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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흔하게 자살소식을 접하는, 그야말로 자살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만 있어줘'가 던지는 메시지는 강하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마음에, 아님 지나친 고민과 깊은 갈등을 겪은 후 자기자신을 포기해버리다니... 포기하고 난 이후는 어떨지 몰라도, 어느 누구도 그 생을, 삶을 하찮게 혹은 가벼이 여길 수 있을까.
누구나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건 아니다. 태어나는 것만큼은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태어난 이상, 생명을 부여받고 당연하다는 듯 삶을 살아나가게 된다. 자신의 의지로... 오직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너무나도 소중히 길러진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세상의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철저히 소외되어 외롭게 자란 사람도 있다. 그렇담 과연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얼굴없는 작가로 불리우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선우(본명:이은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으려고 했으나 한 여자의 간절한 바램으로 생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를 괴롭힌 불행은 이제 겨우 행복을 맞으려는 찰나에 느닷없이 찾아오고 이에 그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스스로의 생을 포기하려는 여자아이가 있다.
강해나.
이제 스무살인 그녀는 뜻하지 않은 일들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다 더이상 세상에 대한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이 그녀와 같이 죽기로 결심한 친구, 미주와 함께 다리 위를 찾아간다.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쿨하게 뛰어내렸으나 친구는 죽고 해나는 원치않게 살아남았다. 본능적으로 살아버렸다. 죽을 마음을 먹기까지 수많은 고뇌가 있었고 그 모든 걸 놓아버리고자 한 선택이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자 본능이 이성을 이겨버렸달까?
그리고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작가, 이선우는 술에 빠져 살다 은인과도 같은 친구의 도움으로 우여곡절끝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나 한때 지독히 빠져 살았던 술로 인해 죽을 병에 걸리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거의 치료받기를 포기했던 그였으나 어떤 인연인지 해나의 보호자를 자청하며 그녀 옆을 맴돌며 병원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본능적으로 살아난 해나지만 그녀는 여전히 죽고싶은 마음뿐이다.
살고 싶은 시한부 인생의 남자와 살아남과 동시에 죽기만을 바라는 여자아이.
이선우는 강해나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주고자 하지만 강해나는 이선우를 편히 보내주려고 한다. 고통과 아픔이 없는 세상으로...
'살아만 있어줘!'
그의 간절한 외침은 과연... 그녀에게 전해졌을까?
***
묘하게도 이선우와 강해나의 생각 중 강해나의 생각에 더 마음이 끌렸다. 언젠가 자살한 사람을 비난한 적이 있고 지금도 자살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지인의 말에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던 적이 있다. 대개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다는데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래도 그런 마음을 먹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주면 좋겠다. 나로 인해 슬퍼하고 힘들어할 사람들과 죽겠다는 자기자신의 마음을... 그 아픔을...
[ 세상에 혼자란 없단다. 너의 눈물은 흐르고 흘러 누군가의 발목을 적시고, 너의 신음은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드는 법이다. ]p202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아픔을 낫게 할 이는 오직 자기자신밖에 없다.
조창인... 가시고기로 처음 접한 작가인데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 작품은 두번째로 접하는 작품일 것이다. 책도 그렇지만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펑펑 울 정도로 무척 슬프게 봤었는데 이번 작품은 슬프긴 하지만 눈물이 살짝 나는 정도랄까? 이선우라는 작가의 글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는 이야기는 무난했지만 과거의 이야기는 오해가 오해를 낳고 불신은 더 깊은 불신을 만들어내며 조금 익숙한 순애보를 보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 현재의 강해나와 이선우의 이야기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점점 흘러넘쳤다. 둘의 이야기에서 삶의 희망을 엿보았다면 지나친 과장인 걸까? 살아가는 일이 외롭고 힘들고 두렵더라도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삶은 그렇게 살아가야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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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부성애를 보여주는 작품 '가시고기'의 작가 조창인님이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살아만 있어줘'를 가지고 우리앞에 나타났다. 가시고기에서 보여주었던 부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번 작품 역시도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로 전작에서 느꼈던 기대치와 작가님의 작품을 기다려 온 독자로서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읽은 책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고 한다.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의 수치는 다른사람은 알기도 힘들고 그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더 힘들다. 깊은 외로움과 절망감, 고통, 아픔 등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이야기까지 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자살로 인해서 이제는 사회문제로까지 인식되고 있어 자살에 대한 심각성은 굳이 말핧 필요도 없다.
