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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자기 집이라는 걸 생각할까. 함께 사는 사람을 날마다 보고 자기 영역이라는 게 있으면 그럴 것 같기도 한데. 난 고양이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만화를 보면 새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사람을 엄마 아빠라고 하는데 진짜 고양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겠다. 어쩌면 고양이는 사람과 살면 자신을 고양이가 아닌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들은 말이구나. 사람은 동물과 말을 나눌 수 없지만 마음을 알려고 하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거다. 알려고 애써야 하는구나. 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신한테 말하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나. 상대가 그런 마음인 걸 알면 놓아주면 좋을 텐데. 사람도 동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건 소설인지 산문인지. 산문 같은 느낌도 든다. 자식이 없는 부부는 어느 날 옆집 아이가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고양이한테 치비(꼬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와 아내는 그 고양이가 옆집에서 가끔 놀러오는 걸 보고 반갑게 여긴다. 방울을 달아서 딸랑이라 하기도 했다. 치비는 ‘나’와 아내 앞에서는 잘 울지 않고 안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치비는 아내가 만든 잠자리에서 자고 먹을거리도 먹었다. 그런 고양이 손님 조금 반갑겠다. ‘나’와 아내가 사는 셋집 주인은 셋집 사람한테 아이가 없기를 바라고 거기에서 동물을 기를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이 아니었다 해도 ‘나’와 아내는 동물을 기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옆집에서 놀러오는 치비를 좋아했다. 자꾸 만나다 보니 정이 들었겠지.
치비는 무슨 마음으로 부부 집에 다녔을까. 그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아침이 오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가 나가는 것을 배웅했다. 치비 재미있다. 진짜 집은 아이가 있는 곳이고 옆집은 다른 걸 먹고 다르게 잘 수 있는 곳이라 여겼을지도. 길고양이는 이 집 저 집 다니기도 하던데, 집고양이도 그럴까. 동물도 누가 자신을 좋아하면 그걸 알겠지. 함께 사는 사람한테 보여주는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집에서랑 밖에서 조금 다른 것과 같구나.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듯하다. 어쩌다 보니 그러는 거겠지. 아내가 치비와 절교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아내가 치비한테 갯가재 살을 발라서 주었더니 그걸 아주 맛있게 먹었다. 치비는 아내가 갯가재 살을 바르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 손을 물었다. 그것 때문에 아내는 치비한테 절교야 한다. 치비가 그 말 알아들었을까. 아내가 그런 말 했지만 그 뒤에도 치비와 잘 지냈다.
주인 집 할아버지가 죽고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서 곧 집을 떠나야 했다. ‘나’와 아내는 치비가 또 놀러올 수 있게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하려 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치비가 죽었다. 차에 치여 죽었다는데 정말 그랬을까. ‘나’와 아내가 치비 무덤에 인사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집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자기네 집 고양이를 옆집 사람이 좋아한 게 싫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옆집에서 다른 고양이를 기르게 되는데, 그때는 옆집으로 가는 곳을 철망으로 막았다. 자기 집 고양이가 옆집에 간 거 싫었던 거 맞는가 보다. 어쩐지 그런 마음 아쉽다. 옆집 사람이 자기 집 고양이를 예뻐했다면 그걸 기쁘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나’와 아내는 오랫동안 치비를 생각한다. 자기 집 고양이도 아니었는데 그러다니. ‘나’와 아내는 치비를 자식처럼 여긴 거기도 할까. 그럴 수도 있겠지.
