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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휴가를 남해로 다녀왔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광의 남해는 북적거리지 않아 좋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가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우연히 지나치는 길에 <남해유배문학관>을 보고는 꼭 들려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는 올 해를 넘기고 있다. 꿩대신 닭이라고 <제3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를 읽어보는 것으로도 김만중의 삶과 문학에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시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벼슬아치 네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유배를 갈 정도로 유배란 형벌은 흔한 형벌이었다. 짧게는 이십여일이었지만, 길게는 평생 절해고도의 섬에서 살아야했던 유배객들의 삶이란 고독과 절망이 주는 시간들을 견뎌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형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은 유배객들로 인하여 조선시대의 학문이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에게 닥친 고독과 절망은 학문으로 승화되어 우리나라의 값진 문화유산이 되었다. 조선 시대 한글문학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 또한 이런 유배시절의 산물이었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시절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잉태하는 과정의 김만중의 삶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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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립이 극에 달하였던 시기에 당쟁에 휘말려 남해로 유배를 떠난 김만중은 남해에서 처음으로 생생하고도 역동적인 초야의 삶과 마주한다. 부인과의 첫 편지에 남해땅을 밟을 소감에 대해 유배의 땅이라 척박하고 강팍할 것 같다는 세간의 말과는 달리 남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람을 맞으며 흙을 밟고 풀밭에 누워 자는 소탈함과 풋풋함을 보며 그들의 지난한 삶을 마주한 첫 느낌의 충격을 무척 담담하고도 담백하게 전해주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부인과의 서신만이 김만중에게 위로와 의지가 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떨어져 있는 가족과 자식에 대한 애정은 부인과의 편지에 차고도 넘친다. 편지를 통해 김만중이 글을 쓰게 되는 동기를 알 수 있는데 오로지 어머니 때문이라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김만중이 가장 먼저 쓴 글은 다름아닌 어머니를 위한 글이었다. 과거 어머니를 위해 <행장>이라는 글을 썼을 때 어머니는 다른 어떤 말도 아닌 아녀자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라는 말만을 남기었다. 유배시절을 보내며 아녀자들도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은 바로 이런 어머니의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만중은 어머니를 위한 글을 쓰며 어머니의 삶 또한 자연스레 떠올리지만, 어머니의 삶은 늘 궁금증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식을 위해 헌신과 인고의 삶을 사시는 동안 자신의 삶을 지우고 어머니란 이름만이 남은 삶을 사셨던 어머니. 김만중은 그런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을 지어드리는데 비록 김만중의 유배기간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구운몽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대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총명하고 아들을 위해 모든 희생을 짊어지고 평생을 산 어머니께서 아들의 유배생활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아마도 김만중은 어머니께 인생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소설로 어머니의 근심을 덜어주려 한 것일 터이다.
이어 남해에서 만난 이들은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한 글을 쓰고 있던 중 삶의 생생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남해를 떠나기 위해 악착같이 재물을 모으고 있는 포교 박태수와 기생 옥진의 애닯은 사랑이야기와 야망으로 아들을 훈육시켜 달라고 찾아 온 나참판의 욕망과 마주하며 핏덩어리 때 거두어 가족과 다름없는 종 호우와 아미와의 충실함과 그런 아미를 사랑하는 나참판의 아들 나정언과 장선달 댁의 며느리 아씨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는 양설규, 마지막으로 탐욕과 재물에 눈이 멀어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파락호 홍길찬의 삶들 모두 김만중에게 삶의 무상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였으며 이들이 김만중에게 문학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삶의 무상함은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었다.-p24
이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오로지 가족의 화폭이었던 김만중의 시야는 남해의 풍광 속으로 옮겨갔다. 이런 남해의 풍광은 김만중에게 현실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글로서 다가오게 하였고 김만중 문학이 탄생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장선달 댁의 아씨 이야기는 바로 사씨남정기의 모태가 되었고, 꿈을 꾸듯 살아가는 양설규는 구운몽의 주인공이다.) 이렇듯 문학은 현실을 마주할 때야 다가오는 이데아이다. 양설규가 이루지 못한 꿈을 꾸며 괴로움을 시로 토해내듯이 현실의 고독과 절망을 마주할 때 삶의 진정성을 담은 문학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김만중은 조선시대에 찾아 볼 수 없던 소설문학을 선보이며 유배지에서 깨달았던 삶의 무상함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조선시대의 초야의 삶을 담아내게 되었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를 통해 자신을 외면했던 세상을 끌어안고 사랑하는 방법을 김만중의 문학을 통해 보게 된다. 삶 속에서 절로 터져나오는 글이 주는 가치와 초야의 삶이 주는 의미를 소설 김만중의 삶을 따라가다보니 , 삶이 곧 문학이요 문학의 이데아는 곧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김만중 문학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오타가 너무 많다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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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를 읽게 된 동기는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인물이 서포 김만중이기 때문이었다. 김만중은 출생부터 순탄지 않았다. 병자호란의 발발과 조선의 패망으로 이미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자결을 하고, 어머니가 강화도로 피난 도중 배위에서 낳은 유복자이다. 그러나 그는 중앙의 명문중의 명문 사대부가태어났다.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전란으로 가세가 기울자 직접 베를 짜고 길쌈을 해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두 아들이 어릴때는 직접 가르칠 정도로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자식을 교육할 때는 자식들이 어머니를 보지 못하게 발을 내리고 가르쳤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는 아들들이 엄마의 얼굴을 살펴서 행동을 달리할까 경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엄격하게 교육받은 자식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대쪽같이 실천하는 나라의 동량이 되었다.
