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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싸워서 승리하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는 탐욕 때문만이 아니라 '무슨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이기면 '착한 영웅'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승리한 쪽이 언제나 선하고, 패배한 쪽은 늘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할 수 있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전쟁을 참 좋아한 것이다. 아무리 선한 의지로 권력을 쟁취한 자들이라 하더라도 '고인물이 썩듯' 장기집권의 야욕을 탐하는 순간부터 권력자는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럴 듯한 감언이설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고 오직 승리하기만을 바라는 요행수로 전쟁을 이용할 따름이다.
하지만 전쟁의 끝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오직 '파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승리한 쪽도 수많은 희생자과 파괴된 터전만 남을 뿐이고, 패배한 쪽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리고 전쟁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오래도록 남긴다. 전쟁 영웅이라고해서 다를 건 없다. 아니 영웅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테고 더욱더 처참한 고통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터라 제정신을 차릴 새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쟁 영웅'을 추켜세우고, 그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며, 나라를 다스리는 역할을 맡기는데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어주고 그런 권력을 맘대로 휘두르도록 방치하고 만다. 왜? '애국자'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과 국민을 위해서 제 한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을 한 위대한 인물이며, 사악한 적들을 초토화시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낸 위인이라 칭송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앞서 말했듯이 '적보다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앞장서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분이 철옹성같이 안전하기 이를데 없는 '지하벙커'에 꽁꽁 숨어서 수많은 군장병들을 살벌한 전장터로 내보내 죽어나가는 보고를 받고도, 또 공격명령을 서슴없이 내리는 무자비한 권력가로 활약할 뿐이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 전쟁영웅은 '살인자'를 뛰어넘는 '살육자'이며, 전쟁광일 뿐인 이들에게 절대로 권력을 쥐어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들의 단순한 머리로는 '평화'란 자신의 독재에 대한 복종일 따름이고, 자신이 독재자가 되지 못하게 되면 언제든 '영광스런 전쟁'을 통해 권력을 오래오래 이러나갈 생각뿐인 존재들인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각 나라들의 지도자들을 보면 어김없다. 냉전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수많은 '전쟁'과 '내전'의 양상들을 살펴봐도 꼭 맞아 떨어질 것이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전장에 참전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저마다 자신의 조국이 가장 강하다는 신념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은 전쟁에 뛰어들었고, 각 나라들은 발달된 무기로 인해 수많은 군인들이 전장터의 이슬로 사라지는 충격속에서도 결코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전장터의 빈곳으로 '보충병'들을 기차로, 택시로, 심지어 걸어서라도 보급하는데만 골머리를 썩혔을 뿐이다. 후방에 남겨진 사람들도 언제든 기회만을 엿보면서 '참전'을 하려했고, 지리한 전투가 이어지며 교착상태에 빠져 '무의미한 돌격'만을 감행하는 무모한 작전에 투입된 병사들은 시체들이 쓰러져 넘어진 '똑같은' 그곳에 쓰러져 생을 마감할 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달라졌을까? 달라진 것은 '대량살상무기'의 가공할 위력뿐이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양상은 똑같았다.
이 책 <무기여 잘 있거라>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20살의 젊은 헤밍웨이는 '전쟁영웅'이 되고자 참전을 희망했고,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어찌어찌 고집을 피워 '구급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하게 된다. 하지만 전장터에서 포탄의 피격을 받고 부상을 당한 뒤로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게 되었고, 그 참혹함을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 녹여내었다. 정녕 '전쟁'이 무엇이길래 수많은 젊은이들을 참전하게 만들고, 거기서 무슨 일을 당했길래 정반대의 '반전'을 외치게 된 걸까? 헤밍웨이는 무려 다섯 번의 전쟁에 참여하였고, 그는 소설에 그런 경험을 제대로 살려내 '허무주의' 가득한 현대의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바로 '인생, 뭐 있어? 그냥 즐기는거야!'였다.
