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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죽음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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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있을 나의 죽음, 노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좋아하고 생활하던 곳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기왕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을 마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만족할 것 같다. 죽음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에, 수많은 권력자들과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였건만, 이런 인간의 욕망과 집념을 무시하듯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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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있을 나의 죽음, 노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좋아하고 생활하던 곳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기왕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을 마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만족할 것 같다. 죽음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에, 수많은 권력자들과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였건만, 이런 인간의 욕망과 집념을 무시하듯 자연이 준 수명 이상을 산 사람이 없다. 물론 과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은 증가하고 있으나, 과학의 힘으로도 영생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수명이 조금씩 늘어 나겠지만.

 

죽음은 산 사람으로써 당혹한 단어이다. 될 수 있으면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죽음의 연속이다. 나와 가까운 이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을 떠올리게 만들기에 더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온통 죽음을 말한다. 그것도 잘 죽는 죽음에 대해서. 인간의 몸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몸은 그때를 대비해서 조절에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큰 고통으로 여기기에 더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저자가 지켜본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통스럽지가 않다. 편안하게 가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저자는 “노인의 역할은 가족들로 하여금 자연사를 지켜보도록 하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의외로 죽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에.

 

부모의 죽음이나 친지의 죽음 등과 중년 이상인 사람들에게 죽음은 소리소문 없이 서서히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의 의학의 발달로 이제 대부분 긴 기간을 생존해나가고 있다. 장수가 축복이었던 시대를 지나 장수가 본인이나 가족 그리고 사회에 짐이 되어버리는 시대에서 우리는 죽음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누구나 죽는다. 그럼 죽음을 편안히 맞이 할 방법이 없을까? 무어던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미리 준비해 나가면 그 당혹감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들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도 준비해 나가야 할 것 같다.

 

허울뿐인 장수의 실제. 건강한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고령의 노인들, 한 두 번쯤은 엠블란스에 실려가고, 그 가족들은 병원의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과연 적절한 수명은 얼마인지?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는 무엇보다 본인의 결심과 결정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은 남겨진 이들의 짊으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변명 같지만, 떠나시는 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기에 연명치료니 불필요한 수술을 행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치매 등으로 요양병원이 번성하는 시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과연 노인들의 삶이 행복할까?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각종 장치에 의존하는 삶, 식물인간의 삶, 과연 이것이 진정한 의료라고 할 수 있을지? 삶을 더욱 건강하고 잘 살아가게 도와주는 것이 의료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의사들도 배워야 한다. “환자들은 교과서다.” 그들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의료인지를 재고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의료에 의해 살려지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증가하는 암, 이에 따른 조기발견을 위한 각종 검사들, 암은 노화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다. 저자는 천수암 등 암이 비교적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도 말한다. 또 건강염려증으로 넘쳐나는 건강식품, 건강이 도리어 우리에게 고민과 스트레스를 주는지 모르겠다. “건강식품을 섭취해도 체내 흡수 단계에서 이미 분해되어버릴 뿐, 그 형태 그대로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않기 때문에 어차피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어떻게 죽을지도 중요하지만, 죽기까지 삶을 어떻게 잘 살 것인가? 가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같다.  

 

저자는 “죽음이란 자연의 섭리이며 흔히들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가혹하거나 고통스럽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병원과 의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 나름의 최선을 다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최선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고령자들의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점점 늙어나는 고령자들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지 오래라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본인이 생전장례식 등을 통해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본인이 죽음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결정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람들 모두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을 더욱 열심히 보람되게 살아가면 그 죽음이 더 값지지 않을까.

 

*일본식 용어를 바로 해석했기에,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제법 있는 것 같다. 오연성폐렴, 항남성호르몬주사 등등

 



p*******t 2012.11.18. 신고 공감 11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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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려면 의사를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건강하려면 의사를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내용보기
최근에 의사들이 병을 만들어내고 있고 심지어는 환자들의 죽음을 앞당긴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의료에 관심을 가진 기자가 관련 문헌들을 분석하여 근거로 제시하고 있어 신빙성이 높다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병원 그리고 의사들이 돈벌이에만 급급한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가끔씩 발표되곤 합니다. 의학컬럼니스트 린 맥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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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의사들이 병을 만들어내고 있고 심지어는 환자들의 죽음을 앞당긴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의료에 관심을 가진 기자가 관련 문헌들을 분석하여 근거로 제시하고 있어 신빙성이 높다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병원 그리고 의사들이 돈벌이에만 급급한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가끔씩 발표되곤 합니다. 의학컬럼니스트 린 맥타가트가 쓴 >의사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 http://blog.yes24.com/document/6302659>, 강주성님이 환자입장에서 쓴, <대한민국 병원사용설명서; http://blog.yes24.com/document/2350444> 등을 읽은 기억이 있고, 백신접종의 문제점을 파헤쳤다는 팀 오시의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 http://blog.yes24.com/document/2323634> 제니 매카시의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http://blog.yes24.com/document/3822371> 등도 같은 부류의 책들입니다. 이들 책들의 공통점은 의학논문들을 통하여 현대의학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답적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만 역시 의학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따라서 의학논문에 담긴 메시지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학의 발전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보니 의사라고 하더라도 새로 쏟아져 나오는 의학관련 정보를 꾸준하게 따라가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기는커녕 엉뚱한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자 역시 1950년대 말에 의학공부를 시작한 셈이니 아주 옛날 식이라서 최신의학을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벤트를 통하여 일본에서 노인요양원의 부속 진료소에서 일한다는 나카무리 진이치씨의 최신작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를 읽고나서 리뷰쓰기를 망설이게 됩니다. 책에 담은 저자의 생각들 가운데는 동의할 부분이 있지만, 적지 않은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정리를 해보면, 제 4장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주제로 모은 글들은 품위있는 죽음을 맞기 위하여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5장 ‘건강이란 이름의 환상이 병을 부른다’는 주제에서 ‘의사에게 노인은 소중한 밥줄’이라는 식으로 자신을 제외한 의사들을 비윤리적인 돈벌레처럼 매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밖에도 ‘생활습관병은 낫는 병이 아니라 친해져야 하는 병이다.’라는 주장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식습관을 비롯하여 운동 등을 적절하게 병행하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약물치료와 같은 적극적인 개입치료를 늦출 수 있고, 병증의 진행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도 시립병원에서 근무를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죽는 그 순간까지 온갖 의료조치 때문에 고통스럽고 불편한 순간들을 겪으며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병원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5쪽)이라고 적었는데, 뒤에 다시 정리하겠지만 말기암 환자의 경우 암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기 때문이 이러한 고통을 완화하기 위하여 적절한 의료처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가 개입된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6쪽)“이라는 저자의 확신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야마자키 후미오 박사 역시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http://blog.yes24.com/document/4621210>에서 적고 있는 것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지는 의료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의 병원 의사들은 모든 치료행위를 환자의 동의 아래 시행하고 있고 환자의 상태에 맞춰 치료를 하는 경향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노인연령의 의료비가 폭증하고 있어 보험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연명치료에 대한 의료처지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가 시민단체의 극렬한 반대에 부딛혔던 최근의 경험을 기억한다면 저자의 주장에 의문이 들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암에 걸려 죽음을 맞는 것이 최상의 죽음이라 예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아는 암치료전문가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죽음을 앞두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신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3장의 ‘암은 내버려둘수록 아프지 않다’는 주제는 거의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암검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검사를 받는 동안 우발사고가 일어나거나 검진 자체가 100%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조기암으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더라도 일정기간마다 고통이 뒤따르는 검사를 되풀이해야 할 뿐 아니라 나머지 인생동안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 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암검진을 받지 않고 살다가 우연히 말기암이 발견되면 운명으로 알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진정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것일까요? 대한 대한 암학회에서 주관하여 암에 걸렸지만 꾸준한 치료를 받고 암이 소멸된 환자들의 투병기를 공모하여 엮은 책 <나는 행복한 암환자입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4823976>을 보면 암에 걸린 환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도 인용한 구절입니다만, 100년 전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한 “건강에 관련된 책을 읽을 때는 주의하라, 오타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에 관한 정보를 잘 못 이해하여 건강을 위협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경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와는 달리 ‘건강을 오래 유지하고 우아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y*****2 2012.11.13.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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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마지막 과제
"아름다운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마지막 과제" 내용보기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을 때 안경을 벗고 보면 글씨가 더 크고 환하게 보여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지만 안과 의사는 그렇게 버틸 수 있으면 굳이 다초점 렌즈가 필요없다고 그냥 지내라고 한다. 손가락 관절이 뻣뻣하고 구부릴때 아파서 펜을 잡기 힘들 정도라고 해도 정형외과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이니까 그런가보다 하면서 살다가 정 아프면 진통제 먹으라고 시큰둥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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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을 때 안경을 벗고 보면 글씨가 더 크고 환하게 보여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지만 안과 의사는 그렇게 버틸 수 있으면 굳이 다초점 렌즈가 필요없다고 그냥 지내라고 한다. 손가락 관절이 뻣뻣하고 구부릴때 아파서 펜을 잡기 힘들 정도라고 해도 정형외과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이니까 그런가보다 하면서 살다가 정 아프면 진통제 먹으라고 시큰둥하게 말한다. 일일이 말하기도 구차할 정도로 몸에서는 여러가지 노화의 사인을 보내고 있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방법없이 감수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증상들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조금만 불편해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젊음과 건강, 아름다움을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라 노화현상을 드러내고 사는 것은 나태함이나 빈곤의 상징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육십이 다된 대학병원 의사가 식스팩이 뚜렷한 복근을 드러내고 반나체의 사진집을 찍었다는 신문보도나, 동안 미모를 유지하는 중년 여성들에 대한 찬사를 보면 중년이 되어서도 다이어트를 해야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다. 《문명이 낯선 인간》http://blog.yes24.com/document/6438189에서 보듯이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의 번식을 끝내고 후손이 번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도록 양육했다면 개체로서의 사명은 거의 끝난 만큼 인체는 오십세가 넘어가면 고장이 나도 수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장수할수록 퇴행성 질환과 암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의 활력이 예전같지 않고 여기저기 불편한 곳이 생기고 심지어는 암에 걸리는 것은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드는 것과 같고 그러다가 죽음을 맞는 것은 낙엽이 지는 것 처럼 당연한 일이다. 


