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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종말? 아니야, 남녀 평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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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과거에는 금녀지역이라 칭했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시험에서, 혹은 어떤 통계수치에서 여성이 수십 퍼센트를 차지하고, 심지어는 남성을 추월했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수치의 선두에는 어김없이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성이 두드러지는 이런 현상들이 이제는 일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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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과거에는 금녀지역이라 칭했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시험에서, 혹은 어떤 통계수치에서 여성이 수십 퍼센트를 차지하고, 심지어는 남성을 추월했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수치의 선두에는 어김없이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성이 두드러지는 이런 현상들이 이제는 일상사처럼 되어버려 그런 뉴스를 접하더라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아니면 부대끼면서 사는 것에 대한 불편함,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양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하는 부부들이 늘어만 간다. 아이가 있다면, 남성의 수입만으로는 가정경제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며, 설사 아이가 없다 할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억매이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이제 사회는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이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인 것이 아니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래 약 4만년 동안 남자들이 세상을 지배했다면, 여자들은 약 40년 전부터 이제 남자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남자의 종말]의 저자인 해나 로진은 현대 후기 산업사회로 갈수록 여성에게 점점 유리해지고 있으며, 여자들은 더 이상 남자들의 뒤를 쫓지 않고 모든 면에서 앞지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가부장적 질서와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특성들이 막을 내리고, 여성들의 특성과 위상변화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 지금까지 남성들이 누렸던 특권과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차별이 그대로 역전되기에 이르렀다고까지 말한다. 이러한 성 혁명은 여성들의 태도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를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찾았다. 남성성의 상징인 체력이 직업을 얻는 필수조건에서 제외되자, 여성이 시장을 지배하는 직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새로운 서비스와 정보 경제에서 가치 있는 것은 사회적 지능과 열린 소통, 차분히 앉아서 자격증을 얻을 때까지 충분히 오래 집중하는 응력이다라고 말하며, 이 모든 부분에서 여성은 적어도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심지어는 남성들을 능가한다고 말한다. 또한 대학이상의 교육을 받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남성들에 비해서 연봉이 높아지면서 가정 내 역할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남성들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 머무르기 때문에 주도권이 여성에게 넘어가는 가모장제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 과거에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직업들이 이제는 여성의 직업으로 바뀌고 있다. 저자는 약사를 대표적인 예로 들며, 앞으로는 더 많은 직업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대학입학에 여성을 배려하였으나, 이제는 줄어드는 남성을 배려하는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예전에는 남성들이 주로 가던 학과에도 이제는 여성들이 더 많아졌다. 미국에서 대학은 경제적 성공으로 가는 관문으로써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필수 전제조건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여성의 중산층 진출이 늘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그녀들이 대학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지금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의 진학률이 더 높으며, 여성들이 가지 않는 학문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비유인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예전에 그것을 느낀 적이 있다. 처음 대학교대 입학했을 때 내가 다니던 과는 남자가 대부분이었고, 여자는 대여섯 명으로 10% 정도이었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후, 처음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놀래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분명히 전공강의 시간이었는데, 대부분이 여자들이고 남자들은 예전의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대여섯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때의 기억은, 미래의 직업에 관한 청사진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라는 저자의 말을 실감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남성들에게 불리한 점은 또 있다. 마초문화나 가부장적 질서에 젖어있던 기업들도 이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의 성공 척도가 이제는 유연성과 민첩성을 바탕을 두고 있고, 이는 여성의 특성으로 기업들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성이 규칙을 만들고 남성이 따라가는 경제흐름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아들보다는 오히려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딸이 없고, 아들만 둘일 경우를 빗대어 속수무책이라고 할까? 그렇게 볼 때, 사실 나도 속수무책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한국의 현실을 살펴보는 것에 할애하고 있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공고한 한국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워킹맘들이 겪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역할을 모두 주고받기가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까운 미래의 사회에서는 지금의 남성들, 그들 자신은 아닐지 몰라도, 일상적으로 여성들을 위해 일할 사람들이 그의 아들, 또는 손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종말이라니, 그건 너무 비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내 자신이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폄하하거나 시기해서가 아니라, 비록 젠더의 역할 주고받기가 아무런 저항이나 장애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할지라도, 여성들이 보다 더 많이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자리를 잡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 동안의 여성차별을 극복한 것이지 새로운 차별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마저도 남성인 나의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과 다른 성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게 될 때, 결혼기피니, 저출산이니 하는 문제들도 저절로 해결되리라 믿고 싶다.



k*****1 2013.02.16. 신고 공감 10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남자의 종말 : 종말이라고 쓰고 평등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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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론에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지만 루이스 헨리 모건은 그의 책 "고대사회"에서 그리고 모건에 많은 영향을 받은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군집생활을 했고 그에 따라 부계가 불확실해서 확실히 알 수 있는 모계혈통을 중요시하는 모계사회였다고 주장합니다.이후 원시 공동체 사회가 붕괴되고 농경,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착취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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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론에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지만 루이스 헨리 모건은 그의 책 "고대사회"에서 그리고 모건에 많은 영향을 받은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군집생활을 했고 그에 따라 부계가 불확실해서 확실히 알 수 있는 모계혈통을 중요시하는 모계사회였다고 주장합니다.이후 원시 공동체 사회가 붕괴되고 농경,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착취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도 몇천년 동안 남성들에게 착취를 당해왔습니다.


이제 수천년간 지속되어온 여성착취 시대는 끝이라고, 남성의 종말이 왔다고  해나 로진은 "남성의 종말"에서 많은 실증적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선언합니다. 해나 로진은 첫번째 사랑과 섹스, 결혼측면에서 두번째 교육과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과거의 수동적이고 나약했던 존재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시아 특히, 한국의 골드미스를 예를듭니다. 

  • 이제 여자들은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위해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현재 여성세대는 남성보다 경제의 근본적 재구조화에 더 잘 적응해 왔다는 것입니다.
  •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여성은 51.4퍼센트의 관리직과 전문직을 점유하고 있는데 1980년엔 26.1퍼센트였다.
  •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적 표현의 중요성은 더 커졌는데 남자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 신속한 행동력과 과잉 자신감 등 한때 리더쉽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단점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주저하는 것이나 확인을 기다리는 것 등 오랫동안 여성적 약점으로 여겨지던 요소들이 이제는 목숨을 살리는 중요한 역량처럼 보인다.

