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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작가의 이력에 끌렸고, 검은 표지에 양장인 디자인에 끌려 책제목을 클릭했더니 책 속의 내용 중에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거야"라는 말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고 읽은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나는 이 소설의 내용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다"라는 표현이 경박스럽고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이 소설은 아름답고, 우울하고, 담담합니다. 특히 배고픈 천사와의 만남은 없어서 못 먹는게 아니라 질려서 못 먹는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어떤 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충격이었습니다. 배고픈 천사는 레오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게 했고, 삽질 1회=빵 1그램이라는 공식을 만들게 했고, 빵바꾸기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했습니다. 경이롭기까지 한 작가의 낱말조합은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창의적인 기발함에 나를 놀라게 만들었고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력에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을 겪어본 적도 없고 겪어본 사람의 무용담조차도 들은 적 없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진짜 내가 레오가 된 듯 수용소 생활의 참담함에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 가슴 아프도록 우울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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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번역자의 해설을 읽으면 본문의 내용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능한 해설을 읽기 전에 가졌던 느낌과 이해를 중심으로 이 단편소설집을 바라보려 한다. 책에는 모두 12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단편이라는 특성 상 각각의 소설에는 긴 서사가 따라붙지 않는다. 그런 서사 없이도 카버는 특정한 장면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사람 간의 관계성, 삶의 실제 등을 반걸음쯤 떨어져 그려내는데 상당한 특기를 발휘한다. 다소 건조한 듯한 상황 및 심리 묘사를 통해 우리들의 속내를 밝히는 내용을 대한 때면 가슴이 아팠다. 첫 편인 깃털들은 쓴 의도를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의 삶은 예기치 못했던 어떤 계기로 인해 변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좋은 계기였던 아니면 나쁜 계기였던 상관없이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정도로 이해했다. 두 번째로 실린 셰프의 집. 보통 사람의 삶은 온전히 좋은 방향으로만 가지도 않고 나쁜 방향으로만 가지도 않는다. 삶은 느닷없이 끼어드는 변수로 인해 갑작스레 원하지 않던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원망과 푸념일 뿐이라는 카버의 자조 섞인 뇌까림이 남는다. 이어지는 보존. 직장에서 해고된 젊은 남편과 겨우 직장을 붙들고 있는 아내에게도 현실의 답답함은 비켜가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고장이 난 냉장고 때문에 당장 저녁 식사부터 영향을 받는다. 부부는 문제해결 방법에 동의한 것처럼 보였지만 서로의 세계로 갈라진다. 네 번째인 칸막이 객실. 영화에서만 보던 칸막이 객실 기차가 등장한다. 8년 전에 이혼하면서 아이와도 헤어지게 된 마이어스는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아이를 만나기로 하고 밀라노에서 출발하는 칸막이 객실 기차를 타고 목적지로 떠난다. 삶의 불연속성, 허무함,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본심 등 인간이 겪는 여러 가지가 찰나와 같은 순간에 흘러간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점이 강조된다. 다른 많은 리뷰에서 가장 좋았다고 손을 꼽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사고의 순간은 간명하게 처리하지만 그 사고에 임한 부모의 심리 상태는 세밀하게 묘사한다. 다정한 듯, 아는 듯 보이던 전문가는 한계를 드러내고 무뚝뚝한 누군가는 속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당신의 진정한 이웃은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는 누군가가 아니라 속을 내어주는 누군가여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비타민과 신경 써서의 두 편이다. 두 편에는 모두 아내의 말을 집중해서 듣지 않는 남편이 등장한다. 사람 사이의 문제가 소통의 불비, 그것도 서로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고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카버의 후회 같은 게 녹아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는 알코올 중독을 끊고 가족, 좁혀서 보자면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여인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작가의 심리가 드러난다. (아닌가?) 카버는 기차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당신이 어떤 과거를 지녔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건 대부분의 타인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생각? 그렇다면 타인의 시선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말라. 열과 굴레의 두 작품에서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앞에 나온 작품들에 비해 다소 바뀐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들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마냥 부대끼거나 지워지기만 하지 않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포용(?)하려는 인물들의 특성이 보인다. 물론 세상은 사람에게 녹록하지 않아 그들의 삶은 삐걱거린다. 굴레에 나오는 베티와 홀리츠의 마지막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마지막에 실린 대성당은 좀 어색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싶었는데 깊이 빠져들어 읽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로버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은 카버의 바뀐 인생의 계기를 보여주는 설정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대다수는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나머지는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어떤 이는 중요한 실재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확실히 어른, 그것도 상처입은 어른이 읽는 소설이다 싶다. 내용이 19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보고 여러 상황을 겪어본 경우라야 자극을 주는 장치 하나 없이 담담하게 쓴 이 소설들을 깊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카버를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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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토니 모리슨을 읽고 싶었다. 그러다 작년에 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고 너무 미뤄두었다는 미안한 마음에서 천천히 그의 책을 사고 있다.
