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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는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갈망했던 신기루와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상념을 작가의 손에 의해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소설을 통해서 웃고 울면서 마치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게 된다. 그렇다고 이러한 소설이 온통 픽션으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자신이 꿈꾸는 일련의 사고들이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을 두는 상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이라는 문학작품에 대해서 유난히 애착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그 동안 해외소설들에 대한 국내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고 일부 작가들의 경우 마니아층까지 형성되는 등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하루키를 선두로한 일본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노벨상수상작가들의 작품까지 가세하여 해외소설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것 같다. <길위의 시대>는 바로 이런 해외소설들의 틈바구니속에서 흔치 않게 다가오는 중국소설이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어찌보면 몇몇국가와 작가들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중국 작가의 작품은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랜세월동안 문화적인 공통점을 간직하면서도 정치적인 시스템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이질감이 우려라는 목소리와 더불어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나 호기심은 그저 선입관에 지나지 않음을 금세 깨닫게 된다. <길 위의 시대>역시 소설이라는 범주내에서 그 무엇하나 이질감이 없이 다가오는 우리들의 상상의 세계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개인적인 소사로 정의될 수 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시대의 시대상과 담론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것은 소설이 다름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일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측면에서 이번 작품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의 시대상과 더불어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중국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이데올로기가 상존하면서 머리와 몸이 각각 따로 이원화되고 있는 중국사회의 현주소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한때 시인이었지만 성공한 자본가의 표상인 망허, 망허의 아이를 낳고 그만을 바라보면서 사랑과 증오를 키우는 천샹, 그리고 그를 말없이 지켜볼 수 밖에는 없는 라오저우와 밍추이, 망허의 무한한 사랑을 안고 세상을 떠난 에러우... 바로 이들이 격변하는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대혁명과 텐안먼 사건을 통해 경제개방과 더불어 몰아치는 가치관의 혼동을 망허라는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삶속에서 엿볼 수 있다.
역자는 해제에서 이 작품을 강렬한 순수와 시의 시대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망허의 첫 여인이었던 쳔샹과의 짧은 사랑과 진정한 그의 여인이었던 에러우와의 교감을 두고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설의 결말에서 오래세월이 지난 해후하는 망허와 쳔샹 그리고 이들의 화해는 지금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 시대의 순수했던 열정에 대한 갈망을 대변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이원적인 삶을 강요했고 그러한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을 거부할 수 없었던 개인들의 삶과 선택이 물질적인 풍요함보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허무함과 동시에 詩와 사랑이는 모티브를 통해 예전으로 다시 회귀하고 싶어하는 현대 중국인들의 갈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가 70,80년대를 애틋하게 그리워 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길위의 시대>는 전반적으로 강력한 내러티브가 존재하질 않는다. 왠만한 소설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하딘 흔한 반전 하나 없다. 독자라면 누구나 예견될 수 있는 망허와 쳔샹의 결말 그리고 그들의 화해등 독자의 일말의 기대마저 저버리는 장치 또한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는 래퍼토리의 연속이다. 그래서 환타지계통이나 추리스릴러계통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겐 그저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중 에러우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길위에서 그들의 족적을 모아 모아 채집하듯이 망허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삶이 모여서 또 하나의 길을 만들듯이 길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을 관통하는 중국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묘미를 제공한다. 자극적이고 강력한 포스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길을 걸으면서 어렴풋이 길모퉁이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다가가고 어렴풋한 형상이 차츰 선명해질때 느끼는 희열처럼 은근하게 다가오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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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에는 우리가 이미 잃어버렸을지 모르는 낭만주의적 로망이 오롯이 재현되어 있다. ‘밤길을 가는 나그네’에 대한 시적(詩的) 기록이다. 그 ‘밤길’은 당연히 시간이고 역사이고 시(詩)라고, 사랑이라고, 작가는 젖은 목소리로 뜨겁게 말하고 있다. 안개 자욱한 길 끝으로 사라져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애련하고 그립고 가슴 뜨겁다. 알고 보면 애초에 그것은 우리 모두의 뒷모습이 아니던가. 이 작품에 대한 소설가 박범신의 추천평이다. 이 작품은 박범신의 『비즈니스』와 함께 한국의 『자음과모음』과 중국의 『소설계』에 동시에 연재되었다. 나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지만, 장윈은 중국의 대표작가라고 한다. 