  코끼리도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 죽을 곳을 찾아간다고 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자신이 어디서 죽어야 할지 어떻게 죽어야할지 준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작스러운 죽음보다는 암처럼 삶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병에 걸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건강진단을 받는 것도 불필요하고 차라리 치료의 때를 놓칠 정도로 말기에 발견되는 것이 낫다는 극단적인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에 대한 근심걱정과 치료로 인한 고통으로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비참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의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암환자의 생존기간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시간을 길게만 끄는 것은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불행이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 생각난다. 스콧 니어링은 마지막에 곡기를 끊는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나의 선배 중에도 간암에 걸려서 오랜 기간 투병했지만 가망이 없어지자 적극적인 치료와 영양공급을 거부하고 친척들과 친구들의 마지막 문병을 받고 해외에 있는 지인들과도 전화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기본적인 수액공급만 조금씩 받아서 기골이 장대했던 그가 돌아갈 무렵에는 간호사들이 옮길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던 것을 기억한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처럼 가볍고 인상적인 죽음이었다. 이렇듯 의식이 또렷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럴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사전의료의향서를 써두고 평소 가족들에게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두면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심폐소생술을 받거나 주렁주렁 줄을 달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은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책의 뒷편에 엔딩 노트의 견본으로 저자 본인의 인생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부모님 세대들이 참으로 고단한 시절을 어렵게 살았구나 싶어 마음이 아려온다. 양가의 부모님들이 모두 연로하신데 중병에라도 걸리시면 요즘같이 저살기에 급급한 세상에 직접 간병에 매달릴 수나 있을지, 갑자기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후회는 없을지 생각이 많아진다. 부모님 다음에는 또 내 차례, 아름다운 죽음이야 말로 인생의 마지막 과제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기억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낯설고 암울한 것 같지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지금 이 순간들을 더욱 소중하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죽음에 대한 긍정이 삶에 대한 더욱 강한 긍정이 되는 것 같다.




y***d 2012.11.13.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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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삶을 생각한다.(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죽음에서 삶을 생각한다.(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내용보기
의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최근에 출간되는 책을 보면 보완대체의학에 관해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조금 더 연구가 더 되어 있는 듯하다. 일본의 경우 환자 치료에 관한 모든 의료행위의 권한을 의사가 가지고 있어 대체의학도 통합의학이란 개념으로 수용되어 의사 스스로 유효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치료법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다양한 임상데이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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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최근에 출간되는 책을 보면 보완대체의학에 관해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조금 더 연구가 더 되어 있는 듯하다. 일본의 경우 환자 치료에 관한 모든 의료행위의 권한을 의사가 가지고 있어 대체의학도 통합의학이란 개념으로 수용되어 의사 스스로 유효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치료법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다양한 임상데이터가 축적되어 그들만의 자연의학적 주장을 담은 책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의사가 "병 때문이 아니라 치료 때문에 죽는다"며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일본 의료계의 문화와 환경 특성이 그렇기 때문이리라. 의사가 의사를 멀리하는 것도 그렇고, 병원에서 이런저런 치료로 고.통.스럽게 죽기보다는 편안한 자연사를 택하라는 말도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인지라 호기심이 일었다. 아직 죽음을 진지하게 바라보기엔 너무나 바쁜 나날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이지만, 노부모님의 건강이 갈수록 쇠약해지는 듯하여 더욱 이 책에 마음이 끌렸다. 

 

일단 책을 펴고 조금 읽어가자 죽음을 바라보는 저자의 정의가 인상 깊게 들어온다. "생을 마무리하는 당사자에게는 삶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며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매순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죽음이다.", "노인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역할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죽음', 혹은 '죽는 방식'을 보여주는 일이다."는 말은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느껴왔던 그동안의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죽음에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과 그에 따른 죽음에의 역할(?)이 있다는 점에 잠시 호흡을 멈춘다. 죽는 방식이란 곧 '사는 방식'과 같다. 노년기를 편안하게 보내려면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노화에 순응하며 병과 동행해야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동료의 아버지가 오랜 만성병을 치료하고 얼마 못가고 돌아가셨다. 차라리 병을 친구 삼아 그대로 갔더라면~ 하고 그는 한탄한다.

 

책의 출발은 "의료, 그 불편한 진실"이다. 의료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라는 전제가 핵심이라 하겠는데, 인생의 마무리 즈음의 병원에서 받는 의료라는 게 오히려 편안한 죽음을 가로막는 '학대'요 간호라는 이름의 '고문'이라는데 충격을 받았다. 자식 된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가시라고 받게 하는 의료가 학대요 고문이라니……. 저자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과정을 조용하고 편안하게 겪을 수 있도록 '자연사' 코스에 태워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며 좋은 간호라는 의중을 내비치면서, '간호'의 진수는 가능한 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데에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이는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비참하게 장식하지 말라며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는 정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생명연장인가?"라는 저자의 물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얼른 판단이 안서고 혼란스럽다.

 

자연사란 죽는 순간에 그 어떤 의료장치도 사용하지 않은 채 몽롱하게, 기분 좋고 편안한 상태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자연은 그리 가혹한 게 아니며 우리 조상들은 모두 이렇게 ‘무사히’ 죽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죽을 때가 되면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어떡하든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병원의 사명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죽음을 멈추거나 돌이키는 것이 가능할 리도 없는데 기를 쓰고 ‘죽어가는 과정’을 멈추기 위해 온갖 고통스러운 의료장치를 사용한다. 그 현장은 처절하기 그지없다.(55~56쪽)

 

수많은 노인의 임종을 지켜본 저자에 의하면 노쇠사를 앞두고 탈수가 시작되면 의식수준이 떨어져 몽롱한 상태가 되어 잠을 자듯 고통 없이 자연스럽게 돌아가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죽음이란 자연의 섭리로 흔히들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가혹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으며, 불안이나 공포, 고통이나 괴로움은 '죽음'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면 노화하여 죽는다는 게 그렇게 겁나는 건 아닌 듯하다.