책은, 어렵게 읽었다. 특히 초반부는 기괴하고 복잡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기본적으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노예 생활이 배경이지만 노예 생활과 노예제가 어떠했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주가 아니다. 이미 기록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한국의 ‘한’처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성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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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부분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기 롤랑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는 내용입니다. 추리소설같은 느낌도 약간있고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모디아노는 과거, 특히 자기 자신의 과거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작품을 쓰고 있는데 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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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줄임표가 글의 3분의 1쯤 차지하는 것 같은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적막한 기분이들었다. 중얼거리는 듯한 문체 때문인지 열의 없이(적어도 겉으로는 그래보였다) 과거를 찾아다니는 주인공 때문인지 그 끊임없는 말줄임표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가 힘들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사랑하고 또 상까지 주었을까? 그 사람들은 아마 내가 느꼈던 그 적막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대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소설에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나이차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인생을 살 만큼 산 남자가 온 몸으로 쓸쓸함을 뿜어내는데, 그 어디에도 나와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인생이 1부터 10까지라고 치면, 이 남자는 이미 9쯤에 도달해서 10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까마득한 과거를 모두 돌아보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나는 5 근처에 있는데다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극도로 흥분한 상태다. 그에게 공감하기엔 우리가 있는 위치가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주인공에게 인생은 쓸쓸하고 고독한 것. 나에게 인생은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게임 같은 것. 따라서 철딱서니 없는 젊은이인 내가 보기에는, 주인공이 과거를 찾아다니는 게 마치 죽기 한 달 전에 유품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나중에 내가 늙으면 이 발언을 부끄러워할 것 같다). 기억상실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상관없이 노년에, 삶이 너무나 쓸쓸하게 느껴져서, 이미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서, 내일과 그 다음날과 또 그 다음날이 무궁무진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과거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기억들을 반듯반듯하게 정리하고 순서대로 떠올려보고. 마치 유품을 정리하듯이 말이다. 더 이상 설렘 가득한 미래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하루를 보낼 소일거리를 찾는 것 같기도 하고(나중에 내가 늙으면 이 발언도 부끄러워할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감동을 느끼기엔 시기상조인 듯하다. 내가 호호할머니가 되고 나서 읽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 감동을 느끼는 날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저 주인공처럼 늙어서는 삶에 쓸쓸함 밖에 남지 않는다면 바로 죽어버릴 것이다. 쓸쓸하고 고독한 삶은 한 순간도 살고 싶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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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세계제2차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17세 독일 소년의 삶을 충격적이지만 섬세한 시적 언어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흔들리는 것을 상징하는 숨그네.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 삶의 현장을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포착해낸 작품입니다. 헤르타 뮐러가 실제 수용소 생존자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구술을 토대로 작품을 쓴 숨그네. 꼭 한번쯤은 읽어보아야할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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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백여 페이지는 꾸역꾸역 읽었다. 500쪽이 넘는 이 책,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였으니까. 나는 자유롭고 길을 잃었다. 느낀다. 나는 나다.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자유로운데 길을 잃느냐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자유로우면 애초에 길이 존재할 필요도 없는, 틀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 그렇지만 진정한 자유는 길을 잃을 권리마저 준다는 것을 나는 삶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나는 하나를 더 안다. 자유롭고 길을 잃은 상태에서, 내가 나라고, 내 자아를 잃지 않고 오히려 확신에 가득 차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나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사는 것이다.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에게 같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일까?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으면 저절로 생각하게 된다.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페소아는 본인에 대해 몽상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불안의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그가 확실한 몽상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몽상가였고,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으며, 현실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 앞에 참 많은 수식어를 달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명료하다. 그리고 그건 당신과 내가 <불안의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떻게 원하는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원한다거나 원한다는 것을 원하는 생각과 감정에 아는 것을 멈추었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인간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당신도, 나도,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 그 기분, 그때 그 순간을 묘사했다. 