저자는 남성의 종말과 여성의 부상에 대해서 많은 원인을 이야기 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떠오릅니다. 정치나 법  등 사회제도 즉, 상부구조는 경제적 토대에 의해 좌우된다. 경제구조가 변하면서 여성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계속 증가되면 점점 이 남성 우월적인 사회는 여성성향으로 중화 혹은 여성화 되겠지요. 


하지만 눈을 미국의 지식노동자들로부터 세계로 돌리면 아직 남자의 종말 혹은 여성의 시대는 아직 멀었습니다. 오히려 안간의 종말, 노동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최근 도덕질서가 다시 부각되면서 가부장적이고 종교적인 전통이 부활 하기도 하고 (특히 공화당, 티파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들어선 다국적 기업은 여성이라는 새로운 피고용자 집단을 형성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성추행은 물론, 19세기 유럽에서나 있을 법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내해야 한다. (르몽드 세계사 1권 143쪽)


즉, 책에 곳곳에 나오는 화려한 다국적 기업의 여성 경영자들 뒤에는 아직 수맣은 여성 노동자들이 과거 처럼 혹은 과거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즉 국경을 초월한 자본은 투자지역의 지배적인 사회문화적인 규범을 이용해서 여성의 착취를 악화 시키고 있습니다.그래서 아직은 종말이라고 외치고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이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일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사회적 참가는 두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자본주의가 기계화,정보화 되면서 점점 육체노동의 필요성이 약화 되어,  저렴한 노동력을 원하는 기업은 고임금의 남성을 해고 하고 그자리에 상대적으로 공급이 많아 저렴한 여성노동력을 확장시켜왔고 최근에는 국외로 기업을 이전 시키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지식 노동자의 수요가 증가에 따라 학력이 신장된 여성의 참여가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자 로진은 고학력 전문직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학교에서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의 수를 앞질렀다는 통계에 취해서 왜 여성이 집을 나와 회사로 가는지, 왜 엄마가 아이들을 보모에게 한국같은 경우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하는지 인터뷰 중에 질문하지 않습니다. 왜 여성이 취업을 하고 돈을 벌게 되면 결혼을 하려고 안하는지 깊은 고민도 없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 쉽게 말하면 취업이 자기 계발과 자아 성취라는 면도 있지만 남성이 혼자 벌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여성이 같이 벌어야 그럭 저럭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때문 이란것 은 부인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하우스푸어, 에듀푸어처럼 혼자 벌어서는 소비를 쫓아 갈수 없어서 맞벌이를 하지 않습니까?


해나 로진이 꿈꾸는 가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와 부모가 저녁시간을 같이 보내고 주말도 함께 보낼 수 있는 가정, 부모중 한명이 원하면 언제든지 가정으로 돌아와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사회, 남성과 여성 누가 회사에 취업을 하던지 혼자서 그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국가라면 남성의 종말을 환영합니다.



 








YES마니아 : 골드 l****0 2012.11.25.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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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장제 시대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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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는 딸들의 교육에도 아들들과 같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어머니들의 꺾인 꿈까지 함께 품고 열심히 공부하는 딸들이 많았습니다. 대학에서 사회에서 남성들과 공평한 기회를 제공받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더 노력하고 조금 더 희생하면 사회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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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는 딸들의 교육에도 아들들과 같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어머니들의 꺾인 꿈까지 함께 품고 열심히 공부하는 딸들이 많았습니다. 대학에서 사회에서 남성들과 공평한 기회를 제공받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더 노력하고 조금 더 희생하면 사회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즘의 젊은 여성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서 놀랄만큼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열려있어서 부럽기도 합니다. 여성 국무총리에 이어 여성이 대통령후보가 되는 세상이 아닙니까?

 

   여성들이 원래 언어능력은 남성보다 뛰어났고 전통적으로 남학생들이 우위를 점하던 수학과 과학의 영역에서도 학력격차는 점점 좁혀져서 여학생들의 학업성취가 남학생들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사법고시에서 여성 합격자가 계속 늘고, 의과대학에서는 이미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을 앞지르고, 남녀공학에서도 여학생들이 리더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성들이 부상하는 세상에서 앞으로 남성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정말 이 책의 제목처럼 남자의 시대, 가부장제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 것일까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2년 성 격차 지수에서 한국이 135개국 중 108위라고 하니 갈 길이 아직 먼 것 같지만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빠른 우리 사회인지라 이 책을 통해 미국사회의 모습을 보면 곧 닥칠 우리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직 교사가 명예퇴직후 아내와 아들의 구박에 격분해 아내를 살해했다는 뉴스를 최근에 접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없어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이 은퇴후 겪게되는 가정내의 갈등을 보여주는 처절한 사례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우리의 은퇴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우리들도 이런 어려움을 곧 맞닥뜨리겠지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질서를 고수하려하기 보다는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애쓰고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주어진 역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아내가 남편보다 더 잘 나가는 가정 뿐 아니라 아내가 실질적인 가장이고 남편이 전업주부로서 살아가는 '가모장제' 가정들도 많이 생길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시소결혼'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며 아내의 학비를 대고 아내가 좋은 직업을 갖게 되면 남편이 더 나은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아내가 남편의 학비를 댄다고 합니다. 평생을 같이 하는 부부로서 인생의 굴곡에 따라 시소처럼 한 사람이 밑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또 올라가기도 하는 유연한 부부관계는 좋은 모델로 보입니다. 육아와 가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독신생활을 고집하는 골드미스들에게도 결혼에 대한 좋은 비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성의 종말이 여성의 행복은 아닐 것이고 여성과 남성이 서로 약한 부분을 보듬는 시대가 오기를, 여성이면서 또 아들가진 어머니로서 소망합니다.




y***d 2012.11.25.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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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일하게 들어맞는, 새겨 들어야 할 '종말론'
"지금 유일하게 들어맞는, 새겨 들어야 할 '종말론'" 내용보기
소설가 김훈, 뼛속깊이 마초인 남자. 이렇게 말했다. “먹고사는 일보다 더 숭고한 남자의 길은 없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마초수컷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임을 강조한 것이리라. 아무렴. 그것은 여전히, 대한민국 남자의 목을 죈다.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다면, 수컷의 자격은 없다. 그래서 외친다. 남자는 괴로워. 한국뿐이랴. 일본에도 동명의 영화가 있다. 그래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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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뼛속깊이 마초인 남자. 이렇게 말했다

먹고사는 일보다 더 숭고한 남자의 길은 없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마초수컷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임을 강조한 것이리라. 아무렴. 그것은 여전히, 대한민국 남자의 목을 죈다.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다면, 수컷의 자격은 없다. 그래서 외친다. 남자는 괴로워. 한국뿐이랴. 일본에도 동명의 영화가 있다. 그래서 가부장제는 유효했다. 괴로운 수컷의 입지, 가부장제라도 주어져야지. 수컷들, 일자리를 더 많이 가져야지. 그래야, 먹여 살리지. 숭고한 길인데, 아무렴. 