'살아만 있어줘'의 주인공 해나는 첫 문장에 '나.이제, 죽습니다.'라고 자살의지를 밝힐 정도로 삶에 대한 의욕이 없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와 살 때는 거리를 두고 보듬어주지도 않다가 남편이 사망하자 그제서야 엄마로 행동하려던 여자까지 죽고나자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 든 해나는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채 죽으려고 한다.
해나와 함께 죽으려던 또 한 명의 아가씨 미주... 그녀 역시 삶에 대한 희망이나 용기는 아예 버린지 오래 되었다. 자살을 기도했지만 언제나 살아남았던 미주는 자신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던 해나에게 자살을 제의하고 그들은 3지 조건에 합당 한 장소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지만 미주는 죽고 해나는 심한 부상을 입고 살아 남는다.
죽음의 문 턱에 서 있는 남자 베스트 셀러 작가 은재는 간경화로 간이식 밖에는 희망이 없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다. 그는 죽기전에 자신이 평생 사랑한 한 여인의 딸 해나만은 살아 갈 희망과 의미를 주고 싶은 마음에 그녀 주위를 돈다. 해나는 은재로 인해서 엄마와도 화해하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며 자신에게 이런 마음을 들게 한 은재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끝까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실을 알릴 마음도 없고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은재, 서로가 한 사람만을 지독히 사랑했던 한 여자와 두 남자..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등 만을 보고 살아야 했던 남자의 외로움과 고독 역시 공감이 갔으며 사랑하기에 더욱 매몰차게 대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마음 아픈 모성...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스토리가 연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오래간만에 만난 조창인 작가님의 책... 익숙한 소재의 스토리지만 그럼에도 공감하고 감동하게 되는 책이다. 조창인 작가님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커서 살짝 부족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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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읽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는 그런 책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눈물 자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눈물이란, 울고 나면 가슴 안이 시원해지는 것, 다시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은근 매력적인 것이기도 했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들어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란 시간 앞에서 눈물도 쉽게 흘릴 수 있는 무기(?)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나이와 상관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울고 나면 느낄 수 있는 시원함을 누리고 싶다. 울고 나면 느낄 수 있는 먹먹함을 누리고 싶다. 또한 울고 나면 느낄 수 있는 살고 싶은 희망을 누리고 싶다.
가시고기와 등대지기를 읽고 많이 울었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시원하게(?) 눈물 흘릴 수 있을까?
아빠를 떠나보내고, 몇 년 뒤 다시 엄마를 떠나보낸 해나. 홀로 남겨진 해나는 자살을 시도 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얼굴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은재. 그 둘은 혈육이지만 혈육임을 밝히지 못한다. 20년 만에 만났지만 아버지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은재. 그리고 말기 암으로 시한부 생을 선고 받은 은재는 해나와의 시간들이 소중하기만 하다. 자살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생각하는 해나와 해나의 자살을 막고 싶은 은재. 부모님들 사이의 사랑은 어떤 것이고, 해나의 엄마는 왜 늘 해나에게 냉정했는지, 해나는 그 안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책을 통해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이란 것이 늘 화려한 잔디밭으로만 펼쳐진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삶의 아픔을 겪고, 삶의 행복을 만나고, 삶의 포물선은 만들어지고 그려진다. 항상 최상의 상태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항상 최악의 상태로 삶을 마무리 하는 것도 아니다. 최악일 때는 최악인 상태로, 최상일 때는 최상인 상태로 시간은 흐르고 인생을 살아지게 되는 것이다. 해답 없는 아픔이 꾸준할 것 같지만 그 상태가 영원하지 않고, 영원한 행복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는 생각 자체가 잔인하다고 느낀다. 남겨진 사람을 결코 배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살은 하면 안 되는 사람들 간의 예의와 배려 아닐까?
인생이란 어느 낯선 지점으로부터 집을 향해 가는 기나긴 여행이다. 집에 도착해 돌아보기 전까지는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살아봐야 아는 거야. 당장 어느 길에 서성이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미래가 되는 법이란다. (376)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기사를 봤다. 그들에게 왜 자살하고 싶은가를 물어본다면 그들은 정직하게 이야기 해 줄까? 하지만 그들이 가진 인생의 어려움이 그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아픔 안에서 누군가는 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누군가는 죽기 위해 몸부림친다. 적어도 그들 곁에 ‘살아 있어줘 고마워’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죽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될까? 슬픔이 당연하다고 생각 했을까? 아니면 눈물 흘릴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 했을까? 책을 다 읽고 울지 못한 나에게 조금은 당황했다면 나의 오버일까?