문학의 지형에서 어느 지점을 차지하는지 등등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었던 중국 문학 작품들이 모두 남성 작가의 것이었고, ‘역사’라는 거대 담론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작품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자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장윈은 1980년대를 ‘시의 시대’로 명명하고 그 시기의 광활한 중국을 배경으로 순수를 좇아 중국의 황토 고원을 유랑하는 젊은이들과 그들이 겪는 사랑,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상실의 비극 등을 그렸다. 시의 순결한 정신을 사랑했지만 훗날 그 사랑의 실체를 알고 정신적 붕괴를 겪는 천샹, 시인이었지만 자신이 사실은 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망허, 시가 가진 일탈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심으로 시를 갈망한 예러우, 이 세 인물의 ‘젊은날의 초상’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다. 중국 현대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기는 하지만, 내가 알기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말까지의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래의 마오쩌둥 사상 절대화 풍조와 마오쩌둥 가부장 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던 시기이다.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급물살을 타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시기를 과연 저자의 표현대로 “시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아련한 향수가 된다. 먼지 폴폴 날리던 시골길이나 보름달 떠오르던 초가집, 호박잎에 싸먹던 보리밥 등등. 굳이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졸업한 대학교 앞에 가서 ‘우리 땐 이러지 않았는데…’ ‘우리 때는 여기가….’라고 말하는 모든 표현들이 그럴 것이다. 추억속 과거는 늘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시기를 특정 개념이나 명칭으로 명명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물론 나는 중국인도 아니고 중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이러한 정의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 이런 식의 정의를 100% 수긍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또한 저자는 ‘시=낭만’으로 대입시키는데, 이러한 개념 정의 역시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는 낭만인가? 그렇다면 이때 시인이 말하는 낭만이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느리게 읽히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 소설은 느리게 읽힌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게 결국 여행과 같은 것이고 그런 점에서 길 위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가진 기본적인 생각이나 작품의 기본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를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데는 미흡함이 있지 않았나 싶다. 구성도 조금 산만하다. 플롯들이 촘촘하지 못하고 엉성하다는 것도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완성된 소설 작품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나리오를 위해 간략하게 쓴 시놉시스 같은 느낌이다. 이야기가 촘촘하고 단단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헐겁다. 글쎄…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을 즈음 하진의 『기다림』을 같이 읽었는데, 어쩌면 그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단단하고 간결한 하진의 문체와 단순하지만 힘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에 매료된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더군다나 ‘기다림’이라는 주제가 주는 아련한 여운까지. 중국의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담담하지만 유려하게 그리는 작품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작품을 병행해 읽지 않았다면 좀 더 우호적인 리뷰를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중국은 현재 50년대 생 작가들이 문단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는데, 장윈 역시 그 중 한 명이라고 한다. 하진(하진은 56년생이고 장윈은 54년생이다)처럼 외국에서 타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자기 나라에서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도 있다. 중요한 건 어쨌든 50년대 생들이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것.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기 어려운 형편이나 문학작품에서도 세대 간 단절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한다면 귀감이 되는 부분이다. 나라 안팎의 이러한 노력들이 중국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라면 장윈의 작품보다는 하진의 작품을 읽겠다. 어떻게 보면 박범신이 추천평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들에 더욱 부합하는 작품이자, 간결하지만 단단한 문체의 아름다움, 읽는이를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 자체의 힘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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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다수의 소설, 수필 등을 발표. 루쉰(魯迅) 문학상 전국우수중편소설상, 자오수리(趙樹理 )문학상 명예상, 장편소설상, 중국작가(中國作家) 다훙잉(大紅鷹) 우수작품상, 베이징 문학(北京文學) 우수작품상, 상하이 문학(上海文學) 우수작품상, 소설월보(小說月報) 백화(百花)상 중편소설상, 종산(鍾山) 시나닷컴 우수중편소설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 작가 소개글에 담긴 1954년생 중국의 대표작가 장윈(蔣韻)의 이력이다. 이미 여러 편의 작품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돼 해외에서 발표 및 출간되었다는 작가인데.. 처음 만나보는, 아니 처음 알게된 작가이다. 국내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고 하니 그렇기도 할테지만, 생각해보면 그간 중국작가의 작품은 한번도 읽었던 적이 없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이 책을 집어들면서 생각해보니 그랬다. 