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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왕자나 공주가 된다는 것은 화학적으로 물리학적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나 많은 동화에서 개구리는 말도 하고 마법사나 마법이나 누군가의 키스로 공주나 왕자로 다시 복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은 개구리처럼 거친 언어를 쓰는 우리들이 글쓰기 공부를 통해 왕자나 공주로 거듭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마치 마법사의 마법이나 달콤한 키스같은 존재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편협해지고 재미없다면, 그렇지 않도록 언어를 바꾸어야 한다. 이 책은 세상을 내 시야로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나아지는 나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함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개구리들의 쓰는 언어때문에 개구리로 머물러야 하는 우리들, 그러나 왕자와 공주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왕자와 공주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다.
많은 문장들이 나를 자극시켰다. 그리고 보기를 통해서 개구리 언어와 왕자,공주의 언어를 비교해줌으로써, 습관적으로 써오던 언어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반성케 하는 책이다. "빤한 문장으로 인식하고 소통해 온 이제까지의 나의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실제로 살았어도, 사실은 헛것을 산 것이 아닌가" 라는 저자의 문장은 글쓰기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도 스스로가 사랑스럽게 변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고 싶은 진짜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면 자기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이 신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스스로 매혹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평생에 걸쳐 추구할 만한 종신지우의 소망을 갖고 살면, 그 소망의 성취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을 일조지환의 개구리 인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종신지우 없이 일조지환에 머무는 한, 마법사조차 소시지 두 개밖에는, 더는 당신에게 줄 것이 없다. -언어는 단지 겪은 사건을 재현만 하지는 않는다. 사건을 보다 의미 있게, 혹은 보다 의미 없게, 아니면 또 다른 차원의 의미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언어화 자체가 또 하나의 독립된 사건이다. -'낮설게 하기'는 일상의 자동화된 인식을 배제하고, "사물에 대한 감각을 알려진 대로가 아닌 지각된 대로'인식하려는 노력이다. 즉, 습괁거, 관용적,상투적 표현을 배제하고 지각된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낮설게 하기'이다. 그런 점에서 '낮설게 하기'라는 용어는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작가 자신에게 지각된 그대로 표현하기'다.(김승옥의 [무진기행] 설명) -공주다운, 왕자다운 언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독서를 통해 '출판언어,창작언어'를 자기 것으로 육화하는 동시에, 실질적 정직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적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살면서 우리가 겪는 모든 사건마다 어떤 의미나 진리가 들어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모든 사건에 대해 더욱 매력적인 진리효과를 일이키는 뜻밖의 문장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때마다 나는 섬뜩하다. 한 결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혹은 깊이 있는 관점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빤한 문장으로 인식하고 소통해 온 이제까지의 나의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실제로 살았어도, 사실은 헛것을 산 것이 아닌가. -거칠거나 불명확한 문장으로 말하느니, 일단은 침묵하는 것이 낫다. 종종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다 보면 적잖은 사람들이, 고민할 만한 문제여서 고민한다기보다, 지나치게 거친 문장으로 거칠게 인식을 하는 바람에 스스로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발견한다. -뭉뚱그린 기억은 언제나 추상적 도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확한 회상이란, 오히려 자신이 이제까지 기억해 온 것과는 또 다른 낯선 모습이 발견 될 때야 비로소 가장 정확한 기억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스스로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누리게 되지 않을까 -열심히 사는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하는 지금으 일이 끝난 뒤에 어떤 새로운 생각과 과제 앞에 놓여 있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 하는 일이 되어 가는 꼴을 본 다음에야, 그다음 일을 결정할 따름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러나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서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일기를 쓰듯 하루 단위, 혹은 그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 단위로 고민해야 자기 삶을 명확하게 성찰할 수 있다. -행동이 이미 상벌인 것이다. 행동하는 순간 이미 자기 생각의 상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부정의 정신에 머물러야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강렬한 정신으로 가득 찬다. 이제가지의 생각들이 끊어지고 새로운 질문들이 끓어 넘치는 자리 위헤 자신을 세우기, -아마도 이 자리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언제 어디서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모든 창작의 출구이자 시작의 출구인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둘러싸여 꼼짝 못하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관심의 초점화', '다양한 문제화 방식','무한한 사건의 언어화'와 같은, 적어도 세 겹 이상의 자유선택권을 갖고 세상과 만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사실인가. 얼마나 근사한 현실인가! -하루하루의 삶이 매번 똑같이 여겨진다면 그것은 정말로 하루하루의 삶이 매번 똑같아서가 아니라, 일상언어의 프레임을 관습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적합한 문장 표현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보다 멋지고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좋은 문장을 접하는 행위로서의 독서란 그 자체로 세상과 인생을 보다 매력적이고도 풍요롭고도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면서도 교육적이며 또한 자극적이다...좋은 문장 표현을 찾아낸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 해석이자 세계 창조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쓰는 이를 즐거이 해방시킨다. -화자가 실질적 정직을 통해, 혹은 주체적 해석을 통해 혹은 초점화, 문제화 언어화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해 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리얼리티에 가 닿을 수 있다. -무릇 글을 쓰려면 문장과 문장을 리드미컬하게 읽히도록 구사할 수 있는 동시에 문장을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느낌과 생각과 여운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제의 일관성과 연상의 자율성, 혹은 누구에게나 그럴 법한 자연스로운 일관성과 연상의 자율성, 혹은 누구에게나 그럴 법한 자연스러운 일관성과 이제까지 아무도 상상해 보지 않은 낯선 자율성이야말로 문장을 잇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것이다. -언어 선택과 배열을 통해 사건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창조적 해석이 언제나 가능하듯이, 문장과 문장을 새롭게 이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관점과 창조적 진실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창의성이야말로 우리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배우고 깨닫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즐거움 아닐까 -'지금의 나'는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지만,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다면 그때는 이미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읽기,쓰기의 공부는 끝이 없다. 그래서 힘든 게 아니라, 그래서 행복하다. 마치 아직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이 너무 많은 뷔페식당처럼. 다만 읽을 만한 책은 너무나 넘쳐나고, 자신의 글쓰기 공부는 언제나 자기 욕심에 비해 부족하다. 그래서 때로 많이 지치고 힘들다. 그러나 살아 보면 삶이 힘들거나 혼란스러울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알기 시작하는 초발심의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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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글을 쓰지만 목적은 다르다. 아무나 글을 쓰지만 관심의 정도는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글이 있고 자발적으로 쓰는 글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글을 쓰지 않거나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독해력은 단순히 문자나 언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글 읽기 능력과 구별되는 다양한 해석 능력도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과 읽고 쓰는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