하긴 권력을 탐한 야심가들은 전쟁을 이용해서 '권력자'로 변신을 하여 한몫 단단히 챙겼지만, 그저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참전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사람을 죽인 경험, 부상을 당해 평생 불구가 된 경험, 그리고 숱한 씻지 못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을 안고 돌아와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험 따위를 생생하게 전해듣고서, 결국 '전쟁'으로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회의감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회의감은 곧 '허무주의'로 빠져들게 만들면서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마음껏 누리며 살길 바라는 나약한 존재로 만족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이 책 <무기여 잘 있거라>의 프레데릭이 그런 '허무주의'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자발적인 참전으로 '영웅적인 부상'을 당한 주인공이 훈장까지 수여하며 자긍심을 높일 수 있었지만,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결국 패배의 불명예를 안고서 퇴각하는 길에 '전쟁의 무상함'을 느끼고 끝내 탈영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죽음뿐이라는 허무함이었다. 프레데릭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탈영한 신분을 숨기고 스위스로 도망가서 아내 캐서린과 함께 했던 몇 달뿐이었다.
그런 20세기 허무주의를 딛고서 21세기를 맞이한 이들이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속으로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권력이란 탐욕에 눈 먼 '독재자'들만이 전쟁을 외칠 뿐이다. 이제 똑똑해진 시민들과 현명한 민중들은 그딴 독재자들의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되었다. 다만, 미래비전 따위도 없이 그저 '그들만의 천국'을 꿈꾸는 영혼없는 정치인과 추종자들만이 그런 독재권력을 옹호하고, 검찰과 경찰, 그리고 가짜언론들까지 '그들만의 게임'에 참여하며 전쟁을 통해 영욕을 채우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낼 뿐이다. 물론 그런 '거짓'에 속아넘어갈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아주 '적은 표 차이'만으로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나니 도무지 안심을 할 수가 없을 따름이다. 팬데믹 시대에도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안전한 대한민국'이 어쩌다 '각자도생'을 외칠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이제라도 제정신을 차리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헤밍웨이의 말마따나, 무기여, 잘 있거라~ 전쟁을 벌여서 승리를 거두면 '이득'을 보는 건, 오직 독재자와 그를 옹위하는 소수자들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승전국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잡힐 뿐이고, 패전국은 '더'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될 뿐이다. 그렇게 승전국과 패전국 '국민들의 무덤' 위에 쌓은 영광을 자랑스럽게 여길 참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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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예전에 읽은 듯도 하고, 책은 읽지 않았지만 영화로 본 듯도 하다. 어쩌면 책과 영화 모두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무엇하겠는가? 작가가 헤밍웨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옛 추억을 더듬는 마음으로 펼쳐든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모처럼 낭만과 사랑을 느낀 작품이다. 나는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어떤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를 여러 판본을 통해서 서너 번 이상 읽었는데, 공통적인 점은 어떤 책에서든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냥 허무했고, 노인과 고래의 사투가 내게는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품은 교과서에서도 몇 번 언급되었고, 나름 유명한 작품인데 좀 더 잘 감상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서너 번이나 읽었지만, 그때마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헤밍웨이의 작품은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내게 새겨진 듯하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내가 읽지 않았다면, 헤밍웨이의 작품이라는 점과 제목이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뜻밖에 몰입하면서 읽었다. 남주인공인 프레데릭보다는 여주인공인 캐서린이 더 인상에 남았다. 교과서 삽화와 같이 일정한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림도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의 사랑도 마음에 와닿았다. 최근에는 사랑을 다룬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기에 이 작품이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둘째, 역시 헤밍웨이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는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자전적인 작품을 다수 남긴 작가라고 들었다. 이 작품 역시 그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 호사루타 전투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프레드릭은 헤밍웨이의 한 모습이고, 캐서린 역시 아그네스라는 실제의 모델이 있다고 한다. 역시 헤밍웨이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허무한 결말 때문이다. 결말을 말하면 읽지 않은 독자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하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항구에 귀항했을 때 1500파운드가 넘는 물고기가 뼈만 남았던 결말이 연상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노인과 바다』와 달리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프레드릭과 캐서린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노인과 바다』에는 그런 낭만이 없지 않은가?