 

그러나 그것, 균열이 왔다. 증거는 곳곳에서 나온다. 요즘 한 법무부도 가세한다. 지난 21, 54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506명 가운데 여성 합격자 비율이 41.7%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고치. 여성 합격자 비율이 40%를 넘어선 것은 2010(41.5%) 이후 역대 두 번째. 손쉬운 말로 여풍(女風)’. ‘월드컵 저주라는 남자들의 변명이 따라붙는다. 6월 말, 사시 2차 시험이 월드컵 기간과 겹쳐 남자 고시생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단다. 비겁한 변명. 얼마나 못났으면 월드컵에 책임을 돌리나.

 

여자들의 득세,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 똑똑하니까! 나는 그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몸으로 체험한다. 각종 강연을 가면, 여자들이 훨씬 많다. 모든 공부의 장, 여성들 숫자가 압도적이다. 남자? 희귀동물이다. 과거, 지성의 영역은 남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여성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본디 지성의 영역은 여성의 몫이었던 양. 상대적으로 수컷, 공부를 멀리 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디지털문명이 여성의 음기를 사회적으로 순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나는 남자들의 뻣뻣함이 사회의 유동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여성의 유연함에 밀려서라고 해석한다. 수컷은 점점 사회적으로 도태되고 있다.

 

미국 통계에서도 그것은 확인할 수 있다. 2009, 노동력의 추가 여성 쪽으로 기울었다. 역사상 처음 그렇게 여성 노동력이 남성을 능가한 뒤, 여성은 계속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남자의 종말은 그것을 조목조목 확인해준다. 저널리스트답게 통계와 취재를 바탕으로 남자들이 왜 종말의 상황에 도달했는지를 증명해준다. 사실, 현실에서도 느낄 것이다. 남자다움의 낡은 구조는 설 곳을 잃고 있다. 거기서 수컷의 딜레마가 생긴다. 그것을 대체할만한 새롭고 명확한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 남자들, 설 곳이 없다. 그러니, 이런 말, 고개를 끄덕인다. “남은 것은 액세서리뿐, 말하자면 맨세서리(mancessory)’들뿐이다.”(p.19)

 

고개를 끄덕인다. 이 책, 일리가 있다. 새로운 남자의 정의가 필요한 시대가 왔음도 자각할 수 있다. 명백하다. ‘남자다움이라는 말로 표현했던 마초적 위상은 점점 약발이 딸린다. 요즘 남자들, 특히 젊은 남자들, 과도기에 놓일 만하다. 더 이상 아버지처럼 살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른다. 배운 적이 없다. 그렇다고 유연하지 않은 남자들, 어찌하오리까. 저자 해나 로진은 남자의 종말이라는 자극적인 수사를 쓰면서 남자들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그녀의 처방전은 이렇다. “새로운 역할,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려면 일정한 자질이 필요하다. 유연성, 재빠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폭넓은 감각 등이 그것이다.” (p.27)

 

그러니까, '남자의 종말'은 '남자의 몰락'을 얘기하는 것, 아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몰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관성과 관습에 얽매여 어떻게든 거부해 온 여성성을 온 몸과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자는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의 틀인 가부장제를 주장하는 것, 능사가 아니라는 것. 해나 로진은 그것을 가모장제라는 표현으로도 대신한다.

 

이 책은 달라진 섹스의 주도권부터 언급함으로써 충분한 주의를 끈다. 여성 스스로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와도 섹스하지 않을 수 있고,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영향력을 위해 남자를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좋은 시절이 왔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아직 시차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바람직한 변화다. ‘성 혁명으로 명명된 이것은 여성의 태도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세상의 공고한 질서를 흔들었다. 문제는 남자들의 자세다. 그것은 성 혁명이 남성을 바꿔놓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기보다 남자들이 저항을 한 것이다. 뭔가 뺏긴 것 같고 탐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잘난 남자도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자들은 전통적인 부양자역할에 발을 들이고 있으며, 고개 숙인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복종이다. 남자들의 의기양양함을 부추겼던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 엔진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건 남자다움으로 돌파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이미 전 지구적 경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성공하는 곳이 되었”(p.167)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의 경제는 여성이 규칙을 만들고 남성이 따라잡는 흐름이 되어 가고 있다.”(p.170) 대학을 장악한 여성의 수도 그렇고, 온갖 시험에서 수석이나 다수를 차지하고야 마는 여성들도 그렇다.

 

이 사회에서도 피부로 느낄 만큼 극적인 것이 있다. 바로 에 대한 선호.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남아선호는 쉬이 바뀌지 않을 단단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르다. 아들은, 과격하게 말해서 별로 쓸모없는 애물단지처럼 낙인 찍혔다. 반면 딸은 가정의 중요한 자산이다. 딸딸이 부모라고 구박 당하지 않는 집도 상당히 늘었다. 아들 더 낳겠다며 용을 쓰는 집도 보기 힘들어졌다. (물론, 아이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 시대이기도 하다!)

 

남성성, 참으로 버거운 것이었다. 남자들에게도 그랬다. 강한 척, 센 척, 용감한 척, 삼척으로 겹겹이 둘러싸야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으로 착각했던 현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남자들(최소한 이 사회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 허장성세요, 자존감 없는 자의 비애였다.