책은 암과 죽음, 죽음에 대한 생각 등 몇 가지 테마를 더 다루고 있다. 3명 중 한 명은 암으로 죽는다고 하지만, 의사의 치료를 받지 않고 죽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한다. 암은 치료를 하지 않으면 고통스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가족의 권유로 고문과 같은 치료 끝에 죽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부분과 "죽는다면 암이 제일 좋다"라는 저자의 지론은 사실 충격적이다. 실제로 마지막까지 영양주사나 산소호흡기를 전혀하지 않는 '자연사'를 많이 지켜본 의사의 말이니 믿긴 믿어야 할텐데....


이런저런 생각 속에 책장을 넘기다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곧 사는 방식을 점검하는 것'이란 테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죽음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무상(無常)의 흐름이라면, 언제 갈련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를 그저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좋은 마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더 이상 후회할 일도 없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의 엔딩……. 새삼 마음가짐을 다시 가다듬게 된다.

아이를 불러 내가 늙어 갈 때가 되면 쓸데없이 연명장치로 고통을 주지 말고 보내달라고 당부하면서 책을 건네주었다. 마음이 조금 허~해진다...

 

大往生したけりゃ醫療とか. かわるな. (中村仁一). 일본 책은 <오래살고 싶으면 의료를 멀리 하라>이고, 한국책은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이다. 삶과 죽음을 강조하는 어감이 참 많이 틀리는구나....
더보기 ( 그냥 한 마디 붙임.)


 

e***i 2012.11.22. 신고 공감 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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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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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고령화라고 불리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노년기의 노화를 거론한다는것은 노령이 되었다는것을 의미한다. 나로선 앞으로 40년뒤의 일이니 당장은 피부에 와닿지 않고, 준비한다는게 효율적일까? 저자가 말하는 노년이 되었다는것에 안도할거 같은 생각도 든다.   병원을 얼마나 믿느냐는 내용을 읽고보니 난 적어도 맹신하는 쪽은 아닌듯하다. 체력이 약해진 뒤로는 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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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고령화라고 불리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노년기의 노화를 거론한다는것은 노령이 되었다는것을 의미한다. 나로선 앞으로 40년뒤의 일이니 당장은 피부에 와닿지 않고, 준비한다는게 효율적일까?

저자가 말하는 노년이 되었다는것에 안도할거 같은 생각도 든다.

 

병원을 얼마나 믿느냐는 내용을 읽고보니 난 적어도 맹신하는 쪽은 아닌듯하다.

체력이 약해진 뒤로는 컨디션이 안좋은날은 간단하게 아픈곳을 적어두고 며칠을 지켜본뒤

병원을 찾았고 궁금한건 붙들어 물어보았고, 병원을 나서면서 혼잣말처럼 하는말

"음 아퍼서 오지말자"

-p163 앓는것은 가능한 한 혼자 있을때 하자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다른사람들보다 약한 체력에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인지 이 부분을 읽으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것은 오로지 나만의 몫이니 스스로 받아들이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우리의 몸은 이상이 생기면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조금만 아프면 찾게되는 치료와 건강을 위한 넘쳐나고있는 약들로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면역력은 떨어지게 된다. 건강을 위한 예비가 오히려 몸을 망가뜨릴수 있다고하니 과하지 않게 자연스레 놓는것도 배움의 시간으로 가져봐야 할거 같다.

 

-p60  간호의 이해:고문인가 간호인가?

간병하는 가족들은 좀더 기운내길 바라고 한숟가락이라도 더뜨길 원해서 행해왔던 일들이 고문이 될수도 있고, 괴롭힘이되기도 한다라고 나와있다. "간호"의 진수는 가능한 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환자를 '지겨보는'데에 있을것이다.

-p120 암은 내버려 둘수록 아프지 안다.

암에 대한 항암 치료와 공포는 우리를 무섭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노년의 암은 놔두면 둘수록 아프지않고 행복한 죽음으로 갈수 있다고 한다. 암에 대한 부풀려진 확대해석도 있겠지만 수많은 병중 암의 치료를 생각하고 증상을 생각해보면 나쁜것만은 아닐것도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놓고 지켜봐줄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받아들여지게 될런지 그몫은 함께 나누는게 맞다고 본다.

-구급차를 탄다는것은 나를 통째로 내맡긴다는 의미

위험이 닥치면 빠르게 병원을 가야한고 그를 위해선 구급차가 제격이었는데 이것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알고보니 책임감과 함께 그상황에서의 옳은 판단이 어떤것일지 한번더 생각하게한다.

 

편안한 죽음에 대한 막연함이 글을 읽으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거같다.

책속 이야기들 전부를 공감하기엔 이해를 구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의사를 적당히 멀리하라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삶과 죽음에 있어서도 편안하게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는과정을

우리에게 묻는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죽음을 마주했다면 부산스럽지 않고, 나를 알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중 5명정도가 지켜주는

조용한 가운데서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졌다. 슬퍼하지않고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내가 좋아했던 노래를 불러주는것도 좋을거 같다^^*

 

 

l*********l 2012.11.22.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전적으로 옳으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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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내 삶이 영원히 계속되길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죽을때 고통이 적었음 하는 것과 질병에 갇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삶을 이어가진 말았음 하는 것이 다다. 하지만 이런 말을 누군가와 나눠 본 적은 없다. 다들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럽고 남에게 페만 끼치고 인간으로써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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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내 삶이 영원히 계속되길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죽을때 고통이 적었음 하는 것과 질병에 갇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삶을 이어가진 말았음 하는 것이 다다. 하지만 이런 말을 누군가와 나눠 본 적은 없다. 다들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럽고 남에게 페만 끼치고 인간으로써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해도 생명만큼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생명에 대한 외경으로 가득한 말들 같지만, 사실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그저 죽음을 지독히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죽음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아둥바둥 살아라도 있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에 대한 어떤 징후도 끔찍하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걸 깨닫기 보단, 이럴수가? 라면서 비통해 하기 일쑤다. 기계도 오래 쓰면 녹이 나고 고장이 나는데, 유기체인 인간이 오래동안 장기를 돌리다보면 탈이 나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 당연한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저자인 나카무라 진이치는 자신의 견해를 들려 주신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 면서 이런 저런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바로 죽음을 준비하라는 자연의 메시지라고 말이다. 경고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그저 메시지다. 오래 살았으니, 이제 죽을 준비를 하라고, 이런 저런 장기들이 점차 하나둘씩 기능이 꺼져가고, 그래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이다. 이 저자는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이 의학의 발달로 공포스런 과정으로 탈바꿈 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노인에게 항암제면 방사선 치료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말기암이야말로 죽기에 가장 편한한, 고통이 없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걸 치료하겠다고 난리를 펴대니까, 오히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잔혹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주변 사람들의 고통까지 더해진다면,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 한 댓가가 너무 크지 않는가 한다. 저자는 거기에서 과연 누가 이득을 보겠다고 물어보신다. 이득을 보는 사람은 한 집단밖엔 없다. 편안하게 죽어야 할 사람을 죽지 못하게 묶어 둠으로써, 병원비만 왕창 얻어내는 사람들 말이다. 바로 다름아닌 의사집단...본인도 의사인 저자는 인간적인 의사라면 뻔히 보이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거부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권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지. 해서 불효를 하기 싫은 내진 마지막 가시는 길에 도리를 다하고 싶은 자식들은 쓸데없는 치료에 동의를 하게 된다. 그 결과가 결국 허무하게 끝이 난다는 것을 외면한채 말이다. 