눈에 잘 띄지 않았었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다. 도서관의 책 구분은 나라별로 되어 있으니 주로 한국, 일본 소설을 찾는 나에겐 좀 멀리 있었고, 서점에서도 매출을 올려주는 자기계발서들만이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으니. 게다가 번역되는 책 자체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197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대표적인 작가의 작품이 처음으로 소개되는거라고 하니까.. 게다가 이번에 첫 출간된 작가 장윈의 책은 좋은 작품들을 출간하기 위해 번역된 것이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간 문학 교류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품이니.. 왜 중국 작가의 작품들은 많이 번역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겼다. 하지만.. 내가 중국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접하는 사람도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답이 나올리가 없었다. 난 그냥 책을 읽으면 되는거ㅡㅡ
양장본의 겉표지에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잔인하다. 장중한 세월의 깊이 속, 화려하게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순수의 시대! 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급격하게 변화의 바람을 맞은 중국 역시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시대가 한순간에 몰락해 가는 것일까. 그걸 화려하다고 표현한 것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책장을 펼쳤다.
시의 시대가 만들어낸 슬프면서도 낭만적인 비극! 장윈의 '길위의 시대'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시의 시대'가 만들어낸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어디를 가든 유랑하는 젊은 시인을 한 명쯤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낭만이 풍부했던 중국의 1980년대. 시의 순결한 정신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의 실체를 알고 정신적 붕괴를 겪어야 했던 여인 천샹, 시인이면서도 절망의 늪에 빠진 후에야 자신이 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남자 망허, 시가 가진 일탈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심으로 시를 갈망하는 여인 예러우. 세 사람이 시로, 사랑으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상실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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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한국의 '자음과모음', 중국의 '소설계', 일본의 '신조'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해온 문학 교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3국의 문예지가 선정한 각국 작가의 단편소설을 동시에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이어 지난 8월, 자음과모음과 소설계는 장편소설의 동시 게재 또한 시도하게 되었다. 한국의 작가 박범신의 '비즈니스'와 국내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중국의 대표 작가 장윈의 '길 위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두 작품은 한국의 계간 자음과모음 2010년 가을호와 겨울호, 중국의 격월간 소설계 2010년 5기(期)에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두 책을 동시에 출간하게 되었다. 이는 아시아 문학 교류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실이라 더욱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이어질 문학 교류에 있어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 역시 이때문이다. 얼마전 박범신 작가의 '비즈니스'란 작품을 읽고나서, 아시아 문학 교류 프로젝트의 결실로 같이 출간된 '길위의 시대'라는 작품에 대해 알게되었고, 그때문에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허나 불안한 점은 있었다. 박범신 작가의 최근작들이 한 인간의 내부에 국한된 근원적인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그런 식으로 느낌이 굳어져버렸는데, '비즈니스'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이 표출되고 있어서인지, 몰입하질 못했었다. 헌데 아예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을, 그것도 읽어본 적 없는 중국 작가의 작품을 만난다라..
처음만난,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난 중국작가의 소설. 장윈의 '길위의 시대'. 먼저 느낌부터 간단하게 말하자면 좋았다. 이 작품은 한세대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급변해버린 사회의 모습만큼이나 훼손되어져버린 인간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느껴지게 하는 소설이다. 배경은 1980년대 중국이다. 작품의 시작에서 작가는 이때를 '시(詩)의 시대'라 명명한다. 어디를 가든 유랑하는 젊은 시인을 한 명쯤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낭만이 풍부했고, 젊은이들은 순수한 영혼을 품고 시를, 예술을, 그들이 행하는 자유의 몸짓을 동경했던,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시인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일상 속으로 들어와서는 시와 사랑에 대해서 논하고, 가슴속에 진한 파문을 일으켜놓고는 사라져버릴 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던 이들이 살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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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았던 세 인물은 작품 안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소개글에 나온 것처럼 시의 순결한 정신을 사랑했지만 훗날 그 사랑의 실체를 알고 정신적 붕괴를 겪어야만 했던 여인 천샹(陳香), 시인이면서도 절망의 늪에 빠진 후에야 자신이 진정으로 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남자 망허(莽河), 시가 가진 일탈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심으로 시를 갈망하는 여인 예러우(葉柔). 이 세 사람은 '시의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순간순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가 그 시간의 두께를 차마 사람의 마음에 기록할 수조차 없게 만들면서 만들어진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 까지 남아있는 인물들이다.
