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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도련님의 시대는 불어판으로 먼저 접했기에 언제나 숙제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어 발음이 알파벳으로 구현됐을 때는 읽기 난감하더라고요. 외국어로 읽게된 책이라 와닿는게 적었습니다. '언젠간 이 책의 한글판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세미콜론에서 페이스북으로 표지 고르기 이벤트를 할 때 출간소식을 알게되서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의 첫 부분에 저는 이미 도련님의 시대를 프랑스어 판으로 훑어봤다고 썼습니다. 거기서 제일 거슬렸던 것은 일본이 서양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이 아니고 안중근 의사의 일화였습니다. 우리나라 판에서는'의사'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프랑스어판에서는 테러리스트(직역)로 번역해놨더라고요. 아무래도 두나라 간의 역사를 번역자가 잘 알지도 못했을거 같았고 그 뒤로 꼼꼼하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다음에 뭐라고 번역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선조들의 상처를 상기할 수 있는게 바로 역사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판을 읽어보고 이 작품에 대해 오해했던 것을 말끔하게 풀 수 있었습니다. 번역의 중요함도 알았고요. 그것은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읽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는데요. 역사의 중심이 되는 사건에서 한발짝 물러나 작가가 이야기와 대등한 위치에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간혹 창작을 한 사람이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고(즉 고증이나 사료, 자료없이 임의로 이야기를 구성) 역사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이야기에 무작정 빠져들어 이야기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작품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칭찬일색인 책의 띠지에 이렇게 공감한 작품도 처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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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가 도련님을 쓰게 되는 이야기를 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빌어 당시 메이지 말기 시대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여러 군상들을 그만큼의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일본에는 메이지 시대가 유럽의 벨 에포크에 대비되는 평화의 시대라고 인식하는 모양인데,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일제 치하가 되기 직전의 혼란기이니만큼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상상조차 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러일전쟁, 조선합병 등은 일본 내지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물론 맥주집에서 시국을 논하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은 그때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하루의 벌이와 미래와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격변 한 가운데에 있었지만, 심지어 영국 유학 시기를 인생 최악의 시기로 꼽을 정도로 그 자신의 재능과 그에게 주어진 기대와 시대 그 자체와 불화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불화가 개인의 고민일 정도로 사실 평화로운 시대였던 것도 맞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개화기에서 조선 합병 까지의 시기가 한세대로 생각되지만, 1860년대에 있었던 메이지유신에서 40년이 지난 1900년대 초반의 일본은 벌써 2세대가 지나 있는 셈이다. 당시의 짧은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미 과거의 막부 시대는 우리로 치면 625적 처럼 먼 옛날 이었으며, 일본에는 이미 충분히 '개인'이 발달해 있었다. 그런 시대와 불화하는 개인의 총화가 다시 그 메이지 시대 말기를 구성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라 볼 수 있다. 신여성, 협객, 유학파 고등 경찰, 정치가, 그리고 각기 처지가 조금씩 다른 학생들...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것 같은 주변에 별난 인물들이 소세키 집에 와서 한바탕씩 이야기를 쏟아놓고 가는 그런 환경에서 도련님의 이야기를 다듬어 갔다. 소설보다는 수필이요 개인의 일기 같았던 '고양이...'에서, 그 시대와의 불화하는 개인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도련님'으로 발전해간 것이다. 