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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전체를 섣불리 판단하고 평하고 싶지 않다. 단 한 편이라도, 단 한문장이라도 마음에 드는 시가 있다면 그걸로 다 된거라 생각한다.
내게는 그런 시가 <전지구적 파프리카> 였다. 우루루 굴러나오는 세계 각지의 캐리어들, 수많은 인종의 색깔. 색깔론, 그 속은 텅 빈 파프리카와 같다.
시집에 퍼져있는 삶에 대한 인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죽음은 그야말로 들이닥친다. 죽음의 현장에는 죽음이 있을 뿐, 살아 온 서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죽음이 삶을 부정하지 않듯, 삶 역시 죽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열어보면 텅 빈, 우리 삶. 그것을 모으자. 우리의 절벽을 모아 상자를 만들자. 텅 빈 상자는 파도를 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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