'시'라는 것, '낭만'이라는 것..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다름아닌 '순수'이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지금은 '순수'가 '바보'라는 의미로까지 쓰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동안을 담아내고 있는 '길위의 시대'는 그 시간동안 그들의 마음에 변함없이 남아있는 '시'와 '낭만'을 찾아낸다. 물론 그들 역시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이기에 오랜 시간을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과 관련없는 사랑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건 바로 남아있던 '낭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 장윈은 담담한 서술, 엄격한 구조, 세련된 기술로 정제된 언어, 느림의 미학을 간직한 사유를 통해 순수문학의 정점에 올라서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현실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서술함으로써 인간 군상들의 삶을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시키고, 몽롱하면서도 아득한 미학적 효과를 이끌어낸다. 그녀의 언어는 생생하면서도 우아하고, 솔직하고 명쾌하며, 순수하면서도 힘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전개는 빠르다. 그래서 잘 읽힌다. 이야기는 각 인물들이 서로 얽혀들어가면서 생각보다 복잡하게 전개되지만 이는 가독성을 높여준다. 책장을 넘길때 무슨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 소설을 통해 나의 80년대에 경의를 표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서 그 시절은 시의 시대였다. 청춘, 자유, 낭만, 순수, 격정 등 모든 것이 신선하고 강렬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육신이든 영혼이든 그 어느 것 하나 불꽃처럼 뜨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시절은 또 현실과 동떨어진 환각 같은 시대이기도 했다. 그때는 현실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격리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고 적어놓은 작가의 말처럼.. 그녀는 작품 안에서 독자들이 '시의 시대'를 볼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텍스트로 전해지는 것만이 아닌 낭만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내음은 또렷하게 시각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낭만이 살아 있는 시대. 모든 이의 자취에는 바로 아련한 그리움이 살아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사람의 삶이라는게 그저 각박하기만 한 시대에 살고있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 들었던 '시를 위한 시'와 '낭만에 대하여'는 우리의 마음에 아직도 감미롭게 남아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환각 같은 시대를 만들어준 낭만은, 지금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플라시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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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의 시를 블로그에 필사를 하면서 돌연 국내 시에 눈길을 돌리다 시인 박인환과 김수영의 작품들을 몇 차례나 반복하여 읽었던 적이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004년도에 EBS에서 방영했던 '명동백작'이라는 문화사 프로그램을 몇 차례 다시보기로 접하면서 부터였다. 난해하고 허무할거라 생각했던 시에 대한 선입견은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로 하여금 왈칵, 눈물을 쏟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는 그저 운율과 심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울림과도 같은 고요한 외침이었다. 닥치는대로 읽는것이 아닌 마음에 고이 담아 쌓을 수 있는 문학은 단연코 시 뿐이다. 불안한 시대를 시로 노래하던 박인환의 구슬픈 선율이 가슴 깊이 먹먹함으로 그득해지는 찰나의 감정은 그 어떤것으로도 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설 「길 위의 시대」를 마주하기 전, 훑어보기 조차 하지 않은 탓에 박범신의 「비즈니스」와 같이 시대 고발적인 소설인 줄만 알았지, 낭만과 순수가 공존하는 소설인 줄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국외작품은 달가워하지 않는지라 별뜻없이 펼친 소설은 단박에 무심히 잊고 지냈던 박인환과 김수영의 시어들이 눈 앞에 잘게 토막되어 펼쳐지게 했음은 물론, 소설 속에서나마 시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량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이 가벼웠다.