이 소설은 서포 김만중의 남해 유배시절의 이야기다. 김만중이 남해로 유배를 가서 죽을때까지의 삶을 소설로 엮었다. 소설에서 나라의 거물이 유배를 오니 고을을 다스리는 현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가까이 할 수도없고 멀리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가까이 하다가 죄인을 도왔다고 소문이 나면 바로 삭탈관직이 될 수도 있고 멀리 했다가 해배되어서 관작이 회복되면 유배시절의 서운함을 물어 화를 당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그러니 지방의 하급관리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에 중앙의 거물이 유배를 오면 좌불안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물며 서포같은 거물 중의 거물임에라! 소설에서 김만중은 유배길에 몸종 둘을 데리고 간다. 자신을 호위하고 바깥일을 도와줄 호우라는 남자종 한명과 집안일과 식생활을 책임질 여종한명이다. 실제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김만중의 집안이 숙종의 외척이니 유배길에 이정도는 달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김만중이 대쪽같은 사람이라 죄인된 몸으로 몸종을 둘이나 달고 갔을 것 같지 않다. 소설에서 김만중은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위해 지었던 [몽환]를을 [구운몽]이란 제목의 한글 소설로 다시 쓰고, 고을에서 첩의 간교로 본부인이 누명을 쓰고 소박당한 일을 해결해 준 이야기를 통해 [사씨남정기]를 한글로 쓴다는 설정이다.
사실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장희빈에게 빠져 인현왕후를 폐서인하고 희빈을 왕후로 올린 것을 빗대어 숙종의 성총을 밝힐 요량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장안에는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를 사철"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다고 한다. 이 노래 또한 서인 노론쪽에서 만들어서 퍼뜨렸다고 한다. 요즘말로 하면 여론 몰이를 했다는 것이다. 장다리는 물론 장희빈이고 미나리는 인현왕후 민씨이다. 이 사건은 서인 노론과 남인 소론간의 당쟁에서 비롯된 일이다. 장희빈은 남인에서 추대한 인물이고 인현왕후는 서인쪽의 사람이다. 김만중은 서인쪽 사람이니 [사씨남정기]도 인현왕후를 내쫓은 것이 나쁘다고 말하기 위해 지은 소설이다.