‘나’와 아내는 나중에 다른 고양이와 살게 된다. 그건 치비가 찾아와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양이는 오래 함께 살았다 한다. 어쩐지 지금은 저세상에 갔을 듯하다. 그때는 치비가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더 슬펐겠지. 아니 슬픔은 비슷했을까. 늘 그런 건 아니겠지만 동물은 사람보다 먼저 떠난다. 그걸 생각하면 슬프지만, 함께 살 때 동물이 사람한테 주는 게 더 많을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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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찾아오는 공간은 늘 설렘이다. 고양이는 도도하고 까칠하며 '츤데레'한 면도 있어서 아무 집이나 방문하지 않기에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양이 손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관심이 간다. 게다가 표지의 고양이가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쳐다봐요’라고 말하는 듯한 포즈를 짓고 있으니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손이 안 갈 수 없다! <고양이 손님>의 저자는 남자 작가이셔서 문체가 담담하다. 고양이가 오고 가는 일에도 무덤덤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작가가 부인이 하는 말을 옮겨 적은 부분에는 고양이에 대해 부인과 동일한 감정인 기다림, 반가움, 사랑스러움, 감사, 토라짐, 질투 등이 살포시 느껴진다. 작가 부부를 찾아오는 고양이 치바는 손님으로 와서 작가 부부와 친해진 후 안방에서 자고 갈 정도가 되어도 왔다 간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무리 친해져도 난 손님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치바를 맞이하는 작가 부부가 토라질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바를 끝까지 미워할 수 없으니 바로 고양이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다. 치바는 손님으로 와서 정만 주고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실제로 키우지 않더라도 자주 방문하던 고양이의 죽음은 고양이 주인과 비슷한 슬픔을 느끼지만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책을 통해 간접경험하였다. 나라도 내가 키우던 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 더 친근함을 표시하고 내가 모르는 추억을 쌓았다면 질투가 났을 테니까. 물론 치바를 손님으로 환영했던 작가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지만. 읽는 내내 고양이와 밀당하는 재밌는 모습이 눈에 그려져 나도 고양이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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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사내아이로 인해 '치비'라는 이름을 갖게된 길고양이. 번개골목의 그 길고양이에게 분명 주인이 생겼지만 그 고양이가 우리집에 오면 고양이는 어느새 '딸랑이'가 된다. '나 이고양이 키울거야' 라고 말하는 옆집 사내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을때에는 몰랐던, 시간이 지날 수록 치비가 옆집 아이의 소유가 된것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치비는 자기 맘대로 내집에 들락거리며 목에 걸어둔 방울 소리를 낸다. 아내는 조금씩 조금씩 '치비'를 사랑하게 된다. 옆집의 고양이가 되었지만 '치비'는 아내의 고양이 인냥. 어느날 아내를 알아보는 것만 같은 '치비'가 얼마나 예쁘던지. 주인집 할머니는 애완동물을 키우는걸 금지시켰지만 그리고 고냥이가 하루아침에 옆집아이의 소유가 되었지만, '치비'는 인간이 정한 경계에 관심이 없다. 이집 저집을 다니며 유혹을 발산하니 아내 역시도 '치비'에게 정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그린 도서들을 많이 본 것 같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본 적이 없기에 그 마음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내가 강아지를 애정하는 맘과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 <고양이 손님>은 큰 사건을 그리기 보다는 서정적으로 예쁜 동네를 묘사하고 고양이의 무관심한듯 자유로운 영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양이의 영역은 지극히 인간의 규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그대로 '지맘대로'이다. 지금도 내 귀에는 '치비'의 방울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내가 '치비'에게 가지는 마음을 보면서 고양이 한마리가 주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이별하게 되면서 겪는 서운함까지 함께 보았다. 손님처럼 왔다가 손님처럼 가버리는 '치비' 이야기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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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같은 소설입니다. <고양이 손님>을 읽노라면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동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손님이 되어 주인공의 집을 찾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세를 얻은 거처는 기와담장과 판자 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부지 안의 별채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남편인 '나'와 아내를 뜻합니다. 