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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그르니에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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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으로 카뮈를 처음 만나게 된 이후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곧바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 이전까지 읽은 그의 작품이 한 권에 불과했기에 그의 작품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의 이해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카뮈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의 스승인 그르니에라는 또다른 철학자의 면모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속의 카뮈-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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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으로 카뮈를 처음 만나게 된 이후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곧바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 이전까지 읽은 그의 작품이 한 권에 불과했기에 그의 작품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의 이해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카뮈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의 스승인 그르니에라는 또다른 철학자의 면모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속의 카뮈-그르니에처럼 거의 30여 년 동안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없이 소중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러스트 이방인>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가 가지 못했던 몇 부분이 있었다. 물론 일러스트 몇 점이 그런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하는 상상력의 도구 역할을 하긴 했지만,순수 문학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이 작품이 난해하다고 느껴졌던 적이 읽으면서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마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카뮈와 그르니에의 부조리에 대한 논쟁과 비평집에 나온 묘사,설명에 대한 조언과 기타 소설,희곡 작품에 대한 두 지성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논쟁은 어느 정도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카뮈와 그르니에의 특징을 구분지을 수 있는데,카뮈는 그르니에의 제자라는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장문의 편지가 많고,그르니에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거나 자신이 어렸을 때 패결핵을 앓았던 사실 등 자신에게 숨기고 싶은 일들까지도 가감없이 낱낱이 밝히고 있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르니에의 약간은 독설적인 답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적을 수용하며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그르니에의 편지 대부분은 짧고 스승과 제자 관계임에도 경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카뮈가 보낸 편지에 비해 그 수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성격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그 짧은 내용에도 카뮈에게 할 말은 다하고 카뮈의 작품이나 비평,희곡에 대한 분석이 깔끔하게 나온 편이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편지는 상호보완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호보완적인 편지 속에서 두 사람의 사생활이나 생각의 차이,당시 사회상 등 여러가지 부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문학적 측면 말고도 이 책은 자료 가치가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중반 이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보이는데,이 사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각자의 안부나 생활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고,카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만 빼고는 편지의 내용에서는 크게 달라진 말투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아마도 그르니에가 카뮈를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자신의 책인 <섬>의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한 부분이나 그에게 충고를 구하는 내용이나 원고를 그에게만 유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스승과 제자 관계였지만,편지로는 서로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대화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카뮈의 작품과 생활에 대한 이해와 함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어서 반가운 독서였다. 만약,카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지 않고 계속 편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르니에가 세상을 떠난 1971년까지 11년 간의 편지를 더 볼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3/2/18

l*****3 2013.02.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마음을 나누는 우정과 사색의 편지 235통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마음을 나누는 우정과 사색의 편지 235통" 내용보기
지금 제겐 정말이지 꼭 한 가지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게 말입니다. (p. 26 카뮈)   열정을 다하여 산다고 하셨던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를 추동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마음을 나누는 우정과 사색의 편지 235통" 내용보기

지금 제겐 정말이지 꼭 한 가지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게 말입니다. (p. 26 카뮈)

 

열정을 다하여 산다고 하셨던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를 추동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극단적인 경우일 뿐입니다. 니체는 거기서 광기를 만납니다. (p. 98 카뮈)

 

편지 혹은 전보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는 것. 때로는 엇갈리기도 하고 긴 시간 답장을 기다린다는 것.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하물며 요즘은 몇 시에 어디서 만나기로 하고서도 오는 동안 어디쯤인지 몇 시에 도착하는지 또 혼잡한 곳에서는 어디 있는지 쉴 새 없이 연락한다. 가끔은 그런 것이 신물 날 때도 있다. 어릴 적만 해도 친한 친구와 주고 받았던 편지나 쪽지가 수십 통 어쩌면 수백 통일 수도 있다. 손글씨가 그립다. 그리고 불과 몇 십 년 전의 몇 일 혹은 몇 주 간 답장을 기다리는 일상이 그리워 질 때도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말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음이, 그들 스승과 제자 혹은 문우 간의 우정 깊은 편지로의 대화가 그저 부럽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235통에 이른다. 카뮈가 112, 그르니에가 123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 (p. 13 책 머리에)

 