 

이론가들이 오랫동안 주장한 바에 따르면, 남성성이란 전적으로 사회적 구성물로서, 여러 세대를 거쳐 남자들이 착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전투용 가면이나 갑옷의 일종이다. 이는 가면이나 갑옷이 벗겨지면 자신의 부드러움이 발각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p.354)

 

그래서 이 책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더 필요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 생존하기 위해 남성은 결혼이 필요하단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건 타당한 주장 같다. 남자들은 홀로 서는데 익숙하지 않다. 취약하다. 유연하지도 않다. 가부장제의 관습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지적한대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듯한데, 요즘 혼인 시장의 문제는 여성의 약함이 아닌 여성의 새로운 지배 때문에 초래되는 것 같다. 여자가 남자보다 교육을 잘 받고, 똑똑하여 결혼은 복잡한 방정식이 된다. 높은 지적 수준의 여성이 이른바 골드 미스로 남는 경우다.

 

여성의 위치 상향이 마냥 긍정적인 것으로만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성 역할의 반전은 이전과 또 다른 현상도 야기함을 책은 지적한다. 여성의 폭력성이나 공격성에 대한 사례가 그것이다. 저자는 영악하고 잔인한 여성 살인자 등을 예로 든다. 그녀가 인터뷰한 베스트셀러 범죄 소설 작가 패트리샤 콘웰은 그것에 대해 이리 분석한다. “여성이 적절한 힘을 가질수록 여성의 행동은 다른 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닮아 갈 겁니다.”

 

저자가 남자의 종말, 여자의 부상에 대해 다각도로 조사했음을 증명하는 건, 여성 지배가 마냥 유토피아만은 아니며, 여성의 부상엔 자본의 요구와 같은 요인이 있었음을 밝힌 대목이다. 여성이 지배하면 우리의 미래는 장밋빛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환상은 외려 위험할 수 있다.

 

여성적 유토피아의 상상 뒤에는 늘 우월감이 숨어 있었다. 더 친절하거나 부드럽다거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것이 반드시 여성의 가장 큰 특성은 아니다. 트웬지 교수가 알게 되었듯이, 여성은 사회적 신호에 반응하여 시대의 허용치에 맞추기 위해서 인성을 바꾸는 성향이 있다.”(p.258)

 

더구나 우리는 지금, 물론 예단할 필요는 없겠으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운운하며 언어유희를 펼치는 대선후보를 알고 있다. 저자도 이에 긍정적이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점만 인지할뿐,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는 것 같다. 박근혜,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보에서 여성으로서의 장점과 역할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외려, 남성적이거나 퇴행에 가까웠다. 정상의 위치에 여성이 올라가야 하는 명제에는 동의하나, ‘어떤여성인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울러, 십 수 년 전부터 유리천장 운운하며 여성 임원에 대한 관심이 적극적으로 표현된 것에 대한 분석. 경제학자 조던 시겔을 필두로 한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연구팀이 한국의 사례를 살펴본 뒤, 이리 종결 짓는다. “여성 임원에 대한 갑작스런 관심의 원동력은 공평성이나 형평성의 추구가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경쟁력을 찾는 예리한 시각이었다.”(p.331)

 

이렇게 또한 연결된다.

 

세상은 여성이 강력한 힘을 갖출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은 마지못해 의식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전환점에 서 있다. 시겔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 임원을 채용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들은 결실을 누린다. 시겔은 기업이 여성 관리자들을 늘리면 시간이 흐르면서 수익성이 개선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p.332)

 

물론 그것,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가능성과 역량을 발굴한 것이 기업(자본)이었다는 점은, 좋은 말로 기업의 센스가 돋보였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성장에 매달렸던 까닭이었겠지. 그것이 또한 다른 주체와 사회를 추동한 원동력이 됐을 수도 있다. 여성 임원의 탄생과 고위직 진출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이 책을 읽는 여성들의 자존감을 높여줌과 동시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건 뭐랄까. 이른바 잘난 여자들의 경우에 국한된 한계가 있다. 그렇지 못한 여성들의 경우는 여전히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의 울타리에서 신음하고 있다. 계급의 문제가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의 한계다. 다국적 기업 등의 여성 경영자나 임원은 여성 중에서도 소수다. 숱하게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의 지배'와는 먼 세계에 살고 있다. 계급적 이해관계에서 소외돼 있다. 육체노동의 약화가 여성 노동력의 증대를 가져왔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남성 대신 여성을 택한 자본의 꼼수도 있다. 똑똑한 여성의 도약과는 명백히 다른 지점이다.


특히, 여성이 왜 주부양자가 되는지 심층 있는 고찰은 부족해 뵌다. 단순히 여성 노동력이 지배적이 됐고, 그 증가를 확인하는 것에 끝날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현상과 요인이 자리잡고 있는지 좀 더 파고들었어야 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나가는 다양한 이유를 캐고, 잘 나가면 결혼을 왜 하지 않으려 하는지, 좀 더 알고 싶다. 자아성취가 아닌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그닥 달갑지 않은 상황도 분명 있을 테니까. 성과 함께 계급적 이해관계를 더 풍성하게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세상은 하룻밤 새 뒤집어지지 않으나, 물방울 하나하나가 바위를 갈라지게 한다. 4만 년의 남성 지배에 금이 가게 한 여성들의 도약은 불과 40년 전부터다. 여전히 지뢰밭이요, 장애물이 포진해 있다. 이 책은 여성들의 보다 굳건한 지배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의 몰락을 당연한 것으로 조롱하는 책도 아니다. 변화의 양상, 지배 질서의 흔들림을 잘 보면서 여남(女男)이 서로에게 삼투할 것을 권한다.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두 성()의 깨달음과 성찰, 그리고 현상에 대한 직시와 이해를 돕는다.

 

한국 엄마의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저자의 저널리스트적 자세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한데, 아들에게 조용히 말하라고 가르치고, 분홍색 봉제인형을 사 주고, 태권도 대신에 요리와 발레 학원에 보내는 엄마의 이 말. “저는 새로운 시대에는 마초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들이 잘 살기를 바란다면, 아들에게도 여성적인 면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 여성은 자신의 변화뿐 아니라, 후대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구나. 여성은 유연하고 민첩하게 자신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것, 뻣뻣한 남성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힌트다.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가 김훈이 정한 남자의 정의. “먹고사는 일보다 더 숭고한 남자의 길은 없다.” 뼛속 깊이 보수임을 자처한 김훈의 삶과 생활에서 우러나온 보수성을 타파할 수는 없다. 다만, 보다 젊은 남자에게 필요한 새로운 남자의 정의는 이런 것, 아닐까.

