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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여러 언론 기고문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여기에는 김별아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살펴본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 한겨레신문과 비슷한 진보성향의 시각에서 바라본 우리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의 현장, 엄마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지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일어난 일상의 기록과 추억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개인의 삶과 생각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산문집이다 보니 작가의 삶과 생각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일단 시작부문부터 만나게 되는 수 많은 순수 우리 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섯눈으로, 엉두덜거리다, 갈피짬, 가웃없이...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기에는 너무 자주 만나게 되어 곧 포기하며 짐작으로 읽어 나가게 되는 단어들이다. 작가의 삶에는 작은 차이도 구별하고,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보는 그런 연습들이 많이 필요하겠다는 짐작을 해 본다. 작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폭넓은 사고의 스펙트럼도 느껴진다. 언론 기고문은 특수한 상황이나 사건에 기반해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것을 모아 책으로 모을 때 전체적 내용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가 책의 제목으로 <삶은 홀수이다>라는 글을 선정한 것을 보면 삶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경험들이지만 결국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독한 길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은 어차피 홀수이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 (17쪽) 이 책에는 자신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단면들이 그려져 있다.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문학인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함께 살아가면서 스치게 되는 우리주변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도 작가의 시선을 통해 전달된다. 사회 곳곳의 아픈 곳을 찾아 가장 낮은 삶을 살아가는 선배, 병마에 시달려 일찍 생을 마감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친구, 과거의 추억을 먹고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평생을 지루하게 바벨을 들어올리는 역도선수들, 어른들의 잔혹함을 그대로 닮은 왕따사건들 속에 담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정답같은 것은 없다. 어느 때에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없다. 삶은 바로 여기, 이 순간에 있다. 그 순간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은 바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다. 오늘도 행복하고 후회없이 살아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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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20대엔 유명한 작가의 수필집을 곧잘 읽곤 했다.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었고, 끊임없이 삶에 질문을 던져야 했던 시간이었기에 나보다 인생을 더 살고 계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혹은 사회 전반에 걸쳐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읽었던 수많은 수필집들. 하지만 지금은 잘 읽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 나름 내가 생각하는 삶과 반(?)하는 생각을 지닌 작가도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작가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대부분 소설을 읽는데 김별아 작가의 책도 신간이 나오면, 가능하면 찾아 읽는 어떻게 보면 믿고 보는 작가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녀의 산문집도 별 고민 없이 읽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제목도 어찌나 눈에 확 들어오는지. 사실 인생은 홀수보다 짝수이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 아닐까 하는 나름의 생각을 했었다. 누구든 한 명이 남는 홀수보다는 모두가 짝을 이룰 수 있는 짝수가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삶은 어차피 홀수이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 (17) 그럼에도 살아 있는 동안엔 짝수 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혼자 놀기를 좋아하고, 혼자 있기도 좋아한다. 예전에는 불안했던 혼자가 지금은 편안해지고 있다. 하지만 혼자가 좋은 나로 인해 내 짝꿍이, 우리 아이들이 홀수가 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인생은 홀수라는 생각으로 살고 싶다. 