귀중한 친구이신 그르니에 선생님, 이제 와서 새삼스레 제가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을 키워주고 이끌어주신 분들에게는 감사의 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저 계속 그 모습 그대로 계셔달라고 부탁할 뿐이지요. 부디 저에 대한 선생님의 우정을 간직해주십시오. 그것은 제 삶과 제 노력을 위하여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로서는 불안스러운 저를, 그리고 친구로서는 낙관적인 저를 믿어주십시오. (p. 285 카뮈)

 

내가 이 책을 궁금해 한 건 물론 알베르 카뮈의이방인이란 작품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옮긴이(번역가) 김화영 교수의 덕분이다. (아쉽게도 장 그르니에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ㅜㅜ) 우리나라에서 카뮈의 번역도서를 접해본 독자라면 알 것이다. 카뮈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우리나라에서 알베르 카뮈란 작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꼽는다면 1위를 선뜻 내어줄 김화영 교수.

뭇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노라면 프랑스 남부지역 특유의 프로방스의 빛과 풍경이 느껴진다고 한다. ‘태양과 지중해의 작가카뮈 역시 어느 장소에 머물든 그리워하던 곳. 따뜻한 햇살과 온화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지 없이 화창하여 우울증을 앓던 이도 며칠이면 호전될 것만 같은 행복한 날씨. 문학동네 카페에서너무 짧았던 여름의 빛목신을 찾아서를 연재하며 카뮈가 머물던 장소를 비롯한 프랑스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도 한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펴 들고 처음 마주하는 글 또한 옮긴이 서문 ‘<카뮈-그르니에 서한집머리에 부쳐. 책을 출간하며 또다시 프로방스를 방문하여 서한집에 나오는 마을을 찾기도 하고 카뮈의 딸 카트린 카뮈를 만난 시간이 쓰여있다.

 

 

당신이 내게 보여주는 우정에서 큰 행복을 느껴요. 당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맛보았던 감탄의 느낌이 날로 커져가는 것에 더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 자신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이 합해집니다. 전에는 당신이 유아독존의 바리새인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빠른 속도로 젊은이 특유의 오만에서 벗어났고, 그리하여 진정한 위대함에 도달했어요. 당신은 이미 위대한 재능을 타고났었고 또 엄청난 장애물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러한 재능과 그 장애물들에 상응하는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런 재능을 타고나서 그런 장애물들을 만난 경우는 더욱 드문 일입니다. (p. 270 그르니에)

 

선생님께서는 솔직히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주 불안한 심정으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 저의 삶에 순수한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p. 46 카뮈)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읽으며 먼저 든 생각은 두서 없다는 것이다. 둘만 아는 이야기를 엿본다는 것, 게다가 흥미진진 로맨스나 고백도 아닌 그저 스승과 제자 혹은 문우(文友) 간의 사소한 편지를 엿본다는 것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비단 당사자가 그르니에-카뮈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카뮈-그르니에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흥미롭지 않은 사소한 것들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나 보다. 글쓰기에 관한 근원적 고민 외에도 읽는 책, 건강에 관한 이야기(카뮈의 폐결핵), 가족사, , 불안정한 공간, 공산당 입당 권유, 식량요청, 유럽, 남미 여행, 철학교사, 강연, 직업적 연극 배우, 회곡 작업, 신문기자 등 일상을 주고 받으며 1932~1960년 무려 28년 간 주고 받은 편지들이다. 전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80여 년 전 카뮈-그르니에의 편지, 엽서 때로는 전보를 읽는 다는 것은 어쩐지 그들과 가까워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더 작품이 궁금해 지기도 한다.

 

 

 

게다가 저는 요즈음 아주 이상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무감각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고 이 병이 오래가는 것이라면 그건 지옥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얌전한 회의주의자이므로 치유와 은혜와 맑은 이슬을 기다리면서 선생님에 대한 사랑으로 알렉상드르 뒤마를 읽고 있습니다. (p. 332 카뮈)

 

제가 생각하는 바를 선생님께 제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그러나 적어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이 광란 속에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붙잡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최소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가치들만이라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p. 61-62 카뮈)

 

카뮈 17세에 처음 만난 그들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로,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편지는 마음이 잘 통하는 벗으로서 때로는 서로의 조언자로서 마음을 나눈다. 서로에게 카뮈의 저서안과 겉>, <반항하는 인간>, 그리고 그르니에의 모래톱을 헌정했다. 그리고 서로의 작품을 굉장히 사랑했다. 카뮈는 심지어 그르니에의 <섬>을 서른번도 넘게 읽었다!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작품을 생산한 데는 당시 척박한 환경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40년대 전쟁(2차 세계대전), 식량조차 부족한 그 광란의 틈바구니에서 거의 항상 재미없는 따분한 일상 속 폐결핵까지 앓은 카뮈는 많은 시간 회복을 위해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시간 동안 글에 관한 신념과 결단력으로 이미 출간한 작품을 몇 년 간 고치며 작품의 완성에 공을 들였다.