죽음이 매개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내기 때문에 당연하게 눈물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극적이고 조금 더 말랑말랑한 눈물이 흘러나올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왜 이런 식의 사랑이었을까? 왜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죽음이란 방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죽음만이 두 사람의 화해를 끌어낸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일까? 죽음만이 두 사람의 인간관계를 회복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일까? 물론 죽음은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용서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으로 화해를 시도한다는 뻔 한 결말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울게 만들려는 작위적인 느낌. 눈물에도 자연스러움이 좋은데...
살아만 있어줘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만큼 죽음이라는 것과 가까워진다는 것. 내 또래 뿐 아니라 우리네 부모님들의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것. 많이 사랑하고 많이 표현하고 싶다.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화해를 시도하거나, 아픔을 남기고 싶지 않다. 죽음 앞에서 회한과 후회가 남는 게 아니라, 죽음이 또 다른 시작임을, 그래서 웃으며 보내 줄 수 있는 많은 사랑을 남기고 싶다. 살아있어줘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건 분명 행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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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절망으로 죽어 간다면 세상 전부에게 외면당해서가 아니다. 손 잡아줄 단 한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나, 이구절?"
작가의 '가시고기'를 읽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 돌아보면 책 속 이야기는 흐릿한데 그 먹먹함만은 아직까지도 생생한데요. 이 책은 그 먹먹함에 또 덧칠을 해버렸습니다.
소재는 자살과 시한부인생. 딱 들어도 체류성 이야기임이 틀림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자살하고 싶어하는 해나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은재의 이야기속에 빠지게 됩니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는 요즘 정말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 학교에서 청소년 자살문제예방에관한 공문이 왔습니다. 아이와10분간 대화하라는 문구가 기억납니다. 속 이야기를 꺼내놓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데 그 대상이 부모가 될수 없다는 현실이 요즘이네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틀에 가두어놓고 그대로만 크기를 강요하는 현실.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내 이야기에 더 힘을 주는 현실. 그래서 요즘 슬픈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의 해나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하나 없는 존재입니다. 해나는 부모도, 애인도, 친구도, 돈도 아무것도 가진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자살할 용기도 없어서 미주라는 친구와 다리위에 섰습니다. 목숨을 내던지려고. 그런데 정작 죽은 사람은 자신이 아닌 미주였습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순간 해나에게 은재라는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생긴 것도 못생기고 호감가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은재는 해나의 병원비도 내주고 해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줍니다. 은재는 소설가라고 합니다. 암투병중인 베스트셀러 작가. 우연히 그의 컴퓨터 배경화면에서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있는 그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그는 엄마의 옛애인이었습니다.
지금 껏 사는 동안 한번도 자신과 아빠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해나는 엄마를 계속 미워했습니다. 아빠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었는데 엄마는 너무도 밝게 억척스럽게 사는 모습에 엄마가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몇년간 외면하고 살았는데 그런 엄마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더 이상 미워할 대상도 없어진거죠. 그래서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은재아저씨를 통해 지금껏 자신이 알던 엄마의 모습에 감춰진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아저씨의 소설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바로 해나 엄마의 이야기였던 것이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저씨는 그렇게 글을 통해 엄마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싶었나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꼭 문제가 되는 것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서 상대방이 오해를 하고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버리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텐데 헤어지지 않을텐데 꼭 숨기고, 돌아서서 아파합니다.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모습인데요. 해나 엄마와 은재아저씨의 스토리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고 바보같이 세월을 보내다 죽기 마지막에 만나는 것이 진실을 말하지 못한 대가치고는 너무 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살아만 있어줘. 얼마전 본 텔레비젼 프로에서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아내를 둔 남편이 아내에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게 정말 사랑이겠죠.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진실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속 마음에 담은 글]
"죽음은 마침표일까? 쉼표, 혹은 느낌표일까?아니면 영원한 물음표? 모르겠다. 그저 안개 속을 걷는 일이라고 해두자.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이라......죽은 자의 입은 닫혔고 눈은 감겼으며 육신은 묶였다. 자살이 미화된다면, 살아남은 자의 자기 위안이거나 스스로에게 내리는 면죄부에 가까우리라."
