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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앞세운 자살폭탄 테러에 전 세계가 분노를 금치 못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평화를 공고히 하고자 노력 중인 세력은 그리하여 몇몇 집단을 ‘테러 조직’으로 선포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 하여 언제나 옳을 리는 없다. 때론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바를 의심해 보아야 필요도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시선은 고정돼 있다. 그래서 주어진 정보가 100% 옳다는 강한 믿음이 선량한 사람들을 혹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해왔다. 중동은 조용한 적이 없었다. 그 곳의 풍부한 석유 및 수자원을 향한 눈이 셀 수 없이 많았고, 호전적이라는 평을 듣는 종교(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덧입혀져서 그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량국가’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하나의 국가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상당했다. 그 국가는 바로 이스라엘이다.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수십 년의 기간 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독재자들이 넘치는 곳이 중동과 아프리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불량국가라 감히 칭하는 이유는 평화에 배치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몇 천 년 전 자신의 선조들이 그 곳에 기거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오래도록 그 곳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을 무(無)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불협화음의 소지가 참으로 높은 건국이었다.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강렬히 저항하는 게 당연했다. 그때부터 주객이 전도된 해석이 줄을 이었다. 너무도 폭력적인 이들이 넘쳐서, 방어를 위해 첨단무기로 잔뜩 무장했다. 총과 칼을 든 것만으로는 2% 부족했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면 공격은 정당화됐다. 이스라엘 측은 사망한 이들은 모두가 테러에 발을 깊이 담근 세력이라 주장했다. 이제 막 “엄마”라는 말을 했을까 싶은 어린 아이도, 지팡이 없이는 한 걸음 떼는 일이 어려워 보이는 노인도 그들의 눈에는 위험했다. 잠재적인 위험을 제거한다는 이유를 들먹이면 모든 행위는 정당해졌다. 그들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이일지라도 미래의 지하드 전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제거 돼야 한다고 여기는 듯 굴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다치고 죽을 수 있는 상황에 가자의 민중들은 적응했다. 소중한 가족이, 사랑하는 애인이 사망해도 그들은 격하게 눈물 흘리지 않았다. 그저 죽었을 뿐이다. 도처에서 너무도 쉬이 만나볼 수 있는 죽음이기에, 다음 차례가 자기 자신이라 하여도 그런가보다, 이에 순응할 따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은 이스라엘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감당해야만 했던 위험에 비해 아랍 세계의 희생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테러 집단이라 칭한 하마스는 첨단무기라고는 전혀 소지하지 못했고, 싸우기보다는 이스라엘과 대화하길 바란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 영원한 선과 악은 존재치 않으며, 선한 국가(?)와 악한 국가(?)의 대립을 바라볼 때 가장 중시돼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권’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러한 기본조차도 망각한 것이다. 이는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 집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평가이기에 의미가 크다.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많은 정치인들이 철저히 친 이스라엘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긴 하지만, 매해 이스라엘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워지고 있으며 미국의 아랍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제한된 정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자국의 반 인권적인 움직임을 냉철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외부의 적을 통해 쟁취한 평화가 허울임을 잘 안다. 서로 간에 못 넘을 장벽이 있는 게 아님을 잘 알기에 상대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미는 열린 태도를 갖고자 노력한다. 여전히 키를 손에 쥔 이들은 변치 않았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피해자였음을 강조하며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표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보복이 정당화 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이 한 때 인류의 역사에 발생해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인해 아팠던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의 경험에 기대어 무차별 폭격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외면했고, 각종 악의 섞인 비난으로 깎아내리려 들었지만, 골드스톤 보고서에 적힌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용서는 힘들지만 가치 있다. 이제까지 벌어진 바를 되돌릴 순 없겠지만, 용서와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면 인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출발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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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여느때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내가 뉴스를 통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소식을 접한 후 평화로움이 사치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참상에 나는 관련된 뉴스를 모두 찾아보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모두 보았다. 그저 믿을 수 없을 뿐이었다. 왜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이런 피해를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지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사실 그 참상을 전해 듣고 공감하기에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저 사망자의 수치만으로도 놀랐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미국과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시위를 통해 더 이상의 팔레스타인 침공이 지속되지 않기 위해 뜻있는 여러 사람들이 발벗고 나선 것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일제 강점기를 겪고 6.25전쟁을 겪었던 국가이지만 이제 우리는 아시아에서도 제법 잘 사는 국가에 속하기에 그때의 기억을 잊은 채 그저 앞만 보며 달려가고 있다. 이스라엘 침공과 관련한 소식 또한 정말 쇼킹한 뉴스가 아니고서는 국내 뉴스에서는 접하기 힘든터라 CNN을 통해서 알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무관심이 되기란 얼마나 쉬운 것인지.
사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유가 된 역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다. <신의나라 인간나라> 세계의 종교편에서 간략히 접했을 뿐인터라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책에서는 현재의 분쟁의 현실과 피해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을 뿐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점은 저자가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입국이 금지된 유대인으로서 특이하게도 반이스라엘 성향을 지니며 팔레스타인의 피해에 대해서 호소하는 인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속감을 느끼며 뿌리를 중요시 한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도 잘못된 참상을 이스라엘 국민들이 눈감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뿌리와 소속에 대한 지향성 때문이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학연과 지연도 끈끈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유대인이라는 그 뿌리는 더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서로에 대한 의지와 함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매개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이런 전쟁범죄의 합리화를 조장하며 광기를 조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다소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다소 편협하게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우호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설득을 위해서는 데이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주장이 효과적인데 비해 주로 인용만을 이용한 주장에 대해서는 설득력에 다소 의구심이 들었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관심이 없다면 아마 앞으로도 이 전쟁범죄는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관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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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을 비롯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던 터라 분량에 비해 책을 다 읽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모르는 부분을 하나하나 찾아본 뒤 읽어내려 가야했기 때문에 속도는 더뎠지만 그만큼 중동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 발달과 SNS의 활성화로 세계가 거의 동시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우리나라 언론의 국제뉴스들은 서방언론을 받아쓰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중동과 관련한 소식은 편향된 것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언론에서 쏟아내는 많은 정보들이 어떤 관점에서 서술된 것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사실이라 해도 누구의 입장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핀켈슈타인의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는 가자지구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힘을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만 서술하는 것을 거부하고 좀 더 균형 있는 사실을 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저자는 유대인이고, 심지어 부모가 홀로코스트를 겪은 인물임에도 냉철하게 이스라엘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대인들이 취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하마스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에 대해 여러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을 자신과 분리하려하지 않는다. 제목에서처럼 <우리>라고 기꺼이 함께 묶어내며 반성하는 동시에 <우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자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2008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자 한다면 좀 부족한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선전에 의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자세가 필요한 지를 말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동시에 지구촌이니 세계화니 하면서 정작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삶이 파괴당하는 일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도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나라가 ‘평화’보다는 북의 존재를 독재의 수단으로 만들고, 9.11을 겪은 미국이 중동에서 또다른 전쟁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이 가자지구를 침공하는 것처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지난 역사의 가슴 아픈 경험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겪은 바 그대로 끔찍한 일들을 다른 곳에서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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