 리영희 선생의 책은 나보다 10∼20년 대학을 먼저 다닌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교본이었다. 당시 학생운동의 성경이기도 했던 리영희 선생의 책이 대부분 금서였다는 사실은 그의 책 「반세기의 신화」를 처음 읽으면서 알게 되었었다. 리영희 선생의 책을 읽으면 모두 ‘투쟁가·운동가’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투쟁가·혁명가는 되지 못했지만 그의 책을 읽고 세계관·사회관·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출간된 지 20∼30년이 지난 책이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관통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 언론인이었고 지식인이었으며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수감생활도 부지기수로 했었고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다고 해서 비판의 칼날을 내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신화처럼 떠받들어지고 세뇌되어 왔던 거짓을 도려내고 진실을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영희 선생의 삶과 그의 책을 ‘문화투쟁’의 관점에서 분석한 저자의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그런 삶을 몸으로 살아 낸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선생이자 선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1970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시 「오적」은 험난한 투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시는 곧 금지됐고, 시인은 영어의 몸이 됐습니다. 시인이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은 것은 1980년 말이었습니다.” (p.180)

“「오적」은 군부독재정권은 물론이고 그와 결탁한 특권층의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한 것. 첫째가 재벌, 둘째가 국회의원, 셋째가 고급공무원, 넷째가 장군님, 다섯째는 장차관들” (p.186)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소를 아니 지을 수 없는 코미디가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최근들어 가장 나의 배꼽을 잡은 것은 김지하였다. 사람이 한 번 변하면 겉잡을 수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문수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김지하의 책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가 한 때 학생운동의 상징이었고 심장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단순히 운동권 작가였고 오랜 세월 투옥되었던 민주열사였다고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모 인터넷 신문의 기사를 보고 나서 김지하의 최근 행태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재미있고 슬프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역사적 인물이었음에도 말로가 저렇게 구차하고 너저분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고 적어도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영향을 받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자신의 사상전향으로 인해 받은 많은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기적이다.

한 때는 내놓는 책마다 금서가 되고 정권에게는 반드시 잡아 들여야 할 지식인이자 운동가였던 자가 뒤늦게 변신하여 보이는 모습이 애처롭다.

하지만 김지하 개인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실제 예가 이전에도 많았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다.

다만 지금 내가 김지하의 「오적」을 구해서 읽는다 해도 70년대 당시 숨어서 몰래 「오적」을 읽으며 통쾌해 했던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100분의 1도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l****h 2012.11.2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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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를 통해 되돌아본 한국의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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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알고 있었지만 미뤄왔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초판 간행 연도가 2012년이니 책이 나온지 10년이나 흘렀는데도,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나 전달하는 메시지가 지금 시점에서도 너무 생생하게 읽혀 놀랐다. 금서가 기본적으로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 때문에 등장한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여덟 편의 금서를 소환하여 그 시대적 배경과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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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알고 있었지만 미뤄왔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초판 간행 연도가 2012년이니 책이 나온지 10년이나 흘렀는데도,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나 전달하는 메시지가 지금 시점에서도 너무 생생하게 읽혀 놀랐다. 금서가 기본적으로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 때문에 등장한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여덟 편의 금서를 소환하여 그 시대적 배경과 그것이 어떻게 우리 역사를 추동해왔는지 설명한다. 여덟 편의 금서는 정감록, 구한말 청나라 외교관이었던 황준헌의 조석책략,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신채호의 을지문덕, 백석시집, 김지하의 오적, 이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기존의 강연을 정리한 책이어서 청중에 눈을 맞춘 경어체의 문장이 편안하게 읽힐뿐만 아니라, 서로다른 시대를 아우르는 금서에 대한 저자의 역사인식 또한 오롯하다. 금지되었기에, 더 강한 독서에의 열망을 부추겼던 금서의 유혹을, (한 때 우리 베스트셀러 소설이 제목으로 차용한 바 있는)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는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금서를 배태하는 본질적인 동기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지키려는 지배권력의 야욕에 있습니다. 지배권력이 때로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만, 긴 역사적 흐름에서 바라보면 그들의 '문화투쟁'은 결정적인 한계를 노출하게 마련입니다. 시간은 모든 질서를 바꿉니다. 변화의 모든 싹이 시간의 품 안에서 자라납니다. 때가 되면 역사 무대의 주인공도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 금서 저자들의 다양한 '서사전략'입니다. 금서를 정해놓고 함부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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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시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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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작가의 <뿌리깊은 나무>를 읽어보면, 집현전 학자들이 금서를 연구하다가 한명씩 살해당한다. 임금의 촉망받는 신하들임에도 불구하고 금서를 연구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명을 달리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금서란 당시대의 가장 절대권력들의 허와실을 가장 극명하게 알려주는 지침서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무엇을 감추려 했고 그로인해 권력을 수반할 수 있었을지, 그리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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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작가의 <뿌리깊은 나무>를 읽어보면, 집현전 학자들이 금서를 연구하다가 한명씩 살해당한다. 임금의 촉망받는 신하들임에도 불구하고 금서를 연구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명을 달리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금서란 당시대의 가장 절대권력들의 허와실을 가장 극명하게 알려주는 지침서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무엇을 감추려 했고 그로인해 권력을 수반할 수 있었을지, 그리고 그런 픽박을 예상하면서도 금서를 편찬해 세상에 알려야만 했던 문인들의 대의도 궁금했기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 읽어보고픈 아주 매력적인 책이 아닌가 싶었다. 


