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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손바닥 소설이다. 하나하나 점멸하는 반딧불이 같다. 깜빡거리며 신호를 보낸다. 수신자의 감도가 떨어진 탓에 때론 접수 불능의 빛도 있었다. 모두 별처럼 반짝거리는 얘기들이다. 때론 이글거리는 광염을 뿜어내는 태양처럼 거칠기도 하다. 그래서 선율이 있고 장단의 고저가 느껴진다.
아기자기 수놓은 작품 가운데는 제임스 설터의 "플라자 호텔"과 황순원의 "소나기"에 대한 오마주도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내 취향엔 "맨해튼의 반딧불이" 편에 나오는 '빵과 코트' 와 '반딧불이'의 불빛이 가장 선명했다. 별의 등급이 다들 높았지만. '빵과 코트'는 짧은 이야기 속에 두 편의 액자를 담고 있는 미니멀 속 미니멀한 작품이다. 비유와 상징을 짙게 깔아놓아 뭐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중에는 맥거핀도 있었다.
뭐야, 이게 끝이야?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그녀는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이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지. 그 애들이 누구야? 내가 물었다. 나도 몰라. 우습지만, 나도 몰라. 그냥 들은 이야기야. 그 후로는 나도 그 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야?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창밖에 뭐가 보여? 아니, 아무것도. 나는 그녀의 결혼 생활이나 전남편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는 순간들이 올 것이다. 분명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더라도,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빵과 코트' 중에서- (145~146쪽)
열린 결말이다. 연유와 과정에 대한 설명도 이해도 없으니 어떻게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와, 작가와 결이 맞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 뭘 물어봐야 할지 모호하다. 그러니 묻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잔디밭 사이로 무언가 깜빡깜빡하고 그녀의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 반딧불이. 그렇구나, 맨해튼의 반딧불이. 그녀는 자신의 삶이, 따지고 보면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져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이라도 결국엔 자신이 원한 일이었다고. 누군가 그걸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해도 그녀는 끝까지 그 생각을 고수할 거라고, 자신의 담낭을 걸고 맹세했다. 그녀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심지어 그것이 신일지라도- 자신을 저주할 수도, 축복할 수도, 긍휼히 여기거나 용서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반딧불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초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안경을 고쳐 썼다. -'반딧불이' 중에서- (155쪽)
'빵과 코트'의 이혼녀의 심경도 그럴 것이다. 또 우리들 의식의 흐름도 이런 결을 따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다시 나설 것이다.
그런 아프고, 아니 속에서 아려오고, 심란한 가운데서도 어떻든 삶의 활기를 찾아보려는 나약한 우리들의 서사가 모자이크처럼 짜여져 있다. 그러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안심하며, 타인의 처지와 심경에 공감하며 찬바람을 견디겠다고 결심하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서 숙연하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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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소설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시간있을 때 읽기 좋아요. 내용도 짧고 문장도 깔끔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손보미 작가의 현대적인 시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지고 싶은 책입니다. 불행을 다룬 글들이 특히 좋았는데요. 그런 글들에 관심있는 분들이 재밌게 보실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엽편을 다룬 소설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잠이 안 올 때, 출퇴근할 때 등...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읽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