 

남자는 여자처럼 생각할 줄 알아야 남자라고 했는데, 이 말은 민감하고, 동정적이며, 자기 기분을 잘 아는, 그러니까 언제 웃고 울 지를 아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이다.”(p.357)


나라는 수컷, 이런 남자가 돼야 할텐데. 관념과 생각으로 그칠 게 아니라, 감수성을 좀 더 연마하고 닦아서 몸과 삶에서 이런 기운이 퍼져나와야 할 일이다. 쉽진 않겠지만, 인생에서 꼭 해봄직한 것이 아닐까. 진짜 남자라는 것. 


참고로, 여자들이 수컷들을 만날 때 꼭 챙겨봐야 할 것이 있다. 삶의 미시성이다. 겉으로 진보나 보수를 언명하는 것, 그건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부엌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부엌에서의 행태, 진짜 남자와 수컷을 구분하는 중요한 경계다. 




j******2 2012.11.2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남성성의 종말? 제발 이 책을 정치적 도구로 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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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종말’이 있으면 새로운 ‘탄생’이 있기 마련. 제레미 리프킨이 쓴 일련의 종말 시리즈를 읽으며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를 섬뜩하게 체감하는 요즘이다. 그러던 중 <남자의 종말(The End of Men And The Rise Of Women)>>이란 책이 나를 찾았다. 무엇보다 출간 타이밍이 상당히 미묘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모 대선후보가 ‘여성 대통령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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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종말’이 있으면 새로운 ‘탄생’이 있기 마련. 제레미 리프킨이 쓴 일련의 종말 시리즈를 읽으며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를 섬뜩하게 체감하는 요즘이다. 그러던 중 <남자의 종말(The End of Men And The Rise Of Women)>>이란 책이 나를 찾았다. 무엇보다 출간 타이밍이 상당히 미묘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모 대선후보가 ‘여성 대통령론’으로 독재와 불통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던 찰나, ‘짠’하고 이 책이 맞장구를 쳐줬다.

 

권말에 이르러 박근혜 후보에 대한 상당히 모호한 스탠스가 펼쳐지는데, 해나 로진은 박근혜의 생물학적 성별만 가지고 성급하게 판단하진 않았나 싶다.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여기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기로 한다.

 

각설…

 

<남자의 종말>을 읽으며 저널리스트인 해나 로진의 통찰과 섬세함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한국(문화, 사회, 정치 등)과 한국 여성에 대한 관찰과 진단은 국내 독자로서 놀랄 정도다. <내 이름은 김삼순>, 김정운 님의 <남자의 물건>, 이화여대에 대한 단상, 평창동계올림픽 프리젠터 나승연에 대한 관점, 한국의 여성 임원에 대한 관찰 등은 그녀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여성의 부상과 남성의 몰락이 일시적, 국지적이 아닌 전 지구적 현상임을 논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표지에서부터 도발적이다. 그걸 의식해서인지 머리말에서는 ‘남성호르몬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한발 물러난다. 그녀의 논의가 아니더라도, 바야흐로 세상은 여성의 ‘유연성’이 지배한다. 내가 즐겨 쓰는 말 중에 ‘자연의 중심은 꽃이고, 세상의 중심은 여성이다’란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여성은 세상 전면에서 드디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다. 어찌 보면, 지난 4만년 동안을 남성이 지배했다면, 40년 전부터 여성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가부장적 질서와 남성적 특징이 무너지면서 ‘뻣뻣한 남성’은 이제 존재 근거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그 원인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 참여와 경제력(소득) 강화에 있다. 어찌 보면 무한 경쟁과 노동의 유연화를 필두로 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그러면서도 변화 의지가 약한 남성보다는 여성의 유연한 사고와 신중한 태도, 부드러운 소통 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시소 결혼, 초식남, 가모장제 등은 그러한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나타난 뚜렷한 여성 권력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다소 불편하기도 했지만 저자 해나 로진은 나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작금의 현상들을 짚어내고 있다. <남자의 종말>에서 저자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예시는 현대차그룹의 기아자동차다. 아주 적확한 예시다. 그룹 내에서 형님과 아우로서 동반 성장하고 있지만, 일정 부분 세련된 디자인과 감성으로 기아자동차가 맹추격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는 오히려 기아자동차가 더 각광받고 있는 상황. 기존 남성성을 현대자동차에, 여성성을 기아자동차에 대입시킨 부분은 탁월하다.

 

2009년 미국에서는 이미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그것을 앞질렀으며, 전 세계적으로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전 분야에 걸쳐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우연일 지 모르겠으나, 여성들의 소득이 남성들의 그것보다 많은 국가들 대부분이 선진국이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국가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나 로진이 날카롭게 지적하는 부분은, ‘남성의 종말= 여성의 승리’가 아닌, 새로운 시대에 여성의 부상이 갖는 의미를 모색하는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뻣뻣하기 그지 없는 가부장적 남성성은 소멸되고, 유연한 여성성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개념 인간 본성이 되리란 주장이다. 그리하여 본문에 언급됐듯 ‘남성의 종말’이 아니라 ‘남성성의 소멸’이라 평하는 게 마땅하다.

 

전반적으로 책에 제기된 문제 혹은 예시는 다소간 표본 자체가 협소하긴 하다. 그렇다고 성급한 일반화라 탓할 수는 없는 노릇. 유연함을 무기로 세상 전면에 나선 여성들이 보여주는 삶의 행로 또한 가시밭길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이 아닌, 일과 가정의 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은, 결혼과 출산율 저하가 세계 최저 수준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과 육아, 교육, 살림을 모두 다 해내야 하는 알파걸, 알파맘들의 비애.

 

비록 본문 말미에 ‘박근혜가 전직 대통령의 딸이기는 하지만, 여성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그녀의 대선 출마는 여전히 대단한 사건이다. 행운이 따라 준다면, 한국은 가부장적이고 심지어 군국주의적이기까지 했던 과거 타 문화권의 전례를 따라서, 일종의 모성적인 구조대원으로서 여성 지도자의 가치를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P345~346)라고 말한 부분에서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참는다.