소설은 김만중이 한양에 있는 부인과 주고 받는 편지를 토대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형식이었다. 그런 설정은 신선하게 다가와 좋았다. 그런데 남해 유배중에 만나게 되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특히 [사씨 남정기]의 모태가 되었다는 장선달이란 인물의 집안 이야기가 그랬다. 그리고 양설규라는 인물의 설정과 이 소설에서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형식이나 법도에 얽매이는 삶이 아닌 자유로운 영혼을 그리면서 조선시대의 악습들을 꼬집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박태수의 인생도 좀 그렇다. 어쨌던 대마도로 도망가는 박태수가 현실도피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은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었다. 곳곳에 오타가 눈에 띄었다. 한마디로 "오타 작렬 !" 그리고 사소한 것이기는 하나 호칭을 잘 못 표기한 것이 많아 읽을 때 깨름칙하게 걸렸다. 예를 들면 김만중의 부인 편지에서 시아버님 제사라고 쓰거나 큰형님, 큰아주버님이라고 쓴 것들은 다 잘못 되었다. 며느리가 남편에게 시아버지를 지칭할때 그냥 아버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김만중은 위로 형님 한분 밖에 없다. 그런데 편지에는 부인이 마치 작은 형님이 있는 듯이 계속 큰형님, 큰 아주버님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자잘한 것들은 퇴고를 하고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나온 작은 실수들이다. 이 책이 초판이니 재판을 찍을 때는 다시 교정을 봐서 이런 실수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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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진정 현실을 바탕을 둔 것인지 알길없는 대작이다. 김만중이 남해로 유배가서 행적들을 정말 현실처럼 그려내고 있다. 첩과, 본처간의 다툼을 그린 소설 "사씨남정기"가 희빈 장씨와, 인형와후와의 일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긴 이 글또한 소설이라 정말 장씨 집안의 일이 허구인지도 모를일이다. 그리고 "구운몽"이라는 소설도 정말 그 근거가 양설규라는 인물이 있어 영감을 얻었는지도 알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사실여부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정말 남해의 몇가지 일어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듯 펼쳐진다. 몇해전에 가서 보았던 보리암과, 남해의 모습들이 그런 생생한 모습을 그리는데 한몫을 하였다.
글 단락단락 부인과의 서찰을 통해 큰 일들에 대해 맛보기랄까? 화두를 던져주고, 그 담으로 서술형으로 이야기들을 세세히 들려주는 구성이 독자로 하여금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찰을 읽는 즐거움도 컸다.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이 드물어진 요즘에 누군과와 편지로 주고 받는 글의 정다움이 향수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크게 포졸 박태수에 대한 이야기와, 양설규라는 사람의 이야기와, 장씨집안 며느리와 첩 채란의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제자 나정언과, 호우, 아미의 묘한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금 긴 책이기는 하지만 글을 읽는데 흥미진진하여 글을 읽는데 막힘이 없이 책장이 잘 넘어갔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것이 중간에는 너무 느릿느릿 달려가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내달리는 씩의 구성이 마지막에 너무 숨이 차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장씨집의 일만 빼고 박태수, 양설규, 나정언의 사건이 모두 해피앤딩이 아니라 아쉬웠다. 그리고 마지막의 김만중 자신 또한 너무나 처량하게 임종을 맞이한것 또한 책장을 덮으면서 왠지모를 서글픔이 밀려든다. 결국에는 김만중 또한 마직막까지 사랑하는 부인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이 제일로 안쓰럽다.
김만중은 아주 마음이 여리고,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긴 인생에서 사랑을 빼고 이야기 할 거리가 어디 있겠냐마는....
포졸 박태수와, 기생 옥진의 이야기가 가장 좀 마음을 울렸다. 사랑이 한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바꿀수 있는지 아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기생이지만 참 사랑을 할줄 알았던 옥진과, 그 큰 사랑이 남아있는 박태수의 삶을 온전히 사랑으로만 살게끔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듣고, 체험했다면 글에 대한 뜻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버릴수 없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글은 아주 없는 허구는 아니지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을 쓰기위해 남해에 정을주고, 이런저런 정황들을 조사하고, 이야기를 구상하고 했을 작가의 노고가 느껴진다.
이 책은 드라마나, 영화로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는 생각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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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를 읽고 우리들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우는 일반적인 지식은 대개가 한정되어 있다. 한 인물에 대한 업적이랄까 주요 활동 및 저서 정도이다. 솔직히 인물에 대한 성장배경이나 실제 마음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 시대적인 상황을 속 시원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로 소설이라는 힘을 빌린다면 훨씬 더 가까워지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소설작가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선물을 제공하고 있다. 큰 선물을 통해서 단단한 지식과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큰 활력소로 삼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인 서포 김만중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아는 것으로는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이라는 한글소설을 쓴 인물로만이다. 이 소설에서 전개하고 있는 내용들은 솔직히 처음으로 대하는 것으로서 많은 만남과 함께 깨우침을 얻는 좋은 기회의 독서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물론 많은 부분을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작가의 창작력으로 만든 허구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당시의 기록이나 현재의 관련 유물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작가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존경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하였던 남해로 직접 가서 작품을 구상하고 실제와 같이 표현하려는 노력을 상상만 해도 대단한 의지와 함께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3회 김만중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노력한 만큼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의 진리라 할 수 있다. 