주변에 72세의 나이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를 알고 있다.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다는 말에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실에서 나오는 길로 혼수상태에 빠져서는 8개월간 중환자실에서 있다 돌아가셨다. 물론 죽기전까지 한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들 허무해했다.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작별 인사를 아무하고도 나누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2개월을 살았다 해도 그동안 천천히 자신의 신병 정리를 하고 떠나시지 않았겠는가. 글쎄,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려나? 의사들 생각엔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했지만서도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맡기지 말 것. 더군다나 내가 그의 자동차세며, 자녀 교육비며, 생활비를 대주는 입장이 된다고 하면 말이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한 얼마든지 환자들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아니, 일단 내가 아픈 것도 돈을 내는 것도 고통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왜 신경을 쓰겠는가? 그지? 해서 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을 바로 이것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고...그것은 비단 편안한 죽음뿐만이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꾸려 나가는 지혜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명심할 것.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그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a*******0 2013.01.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언젠가 죽는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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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문턱에 섰을 때는 그 문턱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어떻게든 넘어가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진다. 어쩌면 의사를 통한 나를 치료하는 것보다는 그동안의 나에대한 반성과 깨달음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이 더욱 멋진 치료법이 아닐까 한다. 세상은 변하고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세상을 등지게 되더라도 늘 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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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문턱에 섰을 때는 그 문턱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어떻게든 넘어가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진다.

 

어쩌면 의사를 통한 나를 치료하는 것보다는

 

그동안의 나에대한 반성과 깨달음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이 더욱 멋진 치료법이 아닐까 한다.

 

세상은 변하고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세상을 등지게 되더라도

 

늘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보려 한다.

리뷰 총점 종이책
★삶과 죽음! 의료계의 성업성 신랄히 비판한책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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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1. 삶이란 무슨 수를 쓰든 명줄을 잇는 것이 아니라 죽음직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품격으로 남게된다. 2. 죽기에는 암이 최고다. 그이유는 첫째,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주변에 보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의무라 여기기때문이다. 둘째, 비교적 마지막까지 의식이 맑은 상태로 의사표시를 하기에는 암이 더할나위없이 좋기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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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1. 삶이란 무슨 수를 쓰든 명줄을 잇는 것이 아니라 죽음직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품격으로 남게된다.
2. 죽기에는 암이 최고다. 그이유는 첫째,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주변에
보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의무라 여기기때문이다.
둘째, 비교적 마지막까지 의식이 맑은 상태로 의사표시를 하기에는
암이 더할나위없이 좋기때문이다.
3.선생님, 제병을 고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의사 : 그병은 제가 고친게 아닙니다. 당신 몸이 스스로 고친겁니다.
4. 당신도 관에들어가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보지 않겠습니까?

★후기내용

 

영정사진을 찍는다.

유언을 적는다.

작별편지, 녹음, 녹화영상을 준비한다.

시한부 6개월을 가정하고 하고싶은 일의 순위를 정한다.

수의를 맞춘다.

관을 구입하고 직접 들어가본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완성한다.

시신 및 장기기증절차를 밟는다.

납골/매장/산골 등 장례방식에 맞게 준비해둔다,

종교에 맞는 절차를 준비해둔다.

인생의 전환점을 기념하여 생전장례식을 연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물건을 정리한다...

 

위 행동수칙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위한 13가지

구체적인 행동수칙들이다.

일명 <엔딩노트>이다.

 

아! 이책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에 나와있는

위 13가지 행동수칙을 읽어나가노라니 착잡한 느낌만 들었다.

영정사진을 찍는건 어르신들에게 유행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영정사진을 미리 찍고 수의를 미리 준비하게된다면 오히려 더

오래사신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글고 내가 직접 해보고싶은 체험은 바로 <관에 직접 들어가본다>는

것이다.

관안에 들어가 누웠을때는 진정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과

관에 들어가보는 체험을 했다고 나오는데 91세의 어느 할머님

께서는 수의를 직접 입으시고 들어가보셨다고한다.

아! 그때 할머님의 느낌은 어떠셨을까?

 

결국 그러한 체험들은 지금 현재의 삶을 잘살아가기위한 하나의

체험이벤트이기에 최소 한두번은 체험할만한 이벤트라 생각된다.

 

글고 이책을 읽은 느낌은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70대중반의 노의사가 양심을 걸고 <의료계의 상업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우선 그용기에 감탄을 하였다.

저자이신 나카무라 진이치님께서 <노인요양원>에서 15년가까이

근무해오면서 수백건의 자연사과정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책을 저술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고통없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다는게

소망은 하지만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어르신들말씀이 주무실때 조용히 가시는게 좋다고 하신 말씀이

수긍이 가기도 하였다.

이책은 <의사에게 노인은 소중한 밧줄>이라는 등 <히포크라테스선서>는

온데간데없고 환자들을 오직 돈벌이수단으로만 간주하는 세태에

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책은 고통없는 죽음, 편안하고 숭고한 죽음을 맞이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항암제의 부작용에 대해 신랄히 비판한 내용인데...

 

항암제도 맹독이므로 암을 없애려하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암이 사라지기전에 목숨이 먼저 사라지기때문에

실용적이지않을뿐이다.

 

즉, 항암제는 암세포뿐만아니라 정상세포나 조직까지도

파괴시킨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k****3 2012.1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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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죽음을맞으려면의사를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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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죽고(웰다잉well-dying),잘가는것(well-going)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유명한 가수가 승승장구에 출연하여 사회자가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말에 이외로 "잘죽는것"아라고 담담하게 대답해서 놀랐던 적이 있었다. 아직 젊었는데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충격 이였기 때문이다.며칠전 신문에서 일본 스나다 마미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가 69세에 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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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죽고(웰다잉well-dying),잘가는것(well-going)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유명한 가수가 승승장구에 출연하여 사회자가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말에 이외로 "잘죽는것"아라고 담담하게 대답해서 놀랐던 적이 있었다. 아직 젊었는데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충격 이였기 때문이다.며칠전 신문에서 일본 스나다 마미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가 69세에 암판정을 받고 난후  6개월 동안 별세 과정을다큐멘터리로  "엔딩노트" 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일본영화관에서  개봉하자 마자  20만이나 관람했다고한다.영화속에서 아버지는 엔딩노트를 기록하므로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전에 해야 할일과 자신이 떠난후에 가족이 해야 할일들을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는데 영화로 인해 일본사회에 엔딩노트 쓰기 열풍을 몰고 왔다는  기사를 읽고 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병을 치료하는 힘은 (본인의지유력) 이라고 한다. 질병의 80%는 의사에게 보일 필요가없다고 말한다.만약에 의사들이 이 책을 본다면 아마도 반기를 들고 몹시 저항을 할것이다. 책속 곳곳에서는 의료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도 알려주기때문이다. 그렇지만 몰랐던 병원정보를 알려주어서 책을 읽고난후에는 좀더 현명하게 대처하게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같다.

 

우리는 죽음에대해서는 실제로 아는것이 없다 그저 막연히 늙고 병들면 죽는다는것 을 알고있을뿐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나카무라 진이치 저자는 도와엔노인 요양원에서 노인들의 자연사로 가는길을 많이 지켜보면서 겪였던 자연사에 대한 자세한 과정들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자연사로 가는 과정은  직접경험해본 가족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할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나는 시부모님 두분모두 자연사 를 맞이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자연사로 가는길도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을 잘안다. .노환에서  치매과정을 거쳐   자연사로 가기까지 긴여정은 10년동안 오로지 병수발로 시간을 보내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형태를 볼때 누가 자연사로 가기까지 지켜줄지? 아무도 모를일이기때문이다 .
  
