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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손보기 해 드립니다 고고학자 손보기>를 아이와 함께 읽으며 손보기 박사님을 진작 알지 못했던 나의 무심함은 고의는 아니지만, 아마 역사에 대한 나의 무관심과도 없지 않아 관련이 있을것 이란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좀 부끄럽기까지 하다.
충남 공주 석장리 발굴로 인해 한반도 구석기 시대가 존재한다는걸 밝혔고, 고려의 금속활자가 서양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섰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역사학자 이시다. 학교다닐때 달달 외웠던 선사시대 유물 용어들 뗀석기, 주먹도끼등 이런 용어를 만드신 분이 파른 손보기 박사님이란다.
손보기 박사님은 고고학자로서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그 분에 대한 글을 읽어 내려가면 갈 수록 양심적인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삶속에서 또한 꿋꿋이 자신의 역활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인간적인 면으로도 존경스럽다.
직접 손보기 박사님이 기증한 평생을 바쳐 모은 자료들과 유물들이 있는 한국 구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공주 석장리 박물관을 아직까진 가보진 못했지만, 꼭 기회가 되면 아이와 함께 파른 기념관과 함께 박물관 또한 방문해 보고 그 분의 꿋꿋한 삶과 사명감을 갖고 아프고 힘든 시기인 일제강점기때 나고 자라면서 식민사관을 무너뜨리는 데에 자신의 평생을 바친 그 분의 올바른 정신을 우리 아이가 꼭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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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손보기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다. 모진 비바람에 흔들려도 뿌리가 튼튼히 흙 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 큰 시련과 위기도 이겨낼 수 있다. 큰 나무는 시원한 그늘도 내어주고 산새와 숲의 동물들에게 보금자리와 먹이도 내어준다. 시대가 달라지고 첨단 기기의 발달로 눈부시게 휙휙 발전하는 세상이지만 역사는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이요, 뿌리이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역사는 더 중요하다. 중국의 동북공정론과 일본의 독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불거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미래를 물려주어야 할까.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힘. 우리의 것을 지키고 알릴 수 있는 힘.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를 밝혀낸 고고학자 손보기. 일제 강점기 모진 핍박도 꿋꿋하게 유물을 발굴하고 우리의 역사를 캐내었다. 손보기는 고고학자로서 1964년부터 1992년까지 충남 공주 석장리를 발굴하여 한반도에도 구석기시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으며, 또한 서지학자로서 고려의 금속활자가 서양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섰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의 용어도 고고학자이면서 역사학자인 손보기 선생님을 통해 나왔고 우리 역사를 훼손하려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우리의 역사를 지켜오셨다. 평생을 바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데서 나아가 우리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으려 했던 어질보 박사님. 이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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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전곡리 선사 유적지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었다. 그 때는 아직 박물관 개원 전이라 유적지와 기념관 같은 곳에서 전곡리 선사 유적지의 의미와 유적지를 발굴하게 된 과정, 그리고 발굴하면서 필요했던 물건들, 신문기사 등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유적 발굴이라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때만 해도 큰 아이가 고고학자에 관심을 보였었기 때문에 고고학자가 하는 일,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등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였다. 고고학이나 역사는 실은 내가 더 관심이 가고 좋아하는 분야이다. 학창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그 흥미가 아이에게 전해졌던 모양이다. 암튼 끈기와 인내는 물론이고, 발굴 현장을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는 치밀한 성격이라는 데에서 큰 아이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우리 역사를 손보기 해 드립니다-고고학자 손보기]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 였다. 첫번째는 고고학자라는 직함이 생소해서였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고고학, 고고학자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데, 그 분야에서 애쓰신 분에 대한 책이 나왔다니 반갑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손보기'라는 분은 잘 모르지만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작년쯤인가 이 시리즈의 두번째 책 '간송 전형필'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우리 역사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며 한 장 한 장을 아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독립 운동이라고 꼭 총, 칼 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전형필 선생님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나라의 보물을 지키고, 되찾는 것과 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애쓰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애국이요, 독립운동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숨은 곳에서 조용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희생한 분들의 노고를 잘 알지 못한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것이 참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늦게 나마 샘터에서 그런 분들을 찾아내어 그 분들의 노력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에 감사도 하고 믿음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인물 시리즈가 벌써 열번 째 권이 나온 것이다. 이름도, 분야도 참 낯설기만 했지만,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점을 찍으신 분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고학자 '손보기 선생님'은 책 제목이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역사를 손보기 해 드립니다. 선생님의 성함과 동음어인 순우리말 '손보기'라는 뜻은 '어떤 일이나 물건에 결점이 없도록 보살피는 일'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평생을 바치신 선생님에게 그 일은 어쩌면 타고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철없는 부잣집 막내 도련님이 왜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식민 치하에서 빼앗긴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는 지를 보여준다. 지금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식민치하이기 때문에 당할 수 밖에 없는 그 억울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라를 잃은 설움 속에서도 역사를 배우고, 우리의 뿌리를 찾아 생각을 바로 세움으로써 민족의 자긍심과 정신을 이어나가려고 하였던 것이다.