작품을 통해서 서포 김만중이 서인으로서 장옥정을 내세운 남인과의 대립으로 인하여 결국 경남 남해로 위리안치를 가서 활동한 행적들을 정말 있는 그대로 재현시켜 내고 있다. 즉 남해로 와서 죽기까지의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중앙정치에서 군림하는 위치에 있다가 실제 남해로 와서 바로 어렵게 생활하는 민초들, 특히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남긴 작품들이 바로 한글을 이용해서 쓴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이다. 김만중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후세에 이름은 남긴 많은 인물들이 그냥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 만큼의 높은 뜻과 함께 그 뜻을 실현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뤄내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포 김만중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그 정신과 행동을 거울 삼아서 내 자신도 앞으로 남은 후반부의 인생을 더 보람차게 개척해 나가야겠다는 것 다짐을 하는 시간이 되어서 특별히 의미 있는 독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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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임종욱 지음
북인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구운몽」의 저자인 김만중이 남해에 유배당해 보낸 말년을 김만중의 작품과 주고 받은 서신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소설로 승화 시켰다. 왜 서포 김만중은 남해에서의 유배 생활동안 굳이 한글 소설 「구운몽」을 집필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작가의 궁금증이 이 소설을 쓰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서인과 남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구중궁궐에서는 숙종을 둘러싸고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내세운 당파 싸움이 끊이지 않고, 인현왕후와 장희빈이라는 두 여인의 사랑과 질투가 불꽃을 튀는 동안, 저 남쪽의 한가로운 섬에서는 고요하게만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 현령과 포교 박태수가 벌이는 치졸한 자리 다툼이, 본처를 내쫓으려는 남선달 집안에서의 흉악한 싸움이 일고, 김만중의 몸종인 아미를 사이에 두고 호우와 제자 나정언이 벌이는 애증의 러브 스토리가, 시대를 잘못 만난 양설규의 사모곡이 울리게 된다.
특히, 남선달의 며느리 이소정과 아들을 낳았다고 의기양양한 첩 채란이 사이에 벌어지는 혹독한 이야기는 그 속에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대비시켜 차마 아무에게도 속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김만중의 본심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김만중과 사이가 유독 각별했다는 부인과의 절절한 편지글도 한 몫을 한다.
첫 장을 펼치고는 빽빽한 글씨에 '읍'하며 차마 끝까지 읽어낼 자신감을 상실하였던 바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차근차근 독서력을 쌓아가야 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초라한 서평을 마친다.
이 소설로 제 3회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끝까지 함께 경합을 벌였다는 「꽃밭에서 」또한 궁금해진다.
2012.11.11. 김만중을 새롭게 알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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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자주 놀러가는 편이다. 보리암도 좋고, 상주 해수욕장도 좋고, 남해 편백휴양림도 좋고, 독일인 마을도 좋고...좋은 것을 꼽자면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때마다 이정표에서 "김만중 유배지"를 보곤 하는데, 고등학교때 배운 "구운몽"의 저자가 김만중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 그냥 지나치곤 했었다. 김만중에 대해 좀 더 알게되면 저기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까?라고 생각하면서...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제 3회 김만중 문학상 대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 타이틀을 보는 순간 내가 스쳐지나갔던 김만중의 유배지가 떠올랐고, 거길 가기 위해서 이 책을 꼭 읽어야되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래서 얼른 펼쳐들었는데, 책의 표지에 김만중으로 짐작되는 선비가 바다로 난 정자에 앉아 열심히 글을 쓰는 장면이 수묵화로 그려져있다. 임종욱이라는 작가가 낯설어 살펴보니 한문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김만중에 대한 논문을 찾아봐도 되겠지만 어쩌면 이 책에서 논문에서 찾을 수 없는 귀한 정보를 많이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김만중의 남해 유배기간을 시간적 배경으로하여 쓰여진 역사소설인만큼 혹시 사실과 다른 점이 있더라도 픽션과 팩트를 알아가는 기쁨이 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실마리 역할을 이 책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이 책은 모두 15신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각 신의 시작은 김만중과 그의 아내가 한글로 서로 주고 받는 편지글이다. 각 신 내용의 액기스랄까 마중물이랄까? 김만중과 그의 아내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한글로 씌여진 마중물을 읽고 대략적인 줄거리를 파악 한 뒤 작가의 상상력이 이끄는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기 때문에 쉽다고 생각이 들지만 때로는 스포일러에 노출된 영화를 보듯이 다소 김빠질때도 있었다. 한학자인 작가가 무척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간결 명료한 문장으로 상황을 잘 묘사해 주어서 어린 학생들이 읽어도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는 김만중은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를 위해 한글소설을 쓰고, 백성을 사랑하여 유배지에서도 각종 송사를 해결하려 애쓰는 모습은 소설 속 김만중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 그의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전혀 정보가 없었던 김만중의 유배생활을 알게 해 준 이 소설은 좋은 정보와 더불어 동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앞으로 작가 임종욱을 눈여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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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이 낯익었다. 예전에 고사성어 자료를 구하다 알게 된 이름이다. 저자는 한문학 전공자로 고사성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고전 한문 관련 사전을 만들었는데, 그 중 고사성어 사전을 구입했다. 가격이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출원조차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다른 사전들과 다르게 자료로써 쓸모가 있어서 구입했었다.