누구나 아프지 않고 well-going 을 원한다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것같다 그렇지만 책속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또 어떻게 맞이하고 또 어떻게 사후처리를  할것인지에 대한 것들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누구나 "엔딩노트" 를 사전에 써놓을 것을 권면하고 직접 저자 가 쓴 것을 모델로 보여주고 있어서 죽음을 이해하고받아들이고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생로병사는 아무도 피해 갈수 없기에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한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지?
"지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살아있는동안 진정한 가치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후회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 죽음을 잘 맞이할수 있는 준비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지금 부터 엔딩노트를 작성해야 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죽음 마지막 순간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느냐 따라 한번뿐이었던 자신의 인생을아름답게 마무리 할수있다"p114
  
k****1 2012.12.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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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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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이 늘 곁에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샘거리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물을 길어다 먹던 공동 우물이 있고 주위엔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자리잡고 있어 그늘을 드리워 주고 있었다. 샘의 초입은 먹을 물을 길어가는 곳이었고, 점차 아래로 내려 가면서 빨래터도 있고, 주위에는 철따라 음식 재료를 삭히는 옹기들이 놓여 있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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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이 늘 곁에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샘거리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물을 길어다 먹던 공동 우물이 있고 주위엔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자리잡고 있어 그늘을 드리워 주고 있었다. 샘의 초입은 먹을 물을 길어가는 곳이었고, 점차 아래로 내려 가면서 빨래터도 있고, 주위에는 철따라 음식 재료를 삭히는 옹기들이 놓여 있어 마을 사람들을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지나가는 객도 목을 축이러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 샘거리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바로 상여집이다. 동네 상이 났을 때 필요한 상여, 그릇 등의 도구들을 보관해두는 창고 같은 집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生)보다 먼저 사(死)란 말인가! 인간은 누구나 떠나야 하는 길이기에 잘 알고 있으라고 알려라도 주는 듯 자리잡고 있었다. 

 

작은 동네였던만큼 결혼, 환갑, 장례가 마을에서 치뤄졌다. 병원도 없었고, 장례식장도 없었고 하다못해 약국도 없었다. 사람들은 나서 혼례를 올리고 환갑 잔치를 치루고 또 떠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모두가 함께 했다. 잔치는 떠들썩 해서 좋았고, 장례는 의례적이었고 곡이 하도 애처로워 사자를 떠나보내는 것이 정말 슬프게 느껴졌다. 이제가면 언제오나~ 하는 종소리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을 쳐놓아, 어느 집에 아이가 태어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작은 동네인만큼 금방 다 알게 된다. 산모는 애 낳으러 병원엘 가지 않는다. 자라면서 한두번 아파보지 않는 아이가 있을까마는 아파도 갈곳이 없다. 그저 앓다가 낫고마는 것이다. 요즘은 흔해빠진 약국도 없다. 그렇게 살다가 결혼해서 애 낳고, 언젠가는 늙고 또 병들고 만다. 그리고는 죽음이 오고, 그 때는 상여에 얹혀 마을을 떠난다. 늘 있던 일이다. 그 누구도 피해갈 길 없는. 급살을 맞았는지, 억하고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다. 운명이려니 할 수 밖에 없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이도 있다. 결국은 모두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삶이다. 

 

오늘날 그런 죽음은 찾을 수가 없다. 병원의 한 구석에 잘 차려진 장례식장이나, 지역마다 웅장하게 자리잡은 장례식장을 거쳐서 떠나가야만 한다. 이제 사람의 죽음은 괜찮은 비즈니스를 만들어 준다. 의례적인 절차를 거쳐 살아남은 자의 품의를 더해주고 떠나가야만 한다. 거기 죽음은 슬픔은 억제되고 애도는 가식적인다. 주고 받는 거래로서 형식과 절차를 따를 뿐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지리한 과정이 있고, 거기엔 또 수익성 높은 비즈니가 개입된다. 평생동안 죽기 전에 얼마나 자주 병원에 들리고 약국을 찾아야만 하는가. 어디 조금만 불편해도 병원을 찾고 의상에게 매달리고 난리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아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리라. 

 

문명이 발달되고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지식 정보 사회가 되었지만 인생에 있어서 우리는 너무나 무지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전문가들의 손을 빌려야만 한다. 참고 기다리고, 애써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또 의사 등의 전문가를 찾아가야만 한다. 그들도 병들고 아프기는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몇십변 사이 우리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벌써 만 11년째 단 한번도 병원에 가거나 약국에 들린 적이 없다. 의사를 만나 상담을 받아본 적도 없다. 넘쳐나는 건강 전문가들 - 어떤 하나의 식품을 먹으면 모든 병이 다 나을 것 같은 선전하며 각종 건강식품을 파는 자칭 건강 전문가들 - 을 만나 상담을 받아본 적도 없다. 이 얘기는 몸에 좋다는 인위적인 그 어떤 것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다.

 

11년 전에 앞으로 죽어도 병원에 가거나 의사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이 결심은 앞으로도 꼭 지켜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몸살감기를 심하게 앓기도 했고, 목이 아픈 적도 여러번 있었다. 심지어 구안와사라는 제법 심각한 병(?)에 걸린 적도 있다. 그 때 나는 그런 결심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온 가족들이 난리를 쳤다.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아내부터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까지 간곡하게 만류를 했다. 그들의 진심어리 걱정을 외면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버텼다. 결국 몇개월 지나지 않아 안면신경마비는 풀려버렸다. 이것은 자랑삼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우기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병원을 찾는 '병원 찾는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조금은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기 위해서 꺼내는 얘기다. 

 

그런데 지난 12월 14일 저녁부터 오른쪽 안면신경마비가 오고나서부터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오른쪽 안면신경마비가 온 것을 계기로 앞으로의 공부 분야를 건강 쪽으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다.

안면신경마비가 있은 후 3일 뒤에 우연히 신경외과를 운영하는 친구를 찾아갔더니, 친구가 “지금 당장 진찰을 받으라”고 강권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기수련을 하고 있다면서 알아보고 나서 내일 들른다고 하는 말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났었다.

왜냐하면 기수련을 2년 정도 한 후라 기수련을 하면 분명히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오른쪽 안면신경마비가 온 것은 수련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명현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물론 친구나 지인들까지 당장 치료를 받으라고 많이 걱정을 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 바가 있기 때문에 쉽게 서양의학이나 동의학에 나를 맡길 수가 없었다. 나야 믿는 바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지만 여러 주의 사람들의 애정어린 걱정과 간섭도 참으로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아무리 강한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그런 것을 지켜낼 수 있게끔 주위에서 가만히 두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다.


[출처] : 경락의 대발견 / 藤原知외 지음, 생활의학연구회 편역 / 일월서각

 

이런 굳건한 결심을 하기까지 건강 원리가 무엇인가 알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해 왔다. 깊이 생각해보고, 또 작은 것부터 실천을 해 왔던 것이다.

 

무턱대고, 서양의학을 거부하거나 병원을 멀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수영을 하려는 사람이 준비운동을 하고 수영법을 익히고 물에 뛰어든다면 물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물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무지와 무엇이든지 다 잘 할 수 있다는 만용으로 준비운동도 없이 물속에 뛰어들었다간 익사하기 십상이다. 건강의 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서양의학이 실체가 무엇인지 등등 차근차근 공부를 하면서 멀리하면 될 것이지 무턱대고 병원이나 의사를 멀리해서는 곤란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공부를 해보면 서양의학이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병을 잘 고치지도, 또 안전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더 폭넓게 공부해보면 왜 우리가 건강/질병 투어에 나서게 되고 있는지를 통찰하게 될 것이다. 나는 서양의학(현대의학을 나는 이리 칭한다)을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도 알아보려고 했다.

 

 

특히나 학부 6년의 교육과정과 인턴.레지던트의 단계별 의료 학습 시스템을 갖고 있는 현대의학은 이러한 시스템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의 회진시간에 보면 한명의 고참의사와 함께 여러 명의 인턴 레지던트들이 따라다니면서 선배의 기술을 전수 받고 있는데, 책에서도 고백했지만 한 레지던트들이 수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기술이 부족하지만 시행착오적 학습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도 환자들은 미숙한 의료처치행위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수 많은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어려운 점이 묘사되고 있는데 오진, 수술실패가능성, 실수로 인한 의료과실 등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러한 실패가 근절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


 

(중략)

 

책에 나온 내용을 솔직하게 옮겨 적는다면 앞으로 절대 의사들의 손에 몸을 맡기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새로운 수술 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새 수술방법이 기존의 수술법에 의한 경우보다 연간 사망률이 1/4도 안되며 평균수명도 47세에서 63세로 늘어나지만 기술을 습득하기까지는 오히려 새 수술법에 의해 수술할 경우 최초 70은 수술사망율이 25%로 예전 수술방법에 의할 경우 6%에 비해 사망률이 월등히 높았다. 세월이 흘러 기술이 숙달된 뒤에는 5%만이 사망을 하게 되었지만…

당신이 새로운 수술방법에 따라 수술을 받은 최초의 환자라면 당신이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도 의술은 완전하다고 믿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의학에 기대하는 환상을 깨고 서양의학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학을 맹신하지 말고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 그리고 만약의 경우 내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시라.

