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이 책을 사려던게 아니었다.최진영 작가의 다른 책을 구경하다 이 책을 발견했는데 책 소개도 제대로 안 읽고 그냥 사버렸다.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마지막 페이지를 향할수록 제야가 죽어버릴까봐 너무 무서웠다.현실성 없는 결말을 원했지만(당숙이 죽어버린다든지 강간당하든지 하는)어쩌면 이런 결말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제야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겠지.피해자에게 이유를 찾았던 방관자이자 또 다른 가해자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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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날 그 일이 없었어도 그는 분명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207페이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통은 법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위로한다. 물론 이것도 사건으로 접수되고 제대로 수사를 했을 때 얘기다. 마음 같아서는 피해를 본 그대로 가해자에게 돌려주고 싶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으로 범법자가 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법이 그만의 방식으로 위로해준다고 해도, 인간의 마음에 내려앉은 고통의 무게를 줄일 수는 없다. 평생 사라지지 않을 분노의 무게도 여전하다. 그러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세월은 흐르고 점점 사람들에게 잊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그런데 말이다. 법의 심판이라도 받는 경우에도 그런데 아예 법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가해자는 가해자가 아닌 게 되고 피해자는 그런 일을 당할 근거를 제공한 이가 되는 일이 되기도 하는 현실이, 억울하게도 우리 옆에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끔찍한 그 날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기록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날의 일을 결코 찢어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고스란히 들려준다. 그날의 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을 비틀어놨으며, 가장 아름다울 시기를 가장 비참하게 보내게 했다.
열여덟의 이제야는 당숙에게 성폭행당했다. 당숙은 제야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너를 아낀다고 말하며 제야의 정신까지 폭행했다. 성폭행을 당하고도 제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숙은 마치 사랑스러운 연인처럼 제야와 저녁 인사를 하고, 다음에도 다시 만날 약속을 남기며 애인 대하듯 문자를 남긴다. 그때 제야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멍하던 제야는 혹시나 당숙에게 무서운 일을 당할까 봐, 당숙 밑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가 당한 일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는 생각에 경찰서로 가서 신고한다. 제야는 그 피해에 관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내 인생이 서너 개쯤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느냐고 말하면서, 이번 생은 이대로, 이대로 재수 없게, 미친 사람들, 그런 일이 어떻게 운이고 재수인가. 그에게만 생이 한 번뿐인 듯 실수 하나로 인생을 망칠 수 없다고…… 그 사람은 이미 망가진 사람이다. 스스로 망가져서 나까지 망친 사람이다. (84페이지)
어째서 내가 의심받는가. 어째서 내가 증거를 대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설명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사라져야 하는가. (133페이지)
왜 세상 많은 일에는 돈과 권력이 법보다 앞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 걸까. 제야의 신고는 경찰관들이 연락한 당숙의 등장과 함께 없었던 일이 된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그 지역의 많은 일에 앞장서는 당숙의 힘은 어린 제야와 비교할 수도 없었다. 경찰관들의 질문에 제야는 더 주눅이 들었다. '성폭행을 당했는데 왜 보이는 상처가 하나도 없느냐, 보통은 반항하는데 너는 하지 않은 것 같다, 거기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셨다는데, 이렇게 다정하게 주고받은 문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냐.' 제야가 겪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제야의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제야를 탓했다. 마치 이번 일은 제야가 모든 원인 제공을 한 것처럼 말했다. 가해자인 당숙에게는 남자가 한 번 실수할 수도 있다고, 술 마시고 그럴 수도 있다고, 남자로 살면서 그 정도는 괜찮다고. 뭐가 괜찮은 거지? 어디서 실수인 거지? 그럼 그가 저지른 실수의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닌 게 되는가? 왜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무마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는 것인지 모르겠다. 피해자의 마음이, 고통이, 상처가 가장 중요한 건데 아무도 그걸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야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때는 말할 수 없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마음을 가까이서 듣는 듯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공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생긴 일이 언젠가 우리가 겪을 일이 될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살아가니까. 하지만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얼마나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성폭력에 관한 사건을 들을 때마다 걱정된다. 가해자가 저지른 일과 피해자가 당한 일을 중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고 해석하는 일들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법이 그 기준을 정하고 법대로 판단하는 건 그렇다고 치자. 사람들의 오해와 비틀린 시선으로 가해지는 2차 피해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안으로 스며들어 온몸에 번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삶을 뒤흔들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제니야, 이게 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살고 싶다는 말이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단 말이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던 나로, 온전한 나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편에 서서, 제대로 살고 싶단 말이야. (224페이지)
다행스럽게도 제야에게는 강릉 이모가 있었다. 작은 동네의 사람들 시선을 같이 맞받아쳐 줄 수 있는 이모가 있었다. 사건에 관해서 묻지 않는, 누구의 편을 들기 전에 이성적으로 사건을 볼 수 있는, 오롯이 제야 자체로 받아들이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 이모와 함께 지내면서 제야는 조금씩 상처를 회복한다. 집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서도 세상에 적응하려고 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성폭행 피해자를 보는 시선이 두려워서 벗어난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리운 것들이 있다. 함께 성장하며 가족과 친구 이상이었던 동생 제니와 사촌 동생 승호. 그날의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함께 어른의 시간을 살면서 성장통을 겪고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하던 미래의 시간을 조금씩 채워가면서 세상 속에 섞이면서도 인간다움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소설은 제야가 쓰는 일기로 조심스럽게 그 상처를 꺼낸다. 감히 잘 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함부로 위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성폭력이라는 사건을 마주하고 어떻게 변해 가는지, 어떻게 견디고 극복해 가는지 세세하게 묘사한다. 마치 눈앞에서 제야의 모든 표정과 생각을 보는 것처럼 섬세하게 들려준다. 누군가가 던진 일상의 폭력 앞에서 피해자의 상처는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는지 대신 대답하는 것 같다.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되돌리기도 한다. 혹시 우리는 제야의 주변에서 던진 시선들처럼 그렇게 했던 적은 없었는지를. 제야의 일기가 계속되고, 물음표 없는 질문들이 계속될 때마다 제야의 상처를 공유하게 된다. 이건 절대 제야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이다. 누군가가 행하고, 누군가가 방관하면서 혹시 그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닌지 묻는다.
