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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규 교수님이 최근에 쓰신 책입니다. 이 책을 짧게 소개하자면, 먼저 여기서 '일반은총'은 온 세상을 향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비구원적 은혜'를 말합니다. 이 개념은 이미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충분히 등장하지만, 아브라함 카이퍼에 이르러서는,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특별은총과 마찬가지로,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문명의 발전과 창조세계의 개화(開花),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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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규 교수님이 최근에 쓰신 책입니다. 이 책을 짧게 소개하자면, 먼저 여기서 '일반은총'은 온 세상을 향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비구원적 은혜'를 말합니다. 이 개념은 이미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충분히 등장하지만, 아브라함 카이퍼에 이르러서는,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특별은총과 마찬가지로,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문명의 발전과 창조세계의 개화(開花), 그리고 문명의 결과물들의 천국 유입이라는 구체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예정된 것이라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띠게 됩니다.

  이 책의 1부는 이에 대한 스킬더, 훅스마, 코르넬리우스 반틸의 반론과 그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2부는 인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룩한 일반은총의 결과물로서의 문화적 산물들이 천국에 유입되는지 여부에 대한 견해 대립과 그에 대한 송인규 교수님의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카이퍼주의'와 '루터주의'의 대립에 대해 계속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어느 정도 답을 준 것 같습니다. 저는 결국 다음의 것을 얻어내기 위해 이 책을 열심히 읽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꽤 논쟁적인 책이기 때문에, 논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번 집어들면 끝까지 읽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논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필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문화적 사명을 확고하게 수립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신학적 원리들을 일곱 가지 진술의 형태로 기술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그러한 형상의 내용 가운데에는 다른 피조물에 대한 다스림 ― 소위 '문화 명령'으로 지칭되는 바 ― 이 포함된다(창 1:26~28).

  (2)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도 넓은 의미의 하나님 형상을 견지하고 있고(약 3:9), 또 문화 명령은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창 9:1,7 참조, 시 8:6~8).

  (3)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일반은총을 베푸심으로써 인간의 삶을 연장하고 자연적 은택을 베푸시며(시 145:15~17; 마 5:45~46; 눅 6:35~36; 행 14:17, 17:25~28), 죄를 억제하시고(창 20:6, 롬 13:1~4), 외형적 혹은 시민적 선을 수행하도록(왕하 10:30; 롬 2:14~15) 하실 뿐 아니라 예술적 · 학문적 · 과학적 기량을 발휘하게 하신다(창 4:20~22; 왕상 4:30; 욥 32:8).

  (4) 인간은 누구나 문화적 건설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비록 비신자들이 전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 중에 하나님이 부과하신 사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5) 중생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문화 명령의 수행자임을 의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고전 10:31) 일념 하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다.

  (6)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살아가며 수행하는 모든 문화 활동은 그 자체로서 올바른 것이고(딤전 4:3~4), 올바른 자세로 한다는 것이 전제될 때 하나님에게서 인정과 상급을 받는다(마 25:14~23; 골 3:22~24).

  (7) 인간이 이 땅에서 행한 모든 문화적 활동의 열매는 정화 과정을 거쳐(벧후 3:10) 새 하늘과 새 땅에 보존된다(계14:13, 21:24, 26).  [송인규,『일반은총과 문화적 산물』, pp.234 ~ 235]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불건전한 문화적 낙관주의(cultural optimism) 또한 경계해야 한다. 문화적 낙관주의란 일반은총의 개념과 이 세상의 문화적 산물에 과도히 집착합으로써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균형 잡힌 모습이 침식당하는 일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 세상의 문화적 산물에만 눈이 멀 경우,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고 우리가 나그네요 행인(벧전 2:11)인 것을 잊을 수가 있다. 또 문화적 산물이 제공하는 즐거움과 매력에 탐닉하면서 하나님 사랑(딤후 3:4)을 멀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편으로 문화적 산물과 세상 속에서의 문화적 활동을 귀히 여기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신분과 그런 활동의 궁극적 목적을 잊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송인규,『일반은총과 문화적 산물』, pp.237 ~ 238]

 

 

