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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쯤 지나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게 될까?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통해서 난 그때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이후 500년이 지난 2500년쯤에도 2000년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 이렇게 말하게 될까?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그린 책들을 읽다보면 늘 가슴 저 밑바닥이 답답해진다. 지존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일생이 이러할 진대 그 밑에 있는 여자들의 인생은 또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을까?
이 책은 중종의 첫 부인. 왕비가 된지 7일 만에 폐위된 신씨가 폐위 되었을 당시 복중에 아이를 회임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바람 앞에 등불인 중종이 신하들의 요구에 못 이겨 신씨를 폐위 시키고 사가로 나간 신씨가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다른 이의 손에 의해 자라게 된 옥린이라는 공주. 그 옥린을 비밀리에 찾고자 중종과 신씨의 바람으로 조광조의 아들 조정과, 남곤의 아들 남휘의 삼각 사랑이야기. 버려진 공주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사림파와 훈구파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시작 된다.
중종하면 생각나는 것은 아들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 했던 문정황후가 생각난다. 아마도 예전에 했던 sbs의 드라마 정난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중종은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존재로 그려졌었는데 이 책에서도 종중은 결단력이나, 자신감이 결여 되 보인다. 이런 남자의 부인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존의 자리가 아니라면 충분히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일 수 있겠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존의 자리에 앉게 된 중종은 신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떻게 신하들에 의해 쫓겨날지 모를 왕이라는 자리. 자신의 부인마저 지켜낼 수 없었던 중종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만약 중종에게 역사에 기록할 수 없는 딸이 있었다면 이 책의 이야기 같을까? 그 당시에도 조광조와 남곤은 창과 방패 같은 관계였다. 자신과 같은 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없이 역모를 꾸미고 상대를 해하려고 했던 사람. 그 사람들의 아들이 중종의 딸인 옥린을 사랑한다는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정말 그런 딸이 있었다면 중종의 마음은, 그리고 딸의 입장인 옥린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딸과 남편을 한꺼번에 잃을 수밖에 없었던 신씨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나는 이런 가상의 이야기 들이 참 좋다. 덕분에 중중과 신씨(단경왕후,) 문정황후, 남곤과 조광조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읽어보게 되었다. 단순 암기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 있고 인물이 있고, 사건이 있는 역사라면 충분히 재미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누구의 입장이라면 혹은 그 반대의 입장이라면 어떤 마음일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역사를 배우게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또한 역사를 이런 상상력으로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인물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지어보게 하는 수업. 만약 이런 수업이 있다면 나는 열렬히 환영하게 될 것 같다.
대략 450년 전의 중종과 그의 딸을 만났다. 허구일지도 모르고, 역사에 기록할 수 없는 진짜 이야기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라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상상력을 가미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밀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 덕에 역사적 배경을 같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 또한 나에게 찾아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