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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이름도 없는 숱한 죽음과 살아남은 자의 고통-조선 청년이여, 황군신민이 되어라
"꽃도 이름도 없는 숱한 죽음과 살아남은 자의 고통-조선 청년이여, 황군신민이 되어라" 내용보기
'작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울게 되는 건 극히 드문 경험이었는데, 예능에서 일제시대때 피해 입은 조선인의 흔적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으니. '조선 청년이여 황국신민이 되어라'는 제목에서 상당히 도발적인 냄새가 풍기지만, 내용은 무한도전에서 찾아갔던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 섬
"꽃도 이름도 없는 숱한 죽음과 살아남은 자의 고통-조선 청년이여, 황군신민이 되어라" 내용보기

'작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울게 되는 건 극히 드문 경험이었는데, 예능에서 일제시대때 피해 입은 조선인의 흔적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으니.

 

'조선 청년이여 황국신민이 되어라'는 제목에서 상당히 도발적인 냄새가 풍기지만, 내용은 무한도전에서 찾아갔던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 섬을  비롯해서,식민지 조선, 강제 동원된 역사의 흔적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 이렇게 죽어가고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고, 그 빛나는 청춘을, 인생을 심지어 목숨까지 잃어야했던건지. 그것도 자신의 조국도 아닌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이렇게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을 치뤄야 했는지, 그것은 비극을 넘어 천인공노할 범죄이고 만행이었다.

제목만 봐도 예상했지만 조선인들의 희생과 고통은 알고 있었던 것 이상이었다. 읽으면서 평상심을 잃게 만들고 울분이 솟구치고, 속터지게 하다가 마침내는 눈물 떨굴 사례들로 점철돼 있었다. 일본 욕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었다. 리뷰를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리뷰가 길어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할말이 너무너무 많아서, 안쓰면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아서.

1938년 제정된 국가 총동원법에 근거하여 일본은 공권력을 동원해 인력과 물자를 통제하고 동원했지만,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주장에는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강제동원이 고작 245명에 불과했다니!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지원해 간 것이라니! 징병으로 징용으로, 또는 감언이설로 속여 취업이란 명목으로 조선인들을 데려갔음에도.

전선이 넓어질수록, 패색이 짙어질수록 식민지 조선인의 동원은 더욱 심해졌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전시체제에는 싸우는 전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항만이나 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비롯해서 보급을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요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인들은 생명체가 아니라 일꾼일 뿐이었다.

 

남양군도, 인도네시아,사할린 , 중국, 일본 본토 등 일본인들이 전쟁을 치르거나 주둔하는 곳 어느 곳에나 조선인들은 곳곳에 투입됐고, 이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월급과 일정한 노동시간을 약속받았지만, 그 약속은 바로 물거품이 돼버렸다. 일본인과 차별당하고 가혹한 노동시간과 구타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극악한 환경에 놓이게 됐다. 

작업 중에 사고로, 혹은 탈출을 시도해서, 구타 당해서 죽음을 당한 사람들 적지 않을만큼 일제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신들의 전쟁을 위해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이 조선인들을 착취했다. 국가와 기업이 모두.

 

팔라우 공화국 코롤시에 있는 가장 큰  다리 이름이 '아이고 브릿지'라고 한다. 아이고, 영어도 그 나라 말도 아닌 우리말 아이고가 맞는데, 이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었다. 1939년 다리를 건설할 즈음, 조선인들이 '아이고, 아이고'하고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원주민들이 다리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노예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더욱 '아이고 브릿지'는 그저 일례에 불과했고, 탄광이나 군수공장, 농사 등..분야를 가리지 않고 착취당하는 조선인들이 부지기수였다.그리고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지옥같은 날들이었고, 고향에 가지 못하고 현지에서 죽어가야 했던 조선인들도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았다.

 

더 슬픈 사실은 제대로 무덤이나 유골함으로 수습된 망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 시신이 온전히 수습되지 못하거나, 유실, 불태워지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심지어 일제가 조선인의 사망이나 동원돼 왔다는 사실조차 은폐하려 들어 신원이나 이름조차 확인할 수  없게된 망자가 많았다는 것, 그들은 죽은 뒤에도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내내 가슴 아팠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좋았던 것은 희생자라는 이름의 뭉터기로 인식됐던 동원자들이 하나하나, 개별체라는 인식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귀한 아들이고 딸이었을 그들. 죽음과 고통 앞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처나 자식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을 그들을 생각하니,가슴이 울컥해졌다. 이들은 전쟁이란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1945년 광복을 맞이한 뒤, 동원된 조선인들에게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아마도 생존해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고국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을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생존한 조선인들에게 일제가 귀국을 돕거나,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국민이 무사히 귀환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못했다.

 

사할린 경우에는 현지의 노동력이 부족하자, 조선인들의 귀환을 막았지만 이럴 때 조국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국은 해방후 정국이 워낙 혼란스러워 살아남은 조선인들을 데려오는 게 신경쓸 여력도 능력도 없어 보였고, 일본은 자국민에 집중해서 조선인을 도와주기는 커녕 방해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일본은 끝까지 사악했다.

조선으로 돌아가는 귀국선을 의도적으로 침몰시켰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는 우키시마호 침몰사건이 그 단적인 예인데, 1945년 8월 25일 귀국하던 동포들이 탄 배가 침몰해 무려 40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벌어졌다. 광복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흥분하고 기뻐했을 그들에게, 전시에서도 살아남았던 귀환자들에게 귀국길이 황천길이 된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수장당하는 참사가 벌어졌고, 그 사고는 일본이 고의로 저질렀을 가능성이 농후했다니.