 

박근혜란 사람은 속속들이 독재자의 딸이고, 수구꼴통의 수장이며, 설혹 그녀 자체는 백치미(?) 가득한 깨끗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가끔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조중동, KMBC의 힘이렷다.), 그녀 주위엔 상식과 정의를 뒤흔드는 탐욕스러운 정치 모리배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까. 그게 여성성을 가장한 기득권의 기만이란 사실을 말이다.

 

아무튼, 썩 유쾌한 독서는 아니다. ‘젖은 낙엽’이란 단어가 낯설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휴우~



t******2 2012.11.26.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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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종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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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헤나 로진이 쓴책이다.여자들의 직업을 보면 남여의 구분이 없어진것을 알수있다. 공무원시험도 남자보다 여자들의 성적이 더 높다고 한다.두뇌가 많이 우수해진것인지 아니면 똑같은 교육을 받고도 여자들이 더욱 더 열심히 노력을 한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남자들의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자들의 위상이 높아진것은 사실인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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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헤나 로진이 쓴책이다.여자들의 직업을 보면 남여의 구분이 없어진것을 알수있다.
공무원시험도 남자보다 여자들의 성적이 더 높다고 한다.두뇌가 많이 우수해진것인지 아니면 똑같은 교육을 받고도 여자들이 더욱 더 열심히 노력을 한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남자들의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자들의 위상이 높아진것은 사실인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여자대통령의 지지도가  더 우세한 현실을 보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여자대통령 과 남자대통령을 구분짓지않고 더 능력있으면 여자대통령후보라도 존경하는 추세인것 같다. 한세대 전만 하더라도 여자가 대통령을 할 엄두도 내지 않았고 찍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대통령은 커녕 직업을 찾을때에도 <여자가 어떻게 이 곳에 이력서를 내나>  이런식이었다.
 
남자들이 더 고달픈 시대인것은 맞는것 같다.가장으로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바로 능력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서 힘을 못쓰는 꼴이 되고 만다.죽도록 돈을 벌어서 가족들이 살아나가는데에 큰 보탬이 되어야 편안한 가정이 되는것이다.그럴자신이 없으면 아예 결혼을 할 생각은 접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요즘은 여자도 같이 벌어야 먹고 살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남자가 능력이 없어서 집에서 살림하고 여자가 돈을 벌어오는 가정도 많은것 같다.아무튼 남녀 구분이 많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인것은 맞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남자가 살아나가기가 더 어려워진것 같가도 하다.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빨리 죽을까. 그리고 여자는 혼자서도 노후에 잘 살아나가는것은 아마 남자보다 더 강한 면이 많은것같다 아니 강하다기보다는 살아나가는 지혜가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그래서 요즘은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으면 훨씬 더 우대를 받는다고한다..남자가 살아가기가 많이 팍팍한세상이 된것은 분명하다..
 
남자는 4만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고 여자는 불과40년전부터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글에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다.맞어 그런것 같애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불과 40년전부터 지배하기를 시작했다는것은 본격적으로 지배하는것은 앞으로 아마 몇십년 후에 비로소 여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그러한 기미가 지금 이 시점에 징후가 보이는것이다. 열리하고 똑똑한 리더가 많이 등장하는것만 보아도 알수있다.요즘남자들의 결혼 후의 모습은 옛날과  많이 달라져 있을것 같다. 꼭 집어서 말할수는 없지만 다양한모습들로 변모 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그리고 골드미스를 선호하는 요즘 여자들은 결혼 후의 자기모습을 그려보고 혹은 주위에서의 얘기들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아마 결혼이 두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위의 시선과 나이에 밀려서 직장의 눈치 보느라 급하게 결혼한 30대 후반의 남자를 보았다. 일년도 안되어서 이혼소식이 들려왔다.신중하지 못하게 결혼을 선택했던것이다.남자는 하루세끼를 회사에서 다 먹여주는 굴지의 회사에 다니는 엘리트인데 아침에 나올때 쥬스한잔도 못얻어먹고 출근을 했고 밤10시넘어서 늦은 퇴근후에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요구하는 아내가 있었다.그 아내는 하루종일 헬스와 쇼핑을 다니고  직장은 결혼 후 그만 둔 상태였다..얼마나 이상한 결혼생활인가.여자파워때문일까..결국 남자는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했단다.여자는 결혼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편히 생활하려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여자의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에 다 알수는 없지만 아내의 역활이 좀 더 현명 했더라면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질수도 있지 않았을까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현명하지못한 대처로 불행한 결혼을 마무리 지었다고 얼핏생각되었다.그런생각을 가지고 또다시 결혼을 한다 한들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할수 있을까.결혼도 자격이 있어야할것같다 나이가 되었다고 전부 결혼할수는 없을것같다..
 
결혼이 무엇인지 결혼을 하면 어떤태도로 생활을해야하는지 전혀 다른곳에서 생활을 하던 성인 남여가 만나서 약간의 교제후에 하루아침에 같은방에서 지내고 같이 밥먹고 같이 생활하려면 얼마나 많은 갈등이 생길까.전혀생각지도 못한 상대방의 행동과 습관들로 당황할때가 많을것이다.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을까.아직도 남자들의 의식은 여전하다..명절날의 광경을 상상해보면 알수있을것같다..식사준비는 여자들이 하고있고 앉아서 먹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들이다.남자들도 평소에는 잘도와주다가도 명절때 친지들을 만나면 도와주지 않는시늉을 한다..점차 바뀌고는 있다지만 한세대가 몽땅바뀌기전까지는 어렵지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여자가 직장을 가지고 있어도 집안일의 대부분을 여자가 총괄해야하는것은 아직도 여전하다 남자가 조금 도와주는 정도이다. 이 도와준다는 말은 현실에 맞지않다 <왜 도와주는가? ><같이 한다>가 맞는 말인것 같다. 이 전쟁은 언제나 끝날것인가?  남자의 종말이 되지 않으려면 남녀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v****9 2012.11.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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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에 얽힌 신질서, 지금 우리는 어디 즈음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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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각종 시험에서 여성들의 강세가 시작되었다.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외무고시 등 고등고시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선발하는 임용고시에서는 합격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기도 하다. 그 결과 일선 초등학교에 남성 교사가 없으므로 이를 강제 할당이라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대두되고 있다. 아무리 최근 들어 남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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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각종 시험에서 여성들의 강세가 시작되었다.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외무고시 등 고등고시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선발하는 임용고시에서는 합격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기도 하다. 그 결과 일선 초등학교에 남성 교사가 없으므로 이를 강제 할당이라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대두되고 있다. 아무리 최근 들어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졌고, 여성 역시 남성 못지않은 혹은 그보다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지만 남성들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여성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이와 같은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내는 동안 남성들은 왜 변화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생길만하다. 급기야 남자가 종말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마저 등장하고 있으니, 이번에 읽은 책은 그 제목이 아예 ‘남자의 종말’이었다. 남성 없이 여성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등장한다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남성적인 가치들에만 기대어서는 사회의 인정을 받는다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게 쉽지 않아졌다는 뜻이다.