그 이야기가 근대적인 사소설이 나쓰메 소세키에서만 나왔다는 영웅담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대에 다른 많은 문인들이 소설과 문학을 고민하며, 자연주의 소설이니 사실주의 소설이니 (파계라는 소설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명작이란다)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정변 이후 40년이 지나서 때가 무르익어 문화적인 역량이 꽃피워간 시기, 그러나 차츰 전쟁에 휘말려가며 변질되어가는 시기, 개인이 발달해갔지만 또 전체주의에 휘말릴 그럴 역사가 5권까지에 계속될지, 아니면 그 직전에 멈출지는 더 봐야 알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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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에 이 책을 사놓고, 1권을 읽다가 말았다. 몇 번이나 다시 펼쳤는데, 그때마다 작은 글씨에 눈의 피로를 감당할 수 없었다. 머리 식힐 겸 시작했는데, '왜 진작 안 읽었을까'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여전히 글씨 크기가 진행을 방해한다. 결국 2권까지 읽다가 말았다. 두고두고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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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40 너울치는 사회에서 흔들리는 ‘지식인’ ― ‘도련님’의 시대 1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가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10.26. 11000원 세키가와 나쓰오 님이 글을 쓰고, 다니구치 지로 님이 그림을 그린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세미콜론)는 일본 정치와 사회와 문화에서 크게 너울을 치던 무렵을 그립니다. 다만, 이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일본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크게 너울치던 때에 ‘글 쓰는 사람’으로 살던 여러 사람 이야기를 빌어서 ‘일본에 어떤 너울이 쳤는가’ 하는 실마리를 풉니다. ‘메이지’라고 하는 물결이 잠들면서 서양 문화와 문명으로 일본이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나쓰메 소세키나 모리 오가이나 이시카와 다쿠보쿠 같은 사람을 빌어서 그립니다. 아마 한국에서도 ‘한국 사회 개화기’를 그무렵 ‘글 쓰는 사람’을 빌어서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 개화기에는 어떤 ‘글 쓰는 사람’을 빌어서 이야기를 빚을 수 있을까요? 최남선이나 이광수나 서정주 같은 사람을 빌어서 이야기를 빚을 만할까요? 심훈이나 윤동주나 김유정 같은 사람을 빌어서 이야기를 빚을 만할까요? 주시경이나 김두봉은? 이효석이나 김동인은? 모윤숙이나 나혜석은? 홍명희나 김교신은? “무턱대고 서양 흉내를 내려고 해도 그게 그리 쉬운가. 흉내를 낸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13쪽) ‘일본인은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술을 좋아한다. 그 전통은 메이지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21쪽)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를 이끄는 일본 작가는 아무래도 ‘나쓰메 소세키’입니다. 〈도련님〉이라는 작품을 빚은 사람이 바로 나쓰메 소세키이고, 이 만화책을 이끄는 이름도 ‘도련님’입니다. 이제껏 일본은 도련님(메이지 시대) 같은 나라요 사회요 문화였으면, 앞으로는 도련님은 저만치 뒤로 물러서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으로는 샌님 같은 도련님이 아닌, 씩씩하고 밝으며 다부진 새로운 젊은이가 일어선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일본 사회에서 ‘저무는 메이지 시대’를 마지막으로 기리면서 고이 떠나 보내려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면서도 떠나 보내야 하는 옛 시대를 아쉽게 그리워하는 책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메이지’나 ‘근대’나 ‘개화’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라든지 조선 시대라고도 어느 한때를 나누곤 합니다만, 이렇게 ‘시대를 가르는 잣대’는 어떤 사람 눈길일는지 생각해 봅니다. 집에 ‘하인’을 두면서 지내는 사람들로서는 ‘천황’이 바뀌거나 정치·사회 얼거리가 바뀔 적마다 여러모로 소용돌이를 겪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인 자리에서 사는 사람’은 천황이 바뀌든 서양 군인이 들어오든 식민지 사회가 되든 언제나 똑같이 ‘하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소작농은 조선 사회에서도 소작농이었고, 개화기에도 소작농이었으며, 식민지 사회에서도 소작농이었어요. 바깥에서는 정치나 사회나 문화가 너울을 친다지만, 막상 ‘나라를 버티거나 받치는 바탕’이 되는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어떠한 너울도 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도련님’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살며시 보여준다고 할 텐데, 이와 달리 《오싱》 같은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깊은 멧골에서 살다가 읍내로 식모살이를 나온 ‘오싱’한테는 ‘너울치는 사회’는 아무것도 아니며 느낄 수조차 없는 대목입니다.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기저귀를 빨아야 하는 어린 오싱한테 근대나 개화란 무엇일까요? “소설은 말이야. 체념했던 일에 거창하게 미련을 부리거나, 머리로 뀌는 방귀 같은 거야.” “머리로 뀌는 방귀. 음,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피가 끓는 성격이라곤 하지만 교사니까 다소 지식은 갖추고 있고, 결말에선 악당을 던져버려야 속이 후련하겠지.” (46쪽) ‘소세키의 병은 근대사회에서 비로소 자아에 눈뜨게 된 일본인의 고민, 또는 서구를 증오하면서도 서구를 배워야 했던 일본 지식인의 딜레마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52쪽)