 

 

[출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아툴가완디 지음, 김 미화 옮김 / 도서출판 소스 

 

 

너무 멀리 나아가기 전에 책에 대해서 언급해 보아야겠다.

 

이 책은 결국은 우리가 너무나 안이하게 값비싼 상품화된 '죽음의 절차'를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의사를 멀리해야만 한다고 차분히 설득하고 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혹은 생을 연장하기 위해 너무나 맹목적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지거나 의사에게 매달리다 보니 자연스러운 죽음과는 너무나 멀어졌다고 한다. 죽음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런 죽음은 오히려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고, 기피해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례를 들어 증명해주고 있다. 오히려 편안하게 약간은 행복한 상태로 죽을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 한다. 

 

이런 이야기를 나 같은 의료 비전문가, 혹은 의학 문외한이 아무리 설득력있게 주장한다고 해도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나카무라 진이치씨는 엄연한 의사이자 오랫동안 환자들을 살펴온 전문가이다. 그가 주장을 할 때는, 뭔가 확실한 근거와 증거가 있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권위자에 기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더라도, 일단 믿고 시작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병원 혹은 의사에 대해 갖고 있는 확고한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차례차례 설명한다. 15가지 환상을 차례차례 깨부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오늘날 굳게 믿고 있는 의료 일반상식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참고로, 나는 15개 문항에 대해서 한가지도 해당되지 않으니 엄청난 아웃사이더 혹은 무시무시한 '괴짜'인 셈이다. 아무튼 그의 확실한 근거 앞에 우리의 상식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이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대해왔더라면, 그리고 약간의 건강 공부를 해왔다면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의료에 대한 환상, 자가 치유 능력, 백신의 문제점, 자연치유법, 투약의 문제점, 노인의료와 간호의 문제점 등 간단한 건강 원리를 설명해준다. 비로소 우리의 의료 환상이 벗겨진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 한다. 늘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던 노인들도 죽음 앞에서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사실, 죽음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리라.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담을 다루는 책들도 있다. 죽음 후의 세계를 이야기 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름답게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어떨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것이 죽음의 본질인 것이다. 사실, 모르는 그 어떤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모르기 때문에 막연히 두려워 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인상을 깨주어 죽을 만한 것이라고 알려주려고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게 죽을 수 있다고 전해준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게 생각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꽤 괜찮은 것이고, 죽음을 미리 생각해보면 삶을 가치있게 보낼 수 있다는 역설의 의미를 알려주며 자연스러운 죽음에의 길로 우리의 발길을 인도하고 있다. 의료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고, 혹은 고문과 같은 말기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런 죽음을 택하라고 그 길로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죽어보기 전까지는 우리는 죽음을 말할 수가 없다.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다거나 엔도르핀과 같은 물질이 나와 조금은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등이 죽음을 태연하게 대하거나 그길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리라. 오히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사실, 누군가의 죽음은 죽은 사람 자체에게 고통이라기보다 살아남은 자들 - 그게 가족이든 친척이든지 - 에게 아픔이며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만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으로 큰 슬픔이나 비탄에 빠지게 하여 생을 외면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죽음은 과연 그토록 애통한 일인가? 그것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후 인생에 대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사뭇 다르게 인식될 것이다.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도 또한 미리 배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늙고 병들어 죽는 자연스런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다. 늙어감에 따라서, 병이 들면 몸이 자연스럽게 작용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것을 어떻게 의료로 해결할 생각을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있다. 또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일러준다. 우리는 이렇게 점차 자연사로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자연사를 택하고 따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주위를 준다. 가족들의저항이 만만찮을 것이고, 자신의 생각 또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강한 신념이 필요하다고 일러준다. 그도 그럴것이, 모두가 따르는 길을 마다하고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저자는 늙어 병들어 자연스레 죽는 것을 자식들에게 잘 보여주어야 할 노인의 의무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자식들 역시 얼핏 부모가 괴로워 보일지라도 당사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황에 접어들었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세상사는 늘 도움을 주고 받는 상호관계에 놓여 있다. 병자를 간호함으로써 자식들은 도리를 다할 수 있어 좋고, 노인은 자식들에게 한 생명이 자연스럽게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일 수 있어 좋다. 또한 그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의 '마지막 역할'이다. (114~115p)

 

이제 저자는 가장 두려운 죽음의 병, 암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를 예외로 하고, 암은 노인에게 죽기에 좋은 병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암의 이모저모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본다. 결국 암이 죽기에 그다지 두려워운 병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자연사를 택한 암기암 환자의 예도 들어준다. 이제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철학을 공부하자고 손을 이끈다. 

 

죽음을 물리쳐 이길 사람은 없다, 고 하며 살아있는 동안 미리 죽음을 생각해보고 죽음 모의 훈련하고 실행계획까지 세워 놓으라고 조언한다. 그리하여 현재를 더 의미있고 가치있게 사는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제 죽음은 생로병사의 자연스런 과정의 하나가 된다. 장례 절차까지 생각해보고, 모의 죽음을 경험해보면 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퍼포먼스는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몇몇 종교 단체 등에서도 관체음을 해보곤 한다. 사실 죽음 앞에 모든 것은 덧없다. 명예, 권력, 돈 그 모든 것이 하잘 것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을 이 헛된 것들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 집착을 하기도 하고, 작은 일에 화내기도 하면서 평생을 끄달리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내일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 고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자연사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준비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될까?

 

사실, 하루 아침에 저자가 주장하는 자연사를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차근차근 현대 의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깨주었다고 해도, 아무리 자연사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해도, 현대 의료에 매달리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우리는 아직 저자가 주장하는 그런 삶과 죽음을 따를 수가 없다. 이런 죽음도 있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겠지만, 당장 부모가 혹은 자신이 질병에 걸리거나 중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면 감히 그의 제안을 따를 수가 있을까? 아마 100의 1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괜찮은 책 한권을 읽었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시 한번 건강 혹은 의료에 대한 환상을 깨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5부 '건강이라는 이름의 환상이 병을 부른다'에서 다시 한번 건강 혹은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애를 쓴다. 의사에게 노인은 소중한 밥줄이라니, 웃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어디 노인에게만 그렇겠는가. 그런데 강고하게 구축된 의료 시스템, 의료 마켓팅 앞에 놓인 우리 개개인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다. 감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그 즉시 바보 취급을 당하고, 그러다가 내일 당장 죽으면 어떻게 하실려고 그럽니까 라는 간단한 질문 앞에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서양의학 체계에 의한 건강 혹은 질병에 대한 고정 관념으로 세뇌되어 가고 있다. 너무나 강력해서 어찌 저항해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결단과 신념이 필요한 때이다. 보다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겠고, 건강의 원리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해서 강한 믿음을 가져야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죽기 직전까지 치료해야 하는 현대 의료 체계의 모순, 건강 노이로제, 서양 의료에 대한 맹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인식 등 인생에게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할 여러가지 문제점을 우리 앞에 드러내고, 그에 대한 가치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번 읽어보고 또 깊이 있게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죽음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삶을, 그리고 건강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는 동안 죽음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아야 한다고 넌지시 주문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현대 문명의 편의를 거스르고 자연스런 죽음을 택할 수가 있을까? 우리가 죽음 앞에서 정말 초연할 수 있을까? 우리의 자식들이 과연 우리의 자연스러 죽음을 받아들여 줄까? 그 길은 아마도 우리 사회 전체가 back to the future를 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참된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 하나하나의 의식이 깨어나야 민주시민사회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건강에 대해서 우리가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또 인생에 대해 깊은 지혜를 쌓았을 때가 가능할 것이다. 그 때까지 인생 그리고 건강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 달리 생각해 볼 것은 없는지 함께 생각해보자.