셋째,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이 책은 물론 영화도 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줄거리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오래전에 읽은 탓이거니 생각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 본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열정적인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영화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마지막 순간까지 영웅적으로 적과 싸웠던 듯한데 이 책에는 그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다시 검색을 해보니 내가 본 영화는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다.
이렇게 허망한 실수가 있을까? 그러나 다행히 아닌가. 늦게라도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니까. 생각할수록 불안한 마음이다. 이렇게 황당하게 잘못 알고 있는 책이나 지식에 대한 오류가 내게 얼마나 쌓여 있을지……. 앞으로 확실한 사실이 아니면 말이나 글을 조심하자라는 교훈을 다시 되새겼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세계 명작이 아닌가?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일단 만화로 된 이 작품을 먼저 읽고, 원문을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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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는 헤밍웨이의 이탈리아 참전 경험을 담은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작품은 전쟁의 대의에 순응했던 프레데릭이 캐서린을 사랑하고 전쟁의 참혹함과 파괴력을 목도한 뒤 변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작품의 말미에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 프레데릭을 통해 우리는 이전의 지배적인 가치 체계를 상실하고 떠도는 잃어버린 세대의 탄생 배경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은 큰 맥락에서 죽음과 삶의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며, 헌병에 잡혀 총살당할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더불어 캐서린과 아기의 죽음은 프레데릭이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운명의 일부이기도 하다. 때문에 작품은 인간이 일으킨 전쟁뿐 아니라 운명의 힘에 의해 비극으로 치닫는다. 프레데릭은 우선 전장의 무기와 이별하고, 다시 캐서린의 포근한 품과도 결별해야 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은 허무주의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는데, 이러한 허무주의는 역사 및 운명에 대한 이와 같은 무력감에서 기인한다. 전쟁에서 탈영병이 된 것이 운명의 장난이었듯 캐서린을 죽게 한 것도 역시 운명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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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처음 작가로 명성을 떨친 것은 1962년에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라는 작품을 발표하고부터이다.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헤밍웨이를 일약 인기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에도 헤밍웨이는 끊이지 않은 창작열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는데, 이러한 헤밍웨이의 창작의 원천은 바로 여행과 체험이었다. 헤밍웨이는 여행을 줄겨 다녔고, 여행지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헤밍웨이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65세에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가 평생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기간이 무려 14년 5개월이라고 하니, 헤밍웨이는 여행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은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 [노인과 바다]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헤밍웨이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사람들은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늙은 어부가 보여 주는 불굴의 의지와 그것을 매우 잘 표현해 낸 헤밍웨이의 힘찬 문체에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콧대 높은 비평가들마저도 [노인과 바다]를 읽고서는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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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의 주인공 프레데릭 헨리는 헤밍웨이의 청년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전쟁터에서 도망치고, 사랑하는 연인과 평화로운 생활을 갈망하는 프레데릭을 통해서 헤밍웨이는 전쟁이 인간의 생활을 얼마나 망가뜨리며, 사람들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프레데릭 헨리 역시 그러한 현대인의 고뇌가 잘 표현된 인물이다. 프레데릭 헨리는 비록 이탈리아인은 아니었지만, 이탈리아 군대에 속한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퇴각 명령이 떨어지고, 군대가 후퇴하는 길에 프레데릭은 그만 이탈리아 헌병대에게 붙잡혀 죽을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가까스로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한 뒤에 프레데릭은 이제 적극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인물로 변화하여, 세상을 등지고 오직 사랑하는 캐서린과 함께 중립국인 스위스로 떠나 버린다. 이처럼 기존의 질서에 반대하며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인물들의 모습을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매우 빈번하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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