당시 궁금해서 저자의 이름을 넣고 이것저것 검색해보았는데, 소설이 떠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알고보니, 저자는 소설쓰기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연구의 재능과 소설쓰기의 재능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큰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그의 최근 근황을 듣게 되었다. 바로 이 책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로 김만중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상의 이름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읽게 된 이유는 문학상의 주제인 '김만중'의 '구운몽'에 대한 즐거운 추억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전집에서 여러 고전을 읽었는데, 오락거리로 참 즐겁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구운몽'이었다. 벌써 몇 세기전의 소설이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공감을 주다니... 소위 말하는 '하렘물'의 원조격이 아닌가 싶다.
시작과 끝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의 화려한 일생을 그리되, 그 것이 모두 꿈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액자식 구성은 당시 어린 마음에 상당한 잔영을 남겼었다. 불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보면 성경에 나오는 '헛되고도 헛되도다'라는 말과 통하는 것이 아닌가.
성인이 되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저자인 김만중이 꽤 유명했던 문벌가문의 양반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그의 말년이 잘 그려져 있는데, 시골 촌민들의 그에 대한 대접에서 그의 지체가 당시 낮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이가 어떻게 불교적 색채를 띄는, 게다가 언문으로 쓰여진 통속소설을 자신의 이름 아래 남기게 되었을까.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이들은 긴긴밤을 보낼 어머니를 위한 것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왜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사씨남정기나 구운몽 같은 소설을 적게 되었는 지가 잘 드러나 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돌아가시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소설을 탈고한다.
그 외에 이 소설에는 남해의 풍속이 짙게 묻어있다. 아울러, 고전에 해박한 저자의 경험을 반영하듯 당시 생활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점이 눈에 띈다. 여러 경쟁작들을 제치고 대상을 타게 된 데에는 그러한 점도 반영되었다고 한다.
구운몽, 사씨 남정기를 읽어본 사람들은 읽어보면 꽤 재미있을 거다. 또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면서 일당전제화로 나아가고 있었던 당파싸움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환국에서 밀려나 유배를 온 저자의 모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연을 지닌 중인, 하층인 등을 구체적으로 등장시키면서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팩션을 즐겨 읽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사실 그냥 소설로써도 꽤 재미있다.
옥련의 이야기는 정말 슬프면서도 신분제 사회의 아픔을 다시 되새기게 한다. 그를 사랑했기에, 결국 모든것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도 역시 그러하다. 호우와 아미가 결국 작 중에서 이어지지 못한것은 참 아쉽다. 이 역시 신분제 사회의 아픔과 닿아있다.