너울치는 사회에서 흔들리는 ‘지식인’을 재미나게 보여준다고 할 만한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입니다. ‘도련님(지식인)’ 눈높이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도련님 자리에서 사회를 맞이하며, 도련님 걸음걸이로 새로운 사회로 접어듭니다. 이리하여, 도련님은 늘 도련님으로 있습니다. 도련님은 하인이 어떤 삶을 꾸리는가를 하나도 모르고 조금도 알려 하지 않습니다. 도련님은 인력거꾼이 어떤 살림을 꾸리는가를 하나도 모르고 조금도 알려 하지 않습니다. 도련님은 소작농이나 시골 농사꾼이 어떤 마을을 꾸리는가를 하나도 모르고 조금도 알려 하지 않습니다.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에서 ‘소세키 마음’을 들어서 말하는 대목처럼, 너울치는 사회에서 일본 지식인은 “근대사회에서 비로소 자아에 눈뜨게 된 일본인의 고민, 또는 서구를 증오하면서도 서구를 배워야 했던 일본 지식인의 딜레마(52쪽)”를 품습니다. 너울치는 사회에 발맞추어 제자리(지식인 자리, 또는 도련님 자리)를 지키는 데에는 마음을 쓸 줄 알지만, 이웃이나 둘레를 살피는 눈길은 매우 얕습니다. “보기 드문 권총을 소지하고 계신데 그 총은 매우 부정확한 물건입니다.” “네?” “회전식으로 하시죠. 아이버 존슨 사의 총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표적도 잘 골라야죠.” “뭐가요?” “작년에 조선국을 보호화, 대놓고 말해 속국화하려고 애쓴 건, 야마가타 님이 아니라 이토 님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174쪽) 《‘도련님’의 시대》를 보면 ‘안중근’이라는 사람이 살몃살몃 나옵니다. 일본사람은 안중근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한국에서 바라보는 안중근 ‘의사’와 달리, 일본에서는 ‘암살자’나 ‘살인자’로 바라볼 수 있겠지요. 일본 사회에서 수많은 지식인은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며 군국주의로 뻗는 일을 기뻐했을 수 있고, 전쟁으로 얻어들인 재산(그러니까 이웃나라한테서 빼앗은 재산)으로 일본 사회를 북돋운다면서 반길 수 있습니다.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듯이 여러 목소리를 골고루 들려주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웃(남)’ 일에는 마음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너울치는 사회에서 스스로(도련님 스스로) 살아남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몸짓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 끙끙 앓을 뿐입니다. ‘소세키뿐만 아니라 메이지의 지식인들에게 아시아는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구를 규범으로 삼은 근대화의 파란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요동치는 자아의 확보에 매달렸다.’ (176쪽)
도련님은 못 이깁니다. 도련님은 시대에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너울치는 사회에서 지식인은 아무것도 못 이기고 아무것도 못 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저 너울에 따라 흔들리면서도 안 넘어지려고 용을 쓸 뿐입니다. 그러면, 도련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너울치는 사회에서 어떻게 안 넘어질 수 있을까요? 바로 도련님 둘레에서 도련님을 지켜 주는 수많은 하인과 소작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로 치자면 수많은 노동자가 사회와 나라와 정치와 경제를 떠받칩니다. 수많은 비정규직이 이 나라를 지켜 줍니다. 커다란 기업이나 재벌이 이 나라를 버티거나 먹여살리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이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와 농사꾼’이 이 나라를 버티거나 먹여살리지요. 다국적기업이 한국에서 잇속만 챙기고 빠져나간들, 몇몇 재벌기업이 수출을 못한들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회와 공장과 회사와 식량을 버티도록 밑바탕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다만, ‘밑바탕 사람들 목소리’를 귀여겨듣거나 눈여겨보는 도련님(지식인)이 매우 드물거나 거의 없을 뿐입니다. 너울치는 사회에서 도련님은 흔들리지만, 밑바탕 사람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제몫을 씩씩하게 합니다. 전쟁이 터지든 식민지가 되든 농사꾼은 봄이면 씨앗을 심습니다. 농사꾼이 씨앗을 심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굶어서 죽어요. 