"너는 나의 곤줄박이새끼란다. 위기에 처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할 어린 곤줄박이 말이다."
"해나는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내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게 아니다. 세상이 나를 튕겨내고 있을 뿐이다.
"죽고 싶어서 죽으려던 게 아니란다. 결국 살고 싶어서 죽으려 했단 말이가. 웃겨. 정말 웃기고 있어."
"자살은, 누군가의 가슴속에 지옥을 만들어주고 떠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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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를 만난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거나 사업에 실패했거나 목표했던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는 좌절하다. 다시 일어설 작은 힘만으로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가슴으로는 인정하지 못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외면하고 만다. 자책하면서 결국 삶을 버리려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가 있을까. 어쩌면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가시고기』 로 모두를 울린 작가 조창인의 소설 『살아만 있어줘』 에서 그런 간절함을 마주한다. 존재만으로도 나를 살게 하는 대상, 그건 자식일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사는 이들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나, 이제 죽습니다.’ 로 소설은 시작한다. 사고로 아빠를 잃고 뒤 이어 엄마까지 병으로 죽고 혼자 남아 자살을 시도하는 스무 살 해나 앞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유명 소설가 이은재는 해나를 위해 남은 생을 살기로 한다. 해나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첫 사랑 인희가 남긴 자신의 딸,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지만 든든한 울타리가 되려고 한다. 아버지에 비해 차가웠던 엄마가 자신을 외면했다고 믿는 해나는 부모님의 친구라는 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모님과 그의 관계를 믿고 싶지 않다.
소설은 해나와 은재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과 인희와 은재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재의 해나를 통해 인희를 발견하는 은재의 마음은 애틋할 뿐이다. 어쩔 수 없었던 일들로 인해 사고를 당한 인희를 친구인 기호에게 부탁해야 했지만 은재는 단 하루도 인희를 지우지 않고 살아왔다. 언젠가 그 모든 일들을 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해나가 상처받을까 두려워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못하는 은재는 죽음을 향한다. 아직은 어른이라 할 수 없는 해나를 위해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은재는 해나가 가진 분노와 슬픔을 달래주고 싶다. 죽음에게 다가섰던 자신에게 ‘살아만 있어줘’라는 말로 자신을 살게 했던 인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은재와 인희가 서로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듯 해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런 은재의 진심을 알게 된 해나도 마찬가지다. 점점 은재에게 의지하게 되고 더 많은 시간을 아저씨와 보내고 싶은 것이다.
“해나야, 난 네가 소리 내어 울었으면 좋겠다.”
『가시고기』의 감동을 기억하는 이라면 반가운 책이다. 속상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다면 더 좋을 책이다. 간절히 죽음을 원했던 스무 살 해나와 그런 딸을 지켜주고 싶은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이 이 차가운 계절을 따뜻하게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은 누군가에게 어떤 길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돌아야 할 모퉁이는 많을 것이고, 그 모퉁이를 돌지 않고 우리는 생을 알 수 없으니까.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사느냐 역시 그 못지않다. 인생은 산모퉁이를 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퉁이를 돌아봐야 거기가 사막인지, 초원인지 알 수 있다. 여러 모퉁이를 돌아봐야 해. 그래야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말할 수 있는 거다.” 190~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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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보는 동안 또 얼마나 가슴이 아려올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아이처럼 비쳐질 지언 정 왠지 모르게 나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가시고기》의 조창인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래, 보면서 또 눈물이 나긴 하겠지만 보고 싶어서 라며 슬픈 소설을 읽겠다는 나의 의지와 읽는 내내 그 안의 슬픔에 풍덩 빠져 버릴까 염려하던 사랑하던 이의 걱정 어린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손에 넣은 지 4시간만에 독파했다. 우려했던 것처럼, 가시고기를 읽을 때만큼의 눈물은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다. 