여성들이 쟁취한 가장 대표적인 변화를 꼽자면 바로 적극성일 것이다. 나의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여성은 아주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후 집안일을 돕자가 일정 연령대에 이르면 결혼을 하는 게 정석이었다. 드물게 고등학교까지 나온 나의 어머니께서 당신 친구들이 다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을 지니셨는지라 만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셨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딸 자식이라 하여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끝이라는 식의 사고를 견지하는 부모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려워졌다. 대졸, 아니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소위 ‘전문직’이라 불리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오늘날에는 참으로 많다. 그녀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연령이 되었기 때문에 떠밀리듯 부모가 점지해준 이와 인연을 맺는 일은 구닥다리가 된 지 오래다. 물론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녀들도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일명 ‘골드미스’가 되어 제 자신의 삶을 즐기는 편을 택한다. 경제적으로 자립했으며 충분한 학력을 갖춘 그녀들은 결혼시장(?)에서 부담을 야기하는 존재일 때가 많다. 남자들은 자신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지위에 속한 여성들을 찾아 결혼함으로써 가정 내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익숙하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아니다. 스페인의 여성들이 독일이나 스웨덴 등의 국가 남성들과 만나 결혼을 하는 반면 스페인 남성들은 콜롬비아 여성과 결혼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역전이 일어난 경우도 많았는데, 대개는 그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는 듯했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치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을 느끼는 남성들과 가사와 양육에 소홀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여성들. 21세기에 어디 남성 여성 가릴 게 있겠느냐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성이 직장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귀가가 늦어지는 경우에도 집안일은 대개가 여성의 몫으로 남았다.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것’ 정도로 인식했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일하는 엄마와 집안일하는 아빠. 저자는 기존의 ‘가부장제’라는 용어를 바꿔 ‘가모장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와 같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길 꺼렸고, 반대로 반동적인 성향을 보이기에 바빴다. 법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남성을 향한 선호를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관한 예는 쉬이 찾아볼 수 있다. 똑같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한 면접에 임했을 때 대개의 여성들이 듣는 소리가 있다. 남자친구는 있는가, 결혼 계획이 혹시 있는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구글(google)처럼 한국의 기업들은 친여성적이지가 못해서 많은 여성들은 해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결혼과 임신, 출산을 뒤로 미룬다. 성공적으로 아이를 낳고 복직을 했더라도 덜 중요한 부서로 배치를 받는다거나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에 직면에 결국에는 회사를 관두게 되는 일도 잦다. 관둬도 남성이 돈을 벌기에,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안이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사회는 말한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일주일 내내 출근하고 밤늦도록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가 아이는 돌보아야 한다.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크는 게 아이들이라고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제 아이가 정말로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크길 원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직장은 여전히 남성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은 신입사원이 열이면 그 중 여덟은 여성일 정도로 최근 여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관리자의 대다수는 여전히 남성이며,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와 같은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다. 변화는 더디다. 그리고 원하건 원치 않건 여성들은 투사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남성적인 언어로 이야기하고,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난 남성이 당장 종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영원히 남성은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을 통해 여성들이 변화를 이룬 만큼 혹은 그 이상 이제는 남성들도 변화해야 한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적인 부분에서도 충만한 삶을 원한다면.

 

이달의 사락 q*****2 2013.05.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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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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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여자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여자'임을 인식하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성을 인식하는 때가 그리 많지 않다고...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일은 단순히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초인적인 능력 혹은 어떤 특별한 인내, 신변의 위협으로 인한 불안감까지 동반하는 위태로운 일상의 반복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일상을 사는 한국 여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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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여자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여자'임을 인식하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성을 인식하는 때가 그리 많지 않다고...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일은 단순히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초인적인 능력 혹은 어떤 특별한 인내, 신변의 위협으로 인한 불안감까지 동반하는 위태로운

일상의 반복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일상을 사는 한국 여성으로서

사실 이 책은 어쩌면 말도 안되는 현상 진단으로 느껴졌지만

책을 읽다보니 외국 역시 성 문제에서 오는 차별과 어려움이 의외로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문제는 '성' 자체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는 '권력'에 관한 문제이며

이 권력의 이동이 남자에서 여자로 이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쓴 지은이가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로부터 동시에 비난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6장인가, 여성의 공격성과 폭력성에 대한 내용은 흔히 여성적, 남성적이라 말하는 특징들이 사회적으로 학습된 요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밖에도 지은이가 직접 취재한 남자와 여자, 커플, 부부 등은 현재 남녀의 역할과 모습이 변화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마지막 장이었는데,

한국이 유별난 나라이긴 한 모양인지 한 장 전체에 전부 한국 얘기를 하고 있다.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면서도 살림과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내들, 한국의 골드미스, 된장녀로 지칭되는 여자들, 여대생들 등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현 상황을 제법 정확히 관찰한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누군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성별로 태어나고 싶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라서 남자로 태어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 다음 세상에선 '여자의 종말'이라는 책이 나와 있을지도 모르니 그 대답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이 지닌 모습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j******1 2012.11.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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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파워의 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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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비록 미국에서의 몇년에 걸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저술한 도서로서 현대 생활에서의 여성 파워의 급성장과 이에 따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도서이다. 미국과 일부 국가에서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유사한 이와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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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비록 미국에서의 몇년에 걸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저술한 도서로서 현대 생활에서의 여성 파워의 급성장과 이에 따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도서이다.

