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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문학동네)』는 등장인물 중 ‘캘리밴’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읽었다. 캘리밴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책에서 그가 억울하게 노예로 살게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목을 읽은 후 시작되었다. 「노예12년」의 주인공과 캘리밴이 오버랩 되어 강제로 자유를 빼앗긴 자의 억울함이 가슴을 울렸다. 그래서 캘리밴이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캘리밴의 마지막을 확인했기에 궁금증은 사라졌다. 그런데 만족스럽지가 않다. 이야기가 캘리밴을 중심으로 흘러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캘리밴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미비했고, 가장 중요한 건 그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현재의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그를 바라보며 캘리밴이 노예로 전락한 건 그의 성향 탓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결말을 기대했던 게 아니어서 실망스럽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은 ‘푸로스퍼로’다. 그는 밀라노의 대공이었는데 학문을 쌓는데 전념하느라 동생에게 행정을 맡겼다가 배신을 당해 딸과 함께 쫓겨나서 캘리밴의 섬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살고 있다. 동생의 배신은 밀라노 왕이 모른 척 눈감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푸로스퍼로는 거센 폭풍우를 일으켜 밀라노 왕과 왕자, 동생과 대신들이 탄 배를 좌초시켰고 목숨을 건진 그들이 섬으로 올라오도록 유인했다. 12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아온 푸로스퍼로의 저주가 시작된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상인 저주의 관계는 극 초반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푸로스퍼로는 자신을 배신한 동생 ‘앤토니오’를 저주한다. 그런데 그가 딸과 함께 섬에 도착했을 때 친절을 베푼 캘리밴의 자유를 빼앗고 노예로 삼은 행동은 자신이 저주받을 짓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아서 황당했다. 푸로스퍼로에게 느끼는 황당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입을 통해 ‘더 귀한 행동은 복수에 있기보다는 용서의 미덕에 있는 것(p.112)’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캘로밴이 푸로스퍼로를 용서하고 그에 감복한 푸로스퍼로가 동생을 용서했다면 ‘용서의 미덕’이란 의미가 이토록 부끄럽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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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주인공 푸로스퍼로는 밀라노의 대공이다. 하지만, 동생 앤토니오가 형을 배신하고 왕위를 찬탈한다. 나폴리의 왕 알론조도 동생을 도운다. 푸로스퍼로는 3살 난 딸 미랜다와 함께 망망대해에 버려진다. 가까스로 무인도에서 살아남은 푸로스퍼로는 자신의 老대신 곤잘로가 챙겨준 마법책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마법책을 연구한 끝에 드디어 자신의 왕위를 회복할 기회를 노린다. 드디어 때가 왔다. 알론조 왕이 튀니스에서 열린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항해 길에 때마침 자신의 동생 앤토니오도 동승한 것이다. 푸로스퍼로는 자신의 마술로 템페스트(폭풍우)를 일으켜 마법을 통한 정령들을 통해 자신이 있는 섬으로 유인한다. 인제 푸로스퍼로에겐 ‘복수는 나의 것’이 된 셈이다.
'템페스트'는 대부분 복수로 끝이 난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문학(소설) 작품을 보면서 ‘복수revenge’하는 것에 굉장히 길들여져 있다. 리암 니슨이 주연한 『Taken』시리즈는 유쾌, 상쾌, 통쾌하게 복수하면서 살인을 무자비하게 한다. 내 딸을 건드리다니, 내 와이프를 건드리다니! 건물 폭파는 여사이고 사람 죽이는 것은 가관이다. 관객은 ‘복수의 시원함’(?)을 누린다. 한국영화 원빈의『아저씨』가 나와서 ‘복수의 정점’을 찍었다. 관객들은 그러했다. 나 또한 무자비한 살인의 미학(?)에 감동했다?
청소년시절에 즐겨봤던 만화들은 대부분 ‘복수’가 좋은 소재이다. 짓밟힌 자가 다시 짓밟아주는 것이 스토리의 끝이었고 최종목적지였다. 모든 복수를 소재로 한 스토리의 끝은 과연 어떠할까? 하지만 복수의 끝은 유쾌! 상쾌! 통쾌!라기 보다는 헛헛함이나 허무함이 아닐까? 나의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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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고전 문학 읽기 시간. 이번에는 모두가 합심하여 고전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서 템페스트를 고른 것은... 정말 처음 접해보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책 소개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자애와 용서와 사랑을 담은 이야기라고 하여 제법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다르게 두 가지 벽이 있었는데요. 1. 너무 옛날의 책이기 때문에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의 불쾌함 2. 희곡을 읽어보는 건 처음이어서 쓰여진 양식에 적응하지 못함. 이 두 가지 이유로 길지도 않은 책을 끝까지 읽기가 참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뭘 말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달까나요... 메인 주인공이 되는 미랜더의 아부지는 말이 너무 많고... 등장인물 많지도 않으나 희곡 형태로 되어있어 중구난방 말을 꺼내다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결국 책을 끝까지 읽고, 역자의 해석을 보면서 이 작품이 왜 의의가 있는지 알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정신없는 작품이었어요. 여유 없이 읽었기 때문일까요. 혹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제가 이 작품의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까요... 심란함이 조금 더해지는 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