소설 「길 위의 시대」 속엔 낭만의 시대가 펼쳐진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문단의 거장이든 무명이든 환대받던 시절의 낭만이 춤을 추며 그들 주위를 배회하던 때, 대학 졸업반이었던 천샹이 시인 망허라는 사람과의 하룻밤의 정을 통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가 말했 듯, 인간의 본성과 금기의 충돌은 구태여 80년대로 거슬러 오르지 않아도 어느 시절이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망허의 떠남 역시, 시인이라면 으레 그럴수도 있는 환멸로 인정 될 수 있듯이 말이다. 하룻밤으로 인한 천샹의 임신과 천샹의 모든 상황을 품어주는 이와의 결혼은 마냥 낭만적일 수 만은 없다.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천샹이 가슴안에 세월만큼이나 쌓았을 망허가 아닌 시인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거짓말로 인한 파국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도 젖이 돌지 않은 천샹의 극진했던 노력은 모성애가 빚어낸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그리워했던 시인 망허의 아들이 아님을 알고는 단박에 수치감과 자괴감, 천샹 자신의 생 전체를 부인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죽이려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했던 천샹의 파괴는 자신이 낭만이라 믿었던 시대에 대한 배신으로 몰락하게 된다.
천샹이 믿었던 시인 망허의 삶은 천샹과는 다르게 순수의 시대를 걷고자 한다. 우울하고 융합되어지지 않았던 현실을 도피하여 떠난 망허의 방랑은 산베이의 작은 도시에서 자신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는 예러우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예러우 역시 천샹과 같이 망허가 시인이라는 것에 매료되어 하룻밤을 보내지만 시인에게는 바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결여로 망허를 떠난다. 순수는 결코 희고 맑음이 아니다. 찬란한고 빛이 머무는 순수, 마음이 말하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백의 눈 같은 찬란함이다. 예러우의 떠남이 완전함을 보여주지 않은 것 또한 망허의 그리움이 순수하고자했던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재회, 그리고 다시 여행. 북부 변방으로 펼쳐진 평범한 지역들으 돌며 예러우와 망허는 숱한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이들의 여행으로 인해 많은 곳을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시대의 슬픔을 이야기 한다. 방랑하는 길 위의 순수와 중국의 버려진 순수가 예러우와 망허의 귀를 통해 고즈넉히 흐르 듯 펼쳐진다. 자궁 외 임신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예러우와 그녀를 기리는 시를 작품으로 펴내는 망허의 그리움들로 인해 천샹의 낭만과 예러우의 순수의 시대는 장렬하게 파괴되어 진다.
읽는 내내, 주인공들로 하여금 수 없이 흔들리고 위태로이 휘청였다. 그들이 말하는 낭만과 순수가 무엇인지, 시대가 앓는 시의 유약함이 과연 갑갑하기만 한 이 시대의 위로 날아오를수는 있는건지. 사실,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천샹과 예러우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가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시'의 불가항력적인 감정의 소모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수는 없었다. 대학 시절, 자신의 본질과 나아갈 길을 묻는 질문에 쉬이 대답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소설이냐 시냐, 하는 무의미한 갈림길 앞에서도 선뜻 선택의 기로에 올곧게 설 수 없었다. 가면 가는대로 흐르면 흐르는대로 주어진 길만이 전부라 여겼고 그저 평행선을 걷듯 나만의 안전한 길만을 걷기를 원했었다. 천샹이 자신의 아들 샤오촨에게 남기던 편지의 한 구절,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왜 평생토록 그런 수수한 길만 걷고 싶어 하는지 이해 할 수 있을거야.'라고 했던 것 처럼 유유히 뭉개지는 구름처럼 흐르고만 싶었다. '소설'이 아닌 '시'를 먼저 만났더라면 나았을까. 그러면 지금의 내가 사는 이 시대에 대해 끄적이는 위로라도 받을 수 있었을까.