 

나는 자연사에 대해서 그리고 건강원리 일반에 대해서, 저자의 관점에 대해서 현재 우리의 사고 수준에서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길이 있음을 더 나아가야할 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저자 나카무라 진이치씨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병의 대부분은 외부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입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생활습관병 혹은 성인병이라고 하는 문명병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습관병 같은 경우, 오랜 기간 동안에 걸친 마음과 몸의 부조화가 일으키는 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그런 원인을 제거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질병을 평생 달고 살필요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건강한 삶을 살았을 때, 우리는 생활습관병을 물리칠 수가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조화로운 삶의 저자 스콧니어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00세까지 무병장수하다가, 100세 생일날 곡기를 끊고 죽음의 길로 떠났다. 누군가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만약에 우리가 어떤 이상을 두고 살아야 한다면 가장 차원 높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스콧 니어링의 삶 뿐만 아니라, 비문명화 된 삶 속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9988234하는 건강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한권으로 한 사람의 삶을 전부 다 안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그녀의 삶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결혼을 남.녀의 단순한 결합으로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영혼의 교감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은 서로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목적을 갖고 있어야 어떠한 경우라도 이별을 하지 않고 두 사람이 영원한 사랑을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삶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곳에는 나이도, 인종도, 그 어떤 차이도 중요하지가 않은 것이다. ,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었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스캇팩 박사의 사랑학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저 유명한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확대시켜나가려는 의지라고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정의인가. 아내와 남편과의 사랑에서 뿐만 아니라 자식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의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수 많은 단점을 갖고 있어도, 예쁘지 않더라도, 좀 바보 같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고 지키려는 의지여야만 하는 것이다. 스코트와 헬렌은 그런 사랑을 했던 것이다.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또 상대방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성장시켜 나간 것이다. 예를 들어 스코트가 잘 하지 못했던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을 열어 놓은 것이다. 헬렌이 스코트로부터 많은 부분을 배우려고 노력했던 것도 그 좋은 예인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하고 싶었다. 아니 하고 싶다. 그래서 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자, 사랑을 지키고자 의지를 발휘하고 있다. 그녀의 성장을 위해서,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배우고 또 가르침을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아내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점점 의식이 확장되어 헬렌 니어링과 같이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길 바라고 있다.

 

나도 과감하게 그들의 삶을 따라가고 싶다. 시골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아내가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에 결행을 할 수가 없다. 언젠가 아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그들과 같은 삶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나도 이 혼돈된 삶을 청산하고 버몬트나 메인과 같은 곳을 찾아 내려갈 것이다. 늦더라도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난 후 60살 이후에는 그들이 영위했던 조화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 늦더라도 말이다.

 

이 책에는 지혜로운 말이 많이 들어있다. 수십년간의 삶에서 우러난 진수들만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몇 구절만이라도 옮겨적어보자.  

 

 

-         시몬 드 보부아르는나이먹음에서 노인에게 건강보다 더 큰 행운은 계획을 세워 바쁘고 유용하게 살면서 권태와 쇠퇴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213p)

-         노년에 얻어지는 직관, 지식, 지혜, 훌륭한 유머는 젊은 시절에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당신 뜻대로(As You Like It)의 아담처럼 스코트의 나이는 서리가 내렸으나 온화하고 원기있는 겨울 같은 것이었다. 목표와 자극을 주는 일이 앞에 펼쳐지는 가운데 그이의 노년은 충만한 시간이었다. 스코트는 마지막 수십년 동안 원기를 잃지 않고 한결 같은 자세로 살아왔다. 그이의 칠십대는 노령이 아니었으며, 팔십대는 노쇠하지 않았고, 구십대는 망령이 들지 않았다. 그이의 정신은 팔십대 후반에도 여전히 분별있고, 정확하며, 예민하여 여느 때처럼 강연하고, 책을 읽고 날마다 글을 썼다. (215p)

-         중략 (216 ~ 235p)

-         트로츠키는망명일기에서 노년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예상치 못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고 썼듯이. (236p)

-         세익스피어의 73번 소네트 한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머지 않아 떠날 것을 더할 나위없이 사랑하게 된다. (237p)

 

 

[출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헬렌 니어링 지음, 이 석태 옮김 / 보리

 

 

우리가 죽음을 쳐물리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득찬 행복한 삶은 영위할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길일 게다. 그 때 건강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며, 아름다운 죽음 또한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건강에 대하여 첨언하자면, 최근에 읽은 또다른 의학 전문가의 이야기를 빌리고 싶다. 우리는 마음, 정신 세계를 훈련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의 대부분의 질병은 환경은 물론이겠지만 마음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암 같은 것의 치료법도 정말 제대로 된 치료법이 있다. 그것을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 공부를 해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암에 걸린다고 해도, 제대로 치유를 해 내고, 그로 인한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식자우환이라고 했나. 건강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한숨이 깊어져 간다. 기존의 서양의학적 치료가 인간을 질병을 제대로 치유하는 의술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반면 서양에서는 의료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점점 더 서양 의학 쪽의 위세와 권위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국민들은 질병으로 신음해가고, 또 효과도 없는 치료에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고통을 당하는 이중고를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건강에 관한 원리를 정확하게 안다면 이런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텐데도 사람들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 또 학자나 전문가들도 강한 지적 편견에 빠져서인지 이권이 걸려서인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총체적인 지적 사기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사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엉터리 서양과학에 기댄 서양의학이 판을 치는 꼴을 도저히 눈뜨고 보지 못 하겠다. 가관인 것은 일부 맹목적인 서양의학자들이 편협한 과학자연하는 자들을 등에 없고 한의학을 몰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인터넷 토론 싸이트에서 벌어지는 우스운 행각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날 정도이다. 참으로 큰 문제인 것이 이들이 정의를 부르짖으면 지력 혹은 필력을 이용하여 일반인들을 호도하고 선전선동을 한다는 점이다. 사실이 이런 데도 모르는 체 눈 감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과학(적 사고)이라는 지식 체계를 통하여 일어나고 있으니 과학의 정체를 벗겨 만천하에 드러내야만 한다. 서양 의학이 좋다는 것은 단지 그것이 과학적이기 때문이라는 논리에서이다. 서양 의학이 올바르기 때문도 아니다. 또는 서양의학에 의할 경우 더 치료가 잘 되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그것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옳다는 것이다. 얼마니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인 주장이란 말인가. 과학 맹신주의자들이 과학 근본주의자들이 아니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나는 이런 과학적 사고의 폐해를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저들의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획기적인(?) 정식 치료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과연 수술하고, 항암제 투여하고, 방사선 조사하는 치료법이 과학적인가? 그게 왜 과학적인가? 그것은 그냥 먼저 시작된 먼저 받아들여진 치료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런 치료가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기계론적 환원주의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먼저 대다수에게 받아들여진 것이기 때문에 오소독스(Orthodox)인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옳건 그르건 상관없이 정통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 뿐이다. 여기에 무슨 과학이라는 혹은 과학적 사고방식 혹은 방법론이 사용될 계제가 있겠는가. 이제는 우리 정말 과학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생명학, 혹은 생물학에서 인간은 세포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암이든 무엇이든 세포에 병이 든 것이다. 세포에 병이 들면 세포를 치료해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잘라내기 전에 세포를 정상으로 돌리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자연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세포는 어떻게 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양을 적절하게 공급해주면 세포가 다시 정상화 되지 않을까? 너무나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대처법이 아닐까? , 그러니까 몸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또 어느 기관이든 세포로 결합되어 있다면 그런 기관 혹은 세포가 병이 들었다면 세포를 고치면 된다. 세포를 고치는 방법은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주면 된다. 이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논리인가. 과학적으로 실험해보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정립해 놓을 수 있는 이론이 아닌가? 여기에 무슨 과학이 개입할 필요가 있겠는가. 과학이라면 이렇게 분명하고 이치에 맞는 설명이 바로 과학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막스 거슨의 식이 요법은 만병통치약인 셈이었다. 이렇게 명확안 논리와 합리를 갖춘 치료법이 의회에서 상정되었지만 거부되었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암 치료 사례도 무척이나 많았고, 그것도 서양의학으로(, 이제는 서양의학이 아니라 정통치료법이라고 해야겠구나!) 포기한 말기암 환자들도 다 치료해냈는데 왜 의료 법안으로 상정이 되어 정식 치료법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의사협회의 로비에 의한 것이다. 결국은 이권다툼인 것이다. 자신들의 입지가 곤란해지니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사람들이여, 이제라도 우리는 깨어나야만 한다.