졸필이라, 제대로 책의 맛을 전하지 못할까 걱정된다. 좀 더 읽어보고 추후 고치고 싶다. 여하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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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왜 김만중은 생의 끝자락에 소설을 썼을까? 그것도 한글로 된 소설을. 저자는 이 두 가지 궁금증에 스스로 답을 하고자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를 집필했다고 한다. 나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학창시절 시험에 대비해 외우기만 했지 실제로 읽어본 적은 없다. 양반이, 그것도 높은 관직에 있었던 인물이 어찌 ‘언문’으로 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실은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 소설은 나의 그런 무관심을 질책하는 듯 했다. 유명하다고 해서 다 읽어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의 소중함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시대에 한글로 된 소설을, 그것도 지체 높으신 양반이 쓴 한글 소설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저자는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기에 스스로 그 답을 얻기 위해 위대한 상상력을 동원한다. 소설의 주인공 서포 김만중은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를 내세운 남인과 서인의 대립 속에서 서인의 편에 서있던 인물이다. 그의 형님의 딸, 즉 조카가 숙종의 초비인 인경왕후였기에 힘있는 외척이었고, 인경왕후가 죽고 인현왕후가 숙종의 후비가 되면서 그 편에 섰다가, 장옥정을 내세운 남인과의 대립으로 남해에 위리안치 되었다. 소설은 그와 그의 아내의 서신, 그 서신에 관한 일들이 서술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남해로 오는 장면부터 그가 죽기까지의 일화들이 주된 줄기를 이룬다. 일화와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에서 추출된 재료를 극화한 것이라 한다. 김만중이 남해로 와서 민초들의 삶, 특히 여성의 비참한 삶과 신분의 장벽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하곤 하는 민초들의 현실에 눈을 뜬다. 또한 민초들 위에 군림하며 그들의 고혈을 짜내는 관리들의 비리들이나 그 둘 사이에서 자신이 가진 힘을 써 약한자들을 돕는 인간적인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소설 속의 김만중은 참으로 자애롭고 현명하며 열려있는 인물이다. 그가 죄인의 몸이 되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채 먼 타지에서 어머니와 아내를 걱정하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은 터라 그의 학문은 경직되지 않았고, 어머니를 보며 여성의 삶과 약자의 삶을 돌이켜 보기도 하고 ‘글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읽은 사람의 것’ 이라는 가르침으로 인해 좀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한글’로,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소설’ 이라는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여러 편으로 나뉘어 서로 물고 뜯던 당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인물이 이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을까. 그 안에서 결국 고통을 당하던 것은 힘없는 민초들과 그 보다 더 힘이 없던 여인들이 아니었을까. 김만중은 가족들 곁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 유배지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그러나 그의 훌륭한 소설은 지금껏 남아 그와 그의 어머니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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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작인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서포 김만중이 인생의 말년을 문혼으로 불태웠던 곳인 남해를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남해의 배경묘사가 등장할 때마다 마치 내 앞에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영하는 갈매기떼들이 보이는 듯하여 서포가 지냈던 남해의 그 곳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비록 죄인의 몸으로 유배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종의 개방적인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으나 서포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에게 있어 유배지가 남해였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고 또 그 곳에서 만난 인물들이 그의 문학적 사상에 영향을 주어 그의 뛰어난 언문작품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에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의 저자 임종욱은 유려한 한문작품을 쓰던 서포가 어떠한 연유로 한글로 된 작품들을 집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고 그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써내려갔다고 말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의 '그 생각'에 나도 큰 공감을 던지고 싶었다. 아직까지 왜 김만중이 언문작품을 썼는지에 대한 확증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에서 풀어나간 저자의 이야기가 가장 가까운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고 또 그랬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마지막 챕터에서 김만중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말이다. 서포 김만중이 한문이 아닌 한글로 소설을 썼던 이유로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대비시킨 사씨남정기를 지어 숙종에게 보임으로써 인현왕후롤 복위시켰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하는데, 이러한 목적이었을지라도, 장희빈의 그 간계함을 모든 백성들과, 그리고 후손 대대로 알려지게 하기 위해 한글로 작품을 남겼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한양에서 벼슬아치들과만 지냈을 그가 남해로 유배오면서, 남해의 민초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로인해 민초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한글로 된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이 소설 속 이유가 더욱이 마음에 와닿는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에 김만중의 인품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에서의 김만중의 성품이라면, 위와 같은 이유가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또한 이 작품 속 김만중은 한글의 아름다움에도 감탄을 한 바 있다.
