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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골목일까
도시를 사람의 몸이라고 하면, 골목은 모세혈관에 해당한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골목이다. 왜냐하면 골목은 흘러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머무는 장소라는 이중적인 요소가 결합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목은 도시의 민낯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도시화의 과정에서 골목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삶의 공간으로서의 골목을 없애버린 것이다. 마치 노화를 피하기 위해 보톡스(Botox)와 같은 주름개선제를 맞아 얼굴의 주름살을 없애버린 것처럼.
아마도 그래서 저자가 가능한 대도시가 아닌 도시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다룬 9개 도시 가운데 대도시의 법적 인구수인 50만을 넘긴 곳은 전주가 유일하니까. 그리고 전주도 한옥마을처럼 옛 도시의 잔향(殘香)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고른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골목의 복원
도시의 골목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주거지를 관통하여 다른 길들과 만나는 통과 골목이고, 다른 하나는 한쪽이 막힌 막다른 골목이다. 이 중 막다른 골목길은 한국 역사도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의 오래된 도시에서도 막다른 골목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막다른 골목은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따라오는 치한과도 같은 도시의 사나운 기운과 번잡함을 따돌리는 차분하고 안전한 영역이다. 또한 그곳은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공간이자 이웃 사람들이 자연스레 만나는, 꽃나무와 과일나무가 지붕을 대신하는 사랑방이다.” [p. 102] 이처럼 막다른 골목은 도시 공간을 ‘인간적인 척도(human scale)’로 나눠 적절한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용이하게 한다.
분명히 도시 공간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막다른 골목은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다른 골목이 자아내는 불규칙성은 도시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공간으로 만든다. 그 결과 막다른 골목은 “탐방객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발길을 도시 공간 깊숙이 이끈다.” [p. 360]
그래서일까? 최근에 와서 골목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복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이렇게 골목을 만든다고 해도 그것은 ‘골목’이 아니다. 그저 물리적 공간으로서 골목의 형태를 띄고 있을 뿐. 왜냐하면 우리는 골목의 가게만 유지하는 것으로 재개발과 골목의 복원을 이루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게만 유지한다고 해서 그 골목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공간체험도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잘못된 개발의 예로는 건축가 유현준이 안타까워했던 ‘피맛골 재개발’을 들 수 있다. 어쩌면 어설픈 골목의 복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도 당연할 지도 모른다. 건물과 공간은 그 안에서 사람이 부대끼며 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생명력을 지니는데 단지 구경하기 위한 관광의 요소로만 건물과 공간을 복원하고 있으니…….
옛 도시의 잔향(殘香)이 남아 있는 9개의 도시
이 책에서 ‘곡선으로 흐르는 강,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수식으로 밀양을, ‘바다와 예술가들이 빚어낸 도시의 지혜’라는 수식으로 통영을, ‘막다른 골목에 살아 있는 양반도시의 품격’이라는 수식으로 안동을, ‘역사의 무게를 이겨낸 도시 공간의 봄’이라는 수식으로 춘천을, ‘상업도시의 휴머니즘’이라는 수식으로 안성을, ‘오래된 포구도시의 외래 풍경’이라는 수식으로 강경을, ‘도시를 움직이는 [예(藝)와 무(武)라는] 두 개의 문화바퀴’라는 수식으로 충주를, ‘한옥이 지켜온 도시의 전통’이라는 수식으로 전주를, ‘천년 고도의 세 가지 선’이라는 수식으로 나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가 긴 도시일 것,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비교적 작은 도심부를 지닌 도시일 것, 그리고 현대도시로서의 매력과 잠재력이 큰 역사도시일 것이라는 저자의 세 가지 기준에 의해 선정된, 이들 9개 도시에는 아직까지 옛 도시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공간과 장소가 남아 있다.
저자는 한국의 옛 도시가 도시의 면이 불규칙하고 유기적인 골목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에 언급된 9개의 도시 외에도 그런 특징을 지닌 도시가 남아있지 않을까? 나아가 성냥갑처럼 만들어지는 신도시들도 이러한 특징이 담기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골목을 만들고, 이러한 골목들이 얽혀있는 도시를 키워나간다면 좀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리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