상처를 받는 건 순간이지만,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아무리 상처가 치유된다고 해도 상처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크거나 작거나 흉터를 남긴다. 저자는 그 흉터가 제야의 것에서 머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제야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는지 고스란히 들려준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내가 쏜 화살이 되돌아오는 것처럼. 어쩌면, 절대 끝나지 않을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 시켜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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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는 그와 비슷한 말을 생의 가장 끔찍한 날에 들은 적 있었다.“남자가 제야에게 너를 좋아한다며, 너를 소중하게 여긴다며 하는 말이 제야에게는 끔찍한 말이라는, 끔찍한 기억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쁜말 듣은것을 좋아하하는데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는 내가 좋아하던 말들도 다 그때와 연관되어서 들린다는 것이 너무 불행하고 무서울것같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에게 들은 말이 끔찍한 날을 기억하게 해주는 계기가 된것이 너무 힘들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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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서국도 갔다가 구매했었는데 아 진짜 오열 오열 가슴이 찢어져요 책을 읽을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책을 다 읽고 덮자마자 그때부터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러나오는데ㅠ 하 지금 생각해도 또 눈물요 책을 덮고서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책을 부둥켜 안고 울었네요 이런 후유증..감정소모가 심하지만 너무 좋습니다 |
| 소설가 최진영은 '우리'라는 단어를 '불행의 연대로 이루어진 무리'라는 뜻 으로 해석하는 작가다. 삶이 무서워서 얼어붙은 사람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서 짧은 칼날로 얼음을 깨뜨리는 작가다. 아마 최진영은 끝까지 우리 삶의 전부를 써낼 것이다. 그렇게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할 것이다. 이 모든 불행의 연대를 일인칭의 노래로 외우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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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님의 이제야 언니에게 리뷰입니다. 친구에게 한 번쯤 읽어보길 바란다며 추천받은 도서입니다. 도서 구매 전 책에대해 미리 찾아보고 다른 독자분들이 올려두신 발췌를 한 번씩 읽어보는 편입니다. " 그러니까 제니야, 이게 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살고 싶다는 말이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단 말이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던 나로, 온전힌 나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편에 서서, 제대로 살고 싶단 말이야." 줄거리와 해당 발췌 문장을 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실제로 읽고 나서도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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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에게 강간당한 여고생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중간으로 가면서 숙부에게 당할 제야가 예상되어 너무 괴로웠네요.. 그래도 꿋꿋하게 살고자하는 제야에게 많이 공감했고, 그러면서도 끝없이 무너질 제야와 함께 울었고,,, 그렇지만 다시 일어설 제야를 응원합니다. 최진영 작가님 이런 이야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꼭 일독을 권해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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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님의 <이제야 언니에게> 리뷰입니다
최진영 작가님을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소설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하나씩 작가님 책을 도장깨기 하고 있어요 거의 모든 책이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계속 최진영 작가님의 책을 사랑할 예정 ㅠㅠ 이제야 언니에게는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 꽤 많이 무거운 소설이었는데요 너무 슬프면서도 화가 나기도 하고 다 읽고 나서 책 제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느 소설이었어요 잘 읽엇습니다 |
| 소설q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보고 싶었고, 그 첫번째로 이제야 언니에게라는 책을 선택했다. 최진영작가의 책은 그 이전에도 읽고 좋았었던 경험이 있어서 선택에 망설임은 없었다. 책을 읽을 때 내내 제목이 주는 의미가 이중적일거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 다 읽고나서 마지막장을 읽으면서 딱 깨달았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읽는내내 슬펐지만,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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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현실적이고 어떻게 이렇게 그대로의 감정 표현들을 담을 수 있었을까. 내게도 제니가 있어서, 이모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싶기도 했다 나는 잘못한 게 아니었는데 제야가 잘못한 게 아니었는데 읽으면서 힘들었지만 끊어 읽을 수 없었기에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었다. 마지막에 제니에게 남긴 편지는 정말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화가 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