비록 작가의 입을 빌린 것이나 그 당시의 김만중도 이러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에서야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한자만 갖고는 풍부한 내용,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한글로써만 표현될 수 있는 수많은 감각들이 많다는 것을. 하지만 그 당시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러한 한글의 훌륭함과 아름다움을 일부러 무시했을 것이고 송강 정철이나 허균, 김만중과 같은 문인들이 없었다면 옛 조선시대의 고전문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절대 주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더더욱 한글작품을 남겨준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이렇듯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아늑한 남해의 배경에 더해 차분하고 인정넘치는 김만중이 풍겨내는 분위기가 읽는 자로 하여금 평온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의 주변인물들이 자아내는 긴장감은 작품의 재미를 더욱 극대화시켜주었다. 특히 각 챕터의 시작과 끝을 김만중과 그의 부인이 주고 받는 편지 형식으로 꾸며내어 더욱 애틋한 분위기를 이끌어냈고, 챕터 초반에는 김만중의 편지가 해당 챕터의 내용을 미리 간추려 보여주고, 또 말미에는 부인의 편지가 내용을 정리해주는 식이라 소설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유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 듯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출판사측의 너무 잦은 오타가 글의 흐름을 방해했고 좋은 작품을 조금만 더 성의를 다해 만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소설 초반 박태수라는 인물의 이름이 박태수와 박대수로 번갈아 등장하여 둘 중 어느 이름이 정확한 것인지 혼란이 왔고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를 '웃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로 쓰는 등의 사소한 실수가 너무 자주 보여서 글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오타들이 아쉬운데 작가의 안타까움은 얼마나 클 것인가. 다음 번에는 이러한 오타들이 수정 보완된 완벽한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를 마주하고 싶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에서는 서포의 여러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그의 언문작품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집필배경을 다루다보니 서포 자신보다는 그의 주변인물들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있고 또 오히려 김만중보다도 그의 주변 이야기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구운몽의 토대가 되는 양설규, 장선달 댁 종 덕보를 매개로 하는, 사씨남정기의 토대가 될 며느리 이소정과 첩 채란의 에피소드는 물론, 남해에 함께 동행한 호우와 아미, 그리고 나정언의 엇갈린 삼각관계, 박태수와 옥진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등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흠뻑 빠져들면서 정신 없이 읽어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인물들의 결말에 여운을 남기면서 더욱 애잔한 마음이 들게 했다. 아미와 나정언을 오해하고 저 멀리 떠나버린 호우,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것도 모른채 호우를 기다리겠다던 아미는 어찌 되었을까. 김만중의 위험한 희생을 어렵게 부탁했던 박태수, 그 아이 같이 변해버린 옥진이를 데리고 정말로 자살을 택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대마도에 도착해서 옥진이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줄 수 있었을까. 양설규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했던 그 양반집 규수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채란의 간계가 확인되었다고해서 장석주와 이소정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여운이 깊게 남으면서 책을 덮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내리는 상업성 짙은 작품의 류는 아니라고 본다.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했지만 안타깝고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예 김만중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볼 때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서 저자의 김만중에 대한 애정으로 탄생한 이 작품이 많은 독자들에 의해 읽혔으면 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내는 에피소드가 긴장감과 재미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인물 인물마다의 매력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인해 다시 한 번 김만중과, 김만중의 작품들이 재조명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많은 사람들이 김만중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또 그 작품에 남긴 그의 뜻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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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남해 유배시절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서포 선생이 왜 한글로 소설을 썼을까에 의문을 품고 남해에 유배와서 사망하시기까지의 3년 세월을 재구성한다. 그런데 전체 15장의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서포 선생과 부인 사이에 주고받은 서신(편지) 형식을 취하며 선생의 대표작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모델이 되는 허구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덕분에 소설 읽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서포 선생의 남해에서의 유배 생활을 상상하며 소설 창작동기를 추적하는 작가, 이런 작가가 왜 소설에서 서신 왕래 형식을 취했으며 왜 이런 인물들을 설정했을지를 추적하는 독자인 나. 이렇듯 아름다운 남해를 배경으로 두 겹의 추리가 펼쳐졌다. 즐거웠다.
서포 선생을 생각해 볼 때 의아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친가로는 예학의 대가 김장생의 증손자이며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의 작은 아버지이고, 외가로는 윤두수와 선조의 딸인 정혜옹주의 후손인 선생은 당시 조선에서 으뜸가는 명가의 선비였다. 그런 선생이 불교사상을 담은 소설을 썼다는 것, 그것도 당시 양반들이 ‘암클’이라고 천시하던 한글로 썼다는 것, 자신의 소설과 시에서 여인을 주인공이나 화자로 등장시켰다는 것. 이는 실로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선생의 놀라운 업적은 말년 3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남해 유배시절에 말이다. 이에 우리는 궁금해진다. 과연 서포 선생의 남해 유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는 누구를 만나고 무슨 경험을 한 것일까. 여기에 남해란 공간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작가는 서포 선생이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맑고 아름다운 남해에서 조선의 민중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질곡을 생생하게 목격한 덕분에 이런 위업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듯하다. 소설 전체에 걸쳐 서포 선생은 남해에서 살아가는 남녀노소 사농공상 빈부귀천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며 유학자 한양 양반의 좁고 고루한 시야를 버리게 된다. 지난 유배지 선천에서는 한시를 많이 짓던 서포선생은 이제 아름다운 남해를 훨훨 다니시며 베짜는 아낙의 노래, 바닷가 어민들의 노래와 농민들의 두레 품앗이 노래를 듣고 민가(民歌)를 다듬고 기록한다. 여기에서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한문학을 숭상하는 양반들을 질타하고 한글 문학을 높이 평가하던 서포선생의 한 모습이 작가를 통해 그려진다.