판자 담에 나무로 짠 쪽문이 있어서 집주인에겐 뒷문, 셋집 거주자에겐 출입문으로 쓰였습니다. 옹이구멍은 그 키 낮은 쪽문 옆에 뚫려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킬 일 없는 눈(目) 모양입니다. 옆집은 거대한 느티나무의 무성한 가지로 지붕이 덮여 있습니다. 골목길은 그 옆집을 지나서 왼편으로 옆집 기와 담장이 삐죽 튀어나오고 다시 오른편으로 약간 예각을 그리며 꺾어져 있습니다. 그 꺾어지는 방식이 몹시 날카로워 보여 흡사 번개 도안과 비슷하여, 우리는 장난삼아 번개골목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어느날 길을 잃고 번개골목에서 헤매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느티나무가 있는 옆집의 다섯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데려다 키우게 됩니다. - 나, 이 고양이 기를 거야. 라는 또릿또릿한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담장 너머에서 들렸을 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가 기회를 놓친 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옆집 소유가 된 뒤로 새끼고양이는 빨간 목걸이를 차고 방울 소리를 내며 곧잘 우리 별채의 뜰에 나타났습니다. 고양이 이름은 치비라고 했습니다. -치비! 라고 부르는 사내아이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소년의 발소리에 딸랑딸랑 작은 방울 소리가 휘감겨 들렸습니다. 치비는 하얀 바탕에 연갈색이 서린 먹빛의 동글동글한 반점 몇 개가 들어간 자그마한 암컷 고양이였습니다. 우리의 삶 속으로 슬며시 들어온 고양이 치비. 평범한 일상이 고양이 치비를 통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아내는 치비가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음 잘 통하는 친구 같다고 말합니다. 물론 치비가 아내의 손바닥을 깊숙이 물어뜯는 바람에 절교했던 때도 있었지만 아내는 치비를 '내 고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대상이든 마음에 들어오면 그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이 됩니다. 그런데 종종 마음은 그 대상이 내 것인듯 착각합니다. 왔다가 가는 손님, 고양이 치비를 통해서 그 마음을 골목길 풍경처럼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잔잔한 일렁임, 낭랑한 방울 소리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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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게 되었다. 고양이를 사실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제목이 좀 신선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정말 고양이가 나타나는 것인지 손님이면 주인이 따로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소제목은 다 한자로 1부터 28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부부가 고양이를 손님으로 맞이하는 내용인데, 옆집에 주인이 있는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몰래 몰래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그 집에서도 처음에는 고양이가 찾아오는 것에 대해 좀 신기해했다가도 어느 순간 적응하고는 오히려 자리를 마련해준다. 주인공부부 중 아내가 치비라는 이름을 고양이에게 지어주고는 올 때마다 기록을 한다. 그렇게 고양이는 자주 들락하면서 제집마냥 자고 가기도 하고 머무르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런 장면들에서 나는 과연 주인공부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고양이가 몰래 찾아오는 것도 사실 좀 무섭기도 하다.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는 본 적이 있지만 좀 난감해었다. 너무 따라와서 집에 데려가기도 그렇고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사실 만지기도 좀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부부는 첨 대하는 것임에도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익숙해진건지 그 고양이 한 마리만 드나들 수 있는 입구를 만들고 치비를 위한 음식과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것에 참 인정이 많은 부부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치비라는 고양이의 행방이 나중에 묘연해지고 결과가 신기하게 끝이 난 소설이다. 아마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또 한 번 펼치게 해주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소설 속 묘사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빠져들기도 하고, 뭔가 소설같지 않은 오히려 에세이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생생한 느낌이 들면서도 실제로 있음직한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통해 또 한 번 힐링시간을 가져서 좋았고, 독자로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마치 내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책이라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내용을 곱씹어서 살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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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양이 손님>이 에세이라고 철석같이 믿다가 완독할 때쯤에야 비로소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시인 히라이데 다카시가 발표한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글발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2001년 출간 당시 시와 산문과 소설의 경계를 지우며 사소설의 한계를 넘어선 걸작으로...' 