이전에 가시고기를 읽었을 때는 표면적인 슬픔만을 읽을 줄 알던 나였다면 지금의 나는 그만큼이나 삶의 무게를 알게 된 탓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눈물로만 그들의 이야기를 쉬이 흘려 보낼 수가 없었다. 눈물의 양으로 슬픔의 깊이를 논하자면 가시고기가 더 깊다 하겠지만 ‘살아만 있어줘’ 이 작품이 그의 어느 작품보다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애격의 작품이라 감히 이야기 하려 한다. 삶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만 흘러가 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온 내가 보아도 그것은 그저 바람일 뿐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 속의 그 누구에게도 왜 이토록 서로 가슴 아픈 일들을 만든 게냐고 그들을 원망할 수 없었다. 치기 어린 단순한 감정만으로 그들의 삶을 논하기에는 그들 스스로의 가지고 있던 각기 사랑의 행태가 가진 삶의 타당성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베일에 쌓인 베스트셀러 작가 은재, 그는 작가로서 널리 이름을 알렸지만 실상 그의 인생은 타인들이 꿈꾸는 크리스탈 같이 영롱한 삶이 아니었다. 그가 살아 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남겨주고 먼저 떠나 버린 인희를 평생 가슴에 안고 그토록 사랑했던 인희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해나를 곁에 두고도 그는 고작 그들의 그림자로 만족하여 오늘을 살고 있다. 자신의 딸이 태어난 줄도 몰랐던 그는 해나가 태어났을 때 아이의 이름도 지어줄 수도 아이가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해나의 엄마가 삶의 작별을 고한 1년 후 바로 그 날 자신의 딸인 해나가 스스로 다리 위에서 몸을 내던져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는 해나의 앞에 나타난다. 해나 부모님의 친구라는 명분이지만 자신의 핏줄을 지키기 위한 아빠의 마지막 간절함으로, 해나에게는 ‘키다리 아저씨’로 말이다. 해나가 울먹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마지막까지 엄마와 함께 있어줘서……” 그는 어둠이 밀려오는 하늘과 그녀의 묘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인희야. 나, 살고 싶네. 조금만 더 살아서, 해나 곁에 있고 싶네. 가족이란 걸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잖아 나는. 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름도 지어주지도 못했고, 품에 안아보지도 못했고, 아빠 대신 아저씨로 불려야 했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산다고 지나친 욕심은 아닐 거야. –P356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만난 아빠와 딸이지만 은재와 해나가 죽음에 대하는 태도만큼은 너무나도 다르다. 은재는 인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통제하여 오롯이 글로만 인희에 대한 마음을 넌지시 전달하며 하루 하루를 연명해 왔다. 죽지 못해 살아온 그가 딸인 해나를 마주하고부터는 해나와의 시간의 중첩을 위해서, 악착같이 내일이라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그 어느 즈음이 오늘이라는 시간이라면 이미 은재가 놓인 오늘의 지표는 죽음의 문턱이지만 그에게는 그 문턱 앞에서라도 해나와 함께할 수 있기에 그리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그 일념 하나로 죽음에 처절하게 대항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사실을 알리 없는 해나는 자신이 아직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부인하여 하루빨리 죽음이 도래하기 만을 바라고 있다. 어디서부터 이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얽혀 버린 것일까. 서로에게 살아야 하는 의미로 남고자 맹세했던 은재와 인희의 학창시절에서부터 그 시간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기호의 반란 아닌 반란까지. 은재와 기호의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 방식과 그 중심에 서 있던 인희와 해나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부터 풀어야지 그들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었던 것 일까. 결혼을 약속했던 은재와 인희 사이에 불의의 사고가 없었더라면, 그 당시 사고를 감내하기 위해 은재가 그러한 희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그들의 사랑을 알고 있던 기호가 은재를 포기했더라면 그들 모두는 지금 웃고 있었을까? 그리고 해나는 자신이 모든 불행을 안고 있는 외톨이라는 굴레는 벗어나서 20대의 천진난만한 모습만을 가지고 살았을까? 그의 손가락을 펼쳐 그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낀다. 엄마가 살아있다면 제일 해보고 싶다던 손깍지. “엄마한테 가서 말해줘요. 당신의 딸이 당신 대신 손깍지를 해줘서 좋았다고. 아주 좋았다고….” 그의 눈귀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또 해나의 말도 전해줘요. 해나가 아저씨 때문에 좋았다고요. 아주 좋았다고요.”-P375 그 모든 물음들을 뒤로하고 뒤틀어져 버린 현실들로 남겨진 오해가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넘어 그리움이란 화석으로 버린 그들은 만약에, 라는 질문 대신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고 있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인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딸이 혼자서 헤쳐 나아가야 하는 앞날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자신이 아빠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다만 살아만 달라는 당부를 하고 홀연히 떠난 인재와 인재가 세상에 사라진 것이라 믿은 그 이후부터 오롯이 그를 대신 할 수 있는 딸, 해나에게 혹여 기호의 눈엣가시가 될까 엄마의 마음을 다 표현 할 수 없었던 인희. 