내가 왜 이 두 소설을 언문으로 썼는지 부인은 아시오. 나는 도성에 살면서 항상 이 나라 조선의 백성임을 자처했었소. 그러나 그것은 입 속의 말뿐이었소. 이곳 남해에 와서 나는 비로소 조선의 백성이 되었소. 백성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백성들이 하는 말을 하고 살았소. 이곳에서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사람들은 벼슬아치도 아니고, 양반 사대부들도 아니고 백성들이었소. 그들이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있는 존재인가를 비로소 깨달았소. 그러니 그들이 읽고 쓸 수 있는 글로 소설을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다. - 본문 334쪽에서 인용
‘유배를 왔어도 그들은 여전히 벼슬아치(본문 278쪽)’인 다른 유배객들에 비해 이런 선생의 깨달음은 더욱 값져 보인다. 이렇듯 남해에서 선생은 거듭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남해라 해도, 늘 베짜는 아낙의 노래에 장단 맞추고 농부의 막걸리 얻어 마실 한가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관에 의해 억압받는 박태수와 옥진의 안타까운 사연을 목격하고 이에 분노에 차서 고발하는 서포 선생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아들을 낳지 못한 죄 아닌 죄로 궁지에 몰린 이소정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서포 선생의 모습도 그린다. 시대와 현실과 불화하는 독특한 인물인 양설규란 인물도 서포 선생은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모두가 가엾은 조선의 백성들. 서포 선생은 이들의 삶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보며 쉽게 잠들지 못하고 고민한다. 이런 선생의 고민은 명작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의 창작으로 승화되어 우리 국문학사에 길이길이 남게 된다.
남해 유배생활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목격하고 이를 작품으로 남기면서 서포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보다 높은 경지에 속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난다. 민가를 기록하면서 우리글의 소중함만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이소정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주면서 유학자로서 본처를 제자리에 두는 질서 재건만 추구한 것이 아니다. 어머니 윤씨 부인을 위해 한문으로 쓴 <몽환>을 한글 장편 <구운몽>으로 고쳐 쓰면서 단순 효심으로 사모곡(思母曲)을 쓰려 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박태수나 덕쇠 같은 힘없는 천민들, 옥진과 이소정, 어머니 윤씨 부인, 자신의 아내와 같은 가엾은 여인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통해 성숙한다.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서포 선생이 부인과 주고 받는 서신 형식으로 이 소설을 구성한 이유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든다. 서포 선생은 당시 사대부 남성들과 달리 인간 대 인간으로 부인을 대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그의 성정상, 선생은 그럴만한 사람이었다. 남존여비에 얽매이지 않고 같은 인간 존재로 부인을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 선비와 여인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사람. 아집 없이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열린 사람. 아마도 작가는 서포 선생을 그런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형식으로 소설을 구상했을 것이다. 덕분에, 한 명의 여인인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살아 숨 쉬고 고민하는 한 남자로 서포 선생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편지를 받고, 내가 답장을 쓰는 것 같았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소설 제목에 걸맞게 독자인 나 역시 잠들지 못하고 이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소설 자체로만 보면 솔직히 문학적 향기가 강한 편은 아니다. 너무 작위적 인물 설정도 보이고 현대적 대사도 눈에 종종 거슬린다. 하지만 내겐 한문학자이신 저자분이 공부와 연구를 통해 논문이 아닌 소설로 한 인물을 되살려 내는 과정 좇아가기가 참 재미있었다. 처음에 남해에 도착해서 박태수를 만나 마치 셜록 홈즈처럼 박태수에 대한 모든 것을 추리해내는 장면, 저자는 서포 선생의 인물에 대한 관찰력을 드러내어 그가 얼마나 인간에 관심이 많은가, 하는 소설가적 자질을 미리 드러내 주신다. 이거 흥미롭다. 또한 저자분은 <구운몽>의 창작지를 놓고 선천설과 남해설의 의견이 나뉘는 현재 연구 상황을 반영해서, 선천 귀양시절에 한문 단편으로 쓴 <몽환>을 남해에서 한글 장편으로 재창작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렇게 이 소설을 통해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어떻게 한 편의 소설로로 버무릴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되어서 내게 이번 독서는 아주 즐거웠다. 흥미로운 책을 소개해 주신 드림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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