라는 평가답게 유려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은 오랜만이라서 얼떨떨한 느낌도 받았더랬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여 스펀지 마냥 쏙쏙 촉촉하던 때에 읽던 순수문학 작품들이 생각도 났다. 세계문학이나 한국문학에서의 그때 그 감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인의 글은 역시나 예사롭지 않다. 이 책 <고양이 손님>의 시대적인 배경은... (여전히 소설이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지만...) 일본 연호인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옮겨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대략 1989년 무렵이겠다. 「 쇼와(昭和) : 1926년 12월 25일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의 쇼와 천황의 통치기. 헤이세이(平成) : 1989년 1월 8일~현재까지로... 아키히토 일왕이 2019년 4월 30일 퇴위함에 따라 2019년 5월 1일부로 이 연호가 끝난다고 한다. 참고로 메이지(明治)는 1867년~1912년, 다이쇼(大正)는 1912년~1926년까지다. 」 그러니까 이 책이 쓰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쯤이다. (딱 우리 아이들 나이만큼의 예전이군...) <고양이 손님>이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하듯... 어느 날 부부에게 "치비"라는 고양이가 나타난다. 어리고 약한 길냥이로 이웃집 아이가 발견을 하며 기르게 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녀석이다. 두 사람이 별채에 세 들어 사는 집은 쇼와 초기의 집으로 넓은 정원이 딸려있다. 집주인 할머니로부터 아이와 애완동물은 안 된다는 조건을 걸고 이사를 온 두 사람이었지만... 예자처럼 공손하게 발을 모으며 나타난 고양이 치비에게 단숨에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만다. <고양이 손님>에서는 큰 사건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잔잔하게 주변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아내와 남편이 고양이를 받아들이고... 집주인 할머니가 계약조건을 철회하는 정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팔려 내놓은 집이라 치비가 보이는 곳으로 이사하려 하는 정도...? 극적인 사건 없이 그저 <고양이 손님>과의 첫 만남에서 이별까지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겠다. 그렇지만 마당에서의 풍경과 주변을 보고 느끼는 묘사들이 너무나도 서정적인 글이었다. 잔잔하고 따스한 어느 날의 고즈넉한 풍경을 느긋하게 햇살 맞으며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침 바람도 알맞게 살랑살랑 불고... 푸른 하늘의 하얀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음... 띠지에 적힌 소개 글이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아무튼 감성만큼은 모처럼 최고였달까? 내 고양이라 생각이 들 만큼 정을 주었지만 내 고양이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아는 두 사람... 오로지 치비만을 위하여 전용문도 만들고 잠자리도 준비하고 먹을 것도 주고 놀아도 주었지만... 내 것이 아닌 남의 고양이는 영원히 친구의 존재일 뿐... 쓸쓸한 두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새로 이사한 곳에서 키우게 되는 길고양이에게 내 고양이라고 했을 것이란 짐작이다. 두 사람이 세 들어 사는 별채로 판자 담을 넘어 찾아드는 치비는 남의 고양이었을 뿐이므로... 아련아련... 간질간질... 순수문학만을 파던 시절이 생각나는 히라이데 다카시의 <고양이 손님>. 아무런 계산 없이 청춘의 그 시절로 돌아가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듯 읽고 싶은 표현들이었다. ‘시 안에서 새로운 산문을 만들어내는 시인’이라는 평을 받아 마땅하다 싶은 문장들이겠다. 아흑... 감성도 너무 부럽고 문장력은 미치게 부러웠던 히라이데 다카시의 <고양이 손님>이었다. 몸이 아픈 탓인지... 유독 안 풀리는 글발이라서 다시 쓰고 싶을 정도로 민망하다는... 에혀... 신이 내리는 재능임을 새삼 느끼게 만드는 작가의 문장력과 표현력... 부럽고도 참으로 부럽도다. “어느 날씨 화창한 오후, 그 열린 문의 작은 틈새로 치비는 어느새 기어들어와 하얗게 빛나는 네 개의 발끝으로 반쯤 햇볕에 빛바랜 발판을 살포시 딛고 예의 바른 호기심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가난한 집 안을 조용히 둘러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오고 새로운 집에 이사 와서 고양이를 키우게 되며 아내는 “치비가 잠이 들었던 똑같은 소파에서 꼭 닮은 목걸이를 차고 똑같은 곡옥 자세로 잠든 고양이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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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두 번이나 앞 표지를 훑어봤다. '이거 소설 맞아?' 아무리 봐도 에세이같은 소설, 고양이 손님.