2장은 '고고학자 손보기, 우리 역사를 구석기시대로 끌어올리다' 손보기 선생님은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학자이다. 그런데 왜 고고학을 연구하게 되었을까? 1964년 봄, 미국인 앨버트 모어 부부에 의해서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고, 손보기 박사에게 연락을 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구석기 유적 발굴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에는 고고학을 공부한 학자가 없었기에 외국 서적을 찾아가며 구석기 고고학을 연구해야 했고, 이로써 손보기 박사는 우리나라 고고학의 1세대가 되었던 것이다.
손보기 박사는 우리나라에도 구석기 문화가 존재함을 알려주는 '공주 석장리' 유적을 주도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를 만 년 이상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 같지만, 처음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을 당시의 그 떨림과 흥분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 것 같다. 책에서는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내가 처음 발견하는 것처럼 함께 흥분되기도 한다.
3장은 '역자학자 손보기, 역사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다' 손보기 박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란 것은 그가 바로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긍지를 가지고 있던 그 사실을 알린 분이 바로 손보기 박사였다는 사실은 큰 감동이었고, 또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그의 일생을 보면 나라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고 그 힘이 바로 우리나라 역사, 더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들어올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마음 하나로 평생 쉴 틈 없이 연구하며 역사와 고고학을 넘나들며 종횡무진했던 손보기 박사. 공주 석장리 박물관을 열면서 평생 모은 연구 자료와 유물 1만 점을 기증하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마지막을 보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 한줄 한줄을 늘려가고 고쳐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군가의 평생의 노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앞으로 역사를 접할 때면 그 숭고한 노력들이 떠오를 것 같다. 역사를 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인물을 통해 역사를 겪어나가는 것은 그 인물의 숭고한 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져 더 무겁고 경건하게 다가온다.
샘터 시리즈도 좋고, 다른 시리즈도 좋으니 이렇게 역사의 뒷편에서 묵묵히 세상을 바꿔나가셨던 분들이 더 많이 알려지기를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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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선다는 것은 학교에서도 배웠는 지 우리 아이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려의 금속활자가 세계최초란 사실을 밝히고 세계에 널리 알린 사람은 누구일까? 그분은 바로 한국고고학의 태두 손보기 박사이다. 희망을 품기 힘들었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서 일본의 식민사관이라는 환경속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독립투사들은 주권을 되찾기 위한 정치적 노력을 했다면, 학자들은 우리 머릿속에 뿌리 내린 식민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연희전문학교 다니면서 '윤동주'와 '정병욱'을 만나게 되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생활고를 겪으며 보낸 청년 손보기의 학창시절은 '우리 기쁜 젊은날'이었다. 그것은 역사학으로 발을 들여 놓게한 손진태, 이인영이란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손보기 박사의 끊임없는 유적발굴..그리고 석장리 발굴현장에서 발견한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굴되면서 우리나라 구석기 고고학을 세웠고 1세대 고고학자로 자리 매김 하게 되지요. 그뒤로 해상왕 장보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등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활을 했고 우리역사 연구를 통해서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는 사회'를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들과 여름때면 박물관을 자주 갔었는데, 그때 보았던 찍개, 찌르개, 밀개., 주막도끼, 긁개, 자르개등의 구석기 유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손보기 박사의 석장리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올뿐만 아니라 몸돌과 격지를 되맞추는 과정도 상세히 나와있어서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 역사를 손보기해드립니다 고고학자 손보기> 이책을 읽고 나니,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한결 가깝게 느껴지고 손보기 박사님과 같은 분이 우리역사를 다듬고 널리 알려주신 분이 계시다니 ..이번기회에 울 아이들에게 손보기 박사님을 알게 해준 좋은 기회인거 같아서 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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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제목을 보고 뭐지했어요 무지함,,ㅜㅜ 아이가 5학년이다보니 역사를 하는데 같이 하면서 저도 다시 공부하게되네요 이책을 같이 읽으면서 자기가 배우내용도 나오고하니 관심을 갖고 읽었어요 이런분이 계셨다니하면서,, 저역시 다시한번 우리역사를 지키기위해 문화를 알리고 지키기위해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는것을 또 깨닫네요 아이에게 왜 역사를 배워야하고 그 역사를 무시하면 안되는거라는걸 이책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ㅡㅡ 저도 모르는 많은 내용들을 알게만든 책이네요 좋은 시간이 될거네요 추천해봐요 여기서 나오는 시리즈도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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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처음 책제목을 보고 별명인 줄 알았다. 그는 국어 사전에 기록된 '손보기'의 뜻처럼 '비틀어지고 잘못 알려진 우리 역사를 보살피고 바로잡는 역할'을 해낸 지식인이었다. 역사학자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나라의 고고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일했었기에 공주 석장리 유적과 충북 제천의 점말 동굴, 단양 상시리 바위 그늘 유적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우리 눈엔 그저 돌멩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뗀석기를 박사님의 예리한 눈을 통해 유물로 다시 태어나게 된 사실은 정말 박사님이 아니었다면 긴긴 세월을 이름없이 그렇게 지내버렸을 것이다. 일본식으로 불려졌던 용어들도 많이 교정되어 찍개, 찌르개, 긁개, 자르개등의 순우리말로 불린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하게 여겨진다. 