전쟁이 터지든 식민지가 되든 어머니는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어머니가 아기한테 젖을 물리지 않으면 새로운 어린이가 자라지 못하고, 새로운 어린이가 자라지 못하면 한 나라나 사회는 곧바로 무너져서 사라지겠지요. “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시대라는 것에 질 수밖에.” (224쪽)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지식인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서 ‘밑바탕’을 볼 줄 알았다면, 또 이녁 스스로 밑바탕이 되는 삶을 조금이라도 가꾸어 보았다면, 그리고 이녁 스스로 손에 호미나 낫이나 기저귀를 쥐고서 ‘살림 가꾸기’를 해 보았다면, 사회가 아무리 너울치더라도 스스로 튼튼하게 서거나 씩씩하게 살아가는 길을 한결 슬기로이 헤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넘쳐나는 새 지식을 마주하면서 넘쳐나는 새 지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놓고 망설이기만 하니까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넘쳐나는 새 문명을 맞닥뜨리면서 옛 문명을 차마 놓기 어려우니까 몸이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아기는 늘 아기이니, 어머니는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를 살뜰히 보살핍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바뀌어도 농사꾼은 늘 봄에 씨앗을 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둡니다. 고이 흐르는 삶을 바라보는 사람은 흔들릴 일이 없습니다. 고이 흐르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바라보지 않는 ‘도련님(지식인)’ 자리에만 머문다면 언제나 흔들리면서 휩쓸리는 가랑잎 같은 모습이 됩니다. 4348.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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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설 대망시리즈 중 하나인 '언덕위의 구름'을 접한 기억이 난다. 일본의 소설가 시바 료 타로가 표현한 메이지 일본의모습, 그는 그 시대를 '가난했지만 유례없는 낙천주의가 나라를 휘감았다' 라는 표현으로 그만의 메이지를 묘사했다. 허나 근대의 일본을 묘사한 그 소설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우경화의 이미지를 간직한 작품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소설 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 대부분이 군인들이며,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있 어서도 당시의 일본은 어쩔 수없이 군국주의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라는 분위기의 글을 작 품에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덕위의 구름은 강철과 군함 그리고 희생속에서 외쳐진 '만세'의 의미에 대한 그만 의 주장을 엿보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대하소설로서, 그 당시의 이미 지를 엿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의 역활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주고싶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메이지를 표현한 시대물중 이 도련님의 시대가 가장 한국인에게 적합한 작품 이라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위의 제목과 같이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등으로 메이지 문학 의 한 기둥으로 이해되는 나츠메 소세키이다. 그리고 총 5권의 이야기를 그려 나아가는 사람들 의 면면을 살펴보면 군인보다는 문학자, 소설가, 민권 운동가, 무정부주의자 같은 당시의 문인 들이 그 중심을 이루어, 당시의 메이지를 표현한다. 그렇기에 도련님의 시대에 표현된 메이 지는 일본의 겉모습이 아니라, 더욱 세밀한 내부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확연히 다른 과거와 미래의 모습이 충돌하는 메이지의 시대 속에서, 나츠메 소세키는 '가짜 서양화'에 매달려 스스 로의 장점을 포기하는 일본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문하생 뿐만이 아니 라, 앞으로 자신과 더불어 일본의 문학을 대표할 많은 문인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맻음은 물론, (아마도 만화의 극적인 표현을 위한 픽션이라 생각되지만.) 심지어는 앞으로의 미래 일본 의 역사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올 도조 히데키나, 안중근과 같은 역사적 인물과의 접촉에 대 한 내용도 작품에 녹아있어, 나름대로 일본인 뿐만이 아니라,한국인도 이 작품의 사실주의적 내용에 그다지 거부감을 품지 않을 것이라는 감상도 든다.
게다가 이 작품의 저자가 '다니구지 지로' 라는 것도 나에게 있어서는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 다. 무엇보다 사실주의를 추구한 저자는 그 명성에 걸맞게 이 책을 '시대물'로서 중우하고 꽉 차게 묘사했다. 그렇기에 도련님의 메이지는 읽기 버겁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흥미롭기도 하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메이지 시대, 비록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서, 크고 중요한 역활을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름없이 사라져 갈 만큼 초 라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그렇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역사에 흐름 속에서 자신만 의 인생을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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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스피드감보다는 밀도가 있는 만화가 좋다.
이 만화가 꽤 그렇다.