대체 일제의 만행은 어디까지인지, 이 책에 소개된 것만 해도 임금을 떼먹은 정도는 미미한 거고, 일본 책임자들이 조선인 포로 감시자에게 죄를 전가해서 전범 판정을 받게 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학살하기까지 감행한 것이 일제였다. 패전처리 또한 최악이었고, 조선인의 인권를 짓밟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조선 청년이여 황국신민이 되어라'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저지른 만행 수많은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수많은 상황들을 접하고 나니 전쟁이란 일단 벌어지고 나면 얼마나 인간을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만드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승리를 위해 국가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조차 전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의 만행 중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조선인의 불행을 안타까워하고 그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일본을 탓하는 것으로, 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무리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쟁의 참사 속에서도,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했던 조선인을 보호해주려고 애쓰고, 유골이나마  지켜주려던 일본인들도 있었다는 것은 말하고 싶었다. 모든 일본인들이 다 침략자 근성은 아니었던 것이다. 민족을 떠나 인도주의적인 마음에서, 혹은 아무리 조국이라도 제국주의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에 반발한 사람이 존재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종전 뒤에 조선인이 입었던 피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추모비를 세우는데 앞장선 일본 시민단체나 동포들의 활동도 눈에 띄었다. 기나긴 세월동안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활동했던 것은 그만큼 의지와 애정을 가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동원됐던 현지에 남아 살아가야 했던 조선인과, 그들의 2,3세들 의 활동 역시나  눈여겨 봐두었다.아무래도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애정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중에서 조선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양칠성, 그는 인도네시아 여인과 결혼해서 아들까지 낳았고, 해방후에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정착하게 됐다. 인도네시아에 네델란드군이 들어오자 식민지 백성이라는 동병상련의 유대감을 느끼고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이었다. 그러다 네델란드군에게 처형당했는데,그의 묘비에 새겨진 것은 조선이름이 아닌 인도네이사 이름이었다. 본명을 몰랐던 탓인데, 그뒤 양칠성이란 조선이름을 되찾기까지 무려  46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또 한가지. 중국에서  조선족이 소수민족 자치주가 될 수 있었던 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국 혁명사에 양세봉이나 무정장군 등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조선인이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걸렸던 점에도 한마디 하고 싶다. 양칠성의 경우 사자인 그에게 조선이름을 다시 되찾게 해준 것은 한국의 사업가였다는 것,이쯤에서는 후안무치한 일본도 일본이지만 우리정부나 사회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 동원돼 곳곳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추모나 유해의 발굴과 귀환, 그리고 살아남아 현지에 정착하게 된 조선인들, 그들의 후손 또 고국에 있는 가족에 대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현지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진상도 제대도 밝혀내지 못하고.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산 자에게는  산 자대로, 죽은 자에게는 죽은 자대로 제대로 보호와 관심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만큼 이 책을 읽는 동안 일본의 만행과는 별도로 그 부분이 송구스러웠고, 그래서 불편하기도 했다.

 

꽃도 없고 이름도 없이 타국 땅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조선인들,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고통 끝에 살아남아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했던 조선인들은 고국과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함과 비겁함을 재차 확인하게 되면서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대체 이 조선인들에게 정부란 무엇이었을까 동포란, 후손이란 또 무엇이고. 그저 부끄러운 정부에 면목없는 후손이라 자성하게 된다.

 전쟁에 피해입고 희생된 사람들의 삶을 되찾아주고, 그들을 기리는 것, 그 일은 어느나라 민족, 국민이냐를 떠나 이미 돌아가신 분,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 인도적이고 인권을 지키는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망자에 대한 예우이고, 고통을 겪은 인간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을 가리고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밝히고 추모하는 작업 또한  더이상 미루지 말고,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 그것은 곧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e****0 2016.02.18. 신고 공감 7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 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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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독도 망언'이 신문, 방송, 포털에서 회자된다. 반일 감정이 거세지고 한국 축구 대표팀이 일본 축구 대표팀을 이기기라도 하면 온 국민은 열광한다. 축구든 야구든 한일전은 언제나 흥행을 보증하는 단골 소재다. 이에 대한 분석으로 어떤 사람은 한국과 일본의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때는 20세기 초. 1945년에 일본이 패전하면서 한국은 광복을 맞는다. 지금은 2012년. 70여 년이 지난 현대, 일제시기를 직접 겪은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많은 한국인이 갖는 반일 감정은 가족으로부터, 학교 수업에서, 혹은 매체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세월이 갈수록 반일감정은 존재하되, 강도는 옅어지고 구체성도 낮아진다. 역사가 딱히 인기 있는 과목이 아니다 보니, 일본이 조금 밉기는 한데 왜 미운지는 모르겠고, 모닝구무스메나 스캔달, 은혼은 좋으니까 막상 일본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를 비롯한 20대는 대충 이런 상황일 테다. 


이러한 태도는 꽤 위험하다. 한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은 파쇼적 선동에 휘둘리기 좋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가는 지름길, 타자에 대한 증오심! 


대한민국과 북한, 한국과 일본 관계가 적대적 공범자라 생각했다. 일본이 제국을 지향하며 펼친 식민지 억압 정책이 잘못되긴 했지만, 당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경도된 대다수 유럽 제국이 동일한 짓을 저질렀으므로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판단했다. 식민지를 바라 보는 시선이 수탈과 저항이 아니라, 식민지 회색지대론으로 가야 한다고 믿었다.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를 읽음으로써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이 꽤나 위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내일 쓰지, 뭐. 귀찮다. 자야지.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2.1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