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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는 조금 독특한 위치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많은 시대극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대극이라는 틀 안에서는 그렇게 특별한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경우에 대부분의 시대극이
기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어떤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하나의 시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카게무샤는 가장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그동안 역사적인 상황에서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이 카게무샤가 일종의 도전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도전의
결과는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물론 감독의 상상력을 마음대로 영화 속에서 풀어내는 부분에서는 역사적인 사실의 기간표를 따라야
했다는 점에서 제한이 되는 부분이 있었으나 이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다케다 신켄의 죽음은 실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빈자리가 꽤 있다는 지점에서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 이후로 비슷한 영화들이 꽤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이 영화
카게무샤에서 펼친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을 제외하고도 이
영화 카게무샤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더불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보여주었던 방향성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사무라이로 상징이 되는 무사 계급의 몰락을 통해서 국가적인 폭력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부터 시작해서 츠바키 산주로에서 이야기하는 칼은 칼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그
말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그러한 생각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그 생각이 이 영화 카게무샤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사무라이의 몰락을 이 영화는 영화의 절정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오다와 도쿠가와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는 다케다의 기마대를 통해서 보여준다. 사실 이 장면은 일본의 역사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중요한 전력이었던 사무라이 기마대의 몰락이 시작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장면 하나와 함께 그림자 무사였던 주인공이
홀로 창을 들고 달려가는 장면을 통해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사무라이와 사무라이 정신으로 이야기되던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카게무샤가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