 

 

 

우리는 항상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나와는 무관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생각도, 당신의 고독도. 유람스럽게도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이기적이었고 몰이해했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갈라지는 것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한계에 또다른 한계들을 덧보태기 때문이고, 자기 속에 웅크린 채 편협해져서 남이 뚫고 들어올 자리를 남겨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영에 찬 자기만족으로 보여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을 내맡겨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p. 144 그르니에)

 

이처럼 고전이 훌륭한 것은 당시 환경에서 기여된 것이 아닐까. 현대는 할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TV며 컴퓨터며 스마트폰까지. 당최 인간이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멍하니 받아들일 뿐이다. 혹자는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제발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라며 생각 없이 빠르기만 한 현대인을 비판했다. 생각. 나 자신에 대해, 나의 시간들에 대해, 미래에 대해, 혹은 어느 하나에 대한 곰곰한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오늘 단 한 시간만이라도 오롯이 생각하였는가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고독은 제 개인적인 작업의 길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방책이었습니다. 그 외의 다른 방책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더 이상 제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미신일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는 안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p. 352 카뮈)

 

나는 작년에 노자의 책들을 읽었어요. 도가道家의 세계는 대단한 것입니다. <선택의 후편-‘무위無爲’-을 쓸 때는 거기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동방사상은 유럽의 깊고 비극적인 허무주의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당신은 그걸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피츠제럴드가 그랬듯이 고독 속에서 낭비하는 한순간이랄까요! (p. 126 그르니에)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다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실제에 있어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이 모든 것을 얻어 가지기만 할 뿐 그 어느 것 하나 보답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던 그 시절에 대하여 변함없는 향수를 가지네 될 것이면서도-스승은 흐뭇해한다.”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의 서문 (p. 445 해설)

 

y****j 2012.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책세상)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책세상)" 내용보기
펴낸날 초판 1쇄 2012년 10월 30일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6. 지금 제겐 정말이지 꼭 한 가지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게 말입니다. 삶에 대하여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6. 저로서는 교육계에 진출할 길이 막혀 있으므로 뭔가 개인적인 작업을 할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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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날 초판 1쇄 2012년 10월 30일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6. 지금 제겐 정말이지 꼭 한 가지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게 말입니다.

삶에 대하여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6. 저로서는 교육계에 진출할 길이 막혀 있으므로 뭔가 개인적인 작업을 할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그러니까 전문 분야나 철학 쪽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 맛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게 대학 쪽의 일과 연관을 갖는 한 방식이 될 것 입니다.

 

26. 선생님께서 읽는 걸 너무 힘들어하시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읽어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물론 제가 쓴 글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그걸 읽고 싶어하시는게 왜 실례되는 일이겠습니까-제가 이 글을 보여드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선생님뿐인걸요.)비록 그 글이 신통치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것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것은 제게 해방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60. 루이 기유의 대단히 아름다운 그 책을 읽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그 어조에 더 많은 감동을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중년에 이르러서도 인간은 자신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만큼 아름다운 주제를 찾아내지는 못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77. 선생님이 부조리에 '대항하는'뜻에서 쓰신 글이 제 마음속에 각성시켜주는 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부조리의 사상이 (심지어 미학적인 면에서도) 어떤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막다른 길에서 살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쨋든 그것은 진실이 그 진실을 발견하게 된 사람에게 용납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제가 어떤 '실질적인' 딜레탕티즘(선생님은 <<시지프 신화>>에 그런 위험성이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셨지요)에 빠져들지 않도록 항상 막아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저의 타고난 출신 환경입니다. 어쨌든 부조리에 '먹혀버리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은 그 보조리에서 이점을 얻어내려고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것을 외면해버리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고 나서 망설임 끝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가끔 제가 내린 결론들 중 한 가지는 어떤 종류의 포기(뉴먼이 기막히게 표현했듯이 "이 세상의 어던 것들을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을 찬미하라")라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하기야 포기라는 말은 좀 지나치고 가난이라는 말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84. 저는 제 에세이가 모든 것을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26. 인간은 결백하지 않고 '또한' 유죄인 것도 아닙니다. 이 모순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리유(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치유해야 한다. 이겁니다-사태를 제대로 '알게'되기 전까지는, 혹은 뚜렷이 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것은 기다림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리유는 "나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무지의 고백에 이르기 위하여 아주 먼 곳을 돌아온 겁니다.