인희만을 바라보며 지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던 기호까지 그들 하나 하나를 다 헤아릴 수는 없다지만 그들 모두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것 하나만은 자명했다. 그들로부터 각기 다른 사랑을 전달 받은 해나는 이제 홀로서기를 하려 한다. 이전처럼 죽음만은 쫓던 한 소녀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누군가의 간절한 사랑의 결정체라는 것을 알았기에 넘어진다고 해도 이전처럼 외롭지도 누군가를 탓하며 미움으로 가득한 시간들을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해나의 바람대로 아빠처럼 멋진 남자친구를 만날 것이고 한 가정의 주인이 되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해나에게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찬미 이모가 해나에게 언젠가 진실을 이야기 해 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그려보는 해나는 어떠한 모습이든 간에 방긋 웃고 있을 것이다. 그 모두의 바람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아직도 외롭다. 아직도 힘들고, 아직도 두렵다. 아직도 해나의 내부 어딘가에 깃든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내곤 한다. 그러나 해나는 알고 있다. 그때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그때마다 어디를 바라봐야 하고 그때마다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가 죽어가며, 안간힘을 내며, 필사적을 썼던 한 자 한 자. 겨우겨우 검지를 움직여 가며 쓰고 또 썼던, 해나를 향한 그의 마지막 소원. 넘어질 때마다 해나를 다시 일으키는 그의 간절한 외침 살. 아. 만. 있. 어. 줘.-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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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주워진 생명을 맘데로 한다는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우린 이런말을 하ㅐ본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충분히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며 하지만 우리주변, 아니 방송을 통해서 유명 연애인들과 젊은사람들의 자살 사건을 접할때 안타깝기만 했었다.
진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과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어쩌면 나를 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더 많을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모든이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순간 자살을 꿈꾸는 해나와 한 여자만을 사랑했으면서도 이뤄지지 못한 이선우의 작가의 일방적으로 바라만 보는 애정의 눈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만 맺힌다. 자신보다 좀더 살아달라던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생명의 끈이 되었지만 조그마한 오해는 그런 그들에게 헤어짐을 안겨주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해나의 어긋난 삶은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죽음이라는 끈으로 서로에게 다가간 두사람 서로 그동안 알지 못한 부녀의 정을 마지막으로 만끽하지만 죽고자하는 딸과 살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서로에게 편안한 한때를 생각하게 하지만 그들이 남겨준 슬픔은 어쩔 수 없이 독자인 나에겐 안타깝게 다가오기만 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인'살아만 있어줘'는 남겨진 해나가 버틸 수 있는 하나의 의미가 되지만 죽어버린 아버지에게는 죽음을 생각하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기대할수 있는 생명의 끈이었으리라. 아버지임을 끝까지 밝히지 못했지만 그 깊은 사랑은 그 어떠한것보다 숭고하게만 느껴진다.
솔직히 저자의 다른 이야기들은 접해보지 못했다.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못접했기에 더 궁금해지는 다른 작품들....
언제나 가족 이야기는 슬픔이 맺혀있다. 은은한 살아가는데 느끼는 감정이 눈물이 줄줄줄 흘리게 하기에 카타르시스가 더 느껴진다. 한가정이, 사랑하는 이가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인생사에 발생하는 갖가지 오해가 우리삶을 정말 비참하게 만든것 갔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그냥 다 내려 놓는다면 이렇게 얽히는 것은 없을텐데.... 언제나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맘으로 다른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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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인의 살아만 있어줘.. 일단 가시고기 작가이다보니 이 소설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가시고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열심히 울었던지.... 이 소설을 처음 읽게 된 것 역시도 요즘 힘든 마음에 울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제목부터 벌써 간절한 느낌이 든다. 살아만 있어달라는 말. 부탁의 어조. 누구에게 함부로 부탁하지 않을 말일게 뻔히 눈에 보인다.