가끔가끔 폭소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그림도 좋고, 일본인의 입장에서의 근대를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좀 더 치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대와 나쓰메에 대한 작가의 재해석이 좀 더 치밀하게 들어갔으면 더 볼만했을텐데... 다음 권들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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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나쓰메 긴노스케
소설을 재미나게 읽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을까..소세키의 이름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련님>을 재미나게 읽고 나서야 관심을 두게 된 책이었다. 마침 생일선물로 받고 싶다는 바람을 들어준 고마운 지인 덕분에 소장하게 되었는데... 정작 미루다미루다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한 번 시도를 했던 것 같다. 다만 <도련님>을 읽은 지 한 참 후라 잘 읽혀지지 않았던 기억..선물로 받고 시간이 너무 지난탓에 활자 크기가 부담스러워진 것도 게으름을 피우는 이유가 된 것 같고. 다시 <도련님>을 읽고 난 덕분에 이제는 <도련님의 시대>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시작했다.일본 메이지시대를 워낙 모르다 보니, 배경과 등장 인물들은 집중하기 쉽지 않아..'읽어'내는 걸로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도련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듣는 이야기는 즐거웠다. 우선 허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소설이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 반가웠다. 소세키선생이 술에 약하고..심지어 주사까지 있다는 에피소드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 기운에서 비롯된 제목이 '도련님' 일 줄이야... 어느 정도의 상상이 더해진 이야기겠으나, '도련님'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육성으로 들었던 이들은 즐거운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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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기초로 하여, 아니, 도련님을 쓰는 나쓰메 소세키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도련님의 시대`는 나쓰메 소세키를 미화하거나 하기보다 당시의 시대상황과 함께하는 나쓰메 소세키를 표현한 듯 보입니다. 그 시대상황이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시기이지만, 그냥 만화책으로만
봐야겠지요.단, 끝 부분에 20여명의 시대 인물이 함께 등장하는
마치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같은 한 컷에 등장하는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
메이지 38년, 마사무네 홀이란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 비어홀에서, 소세키의 주사에 의해 싸움이 벌어지고, 이에 연관되어 호리시로(협객), 모리타(학생), 아라히타(직공), 오타(인력거꾼 겸 메이지대 학생, 유도3단) 5명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함께 하루를 보낸다. 술에서 깬 소세키는 책임감을 느껴 유치인들의 신병을 인수했고, 비어홀의 기물파손비 40원을 지불한다. 이후, 소세키 집에서 그들 5명은 어울리게 되고, 그런 가운데 `도련님`의 소설 구상을 한다. 연애나 사회주의등과는 관련없는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로 에도 토박이에 몸집은 작은 꽤나 억센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교사로, 어느정도의 지식을 갖춘 무도에도 조예가 있는 그런 인물로..
소세키는 메이지 대학에 출강하기 위해 걸어가다가, 경찰과 다툼중인 오타, 호리 시로를 만나, 그들을 대신해 보증하여 무사히 잡히지않고 풀려난다. 그리고, 니콜라이 성당까지 같이 걸어가서 2사람에게 구상중인 내용의 일부를 설명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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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카와 나쓰오가 스토리를 쓰고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작품 「도련님의 시대」를 봤습니다. 시대적 배경 1905년은 우리에게는 을사늑약의 해입니다. 러일전쟁에서 이겼다고 일본이 한껏 폼재던 시기이지만 전쟁 배상금 협상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정작 보통 일본인의 삶은 몹시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한제국 치하의 우리 민족은 더욱 피폐했지요.
상당히 차분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시대상과 등장인물을 묘사했습니다. 서구에 반감을 가졌던 나쓰메 소세키가 소설 「도련님」을 처음 구상했을 때 주인공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백인 교사를 혼쭐내는 내용을 계획하고 주변인들에게 얘기해줍니다. 에도 출신 대학생은 환호하며 좋아하지만 막부 무사 출신 건달은 조심스럽게 의외의 이야기를 합니다.
건달이지만 의협심이 있고 무사 계급의 자긍심을 간직한 그는 대학에서 서양인 교수의 강의를 청강했습니다. 영국인이지만 일본의 문화를 더 좋아해서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일본에 귀화한 교수는 일본이 군국주의화 되면서 유학파 일본인 교수를 쓰려는 대학 당국의 권고로 퇴직하게 되고 얼마 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채용된 사람이 나쓰메 소세키였습니다. 이 일화로 인해 소설 「도련님」 주인공의 성격과 내용의 방향이 바뀝니다.
안중근과 나쓰메 소세키 및 주변인들과 만나게 되는 사건도 나옵니다. 스토리작가의 생각인지 그림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에서 안중근을 의사(義士)로 칭합니다. 원작에서도 그런지 번역하면서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작을 보신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안중근은 처음에는 야마시타라는 고관을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우연히 같은 기차에 탄 건달이 막았고 야마시타를 경호하던 경찰 간부가 이들을 보고 조선 병합 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인물은 이토라고 가르쳐 줍니다. 건달은 안중근을 나쓰메 소세키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조선에 돌아갈 때까지만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합니다.
전체 내용을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죠. 「도련님의 시대」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90년대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지식인 예술가들은 군국주의 시대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품이 출간될 수 있었겠죠. 메이지 말기 지식인과 지사, 예술가들도 전체주의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표현도 좋아서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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