'고양이 손님'은 학창시절 읽었던 한국 단편소설같다. 잔잔한 구성에 묘사가 많아서 '메밀꽃 필 무렵'을 읽는 느낌. 번개골목이라 불리는 골목과 집 구조, 정원을 정성들여 세심하게 묘사하는데 이것때문에 학창시절 국어시간 소환했으나 골목과 정원을 통해 드나드는 고양이 손님을 기다리고, 맞이했던 기억의 단편들이라 허구라는 것이 들어선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총 스물아홉 개로 이뤄진 이야기는 장편이지만 챕터별로 작은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읽히기도 금방 읽힌다. 옆집 고양이가 손님처럼 드나든다. 고양이의 거처를 마련해주고 간식을 준비하고, 우리 집에 와서 잠도 자지만 '내 고양이'가 아니다. 싸움박질로 얻은 상처를 와서 보여주긴 하지만 치료는 꼭 자기 집에 가서 받는 고양이. 고양이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애정을 쏟았지만 그는 끝까지 "손님"으로 남았다. 안채의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애정을 쏟고 마음을 나누고 정이 들어도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삶. 사람도 짐승도, 보기 좋았던 안채의 정원과 골목, 느티나무까지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 안채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항상 티내지 않는 배려 속에서 자연스럽게 행동" (72쪽) 하면서, 우린 손님처럼 다녀가고 손님 맞이하듯 배려하며 사는 것이리라. 골목에 살았던 추억이 있는 나는. 골목이 주는 따뜻함과 안정감을 기억한다. 옥상을 통해 연결되었던 옆집과,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던 여러 가구의 삶도 안다. 고양이를 통해 들여다보게 된 골목 안 풍경. 그곳에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내가 싫어하는 묘사를 잔뜩 풀어놨음에도 불구하고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던, 고양이 손님. 단순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니 고양이 이야기에 지친 분도 겁내지 마시라. ㅎㅎㅎ
고양이는 엄청 싫어하지만 이상하게 내 정서에 잘 맞았던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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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한 제목의 '고양이 손님'이라는 책이 도착하고 하드보드 표지의 분홍 고양이와 배경 색상이 너무 이뻐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이 '고양이 손님'의 저자 히라이데 다카시는 1950년 생으로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공부하였고, 대학 재학 중에 시와 시론을 발표하여 데뷔를 하였는데요. 현재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며 다마 미술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래요. 히라이데 다카시는 여러 작품으로 그동안 많은 상을 수상하였지만, 특히 '고양이 손님'은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뉴욕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어린 왕자>, <동물 농장>, <갈매기의 꿈>, 그리고 안도현 작가의 <연어>와 함께 '최고의 현대 우화 5편 Top Five Modern Fables'에 선정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작품성으로 뛰어난 평을 받은 작품일수록 저한테는 어렵지 않을까 살짝 염려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는데요. 사용되는 단어나 문장이 그리 어렵진 않았어요. 오히려 복잡하고 화려한 기교 따윈 없는,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듯한 수수한 문장을 만나실 수 있어요.
저는 처음 읽을 때는 책의 앞부분에서 30대 중반을 넘어가는 주인공 부부가 사는 동네의 장면과 골목길 묘사가 이어져서 그리 재미를 느끼진 못했어요. 제 성향이 소설을 읽을 때 사건에 집중하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웬걸요. 곧 고양이 치비가 등장하면서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고, 두 번째 읽으면서는 앞부분이 새롭게 보이고 좋아지더라고요. "조각구름은 망설이듯이 골목길에서 머뭇머뭇 흔들리고, 그러다가 마침내 희미한 울음소리를 냈다." 1988년 초겨울, 옆집의 다섯 살 남짓의 사내아이가 번개골목에서 길을 잃은 새끼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해요. 주인공 부부는 정원이 아름다운 집의 별채에 세 들어 사는데요. 옆집의 고양이 치비가 종종 나들이를 오기 시작해요. 고양이 치비는 마치 사람을 길들이듯이 아내를 뜰로 불러내 공놀이를 하고 돌아가곤 하는데요. 언제나 방울을 울리며 다니기에 딸랑이라 불리기도 해요. 겨울에 접어들면서 치비는 이제 부부가 열어둔 창문 틈새로 집안까지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하루하루의 움직임이 거듭되면서 일정한 흐름이 생겨난다."