  이 세상의 문화적 활동, 현상, 산물과 관련하여 그 가치나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 판정의 대상이 어떤 것인지 알아본 뒤, 그 정당성을 사례별(case by case)로 평가하는 것이 현명한 방도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보통 판정의 대상을 분석한 뒤 그 가운데에서 세 가지 요소 ―  죄된 요소, 중립적 요소, 바람직한 요소 ― 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우리의 판정을 기다리는 문화의 대상은 예를 들어, 불교 예술이거나 자연주의자의 과학 활동이거나 마르크스주의자의 정치 체제 등 다양하다. … 우리는 이런 사항들에 대한 판정과 평가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송인규,『일반은총과 문화적 산물』, p.239]

 

 

  (1) 세상과 관련된 선행은 두 가지 내용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인데, 특수 은총의 영역과 관련한 노력, 곧 복음 전파(막 16:15; 눅 15:3~10)와 일반 은총의 영역과 관련한 노력, 일례로 사회 봉사 및 활동(마 25:31~36; 눅 10:28~37)이 그것이다.

  (2) 기독교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 두 가지 사항은 어느 한 쪽이라도 소홀히 여겨질 수 없고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만일 전자의 노력을 무시하면 "사회 복음주의"로 흐르게 되고, 후자의 노력을 무시하면 "영혼 구원주의"에 빠지게 된다. 물론 궁극적으로 어느 하나만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전자의 노력, 곧 복음 전파를 더 중히 여기는 쪽으로 기운다고 말하겠지만, 지금은 기독교인의 선교적 과제에 대한 원리를 확립하기 위한 시도로서 이론적 근거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니만큼, 이러한 양자택일의 제한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3) 개교회(나아가서는 교단의 차원)나 선교 단체 지도자들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우선 소속한 공동체의 경향과 교육 내용을 충분히 살핌으로써, 현재 어느 쪽에 너무 쏠려 있고 어느 쪽이 무시되고 있는지(예컨대, 전도 집회 캠페인에 열심이나 부패한 사회 현상에 전혀 무관심하다든가, 반대로 핵 전쟁 · 인권 유린에는 민감하지만 복음 전파의 구체적 전략이나 전도 훈련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든가), 아니면 어떻게 그릇된 개념이나 활동에 빠져 있는지(예컨대, 인간을 너무 영적인 존재로만 규정한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정치적 해방의 노력이 곧 구원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한다든지)를 판단하여, 올바른 가르침과 교정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4) 전문화된 형태의 그리스도인 모임 ― 교단 내의 기구(예컨대, 총회 해외선교위원회, 통일 문제 연구 분과)나 초표파적 선교 단체(예컨대, 복음주의 노사 연구회, 노인 전도 협회) ― 이 갖는 책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모임이 이미 특수한 사역을 목표하고 출발했으니만큼 그 사역에 집중적으로 충실하되(전문화된 형태의 모임은 전문성을 띤 것으로 이미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 동시에 다른 형태의 모임 역시 그 특정한 형태의 사역 못지않게 중요한 성격의 것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여러 형태의 사역은 각기 서로를 보완하고, 함께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상호 보완성과 전체적 통일성을 망각하면, 어떤 특정 형태의 사역만이 그리스도의 선교적 임무를 수행해 나가고 있다든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사역보다 더 우월하다든가 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활동이 그 특정 형태의 사역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든가 함으로써 그 해당 사역을 노골적으로 (아니면 은연 중에) 과시 · 절대화 · 강요하게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과 전문화된 그리스도인 모임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교적 임무의 총체성(요 20:21)을 의식하고 균형 잡힌 안목을 갖되, 임무의 수행에 있어서는 선택적이고 전문적이며 집중적인 참여를 하는 것이라 가르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5) 신자 개개인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 두 가지 사항 중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고 시간 투자를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개인의 은사(예컨대, 개인전도, 구제), 직업의 영역(예컨대, 정부 관리, 대학생 전도자), 상황의 핍절성(예컨대, 영양 실조로 쓰러진 사람, 3분 후에 죽을 암환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또 그는 자신의 취향적 선택에 따라 특수 목적의 교파 기구나 선교 단체에 참여할 수 있는데, 그 모임의 특수성이 요구하는 사역의 방향과 정책적 강조점이 우선순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송인규,『일반은총과 문화적 산물』, pp.241 ~ 243]』


YES마니아 : 로얄 y*******w 2014.11.0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