그녀의 말처럼 외로워져야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삶에 대한 이야기, 엄마인 작가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이야기, 부조리한 이 사회를 한탄하는 이야기, 지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 마흔이 넘어가면서 느끼는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회에 대고 쓰디 쓴 충고의 말을 하기도 하고, 부당한 처우에 대한 자신의 외침을 말하기도 한다. 그녀의 삶이, 그녀가 바라보는 인생의 잣대가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같은 사건이나, 일상을 작가는 이렇게 바라 볼 수 있구나 싶어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늘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인데 작가의 눈으로 이 세상은 글감들의 향연이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많이 읽고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좋은 글이 써지는 날이 오겠지. 작가 데뷔라는 거창한 뭔가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실로 10대에 해야 할, 20대에 하고 넘어가야 할,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40대에 반드시 해야만 할 과제 같은 건 없다. 삶은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다. (44) 언젠가부터 싫어하기 시작한 제목들. 10대나 20대 혹은 30,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이라는 제목은... 생각해보면 그때 그걸 했다면 그게 청춘이었을까? 대다수의 청춘들은 놓치고 후회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놓치고 후회하고 또 그렇게 열심히 살아간다. 어쩜 그래서 지금 내가 사는 오늘이 리얼 이자, 순간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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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어 밥을 떠서 밥을 먹을 때, 삶은 비로소 뜨거워진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지어 누군가를 위해 밥을 떠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존비와 보상의 경계는 까무룩 사라진다. 먼 곳에서 떠돌던 햇살의 시간, 바람의 시간, 비와 풀벌레와 거름이 썩어가는 시간이 내 배 속에 그득하다. 그리움의 시간, 외로움의 시간, 홀로 거리를 헤매던 방황의 시간을 연민과 안도감으로 소화한다. 아아, 잘 먹었다! (p. 27) 김별아 작가의 이름은 자주 접했지만 막상 읽은 책은 없다.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미실>이란 소설을 알고 있었지만 <삶은 홀수다> 이번 산문집이 내겐 김별아 작가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녀의 첫인상은 참 좋다. 말하자면 운동권이란 80년대 이야기를 다루던 초기 공지영, 신경숙 작가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하고 낯선 단어들 틈바구니에서 어쩌면 故박완서 작가의 다채로운 순한글 단어들이 떠오르며 일순간 흐뭇하기도 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하늘에도, 죄 없는 소와 돼지가 생매장된 땅에도, 봄은 온다. 오고야 만다. 그리하여 분노와 슬픔을 다독이려는 듯 꽃이 핀다. 별꽃처럼 피어 난분분하다. … 햇살이 눈부시다. 젊은 다산(茶山)이 마음 맞는 벗들과 결성한 ‘죽란시사(竹欄時仕)’처럼 꽃이 피었으니 한번 모이자고 소식이나 띄워볼까 (p. 136)
<삶은 홀수다>는 '어섯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록들'이란 제목의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2008년 여름부터 4년 동안 <한겨레> 및 다른 신문 칼럼으로 게재되었던 글 모음이다. 신문 칼럼의 특성 상 시대상황이나 이슈가 소재로 다뤄진 부분이 있고 당연히 작가 개인적인 소재도 있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수다스럽다'고 생각하는 작가이지만 그녀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뭐든 성향이 유사한 독자라면 충분히 사랑할 만한 책이다. 바로 나처럼.
삶은 어차피 홀수이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 (p. 17)
어려서부터 어둡고 소심한 혼자로 심지어 소아우울증을 앓기도 했고, 청소년기에는 문학병을 앓은 이력이 있는 그녀는 이 책을 통해 '홀로 있는 것'의 기쁨을 증명한다. 마흔이 넘어서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엄마와 아버지께 -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라고 글로 고백할 만큼 진심의 감정표현에 서툰 그녀가 책으로 유쾌하고 깔끔한 생각을 정리해주어 독자로서 고맙게 생각한다.
어느 야물고 깔끔한 이의 글에서, 외출할 때마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속옷을 신경 써 갈아입는다는 대목을 읽었다. 그러한 ‘만약’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낡아 구멍이 난 속옷보다 무심히 남긴 ‘마지막’ 말들이다. 행여 “미안해”라는 말이 아닌 “그만해”라는 말을 남기지는 않을는지, 행여 “고마워”라는 말이 아닌 “빨리해”라는 말을 남기지는 않을는지, 행여 “사랑해”라는 말이 아닌 “공부해”라는 말을 남기지는 않을는지. 정말 두려운 것은 남아 있는 부끄러움보다 남기지 못한 용서와 감사와 사랑이다. 그 세 마디 말밖에는 더 남길 것도, 가져갈 것도 없으리니. (p. 22)
책을 읽다 보면 '언제까지고 성실한 학생으로 사는 것이 그녀의 가장 나종 지니인 소원'답게 작가로서 여름에는 대작을, 겨울에는 고전을 탐닉하며 인생을 열심히 배우는 태가 확연하게 난다. 고전 이를 테면 노자의 말과 공자의 논어를 자주 인용하고, T.S. 엘리엇이나 고리끼 선생의 '소설은 곧 인간학'이라는 둥 동서양을 불문한 작가도 그녀의 생각표현에 적절하게 쓰였다.