역사 속의 많은 금서에서 우리는 그 책이 권력을 자극한 불온성, 즉 책이 시대와 불화한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곧 금서란 시대가 당면한 과제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며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문화투쟁의 도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금서, 시대를 읽다에서는 조선 후기에 등장하여 나라의 멸망을 예언했다고 금서가 된 정감록과 구한말 시국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금지된 조선책략, 금수회의록, 을지문덕, 그리고 해방 후에 숱한 금서들 중에서도 서정시로 알려져 있으나 저자가 북에 남았다는 이유로 읽을 수 없었던 백석 시집, 당시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된 8억인과의 대화, 부패한 독재정권을 질타했다고 금지된 오적, 빨치산의 역사를 썼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태백산맥 등 8종의 금서를 소개한다.

c*******2 2012.1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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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시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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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하면 이상하게 더 궁금해지는거 같다. 예전에 국방부에서 지정한 금서라는 타이틀에 궁금증이 더해져서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구입한 적도 있다. 국방부의 소개로 지금까지 책을 통한 만남을 이어왔으니 금서의 덕이라고 할까나? 하지만 금서로 지정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다.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되어서 공식적으로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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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하면 이상하게 더 궁금해지는거 같다. 예전에 국방부에서 지정한 금서라는 타이틀에 궁금증이 더해져서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구입한 적도 있다. 국방부의 소개로 지금까지 책을 통한 만남을 이어왔으니 금서의 덕이라고 할까나? 하지만 금서로 지정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다.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되어서 공식적으로는 11년 그리고 실지로는 15년이라는 기간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아마.. 조정래님께서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지리산을 13번 종주한 것보다 그 시절이 더 힘드셨을것 같다. 내가 아끼는 책중에 조정래님의 작품이 3가지가 포함되는데.. [아리랑],[태백산맥],[한강]이다. 이 책에서는 [태백산맥]이 주로 언급되었지만 아마 조정래님의 이 3부작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한국 현대사의 고뇌를 탐구한 책", "허구에 사실을 섞어 역사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이유로 힘든시절을 보내신지도..   
이 책은 금서를 문화투쟁의 역사로 파악하고자 한다. 금서란.. 그 시대에 권력을 잡은 정치, 종교를 자극했기에 그런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즉 그 시대의 문제를 문학이라는 도구로 풀어냈기에 금서라는 딱지가 붙었다. 거기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금서는 더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진다. 그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금지 딱지가 붙는다. 이 책의 저자인 백승종씨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짚을 수 있는 8개의 작품을 선정하여 강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 강의에 내가 참여하고 있는 듯한 책의 어투는 도리어 백승종씨의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8개의 작품중에 나에게 인상적이였던 것은 [정감록]과 [금수회의록] 과 [태백산맥] 그리고 리영희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성과 진리를 강조했던 리영희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비판적인 사고와 성찰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다행히, 요즘은 책을 읽고나서 리뷰를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인지.. 읽는 것에서 한발자국 정도는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의 사상, 종교, 미신, 풍습.. 거의 모든것을 망라한 이야기라고 하는 [정감록]은 민중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그저 역사시간이나 환타지 소설에 접했던 예언서 정도로만 인식되었는데.. 정감록을 통해서 조선시대 억압받던 지역과 평민지식인의 등장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내일은 산수갑산을 갈지라도' 라는 속담에서 산수갑산이 유배지고 악명높돈 함경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정감록이 서북지방에서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평안도에서 있었던 홍경래의 난도 이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역사를 공부할때 홍경래의 신분에 대한 논란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도 평민지식층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신소설 중에는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금수회의록]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금수회의록]을 쓴 안국선은 애국계몽운동도 했지만 친일행위도 했다고 한다. 그는 흔들리는 개화기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나의 섣부른 실망과 작가가 친일파라는 이유로 작품을 외면했던 나의 태도 역시 한국의 금서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대에 태어났다는 행운을 이용하여 앞 세대에게 역사의 짐을 모두 떠넘기는 것은 비겁하다." 바로 이 말 때문이다. 나 역시 꽤 비겁한 사람이 아니였을까.. ^^;;

a******e 2012.11.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