낭만과 순수의 시대위에 시인이 있다. 잃어버리거나 혹은 버려진 시대를 토굴해야만 하는 시인이 기리는 시대가 소설 속에 존재한다. 천샹과 망허와 예러우의 사랑만이 아닌 그들이 지나치고 걸어 온 길 위에 그 모든 낭만과 순수는 부딪혀 흩어진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가 아닌, 존재하기에 운율에 따라 노래하는 시인처럼 끊임없음을 야기시켜야 한다. 작가는 천샹과 예러우와 망허를 다정하게 품어주기를 바란다. 금기와 충돌하고 시대에 불변하는 그 이상의 것의 날개를 달고 활개하기 바란다. 시대가 품는 낭만과 순수의 본질적인 의미를 완연한게 그리고 좀 더 나르시시적인 유약함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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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인 영광군 백수읍의 지금 인구는 5500명 정도지만 한때 만명이 넘었기에 읍으로 승격할 수 있었다.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에 가면 직경 500미터쯤 되는 장터는 오만가지로 붐볐다. 그곳을 지나면 100원짜리 하나라도 주시려는 학실할매의 건어물점도 있고, 원숭이가 재롱을 피우는 약장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시골 장이 사라진지는 이미 십수년이 넘었다. 사람들은 모두 차를 타고 영광읍내에 있는 매일시장을 가거나 도로의 개통으로 40분이면 갈 수 있는 광주시에 가서 일을 볼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로부터 30년만에, 아니 20년 정도 만에 세상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사실 어릴적 열댓호가 살던 시골 마을도 이제는 우리집 한 채 밖에 남지 않았다. 얼마전 광주에 살던 작은 집이 우리 마을로 돌아와 다시 동네가 됐지만 그 시간의 변화의 빠름과 그 변주는 정말 가늠할 수 없다. 우리가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99년 내가 처음 톈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고층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몇곳 되지 않았다. 방값도 평방미터당 천위안대였다. 일인당 GDP도 500불 정도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톈진의 고층 아파트 단지 수는 천 곳을 바라볼 것이며, 방값도 2만위안을 호가한다. 그리고 일인당 GDP도 만오천불을 육박하고 있다. 사실 그 위에 살아가는 이들의 느낌은 어떨까. 우리가 완행열차를 타고 지난 20년을 살아왔다면 중국은 고속열차를 타고 지난 10년을 살고 있다. 사실 그속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장윈의 소설 ‘길 위의 시대’(자음과 모음 간)는 이런 중국인들의 삶을 깊숙이 들어가서 잘 보여주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그녀의 고향이자 작품의 고향으로 인해 마치 지아장커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소설은 시와 서사를 엮어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소설은 한 시인에 빠지기 싫어서 거부하다가 사랑이 맺어지자 마자 길 위에서 목숨을 잃은 여인 예러우와 시인에 빠져 하루를 보낸 후 임신해 그 흔적으로 상처 받는 천샹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공간은 베이징에서 몽골로 나가는 방향의 허베이와 네이멍구의 길들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최대의 상단인 진상들의 지리적 기반과 동일하다. 때문에 지아장커 영화가 더욱 떠 오른다. 사실 나 역시 이런저런 인연으로 소설의 공간들을 상당히 경험했기에 그 길에 대한 묘사들이 인상적이다. 사실 중국에 가서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여행도 이 샨베이지역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모녀도 산시성의 신저우(欣州)쪽 사람이라서 더욱 인상적이다. 사실 나와 같은 경험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 소설은 저자의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인해 읽을 맛이 충분하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종 부정적인 뉴스로 인해 중국의 가짜 분유 등 부정적 인식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중국 사람들 역시 그 고통을 얼마나 깊은 지 실감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보기에 안타까운 소식이라 할지라도 인간 세상에서 탐욕에 빠진 이들의 장난일 뿐 그게 중국 전체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오해를 조금이라도 불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98년 첫 중국행에서 내가 중국행을 결심한 것도 소설속 인물들처럼 인간적이고, 낭만이 있는 중국인들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속 인물들의 변화처럼 중국은 급속한 변화속에 과거의 모습을 잃고, 탐욕적이고 추악한 모습도 많다. 하지만 우리 역시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이 환경처럼 황폐하고 무감해졌다고 할 수 없듯 중국도 마찬가지다. 문학처럼 그 시대의 깊은 정서를 대변하는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중국 소설을 더 깊이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좋은 인상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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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대하면서 순수한 영혼과 사랑,고결하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자아내게 함을 느낀다.