어린시절 하교하는 손보기 선생을 일본순사가 재미삼아 작은 망치를 휘두른적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당한 사실을 보고 피가 거꾸로 쏟는 것 같았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부족함없이 살았지만 일제식민치하에서 일본인들에데 당한 일은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설움으로 그의 애국정신을 더욱 꿈틀거리게 만든것 같다. 그 후 손보기선생은 붉은 피에 대항하는 뜻으로 '늘 푸르름'이라는 의미의 '파른'이라는 아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학문적 양심을 지키며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동주'와 '정병욱'은 독립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함께 해 온 그의 오랜 선배이자 친구였다고 한다. 1964년부터 1992년까지 충남 공주 석장리를 발굴하여 한반도에도 구석기시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으며, 또한 서지학자로서 고려의 금속활자가 서양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섰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학창시절 그렇게나 자랑스럽게 외웠던 이 사실이 바로 손보기박사가 이뤄낸 일이라니 그땐 왜 손박사의 이름석자를 알 지 못 했을까?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한 박병선 박사님이 생각났다. 이처럼 손보기 박사님의 이름석자도 내 머릿속에 기억해 두어야겠다. 그렇게 해야만이 그의 업적에 대한 조그만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에겐 의식있고 양심있는 학자들이 계셨다니 뿌듯하다. 우리나라를 꼿꼿하게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분들이다. 아들녀석이 공룡을 좋아하면서 화석, 지층, 화산등으로까지 관심을 가지며 고고학자가 되겠다는 작은 꿈을 갖고 있다. 고고학이라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꿈을 버리지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자신의 길을 걸으며, 불의와 타협하지않는 정신을 본받아야겠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의 권유,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 등의 영향으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의 직업들을 선호하는 편인 것 같다. 또한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아이들이 어떠한 직업을 선택하든 소신을 갖고 자신과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꼭 응원해주고싶다. 손박사님의 '역사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는다'말처럼 우리의 뿌리인 역사를 통해 배우고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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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에 태어난 '손보기'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학문적 양심을 지키며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다. 열살 무렵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일본인의 장난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소년은 흐르는 피를 닦으며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는 설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일까? 연전 시절 고학하며 알게 된 '윤동주'와 '정병욱'은 나라의 독립과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던 선배이자 오랜 친구였다. 훗날 윤동주가 정병욱에게 맡긴 공책 덕분에 쌀독에 감춰져 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랴.
'손진태 선생'과 '이인영 선생'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의식을 키우기 시작한 손보기는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시작한다.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은 우리 민족은 발전 능력이 없으며 미개하기 때문에 개화를 시켜야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천하를 호령하던 고구려의 역사와 청해진을 설치한 해상왕 장보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고려인들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사람이 그였다는 사실에 머리 숙여 감사할 따름이다.
역사학자였던 그가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 유물을 발견하면서 우리 나라의 상고사는 다시 쓰여졌다. 일본에도 없는 구석기 유물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지만 해당 관청은 세 번만에서야 겨우 발굴을 허가한다. 우리나라에 구석기가 있을 리 없다는 게 이유였다. 대한민국 고고학자 1세대인 그는 흙일꾼 차림새로 흙이 잔뜩 든 지게를 퍼나르며 장비도 없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을 오로지 책임감과 열정으로 버텨 나갔다.
보는 눈이 없는 나로써는 그냥 돌멩이와 뗀석기를 쉽게 구분할 수 없지만 책을 통해 몸돌과 격지를 되맞추는 흥미로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찍개, 찌르개, 긁개, 자르개, 새기개 등으로 쓰임새에 따라 분류된 석기와 전, 중, 후기에 따른 구석기 도구의 모양 차이도 그의 손을 통해 밝혀졌음을 확인하며.^^
식민지 하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던 그는 국어 사전에 기록된 '손보기'의 뜻처럼 '비틀어지고 잘못 알려진 우리 역사를 보살피고 바로잡는 역할'을 해낸 지식인이였다. 역사학자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나라의 고고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달려들었기에 공주 석장리 유적과 충북 제천의 점말 동굴, 단양 상시리 바위 그늘 유적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나아갈 방향과 방법론까지 고민했던 그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출세를 위해 변절을 거듭하는 지식인들 앞에서 학문적 양심을 지켜온 그의 삶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 더불어 생소했던 유물 발굴 과정과 고고학자의 어려움까지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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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기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빗대어 역사학자로서 우리 역사가 잘못되지 않도록 바로잡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겼다. 손 박사는 식민 사관을 극복하는 데서 나아가 우리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나가야 할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우리 역사에 가 가장 빛났던 시대들을 찾아 끊임없이 연구하고 우리 역사의 우수성을 밝히고자 했다. 우리 역사의 거의 전 영역에서 민족의 우수성을 밝히고자 노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