어쩌면 은재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던걸찌도 모르는 한마디. 살아만 있어달라는 말. 그리고 인희의 마지막 고백이였을찌도 모르는 한마디. 그런 주인공들의 의미 담겨있는 한마디로 제목이 이루어져있다는게 인상깊은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한가지는 책 속의 책으로 과거 회상을 담았다는 점이였다. 굳이 과거속으로 들어가느라 회상장면을 길게 그리기보다는 책 안으로 책을 넣어서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그들의 과거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남다른 느낌이다. 희생적인 느낌의 사랑, 그리고 끝없는 사랑..
해나가 자신의 딸인걸 평생 모르고 살았던 은재에게 자신의 딸임을 알고 나서 부성애가 애틋하게 쌓이는 장면이나.. 자신 역시 사랑했지만 친구에게 양보하려 했던 기호의 첫 마음이나.. 어쩌면 기호에게 마음이 있었던것도 같았지만 은재를 선택했었던 인희.. 그리고 사랑했지만 자신때문에 얼굴을 망친걸 고쳐주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던 과거의 은재.. 모두의 모습이 어울어져 하나의 감동적인 소설을 만들어낸 것 같다.
아련한 느낌이랄까.. 애절한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갈 수록 너무 소설에 몰입하게 되었던것 같고, 소설을 보는 내내 마음이 짠한걸 어찌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더불어 생명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했던 소설이였다. 산다는게 어떤건지, 죽고 싶은데 산다는게 어떤건지, 살아야만 하는데 죽어가는게 어떤건지.. 다양한 시점에서 죽음과 삶에 대해서 보여준 소설이였다.
감성을 건드리는 작가라는 말이 정말 맞는 소설이다. 마치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닐까-하는 오해까지 생기게 했던 소설. 감성이 메말라가는 시점쯤에 읽는다면, 여러가지 감성들이 떠오르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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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어줘 조창인
중학시절 담임이셨던 선생님께서 이육사의 詩 청포도를 읽어 주시고 우리 모두에게 돌아가며 왜 사냐고 물으셨던 적이 있다. 다들 짧게 한마디씩 하는데.. 난 그냥.. 죽지 못해 산다.. 이랬던 기억이.. 그 당시까지만해도 어리다면 어렸고 특히 왜 사느냐에 대해 한 번도 달리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데다, 갑자기 너무 당황스러운 질문이었고, 답을 준비할 사이도 없이 내 차례가 되다보니 그냥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었는데 좀 혼났다는..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왜 사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 이후로도 뭐 딱히 해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면 무언가 내 인생에 대해 좀 더 신중해지는 기회가 되기는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나름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땐,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내 손을 잡아주는 단 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컸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남편에게 참 감사해야겠다.
가시고기의 조창인 작가 님의 신작이라 망설일 것도 없이 선택하게 된 책. 역시나 눈물 한바가지를 흘리게 했지만, 다시 한 번 삶에 대해,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내가 꼭 살아야 하는 까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이야기였다. 한번도 자신의 가정을 꾸려본 적이 없이, 평생을 한 사람만을 사랑한 은재는 끝까지 해나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해나의 생체이식수술 제안도 거부한 채 숙명의 길을 택했고, 해나는 그로 인해 더 이상 자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버리려는 내일이 누군가에겐 아주 절실한 하루라는 걸 소라와 해나의 대화로 보여주고, 자살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해나에게 우연히 만난 아이 수애의 자살은 '자살'이란 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같진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은재의 철저히 절제된 세심한 배려 덕분에 해나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김석기 사장이 은재의 마지막 소설의 결말은 해피앤딩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 소설도 해피앤딩이길 바랬건만.. 해나가 자살하지 않았으니 50%의 해피엔딩인가.. 해나는 살아남았다. 그가 놓지 않았던 손 덕분에.. 마지막 엔딩 부분에서 은재가 죽기 전에 해나의 손바닥에 그렸다는 글자가 "아빠"가 아닐까 했었는데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보다 해나를 더 배려했다. 어린 시절 은혜가 자신에게 했던 말..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게 해 준 말.. 은재는 해나에게 "살아만 있어줘"라고 말하며 떠났다.
p34 "아저씨, 사는 게 즐거워요?" "솔직히 힘들구나." "그런데 왜 살아가죠?" 왜일 것 같으냐고, 그가 되묻는다. "착각이죠. 곧 힘든 처지에서 벗어날 거라는 착각." "서글픈 단정이구나." "정답이기도 하고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말해줬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살아만 있어 달라고."