또한 현대화,산업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거대 도회지의 이미지보다는 먼지 풀풀 나는 시골(향진)의 모퉁이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체취를 남기고 인간적인 사랑을 오롯이 남기며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가는 이야기가 전개됨을 느끼게 된다.또한 물질적인 요소보다는 인간이 갖고 있는 순수한 마음과 영혼이 강하게 뇌리에 남게 된다. 1980년대 중국은 시인들이 넘쳐 나고 숭앙 받으며 흠모의 대상이었던거 같다.그들이 많은 군중 앞에서 낭송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체가 되었던거 같다.그중에 망허라는 시인과 대학 졸업을 앞둔 천샹은 시 낭송회에서 만나 우연찮게 시인의 친구 방에서 몸을 섞게 되고 다음날 홀연히 망허는 사라지며 천샹의 마음 속에는 망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남게 되는데 그에게서 자식 하나를 얻게 된다. 시를 쓰는 백수,망허는 대학원생 예러우를 명부터 근대까지의 400여년간의 인구 이동 조사차 현지답사 가운데 만나게 되면서 그들은 티없이 맑은 자연과 물을 바라보면서 갖은거 없어도 서로의 마음이 맞게 되고 예러우는 자궁외 임신을 하게 되면서 잘못되어 결국 세상을 뜨게 되면서 망허는 또 다시 어디론가 구름처럼 흘러가게 되고 종적을 감추게 된다. 천샹은 망허와의 사이에서 낳은 샤오촨을 위해 정성을 다해 키우지만 마음 속에선 진짜 아버지 망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이 죽게 되면 남는 샤오촨에게 친부를 알리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쓰고 아랫집 밍추이에게 남기게 되고 한 번 실연을 당한 라오쩌우를 만나면서 마음을 다잡아 살아가려 하지만 망허에 대한 미련은 식을 줄 모른다. "만약 내가 먼저 죽는다면...당연히 내가 먼저 죽겠지만...내 묘비에 이렇게 써줘.순수한 사람이 이곳에 길게 잠들다.살다가 가고,사랑하다 가고,열정을 쏟아놓고 갔다...라고 라오쩌우가 천샹에게 아무리 잘하고 가정을 지키려고 하지만 망허에 대한 천샹의 그리움은 깊어만 가고 라오쩌우와 잠자리도 같이 안하고 결국 둘은 이혼을 하게 되며 천샹은 황금의 땅 중국 남부의 도회지로 일자리를 찾으러 가게 되고 망허 역시 돈이 되지 않는 시작을 접고 사업을 찾으러 러시아로 향하게 된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사조가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지만 1980년대의 시인들이 득세했던 중국의 유랑 시대를 걷다 자본주의의 물질 문명을 찾아 황금기지로 떠나는 두 주인공들을 보게 된다.천샹과 망허 둘은 중국의 지식인으로서 순수한 사랑,영혼을 간직한 한 그루 청초한 나무와 같은 존재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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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에는 장윈이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었다는 생각을 했다. ![]() 망허라는 남자는 어느 작은 도시에서 천샹이라는 아름다운 여대생을 만나게 된다.
라오저우는 자신의 아이 타오타오를 세균성 이질로 잃었던 경험이 있었다.
한편, 진짜 망허가 만났던 여인은 예러우라는 학생이었다. 예러우는 대학에 다니면서
하지만 망허는 꿈속에서 예러우가 있는 장소를 알게되고, 그녀를 다시 만난다. ![]()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1980년대의 중국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장에서 망허와 천향은 만나게 된다. 천향은 아들을 사고로 잃게 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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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재킷에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 얄포름 한 붉은 입술을 지닌 한송이 꽃과도 같은 예러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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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순수의 시대
나는 남들과 다르고 특별할 것이라는 또 특별하게 살고 싶었고 사랑 또한 특별한 이를 만나 하고 싶었지만 나의 삶은 그리 특별하지가 않다. 남들보다 좀더 행복한 추억을 한가지 더 간직하고 있을 뿐 그저 보통이 남자를 만나 한번 더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냥 이렇게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나에게 길 위의 시대는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의 눈물 한방울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던 천샹은 낭만적인 존재였던 망허라는 시인과 하룻밤 정을 나누었고, 아이를 갖게 되고 학교 선배인 라우저우와 결혼을 하게 된다. 라우저우는 천샹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것을 알면서의 그녀의 순수함에 사랑으로 돌보게 된다. 천샹이 그토록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망허가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삶에 분노하게 된다. 모성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하였던 천샹은 마냥 슬퍼할수 만은 없었다.