사실 길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좀 더 따뜻한 거처를 마련해 주는 캣맘이 의외로 주변에 많아서 고양이의 이런 습성을 자주 보곤 하는데요. 보통 고양이들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마치 사람을 길들이듯 드나들며 얻어먹곤 하지만 쉽게 경계를 늦추지는 않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이 소설의 주인공 치비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진 않아요. 그래서 부부와 고양이 치비와의 묘한 만남과 그 정들어가는 모습을 아슬아슬 줄타기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동물이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게 너무 흐뭇하기 때문이야" 아내는 어릴 때부터 동물과 친숙하게 지냈고, 잘 알고 잘 다뤄요. 그럼에도 그녀는 치비를 강제하지 않아요. 치비가 하고픈 대로 두어서, 언제나 치비의 뜻대로 오고 가더니 어느 날부터 치비는 부부네 집에서 잠도 자기 시작해요. 이쯤 되니 치비는 옆집 고양이인지 부부의 고양이인지 정체성이 의문스러워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게 되지요. 치비도 생명체라는 걸 고려하면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걸까요? 결국 이렇게 치비는 부부의 마음에 완전히 자리 잡게 되지만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소설 '고양이 손님'은 여느 고양이보다 작은 체구에 쫑긋한 귀가 귀여운 치비의 이야기가 즐거웠고, 고양이 치비만큼 히라이데 다카시의 서정적 문체가 마음에 들어왔고, 치비의 묘생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는데요. 무엇보다 애완동물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고, 동물이 하고픈 대로 내버려 두며 함께 공존하는 듯한 부부의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스포가 될 것 같아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지만 치비에게 닥치게 되는 일과 할아버지의 일이 겹쳐 소설의 구성이 상당히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소설을 일독하고 그 묘한 느낌에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요. 그러면서 미처 처음에 발견하지 못했던 여러 요소를 발견하고 있어요. 전체를 알고 나니 이제야 작은 일들이 어떤 의미인지 더 깊이 헤아리게 되었달까요. 이런 저처럼 아마도 '고양이 손님' 이 책은 한 번 읽고 나면 누구나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책을 읽기 전, <어린 왕자>, <동물농장>, <갈매기의 꿈>, <연어>와 비교하는 문구를 보았을 때, 정말 이 소설이 그 작품들과 비교할 만큼 뛰어난 작품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요. 제 생각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들은 읽고 또 읽으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들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히라이데 다카시의 '고양이 손님' 또한 읽고 또 읽고 싶어져서 이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의미 있는 작품이라 느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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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현대 우화 5편에 선정된 고양이 손님
이 사전적 의미로만 따지자면 "고양이 손님"은 우화가 아니다.
"얘, 이제 우리 집 고양이 아니야?" 치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던 아내는 어느샌가 치비를 기다리게 되었다.
시인 히라이데 다카시의 첫 소설 "고양이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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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데 다카시(平出 隆)’의 ‘고양이 손님(猫の客)’은 어느날 찾아온 고양이와의 만남을 차분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시작은 우연히 옆집이 고양이를 주운 것이었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고양이를 직접 들이지 않은 것은 순전히 타이밍이 어긋나서일 뿐만 아니라 집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고양이가 담을 지나 이쪽으로 건너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하면서 점점 그 때의 순간이 아쉬움으로 남게 된다. 이 소설은 그렇게 함께했던 고양이와의 순간들을, 때론 고양이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개인 주변 이야기들을 섞어가며, 29개에 걸쳐 나누어 엮어냈다. 거기에서 실제로 고양이가 등장하는 화는 그리 많지 않고, 나오더라도 차지하는 분량은 제목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로 적으나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삶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참 요물이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개인 경험도 담겨있는 듯, 픽션과 현실이 묘하게 섞여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 책은 언뜻 에세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저 작가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담은 연작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시기에 고양이와 마음을 나눴기에 그저 그런 이유로 ‘고양이 손님’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달까. 그래서 딱 짜여진 소설이라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웃과의 관계라던가, 고양이 치비와의 마지막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그렇다. 이는 작가가 애초에 소설 자체를 애매하게 쓴 것처럼, 끝까지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겨진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에 상당히 담았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특징들도 다분히 나온다. 언어적인 묘사들 같은게 그렇다. 이 소설을 ‘일종의 하이쿠(일본의 짧은 정형시)’라고 소개하는 것도 왠지 납득이 간다. 다만 좀 어려운 것도 닮은 것은 조금 아쉽다. 작가 자신도 후기에서 이 책이 자신의 다른 책과 이어지는 글이라고 하는 만큼 그 중 일부만 보기보다는 이어서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