 

그렇다면 내가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라며 주장했으면서, 왜 여기에서는 물질 혹은 육체적인 치료를 언급하고 있냐고 물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분명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면서도 육체적인 존재이다. 그 비율은 정확하게 따질 수는 없겠지만, 가령 80:20이라고 가정하면 20%는 육체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근본 원인이라고 해도 병은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당연히 육체적인 것은 20%밖에 안되겠지만 100% 치료해 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보다 근원적으로 마음을 치유해 주어야만 완전한 치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식이요법을 통하여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고 육체적으로 치유가 되었다고 해도 마음이 계속 나쁜 상태에 있다면 곧 재발을 하던 몸에는 탈이 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몸과 마음을 완전하게 치유해야만 하는 이유인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후 그는 자신의 식사법으로 주로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그 식이요법으로 암환자도 고쳐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마침내는 일반 병원에서 손을 놓은 말기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치료와 연구를 병행하게 되었다. 말기 암환자의 경우 40% 이상이 그의 식이요법으로 완치가 되었으며, 한두 차례 수술을 받다가 거슨에게 간 환자들은 거의 모두가 즉시 완치되었다. 이들 환자들로부터 그는 일체의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기성 의료계에서는 그이 치료법을 무시하고 반대했으며, 심지어 의학협회의 회원자격까지 보류시켜 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지지하는 의사들과 시민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의 주선으로 1946년 미국 상원의 페퍼(Claude Pepper)의원이 거슨 식이요법을 주임으로 암의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하자는 특별법을 제안했으나 부결되었다. 그것은 언론계의 집중적인 비난 때문이었다. 그들은 식이요법으로 암을 고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이상은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보고서와 다르지 않다. 얼마나 오래 전에 얼마나 위대한 일이 있었는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진리가 외면 받으니 어떻게 암치료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내용은 일정의 전기이며 투쟁사이다. 저자인 호트씨는 우연히 어느 암환자로부터 거슨 박사가 암을 완치시킨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의 치료비(거슨 치료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다)에 대한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받게 된다. 암을 고친다는 허황한 얘기에 흥미를 갖게 된 호트는 그에 대한 진실여부를 파헤치게 된다. 처음에 막스 거슨이 말기 암환자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만힝 버는 엉터리 의사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나 호트는 그 작업을 하면서 한 진실한 의사가 기성 의료계의 막강한 힘 앞에 꼼짝하지 못하고 애써 연구한 업적과 치료법이 사장되어 버리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거슨 박사의 사후에도 계속 작업을 하여 의료계의 위선과 독선을 끝까지 파헤쳐서 세상에 고발하게 되었다. (10~11p)

 

어떤가, 이런 진실을 알고도 당신은 거슨 요법으로 암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정통적인 치료법만이 올바른 치료법이라고 주장하겠는가. 하늘로 손바닥을 가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도 호도하는 것은 천벌을 받을 일을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도 서양의학만을 맹종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선량한 시민을 호도한다? 엉터리 서양의학을 선전선동한다?

 

 

[출처]: 그러나 암도 나았다 / S.J. 호트 지음, 김 태수 옮김 / 도서출판 가리내

 

 

우리 인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진리와 진실을 찾아서 더욱 정직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세상은 어쩌면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범람하는 수 많은 지식과 정보, 또 세분류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마치 그것이 참된 지식인 것처럼 호도하고 왜곡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바른 길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주의, 시장만능 사고, 경제적 세계관에 휩싸여 우리는 세뇌되고 있다. 어떤 것이 왜 그런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된다. 그러는 사이 저들은 간교하게 우리를 속이고 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른다.

 

인생도 그렇지만 건강 또한 우리는 숲은 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더 정확하게 더 자세하게 살피려고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라는 것을 세세하게 관찰한다고 해도 숲 전체의 모습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을 조망할 때도, 건강을 살펴 볼 때도 똑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건강을 혹은 질병을 분야별로 세세하게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또 밝혀낸다고 해도 인간 그 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그것은 말단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통합적 사고 혹은 전체적인 관점을 갖고, 그러한 전제하여 세부적인 것을 더 관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깊이 들어갔다가는 돌아나와 전체에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야만이 제대로 그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 그 미지의 존재라는 위대한 책을 쓴 노벨상 수상자이며 의사이과 과학자였던 알렉시스 카렐이 몇십년 전에 지성계에 외쳤던 고함이다.

 

그런데도 전체로서의 인류는 그의 충고를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진정 통렬한 반성을 해야하지 않을까? 

 

세상을 사는 방식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흔히들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과연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일까. 인간이라면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 이래로 우리 인류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 왔을 것이고, 여러 현자들은 뛰어난 식견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정해진 길을 걸어갈 뿐이다. 오로지 남들이 하고 있다는 기준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유일한 기준은 남들이 하고 있느냐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도 고민을 해 보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없이 사는 것은 너무 편리하고 단순하다. 이렇게 된 데는 과학적 사고와 방법론에 그 원인이 있지 않는지 모르겠다. 평균, 즉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얼핏 통계학적으로 보이는 점에 있어서 대다수 남들이 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가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남들이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 기준에 의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제도에 빠져있다. 모든 것이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판단되고 있다. 개인에게 있어서 유일한 판단 기준은 어떤 것이 얼마나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오로지 그 기준 하나에 비추어 보아 판단을 하고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경제적인 동물이 되었다. 삶을 돈을 벌기 위한 과정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부가 유일한 가치척도가 되는 것이다. 돈이 어떤 의미이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그저 많이 벌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고 많이 쓰면 행복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 것이다. 실제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해보고 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아직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은 결코 다수의 힘에 저항할 수 없다. 그러다간 미친 놈 취급을 받게 되거나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우리 인류는 지금 아무런 생각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레밍 쥐와 같다. 왜 그래야하는지,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남들이 뛰어내리깐 무조건 따라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죽음 뿐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시장경제제도를 신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영원히 계속 공급될 것 같이 가정하고 사용하는 자원이 급속하게 고갈되고 환경은 파괴되고 있는데도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미명하에 상품을 사용하고 또 상품을 구입할 돈을 벌기 위한 노예로 전락되고 만다. 절제와 지족으로 만족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욕구는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상품의 사용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계속적으로 욕망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 것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사회 제도, 방송 매체, 다른 사람들의 의견, 심지어 교육에 의해서 프로그래밍 되고 있다. 즉 세뇌되고 있는 것이다. 오감을 충족하는 삶이 행복한 것처럼 느끼도록 조장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적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현자들은 이미 그것을 깨달아왔고 우리들에게 엄중 경고해 왔다. 언제나 인류 대다수의 사람들이 깨닫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기를 그만두게 될지 안타깝기만 하다.

 

 

참으로 날카로운 지성의 칼을 벼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삶과 죽음을 전혀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다.

내 죽는 날 모두가 와서 한바탕 춤을 추워 주면 좋겠다.

잘 돌아가서 좋겠다고,

남은 우리들은 질펀하게 놀다 가겠노라는 웃음 소리가 들리길 바란다.

설령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해도, 서글프거나 외로울 일도 아니다.

나는 잘 살다 돌아가는 것이니까...

 

 

이 책이 지성을 흔들어주고,

삶과 죽음에 대핸 태도를 바꿔주는

그러한 계기를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는가!

 

 

 

2012. 11. 24.

 

 

 

건강 전도사

고서 김선욱

 

 

s******n 2012.11.24.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