그리고 진짜 망허는 조직에 융화되지 못했기에 낭만을 찾아 떠돌게 되며 논문을 위해 현지 답사를 하고 있는 예러우와 동행하게 되었고 이들도 사랑하게 된다.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원하는 예러우는 시인의 본능을 가진 망허와 삶을 함께 하려 했지만 예러우의 죽음으로 이도 이룰수 없게 되자 망허는 시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택하게 된다.
이런, 천샹과 진짜 망허(자오산밍)의 만남이라니. 예러우의 죽음으로 건설회사에 뛰어든 망허는 산춘에 소학교를 짓게 되고 아낌없는 지원을 하게 되고 소학교가 개원하는 날 일생이 뒤바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었던 천샹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동안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무말도 할수 없었던 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낯선 모습에 이들이 느끼는 시의 낭만적인 모습까지도...
모든이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일부는 고통과 눈물로 아파하기도 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하기도 하고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을 하기도 한다. 길위의 시대는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문화혁명 시대의 중국 젊은이들은 시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윈의 글은 쉽고 단순하지만 평범한 이들의 슬픈 일상을 바라보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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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인 망허는 각지를 떠돌아 다니다 한 내륙도시에서 여대생 천샹을 만나게 된다. 그날 밤 둘은 하룻밤 정을 나누게 되고, 이틀 후 망허는 훌쩍 그곳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 후 천샹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망허를 그리워 하면서도 같은 학교의 선배 라오저우 결혼을 하고 아들 샤오촨을 낳게 된다. 한편 망허는 또 다른 곳에서 석사 논물을 위해 현지답사를 다니고 있는 대학원생 예러우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의 현지답사에 동행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천샹은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고, 그녀가 만난 적 없는 망허와 마주하게 된다.
천샹은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하염없이 망허를 기다렸고, 망허와 예러우는 아낌없이 사랑했다. 예러우는 두려운 나머지 망허를 떨쳐내려 했지만 감정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더 사랑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다. 처음엔 망허가 야속하게도 생각되었지만 천샹의 망허와 예러우의 망허는 다른 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잃기도 하고, 마음속의 연인을 잃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시를 잃기도 하며 여러가지 원인과 형태로 찾아온 상실로 인해 그들의 삶도 다른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순수와 낭만이 가득했던 시와 그보다 더 큰 사랑, 길위를 방랑했던 마음과 아픔과 눈물들이 뒤섞여 조금은 슬프고 비극적이기도 한 그들의 이야기가 안타깝게도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아련한 여운이 감돌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인 중국의 1980년대는 어디에서나 시에 대한 열정을 가진 시인들을 곧잘 만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시의 낭만을 점점 사라져 가고 거추장 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며 물질과 탐욕에 더 물들어 버린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그런 현재의 시대를 안타까워 하며 주인공들을 모습을 통해서 순수했던 시대를 다시 음미하고 그리워 하며 , 시 속에 담겨져 있던 감성들과 낭만들을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다시 불어넣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도 80년대에 저우시코우의 경로를 따라 중국 북부 농촌으로 현지답사를 떠났다고 하던데, 소설속의 예러우와 많이 닮아 있었다. 예러우는 저자의 모습이 많이 투영한 인물로서 그런 예러우를 통해 그 당시 순수하고 푸릇푸릇한 청춘의 모습을 간직한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중국 소설을 잘 읽지도 않을 뿐더러, 조금 읽은 것들도 혁명에 관련된 이야기나 시대 배경이 중요한 작품들이었는데, 시와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은 처음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연애소설과는 또 다른 머라 말할 수 없는 중국 특유의 감정들과 느낌들이 잘 묻어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중국의 80년대 시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도 어렴풋이 알게 해 줬고, 중국소설들대한 흥미와 다른 좋은 중국소설들을 찾아보고 싶게 만들어 준 <길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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