 

143. 방금 이 작은 책<<어휘집>>속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늘 그렇듯이 저는 또 지각생이 되었네요(정확한 시간에 닿지는 못해도 약속은 엄수하죠).

시체드린의 <<골로블료프 가의 사람들>>을 읽고 있습니다. 절망적인 내용이지만 대단한 책입니다. 러시아의 영혼은 톨스토이를 제외하고는 째째한 영혼입니다.-제가 볼 때 비록 설교를 늘어놓기는 해도 톨스토이가 으뜸입니다.

 

152. 제가 보기에 모든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선택으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이반은 진리보다는 정의가 먼저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기 혼자만 구원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우선 진리가 먼저여야한다고, 결국에는 모두가 다 구원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선택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한쪽은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병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라면 병이 들고 '그리고'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63. 저는 선생님께서 저더러 공산당에 입당하라고 충고하시고 나서 어떻게 그후 선생님 자신은 공산주의에 반대 입장을 취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여 공산당을 떠나게 되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장 그르니에->알베르 카뮈

 

57. A.루소는 모든 책을 애국심이나 윤리, 종교 같은 시각에서만 보고 판단해요. 그가 하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요컨대 그의 판단 기준이 내가 보기엔 너무나 편협하다 이겁니다.<<배덕자>>나 그 밖의 숱한 책들의 서평을 그에게 쓰라고 했으면 뭐라고 썼겠소? 따지고 보면 <<이방인>>의 시니시즘의 근저에는 절망과 열정이 혼합되어 있는데 그는 그것을 알아볼 줄 몰랐던 겁니다.

 

62. <<푸제 씨의 초상>>에 대한 당신의 글은 최고입니다. 정말이지 완벽해요. 그 글을 <<레 카이에 뒤 쉬드>>에 보낼까요?

<<꿈속의 빵>>은 과연 매우 아름다운 책입니다.<<이방인>>역시 그렇소.

당신의 눈에는 내가 '사회'를 대표한다고 보였겠지만 당신은 내게 결코 '이방인'이 아니었어요.

 

66. 나는 작년에 노자의 책들(비제 신부의 번역)을 읽었어요. 도가의 세계는 대단한 것입니다.<<선택>>의 후편-무위-을 쓸 때는 거기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동방사상은 유럽의 깊고 비극적인 허무주의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당신은 그걸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어요(당신과 비슷한 쪽은 오직 오마르 하이얌뿐이지요).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피츠제럴드가 그랬듯이 "고독 속에서 낭비하는 한순간"이랄까요!

 

101. 반항. 당신은 진실, 정의, 선의 등 추상적인 가치들에 대한 반항을 말하고 싶은가요? 니체가 그랬듯이? 내 생각은, 그 반대예요. 하지만 가치들은 인간을 서로 이어주는 것이죠. 인간이 가치를 창조할 때마다 새로운 끈이 만들어집니다. 루크레티우스가 맞서서 반항했던 신드은 적어도 변덕스럽기라도 했지요. 제반 가치들과 관련해서는 그 어떤 연민도, 그 어떤 '인간적인 면'도 기대할 수가 없어요. 이건 청교도주의와 과시적 미덕만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자유를 누리라고 태어난 것이 아닌지도 모르지요.

 

111. 나는 여전히 진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사회적인 것도 역사적인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그다지 변함이 없어요.

 

12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탁월한 것은 그 삼형제가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편지가 인생이 그들의 친밀함과 책과 세계의 정세가 어렵다.

당시의 시대상을 모른다 하더라도 이 두 사람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면 이해가 훨씬 쉬웠을테지만 그러하지 못하여 책에 대한 의견교류가 도움이 될텐데도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나의 얇은 지식에 슬펐다.

표지는 깔끔하다.

c****h 2013.05.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