감정 사진기가 있었더라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분명 일기처럼 짧게 끄적인 글들을 모아둔, 매우 개인적인 타인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때론 다중인격자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각각의 글들의 개성이 뚜렷했던 페소아의 <불안의 책>. 이 책이 페소아의 사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아쉽기만 하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 느낌으로 썼다는 이 책. 페소아가 예전에 쓴 자신의 글들을 한데 묶어놓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인생은 감탄사와 의문사 사이의 머뭇거림이다. 자신만의 철학과 주관이 뚜렷했던 페르난두 페소아. ‘감각’을 통해 인생과 삶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그의 글 <불안의 책>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사실 에세이라는 것을 모르고 소설이라 여기고 읽기 시작했기에 또 다른 자아와 이야기하는 작가 자신의 말들을 컨셉으로 받아들였다. 컨셉이 아니었다는 것은 절반쯤 읽은 이후 알게 되었는데, 에세이임을 알게 되자 그의 모든 글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부분을 갖춘 이 책. 2019년의 마무리를 페르난두 페소아와 그의 진지한 고민, 그리고 성찰적인 글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더 의미 있던 <불안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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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 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그들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파트릭 모디아노는 그런 이들을 해변의 사나이들이라 칭한다. 발자국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모래를 밟으며 발자국을 남기는. 나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있는 당신도,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 해변의 사나이들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또 다른 말로, 기이한 사람들. 이건, 그 기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쓴 한 사람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직 사설탐정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기억상실증에 걸려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 롤랑. 자신의 출신도, 나이도, 심지어 이름까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는 자신의 과거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사람을 찾기 위해 무모한 여정을 떠난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아 지난 발자국들을 되짚으며 걷는다. 정말 오래전 일이라 이미 거의 다 사라지고 없지만, 혹시나 약간의 흔적이나마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온전하지도 않은 신문 조각에서 시작된 이 긴 이야기는 돌고 돌면서 세계 2차 대전 당시의 프랑스를 주 무대로 삼으며 과거의 기억을 모으는 한 남자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의 증언들을 들으니 얼핏 떠오르는 것 같은 기억. 그런데 그걸 신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종잡을 수 없고 너무나도 단편적으로 보였기에……. 어떤 것이 몇 개의 조각들, 한 귀퉁이들이 갑자기 탐색의 과정을 통하여 되살아나는 것이었어요……. 하기야 따지고 보면, 어쩌면 바로 그런 것이 인생일 테지요……. 파트릭 모디아노는 끝내 기 롤랑의 되살아난 기억이 그의 것이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의 기억이 말하는 것처럼 페드로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사람의 기억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시원하게 결론 내려진 게 없으니 찜찜할 법한 마무리였지만 오히려 마음은 먹먹하다. 전쟁의 후유증이란 것을, 전쟁이 사람이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서로를 배신하게 하며 죽게 하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읽었기 때문이다. 참 오래전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던 전쟁의 희생자들. 전쟁은 삶과 사랑, 미소와 자유, 행복과 시간, 추억과 친구, 그리고 우정까지 모두 다 앗아갔다.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살았을 페드로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끝내 진짜 자신을 알아내지 못한 기가 마지막으로 거쳐 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이야기를 담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이 책에는 전쟁의 흔적과 전쟁이 흐느끼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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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책들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문학동네소설세트인 고래나 칼의 노래 검은꽃등등 전권은 아니지만 몇몇 유명하거나 끌리는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책들과는 반대로 색감도 화려하고 파격적인게 이번 시리즈 책들도 맘에 들었다 전권을 구매해서 나란히 책꽂이에 꽂아봐야겠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겨버렸다 다만 책값들이 몸값이 비싸서 한권씩 한권씩 생각날때마다 구매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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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되어 갑작스레 흥미를 느끼고 구매하게 된 책이다. 일단 여성 작가의 책이라는 게 맘에 들었고, 운 좋게도 리커버 특별판이 나온 게 뜻밖이았고, 표현력이 우수한 문장들의 집합이라는 많은 평들이 궁금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과 동맹국이던 루마니아가 소련의 요구에 의해 루마니아 거주 독일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데서 파생된 이야기이다. 숨그네의 주인공 '레오폴트'는 열일곱 살의 남자 아이로 수용소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의 삶은 참혹하고 험난하고 보잘것없기만 하다. 레오를 통해 수용소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번역문학이기 때문일까... 책의 문장들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헤르타 뮐러가 시인 파스티오르가 함께 구상한 소설답게 두 사람의 개성이 담긴 문장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오가는 언어유희나 시적 특성들. 그런 것들에서 어떤 유머나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표현력이 우수하고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슴에 와닿았던 건 표현이 절제되어 생생하게 묘사된 수용소 부분이었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으니 머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시간은 지체되고 재미는 반감된 것 같다. 수용소를 다룬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숨그네가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크다. 새로운 반경의 지식과 교양을 쌓게 해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