나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위로받는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깊은 만큼 높아지고, 고통만큼 언젠가 행복해지길. 지금 심연에 갇혀 허우적대는 우리, 99퍼센트에게 그보다 더 큰 격려는 없다. (p. 75)
누군가는 '좌빨(좌파 빨갱이)'이라고 단정 짓지만 그녀 스스로는 '자파(自派)' 작가로 규정 짓는 그녀는 대중적으로 본다면 진보성향에 가깝다. 나 역시 들끓는 대한민국 이십대 청년으로서 책 속 그녀의 사회 정치적 생각을 읽으며 일정 부분 통쾌했다. 특히 2부에서는 소설가이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운동권에서 열렬히 활동하고 있는 박래군, 혼자의 생각을 고수하며 십 년째 아름다운 가사로 노래하고 있는 가수 강허달림, 무기징역수였다 소설가 혹은 번역가로 활동하던 필명 김백리의 故김은숙, 소외 받는 이웃의 옆에서 글 쓰는 시인 송경동 등 그녀 주변 아름다운 인물들에 대해 소개한다. 또 3부에서는 엄마로서 그녀의 개인적인 혹은 우리 사회 공동의 이야기를 말하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나는 아이로 인해 내가 얼마나 모성애가 강하고 희생적이며 헌신적인가…를 확인했다기보다, 아이를 통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아이는 시시때때로 나를 시험에 들게 했고, 나는 지면서 배웠다. 그것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 기꺼이 지기 위해 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p. 158)
'시가 천상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천민의 예술'이라는 김별아 작가의 소설 작업에 대한 고통과 그것을 뛰어넘는 열망에 대해 마음 깊이 공감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독자로서 그녀의 산문에 여지 없이 반했고 새해의 독서계획에 그녀의 소설도 포함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는 故박완서 선생님에 대한 글이 단박에 좋았다. 아래에 일부 소개한다. 인용구가 긴 것은 이를 테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많은 것이라고 여겨주시면 좋겠다.
영정 속의 선생은 생전처럼 조쌀하고 숫접은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 가난한 문인들에게는 부의금을 받지 말고 대접하라는 유지를 기억해 선생께 마지막으로 얻어먹는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가, 문득 지금껏 한 번도 문인들의 장례식에서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분루를 삼키지 않는 한 좀처럼 울지 않는 건 냉심한 성정 탓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운명에 매였던 이들과의 이별은 단순히 슬픔이나 아쉬움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 글쟁이의 삶은 고단하다. 운이 좋아 살아생전에 재능과 노고를 인정받은 이나 불운하여 보상도 받지 못한 이나, ‘필승’을 외치며 폭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는 문학을, 예술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가난하다. ‘재수 없으면 100살’이라는 저주 어린 축복의 말이 유행하는 고령화 사회에서도 소설가들의 평균 수명은 64세, 시인들은 한술 더 떠서 62세란다. 기진맥진한 듯 부랴부랴 떠나는 돌연한 영이별도 서럽지만, 부음이 들린 바로 그날 대형서점에서 설치한 ‘박완서 특별전’ 매대에서 평소보다 몇 배의 책이 팔렸느니 어쨌느니 하는 뉴스는 기막히다 못해 역겹다. 왜 작가가 살아 있을 때는 읽지 않던 책이 죽었다니까 갑자기 궁금해지는가? 박완서 선생이 그 천박하디천박한 생난리를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p. 150-151)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속이 되어야 한다. 정호승의 산문 <손>(<정호승의 위안>, 열림원, 2003)의 일절을 가만히 되뇐다. 인간이라는 아름답고도 끔찍하며, 위대하고도 초라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손이 필요하다. 오직 그러한 인간을 재료이자 과제로 삼는 작가라는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빈손이 절실하다. 빈손은 현실을 재단하지 않는다. 인간을 심판하지 않는다. 소유의 움켜잡음을 위해 헛손질을 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자파’인 작가로 살기에 이렇게 텅 빈 채로 충만하다. (p. 214)
상처만큼만 넓어지는 세상 속으로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나는 오직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한다. 여태껏 받아들과 한숨짓던 성적표의 등수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길. 지금은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로 행복은 성적순일 수 없다. 진짜 공부-세상 공부, 사람 공부, 인생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용되어 마땅한 지적 허영과 권장되어 마땅한 체험에 대한 탐욕으로 한껏 들썽들썽 걸신스럽게 공부해야 한다. 부디 그 큰 배움터에서 용맹 정진하기를! (p.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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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미실이라는 소설책으로 이름을 알게 된 작가이다.
이름이 참 예쁘다.
예쁜 이름의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삶은 홀수다 라는 책을 통해 좀더 알아갔다.
일상속의 산문을 솔직담백하게 서술하였다.
그녀의 삶도 엿볼수 있었고 그녀의 생각도 알 수 있었다.
공감가는 내용도 있고 약간 깊은 내용은 이해하기도 힘든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글속에서 진실이 보였고
나는 이제 그녀의 팬이 되려고 한다.
삶은 홀수다 에서 외로워야 자유로워진다는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있는 나이여서 더더욱 공감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