미국과 일부 국가에서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유사한 이와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율의 저하에 따른 인구 성비가 잘 맞지 않아 정부에서 많은 대책을 내 놓고 있는 실정으로 결혼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아예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져 있는 사실로 향후의 국가의 경제 발전과 세계 경제속에서 후퇴를 거듭할것이라는 가정들 또한 앞으로의 미래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는 불안감 마저 느끼게 한다.

미국에서의 성관계는 이전에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자유롭고 쾌락만을 추구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에 대해 인간성의 상실과 남녀의 관계에 있어 사랑보다는 한순간의 즐거움을 즐기는 사회라고 생각했었적이 있다.

훅업이라는 성문화를 통해 사랑없는 하룻밤의 문화가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즐긴다는 사실에서, 자유롭다고 보는 견해와 과연 어떻게 이런 문화들이 생기게 되었으며 사랑없는 성관계가 과연 인생에 있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아직도 확정하기 어렵다. 문화라는것이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것으로 경제적 상황과 문화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으로 현재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라는 법 또한 없다.

교육적인 측면이 여성의 지위 향상과 경제적 파워를 향상시키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경제적 능력의 향상에 따른 여성들의 교육력이 향상되있기 때문이고, 산업에서도 기존의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두뇌 지향적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노동집약적 산업으로의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에 따라 우리보다 경제력이 약한 나라의 인력으로 대체하고 주로 화이트 칼라를 주축으로 하는 산업으로 변화함에 따라 여성에게도 적합한 직종이 증가하고 교육 향상에 따라 여성의 취업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의 남녀의 역활이 변화하고 있는 실정을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전업주부라는 언어가 생겨나게 된것도 남자의 역활이 점점 줄어들고 여자의 사회에서의 역활이 증가함에 따라 직장을 잃는 남성이 증가하게 됨으로 여성이 경제생활을 하고 남자가 가정에서 주부의 역활을 하게되는 기존의 상황과 역전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최근의 대학입시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같이 여성의 대학 진학율이 점점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올바른 상황이라고 판단되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남성들의 사회적 기여 빈도가 줄어든다는 우려도 낳기도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여성의 공격성이 증가하고 폭력적으로 변환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면서도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예를들어 이러한 폭력으로 인해 이전에는 남성의 폭력에 의한 이혼율이 증가되었으나 역전된 현상으로 여성의 폭력으로 인한 이혼율의 증가가 또하나의 문제로 등장한다. 여성의 위치가 향상됨에 따른 새로운 현상으로 믿고 싶기는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빈번하게 발생할까라는 의구심 또한 생긴다.

또한 국내에서 성공한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여성 성의 향상을 보여주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미국의 상황과 유사한 상황으로 흐를수 있다는 상황을 알려주기도 한다. 특히 점점 아시아 지역에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많은 여성들의 예를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억눌러져 왔던 아시아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알져주어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과연 이러한 상황들이 "남성의 종말"이라는 제목과 같이 종말을 고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l*****7 2012.1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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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지배가 시작된다 [남자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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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파격적이다. 더이상 뭘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는 '종말'이라니... 보나마나 급진페미여성이 썻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분도 나쁠것 같아 읽지 않으려 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 펴보았다. 결과적으로 저자인 '해나 로진'이 말하는 남자의 종말이란 기존에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마초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상징이었던 권위적인 상징의 소멸이다.  충격적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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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상당히 파격적이다. 더이상 뭘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는 '종말'이라니... 보나마나 급진


페미여성이 썻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분도 나쁠것 같아 읽지 않으려 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


을까 궁금해 펴보았다. 결과적으로 저자인 '해나 로진'이 말하는 남자의 종말이란 기존에 권력


의 중심에 있었던 마초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상징이었던 권위적인 상징의 소멸이다. 




 충격적인 제목에 이어 첫장에 나오는 '마음은 주지 않아요'의 '훅업 문화'. 우리 세대들에게 많


이 알려진 것으로는 '원나잇'과 비슷한 것인데 기존에는 남성들에 의해 그런 관계가 이루어 졌


다면 이제는 여성들이 필요에 의해 관계를 갖고 행위에 대해서 도덕성을 떠나 하나의 취미활동


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녀들이 이런 관계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더이상 자신의 인생에 비전


없는 짐이 될 것 같은 남자는 필요없기 때문이다.




 '남자의 종말'의 배경에는 더이상 여자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남자들은 짐만 될뿐이라


는 생각이 깔려있다. 페미니즘이 어느정도 사회에서 인정받아가면서 고급교육을 받는 여성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유능한 여성들이 사회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반면 남자들은 


오래전부터 힘을 쓰는 - 남성들에게 유리했던 - 일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성장하려고 하


는 노력을 경시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다.




 거의 십여년전 공무원이 인기직업이 되면서 많은 대학생들이 몰리게 되었고 '군가산점'을 놓


고 여러 말들이 많았던 적이 있다. 군대에 가서 몇년을 보내는 만큼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얻는


이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지하는 자들의 의견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여자를 상대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없기에 조금이나마 이점을 안고가려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윗분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자유경쟁에서는 더이상 남자가 여자를 이길수 없다고 판단해 자신들이 만


들어 놓은 구조가 깨질까 두려워 그러한 것들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골드 미스 분석'에서는 한국의 여성들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앞에서는 


골드미스, 알파걸이라며 한껏 띄어주지만 정작 뒤에서는 '된장녀'라 손가락질하는 이중적인 잣


대를 가진 사회에 대해. 맞벌이는 필요하지만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


성들과 오래전 세대부터 당연히 그렇게 해왔기에 앞으로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부모세대들. 이런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과연 어떤 여자가 '결혼'이라는 지옥에 들어가려고 할지 


나 스스로도 의문이든다.




 저자는 여러 조사와 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여성이 사회에서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으며 


남성이 함께 성장하려면 변해야만 한다는 경고를 알린다. 요즘 가장 핫한 여성중 한명이 '김미


경'씨 인데 남자, 여자 모두에게 인기가 있다. 남자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가 그동안


남자가 짊어져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 너희 여자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때문에 그녀에게 열광한다. 자신들이 여자와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함께 노


력해야 하지만 육아와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더이상 이런 비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서는 앞으로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나가기 위해서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변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앞으로 닥


쳐올 '여성의 지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g******1 2013.03.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