해나의 서글픈 단정처럼 혹여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날 거라는 착각을 하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거래도 나는 열심히 살아보련다. 내 손을 잡아줄 그이와 아이가 있고, 또 그이와 아이의 손을 내가 잡아 주어야 하니까.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기만 하기 보다 내가 먼저 다가가 손을 잡아 주면 되는 거 그러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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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절망으로 죽어 간다면 세상 전부에게 외면당해서가 아니다. 손 잡아줄 단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참 많이도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가시고기》의 저자 조창인 씨의 신작《살아만 있어줘》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살아 있는 게, 살아서 하루를 견디는 게 더 무섭잖아. 나에게 필요한 건 깨끗한 최후일 뿐이야. (p.8) 동반자살을 선택한 미주와 해나, 세번의 자살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번번히 살아났다는 미주는 이번에는 자살에 성공할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왜 제목에 '살아만 있어줘'라는 간절함이 깃들어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참 동반자살의 결과는 미주의 성공과 해나의 실패로 갈리어졌다. "사람이 절망으로 죽어 간다면 세상 전부에게 외면당해서가 아니다. 손 잡아줄 단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 손을 잡아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실패하면 살고 성공하면 죽는 것이 자살이라고 했던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성공하면 좋지만 단 하나 실패해서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살이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수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어~'라는 노랫말에서 있듯이 단 하루라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것이 사람들의 희망이 아닐가 싶다.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야할 이유를 알지못한다는 이시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자살실패후 병원에 입원한 해나에게 세상은 자살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어준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못한 채 자살을 꿈꾸는 20살 해나에게 다가온 은재, 베일에 가려진 스타 작가 은재와의 만남을 통해 해나는 살아야 할 희망을 얻어낼수있을까?
매일 외롭다고 노래하면서 누군가 내 마음을 읽어주길 간절히 원해왔던 것은 아닐까 싶게 책속의 주인공 해나에게 공감하며 깊게 빠져들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연이어 엄마마져 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려 홀로 남겨진 해나, 자살 실패후 병원에 입원중이던 해나 앞에 나타난 스타 작가 은재는 바로 해나의 생부였다. 이제 해나에게 생부임을 밝히고 행복하게 살면 되겠다는 나의 희망과는 달리 해나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주고자 애쓰는 그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다는 것이다. 시한부 삶이 뭐 어떤데, 사람은 아니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의 길로 가는거라며 그것이 순리라는 말로 위로할수는 없는 것이겠지?
해나가 아버지라 믿어왔던 기호와 엄마 인희가 지금 해나 곁에 있는 부모님들의 친구라는 은재와 엮여져있는 사연들을 해나에게 밝힐수 있을까? 자신과 아빠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 미움을 느꼈지만 그 엄마마져 병으로 죽고 이제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해나, 해나는 알까 미움도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요 관심이라는 것을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증오가 아닌 무관심이라는 것을. 가족이지만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은 많다. 아니 믿어왔던 가족이기에 작은 상처에도 더 큰 쓰라림을 느끼게 되는 것일테지.
"생체이식은 공여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명확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단순히 친구의 딸이 기증자로 나선다는 건, 자칫 불법의 혐의를 받을수 있습니다. 병원 입장에선 상당히 민감한 부분입니다." (p.273) 생체이식은 혈연관계에만 이뤄질수있을는 것으로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북적합 판정이나 완전 일치 등으로 나타난다. 간혹 조직적합성이 맞아 타인이라도 이식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지만 말 그대로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친새자 관계이기에 적합성은 맞아들었고 이제 당사자인 은재만 승낙하면 수술을 할수도 있다는 것이 병원측의 설명이다.
아직 해나는 그가 자신의 친부라는 것을 알지못하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라는 것만은 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그에게 유일한 길은 간 이식을 하는 것이고 조사결과 자신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할수만도 없지않은가? 아니 있기을 해주기위한 시도가 적합검사였고 결과가 좋았다는 것 자체가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강풀의 만화《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줄 그런 소설이 필요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이해했고 잠시라도 함께 슬퍼해주고 울어주기로 했다.
"엄마는 엄마고, 해나는 해나예요. 엄마의 상처 때문에 내 가슴에 남을 상처를 걱정하는 건 정말 바보짓이라고요." (p.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